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2015. 12. 15. 18:57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한국이 '미래담론'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같은 엉터리 지리학에 기초한 토목공사가 20-30년 가는 미래담론의 가로막았다. 그 이명박 교수 밑에서 송교수가 브레인역할을 하려다가 실패했지 않았던가?


송교수의 허공에 붕뜬, 빈껍데기 '시민성' 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첫번째 지금은 구한말도 아니다. 비유라고 해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누구의 잘못으로 구한말, 조선말기라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없다. 정치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가 빠지면 송교수의 글은 그냥 국민들 야단치기 종아리 걷어라는 것에 불과하다.


- 두번째, 노동자들이 자기 임금만 올리려고 하니까 '시민성'을 학습할 겨늘이 없다고 송교수는 말한다. 사회학 자체가 '열린 주제 분과 학문'이라는 무궁무궁한 장점이 있지만, 구체성에 근거하지 못하면 '붕 뜬 시인'이 되기 십상이다. 서울에서 자기 집이 없는 시민들은 점점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그 다음에 서울 경계선을 넘어 외곽으로 밀려난다. 노동소득이 부족하면 삶의 근거지가 박탈당하는 게 사회학적 현실이다. 


서울은 3층, 5층 연립주택, 상가 빌딩을 소유해서 '집세, 빌딩 임대세'를 받는 계층이 아니면, 월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 노동소득자가 아니면 인간답게 살기 힘들다. 물질적 기초적인 삶의 토대가 무너지거나 그 방어선이 뚫리면, 공동체의 미래를 토론하는 '공적 담론 공간 (동네 카페, 뮤지컬, 도서관, 랑랑 카바레, 노래방, 정당 토론회, 김제동의 톡투유 등)' 참여는 힘들다.

- 송교수 주장이 엄청나게 라디컬한 입장이어서, 비정규직이나 치킨집 짜장면집 자영업자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민주노총 대기업 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성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하면 저 '시민성'은 달라지는가? 그러나 이들도 노동강도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시민성'을 실천할 비-노동, 비-생산 시간은 많지 않다.

- 세번째, 범주 오류, 그리고 구체성의 상실, 서유럽 역사와 중국-한국사 차이에 대한 설명력 결여. 이 기사에 나타난 송교수의 서양역사에 대한 인식은 오류다.


서구 시민은 '국가'와 대결 속에서 시민성을 획득했는데, 한국(북한)은 국가를 구제하느라 '민족주의'에 처 박혔다고 그는 진단한다.


팍스브리태니카, 팍스아메리카나로 대표되는, 또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원인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서유럽국가들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팽창적 민족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건 역사가들의 공통적 견해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조선은 그 서구열강의 '민족주의' 요소가 결핍되어 오히려 주권을 상실하는 '패전국'이 되었다. 35년간 일제 해방운동을 해야하는 게 조선이었고, 가장 큰 과제는 '주권 회복'과 '봉건적 질서 타파'였지 않나?


- 네번째, 하버마스의 '공론 토론 영역 (공론장:Öffentlichkeit )에 대한 기계적 대응과 도식들의 오류: 시민사회의 담론 공간의 발생, 성장, 쇠퇴를 논한 독일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것을 송교수는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교수자격 논문이 '공론장의 축소와 파괴'에 대한 것이다. 17~18세기 절대왕정 군주에 맞서 칸트 (프러시아) 루소(프랑스) 존 로크 (영국), 토마스 페인 (영국) 등이 '공적인 토론의 중요성과 출판,표현의 자유를 획득'이야말로 계몽주의 정신의 기초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자유로운 이성의 놀이공간, 지적 공간, 공부 공간, 정치적 문화적 공간을 파괴하고 축소시키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자본주의 이윤추구와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 그렇다면 한국 현대사에서 파쇼적 권력과 무자비한 자본의 이윤추구 세력들과 저항하며 계몽주의의 기초인 '이성의 자유로운 토론' 공간을 확대하려고 노력한 집단은 누구인가?


4대강 만들었던 이명박인가, 아니면 시위 복면자를 테러리스트라고 한 박근혜인가, 대학생들 데모하면 위수령 발동해서 경찰도 아닌 군인들 투하해 총기로 위협했던 박정희인가? 박정희 퍼핏급에 해당하는 전두환 노태우는 생략하자.


- 송호근 교수의 글과 기사에는 '주어'가 명료하지 않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지배층의 자기 반성과 정치적 퇴각, 양보 없이 중간층의 '정신'만 회초리로 갈긴다고 해서, 한국의 미래 비전과 담론이 생겨나지 않는다. 잘 해야, 중산층, 교양층들을 시민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재산축적만 하지말고' 시민사회를 이끌어 달라는 윤리교과서적 주문이다.


- 마치며, 우리는 계몽의 삽을 들어야 한다. 송교수의 말을 듣지 않았던 이명박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 지형과 강의 구조가 다른, 너무나 다른, (독일은 스위스 알프스가 고지대이고, 북쪽이 저지대이지만, 중앙은 평평한 편이고 경사가 없어 완만하다.그래서 강에 배가 많이 다닌다) 한국 강에 보를 설치하고 운하를 만들어놓고 물을 다 썩게 만들어 버렸다.

다시 계몽의 삽을 들고, 4대강의 썩은 물을 다시 흐르게하자.


기사 출처 : 

http://m.media.daum.net/m/media/hotnews/rankingnews/popular/newsview/20131129135509313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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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도 유쾌함과 포용력이 필요한 이유


혹시 팀 동료들에게 짜증내고 욕하고, 험담하면서 우승한 축구팀, 야구팀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못나고 실력이 없고, 국회의원 0석이라도 해도, 동료들에 대한 당원들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한다. 과정이 유쾌했으면 좋겠다. 의견이 달라도 포용력이 있었으면 한다. 새누리당 - 민주당 정치 행태에 38도씨로 분노하고, 다르지만 같이 행동할 수 있는 동료에게는 17도 정도 온화한 날씨로 분노했으면 좋겠다.


쿠바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고, 이건 그냥 개인적인 인물평이다. 정말 힘들 때, 일의 과정이 유쾌하지 않을 때, 동료들을 봐도 짜증이 나고, 나와 견해가 다르면 ‘인내력’과 ‘합의 의지’가 생기지 않을 때, 체 게바라처럼 밀림으로 떠나려고 한다. 밀림이란 숲이 아니라, 또 다른 실험과 실천의 장소이다.


내가 잠시 다녔던 회사에서 한국 최초로 쿠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선배 PD들이 피델 카스트로를 인터뷰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으나 실패하고 서열 5~6위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KBS:1994> 김포공항 세관에서 촬영 테이프들을 다 압수해버려서, 그걸 찾으려고 김포공항까지 가기도 했다. 겨우 찾아서 편집 끝내고 kbs에서 방송할 수 있었다. 그런 계기로 쿠바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몇 가지 다큐멘타리들을 보게 되었다.


쿠바 혁명 이후,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체 게바라는 1965년 경, 미국 제국주의와 소련의 패권주의를 동시에 비판했다. 소련 경제 정치체제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동떨어진 것이고, 국제정치 역시 미국과 소련이 제 3세계와 가난한 남반구 나라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바를 물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던 모스크바 눈에 체 게바라는 가시였다.


체 게바라는 위 알제리 연설 이후 하바나 공항에 내렸다. 흑백 다큐멘타리 안에서 두 사람. 동료 피델 카스트로와 악수하고 포옹한다. 그 후 체 게바라는 소련과 쿠바와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산업자원부 장관자리를 사임했다. 피델 카스트로 정부에게 외교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체 게바라는 남아메리카 나라들로 떠난다. 1967년 볼리비아 숲 밀림에서 총에 맞고 전사했다.

과정이 유쾌하지 않으면 될 일도 안된다. 동료들에 대한 포용력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좌파 가치이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시민사회가 단단하고, 노동자 계급의식에 기초한 정치가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영남 지역 패권이나 지역 분할 정치가 제도권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정치적 포용력’이 중요한 가치이자, 조직의 무기이다.


참고: 알제리 연설 일부:

http://youtu.be/86YaCAdRcz4

(베트남이 미국 제국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 당시 알제리를 지배하던 제국주의 프랑스 비판. 콩고 수상 패트리스 루뭄바 납치 살해 사건 책임으로 유엔과 미국 (벨기에,소련등 연관) 비판 등)




(1960년, 체 게바라 해외 순방, 체코, 헝가리, 북한을 방문할 때, 북한 DPRK 에서)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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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파의 <정치의 선차성? the primacy of politics> 단상


 2011.02.09 17:11:30

원시 https://www.newjinbo.org/xe/994047


2011년에 왜 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가르치는  어떤 여교수가 쓴 <유럽 정당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왜 1980년대 한국 운동권은 NL이건 CA, PD건, ND건, SS건,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나, 평양 정부에서 "검인정 교과서"로 만들어낸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 < 정치경제학>을 읽었어야 하는가? 박정희시절에 만들어진 검인정 <반공 방첩 국민윤리교과서>와 정반대 형식을 띠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들이다. 

마르크스는 정작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다 <변증법> 번역도 오해의 소지가 더 많다.  무슨 무슨 <법 law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규칙, 필연적 불변의 진리 이런 뉘앙스까지 있지 아니한가? 80년대 말, 소련, 동유럽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등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한국 지식인들이 위 소련, 동독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4종 세트를 번역했다. 왜 그랬나? 한국 운동권들에게 팔린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역사적 사명감과 80년 광주의 부채 때문에(?), 혹은 요새 막스 베버주의자들의 부활과 더불어 엄청나게 깨지고 있는 "절대적 신념"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1권에서 "나의 변증적 방법", 즉 연구-조사, 그리고 서술의 방법 이런 단어는 쓴다. 그러나 그걸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윤리 교과서> <종교학 교과서>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조세프 스탈린이다. (*이런 마르크스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은 워낙 <명품> <브랜드> <정통> 혹은 명망있는 "청와대" 이런 네임밸류에 익숙해져서, 마크르스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구제역으로 파묻힌 돼지, 송아지 취급도 하거나? (연민, 무관심, 체념 등) 혹은 마르크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원들에게 "너 좌파지? 너 절대적인 신념 정치에 가득차 있는 무능력한 정치질도 못하는 진보지?" 욕설이나 해대는 게 지적 문화이다. 

누굴 탓해서 뭐할 것인가?  이 69억이 살아가는 이 어마어마한 복잡한 시대에, 자식들 먹여살릴 돈이 없어서, 자기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좀 받아보려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에 자기 어머니와 외삼촌을 찾아갔다가, 퇴짜맞고 어머니와 외삼촌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 여튼 이런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69억 지구인들의 삶을 어떻게 알겠는가? 마르크스에게 그도 모르는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the primacy of politics>라는 책이 한국에 번역된 모양이다. 저자 셰리 버먼은 65년생으로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유럽정당사와 이데올로기를 주로 가르친다.
 
진보신당에도 <복지파>들이 사민주의 책이라고 해서, 제목부터 잘못 번역된 <정치의 선차성>이라는 책이 써클 내부에서 유행인 것 같다.
 
셰리 버먼 Sheri Berman 의 전제 자체도 문제가 많다. 이 녀교수가 말하는 주제는 이미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소위 <경제 결정론 economic determinism>에 대한 비판, 좌파로 좁히면 제 2 인터내셔널의 <경제환원주의적 사고: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굳이 셰리 버먼이 아니더라도, 좌파 내부에서도, 또 사회과학.인문학 기초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다 비판이 가능하다.
 
두번째, 셰리 버먼이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정통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카우츠키가 만든 교과서류를 지칭함>가 모두다 <경제 결정론>, 즉 경제가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주장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고전적 자유주의>는 서유럽의 정치사를 보면, 실제 정치에서는 "국가 (정부, 군대)"가 제국주의자로서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마치 서유럽 자유주의자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이나 자본가들은 그 국가와 독립된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런 프레임 자체 (국가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아무리 레닌이 죽은 개가 되었다하지만, 레닌 역시 이러한 <경제결정론>적 사고를 비판하지 않았는가? 굳이 사민주의자들의 흐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까먹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의 사민주의를 "이념" 모델로 말로 안되게 수입하는 사람들이 알아야할 사실은, 서유럽 북미 등에서 관찰되는 사민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태동과 "제국주의"의 탄생, 세계 1차, 2차 세계대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군부와 사민주의자들 <동맹>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유관순 누나를 죽이던 그 해 죽였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자. 셰리 버먼의 책을 통해서, 논문들을 통해서, 정보나 자료, 셰리의 주전공이 유럽 정당사이니까, 비교 정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될 일이다.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학적으로 따지면 셰리 버먼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저술이나 연구방법)는 깊지 아니하다. 북미 비교정치학자들의 이론적 깊이가 대부분 그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셰리 버먼의 책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우선 여기까지 적고 ----------, 모 신문사 기자와 쪽글대화

모씨: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념모델로서의 사민주의'를 찾으려고 해봤어요. 대학 때 독일이데올로기, 경철수고, 선언 등등 읽듯이 한번 공부해볼까 했죠. 

여기 도서관에 가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 사민주의자들 이름 넣고 검색을 해봤죠. 근데 자료가 너무 없어요. 아직은 가설 단계인데, 적어도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학습'하던 방식과 사민주의가 유통되는 방식은 다른 것 같습니다. (-> 사민당 사람들 만나서 알아볼 향후 과제)...

원시 사민주의라는 말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들별로 다 다르니까요. 유럽에 언어가 250개가 넘고, 또 종교와 정당과의 관계도 우리나라와 다르고...캐나다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르지만, 온타리오주는 보수당이 한 40년 독재하면서 top 10안에 드는 정도의 복지모델을 만들어놨음 2차대전이후 - 1990년까지. 정책만 놓고 보면 보수당과 자유당이 큰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근데 이게 나라별로 다 다르니까요.


원시 이념모델, 아 그거 좋은 지적이네요. 학생운동권의 학습교재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이야기할게요. 소련에서 나온 변유, 사유 읽어보고 이것은 한국 고딩에서 배운 검정-국민윤리 교과서의다른 버전이구나 해서다 불태워버리고...그냥 단행본을 읽음. 헤겔 마르크스 책들은 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고, 논투 구조로 되어 있어서 생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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