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님의 문제제기: [자본가]도 노동한다. 기계도 가치를 창출한다. 

[연관 주제 1: 노동자의 자주관리] 

조금 실천적인 주제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노동자 자주관리 (진보신당 당 강령 세부 조항을 보니까, 노동자 자주관리라는 표현을 직접 썼더군요)와 관련될 수 있는데요. 실은 제가 아는 몇 분이서, 노동자 자주관리를 실험했습니다. 자동차 수리업체를 노동자 7-9명이서 같이 공동인수인계를 했습니다. 몇년전에 아르헨티나에서 유행한 "노동자들의 공장 인수"처럼요. 

그런데, 결과는 망했어요. 회사 창립, 고사 지내고, 시루떡 돌릴 때까지는 정말 저도 마음이 부풀어있었고, 기대가 컸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 자주관리가 무의미하다 이거 아닙니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를 "계획경제"에서 찾는데요, 한편으로는 일리도 있지만, 이미 수정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건,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르건 뭐건 간에) 체제 하에서, 계획을 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미 삼성, LG 경제연구소가 있듯이, 과잉생산- 가치 현실화의 위기를 사전 예방하고, 생산-유통-소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자본가들도 이제 "제 멋대로 무한 경쟁"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게 말과 표현이 달라서 그렇지, 구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경제 (planning board)와 유사한 측면도 많다고 봅니다. 

대안의 경제를 생각하더라도, "경영자" 그게 노동자 대표건, 전문 경영인이건, 소위 경영자 (manager)에 대한 논의는 필요할 것입니다. 


[연관 주제 2]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구분:

해리 브레이버만 (Harry Braverman)이 [노동과 독점 자본 : 20세기 노동의 타락]에서 설명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non-productive labor)와의 구별과 연관될 것 같습니다.

생산적 노동은 "자본가에 의해 고용된 노동자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을 지칭하고, 비생산적 노동은 직접적인 잉여가치 창출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생산 양식을 유지/재생산하게끔 하는 노동을 가리킵니다. 맑스가 말한 M-C-M' 에서 M' (s + v + u ) 잉여가치의 분배과 관련된 노동을 비생산적 노동이라고 해비 브레이버만은 설명합니다. 

물론 자본가의 노동이 비생산적인 노동 범주에, 개념 정의상, 포함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만, "노동" 전반에 대한 범주 구분을 할 때, 생산/비생산적 노동을 구별하는 전략도 생각해볼 만 하지 않을까요?

[맑스의 답변 : 자본 3권: 소위 삼위일체 공식]

철이님의 일관된 주장은 맑스가 [자본 3권]에서 설명해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맑스의, 혹은 맑스주의자들의 [지대]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있어왔고, 지금도 우리가 또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만.

"자본은 이윤을 창출하고,
토지는- 지대를 만들고,
노동은 - 임금을 낳는다.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신비화이고, 사회관계들의 물신화이고, 물질적 생산관계들과 이러한 생산관계의 역사적 사회적인 특질들을 구별하지 않고 혼동하는 것이다. 사회적 특성을 지니고 또 동시에 단지 사물들인 "자본"이라는 신사와, 땅(떼흐)라는 마담에 의해 고통받는 주술과 같은, 뒤틀리고 전도된 세계이다.... 이러한 삼위일체(자본-이윤/ 토지-지대/ 노동-임금)는 이들 간의 내적인 연관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또한 이 삼위일체 공식은 지배계급의 자기 이해관계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이 삼위일체는 지배계급의 소득의 원천의 영구적인 자기 정당화와, 자연적 필연성을 설파하기 때문이고,하나의 도그마로 확립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미]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 계급투쟁 물타기와 생산성 향상과의 관계:

1970년대 독일 하버마스가 [사적 유물론의 재구성]에서, 반성적 노동 (reflexive Arbeit) 개념을 쓰면서, 맑스의 노동가치론이 후기 자본주의에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현대 후기 자본주의는, 과거 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와는 달리, 교육과 같은 반성노동이 맑스식의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맑스가 말한 단순 노동자들의 근육/육체노동으로 만들어진 잉여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잉여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산성 향상) 맑스의 이윤율 경향적 저하 (TRPF)를 상쇄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맑스의 이윤율 p' = s / v + c = s/v * c/v + 1 에서 s/v 부분을 증가시키는 요소로 반성적 노동, 교육, 과학기술 발달을 듭니다. 물론 맑스도 이윤율 경향적 저하를 가로막는 요인들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만. 

그리고 실제로, 독일이나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체제 하에서는,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자본가의 이윤율 상승 유지, 이 두가지를 다같이 만족시키는듯이 보였습니다. * 계급투쟁이 사회위기로까지 폭발하지 않으니까요) 노동자계급의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의 포섭, 코포라티즘의 정치적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의 정형적인 토론 주제, 논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철이님이 주장하는 것 [자본이나 기계가 노동가치를 생산한다]을 들으면서, 사고를 확장시켜 봤습니다.

아니, 철이님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철이님 주장의 정치적 효과나, 정치적 통찰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