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2010.01.08 08:25

[노회찬 인터뷰1] 지하철 2호선 H 용접한 노회찬, 서울시장 출마하다

원시

 서울시 지하철 2호선 H빔 용접 공사한 적이 있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서울시장 출마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 노회찬이 뽑이 잘된 어록   

 

<당원이 라디오>,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을 만나다  < 1>  다시 듣기인터뷰 후기

  

인터뷰 날짜 2009. 12. 28.  

 

진보신당 당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님을 모시고 2010년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준비 이야기, 진보신당 창당 후 당에 대한 평가, 앞으로의 계획들, 요즘 주제가 되고 있는 진보대연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시: 노회찬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노회찬: , 노회찬입니다. 반갑습니다.

 

원시: 오늘 바쁘셨죠? 오늘 하신 일은 뭡니까?

노회찬: 오늘 대표단 회의가 오전에 있었고요, SK브로드밴드 노조관계자들과의 면담과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원시: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서울시장 출마를 하셨는데, 삼성 X-File 선고 공판 이전에 출마 선언을 먼저 하셨지 않았습니까? 위험요소가 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말하면 배짱지원처럼 보이고요.

노회찬: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재판을 의식해서 재판 전에 출마선언을 한 것은 아닙니다. (출마선언을 하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변호사들과 상의를 했는데 ‘출마와 재판은 무관하다’라고 저에게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다행히 좋은 판결이 나왔습니다만, 설령 원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2심 항소심이 있기 때문에 피선거권은 유지되는 것이고, 따라서 출마의 뜻은 변함없이 견지할 생각이었습니다.

 

원시: 서울시장 출마선언 이후 하루 중에 많이 생각하는 키워드가 있습니까?

 

노회찬: 제 키워드는 당선입니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와, 그냥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사람 만나는 느낌도 다르고 정책을 펼치거나 싸움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릅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시: (대표님의) 그러한 결의나 각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하실 때 연설문을 동영상으로 보았는데요.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노회찬 대표께서 예전에 용접공으로 일도 하시고, 노동운동도 하셨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용접공 할 때 월급을 얼마 받았는지 기억하십니까?

 

노회찬: , 제가 83년도에 처음 받은 월급이 일당 5,000원이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 H빔을 용접할 때는 제가 한 6,500원 정도 받았습니다. 최고로 센 편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 혼자 생활하는데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동료들보다는 세게 받은 편이었죠.

 

원시: 용접공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노회찬: 당시 상황으로서는 평생을 지하에서 노동운동을 해야 했는데, 생활의 문제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취직해야 한다라는 문제, 그리고 활동할 때 기술이 있어야 사업장 내에서 지위가 있을 수 있다는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용접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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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지하철 공사 H빔 용접을 담당했던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원시: , 알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인데요, 제가 당 게시판에 흑백사진을 찾아 올렸는데 (대표님의) 고등학교 때 사진입니까?  (같이 사진을 찍은) 친구 이름은 생각나세요?

 

노회찬: , 이 친구는 지금 목사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원시: 지금 이 사진을 보니까 굉장히 내성적이고 정치는 안하시게 생겼는데요.

 

노회찬: 그렇죠, 그 나이에는 정치 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요. (웃음)


원시: 굉장히 범생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요.

노회찬: (웃음) 저는 원래 범생이인데 세상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지요.


원시: 노동운동이나 반독재운동 그런 거 안하셨으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노회찬: 글쎄요,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하고싶은 것은 많았죠. 공부도 더 하고 싶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오지에 가서 봉사하고 싶었는데 그런 계통의 일을 했을 수도 있겠죠.

 

 

원시: 이 사진을 보고 100분 토론의 손석희씨가 말한 것(손석희 씨가 동안이라는 주장 - 옮긴이 주)에 대해 반론을 좀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호빵 분위기가 아닌데요?

 

노회찬: , 젊을 때는 누구나 다 그렇죠. 손석희씨도 결국에는 호빵이 될 겁니다. 하하.

 

원시: 336번에 대해 기억하고 계십니까?

 

노회찬: , 잊을 수 없지요.

 

원시: 홈페이지 세상사는 이야기에 동영상을 올려 두었습니다. 노 대표님 어머님께서 목소리가 참 좋으세요. 336번이 수감시절의 번호 같은데요. 그 때가 언제, 어떤 일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신겁니까?

 

노회찬: 1989 12월에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라고, 그 사건으로 구속이 되었고요. 92 4월에 출소를 했는데 서울교도소구치소와 안양교도소를 거쳐서 청주교도소에 있었습니다. 그 때 수번이 336번이었죠.

 

원시: 동영상을 보면서 노 대표님이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이 정말 진실되게 다가오는데요. 지금 어머님께서는 부산에 계십니까?

 

노회찬: 서울에 계시고요, 어저께가 어머니 생신이셨어요.

 

원시: 선물은 뭐 드리셨습니까?

 

노회찬: 화초와 꽃을 좋아하셔서 화분을 하나 드리구요, 집에서 입는 조끼도 하나 해 드렸습니다.

 

김문수 현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 3의 물결> 권해진보정당 동참 거부

 

원시: 지금은 한나라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야기를 조금 해 보겠는데요. (김문수 지사가) 노회찬 대표님께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권유했다고 했는데요, 한국에서는 인맥, 지연, 선후배관계 이런 것들 때문에 철학이나 이념, 정치적 이상의 친구보다는 지연과 학연 등의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언급을 피하기도 하는데요. 앨빈 토플러 책은 언제 권유 받았고,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진보정당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으로 간 김문수 현 경기지사, 노회찬 대표에게 앨빈 토플러 책 권한 적 있어


노회찬: 당시 김문수 현 지사는 진보정당을 하겠다고 우리 당에 참여한 상태였어요. 이미 그 때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교도소 면회를 와서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묻길래 제가 맑스 선집을 읽고 있다고 얘기하니까 사뭇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가 토플러 책을 몇 권 가져왔는데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책을 넣어주었어요. 그런 인연이 있었고 그 후에 제가 92년 출소를 해서 진보정당 안하겠다고 김문수 현 지사가 얘기를 할 때 진보정당 같이 하자고 강하게 권유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 문제를 돌보며 살겠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원시: 노회찬 대표가 90년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진보정당을 하게끔 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노회찬: "인생관, 역사관, 철학의 산물이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고요. 저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생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원시: 어떤 한계를 느꼈습니까?

 

노회찬: 학생운동이라고 하면 지식인운동의 한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반독재민주화운동은 지식인 중심이었거든요. 광주항쟁 때 군홧발에 여지없이 밟히는 것을 보면서 일부 지식인들의 엘리트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역량이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동운동에 투신을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한국사회가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싸움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용접도 배웠던 것인데요.

 

 87년 이후 민주화는 부분적으로 진행이 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제 많은 주변 동료들은 운동을 떠났습니다. 잘못된 사회주의 국가가 망한 것이지, 사회주의적 이념과 이상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당시에 생각을 했고요한국사회의 현 단계에 필요한 것은 민주화운동이 자주적으로 성장해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없이는 노동운동도 같이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정치세력화의 방편으로서 진보정당에 뛰어든거죠. 진보정당을 한 두번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걸 보면서 이게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고, 수십 년 걸쳐서 발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두번 실패했다고 자기 인생 스케쥴에 맞춰서 운동을 하고 안하고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시: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진보신당에 계신 분들이 과거 민중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에서 지도자급에 있었던 사람들이 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으로 이적을 했는가, 그 원인이 뭔가 라는 것에 대해 이런 내용의 질문을 많이 하셨기 때문인데요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서요.

1부 마지막 순서로 노회찬 대표님의 연기력 테스트를 한번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아이리스 보셨습니까


노회찬: 그게 tv에서 방영될 시간에는 제가 tv앞에 있기가 힘들죠.


 

원시: 대사 중에 아이리스라는 것을 군사자본 내지는 한국의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제국주의적 음모그룹 이런 걸로 묘사가 되어있던데 혹시 정치적으로 해석하셨는가 해서 여쭤보았습니다.


노회찬: 제가 드라마 내용을 몰라서..


 

원시:그럼 1부 마지막 질문은 이것으로 드릴께요. 대표님이 생각하실 때 가장 좋았던 노회찬 어록, 그리고 내가 볼 때는 이거 좀 실패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노회찬: 여러 말들이 있었는데요. 성공과 실패로 보진 않습니다만, 국정감사 할 때 서울고법원장을 앉혀두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이렇게 다그쳤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말에 고법원장도 수긍을 할 정도로요. 그래서 기억에 남구요


아쉬웠던 대목은 성소수자 문제 가지고 한번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주제는 아니었고 다른 걸 비유하면서 얼떨결에 얘기가 나왔는데, 본뜻과 다르게 전달될 소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많이 상처받은 분들도 계셔서 사과를 드렸습니다

  



 

제작: 새로운 데모연구회

자료조사, 섭외, 편집: 꿈책, @여수, 박원규, 한재필, 다온혜윰  

기술지원: 클라시커

진행: 원시

음악: 하트

<당원이 라디오> 참여http://cafe.daum.net/new-d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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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chilp.it/019564 


 




2. http://chilp.it/65daa8






3. http://chilp.it/fa6d3d




인터뷰 날짜: 4월 29일 금요일 오후 6시 


진행 및 대화: 원시




<요지>

1. 이재영: 25일 민주노동당 정성희위원 <초안>을 받고, 수정작업을 했다. <통합정당>을 <새 진보정당>으로 수정했다. 20개 정책의제들 내용이 추상적/빈곤해서, 다음에 다시 내용을 채우기로 했다. 민주노동당 안 "민중주체 진보적 민주주의"이라는 말이 아직 논의된 적이 없다. 그래서 삭제하기로 했다.


2. 8 자연석회의인데, 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양 당이 주로 논의하는가?

이재영: 두 당이 먼저 안을 내면,다른 당이나 다른 단체가 코멘트를 했다. 결정된 것은 아닌데, 그렇게 해왔다.사회당도 그 이후로는 초안을 내고 있다. 다른 단체의 경우는, 합의문 초안보다는, 일부 의견을 냈다.


3. 8자 연석회의에서 <합의문> 작성이 원활히 되고 있는가?

이재영: 그렇지는 않다. 8자 연석회의 성과가 <합의문>이 되기 보다는, <합의문>이 별도로 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4. 이번 새진추 <합의문 발표: 4.29 금요일로 예정됨> 논란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재영: "협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인데요,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될 성질일 수도 있습니다.사실을 말씀드리면, 26일 (화요일)에 제가 민주노동당 안을 검토->수정하고, 진보신당 <안>을 만들어서, 노회찬 추진위원장과 김용신 간사에게 제출했습니다. 노회찬 위원장은 8자 연석회의 간사들 (진보신당 초안)을 돌렸습니다. 27일 수요일에 연석회의 집행회의에 진보신당 추진위원들과 진보신당 대표단에게 그 <진보신당 초안>이 회람이 되지 않았다"


5. 질문: 추진위 내부에서, 또 다른 하나는 추진위와 대표단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거네요?


이재영: 추진위가 공식기구고, 대표단과도 협의를 해야 한다.


6. 질문: 왜 이렇게 당 내부 논란이 반복되는가?

이재영 : 


2011.05.02 17:47

[4.27 선거] 이정희 "야권연대 옳았다"에 대한 평가 / 이재영 정책위 의장 편

[당원이라디오] 조회 수 828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





인터뷰 날짜: 4월 29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진행 및 대화: 원시

인터뷰 요지


1. 질문: (8자? 다자) 연석회의에서 진보신당 안이 어떻게 관철, 설득되는가, 그 과정에 대해서?

이재영: 개인 토론이 아니라서, 힘든 측면이 있다.


2. 9월 안에 새 정당을 만든다는 계획이 너무 촉박하지 않은가?

이: 이미 이건 당대회 결정사항이다. 9월에 창당을 하려고 한다면, 2개월이라는 시간 절차가 있기 때문에, 새 정당에 대한 협의가 6월 전후에 끝나야 한다 (* )

질: 실무적인 집행 때문에?

이: 예


3. 4.27보궐 선거에 대한 진보신당의 전반적인 평가는?

이: 준비가 부족했다. 선거운동을 잘못 했다 이건 아니다. 비판적 평가를 하려면, 선거 사전 부족은 지적하는 게 맞다.

이번 보궐선거는 당에서 대단히 큰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특히, 울산 중구청장 후보가 진보신당 후보로 단일화되지 않은 이후로, 보궐선거 의미가 (진보신당에게는) 축소된 것이 있다


4. 질문: 신문 등 언론에서는, 민주당 대승, 한나라당 참패, 민주노동당 실속 챙기기 평가라고 이번 4.27 보궐선거를 평가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의견은? 특히, 민노당 대표는 “야권 연대 노선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이재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원도지사, 성남 분당의 경우는 야권 연대와 크게 상관없다.

경남 김해 , 전남 순천이 야권연대가 이뤄진 곳이다. 그런데, 김해는 야권 연대 후보가 실패했고, 전남 순천의 경우 야권 후보가 승리했으나, 생각해 볼 점이, (김선동 민노당 후보가 승리?) 민주당 계열 무소속 후보가 사퇴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민주당 무소속 후보들이 이번 보궐선거를 2012년 총선 선거 준비로 간주했다.


5. 질문: 민주당에서 진보정당들을 부분집합으로 해석했다는 말인가?

이: 장기적으로 보면, 민주당에서 안좋게 해석할 수도 있고..., 호남에서는 반-한나라당 전선이 아니지 않는가? 반-민주당노선인데…,


5. 질문: 레디앙 기사에서, 4.27보궐선거 평가를 하면서, 박상훈씨가 "진보신당 정당 기능 상실할 수도"라는 말을 기사 제목으로 뽑았는데요, 진보진영이나, 진보신당 내부에서도 이렇게 평가하는가?


이재영: 아직 진보신당에서 평가를 하지 않았고, 이 기사는 "이런 경우가 누적되면, 정당 기능이 상실할 수도 있다. 앞으로" 그런 의미네요. 지금이 아니라.


6. 질문: 그럼 그런 박상훈씨와 같은 평가가 적실한가?


이재영: 선거에서 플레이어로 자리잡지 못하면 ..앞으로..그럴 가능성이 있다.

진보신당에서는 좀 안 좋아졌죠. 유권자들은 과정을 묻지 않으니까요. 2010년 민주노동당도 자리를 차지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선거에서 2번 연속 실패하면, 진보신당에게는 안좋죠.

그런데, 민주당 승리, 한나라당의 패배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왜냐하면, 분당에서 손학규 당선된 이유는, 첫번째, 손학규는 대선주자였고, 강재섭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 두번쨰는, 부동산, 집값 하락에 대한 반발투표가 있었다. 이는 개혁적인 투표가 아니다.

세번째는, 손학규 후보로 인해서, 정책적으로 후퇴도었다. 야 4당 정책 협의회가 있었는데, 과거 민주당 당론으로 확정된 것도 이번 보궐선거에서 밝히지 않았다.


7. 질문: 정동영을 비롯한 민주당의 좌클릭이 사라졌다고 보는가?

이재영: 이번 선거 때는 그랬죠.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 좌클릭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민주당 과거 민주당 당론도 희미해졌다 . 그래서 이번 손학규 당선이 개혁의 승리라고 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둘째, 강원도지사 민주당 최문순 당선은, 이광재에 대한 동정표, 엄기영 불법선거 운동 등이 있었다.


8.유권자에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들어서, <참여> 유권자, <선거 거부, 탈락> 유권자, 예를들면, 2007년 대선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가 투표장에 가지 않았지 않습니까? 두번째: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에, 한국유권자들이 굉장히 충실하다는 점, 세번째: 이병박 정부 하에서 개선된 게 없으니까 ( 물가, 교육 등등) …

이재영: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중간선거는 이미 반-대통령 편이고, 한국의 경우도, 한번을 제외하고는, 보궐선거는 모두다 야당이 이겼기 때문에, 이번 보궐선거 결과를 과다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9. 그래서 유권자 투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이재영: 계층별, 연령별 드러나는 데이타가 부족하다.

또하나의 측면: 민주당 안에서 역풍 가능성도 있다 1) 유시민, 국참당에게 2회 기회를 줬는데, 2회 패배했고,

순천에서는 김선동 후보에게 (2012년 총선은) 민주당이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선거결과로, 민주당 중심성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야권연대에 기반한 진보정당의 선거 전략은 축소되어야 한다.


10. (민노당과 이 선거전략을 두고)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합의 가능한가?

이재영: 연석회의 안에서는 총선에서 이견이 없고, 대선에서는 본격적인 토론은 없었다.


11. 새 진보정당 건설에서 큰 장벽이 아니다는 것인가?

이재영: 문제가 될 수 있다. 총선_대선과 연동되어 있고, 총선에서 실리를 거두고자 하면, 대선에서 후보사퇴를 하고, 민주당에 사전약속을 해야 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민노당은 유연하고, 진보신당은 조금 더 원칙적이다.


<원시> 총선_대선 패키지라는 것이군요.

이재영: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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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병호 탈당이 던지는 의미




알포드 계급 투표 지수의 경향적 저하와 한국의 노동 현실




발표 : <레디앙> 2008. 02. 21.



(* 고 이재영의 원고청탁으로 쓴 글) 



단병호 의원(이하 의원 생략)의 민주노동당 탈당 선언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단병호가 말한 민주노동당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이다. 두 번째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면, 향후 어떠한 새로운 진보정당이 그 정치세력화를 가능케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단병호는 민주노동당 위기의 본질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 정치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재정, 인력 동원의 수단으로 전락한 데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간의 접착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시멘트, 즉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와 노동 부문 할당제가 잘못된 거래로 종결되고, 그 접착제 역시 불량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가교역할, 그 접착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민주노총 소속 민주노동당 간부들은 당 발전에 100원 어치 기여하고, 10,000원 어치 보상받으려는 불공정거래, 즉 반칙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병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공은 가까이 하려 하면서도 과와 책임은 멀리하려고 합니다.” 위와 같은 단병호의 위기진단은 지난 4~5년 간 민주노동당의 위기원인들을 전체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총과 당과의 잘못된 역할분담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평가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진보정당에 계급투표를 할 것인가?


단병호의 민주노동당 위기 진단은 신 진보정당에게 어떠한 정치적 주제들을 던져주는가? 과연 한국 민주노총과 더 나아가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좌파적 성격을 띤 진보정당 혹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에 계급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게 언제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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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는 계급투표율과 알포드 지수가 하락하고 있다. 사진은 연대노조의 발원지였던 폴란드의 조선소.

한국 노동자의 계급투표의 현실에 대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가, 좁게는 민주노총 소속 간부들의 계급투표에 대한 기대와 실천은 과장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 선거에서 그 과장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80만 노총조합원들이 800만 표를 획득하자는 구호, 현실은 민주노동당 권영길이 71만표 획득하는데 그쳤고, 그 중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기여도는 20% 내외로 추정된다.


소위 기대와 결과의 격차, E-R Gap의 표본사례가 한국 노조와 노동운동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치가로서 이석행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간부들의 개인적인 결의와 업적 홍보와 정반대로, 현실에서는 냉혹한 정치적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기대와 결과의 심연의 격차는 정치적 공언과 무책임을 의미하고, 이석행의 정치적 무능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투표로 답했는가? 실제 지난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에 투표한 사회 계급 계층을 분석해보면, 제 1위가 화이트칼라(도시 거주 30대 직장인, 80년대 민주화운동 경험 도시 신중간층), 그 다음이 20대 학생, 도시 자영업자, 블루칼라 노동자, 주부, 농수산업자 순이다.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것 같아 언급을 생략하겠다.


맑스가 살아있었다면,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외치면서 동시에, 왜 단결이 안 되는가를 평생 연구했을 것이다.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매일 출근도장 찍으면서, 가제로 책을 만든다면 『한국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에 표를 안 던지는 100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로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의 황금기, 1945~1975년 시절에, 정치, 사회, 경제학자들이 한 작업들이 대부분이 위 주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알포드 계급 투표 지수와 신 진보당의 임무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 8년 간 민주노동당의 지지 계급 계층 분석은,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황금기 시절에 나타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Alford Class Voting Index : 노동자 계급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와 중간층 및 중산층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의 차이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의 70%가 좌파정당에 투표했고, 중산층의 20%가 좌파정당에 투표를 했다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50이다) 경향적 저하와 일치하고 있다.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사회주의 북구형, 독일 가족 중심형, 프랑스 예외형)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투표(class voting)는 전반적으로 하락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전체 사회민주주의 당 득표율은 30~31%이다. 민주노동당은 8년 정치적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일국 한국과 여러 국가들의 좌파정당들을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한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 경험을 거쳤다는 것 역시 서유럽과 다르고, 사회복지국가 모델, 즉 노사정위원회의 타협 모델도 없다는 점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이런 한국과 유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계급투표 경향 한 가지 흐름만을 언급하겠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자.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자. 좌파들이 즐겨쓰지는 않더라도 이미 한국의 진보정당이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는 한 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참고할 만하다.


스웨덴의 경우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1948년경 50에서 1986년에는 35 전후로 떨어진다. 영국의 경우 1948년 40 전후인데, 1980년대 들어와서는 20으로 하락된다. 서독의 경우 같은 기간 30에서 10으로, 프랑스는 33에서 15로, 미국의 경우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45에서 72년 3으로 현격히 떨어졌다가 1980년대는 8~9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소위 진보적인 사회복지국가 북구형(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는 계급투표가 아직도 건재하면서 동시에 하락 경향을 보이지만, 미국이나 캐나다는 계급투표 결과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노동조합 가입율과 좌파 정당의 유무에서 그 차이가 기인한다. 서유럽에서 알포드 계급지수가 경향적으로 저하하는 이유는, 노사 타협으로 인해서, 계급투쟁의 휘발성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좌파 정당 역시 전통적인 노동자계급 뿐만 아니라 소위 신사회운동 주체들을 정당의 주요한 간부들로 흡입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를 한국 상황에 가정적으로 적용해보자. 2007년 대선 71만 표를 분석할 때, 과연 전체 노동자의 몇 퍼센트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고, 중산층 몇 퍼센트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으며, 그 차이는 몇 퍼센트겠는가?


답은 물론, 북유럽형도 아니고, 미국 캐나다 형도 아닐 것이다. 추측해보건대, 수치상으로는 한국은 미국형에 가까울 수 있다. 물론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 역시 서비스 영역에서 조합 활동(SEIU)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단선적 비교는 정치적으로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단선적이고 환원주의적 계급정치 강조는 무의미하다


정치적 판단으로 이야기를 돌리자. 국민파, 현장파, 중앙파, 실리파 등 정파를 막론하고,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투표 행위에 대해서 과장해서는 안 된다. 맑스와 사회주의자들이 150년 전에 말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갈아엎을 혁명의 주체이다”라는 명제를 종교적으로 암송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맑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말한 “가장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피압박을 당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옮아가야 하고, 그 억압 주체들과 장치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문제 해결 집단들의 구체적인 행위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 혁명과 변혁의 주체는 계급분석에 반드시 기초해야 하지만, 계급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특정 계급의 정치적 우월성이나 선차성 관념(제1주력군, 제2주력군, 제1보조군, 제2보조군 등)등은 인간의식을 계급적 존재에 귀속시켜 버리는 결정주의적 사유방식의 잔재이다.


이런 식이라면, 제2인터내셔널이 맹신한 자본주의 붕괴론에 근거한 정치 실천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미 여러 나라들에게 실패한 교조적인 좌익 정치 패러다임들이다. 모든 사회 활동에서 계급정치의 싹들을 발견해야 하고, 직접적인 행동과 정치 실험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신 진보정당의 주체로 인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계급 기반 정치(class-based politics)에서 가치 기반 정치(value-based politics)로, 구 정치에서 신 정치 주제들로 옮아가자는 것인가?


2008년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이러한 형식적 구별은 별 의미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1945~1975년 유럽 황금기 사회복지모델도 신자유주의와 자본축적구조의 변동으로 그 모형 자체가 변모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07년 대선에는 계급기반 정치 주제들(경제 성장, 정치 안정, 국가 안보 등)이 소위 신정치 주제들(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 환경, 여성, 인종, 반핵평화 등)을 압도하고 말았다. 그럼 두 가지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다. 한국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역시 지난 8년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전되어 온 여러 시민운동 성과들, 신정치의 가치 기반 주제들을 포함해야 한다.


이러한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 결합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프랑스 사회당의 경우, 정통 맑스주의와 단절을 선언한 이후, 로카르의 사회개혁주의와 미테랑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당내 대결에서도 여전히 맑스주의에서 배운 전통적 사회주의적 흐름(정책에서야 사민주의 경향)과 68년 이후 신사회운동의 주제들을 결합했었다. 그게 미테랑과 최근 한국을 방문한 죠스팽의 정치 노선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녹색당과 사민당의 연정정부와 그 실패 사례도,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독일에서 녹색 적색 연정이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가 녹적 연대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는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윤리교과서 사회주의자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교과서 사회주의 안 되려면 현실에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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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거리를 기다리는 퀵서비스 노동자들. 대부분의 비정규직에게는 잔업도, 잔업수당도 머나먼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회민주당이나 사회주의적 성향 당이 집권한 적이 없다. 그리고 미국식 2당 체제가 한국 정치판을 압도해 온 것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신 진보당은, 당연히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을 창의적으로, 능동적으로 예민하게 결합시켜야 한다. 최근 한국 타이어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보더라도 안전, 환경, 노동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신 진보당 주체들이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 한국 민주노총의 투표 행태,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등에서, 유의미한 실천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신 진보당은, 민주노총 조합 자체가 한국의 가장 억압된 계급 계층,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사회계급 계층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비정규직 내부 분화들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지역, 일반 노조 등과의 직접 연대 행동 조직화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 형태들과 의식수준들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 진보당은 당연히 계급투표를 독려하고, 그 투표율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만, 지난 8년 간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과의 비대칭성은 피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단병호의 진단, 배타적 지지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옳다. 그리고 노동 부문 할당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세 번째, 한국에서 계급투표 증가는 오히려 진보정당의 정치 참여 폭의 증대와 비례 관계가 있다. 이는 한국의 정치 주체들의 정치적 경험, 80년대 민주화 운동, 90년대 자생적인 시민운동들, 2000년대 민주노동당 운동들의 활성화가 노동운동 발달의 호조건을 형성할 것이다.


신 진보정당은 프랑스 공산당이 좌파적 성향의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1947년 이후에도, 친 소련 노선을 노골화시키고, 변화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의식을 따라잡지 못해서 결국에 사회당에 밀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과 신 진보당 내지는 사회주의 당)의 아름다운 역할 분담은 당연한 이야기라서 여기서 생략하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새로운 진보정당은 더욱 더 구체적으로 한국 노동자의 의식과 생활을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정치적 선언이나 당위를 넘어서야 창의적인 노동운동, 실제 지역 행정을 진보적으로 책임질 주체로 발돋움 할 수 있다.


노동자의 해방, 추상적인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들 딸 학원 보내기 위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잔업을 하는 게 한국 현실이다. 아들 딸 노동자 되지 말라고, 전문직 자영업자 되어야 한다고 밥상머리에서 매일 이야기하고, 자기 계급을 부정하고 마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자식 학원 보내려 잔업하는 정규직, 잔업도 못하는 비정규직


비관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가 진보정당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하루 8시간, 6시간 일해서, 그 노동이 사회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기여한다면, 그 사람은 한국의 정치적 시민으로 동등한 자격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냉혹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식들 학원비를 위해서 잔업도 못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장시간 노동이라도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치적 시민 대열에서 탈락 낙오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진보당, 한국에서 노동자도 다 똑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 냉혹한, 살벌한, 냉정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를 결합한다고 선언하든, 푸른 진보, 역동적 진보, 아름다운 역할 분담을 이야기하든 다 좋다. 그러나, 신 진보당, 보다 더 고개를 숙여 한국 현실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의 공간들을 확대시켜 들여다 봐야 한다.


신 진보를 노래하는 분들이여, “난 너에게, 넌 나에게” 마음을 열어라. 그대들이 마음의 대문을 여는 만큼 새로운 진보의 따뜻한 바람은 얼어붙은 진보의 마당을 녹일 것이다. 신 진보당, 더 나눠야 한다. 신 진보당, 손을 더 내 밀어야 한다. 특히 언론에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심상정 노회찬의원은 그 조명의 51% 가량을 신 진보정당을 노래하는 이들에게 비춰줘야 할 때이다.






* 선거 데이타 자료들: 




독일 사민당 (에스.페.데)이 총선에서 받은 득표율 변화, 1871년부터 1933년까지 







(자유당 지지자들이 '노동당'으로 돌아선 비율: 1924년이 가장 높고, 대공황 후 1931년은 조금 줄었다가 1935년에 다시 늘어났다)







1906년부터 1935년 선거에서 노동 계열이 받은 득표율 변화 1922년에 최초로 30%에 진입했다.






(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당들'이 총선에서 받은 득표율 변화 1870년대 출발할 때는 10% 미만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 이후 평균적으로 30% 득표율을 유지하고 있다. 다당제 multiparty system 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보수당, Liberal 정당, 정통적 공산당, 기독교 계열 정당과 경쟁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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