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2019. 4. 14. 07:33

문형배 헌법 재판관 후보자 청문회, 김종민 민주당 의원의 질문들과 문후보자 답변이 중요한 정치적 주제들이다.


1:40분 경


https://www.youtube.com/watch?v=DN-eWSP5JS8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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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2014. 9. 25. 11:43

도시공간에서 정치적 좌파의 실천: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에서 이제 "삶의 터전"의 정치로 무게 중심을 이동

원시: 2011.02.01 03:14


사례 1 >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북미(캐나다와 미국 북쪽 일부 주)에서는 일요일에는 대형수퍼마켓이 영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적 이유도 있고, 서비스 노동자들도 주말이면 쉬어야 하고 등: blue law, retail business holidays act ) 토요일 같은 경우도 오후 5시면 문을 닫고, 심지어 금요일도 6시면 문을 닫곤 했습니다.


그 결과 동네 길목 코너에 있는 소매 가게들은 상대적으로 장사가 잘 되었는데요, 90년대 중반 이후 법률이 개정되기 시작해서, 소매상들이 대형 수퍼와 할인점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맥도날드 커피? > 통큰치킨, 피자 사건, 이런 현상은 아주 공격적인 한국식 자본주의 특질로 해석됩니다. 햄버거 맥도날드 회사에서 작년부터 느닷없이 $ 1 달러 커피를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피자>사건에 비하면 애교더군요. 스타벅스 커피 회장이 공개적으로 수익금을 이스라엘 수호운동에 보내는데...가급적이면 <스타벅스>커피는 피하는 게 낫겠다 싶군요.


동네 상인들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높이는 정치운동 > 할인점, 대기업형 수퍼에서 800원주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었다. 우리 동네는 1000원짜리 딸기 아이스크림이다. 그러면 문제는 우리 동네에서 1000원 내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는 게, 기업형 수퍼에서 동일제품 800원짜리를 사먹는 것보다 <그 뭔가 더 낫다>는 게 증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네 상인들도 그 동네 주민들을 위한 <공적 사업>을 할 수 있는 <진보정당>에서 유도를 해나가고 등등. 그게 동네 정치, 동네 생활터전의 진보정치화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각 당협별로 다 보지는 못했지만, 당게시판에 올라온 것 중에서 훑어보니까, <동작 당협>에서 내건 플래카드가 눈에 띄입니다. 이재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건, 발로 걷던, 동네를 샅샅이 방청소하듯이 밀고 닦으면, 구청장도 언젠가는 운영하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향후 30년은 한국의 정치적 좌파에게 <도시 계획>과 관련된 주제들이 정치적 숙제로 남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노쇠해버린 운동권들이 <철학적 정체성>을 거의 상실해버렸는데, 그건 실제 우리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나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87년 체제, 97년 IMF위기 이후 달라진 한국자본주의와 삶의 양식에 대해서 말하지, 실제로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 그에 대한 정치적 기획은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도시 공간 자체가 계급이고 계층이고, 우리들의 행복과 희로애락이 담겨진 정치적 공간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도시공간 (서울이면 서울, 인천이면 인천 공간을 10m, 100m 단위로 자르고 끊어서) 그 공간의 "사적 소유 재산권, 자산"에 대한 반성적 해체 및 재구성을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 사적인 재산권을 세밀하게 다시 분해해서, 시민들의 자아실현, 자유와 평등, 인권과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금의 정치학, <복지> 담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서울의 경우 45%가 자기 집이 없는 주민들이다. 


500만 인구는 <문화적 정착세대>가 아닌 셈이다. 이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두번째는 도시 주민들의 노동소득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줄이고 완화시켜야 한다.


<도시공간>에 대한 좌파적 실천을 조금 단순화를 시키자면 "삶의 터전"을 자유와 평등의 터전으로, 우리들의 행복의 터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1) 일 터 (2) 놀이 터 (3) 쉼 터 (4) 집 터


이러한 삶의 터전들을 우리들이 내세우는 삶의 지표나, 정치철학이 실현되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게, 추상적으로 이름 붙이자면, 21세기 좌파가 이뤄내야 할 자유,평등, 연대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쉼 터, 놀이 터, 집 터 역시, 97년 이전과 현격히 구별되는 "있는 자" 대 "없는 자"로 갈라져 있다.


이런 사회 균열과 계급계층화를 디자인해오고, 조장해 온 정치 집단은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 MB 하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 노무현 회상" 이라고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철저하게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돈과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 노골적으로 조금 더 거친 방식으로 무식하게 전개되고 있다.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에서 이제 "삶의 터전"의 정치로 무게 중심을 이동할 때 !


97년 이후, 이제는 "삶의 터전"의 정치를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삶의 터전에 뿌리박힌 수많은 이해관계들,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법률적 이해관계들의 복잡성들을 공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 돈, 부당한 권력을 막아내고 물리칠 수 없다.


87년 독재타도를 위해서 길거리에서 돌, 화염병, 물통을 들었다면,

이제 "삶의 터전"에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행복, 공적 행복"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법률적 수단들을 들어야 한다. 


일터에서 재산권,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재테크 부동산 집 뉴타운 등, 쉼터에서 여가문화와 관련된 모든 사회제도들, 놀이터에서 문화, 예술, 스포츠 활동들과 그 사회적 기반시설과 계급계층 차별 해소 등......


87년과 대비해서,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분화되었고, 수십가지 수백가지인데, 자꾸 역사적인 퇴행을 부추기는 세력들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도시공간>에서 정치적 좌파의 실천을 찾아나가고 연구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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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보고 가요. 좋은 하루 되세요. ^^

    2014.09.25 11: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노동자 희로애락 표출, 그것이 노동정치다

2013.07.12 20:22

노동 과정(일터)이 국회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노동자들이 자기 일터를 내팽개치고 빈 공간으로 남겨두고, 국회만을 정치적 공간으로 축소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진보정당은 노동자 (조합원)를 재정후원자로 간주했지, 노동자 당원들을 국회 입법자, 행정가가 될 수 있는 정치적 자양분을 제공하지 않았다.


일터(직장)은 단순한 밥벌이 수단, 월급/연봉만 받는 곳이 아니다. 노동과정 속에서 진정한 노동해방이 실현되어야 하고, 노동자들의 자유가 그 과정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한다. 노동과정의 좌파적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은 이미 역사적으로도 많았다. 공장평의회 운동, 토지 점거 운동, 노동자의 자주경영 등이 있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좌파정당의 장기적 밑천 확보를 위해서, 정치적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과정의 정치화가 급선무이다. 한국에서 진공의 사회주의자들의 진격은 있을 수 없다. 보수강성대국 새누리당과 민주당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재분배(세금), 분배(노동소득), 자산, 생산수단 및 토지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정치적 법률적 투쟁과 게임을 벌여내야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해고반대 투쟁에 좌파정당이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역할은 파업참가자들과의 직접적인 인적 결합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좌파정당은 파업의 문화적, 정치적, 법률적 방패막이를 만들어야 하고, 일상에서 미디어 여론전을 수행해야 한다.


(그림1) 일터 미생 2.jpg

(최근 노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웹튠 미생 일부/작가 윤태호: 직장에서 노동자들의 희로애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좌파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소재들이다 )


다시 노동과정으로 돌아오자. 왜 노동과정 (일터)의 정치가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대안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는 노동정치의 화수분같은 샘솟는 진지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역사적으로 일터에서 노동과정의 정치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20세기 (구)사회주의와 우리가 현재 지향하는 사회주의 (당원들이 말하는 녹색사회주의, 무지개 사회주의, 평등사회노동, 해방당, 사민주의 등)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또다시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주제는 노동자들을 ‘노동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자들은 공산당관료나 행정관료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인 주체로 전락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의 오류가, 지난 12년간 한국 진보정당 좌파정당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진보신당의 경우 노동자 당원들 숫자가 민주노동당 시절보다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노동자들은 대부분 당비내는 수동적인 페이퍼 당원이었다. 노동자들이 자기 일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이야기, 자기 일에 대한 자기 표현 (정치,경제,문화적 주장과 표현을 말한다)이 자유롭게 발현되지 못했다.


당의 정책 역시 (재)분배 영역에 해당하는 복지 정책들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복지정책들 당연히 제출해야 한다. 우리의 임무이다. 그러나 그 정책들 역시 (재)분배 영역뿐만 아니라 생산과 노동과정, 직장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말하고 표현한 것에 기초해서 정책을 수립되어야 한다.


유한책임 주식회사가 노동자들의 것이다. 이런 법률적 소유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87년 민주노조 운동의 목표는 노동3권 준수였다. 자유대한민국의 헌법과 노동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준수하라. 그리고 밑바닥에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신분 차별과 무시’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97년 IMF 긴축통치 이후 한국의 거의 모든 직장과 일터, 공기업, 사기업, 학교, 서비스업 제조업 농업 축산업 할 것없이, 자본의 축적 논리와 이윤추구 괴물이 살벌하게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


일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자기 주인 의식, 자본과 사장 혹은 상관의 명령과 지시만을 따르는 수동적인 객체와 ‘미생’의 지위로서 노동자를 거부해야 한다. 좌파정당의 임무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일터에서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로애락를 정치적으로 승화시키고, 정치 사회 문화 법률적 결정체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로건으로 정리


일터가 국회이다.

일터가 구의회이고, 시의회이고 도의회다.

일터가 구청이고 시청이고 도청이다.

일터에서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일에 주인이 될 때, 생산수단, 토지, 공공재의 사회화 공동체 소유 역시 실현 가능하다. 평화노동당의 정치적 임무는 일터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기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게 하는 모든 정치적 법률적 문화적 장벽들과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림 2) modern times supervisor 2.jpg

(노동자의 사적 공간을 감시하는 것을 풍자하는 영화 대목: 모던 타임즈 / 찰리 채플린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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