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22020. 2. 15. 20:06


예전에 한창 운동권이 쇠락하던 시절, 한 때 학생운동만 해도 서울에 6만을 집결시킬 수 있는 조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정점에서 "전대협 의장님" 잔치를 벌이다가 퇴락의 최정점, 조직적 부패의 최고점, 흉내 내기의 말로에 이르렀다. 국제적으로는 시야가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걸 사람들이 학생들이, 속칭 평학생들이 일반학우들께서 다 아시고, 예전 같으면 학생운동을 할 사람들이 학생운동권으로 참여하지 않기 시작했다.


당 조직이 잘못되면, 충분히 당원으로 활동할 사람들이 당원이 되지 않거나, 당 자체나 사람들이 매력적이지 못한 곳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보인다.

 February 18, 2012 

Yongsun Ryu 제가 원시님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중 하나인거 같아요. 

다른 말로해서 좌파 대중정치의 실종... "...충분히 당원으로 활동할 사람이 당원이 되지 않거나, 당 자체나 사람들이 매력적이지 못한 곳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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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9. 12. 10. 20:22

이번에도 최장집 교수의 발표는 모호하고, 비판의 촛점을 잃었다.  DJP 연합은 1998-2002 집권과정에 와해되었는데,연합정치의 성공인양 과대평가했다. 현재 민주당은 중도 리버럴인데,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같은 진보정당과 구별하지도 못한 채 '진보'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최교수의 비판 대상이 누가 누군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문성근의 100만 민란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잘못된 개념 작성이고, 문성근에 대한 과대평가다. 


1987년을 절차적 민주주의 완성으로 봤는데, 1987년 대선에서도 드러났듯이, 프랑스 헌법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는 제6공화국 헌법에서는, 막상 프랑스 헌법의 진수였던 '대통령 결선투표제도'를 누락시켜, 광주 학살 주범 노태우를 당선시켰다. 



최장집의 이분법 '1987년 민주화'와 '87년 이후 민주주의 공고화(consolidation=심화시킨다는 뜻임)', 이런 이분법은 마치 1987년이 절차적 민주주의 완성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착시를 낳는다. 


이런 오류들 이외에도, 최장집은 로버트 달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다른 민주주의 관점들보다 우위에 놓는 맹신을 보여준다. 하지만 로버트 달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장점도 있지만, 그것의 한계도 명료했다.  수퍼 부자나 금융,독점자본가의 전횡을 막지 못했고,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신문 기사들을 근거로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  최장집 교수의 모호한 개념 "진보", 그리고 민주당과 조국에 대한 방향타 잃은 비난. 결과적으로 정의당에도 도움이 안되고, 시민들의 참여민주주의 발전에도 별로 영감을 주지못한다.


안철수와 같은 배를 탔던 최교수 자신의 정치적 결정에 대한 자기 비판서는 없다. 그게 선행되어야 민주당이건 정의당에 대한 비판에 힘이 실릴 것이다. 이것 없이 중앙일보 등에 민주당 586들을 비난하는 글을 실었는데, 비판 촛점이 너무 빗나갔다.


우선 먼저 지적할 것. 언론이나 최장집 교수 등이 먼저 민주당을 '진보'라고 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 물론 당 이름에 '진보'라는 단어는 쓸 수 있다. 캐나다 보수당 이름이 '진보 보수당 PC : progressive conservative'이다. 사실 '진보'는 아무나 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는 크게 3가지 이념적 분류가 가능하다. 자유한국당=보수, 민주당=중도 리버럴 liberal, 정의당 등 진보정당 = 좌측 정당이다.


두번째, 민주당 586이나 문재인 대통령을 '선악 구도'로 정치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자유한국당도, 정의당도 자기 정당 이념에 근거해서 '정치적 선악'을 구분한다. 이런 이데올로기 (정치적 가치관과 관점)가 없다는 정당정치는 불필요하다. 그냥 중세 교회나 조선시대 유교통치를 하면 된다.


세번째, 최장집은 운동권의 분화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1970-80년대 학생운동권은 변절한 김문수는 자유한국당에, 전대협 의장 이인영 그룹은 민주당에, 진보좌파와 급진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학생운동권은 정의당, 노동당,녹색당 등에 포진되어 있다.


최장집의 아래 저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 학생운동권 중에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정치계급 (the ruling class)는 민주당586 그룹이다. 


2) 그 뒤에 나오는 문장은 해석논란이 많고 넌센스 문장이지만, 굳이 해석해보자면, 이성적 이념에 근거한 급진주의 (radicalism) 태도를 가지고, 세금과 같은 소득재분배, 노동소득과 같은 소득분배, 부동산과 같은 자산 재분배를 포함한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이 있다. 이들은 속칭 민주당도 자유한국당도 아닌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당들’이다.


2. 또 다른 최교수 문제점을 보자.


(1) 이번 조국 논란에서 조국 교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최장집의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 책을 독일 칼 슈미트와 유사하다고 한 점은 적절하지 않다.


조국이 ‘진보 대 보수’ 개념틀의 상충을 사용했더라도, 그가 보수의 정치적 숙청이나 법실증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장집은 “다원적 통치체제로서 민주주의”가 마치 “직접 민주주의 =다수 인민 총의”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성이 떨어진다.


(2) 알려졌다시피 최장집은 로버트 달 (Robert Dahl)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신봉한다. 하지만 그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실제 내부를 살펴보면, 미국의 수퍼 파워 엘리트, 부자, 월스트리트 금융자본가가 다원주의를 오히려 파괴하고 ‘정치와 경제’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경향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비판해야 하는데, 이 비판적 기준이 명료하지 않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는 끊임없이 간접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 (총선,대선 등)를 개선해나가는데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최장집은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전체주의’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는 근거가 빈약하다.


스위스는 주민 선거가 가장 많은 국가들 중에 하나다. 선거제도가 ‘간접 대의제’이지만, 직접민주주의 근사치가 되도록, 주민들 의견들을 여러가지 방식들을 만들어서 묻는 것이다.


소환제, 국민과 직접 소통, 시민들이 행정, 입법, 사법 위원회 참여 등 직접 민주주의 요소들을 제도화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자들에게는 필수 과제이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정신은 전체주의와는 인연은 없다.  




관련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23652334?fbclid=IwAR2EwzA5eXMH-iolzam5XIxWVPYvlD5rSi_n799pTfyXD5sTF3-Iq2JKJ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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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02019. 1. 27. 06:02

2010.10.27 01:09


이인영 최고위원은 민주당 탈당하고, 진보신당 입당하라 !

원시 조회 수 1583 댓글 7 ?


이인영 최고위원은 민주당 탈당하고, 진보신당 입당하는 게 진보실천 지름길이다


 


참고: 이인영 "서민 눈물 닦아주는 생활진보가 미래" [한겨레 21. 2010. 10월 1일자]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4069


 


1. 한국 사회 양극화의 진정한 해결책은 진보정당을 키우는 것이고, 그게 더 빠른 길이다. 현재 민주당은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진단하고 주장한 " 국제통화기금 (IMF) 10년 체제가 빚어낸 사회양극화 체제"를 극복할 수 없다. 민주당이라는 오염된 강물에서 “생활진보” 허파달고 숨쉬는 이인영 최고의원은 최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성하면서, 진보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다시 소생했다. 그러나, 다시 오염된 민주당 강물에 들어가서 헤엄치는 순간, 이인영 위원의 “생활진보” 허파는 오작동하거나 썩어들어간다. 그만큼 민주당 강물의 오염 농도는 짙다.


 


차라리 이인영 최고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오염이 덜한 (* 청정 급수는 아님) 진보신당으로 오는 게, IMF 10년 체제로 인한 서민생활 파탄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돈, 자본, 시장으로부터 사람, 노동, 공동체 가치로 이동”을 실천하는 길이다.


 


 이번 민주당은 서민생활을 파탄시키는 기업형 수퍼마켓의 독점 SSM 을 막아내지도 못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262230135&code=990105


 


언제까지 말로만 친-재벌정책 비판하고 서민의 편에 설 것인가? 이 참에 오염된 민주당 강물에서 탈당하기 바란다. 이인영 위원은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진보는 이제 설 땅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기업형 수퍼마켓 독점 방지를 위한 법안조차 제대로 상정하지도 못했다. 재래시장과 영세 상인들의 피눈물은 흐르고 있다.  이런 일들이 어디 한두가지인가?


 


2. 2012년 대선에서, 이인영 위원은 “연합공천이 대통합정당보다 더 힘들다”고 하면서, 진보정당들과 “범 진보 통합당”을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민주당 안에는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는 분파들이 7~8개 존재하고, 현재 민주당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87년 6월항쟁 계승자라고 하는 486 정치인들도 이번 최재석- 이인영 후보 단일화 실패에서도 드러났듯이, 진보, 복지, 민주주의 가치실현을 위해서 소아를 죽이고 대의를 따르는 집단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이런 콩가루 사분오열된 민주당을 이인영 위원은 차라리 탈당하고, 진보정당 활동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진보정치, 노동자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다같이 잘사는 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민주당내 분파들 지형에 대해서는 => 


http://www.newjinbo.org/xe/890977

 

왜 한국정치판에서 진보 단어가 유행인가? 에 대해서는 =>

 http://www.newjinbo.org/xe/890953


3. 현재 민주당은 반전-반핵 평화 세력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위키리크 (http://www.bbc.co.uk/news/world-middle-east-11623828 ) 기록을 보라.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찬성하고 노무현 정부가 미국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찬동한 이 참혹한 결과를 보라. 2004년부터 2009년 사이에  이라크 민간인 10만 900명이 처참하게 죽었다. 이 침략 전쟁의 공범이 되고 이를 승인한 민주당에서 이인영 최고위원은 탈출해야 한다.

 


이인영 최고의원이 말한 대로 이는 “길이 아닌 길”이다. “길이 아닌 길은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버텨왔다”고 했지 않은가? 오염된 똥물 민주당 강물에서 오물치우는 이인영 최고위원을 우리는 보고 싶지 않다.


민주당은 해체되고, 한나라당과 정치적 이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으로 가서 정통보수파가 되고, 지역토호에 안주하는 정치인들은 민주당-자민련 정당을 만들게끔 내버려두라.


 


민주당 해체와 탈당,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동참하는 것만이 이인영 최고위원이  살 길이고, 그나마 아직까지 가지고 있던 개혁정치인의 이미지를 “낡은 정치 질서”에 퇴색되지 않게 하는 마지막 기회이다.  민주당 강화론,  김근태 형의 오류, 오판, 한번으로 족하다.


 


마지막으로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보수 한나라당- 개혁진보당, 2당 체제가 선진국형”이라고 했는데, 대강 미국식 양강 제도를 선진국형이라고 뭉뚱그리지 말아달라. 이는 국제정치와 세계사의 흐름에 무지했던 과거 전대협 간부들 386들/486의 DJ 젊은피 되기 운동의 재판이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오염된 민주당 강물에서 헤엄쳐 나와라 ! 


 Prev 중앙당 정책실과 홍보실/ 당 홈페이지 1면을 이렇게 바꿉시다 [G20] (차기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 IMF총재 칸의 협조공문 지...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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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7'

원시 2010.10.27 01:16

G20 관련, 초국적 자본, 단기 투기 자본, hot money 등 "자본통제" 와 초국적 자본의 주식시장에서 이자와 배당금에 대한 "세금 징수"에 대해서 글을 쓰려다가, 잠시 국내 정치로 돌아왔습니다.


 


진보신당 내부에, <사회복지파>로 알려진 김준성씨가 이인영씨를 지지한다고 하던데요, 하루 속히 민주당에 달려가서 구출해오기 바랍니다.  진보정당을 국참당, 민주당에다 가져다 붙이는 시대착오적인 작태는 그만두기 바랍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차후에)


 


 


<관련 자료>


 


 


민주당 최고위원 이인영 kbs 라디오 인터뷰


 


 


 


라디오


 


 


초대손님 :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 - 패널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재원 영남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에피소드

제 2175회 열린토론

수요스페셜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 편


매주 수요일에 마련하는 본격 정치 토크쇼, <수요스페셜> 시간입니다.

정치인 한 분을 스튜디오에 초대해서

개인의 정치철학과 소신, 소속 정당의 정책과 정체성, 

그리고 각종 정치현안을 다각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인데요.

오늘 초대 손님은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입니다.


지난 10월 3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빅3에 이어 4위를 기록하며 

486 돌풍을 일으킨 주역입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초대의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재야운동과 시민사회운동에 몸담았다 1999년 정치권에 합류, 

2004년 17대 총선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이인영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기간 중 '민주당의 미래가 되겠다'는 선언으로

젊은 바람을 일으키며 지도부 진입에 성공했는데요.


진보. 민주 진영의 통합과 생활의 진보를 표방하고, 

당 내 계파갈등을 타파할 보안관 역할을 자처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로 앞으로의 활약이 주목되는 정치인데요.


오늘 수요스페셜 시간에는 이인영 최고위원을 모시고

진보진영의 미래와 민주당의 진로, 당면과제 등을 비롯해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각종 현안에 관해 다각적인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 이인영 최고위원과의 인터뷰 전문 보기

http://www.kbs.co.kr/radio/1radio/kbsopen/interview/index.html

 


 댓글

원용기 2010.10.27 02:56

이인영 이넘 넌 진보신당 입당하지마!!!!!!


무명용사의 헌신을 가지고 넌 구케우원 됐으므로~~~~~~~


니가 뭘아니? 사회주의의 희망을???????


 


오지마!!!!!


아울러 니 선배 우상호도 오면 안된다고 확실히 이야기 해라~~~~~~


 댓글

원시 2010.10.27 11:07

^^ :)  곧 수습이 될 거예요~

 댓글

원용기 2010.10.27 09:29

아~~~~이론....ㅠㅠ


술한잔하고 실수했어요...


수습이 어려운 이상황....ㅠㅠ


죄송합니당...


 댓글

원시 2010.10.27 03:15

원용기님/ 이인영씨를 잘 아시는가 봅니다 ?


 


무명용사의 헌신을 국회의원 배지와 맞바꿨다면,


읔 괴테 파우스트가 "정신"을 멤피스토펠레스에게 판 것이랑 똑같네요.


 


그럼 어쩌죠? ㅎㅎ 근데 반성했으면, 실천을 해야 하는데, 오염된 강물에서 놀아서 그런지, ..., 머리는 반성한다고 하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모양인데요?


 


우상호씨는 신촌 건달아닌가요? 여튼 요새 자꾸 뭘 반성한다 반성한다고 하길래, 오라고 한 것인데요? 안되요? 원용기님? ㅎ 정녕 안될까요?  


 댓글

미봉 2010.10.28 22:22

신촌건달....참 사람들 말하는 수준하고는....진보라는 허울로..멀하고 있는줄 아는건가


 댓글

원시 2010.10.29 01:43

미봉/ 신촌 건달 => 이게 신촌 조폭이랄지, 신촌 깡패라는 의미는 아니지 않습니까? 위 원용기 당원이 술 한잔 하고 농담처럼 쓴 글에 대해서 답변한 것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진보 허울 어쩌고는 오바라고 봅니다.


 


위 내용에 대해서 이견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그럼 답변 드리겠습니다.


 


한번 미봉/당원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꼭 답변부탁드립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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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22018. 12. 22. 01:06


Nakjung Kim


December 21, 2012 at 3:29 AM · 


잘못된 이론이 잘못된 실천을 낳는다.



좁쌀 리버럴리스트 (민주당) 한국을 책임질 수 없다. 미국 수도Washington D.C에는 160개가 넘는 정치연구소 think tank 가 미국의 세계지배와 패권유지를 위해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 고객들(정치인과 정당들)을 대상으로 비지니스를 한다. 


언젠가부터 서울 여의도를 중심으로 '여론조사 기관' 비지니스가 성행하고, 정치평론가들이 나선다.


 이들은 서울 여의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시아도, 심지어 북한도연구하지 않고 일본, 중국, 러시아 이웃나라에 대해서 무지하다. 오로지 총선 대선 여론조사, '당락' 깨엿 붙이기이다. 여론조사기관인지 구복신앙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여론조사도 미국대학에서 '기능주의'나 '행태주의'에 근거한 조사방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 허다하다. 노동자들 피터지게 싸우고 철탑 위에도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 불평등한 체제와 싸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미국식 기능주의적 행태주의 방법론에 의존하는 여론조사식 정치를 하면서, 가끔 틈나면 희망버스 자선냄비 사진이나 찍고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그 성과는 진보로 오지 않는다.


역사의 아니러니다. '학우여 파쇼 도당이 몰려들고 있다' 외치다가, 또 가끔 "반전반핵 양키고홈" 하다가, 이제 20년, 30년 지나서, 여의도에서 여론조사 비지니스 정치를 '양키보다 더 양키적으로' 다만 해외에 대한 고민은 없이, 여의도 섬에서만 섬에서만 엄청난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20년 30년 전에도 '소련제 중국제 동독제 교과서'를 과학이라고 하더니,아직도 '과학'의 맹신에 빠져서.


요세프 스탈린이 마르크스를 '국정 교과서'로 만들어서 소련 사람들에게 보급한 팜플렛이다. 마르크스를 단순화시키는 오류 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해버렸다. 마르크스가 다룬 주제들을 더 깊게 다양한 각도로 다룰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한국에서 "세계철학사"라는 제목으로, 녹두 출판사인가? 번역되었던 책. 모리스 콘포쓰의 책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번역했다)




1980년대 후반에 한국에 번역된 아파나세프 "Dialectical Materialism"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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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4. 8. 9. 15:43

한홍구 강연이 놓치고 있는 역사적 사실


1. 민주당 투쟁근육을 좀 먹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투쟁하는 야당의 성공담을 흑백 다큐멘타리로 틀어주었으나, 민주당(새정련)이 그 투쟁하는 야당 근육을 만들어낼 지는 의문이다. 8월 5일 강연회 직후,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을 서둘러서 새누리당에 헌납한 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한홍구 <어제의 야당>은 민주당(새정련)과 민주당 의원들이 왜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투쟁근육을 다 잃어버렸는지 그 원인들을 ‘역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민주당 대다수 의원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동일하게 누린 사실들을 빠뜨리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독재에 저항하는 야당 투쟁근육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어떤 정치적 측면과 저항해야 하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박정희-전두환과 동일한 군사파쇼 정부가 아니지 않는가?


특히 한국정치사 경제사에서 1997년, 전세계적으로 가장 혹독한 IMF 긴축 정책을 수용했던 김대중 정부 이후, 2014년 지금까지 소위 민주당 야당의원들은 과거 신민당-평민당과 달리, 한나라당-새누리당 의원들이 누린, 다시 말해서 박정희-전두환 시절보다 더 혹독해진 한국 자본주의 성과를 그들의 정치 경쟁자 새누리당과 같이 향유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 하에서 상층 20%가 소유한 재산보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면서 상층 20%가 소유한 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배,5배까지 증가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하층, 중산층은 붕괴되거나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OECD 각종 소득 통계나 세금 이후 가처분소득 통계를 봐도 상위층과 하위층의 격차는 박정희-전두환 독재 치하보다 5배~7배 이상 벌어졌다. 심지어 2014년 통계를 보면, 한국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전체 국민 소득 구간를 5개로 나눴을 때, 최상 20%가 최하 20%의 소득 격차가 2.5배 이상 발생해서는 안된다. 진보좌파야 소득격차를 1에 가깝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최소한 민주당과 같은 리버럴 정당 (liberalist ) 에서는 2~3배 사이로 막아야 한다.


민주당의 투쟁 근육이 좀먹거나, 그 근육이 주근깨, 혹, 반점, 지방덩어리로 변질된 이유는,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와 싸웠던 그 치열한 투쟁정신만큼, 1997년 이후 한국 사람들을 병들게 만든, 노동의욕을 감퇴시키고, 살 맛 떨어지게 만들었던, 이 소득 격차, 일해도 가난해지고 상대적 박탈감만 생기는, 한국 자본주의 병폐와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자본주의 병폐와는 좌파만 투쟁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리버럴리스트 정당들도 어느 정도 (타협적으로 하더라도) 실제 사회복지 정책들을 도입한다.


한홍구 <어제의 야당> 강연이 시사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왜 민주당 의원들이 97년 이후 새누리당 (한나라당) 의원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가? 과거 386-486 학생회장 민주당표 국회의원들이 실제로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의원들과 일상 생활에서 향유하는 경제적 성과물, 다시말해서 절대적 상대적으로 박탈당한 노동소득의 격차 그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어제의 강연>이 말했어야 했다.


인간은 당연히 경제적 동물만은 아니다. 월급 총량이 정치적 의식을 100% 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배가 부르는데 배고픈 자의 심정을 알기 역시 쉽지 않다. 박정희-전두환 고문정치, 최루탄 정치, 중앙정보부-안기부 정보정치, 반공-반북 사상 이데올로기 정치에 맞서는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어려운 정치가 바로, 자본주의의 소득 격차 문제이고, 그것을 가능한 법률적 사회적 교육 문화 제도 장치이다. 





한홍구 교수 강연 내용 요약: by 원시


제목: 어제의 야당

글쓴이: 한홍구(성공회대학교)

발표 시간 및 장소: 2014년 8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주제: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가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211559


1. 핵심 주장:

헐거워진 허벅지 투쟁근육을 튼실하게 하라. 투쟁하는 야당 (투야)가 되어라.


2. 한홍구의 진보정당 인식: 2004년 총선과 노무현 탄핵 국면에서 야당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을 제 1당으로 만들어주고 그에 덤으로 민주노동당에 10석을 준 것이다.


3. 투쟁하는 야당 강연 역사적 논거:


1971년 8대 선거에서 신민당 의석수를 그 이전 40석에서 89석으로 늘려줌 (투쟁 대상은 박정희 영구집권 획책인 유신헌법 반대)

1985년 신민당 제 1야당 전격 진격 (사쿠라 야당인 민한당을 대체할 반-전두환 독재 투쟁 야당 신민당 승리)

1992년 총선에서 공룡보수-민자당 (김영삼+노태우+김종필) 221석을 149석으로 만들고,

김대중 평민당과 꼬마민주당에 97석을 주었다.

그 이후 총선과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로 투쟁하는 야당을 유권자들이 지지했다.


4.대안

정치 주체 386-486들이 각성하라. 비육지탄(髀肉之嘆)

30년간 학생회장이지 정치적 ‘성인’이 되지 못했고, 애늙이로 전락했다.

광주 정신과 DJ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고, 호남 정치를 복원하라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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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의 혹은 주체사상: 김정진 박은지 논쟁점과 논의 방향 (2)


(1)은 김정진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2)는 박은지의 문제의식과 해명에 대해서 쓴다. 박은지의 해명을 보면 간단하다. 질의자들이 이렇게 물은 것같다. 김일성주의가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어서, 좀 배우고 이정희 통진당 대표처럼 서울대도 나오고 인문계 여자 수석도 하고 변호사도 하는 사람이 주체사상파인가? 박은지부대표가 질의자에 앞서서 “주체사상의 매력에 대해서” 주장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이런 대화 맥락과 박은지의 해명에 대해서는 굳이 다시 의문을 제기하거나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진 전 부대표가 이러한 ‘대화 맥락’에 대해서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


1. 당 간부들 내려버지다. 정당은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글쓴이는 박은지 인터뷰의 문제점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한다. 당대표나 대표단,그리고 당 주요간부들의 정치활동을 내용적으로 ‘도우미’역할을 할 수 있는 당내 ‘연구소’나 ‘정치토론 그룹’ 혹은 정치조직(정파)의 부재가 더 큰 문제의 원인이다.


얼마전 장석준 부대표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김정은이 망해야 한반도가 산다! >는 글의 전반적 내용은 노동당이나 한국진보정당이나 좌파정당의 대북정책이나 평화정책으로 수용되기 힘든 내용의 글이다. 박은지 부대표의 경우도 썰타임 출연이나 발언 내용 역시 당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당 정책의 대중화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고 본다.


당 간부들의 정치적인 활동은 장려되어야 하고 당원들은 적극적으로 같이 협조해야하겠지만, 현재 그리고 지난 2년간 노동당의 당 간부들은 ‘당의 코디네이터’ 없이 그냥 개별적으로 혼자 메이크업하고 혼자 알아서 옷입고 혼자 스케쥴 잡고 언론에 기고하거나 출연하거나 했다. 

진보신당-노동당은 과거 노회찬 심상정 전대표의 당과 독립적인 언론플레이의 문제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거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고민과 대안] 당 안에는 4-5개 다른 세대들이 공존하고 있다. 내 관심사는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속칭 386세대 (*80년대 광주항쟁 세대의 정신은 이제 많이 퇴색되었지만)들을 흉내내지 않고, 70년대,80년대,90년대 리버럴리스트 정부의 출발점인 김영삼 정부 이후는, 그 이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부와는 차이가 난다. 그리고 또 그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15년은 그 내부에서 분화가 또 발생한다. 이러한 정치적 경험의 차이를 고려해서, 좌파 정치가를 어떻게 집단적으로 부각시킬 것인가? 이다.


2. 박은지의 인터뷰와 그 내용에서 향후 토론주제로 뽑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통합진보당, 혹은 NL 로 불리는 운동권들이 한국 진보진영에서 영향력을 어떻게 왜 행사해왔는가? 의미와 한계는 무엇인가? 이런 주제일 것이다.


먼저 하나 바로 잡고자 한다. 통합진보당 ‘내란 사건’ ‘종북몰이’ 사건이후, 김종철 전 부대표와 박은지 부대표가 모 종편방송에서 출연했다. 박은지부대표가 NL의 약자를 National Liberty (민족/국민 자유)라고 했는데, NL은 NLPDR의 약자로 (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민족해방 민중민주혁명)의 준말이다.


언론에서도 그리고 많은 운동권들이 잘못 알고 있는 PD 역시, NLPDR이다. 신신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PD중의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NL,PD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패러다임들도 있고, 이 둘의 차이점만 부각되었지만, 공통적인 이론적 실천적인 약점들과 한계가 존재한다.


NL이나 PD 문건이나 그 이론은 완성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두 패러다임은 ‘사회주의로 이행과정’, 그리고 비-자본주의로의 발전 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것인데, 89년~91년 사이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급속하게 대중적 파급력을 잃게 된다. 80년대말, 90년대 초에도 이미 NL, PD론 (둘다 NLPDR -> socialism 사회주의로 이행)의 한계는 지적되었다. 이게 2004년 민주노동당 10석 이후 다시 대중에게 소개된 것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과거 사회구성체 논쟁이 언론에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혹은 북한 정치변혁 경험들을 근거로 만들어진 NL,PD론은 구체적인 정치,사회,경제적인 예증이 부족한 채, 그 사회구성체 논쟁이 시들어졌다. 주사파 NL은 식민지 반봉건론, PD는 라틴아메리카-소련 내부 논쟁들을 바탕으로 ‘종속 강화’ ‘독점 심화’라는 테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두 패러다임은 한국 자본주의, 한국 지배 계급 등의 구체적인 변화과정을 설명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두 패러다임의 한계,그리고 사회과학 방법론으로서도 천박한 이론적 토대에도 불구하고, ‘종속’문제와 그 변화,한국 자본주의의 자본축적 구조 등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종속' 개념으로 삼성 자본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초국적 자본비율의 문제나 지배권 등을 설명할 수 있는가? 등 


(NL)PDR 은 사회주의로 이행 (transition)이라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학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정치적 주체 문제를 조악하게 조야하게 “계급,계층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NL, PD 두 패러다임 공통적으로 한국자본주의의 ‘분화 differentiation'에 대해서는 설명해내지 못했다. 사회과학적 설명 용어와 방법론으로서 부적합하거나, 패러다임의 하드 코어에 문제가 생겼다.


이 이야기는, 80년대 말 90년대 초 이야기이다.


그 당시도 그 이후에도, 한국 자본주의 분화와 정치-경제의 관계, 한국 노동자 계급의 의식의 발전과 분화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보고서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NL이건 PD건 정치세력을 앞세워, 이론과 실천적 조사를 바탕으로 자기 패러다임을 혁신해야 하는데, 정치 세력들이 그 ‘이론적 작업’과 ‘실제 연구 조사’를 대신했다. 신념으로 버틴 점은 존경해야 하나, 현실 정치에서 무딘 창으로 버티는 것은 백전백패를 자초한다.


3. 주제를 조금 바꿔서, 그렇다면 왜 NLPDR 혹은 NL 그룹이 한국 운동권의 다수가 되었는가?


이것은 수많은 설명들이 있을 수 있어서, 학생운동사 맥락에서 한 가지만 짚고 다음 기회에 논의하기로 하겠다. 아직까지 한국 학생운동에 대해서 제대로 된 연구는 많지 않다. 부끄러운 현실이고 한국 학계 자체가 ‘사회과학’ 학파가 없다는 게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는 예를들어 광주 518, 87년 6월항쟁, 7-8월 노동자 대투쟁, 노무현 현상 연구, 민주노동당의 성공과 실패 등에 대해서 박사학위를 써서 교수가 된다. 한국에 이러한 연구가 없다는 게 아니다.


87년 충남대에서 결성된 ‘전대협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의 영향과 전국 대학으로 NL 그룹의 확장이 그 다수파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들 중에 하나다. 그리고 87년 대선 이후, 노태우 정권 하에서 학생운동은 ‘제도화’의 길을 가고, 소위 말해서 ‘학생회의 대중화’, 이것은 전두환 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을 초래한다. 학생운동권의 제도적 권력 (institutional power)가 학생사회에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 대학생 운동을 한 사람들과 한번 대화를 해보라, 그들은 학번 차이를 대면서, ‘내 때는 더 엄혹했다’고 하거나, 전두환 시절에 투쟁했던 세대와 노태우 정권 하에서 투쟁했던 세대들 사이에 경험 차이 등등...


(전대협의 결성은 학생사회에서 제도적 권력이 형성된 계기를 마련해줬다. 반파쇼 정치 투쟁의 운동가들이 학생회라는 제도적 기구들을 운영해 나가는 정치적 출발점이었다) 



전 세계 정당사, 사회주의운동사, 식민지에서 해방운동사, 인종차별 운동 등, 정치적 행위는 ‘가장 사회과학적으로 정교하고 올바른’ 그런 노선이 반드시 주류를 형성하는 게 아니다.


돌이켜보라 ! 박종철의 죽음, 이한열의 죽음, 그들의 나이가 만으로 치면 20세,21세가 아니었던가? 지금 우리 당원들 중에는 아들 딸 중에, 조카들 중에, 동생들 중에 이 나이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한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거리던 시절이 1980년대 전두환 정권 하에 일이다. 학생운동권에서 ‘이론의 정교함’ 보다는, 실제 ‘행동과 반-파쇼 집단 학살집단에 대한 직접적인 물리적인 투쟁’ 자체가 사회과학이었다.


학생운동은 1988년 노태우 정권이 수립된 이후에도, 합법적으로 당선이 된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치적 ‘정당성’과 ‘윤리성’의 우위를 여전히 주장하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합법성 legality'의 획득과 ’정당성 legitimacy'사이의 충돌이었다. NL이건 PD건 ND건 이 합법성 측면보다는 후자, 노태우 역시 광주학살의 원흉이자 파쇼의 연장으로 파악하고 그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6공화국 하에서 학생운동은 전두환 파쇼와 비교해서, 학교에서 자유 선거를 통한 ‘학생회’라는 ‘제도적 권력’을 가지고 되었는데, 왜 NL 그룹이 가장 ‘다수’가 되었는가? 앞으로도 더 연구해야 할 지점이 이 두 가지 상관관계이다.


민족주의적 경향 (일제의 잔재청산, 미국 제국주의의 발견 : 88년 올림픽에서 관중들이 소련을 응원하고 미국 성조기에 야유보내는 반-미국 정서 anti-American sentiment), 소위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품성론, 항일 유격대식 대중노선 등은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하나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NL, PD를 ‘사회주의적 지향과 정향 orientation' 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6공화국 노태우 정부 시절에, 이 학생집단의 제도적 권력이 누린 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치 실천, 다시 말해서, 전두환 폭압에 누리지 못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였다. 실제 그 운동 주체들이 사회주의적 지향 (NLPDR은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사노맹으로 표현된 ND 역시 2단계 혁명론이지만, 사회주의 이행론이다) 을 했고, 또 학생운동 뿐만 아니라, 학생사회 외부와 연계를 맺었기 했지만, 학생사회 내부 정치에서 ‘제도적 권력’ 사용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였다.


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지지세력의 주축이 되거나, 실제 정치가되어서도, 이러한 학생사회의 ‘제도적 권력’의 경험을 그대로 실천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대중적 동원능력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사회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 내용의 빈곤’을 ‘제도적 권력’으로 대신한다.


그렇다면 6공화국 노태우 정부 하에서 전대협을 비롯한 nl 다수파 (주사파를 포함), pD, ND등은 위에서 말한 노태우 정부와 전두환 정부의 ‘통치’차이를 인식하고 ‘합법성’과‘정당성’ 사이의 긴장을 꿰둟어내는 정치 전략을 만들었는가?


89년 몰타 회담 (고르바초프와 조지 부시의 회담)으로 인해 얄타체제 (냉전 체제)의 해체부터 91년 사이에 벌어진 국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등이 미치는 정치적 영향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거나 설명하거나 이에 맞는 정치적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냈는가?


91년 강경대 타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민민운 (민족민주운동이라고 약칭)의 위기론이 한창 논의되고, 사회주의 대 사민주의 논쟁이 발생하던 시점에, 이에 대한 답변을 했는가?


사실 그 당시 우리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질문들과 과제들은 당시 학생운동가들의 지적 실천적 범위를 뛰어넘는 문제였고, 당시 한국 지식계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이 문제들을 정치적 담론으로 여론화 대중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 박은지 부대표가 말한 주체사상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그 힘을 긍정하는 사상”에 대해서

- 소련식 교과서는 마르크스에 대한 왜곡이었다.

- 소련식 교과서를 극복했다는 주체사상은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굳이 주체사상만이 아니라, ‘창조 Creativity' 를 강조하는 사람들, 박정희의 교육헌장과 ’하면 된다‘는 정신, 혹은 안철수식 ’창조적 혁신‘, 박근혜의 ’창조 경제‘ 모두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그 힘을 긍정하는 사상‘이라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같다.


물론 북한의 주체사상은 “계급과 민족” 패러다임인데, 왜 주체사상을 박정희, 안철수, 박근혜와 동급으로 놓느냐고 항변할 것 같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근거 자체가 오류다. 주체사상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의식의 관계 ( matter-consciousness relations)로 설정했다. 그런데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물질’과 ‘의식’관계에서, ‘물질이 의식보다 선차적이고 우위를 갖는다. 이러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물질의 의식에 대한 선차성 (priority)은 인간의주체성, ‘인간의 주체적 파워, 힘과 능력’의 중요성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럴싸하다. 몇 년전에, 미국 최장집-박상훈 등을 따르는 연구자들이 정치의 선차성 (the primacy of politics: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를 쓴 미국 비교정치학 교수 쉐리 버먼(Sheri Berman) 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좌파 운동권들이 ‘정치’를 모른다고 야단쳤을 때, 그 ‘선차성’ 개념과 위 선차성 개념은 동일한 말이다.


주체사상을 서술했다는 황장엽의 이론적 깊이의 한계이기도 하고, 정보 수집의 한계이기도 하다.


사실 주체사상이 말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교과서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만들어낸 검인정 교과서로서, 그 기원은 부하린의 공산주의의 ABC, 그 이후 스탈린의 역사적 유물론 테제 등에 있다. 이는 나중에 설명하겠음)에서 말하는 ‘물질’과 ‘의식’ 관계가 철학의 근본문제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주체사상이 ‘물질-의식’ 대립항이 아니라, ‘세계-인간’으로 근본문제를 전환시켜,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주체성 (subjectivity)를 해결했다고 하는 것은, 이중의 오류이다. 첫 번째는 소련 사회과학 검인정 교과서 (공산당 명령을 따르는 연구소)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 ‘물질’ -‘의식’이 철학의 근본문제라고 못박아놓고,


두 번째는, ‘물질’ -‘의식’ 대립항이 풀지 못한 퍼즐과 난관 수수께기를 ‘세계-인간’ 대립항이 풀었다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자화자찬격이다. 세계에 대해서 인간의 주체성 즉, 의식성, 창조성,자주성을 더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체사상 답변이 잘못된 문제설정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답 (물론 오답이지만)은 될 수 있겠지만,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답변이 되기에는 불충분하다. 철학적 체계로 인정할 수 있지만, 수많은 증명부담들을 안고 있다. 철학에서 다루는 수백가지 테마들을 이 인간-세계 대립항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자본주의의 변화와 역동성, 그 축적 구조를 어떻게 설명가능하단 말인가? 자기들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와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중요한 사회과학적 주제들을 인간-세계 대립항으로 진단도, 해결도 할 수 없다. 




(1940 년 조제프 스탈린이 서술했다는 :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 교과서: 마르크스에 대한 선택적 이해와 왜곡의 공식적 출발점이 된 책이다. 1980년대 한국에 소개된 마르크스 입문서, 철학개론은 대부분 이 스탈린의 기본골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DIA-MAT의 효시이자, 마르크스 사상의 박제화 왜곡의 공식화 선언이었다)


이 주체성 (subjectivity) 문제는 제 2 인터내셔널 이후, 마르크스에 대한 혹은 사회주의자 내부에서 논쟁된 ‘경제 결정론 economic determinism'에 대한 문제제기로, 당시 중요한 주제였다. 


그런데 80년대말, 90년대 초, 한국에 소개되고 번역된 마르크스 입문서, 넓게 봐서 사회주의체제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 교과서들은, 대부분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나 동독, 중국, 주사파 NL의 경우는 평양에서 출간된 교과서들이었다. 이건 NL이건, PD건, ND건, 과학적 사회주의자건 다 마찬가지로 안고 있었던 한계였다.


학생운동권, 노동운동가들의 헌신적인 정치적 실천, 분신까지 포함한 그 숭고한 정치적 투쟁들과, 이론 사이에는, 이러한 엄청난 문화적 지적 간극이 있었다. 그것은 2014년 1월 현재 평가가 아니라, 25년 전 이야기이다.


25년, 아니 길게 잡아 30여년이 흘렀다. 한 세대가 바뀌었다. 한국 전쟁이 미친 지식인 사회, 이론가 사회, 좌파 정치권 사회, 학생운동가, 시민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진보정당, 좌파정당...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이다.


자기들 스스로 학파를 만들어서, 지식노동이건 육체노동이건 그 무슨 노동이건간에, 학파를 형성해서, 코리아라는 한국 현실 (social reality)을 사회,사람,사회구조,의식 등을 설명하고 연구하는 사회인식론(social epistemology)를 갖추기도 전에, 90년대 긴 암흑기가 있었고,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97년 IMF 긴축통치로 한국은 운없게도 세계에서 최단시간에 가장 살벌한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체제를, 80년대 민주화 세력 (김대중정당과 80년대 학생운동권 주류파)이 그 악날한 반-민중적 반-노동자적 어메리칸 스탠다드 자본주의를 실천해버렸다.


사람들은 자기 정치적 정당성 때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 정치적 방법론, 조직론, 이론적 정당화 등에 대해서 게을리 한다. 왜냐하면 현실정치는 늘 나보다 우리보다 더 나쁜 세력이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늘 음모를 꾸미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때문이다.


정치는 늘 실천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구는 9회로 끝나지만, 정치세계는 쉼없는 연장전이다. 9회 이후에 ‘이론’으로 야구하나? 정신력으로 버틴다. 제한된 숫자 선수들로 버티는 것이다. 그것이 늘 정치적 현실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현실에서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현실을 설명할 인식론을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돌직구 하나로 승부하는 투수보다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장착하고 돌직구를 가진 투수가 실제 경기에서 이기니까.


(1922년 경, 부하린 Buhkarin 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소련 대중들을 위해 서술한 공산주의의 abc : 마르크스 엥겔스 책들이 노동자 해방의 성전으로 격상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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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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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학교 평가의 논

    2014.04.15 01:50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냥 NL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건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라는 학생회중심의 학생운동을 했다는점으로보고 PD는 직업적 혁명가의 길을 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학생회중심의 운동이 다수를 차지하기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편협하게나마 듭니다만.. 뭐 주사파 논쟁은 논외로 하는것이 맞을것 같고.. 하다보면.. 한국운동권에 주사파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되어지니까요..

    그냥 지나가다 코맨트 남깁니다.

    2018.02.14 14:4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