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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성노예2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문제점 (1) 일본제국주의자의 전쟁 범죄를 부차시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유하의 책은 현재 아베-박근혜 합의 논란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와싱턴 심포지엄에 박유하가 발표한 글 역시, 전쟁 성노예 근절과 한-일 및 아시아-일본 화해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일본제국주의 군대에서 성노예 및 성노동 착취를 당한 여성들은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10여개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국 대만 필리핀 등을 포함한 모든 해당 국가들과 일본이 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박유하의 ‘와싱턴 심포지움’의 기초가 된 그의 의 주장과 결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축약될 수 있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주의 국가(일본 천왕)나 군부가 공식적으로 매춘부를 군대로 차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혹은 역사적인 고증 자체가 어렵다. (2) 전쟁 성노예 .. 2016. 1. 14.
종이학 천마리, 히로시마 사다코 추모비와 서울 평화비 소녀상 히로시마 사다코 추모비와 서울 평화비 소녀상 종이학 천마리를 접으려다 644마리에 그친 못다한 꿈이 있었다. 1946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미국 원자폭탄 투하 당시,원자폭탄이 떨어진 그라운드제로와 사사키 사다코 (1943년 생, 당시 만 2세)의 집은 1.6km 정도 떨어졌다고 한다. 사다코 어머니 말에 따르면, 원자폭탄 폭발 당시 사다코는 집에 있었는데, 그 폭발로 집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고, 죽은 줄 알았는데, 한참 만에 산 채로 발견되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fABpssKWCoE 1943년 사사키 사다코 양 태어나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공격 이후, 폐허가 되었다. 사다코 양은 당시 2세였고, 원자폭탄은 사다코 집 근처 미사사.. 2016.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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