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광주 송정역에서 시민들에게 물세례를 받았다는 언론보도를 보며,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선 후보가 광주에서 연설하면서 계란 돌멩이 맞으면서 "폭력은 안됩니다. 우리 모두 애국가를 부릅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노래방처럼 불렀던 장면이 떠올랐다.


공안검사 황교안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투쟁전술은 너무 빤히 보이는 것이다. 한국정치사 속에서 나온 수구우익,군사파쇼들의 전술 흉내와 복사판들이다. 지금 우익 데모의 언어들,행태들도 마찬가지이다. 


- 그렇다고 해서 호남 시민들에게 '황교안 나경원 무관심, 침묵시위'를 하라고 요청하는 건 아니지만, 황-라 유사 테러작전과 희생양 코스프레 작전에는 대비를 해야 한다. 


- 보수 언론들과 우익들의 노골적인 지역대립 전투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 왜 나경원과 황교안은 이승만 독재정권시절 '이정재 임화수' 깡패정치 스타일을 흉내내고 있는가?

당분한 자유한국당은 아류 태극기부대식 선동정치를 할 것이고, 대구 지지율 상승에 고무되어, 서울 경기는 당분간 부차시할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런 정치 국면을 조장하고 도와준 것은 누구인가? 정치개혁 선거제도개혁할 '절호의 시간', 지난 2년을 다 까먹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과연 자유한국당의 이승만 정치회귀만 비웃으면 될 일인가?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http://bit.ly/2GYvNN9 )










Posted by NJ원시

댓글을 달아 주세요

Nakjung Kim


March 16 ·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 시민이 판사 출신 나경원 의원에게 헌법을 강의해야 하는 '웃도 울도 못할 일(1954년 12월자 경향신문 사설 제목)'


자유한국당 정치 스타일- 이승만 시절 '난투극' 정치가 되돌아 온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새구호 "#위헌,위헌,위헌" 그 위헌의 유래. 이승만 사사오입, 사람 엉덩이를 잘라내 반올림해버리다. 기가 막힌 수학자들.


양승태의 정신적 지주는 위헌을 직접 행동과 테러로 몸소 보여준 이승만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1954년, 박정희는 1969년과 1972년 위헌을 자행했다. 나경원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어떻게 위헌을 교묘하게 했는가를 더 배워야 한다.


- 최근 온라인은 이미 백색테러 수준이고, 광장에서 거의 365일 열리는 극우집회는 이승만 독재시절 테러단체들을 연상케한다. 이정재 임화수 정치 깡패들을 '중소 기업' 수준으로 키운 게 이승만-이기붕이다.



- 다시 보는 1954년 이승만 식 위헌. 


이승만은 1954년 11월 27일에 48년 제헌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종신대통령을 획책했다. 원래 제헌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의원 정족수의 3분의 2였다. 당시 203명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 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에서 찬성 135표, 기권 7표, 반대 60표가 나왔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명에 1표가 부족해서,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당시 자유당 최순주 국회부의장도 '부결' 판결을 내리고 국회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이기붕 (자유당) 국회의장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33 에서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이 되지 않는 '의미없는' 숫자라는 수학 논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헌안'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고 우긴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안이다.


11월 29일 국회를 다시 소집한 자유당은 최순주 부의장이 27일은 표 계산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135명이 '개헌안'에 필요한 숫자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은 자유당 당원이자 자기 사설비서였던 정치깡패 이정재 등을 국회 안에 배치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야당의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사진 - 1954년 11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 이철승 의원이 국회의장 최순주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회서 난투극 !"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 부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1면과 사설 "개헌안 부결" "아슬아슬한 1표 차이"






 경향신문 1954년 12월 1자 사설 (웃도 울도 못할 일) 에서는, 자유당이 정치깡패 이정재를 국회에 투입시켰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폭력단이 의장내부에 출현횡행하였다 하는 것은 세계의정사에서도 미증유의 사태일 일뿐 아니라, 아무리 후진적인 이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Posted by NJ원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철수가 말한  '국민의당'의 최고인재들은 누구인가? 그 중에 한 명은 한상진 전 교수다. 11일 이승만 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고 굳게 세우신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1대~3대)을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11월 27일에 제헌헌법 (1948년 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을 하고자 했다. 원래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정족수의 3분의 2였다. 당시 203명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 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에서 찬성 135표, 기권 7표, 반대 60표가 나왔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명에 1표가 부족해서,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당시 자유당 최순주 국회부의장도 '부결' 판결을 내리고 국회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이기붕 (자유당) 국회의장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33 에서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이 되지 않는 '의미없는' 숫자라는 수학 논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헌안'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고 우긴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안이다.


11월 29일 국회를 다시 소집한 자유당은 최순주 부의장이 27일은 표 계산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135명이 '개헌안'에 필요한 숫자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은 자유당 당원이자 자기 사설비서였던 정치깡패 이정재 등을 국회 안에 배치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야당의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 통과는 세계 현대 정치사의 10대 부정 부패 사건에 해당할만큼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안철수와 한상진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한 이승만을 반대로 칭찬할 수 있단 말인가?  


한상진 전 사회학과 교수가 54년 세계정치사의 치욕적인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모를리는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곡학아세(曲學阿世)일 뿐인가? 






당시 신문 기사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 부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1면과 사설

"개헌안 부결" "아슬아슬한 1표 차이"



동아일보 사설 


"(부결 시킴으로써) 우리 조국의 민주정치의 위기가 수습되었다" 





11월 29일, 다시 열린 국회. 자유당은 정치 깡패들, 이정재 (이기붕 의장 개인 비서 겸 자유당 당원)를 국회 안으로 배치시키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야당 의원들이 다 퇴장해버리자, 국회의장 이기붕이 개헌 통과 봉을 두들겼다. 






11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  이철승 의원이 국회의장 최순주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회서 난투극 !"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경향신문 12월 1자 사설에서는, 자유당이 정치깡패 이정재를 국회에 투입시켰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폭력단이 의장내부에 출현횡행하였다 하는 것은 세계의정사에서도 미증유의 사태일 일뿐 아니라, 아무리 후진적인 이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동아일보 11월 30일자 논평:

"어느 편으로 결정되어야 할 지 의문시될 때에는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라

indubio prostatus quo "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인데, 자유당식 셈법으로 사사오입해서 0.3333를 버리고, 135명이 '개헌' 가능선이 된다는 주장이다. 



12월 7일자 동아일보 "단상단하" 코너.

유진산이 폭력배 이정재를 국회로 끌어들인 자유당 이기붕의장을 비판했다. '무뢰한'이라는 표현이 있다. 





(419 혁명 이후, 이정재는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1961년 6월 석방된다. 그리고 1961년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10월에 사형당했으나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적 사형이었다. ) 



조폭 동원 정치

1957년 5월 25일 서울 장충단 민주당 연설회 :


조폭들과 이정재 



SAMSUNG | SM-G386W | Normal program | Center-weighted average | 1/40sec | F/2.6 | 3.3mm | ISO-100 | Flash did not fire | 2016:01:20 17:19:55


.

1957년 5월 25일  조병옥 (민주당) 연설 방해, 앰프에 불을 지르다.


SAMSUNG | SM-G386W | Normal program | Center-weighted average | 1/40sec | F/2.6 | 3.3mm | ISO-100 | Flash did not fire | 2016:01:20 17:19:55



SAMSUNG | SM-G386W | Normal program | Center-weighted average | 1/40sec | F/2.6 | 3.3mm | ISO-100 | Flash did not fire | 2016:01:20 17:19:55



장충단 공원 연설, 조병옥 


SAMSUNG | SM-G386W | Normal program | Center-weighted average | 1/40sec | F/2.6 | 3.3mm | ISO-100 | Flash did not fire | 2016:01:20 17:19:55


Posted by NJ원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제 선친은 미국에 유학 가서 이승만의 분탕질을 직접 경험하셨고, 안창호 선생님으로부터 이승만의 문제에 대해 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유신헌법을 배운 유일한 세대입니다. 종신대통령이 되기 위한 헌법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현한 헌법이라고 배웠습니다. 한상진, 정말 또라이네요. 이 자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할 듯합니다.

    2016.01.17 02: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선친의 경험은 참 중요해 보이는데요. 어떤 증언록이나 기록이 있는가요?

      2016.01.25 00:32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