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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은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해주고, 사도바울 한화갑을 내세우면서 동서 화해론을 주창했다. 동진 정책의 '카톨릭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식 구복신앙은 카톨릭식 신의 영접을 악귀로 쫓아버리고 말았다.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관이라는 '구복신앙'의 서낭당을 건립하고자 본인의 카톨릭신앙의 토착화에 노력했다. 그러나 순교자의 피가 모잘랐다.


열린우리당의 '박정희 친일 혐의' 과연, 신-동진정책인가 포기인가? 아니면 노무현의 '명패 던지기'식 정면돌파인가? 최근 열린우리당이 추경예산 편성에서 부산시가 개최하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관련 지원금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총리에서 낙마한 김혁규 전경남지사를 내세워, 기업규제완화를 위한 특별법’을 준비중이다. 아직 특별한 성과를 못내고 있는 김혁규 카드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김혁규 의원을 16일 제주특별자치법 마련과 재정지원 확보를 위해 당내 마련된 제주특별자치도 추진특위의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부산과 제주가 APEC 개최지 선정 문제로 갈등을 김혁규 의원이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친일 혐의와 박근혜 비판 노선은 과연 노무현의 신-동진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노무현은 김대중의 동진정책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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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을 비판했던 이유 : 영남-동진정책의 역사 (2001-3-30)


<김대중 정부의 동진정책, 김민석의 화답>


김종필이 98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지지한 것은, 그 자신의 정치적 입지점의 강화라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김종필은 김대중이 이회창보다는 한국정치의 생리를 잘 안다고 판단했다. 김종필은 '계몽주의적 군주' 박정희 밑에서 죽지 않고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와 비교] 살아남은 투명인간에 가까운 인물이다. 어찌보면 야당을 한 김영삼, 김대중보다 더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생리를 몸에 체득한 끝에 '메타포어'의 명수로서 이 땅에 건재하고 있다. 


이회창은 전직이 판사이고, 법조문을 외우던 사람이다. 그는 항시 판단한다. 보편적 입법 논리와 도덕적 판단은 아니더라도, 형식 '선'과 '악'을 가리는 직업 - 마치 반란자들의 목을 치는 지적인 망나니처럼-을 가졌다. 김종필은 안다. 이회창 밑에서는 그 망나니의 선악을 자르는 칼날에 모가지가 싹둑 잘라나갈 것이라는 것을. 김대중은 한국 국민의 정서를 잘 알고 있고, 정치의 생리를 안다. '타협과 상생'의 논리를 터득한 정치적 친구이고, 동업자이다.



                   (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DJP 연합,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러한 김대중의 사도 바울, 한화합씨는 목포에서 전두환과 더불어, 불교신자인 전두환과 카톨릭 신자인 사도 바울 한화합씨는 '화해와 상생'의 새로운 법률을, 야단법석에서 여시니, 이는 대구, 경북 인민의 가슴을 울리는 심금이 될 것으로 믿었다.


 박정희 기념관을 지음으로 써 "조국의 근대화 세력 (점진적 민주화론자) "과 " 민주화 세력 (급진적 민주화론자)"이라는 새로운 이념의 씨앗이 제도적으로 현실화되었다. 김대중의 아카데믹 베드로, 한상진이 이것을 유교적 차원에서 철학적으로 승화시키니, 중화(中和)와 화합이 유교의 기본이요, 우리 조선은 유교의 철학적 본고장이고, 유교가 민주주의와 상치되는 부분도 있지만, 다 버릴 것은 아니니, 그 핵심인 중화사상을 받아들여, 조국의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중화되어 일신우일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김대중의 요한 김민석이 정치적으로 승화시켜, 자기의 꿈은, 영남권의 표와 젊은층의 표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청년학도의 심장으로 갈파했다.


<민주주의가 어렵다.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개념인가 ?>


도대체 민중이란 무엇인가 ? 정형근은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이 되고, 부산의 사나이, 자존심의 사나이로 남게 되었고,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가 당선이 되고, [김대중의 아들도 당선이 되고 물론].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세력이 더 문제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란 자신들의 권리와 이해관계를 대변해 주는 정당을 스스로 선출하고, 비판할 능력이 있는 시민들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에게 민주주의적 시민 개념은 어려운 것인가 ?


<한국 지식인들의 권력지향적 태도의 현실화>


서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는 자본주의 논리[시장의 논리]와 민주주의의 논리의 상충의 역사였다. 그 갈등의 내면을 다 들여다보기 전에, 최소한 지금 합의점을 형성할 수 있는 부분만 이야기를 한다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 [ 밀 (J.S Mill) , 시민 자유론 On Liberty], 혹은 공론영역의 적극적 부활이 아마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될 것이다. 시장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치적 해결의 기초는 이익집단의 자기 주장, 그리고 그 주장들의 합리적 토론과 정치적 표출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론영역의 심화발달이다. 


 아쉽게도 한국사에서 지식인들의 학습동기는 '정치적 권력 획득'과 '사회적 신분 이동', 그리고 그로 인한 개인의 사적인 부의 확대이다. 이러한 지식인 문화의 정치적 현실화는 언론에 그대로 반영된다. (조선,동아,문화,중앙 등 거대한 일간지들이 동일한 논조로 '보수'임을 자처하는 현상은 세계 언론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일보가 만들어낸, 이승만 '아버지론', 박정희 '조국 근대화의 기수: 계몽주의적 군주론'은 이제 한국형 보수주의적 가치가 실질적인 힘을 지니고, 이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게 논조를 만들어도 신문은 팔리고, 그것을 읽고 내재화시키는 국민들이 있고, 그것을 더 조장(助長)하는정치적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조갑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근대화의 기수로 칭송하다. 조갑제와 뉴라이트 그룹이 시도한 담론 헤게모니 전쟁, 끝나지 않는 전투는 계속된다) 

 

조선일보의 논조가 공론영역의 발달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고, 민주주의 원리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 오히려 그러한 박정희에 대한 새로운 향수와 환영(幻影)의 실체화는, 포퓰리즘의 우익적 극치였다. 지식인들이 만들어내고 조장해낸 박정희 신화와 종교는, 현재 정치적 권력 투쟁의 신앙적 표현이고, 권력을 향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도전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론 집단이건 학자집단이건 간에, 그 피말리는 인정욕구의 또다른 표출이다. 


[이것은 소위 좌파도, 과거 민주화 운동 경험자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공론영역에서 새로운 이성의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해내고, 이것을 제도적 합리화로 물꼬를 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이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내가 입각하고, 내가 직접 뛰어들어 '조국'을 구원하는 동키호테식의 발상은, 이제 정화할 때가 아닌가. 풍차 밑의 물레를 타는 청개구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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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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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보수주의 정당 제자리 찾아줘야 하는 역사적 책무
2004년 5월 17일


지금 한나라당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인식이 안일하다. 민주노동당이 제 2당이 되었다는 뉴스, 기분은 좋다. 그러나, 몇가지 살펴야할 점이 있다. 


낯설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민주노동당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는, 한국에서 보수주의 정당, 신보수주의 정당이 10% 내외 정당이 되게끔, 정치적 유도와 안정된 착륙을, 민주노동당이 나서서 그러한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성장하는데, 이러한 보수주의 정당의 '안정적 착륙, 제자리 찾기'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어본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앞으로 보수주의 정당을, 과거 파쇼나 미제국주의 침략사에서 드러났듯이, 좌익들 색출해서 죽이고 공산당 무찌르고 그런 방식으로 인간들을 개패듯이 '사상의 외눈박이: 모두 우파만들기, 친-미주의자 훈육시키기'를 해야하겠는가? 


아직 때이른 소리인가? 그렇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진보정당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서, 즉 한국정치사의 아픔을 진정으로 치유하는 정당으로서 자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가 바로 "보수주의 정당 제자리 찾아주기'이다. 한국의 보수-우익 정당이 왜 미친 개가 되었는가? 왜 광견병 걸려 자기 주인들을 골라 패고 잡아먹고 물어뜯고 고문했는가? 한국이라는 나라, 북쪽-남쪽의 분단체제, 그리고 4강으로 둘러싸였던 조건들 역시 고려해야한다. 


<한나라당이 망한다는 말의 정치적 의미: 그 해석 - 시민사회의 토대를 보라!>


<대중투쟁> 시청앞 100만 군중적 투쟁은 하나의 방법이지, 한나라당을 완전 철거하는 '한 방'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철거는, 한국 사회 시민사회의 완전한 민주주의화, 실질적으로 급진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의 철거는 단순히 5공 잔재 세력 (이미 나이가 들어 기운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 김윤환부터 시작해서...)을 정치적인 밥그릇을 뺏는다고 완수되지 않는다. 

지금 한나라당은, 새로 수혈된 박세일을 비롯한 비례대표 군단 (경제적으로 작은정부 시장만능론자, 선-성장론자)와, 정치적으로 신-보수주의 (원희룡, 김문수, 남경필 등: 제한적 국보법 철폐, 용미론 주장, 점진적 개혁 주창, 엘리뜨주의 강조 )의 정치화를 부르짖고 있다. 

이 후자 노선은 실은 열린우리당과 크게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제 2의 분열사태를 맞게 되는 시점이 바로 거기에 있고, 지역적으로 영남 대 서울지역 의원들 간의 이해관계 상충시, 다른 정당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에 얽매여, 민주노동당의 정치적-경제적 상대 경쟁자를 좁혀서는 곤란하다. 한나라당을 누가 지지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어떻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가에 주목하기 바란다. 


아래 글은 박근혜 들어서기 전에 한나라당의 변화방향에 대해서 쓴 글이다. 


민주노동당의 한나라당의 인식, 한나라당의 공격의 무기에 대한 탐사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 <본질 불변>만을 외쳐서는 싸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SY-44 최루탄 피하는 법과 지랄탄 다연발 최루탄 피하는 법이 달라야, 시위를 잘 하듯이, 적들이나 상대경쟁자들이 들고 나오는 무기,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촘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대규모 데모를 조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 사회의 신-보수주의 탄생과 그 성격.가능성에 대한 고찰: 그 증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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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원시  (2004-02-19 19:35:27, Hit : 65, 추천 : 2) 


제목   

   [한국정치독해]이문열'"이꼴 보려고 들어온것 아닌데···" 


정치분석은 당파성이나 실용적 필요성을 이유로 행해서는 곤란하다. 한나라당이 쪼그라드는 것과 우리사회의 실제적 보수세력 (20대도 이미 보수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의 잠재력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문열 발언의 정치적 함의를 포착하기 바란다. 그래야 민주노동당이 성장할 정치적 계기점들을 찾을 수 있다. 저번에 쓴 글과 아래 최근 이문열 기사를 비교해보기 바란다.



이름      원시  (2004-01-29 08:36:50, Hit : 103, 추천 : 8) 

제목   

   후회하지 않은 삶을 각오한 이문열과 민주노동당 

후회하지 않은 삶을 각오한 작가 이문열 - 민주노동당에게 주는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누가 이문열을 이토록 분노하게 했는가? 


4-15 국회의원 총선, 한나라당 공천 심사를 맡고 있는 소설가 이문열씨가 “한나라당 공천 후보들이 싹수가 노랗다,” “이번 총선에서 100명 당선시키기도 힘들다,” “한나라당이 4년 후에는 자민련의 길을 밟으며 폭삭망할 것이다,”라고 한국 제 1당 한나라당에 대해서 시각적 묘사를 통해서 소설적으로 표현해주었다. “싹수가 노랗다”는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1995년 강남 삼풍 백화점 붕괴를 연상시키는 “폭삭 주저앉다”는 동적 이미지를 구사해서, 현재의 한나라당의 심적 갈등과 내분을 표현해 주었다. 


냉전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산다던, 빨갱이 아버지를 둔 이 천재작가 선생 이문열을 누가 이렇게 분노하게 만들고 있는가? 


우선 공천심사 15일 만에, 이런 이문열의 한국정치에 대해서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비판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천재작가라던 이문열씨는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이후, 온누리당)으로 이어질 이 한국 우익-보수주의 정치적 세력의 본질을, 하필이면 2004년 이 삼동 겨울에 깨달았는가?

 그 자세한 속내는 신문 기사 하나만으로 알 수가 없다. 이문열의 고백에 근거해서 그 이유를 따져 묻자면, 이문열 스스로 말했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게 그 한나라당 비판의 동기같다. 공천 심사관들 사이에 이문열이라는 존재 자체가 걸끄러운 존재로 되었거나, 아니면 이문열 개인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한나라당 내부 갈등의 표출이 이번 이문열 분노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공천심사 총책인 김문수와 이문열과의 신-보수주의 코드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문열씨가 지금 한나라당내 “산업화의 그늘과 냉전논리의 부담”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김용갑과 정형근을 비판한 이유도,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을 목표로 하시는 김문수씨와의 문-문(문수-문열) 코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민주노동당과 이문열의 ‘신-보수주의’ 운동


성급하게 이문열의 발언을 한국내 ‘신-보수주의 우익 운동’이라고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문열의 발언 중에서 ‘산업화의 그늘과 냉전논리의 부담’이라는 표현은, 이제 한나라당 노친네 정치꾼들의 사랑방 타령, ‘반공, 박정희식의 하면된다’는 논리가 6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유권자들에게 들어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민주화운동과 노동/시민운동을 경험한 새로운 세대들에 대한 경계의식이,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한 민주노동당이 실제적으로 사회 유효 득표 세력으로 떠오르자, 그러한 경계의식이 이제 ‘빨간 불’을 직접 켜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보수주의를 표방하려면 보수주의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20세기 세계 정치사의 기본 축이다. 지금 한국에서 진보-보수의 균형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이고, 어처구니없는 불균형/불공정 게임 (특히 언론은 홈관중도 아니고, 거의 코치세력에 가깝다)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진보 세력 자체가 보수주의 세력까지 신경쓰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의 진정한 뿌리 내림은,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당의 안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문열의 한나라당의 비판 “산업화의 그늘과 냉전논리의 부담”의 그 내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런 자체 반성은, 한국의 파쇼적-보수주의에서 ‘보수(保守)’할 게 있는 보수주의, 즉 구-보수주의를 보수(補修) 해서 싹수 있는 보수(保守), 진보를 외치는 민족자주권과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도 따라 배울만한 ‘보수적 가치’ ‘덕’을 생산적으로 배출해줄 수 있는 보수주의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M16, 곤봉, 방패, 군화발로 시위하는 국민들 신체에 상해나 입히고, 지하실에 가두고 고문하는 보수주의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공천 심사 위원 이문열씨의 한나라당 비판은,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과 같은 국민적 진보정당이 국회진출이 가시화됨에 따라, 국가경영의 유효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됨에 따라서, 보수우익당 한나라당의 ‘녹’을 제거하는 ‘신-보수주의’ 운동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근현대사, 1876년 강화도 조약이후 지금까지 벌어졌던 한국근현대사를 고려한다면, 평등과 자주를 외치는 진보세력은, 한국내 보수정치 세력을 10-15%로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거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이승만, 일제 유제에 의존한 박정희,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식의 ‘빨갱이 사냥’이나 정치적 숙청으로, 타 정치 세력을 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문열-김문수 (문-문 신-보수주의 코드)의 사회적 세력들의 출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고,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경쟁자들이 지금의 자중지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없는가 중요한 한국 정치사의 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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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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