본문 바로가기

1987년 대선3

1987년 헌법 제정 시, 결선투표 필요성을 투고한 사람. 1987년 헌법 제정 시, 결선투표 필요성을 투고한 사람.  1987년 10월 16일 조선일보. 독자 투고란.김성기 (대구시 남구 송현동) 대통령 후보 중에 30%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통성' 시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2차 결선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프랑스에는 대통령 선거에 제 2차 '결선투표'가 있다.한국에는 왜 결선투표제가 없느냐? 2차 결선투표의 번거로움과 비용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동아일보 김중배 컬럼. 결선투표는 필요하지 않다, 부차시함. (1987년 12월 5일 동아일보 컬럼)결선투표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결선투표제가 없더라도 대통령 정통성을 저해하는 요인은 아니라고, 소극적 대응을함.    3. 1987년 10월 9일자 동아일보, 박권상 컬럼한국에서 대통령 선거 결선.. 2025. 2. 25.
김대중 3남 김홍걸의 안철수 국민의당 비판 이유 - 새누리당에 어부지리 주고 있다 이 인터뷰에서 빠진 부분은, 안철수 역시 대권 도전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제도처럼, 한국 역시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한, 2차 결선투표 (run-off)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안철수 역시 향후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단일화 압력없이 대선 출마가 가능하다. http://futureplan.tistory.com/527 (1987년 대선에서 프랑스식 대통령 결선투표제도가 있었다면, 김영삼이 당선되었을 것이다) 1.안철수와 국민의당 비판 이유-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정치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 수도권에서 국민의당이 야권 연대를 하지 않아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 안철수의 대권 욕심 때문에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2016. 3. 31.
농가부채 탕감 - 김대중 공약 신문 자료 + 전두환 정권 김대중 (평민당, 민주당)의 농가 부채 탕감 정책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992년, 12월 3일 관훈 클럽에서 김대중 답변:농민 부채 탕감은, 정부 정책 피해자이기 때문에 농민 부채 탕감 해줘야 하지만,도시 서민들의 경우, 생활비 문제이기 때문에, 부채 탕감 대상은 아니다. 1. 전두환 정권, 1987년 12월 10일 원금 및 이자 상환 유예시키다. - 12월 대선용 조치로 보임 2. 1988년 12월 29일자, 매일경제 신문 농가 부채에 대한 각 정당들의 입장 - 당시에도 소득세 감면 기준을 놓고 싸운 게 인상적이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 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정권이 재벌에게 7조 원 탕감해준 사실을 상기시키고,농민 부채 탕감 주장 근거 제시함. 3. 1992년, 12월 3일 관훈 클럽에서 김대중 .. 2015. 7. 2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