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19. 3. 8. 20:17

생물학적 피나 정신적 피를 흘리지 않는 자유 실현이란 있을 수 없다. 




2014년 조사라서 2019년 현재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정치 의식적 측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아래 기사를 보더라도, 진정한 '자유'란 얼마나 실현하기가 힘든가를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자유한국당과 같은 보수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가?
자발적인 노예의식을 '애국주의'로 승화시켜 자기 개인 가치관으로까지 신념화시키고 내재화하는 그 현상은 왜 발생하는가? 


경향신문 강진구 기사는 좋은 글이다. 난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학과 철학에서 고전적인 주제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이 마치 '폴리스'를 벗어날 수 없듯이, 우리가 떼지어 집단으로 폴리스에서 사는 한 이 주제는 풀기 힘든 난제이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쓰는 '계급적 존재를 배반하는 허위의식'이라는 정치적 난제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탈리아 그람시, 독일의 프랑크후르트 학파 등의 연구주제들이다.


또한 제국주의 지배를 받았던 비참한 식민지 국가들에서 왜 '제국주의 세력과 결탁한, 제국주의자들보다 더 악날하고 지독한 자국 협력자들 collaborators'이 발생했는가를 두고 민족해방론자 사이에 주된 관심사이기도 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혹은 규정한다는 조악한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는 폐기해야 한다. 소련 스탈린이 통치 이데올로기 수준으로 전락시킨 이런 조악한 유물론, 혹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마르크스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오해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무능과 무반성을 낳을 뿐이다.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인류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노예의식'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한번 득도하거나 '하느님을 영접'했다는 식은 자유 실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자발적인 복종의식과 자기 기만은 끊임없이 매일 매일 발생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조장 (助長)'하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지배자들이 우리들보다 늘 한 걸음 앞서 뛰고 있기 때문이다. CDs 와 같은 금융 상품의 형태로, 신무기 개발,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 범죄 등으로 늘 다기한 전술로 노예들을 놀라게 만들고 충격받게 만든다.


생물학적 피나 정신적 피를 흘리지 않는 자유 실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자유를 추상적으로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기 결정권'으로 정의한다고 해서, 공동체의 독립 (independence = freedom 어원은 같다)이나 일터, 가정, 쉼터, 놀이터에서 자기 자유는 곧장 보장받지 못한다.왜냐하면 자유라는 것도 아주 구체적인 경제활동, 정치 문화 종교 활동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심지어 같은 노동자들이라고 해도, 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이해관계는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 복잡한 일상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 가족이 논과 밭에서 일했던 농경제 사회에 사는 것도 아니고, 수렵 채취 공동체에 사는 것도 아니다. 매일 매일 끊임없이 형태와 내용이 변화하는 유동사회 (fluid society)가 우리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기 결정권을 한 개인이 충분히 실현한다고 해도, 자기가 속한 수많은 집단들과 공동체의 '자유'와는 충돌하게 되어 있다.


공동체의 자유가 개인의 자유에 우선한다 이런 말에 앞서, 이러한 우리들의 현대적 삶의 조건 하에서는, 시민들 노동자들 학생들 모두 다 자기 이해관계들을 정치적으로 분출하고, 자기들끼리 스스로 조율하고 합의를 해 나가야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 실천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게 된 이유가 경제활동 양식의 변화 때문이다. 경제와 정치, 경제와 문화적 삶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자발적 노예의식과 복종을 가르치는 정치 경제 권력자 집단에 비해서, 일반 평민들 노동자 시민들은 '정치 참여' 시간이 없거나 부족하다. '자유 시간'이 생기면 자야 한다. 노동에 지치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걸 잊기 위해서 뇌 세포를 재생시키기 위해서 자야 한다. 비판의 무기를 벼리는 데 필요한 책이나 지식 습득은 잠 앞에 다 굴종한다. 


진정한 좋은 정치가는 이제 우리들에게 노동시간을 가급적 줄이고,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 법률 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내어주는 사람이다.


진정한 자유란, 스스로 직접 참여해서 피를 흘리지 않는 한, 어떠한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푸닥거리 동원식 정치, 정치적 참여를 단순한 대중동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정당 테크노크라트'와 '정치 기술자들'은 이제 청산 대상이다. 선거에서 이기는 승리자는 될 지언정, 진정한 자유를 꽃피우는 민주주의 경작자는 절대 될 수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들의 정치 의식 대다수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지배자들의 '말과 문장'을 자신의 신념 체계로 만들고 있다. 법률적 지식도, 계산적 수학 능력도, 자신이 믿는 종교적 교리도, 윤리학도 다 무용지물이다. 현실에 남는 것은 '강자에 복종하면서 걍 살어'가 되어 버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문장을 반대로 뒤집어 엎는 그런 실천을 스스로 해보고, 피부로 '아 다른 삶의 양식, 타인과 다른 언어들을 주고 받아도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경제도 붕괴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진정한 자유를 향한 한 걸음을 비로소 떼는 것이다.



[신문 기사 요약]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지배자 신념을 자기 믿음으로 둔갑시킨 비정규직 정치의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인 정의당보다, 심지어 민주당보다 새누리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층이 비정규직이다.


사실 조사: "2014년 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울에 사는 비정규직 2344명에 대한 생활·의식 실태조사"


(1) 비정규직들은 노후 불안과 고용 불안정을 호소하지만,  민주당(16.6%)보다 새누리당(24.4%)에 더 높은 지지를 보였다. 


(2) 18대 대선에서 이들의 67%가 투표를 했고 박근혜 후보(36.4%)가 문재인 후보(22.3%)보다 14.1%포인트 더 표를 받았다. 


->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비정규직의 권익을 박탈하는  "파견 확대, 쉬운 해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입법을 만들었다.  


(3) 비정규직 조사 대상들은 누구인가? 평균연령은 52세 ,  법정노동시간보다 5시간 많은 주당 45시간 노동, 월급여 133만원.


 (4) 강진구 기자의 주장은 보수파를 지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별 볼 것 없지만 "대부분 산전수전 다 겪은 아Q처럼 세상물정에 환한 다변가들"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 신념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5) 왜 이렇게 자기 권익을 뺏어가는 보수당을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당수가 지지하는가? 그 의식구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으로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대한 추억이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로 남아있다. 


노동조합이나 민노총에 대한 매도.  정규직 비난 등이 이들에게 공통적인 신념이다.  




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이야기](11)노동현실 망각 재벌 편들기, 아Q의 ‘허위의식’이 드리워져 있다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2019.01.04 17:08:57 

루쉰 ‘아Q정전’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시대 배경인 1911년 신해혁명 당시 봉건착취와 외세침략에 시달리던 중국 사회의 모습(위)과 2016년 5월 서울 현대차 사옥 앞에서 영정을 들고 원청인 현대차의 노조파괴 행위를 규탄하는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 조합원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재발에 관대·노조엔 가혹한 태도는 아Q의 ‘강한 사람 추종’ 연상


재계 최저임금 깎기 시도, 일부 비정규직 애국심·반노조정서 이용


중국 작가 루쉰의 <아Q정전>(1921)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Q는 날품팔이 노동자다.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지만 자존심이 강해 절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의 자존심은 불굴의 용기가 아닌 허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Q는 현실의 승리보다는 자기기만과 환상을 통해 정신승리에 안주한다. 그러다 보니 억압적 권력에 직접 저항하는 대신 자신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이 점에서 아Q정신은 봉건적 착취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현실 개선에 관심이 없었던 약 100년 전 무기력한 중국인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부당한 차별과 모욕의 피해자이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면 누구나 아Q정신을 의심해볼 만하다.


루쉰의 작품 속에서 아Q는 인격을 가진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력을 가진 상품으로 거래될 뿐이다. 그는 웨이짱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일정한 직업 없이 보리 벨 때가 되면 보리를 베어주고 벼를 찧을 때면 남의 벼를 찧어주며, 어떤 때는 배의 노를 젓기도 했다. 일거리가 좀 오래 있을 때면 주인의 집에 기거하다가 일이 끝나면 가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쁠 때나 그를 기억해내곤 했다. 


아Q의 과거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도 없다. 아Q는 집도 없어 토지신을 모신 사당인 토곡사에서 살았다. 


특별한 근력도 기술도 없는 그는 일손이 부족할 때 언제든 불러서 허드렛일을 시킬 수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아Q의 나이는 서른 살이다. 지금의 노동현실에 비춰보면 취업이나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고시촌 등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불안정 노동시장을 떠도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루쉰의 작품 속에서는 아Q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찾아보기 어렵다. 루쉰은 아Q를 통해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망각한 채 부정확한 현실인식에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민초들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Q는 자신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는 웨이짱 사람들을 ‘시골 촌뜨기’라고 얕잡아 본다. 반면 자신은 세상물정에 밝아 성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 꿰뚫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세상물정이란 기껏해야 웨이짱 사람들이 튀긴 생선에 듬성듬성 썬 파를 얹는 데 반해 성내 사람들은 잘게 썬 실파를 얹어 놓는다는 것 정도다. 현실인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일 뿐이지만 아Q에게는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게 만드는 최면제로 사용된다.


아Q는 또 웨이짱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지역의 세도가이자 부와 권력을 가진 ‘짜오(趙) 타이예(지방현관의 존칭)’와 자신이 같은 성씨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심지어 짜오 타이예의 아들이 ‘수재(秀才)’에 급제하자 “촌수를 따지면 내가 수재보다 3대나 위이니 이번 일은 나에게도 기쁜 일”이라며 거들먹거리기도 한다. 웨이짱의 보통 사람들이 주는 일거리로 살아가면서도 짜오가와의 동일시를 통해 일종의 정신승리를 추구한 것이다.


부정확한 현실인식에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과 동일시하는 허위의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아Q는 우리의 노동현실에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2014년 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울에 사는 비정규직 2344명에 대한 생활·의식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그 결과 비정규직들은 노후 불안과 함께 고용 불안정을 호소하면서도 민주당(16.6%)보다 새누리당(24.4%)에 더 높은 지지를 보였다. 


18대 대선에서 이들의 67%가 투표를 했고 박근혜 후보(36.4%)가 문재인 후보(22.3%)보다 14.1%포인트 더 표를 받았다. 


파견 확대, 쉬운 해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 고용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입법을 추진한 정치세력이 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조사 대상 비정규직들의 평균연령은 52세로 법정노동시간보다 5시간 많은 주당 45시간을 일하면서도 급여는 월 133만원에 불과했다.

 이들은 사회적·경제적 지위는 별 볼 것 없지만 대부분 산전수전 다 겪은 아Q처럼 세상물정에 환한 다변가들이다. 


[이유 분석]  (1) 개발 독재 잔재 (2) 국가주의 애국주의 (3) 노동조합 매도 (4) 정규직 비난 

하지만 이들의 기억은 1970~1980년대 개발독재시대 고도성장의 기억에 멈춰져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들의 기억처럼 기업의 성장은 노동자들의 숙련과 소득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자동화에 기초한 수출형 조립산업이나 단순 서비스 위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비정규직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숙련이나 소득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에겐 수출 대기업을 위해 노동자들은 희생해야 하고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과 임금 증가로 보답하리라는 믿음이 있다. 자연스럽게 파업은 매국이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조들은 국가 발전의 최대 걸림돌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일부 비정규직들이 자신의 계급이해에 배반하는 정치성향을 보인 것은 자신의 안정적 일자리를 철밥통 정규직 노조가 빼앗고 있다는 생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양대 노총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고용 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인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통해 이들은 일종의 정신승리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재계와 자유한국당, 친재벌 보수언론들이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대놓고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반대하는 여론몰이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배경이다. 

자영업자와 중장년 비정규직들의 애국심과 반노조 정서를 등에 업고 ‘일 안 하고 노는 유급휴일에도 최저임금을 줘야 하느냐’는 가짜뉴스로 월 174만원의 최저임금을 148만원으로 깎으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최저임금 논쟁은 이 점에서 현실인식을 바로 하지 않으면 누구나 아Q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루쉰의 작품에서 아Q는 봉건적 착취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짜오가로부터 온갖 굴욕을 당하면서도 단 한번도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Q는 자신의 성이 짜오라고 자랑하고 다니다 짜오 타이예에게 불려가 따귀를 맞고 띠빠오(하급관리)로부터 일장 훈시를 들은 뒤 술값으로 200문(文)을 물어줬다.

 또 짜오가에 일을 하러 갔다가 젊은 과부 우마에게 무릎을 꿇고 구애를 하다 성추행범으로 몰려 노임을 받기는커녕 막대한 손해배상에 입고 있던 옷과 털모자, 이불까지 전당 잡히고 알거지가 되기도 했다.


아Q는 이 일이 있은 뒤로 웨이짱 마을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셈이다. 

반면 짜오가는 악행을 정화하기 위한 푸닥거리 명목으로 아Q로부터 받아낸 향이나 초를 고스란히 쌓아뒀다. 아Q의 해진 옷은 장차 태어날 아기의 기저귀감으로 사용됐다. 

막대한 이익잉여금을 투자 대신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상속에 열을 올리는 한국의 재벌들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국의 아Q들이 그렇듯이 루쉰의 아Q 역시 짜오가가 아니라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은 샤오D를 보고 눈이 뒤집힌다. 아Q는 “쇠사슬로 네 놈을 후려치리라”고 소리치며 샤오D와 멱살잡이를 벌이지만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고, 웨이짱 사람들은 “거 참 꼴 보기 좋구나”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이처럼 짜오가에 말 한마디 못하면서 웨이짱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샤오D와 드잡이를 하는 아Q의 모습은 재벌들의 편법적인 부의 축적과 상속에 무관심하면서 민주노총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악성 댓글러들과 모습이 겹쳐 있다.


2011년부터 무려 8년간의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다 지난해 9월 퇴사한 유성기업의 한 50대 퇴직자가 자살한 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한국의 아Q’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댓글들이 달렸다. 


이들은 벌써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성기업 부당노동행위에 현대자동차가 개입돼 있지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엔 관심도 없다. 오직 민주노총만이 문제다. 


“민노총아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나. 얼마를 받고 싶은 건지. 벌써 8년이 되어가는구나. 기륭전자 생각나네. 기업도 망하고, 노동자도 망했네.” “문 닫으면. 노사 모두 조용하겠네요. 공장, 대지 팔고 재고품도 팔아 퇴직금 주고 손 터는 게 사업주 만수무강 비결.”



4조5000억원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의 아Q들은 엉뚱한 곳으로 분노를 표출시키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편법 경영승계와 수천억원의 국민연금 손실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보다 주가 폭락 방지와 경제 안정을 위해 적당히 넘어가길 바라는 ‘노예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주 나라 말아먹네. 검찰이 삼성 건들면 코스피 1500은 따놓은 당상이네.” “그만 좀 물고 뜯어라. 경제 40%를 벌어들이는 기업 자꾸 잡으면 결국 누구 손해냐.”


2016년 1월16일 뉴욕타임스는 ‘<아Q정전>을 차용한 중국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란 기사에서 “중국 공산당이 관리하는 ‘50센트당’(유급 댓글부대) 이외에도 아Q와 같은 자발적 댓글부대들이 중국의 엘리트 권력을 지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들에 관대하면서 노조에 가혹한 한국적 아Q는 뉴욕타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재벌권력들을 지탱하는 자발적 댓글부대들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해 대신에 강한 사람과 동일시하려는 한국의 아Q들이 내세우는 애국심은 루쉰의 ‘아Q정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아Q정전’을 쓴 중국 작가 루쉰.




루쉰의 작품에서 아Q는 짜오 타이예 치하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지만 외세나 혁명에 의해 봉건질서가 무너지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을 우려해 전통적 질서에 안주한다.


 이 때문에 아Q는 일본에서 공부하다 변발을 자른 채 나타난 ‘치엔(錢)가’의 큰아들을 ‘가짜 양귀신’이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하지만 혁명당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Q는 양귀신을 찾아가 혁명당에 가입하려다 거절당하고 결국은 도적떼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아Q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제대로 된 장송곡 하나 불러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제대로 된 현실인식 없이 자존심만 센 채 저항할 생각 한번 못해보고 비굴한 삶을 살다 최후를 맞은 아Q의 죽음은 딱히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그래서 아Q의 죽음엔 애도도 분노도 하기 힘들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1041701005#csidx67d2e0703f8f33a8c08a2c6de062ea8



루쉰의 본명은 '주수인'씨이다. 

30년 전에 읽은 루쉰의 '고향'이라는 소설은  '아큐정전'과 더불어 지금도 인상깊게 남아있다. 

'고향'이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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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2017. 3. 15. 16:34

송호근 교수의 시각과 내용에 대한 비판. 제목 한번 얄궂다 "노동조합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 이 제목과는 반대로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에 가입도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히려 노동조합에도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약자이다. 노-노 격차를 줄이는 방식은 "노동조합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는 결코 될 수 없다. 한국 노동운동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 또 위기에 대한 진단들은 97년 이후 수없이 많았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주제들이 많다. 그러나 송호근의 진단과 대안은 해법보다는 문제점이 더 많아 보인다.

1. 송호근은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한 현대차 노조는 옳지 못하다.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다"고 했다. 송호근의 논리는 단견에 불과하다. 100세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청년들과 일자리 나누기 핵심은 노동시간이지, 65세로 정년 연장하냐 마느냐가 아니다. 65세로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은 모든 직종들의 정년이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활동 인구가 인구 감소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입과 이민 정책들을 더 강화해야 한다. 

송호근의 노동조합 때리기에 불과한 발상이다.


2. 송호근 "서구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권은 노조와 기업을 모두 때린다 " 이것은 실사구시가 아니다.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캐나다 신민당(NDP)이 노조를 때린다고? 노조로부터 정치 후원금을 받고, 노조로부터 정치인력을 제공받는 관계인데, 정치권이 노조를 때린다는 이야기는 현실과 다르다. 


미국 민주당의 경우,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가 AFL_CIO 나 Change To Win 총연맹 노조들로부터 정치 후원금을 받는다. 총연맹 노조들은 Hilton 호텔과 같은 엄청나게 대형 강당을 대여해놓고 후보자들을 불러다 놓고 어떤 친노동조합 정책을 쓸 것인가? 듣기도 한다.

송호근의 서구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떤 국가들을 지칭하는지 구체적으로 한번 밝혀주면 공부해볼만 하겠다. 

오히려 역사적 현실은 영국 쌔처나 미국 레이건 보수 우파 정권이 노동조합을 때리고 깨부수지 않았는가?


3. 대기업 노조들의 비지니스 조합론에 대한 비판들은 여러군데서 쏟아졌다. '사회운동 노동조합' 을 주장하는 노동운동가들도 있고, 노동조합과 정당의 역할 분담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송호근의 주장 "상위 5%가 모범을 보이면 한국 사회가 제대로 갈 수 있다"은 영남 사림파와 같은 시대착오적 도덕군자론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에서 단체협약을 하면 그 결과와 혜택이 기업노조가 아닌 다른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까지 돌아가는가? 이것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상위 5%가 도덕군자처럼 양보정신을 발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노-사-정 위원회에서 법률로 강제해야 하는 사항이다. 5인이하 사업장도 많고 5인~20인 사이 회사는 노조 자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곳 노동자들의 권리를 노조 상위 5%가 '양보정신'을 발휘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너무나 너무나 비사회학자적 태도이다.


4. 자동화에 대한 러다이트 운동적 태도를 취하는 송호근. 최고의 기술과 단순육체노동의 결합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 소외라는 것이 송호근의 진단이다. 마치 마르크스 립스틱을 칠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르크스 입술은 아니다. 자동화 방향이 나쁜 것인가? 헨리 포드가 1896년에 최초로 만든 자동차 쿼드리-사이클, 1914년 모델 T 다 일련의 자동화 과정 아니던가? 송호근의 불만은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이 장인정신을 갖춘 마스타가 아니라 돈이나 더 받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나눠주지 않는 '기계부품'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 할머니들이 겨울 냇가에 나가서 우리들 옷을 얼음을 깨고 깨끗이 손빨래 하는 게 장인정신이라는 사유 방식과 똑같다. 세탁기 버튼 하나만 누르는 단순 육체노동자로 우리 할머니들이 타락해버린 것이다.

자동화, 기계화, 생산성 향상 등을 가져온 이유들은 다양하다. 학교 교육이 발전해서 과학기술들이 급성장해서, 노동자들이 현장 플로어에서 협업을 해서 더 나은 방식들을 계발해서, 또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을 분쇄하기 위해서 노동력을 감소하고 기계를 써서 단위당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렇게 해서 경제 활동 양식들이나 방법들이 진화해오고 발전해오지 않았나? 이러한 기계화, 자동화를 비난하는게 시대정신은 아니며, 더군나다 사회학자가 주창할 내용은 아니다.


5. 이종태 기자님에게/ 

혹시 이명박 정부를 칭송한 경험이 있는 송호근 교수가 왜 느닷없이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을 걱정하게 되었는지 혹시 인터뷰해보셨나요?

비정규직 뱃지 월급 격차 "왼쪽 바퀴 조립하는 비정규직, 오른쪽 바퀴 조립하는 정규직 임금 격차" "신분 격차" "옷 차림새 격차"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송호근 교수의 책 목적이 진짜 한국 노동운동의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 귀족노조화 되고 있는 현대 자동차 노조를 내적 관점에서 비판한 것인가요?

오히려 정치적 학문적 성과가 있으려면, 현대 자동차 노조 조합원들의 정당 투표 성향과 '임금 크기'와의 상관관계, 이런 게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전 촛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국의 파업능력이 있는 조합 숫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노동 쟁투 숫자가 한국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파업에 참가한 노동조합 숫자는 OECD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그 숫자 자체는 적습니다. 왜냐하면 아예 파업 조차도 못하는 노조가 한국에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아무리 사회운동적 노동조합론을 많이 거론해도, 노조는 실리주의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게 송호근 교수가 말하는 서구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적인 일상 생활의 모습입니다.

전 한국 연구자들의 이중적 행태와 잣대를 비판하고 싶습니다. 왜 유럽 노동자들이 그리스, 프랑스 산 와인 마시면 그게 삶의 질이 높고, 덴마크 스타일이고 네덜란드 스타일이라고 찬양하고, 부러워하면서, 이와는 반대로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 중에 골프치러 가는 사람 있으면, "개 잡려 귀족 노조 새끼들이네"라고 비아냥대나요? 


노동조합원들이 다 정치적 혁명 분자가 되어야 합니까?

정치 정당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노동조합이 해야 할 역할들이 어느 정도 나뉘어져 있을 필요도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단일한 정치단체가 아닙니다. 80년대는 그런 경우도 있었고, 그럴 필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우리가 과도하게 노동조합에 '전위적, 정치 혁명적 요소'를 가미해야 합니까?


6.

현대 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잔업 특근을 위해서 '물량을 자기 회사로, 자기 라인으로 댕겨온다' 현실일 것이다.

사회학에서 어떤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때는, 행위 (동기) 이론이 있고, 구조와 체계를 다루는 '체계 이론'이 있다. 

한국과 송호근이 말하는 서구민주주의 사회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왜 현대 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잔업하고 특근하겠는가? 

상가 빌딩 구입하고 부동산 투기를 위한 것인가?

대부분 자녀들 학원비, 대학 등록금, 또 자녀들의 주택 구입을 위한 저축 등일 것이다.

잔업.특근이라는 노동시간을 두고, 시간당 단위 임금 격차를 둬서 노-노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사회적 체계와 법률을 뜯어 고쳐야 한다.


잔업이나 특근의 행위 동기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고, 한국적 사교육비 증가라는 사회적 현상 자체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송호근의 주장 "현대 자동차 정규직은 스크루지이다"는 큰 정치적 사회적 함의가 없다. 그냥 비난에 불과하다.





참고기사: http://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605


관련글: http://futureplan.tistory.com/886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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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라쟁이

    개소리 집어쳐라.
    다른 나라 노동조합은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한후에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치권까지도 공존을 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조는 오로지 조합원의 기득권만 챙기려 하기 때문에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고...

    2017.04.30 08:03 [ ADDR : EDIT/ DEL : REPLY ]
    • 노동조합은 자기 직장인들의 권익도모가 1차적인 목표입니다. 노동조합은 정치정당도 아니고 자선단체도 아닙니다. 노조가 자기 권익을 도모한다고 비난하면, 아예 노조를 만들지 말아야죠.

      조합원의 '기득권'이라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홍길동도 아니고 권익도모를 '기득권'이라고 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랑 뭐가 다른가요?

      2017.07.31 03:54 신고 [ ADDR : EDIT/ DEL ]
  2. 개솔

    진짜 말도 안되는 소리..
    노동 쟁의를 통해서 얻어낸 성과를 자기내들마누가져가자나!!!
    하청업체나 전체 노동계발전을 위해 쓴적은 있니???
    자기네 자손 대대로 배불릴 궁리나 하겠지!!!!

    2017.07.08 13:12 [ ADDR : EDIT/ DEL : REPLY ]
  3. 멍멍 짖어봐

    개소리하고있네ㅋㅋㅋㅋ 필력 떨어지는 글 읽느라 겁나힘들었던건 둘째치고 자기 아집으로 똘똘뭉친 이딴 쓰레기 글. 걍 일기로나 써라

    2017.07.20 16:43 [ ADDR : EDIT/ DEL : REPLY ]
  4. 학원비. 저축을 위해서

    임병하네.
    현대차 노조원들이 라인에서 잔업하는 이유가 학원비 생활비 적금을 위해서라고?
    그럼 정상적인 노동을 하고 그 댓가를 바래야지.
    볼트 조립공들이 라인타고 오는 자동차를 먼저가서 조립하고 지자리로 오면 그때는
    놀고 자빠졌다가 그뒤에 잔업하는게 잔업의 이유다.
    취직도 못해 병들어가는 청년들 같은 것은 관계없는 쒸레기들....

    2017.07.29 07:41 [ ADDR : EDIT/ DEL : REPLY ]
    • 볼트 조립공이 누구라고요?

      청년들 일자리 늘리기 위해서는 공공서비스 정규직 직장을 많이 만들어내거나,
      사기업의 경우, 노동시간을 나눠서, 잔업대신에, 그 시간을 청년고용으로 돌리면 됩니다.

      쓰레기 어쩌고 어이없는 단어 써봐야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되요.

      2017.07.31 03:51 신고 [ ADDR : EDIT/ DEL ]
  5. ㅋㅋㅋ

    현대차 노조가 뭔 도깨비.방망이인줄아나 얼마나 힘들게 따내는건데

    2017.07.31 03:02 [ ADDR : EDIT/ DEL : REPLY ]
  6. 버들

    현실적으로 정년 연기하고 시간 줄여 일자리 늘리거라 생각합니까.?

    2017.10.31 10:16 [ ADDR : EDIT/ DEL : REPLY ]
  7. 글쓰는건 자기맘이지만

    뭐지 하고 보니... 외국사례하고 비교하면서 의견을 제시하는 군요~ 그런의미라면 밴더 업체 선정할때 외국처럼 급여와 복지 잘하는 업체로 선정해라고 파업을 하시던가요~ 왜 하청 업체들이 고통받아야 하지요? 외국사례 좋아하시면 외국가서 사세요~ 좋은 외국사례 적용할 만큼 대한민국 전체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2017.11.03 16:36 [ ADDR : EDIT/ DEL : REPLY ]
  8. ㅁㅁ

    뭔 정년 당기자는게 노조때리기야.. 어느분야 막론하고 송호근 교수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인데 교수부터 물러나야 한다고

    2017.12.27 10:31 [ ADDR : EDIT/ DEL : REPLY ]
    • 송교수가 일관되게 주장한게 "교수부터 물러나야 한다" 것인가요? 어디로 물러나요?
      정년이 없는 국가들도 있는데.

      강사나 비정규직 교수 권리들이나 제대로 보장하는 운동이나 펼치는 게 나음.

      2017.12.27 10:36 신고 [ ADDR : EDIT/ DEL ]
  9. 당세시서

    노조 가 노조 다워야 노조 지 욕심 만 챙기고

    2018.01.10 19:32 [ ADDR : EDIT/ DEL : REPLY ]
  10. 1994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일해 온 송 교수는 서울대에서의 정년퇴직을 3년 남겨두고 있다. 포스텍은 송 교수에게 70세 정년을 보장하며 파격대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우선 기자 , 김호경 기자 입력 2018-07-04 03:00수정 2018-07-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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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 영입… 9월부터 인문사회학부장 맡아

    국내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인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62·사진)가 포스텍(포항공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공대생들의 인문사회학 소양 강화에 나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쓰며 생각하는 융합형 공대생’을 양성하기 위한 포스텍의 실험이다. 3일 포스텍에 따르면 송 교수는 9월 1일자로 인문사회학부장을 맡는다. 올 초 포스텍이 만든 ‘글쓰기 센터’의 내실화도 이끈다.

    송 교수는 올 4월 ‘혁신의 용광로―벅찬 미래를 달구는 포스코 스토리’라는 책을 집필하며 포스텍 및 포스코와 인연을 맺었다. 포스코 연구단의 요청으로 1년간 포스코의 조직과 문화를 사회학적 시선으로 관찰한 그는 임직원은 물론 그들의 부인까지 인터뷰해 유려한 문체로 431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썼다. 송 교수는 서문에서 “포스코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부정적 시선은 긍정적 이해로, 급기야 존경심으로 진화했다”며 “사회학자가 (기업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지만 비판할 거리가 없었다”고 적었다. 포스텍에 대해서는 “포항의 주체들 중 가장 창의적이고 무한한 잠재가치를 지닌 집단”이라고 평가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인재 교육에서 인문·사회교육이 굉장히 부족하다. 매년 우리 학교에 오는 300명의 학생들에게 인문사회과학의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는 게 대한민국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송 교수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일해 온 송 교수는 서울대에서의 정년퇴직을 3년 남겨두고 있다. 포스텍은 송 교수에게 70세 정년을 보장하며 파격대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청춘시절부터 있던 서울대에서 짐을 싸는 건 몹시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그럼에도 과학과 인문의 균형을 위해 포스텍에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발 하라리, 제러드 다이아몬드, 제러미 리프킨 같은 융합형 작가들이 포스텍에서 많이 나와 줘야 한다”며 “학부 안에 ‘융합문명연구소’를 만들고 ‘(가칭)통일연구센터’ ‘소통 및 공론센터’ 등을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김호경 기자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80704/90888134/1#csidx9b331c6cec946f8ac6cdc0764c52a25

    2018.07.10 10: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송호근 칼럼] 진보지식인 성명에 현장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7.24 00:48 |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폭탄

    온갖 대책으로 달랜들 뭣하나

    중상위 근로자들 임금 자제하고
    지원금은 개별 지급하는 게 답

    책상물림 지식인들 읊조림 대신
    제발 현장에 나가 보라!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慾大叫), 폭염에 대님 매고 앉으니 미쳐 소리치고 싶다. 정권 교체 1년, 진보지식인 323명이 오랜만에 야심 찬 목소리를 냈다(이하 ‘성명’). ‘사회경제 개혁의 포기를 우려한다!’ 더 밀어붙이라는 서생(書生)들의 합창. 폭염도 참기 힘든데 진보의 책문(策文)은 발광욕대규다. 현장 감각 제로 건백서다.

    불과 2년 전, 조선업에 18조원을 투입했을 때 진보지식인들은 말을 아꼈다. 무려 4만 명에 이르는 협력업체 직원이 쫓겨나 낙향할 때도 수수방관했다. 고연봉 노동자가 상습 파업을 해도, 민주노총이 그 강력한 단체행동권을 발동해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진보 ‘성명’에 당차게 동참한 서생들에게 진정 묻고 싶다. 대공장에 가봤냐고, 중소업체 직원들이 파산만은 면하려고 안간힘 쓰는 현장을 가봤냐고? 본사의 갑질과 급상승한 최저임금에 협공당하는 영세점주의 고충을 들어봤냐고 말이다.


    그대들이 애지중지하는 ‘세 바퀴 경제’-소득 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누구나 원하는 바다. 그런데 그게 ‘성명’에서 열거한 그 입바른 대안들로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재벌 개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 보유세 강화, 복지증세, 관료 개혁! 다 맞지만, 부작용이 정책 목표를 갉아먹는 현실을 무시한 고루한 선비들의 경연(經筵) 답안이다.

    재벌 개혁?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근절과 거버넌스 개조는 환영할 일인데, 온갖 규제로 목을 옥죄면 미래 대응적 투자가 가능할까? 삼성 평택공장 짓는 데 수백 가지 규제를 돌파했다 하고, 동업종 다른 글로벌 기업은 공장 신축에 환경부·산업자원부·국회를 설득하고 시민단체·주민 의견을 수렴하느라 1년이 넘도록 뛰고 있다. 성장동력이 될 만한 산업이라면 규제 벌떼가 달라붙는데, 누가 먹거리 생산에 목숨을 바칠까? 20대 국회가 발의한 규제 법안은 무려 800건, 이 대열에 동참하지 못한 의원은 공천 탈락이다.

    문 정권 1년, 공공부문에서 13만2000여 명이 정규직 신분을 받았다. 목표의 76%다. 그런데 공기관은 더 이상 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석·박사 전문직도 비정규직, 기간제로 일해야 한다. 정규직 티오가 찼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 이론은 맞지만 상승하는 임대료를 막을 수 없다. 복지증세가 만능키인가? 우선 절반에 달하는 면세 근로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먼저다. 세금 거두고 더 돌려주면 된다.

    복지증세를 말하려면 ‘전제조건’을 이수해야 한다. 중상위 임금생활자의 ‘임금 인상 자제!’. 누차 강조했지만 ‘복지=일자리 창출’이라는 유럽 복지국가의 기본 방정식은 임금양보로 작동한다. 양보분(分)만큼 고용이 늘고 복지가 투여된다. 한국에서는 ‘복지=의당 받을 권리’다. 인상된 임금과 복지비용을 기업주가 떠안으면 어떻게 고용을 늘릴 엄두를 낼까? 공기업과 대기업부터 임금 동결에 나서 보라.

    진보 서생들은 그럴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세율이 적다고. 더 내야 한다고. 임금 양보하고, 복지 투입해 주고, 노동자가 생산에 올인 하고, 준조세가 없으면 왜 증세에 저항하겠나? 일일 기업주, 일일 노동자 체험이라도 해 봐라. ‘성명’은 이렇게 꾸짖는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실제 효과는 반감되었다’. 숙식 제공하고, 학비와 병원비 대고, 명절 보너스 주는 나라가 OECD 국가에 있는가? 임금 구성 요소가 한국처럼 복잡한 나라도 없다. 영세점주가 가장 기피하는 ‘주휴수당’, 이것을 정부가 대주면 ‘메뚜기 알바’도 없어진다.

    말이 나왔으니, 최저임금 보조금을 근로자에게 ‘직접’ 지불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기업주는 시장임금으로 고용하되, 고용사무소가 최저임금 미달분을 개별 근로자에게 지급하면 당장 고용대란을 막을 수 있다. 기업주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

    진보지식인들이 ‘공정경제’와 ‘소득 주도 성장’을 읊조리는 무대 뒤에서 을(乙)과 병(丙)의 대리전쟁이 치열하다. 메뚜기 알바 청년, 투잡 중년, 영세 점주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표 찍어줬는데, ‘왜 나한테 이래요? 왜 나만 갖고 이러시는 거예요?’

    정부가 투하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폭탄은 정확히 기업주의 지불능력에 명중했다. 그런 후에 이름도 화려한 각종 대책으로 달랜들 뭣하나. 중상위 임금생활자의 임금 자제! 그리고 지원금을 하위 소득자에게 개별 지급하는 것이 답이다. 이것이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집단지성인데, 우리의 노사정협의체는 임금 양보를 의제에 올린 적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전원 찬성한 공익위원은 틀림없이 외계인이다. 그대들이 이런 사민주의 방정식을 아는가? 정말 미쳐버리기 전에 외치고 싶다. 제발 현장에 가 봐라!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석좌교수


    [출처: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진보지식인 성명에 현장은 없었다

    2018.08.02 15: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윤현우

    아니 노동자간의 격차를 줄일거면 상향평등화를 해야지 왜 노조없는 회사와 같이 하향평준화를 해야하는 겁니까??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가입우로 신성한 노동에 대한 노동권과 함께 사람으로써 인권도 보호받으며 일해야할 권리가 있는데 왜??? 노조가 사회에 악인양 회사경영에 암덩어리마냥 생각하십니까??

    2020.08.28 21:0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