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민주당2020. 12. 27. 16:15


양심을 X-레이로 촬영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영화 "확대"처럼, 현상한 사진을 다시 찍어서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면

무엇이 나올까?


벌써 1년 5개월이 지났다. 조국 사태는 마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확대 blow up"같다. 


진실은 조국 사태와 연관된 사람들이 다 알지만, 진실은 다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불안한 눈빛이 "확대"의 주된 테마가 아닐까 한다. 


가끔 다시 봐도 다 헤아리지 못하는 영화 주제.



주인공은 남녀 한 쌍이 공원에서 노닐던 장면을 찍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시선은 불안했고, 어딘가를 쳐다봤다.


그 한 남자는 공원에 죽은 채 발견되었다.


주인공은 인화된 사진을 사진기로 다시 찍는다. 확대다. 


사진은 사람이 의도치 않았던 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주인공이 이미 현상한 사진을 다시 찍는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바람에 나뭇잎만이 휘날리고, 침묵의 언어와 몸짓으로 


막을 내린다.


 



조용한 일상, 두 남녀가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가까이 봐도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인다.



여자의 시선은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눈빛은 불안해 보인다.



사진 속을 돋보기를 통해, 확대해본다. 



현상한 사진을 다시 촬영한다. 무엇을 발견하고자 함인가?



사람 형체를 한 것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사진을 확대해보니, 권총이 보였다.



한 사람이 땅에 쓰러져 있다. 



여자는 사진사를 향해 뛰어왔다. 


불안한 눈빛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는 없을 정도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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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4. 28. 23:43

Nakjung Kim

September 15, 2019 · 


국민 알 권리가 '피의 사실 공표제한'보다 더 중요하다. 92년 대선 당시 초원복집 김기춘은 '전 법무장관으로서 부산 공직자들 불러모아 김영삼 대선 후보 사전선거운동 관권동원 운동'을 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켜 놓고 구속당하자, '도청'이 불법이라 하여 '위헌소송'에서 승리한 바가 있다.


- 떡값 검사-홍석현 삼성 공범 도청을 폭로한 노회찬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의 죽음의 시발점이었다. 국민 알 권리가 '도청녹음'보다 만배 중요하다고 외친 자가 노회찬이다.


- 문재인-조국 교수의 정치적 오류이자 무능력이다. 언제부터 집권당이 언론과 검찰 때문에 정치 못해먹겠다고 한다. 만약 미국의 안방이었던 라틴 아메리카 죄파집권당 (칠레 아옌데 정권 등)이 미국 자본과 백악관, CIA 때문에 집권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면 수긍이라도 할 것같다.


- 두번째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언론과 검찰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세력과 자본에 대한 투쟁은 게을리하면서, 언론과 검찰이라는 표피만을 긁어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제도의 뿌리는 손대지 않거나, 아니 민주당 대다수 의원들도 이 둘에 기생해왔지 않은가? 문재인-조국 교수의 자기모순이다.민주당 플레이가 너무 위축되었다.



손민균 님이 조사하신 '피의사실 발표 원칙과 방법 (대법원 판결 1999년)을 요약하면 다음 3가지이다.


1)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 발표는 국민의 보편적 정당한 관심대상일 것


2) 발표 목적은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책임있는 자가 공식 절차를 밟아 행할 것


3) 유죄를 속단하거나 예측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은 피할 것.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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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2. 8. 16:38


2020.feb7.

진중권은 입진보가 아니다. 그 이유 3가지. 정의당 심상정, 윤소하 의원의 ‘진중권 탈당’ 논평은 감탄고토 (甘呑苦吐)였다.

주제: 신자유주의 체제의 유산 감탄고토를 종식시키자.


인간관계가 참 짧다. 아니 짧아졌다. 그래서 아쉽다.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석 이후, 운동권의 자긍심은 불량제품 고려청자 박살나듯이 팍 깨졌다. 달면 삼키고 쓰면 토해내는 ‘감탄고토’, 다시 말해서 진보가 그렇게 경멸하는 신자유주의적 행동지침이 평당원들 사이에, 지도층, 오래된 운동권들, 20대에게 다 퍼졌다.


진보정당이 집권당이 위해서는 지방행정(군수,시장,구청장등) 15% 정도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20세기 전 세계 정치가 논증하는 집권 전제조건이다. 이런 집권전략은 실천하지 않은 채, 2004년 이후 16년간 ‘국회의원’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이끌어왔다. 변화구없는 170km 속구 투수이다.


진중권이 최근 이런 심경을 남겼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 18년간,총선, 국회의원 그거 많이 해봤잖아요? 그런데 뭐가 특별히 달라졌다는 느낌 없어요.’ 난 진중권이 패배주의나 허무주의, 진보정당 불필요론에 빠졌다고 보지 않는다.


인간관계들이 너무나 근시안적으로 변해버렸고, 좁쌀 마인드가 ‘리더십’으로 둔갑했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 진중권은 입진보가 아니다로 돌아간다. 세가지 이유들만 언급한다.


첫번째, 윤소하 의원이 ‘진보지식인입네 하는 분들, 난해한 말로 삶의 현장을 왜곡하지 말라’고 진중권을 비난했다. 진중권은 이 발언과 무관하다. 아니 반대다.


내가 본 진중권은, 2002년 6월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이문옥 선거운동권이 되어, 지하철에 당시 국회의원 0석이던 ‘민주노동당’ 이름을 알리기 위해 만든 ‘어깨 띠’를 두르고 ‘민주노동당’을 입으로 외쳤다. 두개골로 외친게 아니라, 진중권의 ‘입’으로 외친 것을 온라인으로 봤다. 나중에 만난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의 증언도 일치했다.


한국에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국회의원 10석을 만든 2004년 총선 이전에,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장 후보 이문옥, 부산 시장 후보 김석준 (현 교육감)이 민주노동당을 ‘전국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중권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민주노동당 띠 두르고 선거운동했다. 그 띠를 ‘입’으로 물고 다닌 게 아니라, 어깨에 둘러멨다.


두번째, 정의당 노유진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진중권 예술철학자 겸 시사 평론가에게 확인해봐야겠지만, 진중권은 노유진 카페에 무료로 자원봉사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맨입’으로 출연해서 자기 이권을 챙겨간 게 아니다.


그리고 이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진중권과 노회찬은 ‘노유진’에서 유시민과 정치적 차이를 드러냈다. 예민한 청취자들은 몇 차례 그 차이를 감지했을 것이다.


유시민의 논지는 “정의당 안에 좌파(노회찬,진중권 등 포함)는 심장이 너무 뜨거워”그러면서 더 큰 공간으로 이동하지 못한다고 타박했다. 유시민 주장은 정의당이 민주당에 과감하게 들어가서, 빅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집권 정치,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이에 반해, 진중권과 노회찬은 민주당과는 차별되는,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제도에 충실한 리버럴 민주당과 ‘정의당’은 달라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했다. 진보정당의 독자성이야말로 정의당의 존재 이유라고 주창한 사람들이 진중권과 노회찬이었다.


조국 사태에서도 진중권은 이러한 정의당의 독자적인 자기 입장을 고수하려고 했다. 그래서 리버럴스트 민주당이 말하는 ‘기회의 공정’을 넘어서, ‘결과의 공정’, 이 결과의 공정까지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체제 변혁을 주장하고 있는 게 지금 진중권 글이다.


세번째 진중권이 입진보가 아니라 진보 실천가인 이유는, 2008년 촛불 시위 때, 진보신당 온라인 방송의 ‘송해’ 리포터 역할을 탁월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난 컬트조와 ‘칼라tv’ 온라인 방송을 기획했는데, 운동권들이 연단위에서 연설하는 방식을 뛰어넘는 쌍방향 의사소통 ‘미디어 실천’을 진보신당 안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KBS 전국노래자랑 ‘송해’ 역할을 진중권에게 맡겨서, 촛불 시위에 나온 시민들이 ‘연단’ 위로 올라와, 정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진중권이 송해로 변신, "왜 촛불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나요?"를 물었고, 참여자들이 답변하기 시작했다. 직접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진보정당의 정치 실천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지루하게 윤리학자처럼 당위론에 그치기 쉬운 데모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만든 컨셉이었다.


진중권은 이러한 ‘시민에게 마이크를 주는’ 역할을 가장 탁월하게 소화화냈고, 시민들 속에 파묻혀, 칼라tv중계를 하다가, 전경차에 시민들과 같이 끌려가는, 즉 시민과 리포터가 한몸이 되는 협연을 연출하기도 했다.


진중권의 본 직업은 ‘예술철학’ 연구자이다. 한국에 ‘미학자’로 알려져있으나, aesthetic (미학)이 외국 거리에서는 손톱 네일아트 숍 이런데서 쓰이니, “예술철학”으로 하는 게 좋겠다. 암튼.


그가 정치 시사평론가를 하는 건, 불의를 못참아서였다. 윤소하 의원이 부당하게 평가한 것처럼 “진보지식입네 하고” “난해한 말 (발터 벤야민이나 아도르노 등 독일 철학자들이 쓰는 문장들 등)”이나 쓰면서 삶의 현장을 왜곡한 적은 거의 없다.


총선이라 바뻐서, 화해할 시간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윤소하 의원은 진중권 전당원이 지난 18년간 무형 유형으로 진보정당에 기여한 것을 인정하고, 정치적으로 화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진중권 전 당원께서도, 복잡한 심경, 서운함, 너무나 자연스런 감정이고, 많은 이들도 동감할 것이므로, 특정 인물이나 코멘트보다는, 지난 20년 어렵게 쌓아온 진보정당과, 어렵지만 향후 가야할 20년, 30년을 위해, 대승적으로 화해하길 바란다.


97년 IMF 신자유주의 독재 체제 이후, 우리 사회에, 사람들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처럼 퍼진 이 감탄고토라는 전염병을, 이제 우리가 같이 예방해야 하지 않겠나요?


돌아온 진병장 환영~하며.


원시 씀.


(2008.5월 어느날, 데이비드 맥날리 David McNally가 한국 진보정당, 인터넷 방송에 참여해, 박형준 진중권 등과 토론하고 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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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독후감)2019. 9. 3. 15:40

고등 시절 두세번 읽은 책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마천의 사기다. 사람은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자기가 다치고 죽기도 한다. 


상앙이 그러한 사례다. 상앙의 군주였던 진나라 효공이 죽자, 상앙의 정적이었던 효공의 아들(공자) '건'은 상앙을 '모반자'로 몰자, 상앙은 변방 '함곡관'까지 도망간다. 


거기에 있는 객사 (여관)에 은신하려 했지만, 객사 주인이 말하길 "우리 상군(상앙)의 법에 따라 여권이 없는자를 여관에 머물게 하면 연좌제로 벌을 받는다"고 말하며, 상앙을 손님으로 받지 아니했다. 


상앙 : 商鞅; 기원전  390 – 338  



상앙은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함곡관에 머물지 못하고, 위나라까지 도망갔다. 


나중에 결국 진나라 군대가 상앙과 그 군대를 정나라에서 패퇴시키고, 상앙을 체포했다.  



진나라 효공의 대를 이은 혜왕은 상앙을 거열형 (車裂刑 dismemberment )에 처했다. (거열형:오마분시: 다섯 수레에 사람의 머리와 사지를 묶고 다섯 필의 말이 그것들을 끌어당기게 하여 사람을 찢어죽이는 형벌)



1. 상앙의 상관은 위나라 재상 공숙좌였다. 공숙좌가 위나라 혜왕에게 그 후계인으로 '상앙'을 추천했다. 그러나 위 혜왕은 거절했다.


2. 상앙(공손 앙)은 진나라 효공의 신하 '경감 (경씨 성을 가진 태감)'의 추천을 받아, 퇴짜를 맞다가 겨우 벼슬 '좌서장'에 오른다. (20등급 중 11등급)


3. 상앙은 구법을 버리고 신법을 만들어 성공한다. 법률 위반시 강력한 처벌을 내린 덕분이다. 10가구를 '십'으로 5가구를 '오'로 짜서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도록 한 '연좌제'법이다.


4. 세법 공평부과, 도량형 통일, 왕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나중에 공자 건과의 앙숙이 된 이유)


5. 위나라 공격, 공자 '앙'을 속여, 위나라를 격파시킴. 위나라 양혜왕이 공숙좌의 추천을 무시한 것을 후회함.


6.진나라의 은사인 '조량'이 상앙에게 쓴 조언을 했다. 오고대부 별칭을 가진 '백리해'의 인정 (따뜻하고 온후한)정치를 상앙이 따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함.


"백리해는 진나라 재상이 되어, 피곤해도 수레를 앉아서 타지 않았고, 더워도 수레 덮개를 띄우지 않았다. 국도 행차시에도 호위 수레를 거느리지 않았고, 무기를 가진 호위병도 없었다"

"백리해 (오고대부)가 죽자, 진나라 인민들이 눈물을 흘렸고, 아이들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상앙은 조량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조량은 상앙에게 경고했다. "진나라 효공이 죽으면, 당신을 체포해 죽이려는 자가 많을 것이다"

조량은 상앙의 정치를 '겁박 정치' '폭력과 위압 정치'로 묘사했다.


조량은 상앙의 '보디 가드' 정치를 이렇게 묘사했다. 수십대의 수레들이 상앙의 수레를 뒤따르고, 창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상앙의 수레를 호위했다.


이러한 보디가드 정치는 백리해의 소박한 정치와 대조되었다.


상앙은 진나라 수상으로서 강력한 인민통치 '법'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왕자들을 본보기로 형벌을 주고, 얼굴에 먹물을 새겨넣는 악독한 처벌을 했다. 백성들은 이러한 처벌을 두려워해 상앙법을 따르고, 이를 어긴자를 고발했다. 하지만 인민들의 마음까지는 상앙이 사로잡지 못했고, 그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사망: 거열형, 오마분시 (다섯말이 머리와 사지를 찢어서 죽임)

#사마천, #사기열전, #상앙,


(The Martyrdom of St. Hippolytus by Dieric Bouts)




참고 서적: 사마천, 상군열전

인터넷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Shang_Yang


Shang Yang (Chinese: 商鞅; c. 390 – 338 BCE), also known as Wei Yang (Chinese: 衞鞅) and originally surnamed Gongsun, was a Chinese philosopher and politician. He was a prominent legalist scholar.[1] Born in Wey, Zhou Kingdom,[1] he was a statesman and reformer of the State of Qin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of ancient China. His policies laid the administrative and political foundations that would enable Qin to conquer all of China, uniting the country for the first time and ushering in the Qin dynasty. He and his followers contributed to the Book of Lord Shang, a foundational work of what has modernly been termed Chinese Legalism.[2]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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