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랑스혁명2

혁명의 열기와 단두대, 1794년 4월 당통, 데물랭 처형당함, 7월 로베스피에르 처형 프랑스 혁명 주역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당시 당통은 35세, 데물랭은 34세, 로베스피에르는 36세였다.왜 그들은 갈라서야했고, 결국 권력과 생명을 뺏아야했는가? 당통은 1793년 공공 안전 위원회 (the committee of public safety)의 '테러' 정치에 반대했다. 그러나 자코뱅 클럽의 상징 로베스피에르와 혁명 군사전략가 카르노는 외국군대들의 침입과 프랑스 내부 반동혁명 위험성 있다는 이유로, 당통의 견해에 반대했다. 1794년 4월 5일, 결국 당통, 그리고 혁명 대변인이자 달필가 데물랭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영화 "당통"에서는 로베스피에르가 당통과 데물랭을 설득하려는 장면들, 그리고 데물랭에 대한 '연민'이 잘 묘사되었다.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는 유럽국가들, 프러시아(독일.. 2015. 10. 26.
518 광주항쟁 윤상원 가족들과의 대화 - 1막의 종결과 새로운 창조의 시작점 디테일 민주-사회주의자들의 탄생을 위해. "지금 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았을까?" "변절해부렀을까?" 2010년 윤상원 열사 가족들 (아버지 윤석동 옹), 두 여동생, 남동생되는 분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대학시절 518광주 항쟁 다큐멘타리 인터뷰 자료를 만들다 맺은 인연이 있었다. 윤석동 옹을 방문했을 때, 그 분은 어린 우리들에게 찾아주셔서 고맙다고 중절모를 벗어 인사를 했다. 광주 임동에서 비빔밥을 얻어 먹고, 버스를 타고 광주 외곽 (당시는 광산군 임곡면 천동 마을이었다) 한적해 보이는 한 농촌 마을로 갔다. 윤상원 선생의 생가였다. 윤상원 열사 아버지 윤석동씨는 방 한개를 윤상원 열사 유품들을 모아놓은 곳을 만들어놓았다. 노문과 철학과 후배들과 함께 가족들 인터뷰에 들어갔다. 윤상원 선생 .. 2013. 5. 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