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혁당 사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2.08 문재인 영입인사, 고민정과 전인범 특전사 사령관
  2. 2016.01.20 신영복에 대한 부당한 평가 (1)
한국정치/민주당2017. 2. 8. 20:43


정당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생각하다


- 감동하다가 식어버린 이유


고민정은 스승 신영복을 말했고, 전인범 특전사 사령관은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죠? 전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논리적 모순을 찾아야 하는 내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신영복을 스승이라고 한 고민정과 전인범의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민주당이야 이념적 흐름들이 다양하고, 또 한 정당 내부에서 서로 긴장하고 경쟁하거나 상충할 수도 있는 정치적 노선들도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좋은 신호는 결코 아니다.


사실 고민정의 문재인 캠프 합류 뉴스보다는 그 남편과의 사연이 더 크게 보였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름도 어려운 무슨 난치병을 가진 시인 남편에 대해 고민정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또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도 ‘존경’이라는 말이 많이 줄어든 이 세태와 대조적으로, 고민정의 ‘존경’ 언급은 품격있는 고전적인 클래스였다. 


이런 뉴스 때문에 고민정이 읽는 ‘문재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게 되었다. 고민정은 문재인과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고 신영복 선생의 영결식장이었다. 고민정은 신영복을 자기 스승이라고 언급했다. 신영복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를 가둔 건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김종필 박정희의 좌익전력도 의심하고 세탁하려고 했을 정도로  반공사상이 투철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신영복 선생은 “빨갱이” 죄목으로 20년간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고민정과 많은 이들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책에 감명을 받는 이유는 꼭 신영복 저자가 정치적으로 좌파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1988년 출소 이후 줄곧 ‘연대’ 정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우파보다는 좌파라는 일관성 노선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이 애초 자기 전문 분야인 경제학보다는 노자 장자 사상과 유가 사상을 통해 한국 사람들의 삶을 설명하려 했다. 기존 좌우 프레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그 일관된 사상적 기초는 “함께 맞는 비 (연대)” 정신이었다. 


그런데 전인범 특전 사령관은 무대 위에 올라오자 마자, “문재인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한미 동맹을 강화시켜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도대체 소련과 미국의 냉전 종식은 1989년 몰타 회담에서 그 시작점을 알렸다. 28년이 지났다. 소련은 러시아로,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만큼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이런 변화된 국제정치 힘관계에서 한국의 안보 개념은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자립적이고 실용적인 외교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미국의 무기 수출국가가 아니라 한반도를 평화구역으로 만들 궁리와 실천을 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안보 아닌가? 


보수 유권자를 향해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다”를 외치는 게 이러한 변화된 국제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발언인가? 정치적 후퇴이고 퇴행이다. 


민주당 문재인의 영입인사가 어디 전인범, 고민정 이 두 사람뿐이겠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연찮게 이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한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민주당이 너무 급해 보인다. 보수적인 유권자들 때문인가? 


고민정과 난치병 시인 조기영과 감동적인 아름다운 사연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발언을 듣고 나서, 갑자기 그 뜨거움이 식어버렸다.



사진 출처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39biUMaFJmU&t=3946s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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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016. 1. 20. 14:40

좀 고약하고 부당한 동아일보 송평인의 신영복 평가:

동아일보 댓글부대는 송평인의 글에서 '맑은 생각 신영복'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반공반북 저주의 알바성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송평인의 신영복 평가 글은 좀 고약하고 부당한 측면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1) 신영복이 경제학자로서 정치경제학 용어를 가지고 '신영복 이상사회'를 설명하도록 애초에 사형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말던가, 20년간 신영복이 대학에서 자유롭게 연구했으면, 당시 박정희 경제정책의 기초를 만들어주고 간 로스토우 (W.W.Rostow)의 "경제성장단계들: 반-공산주의자 선언(1960)"보다 더 나은 경제대안을 신영복이 만들었을 수도 있다.


- 2) 20년간 그를 감옥에 처넣었으면, 적어도 감옥 안에서 '경제학 강사'를 해왔던 신영복이 한국경제를 위해 공부하고 글 쓸 수 있는 자유를 주던가 했어야 했다. 신영복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없어서 20년간 부모님, 형수님, 제수씨에게 편지를 쓸 때만 펜을 잡을 수 있었다. 


- 3) 연구자로서 한창 지식을 삶아먹어도 부족할 나이인 27세~47세 사이에, 종이, 펜을 뺏어놓고 나서, 이상사회를 정치경제학 용어로써 설명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건 부당해보인다.


- 4) 이북에서 탈출해온 육사 8기 출신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은 박정희,김종필도 좌익세탁을 하라고 할만큼 반공반북으로 똘똘뭉친 자였다. 


- 송평인이 김형욱이 애초에 신영복의 머리를 세탁해버리려고 했으나 ‪‎신영복‬ 이 그것을 극복하고 철학자로 거듭났다고 말하려는 의도라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신영복은 이빨치료도 받지 못해 이빨을 잃어가면서 자기자신과 죄수들과 대화하면서 감옥생활을 견뎌야 했다. 아름다운 '철학자'가 아니라, 지옥같은 감옥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이었다.


- 5) 난 신영복의 철학과 맑은 심성은 68년 통혁당 사건 이전에 이미 '아름답게' 형성되었다고 본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 감옥에 처박힐 이유가 없었다.


동아일보 기사: [횡설수설/송평인]김형욱이 만든 철학자 신영복

 http://news.donga.com/3/07/20160119/75989137/1




신영복은 1969년 1월 16일 군사재판장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1970년 5월 5일에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게 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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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영복선생님의 맑은 정신은
    청구회추억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분은 감옥에 계시지 않으셨다면
    이땅에는 더 넓은 하늘이 드리우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감히 그 분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분으로 부터 받을 복의 그릇
    작았을 뿐입니다.
    그 분이 두고 가신 모든 것을 되씹으며 우리가 걸어 갈 수 있도록 치열하게
    아름답게 맑게 싸우신 스승님!
    감사합니다.

    2016.02.09 22:0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