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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수3

황교안 한국당 대표 광주 송정역 거센 항의 받다. 1987년 민정당 노태우 대선 연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광주 송정역에서 시민들에게 물세례를 받았다는 언론보도를 보며,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선 후보가 광주에서 연설하면서 계란 돌멩이 맞으면서 "폭력은 안됩니다. 우리 모두 애국가를 부릅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노래방처럼 불렀던 장면이 떠올랐다. 공안검사 황교안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투쟁전술은 너무 빤히 보이는 것이다. 한국정치사 속에서 나온 수구우익,군사파쇼들의 전술 흉내와 복사판들이다. 지금 우익 데모의 언어들,행태들도 마찬가지이다. - 그렇다고 해서 호남 시민들에게 '황교안 나경원 무관심, 침묵시위'를 하라고 요청하는 건 아니지만, 황-라 유사 테러작전과 희생양 코스프레 작전에는 대비를 해야 한다. - 보수 언론들과 우익들의 노골적인 지역대립 전투는 다시 시작될 .. 2019. 5. 3.
[위헌, 독재 단어 오용]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1954년 이승만 식 위헌 Nakjung Kim March 16 ·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 시민이 판사 출신 나경원 의원에게 헌법을 강의해야 하는 '웃도 울도 못할 일(1954년 12월자 경향신문 사설 제목)' 자유한국당 정치 스타일- 이승만 시절 '난투극' 정치가 되돌아 온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새구호 "#위헌,위헌,위헌" 그 위헌의 유래. 이승만 사사오입, 사람 엉덩이를 잘라내 반올림해버리다. 기가 막힌 수학자들. 양승태의 정신적 지주는 위헌을 직접 행동과 테러로 몸소 보여준 이승만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1954년, 박정희는 1969년과 1972년 위헌을 자행했다. 나경원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어떻게 위헌을 교묘하게 했는가를 더 배워야 한다. - 최근 온라인은 이미 백색테러 수준이고, 광장에서 거의 365일.. 2019. 5. 2.
한상진 (국민의당)의 이승만 평가 문제점,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안 안철수가 말한 '국민의당'의 최고인재들은 누구인가? 그 중에 한 명은 한상진 전 교수다. 11일 이승만 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고 굳게 세우신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1대~3대)을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11월 27일에 제헌헌법 (1948년 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을 하고자 했다. 원래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2016.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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