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jung Kim


March 16 ·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 시민이 판사 출신 나경원 의원에게 헌법을 강의해야 하는 '웃도 울도 못할 일(1954년 12월자 경향신문 사설 제목)'


자유한국당 정치 스타일- 이승만 시절 '난투극' 정치가 되돌아 온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새구호 "#위헌,위헌,위헌" 그 위헌의 유래. 이승만 사사오입, 사람 엉덩이를 잘라내 반올림해버리다. 기가 막힌 수학자들.


양승태의 정신적 지주는 위헌을 직접 행동과 테러로 몸소 보여준 이승만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1954년, 박정희는 1969년과 1972년 위헌을 자행했다. 나경원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어떻게 위헌을 교묘하게 했는가를 더 배워야 한다.


- 최근 온라인은 이미 백색테러 수준이고, 광장에서 거의 365일 열리는 극우집회는 이승만 독재시절 테러단체들을 연상케한다. 이정재 임화수 정치 깡패들을 '중소 기업' 수준으로 키운 게 이승만-이기붕이다.



- 다시 보는 1954년 이승만 식 위헌. 


이승만은 1954년 11월 27일에 48년 제헌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종신대통령을 획책했다. 원래 제헌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의원 정족수의 3분의 2였다. 당시 203명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 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에서 찬성 135표, 기권 7표, 반대 60표가 나왔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명에 1표가 부족해서,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당시 자유당 최순주 국회부의장도 '부결' 판결을 내리고 국회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이기붕 (자유당) 국회의장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33 에서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이 되지 않는 '의미없는' 숫자라는 수학 논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헌안'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고 우긴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안이다.


11월 29일 국회를 다시 소집한 자유당은 최순주 부의장이 27일은 표 계산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135명이 '개헌안'에 필요한 숫자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은 자유당 당원이자 자기 사설비서였던 정치깡패 이정재 등을 국회 안에 배치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야당의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사진 - 1954년 11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 이철승 의원이 국회의장 최순주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회서 난투극 !"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 부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1면과 사설 "개헌안 부결" "아슬아슬한 1표 차이"






 경향신문 1954년 12월 1자 사설 (웃도 울도 못할 일) 에서는, 자유당이 정치깡패 이정재를 국회에 투입시켰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폭력단이 의장내부에 출현횡행하였다 하는 것은 세계의정사에서도 미증유의 사태일 일뿐 아니라, 아무리 후진적인 이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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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소속 초선 윤한홍 의원이 518 관련 항의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여기가 전라도냐?"라고 지역감정을 유발시켰다. 그 시위자들이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앞에서 반 전두환 시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한홍 의원의 발언이 더 악질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유는, 그가  518 광주학살자 전두환의 사죄를 요구하는 시위자들더러 당신들은 이승만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서 싸운 315 마산의거 정신들을 배신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점이다.


마산 창원 사람들은 1960년 이승만-이기붕의 315 부정선거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 선구자들이었다. 특히 1960년 4월 11일 부산의 한 신문기자의 제보로 마산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을 맞아 숨진 사진이 알려지자, 이승만 이기붕 독재타도 운동은 전국화되었고, 마침내 4월 19일 전국항쟁으로 발전되었다. 


한국정치사와 기나긴 민주화 운동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마산 315 부정선거 이승만 독재타도 운동과 518 광주 항쟁은 동일한 '민주화 정신'으로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419 혁명과 518 광주항쟁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계승하자는 문구를 넣자고 문재인 대통령도 말한 바가 있다. 


앵무새나 구관조도 한번 알려주면 따라할 수 있는 이러한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 마산 사람들은 315 의거자들인데 왜 518 광주 항쟁을 동조 지지하느냐 "여기가 전라도냐?"라고 욕설을 뱉은 윤한홍의 정치적 노림수는 무엇인가?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윤한홍이 서울대학교 81학번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서울대는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군부파쇼와 타협없다는 구호가 대학가에 울려 퍼질 시기였다. 


윤한홍과 같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왜 전두환을 옹호하는지,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지역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무엇인가? 





2019-03-11 18:54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이 창원 지역을 찾은 자리에서 영·호남 사이의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윤 의원은 오늘 같은 당 창원 성산구 강기윤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한국당 경남도당 앞에서 5·18 관련 항의 시위자를 봤다며 "여기가 전라도냐"고 발언했습니다.


또 당사 앞 5·18 시위를 하는 사람을 두고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3·15 의거 정신을 팔아먹은 사람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김주영 [kimjy0810@ytn.co.kr]


윤한홍 의원 이력:

http://bit.ly/2EWxYzM



1975년 합포초등학교 졸업

1978년 마산중학교 졸업

1981년 마산고등학교 졸업

1985년 서울대학교 졸업

1987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행정학 석사)

2014년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졸업 (행정학 박사)



경력

1988 제32회 행정고시 합격

2001 서울특별시 시립미술관 개관 추진단장

서울특별시청 세무과장

서울특별시청 행정과장

~ 2007 서울특별시청 기획담당관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실무위원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대통령실 대통령실장실 선임행정관


대통령실 행정자치비서관

2013.01 ~ 2015.12 경상남도 행정부지사


2016.05 ~ 제20대 국회의원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새누리당→자유한국당)

2016.06 ~ 2017.07 제20대 국회 전반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2017.07 ~ 2018.05 제20대 국회 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2018.07 ~ 제20대 국회 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2018.10 ~ : 제20대 국회 후반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간사


2017.04 ~ 2017.05 제19대 대통령선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비서실장

2017.08 ~ 자유한국당 정무특보

2017.12 ~ 2018.12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17.12 ~ 2018.02 자유한국당 조직부총장

2017.12 ~ 2018.02 자유한국당 지방선거기획위원회 위원

2018.12 ~ :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창원마산회원구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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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 이게 나라냐?" 부모의 재산과 사회지위가 아이들의 계급과 계층, 그리고 직업을 결정해버리는 조선시대-자본주의를 타파하라는 그들의 외침이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태민-최순실 일가와 박근혜 동맹체가 벌여온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에 대한 민심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성난 민심과 유사하다.

3선 개헌해서 종신집권을 획책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그 무능은 박근혜에 해당한다. 정신이 흐릿했던 85세 이승만은 혼자서 자립적으로 연설이나 대화를 하지 못하며 '수첩 공주'로 낙인찍힌 박근혜와 유사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해진 이승만을 앞세워 자유당 권력을 독점했던 이기붕과 그 아내 박마리아 일가는 최태민-최순실 갈취단과  유사하다.

이승만과 이기붕의 독재와 부정부패를 알고도 거기에 아부하며 국회의원직을 유지했던 자유당은, 최순실 일가의 전횡과 박근혜의 무능을 알고도 박근혜를 앞장세워 '친박' 새누리당과 거의 흡사하다.

1960년 419 혁명 상황과 2016년 11월 상황은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다만 최순실의 딸로 알려진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혐의와 특혜조치, 교수들까지 '아래 것들 하녀'로 부린 정유라-최순실 모녀에 대한 성난 민심 때문에,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길거리로 나와, "민주주의 되찾기 운동"에 나섰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 관저 경무대로 몰려가는 시위대를 경찰들이 발포한 이후, 사망자가 속출하자,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315 부정선거 이후, 이승만 정권의 총에 맞아 사망한 시위대 숫자는 185명, 부상자는 1500명이 넘었다. 특히 마산에서 최루탄을 맞고 숨진 김주열 군의 시체 발견은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 타케스샤우 온라인에 실린 박근혜 하야 관련 사진이다.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대학생들 )


참고.




1960년 419 혁명 당시, 동아일보 기사 요약 

1960년 3월 15일 (대통령, 부통령 선거) 이후, 부정 선거로 인해 전국적인 시위 발발. 

4월 18일, 경찰들이 "인(사람)의 바리케이트"를 5중으로 치고 시위대를 막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스크람을 짜고 구보로 돌파하였다

"다시 격발된 학생 데모" 서울대, 고대 전교학생 '데모' 참가




. 4월 20일자 동아일보 


경무대 입구에서 경찰들이 총을 시위대를 향해 겨누었다. 사상자 발생 시작. 




.

물러서지 않는 시위대들.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 !" 



.

4월 21일자 동아일보.

미국 국무장관 크리스찬 허터, 한국 언론 집회의 자유 억압당하고 있다고 이승만 정부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이승만 정부를 미국이 지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었다. 미국의 원조를 받던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이승만 지지 철회는 곧 이승만 정권 퇴진이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 4월 22일. 이승만 이기붕이 속했던 자유당 내분 폭발 이후, "왜 사람은 죽이느냐 말야" - 자기반성문 쏟아져.

만시지탄의 자유당 반성 수습책 발표.




. 4월 25일자 


이승만 자유당 총재직 사임 통보.



.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직 사임 "하야 발표" 

- 대통령 부통령 선거도 다시 하겠다.

-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 책임제 (의원 내각제)를 수용하겠다. 개헌 시사.



.

4월 28일 새벽.


315 부정선거 총 지휘자였던 이기붕과 박마리아 일가 자살. 이기붕의 아들 (이승만의 양아들) 이강석이 총으로 부모와 동생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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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말한  '국민의당'의 최고인재들은 누구인가? 그 중에 한 명은 한상진 전 교수다. 11일 이승만 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고 굳게 세우신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1대~3대)을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11월 27일에 제헌헌법 (1948년 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을 하고자 했다. 원래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정족수의 3분의 2였다. 당시 203명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 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에서 찬성 135표, 기권 7표, 반대 60표가 나왔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명에 1표가 부족해서,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당시 자유당 최순주 국회부의장도 '부결' 판결을 내리고 국회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이기붕 (자유당) 국회의장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33 에서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이 되지 않는 '의미없는' 숫자라는 수학 논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헌안'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고 우긴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안이다.


11월 29일 국회를 다시 소집한 자유당은 최순주 부의장이 27일은 표 계산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135명이 '개헌안'에 필요한 숫자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은 자유당 당원이자 자기 사설비서였던 정치깡패 이정재 등을 국회 안에 배치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야당의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 통과는 세계 현대 정치사의 10대 부정 부패 사건에 해당할만큼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안철수와 한상진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한 이승만을 반대로 칭찬할 수 있단 말인가?  


한상진 전 사회학과 교수가 54년 세계정치사의 치욕적인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모를리는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곡학아세(曲學阿世)일 뿐인가? 






당시 신문 기사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 부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1면과 사설

"개헌안 부결" "아슬아슬한 1표 차이"



동아일보 사설 


"(부결 시킴으로써) 우리 조국의 민주정치의 위기가 수습되었다" 





11월 29일, 다시 열린 국회. 자유당은 정치 깡패들, 이정재 (이기붕 의장 개인 비서 겸 자유당 당원)를 국회 안으로 배치시키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야당 의원들이 다 퇴장해버리자, 국회의장 이기붕이 개헌 통과 봉을 두들겼다. 






11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  이철승 의원이 국회의장 최순주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회서 난투극 !"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경향신문 12월 1자 사설에서는, 자유당이 정치깡패 이정재를 국회에 투입시켰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폭력단이 의장내부에 출현횡행하였다 하는 것은 세계의정사에서도 미증유의 사태일 일뿐 아니라, 아무리 후진적인 이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동아일보 11월 30일자 논평:

"어느 편으로 결정되어야 할 지 의문시될 때에는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라

indubio prostatus quo "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인데, 자유당식 셈법으로 사사오입해서 0.3333를 버리고, 135명이 '개헌' 가능선이 된다는 주장이다. 



12월 7일자 동아일보 "단상단하" 코너.

유진산이 폭력배 이정재를 국회로 끌어들인 자유당 이기붕의장을 비판했다. '무뢰한'이라는 표현이 있다. 





(419 혁명 이후, 이정재는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1961년 6월 석방된다. 그리고 1961년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10월에 사형당했으나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적 사형이었다. ) 



조폭 동원 정치

1957년 5월 25일 서울 장충단 민주당 연설회 :


조폭들과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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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5월 25일  조병옥 (민주당) 연설 방해, 앰프에 불을 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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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 공원 연설, 조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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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선친은 미국에 유학 가서 이승만의 분탕질을 직접 경험하셨고, 안창호 선생님으로부터 이승만의 문제에 대해 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유신헌법을 배운 유일한 세대입니다. 종신대통령이 되기 위한 헌법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현한 헌법이라고 배웠습니다. 한상진, 정말 또라이네요. 이 자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할 듯합니다.

    2016.01.17 02: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선친의 경험은 참 중요해 보이는데요. 어떤 증언록이나 기록이 있는가요?

      2016.01.25 00:32 신고 [ ADDR : EDIT/ DEL ]

한국정치2016. 1. 6. 11:54

2016년 대구는 새누리당(박근혜) 지지율이 77% 정도이지만, 언젠가는 대구 민심도 변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그 대구 민심 변화의 역동성이 보인다. 


일제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이승만과 이기붕이 가장 두려워했던 도시가 바로 대구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한 도시에서 보수적으로 변화된 시점은 박정희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1963년 대선), 울산 부산 대구 지역에 집중적으로 '공업화' 투자를 하고 나서였다. 


그게 정치적으로 결실을 본 것은 1967년 대선이었다. 거칠게 말해, 세대로 치면, 대구는 3세대가 60년 동안 그 주류 투표 행태가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구의 이러한 정치의식과 민심은 고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의 조건들이 물론 필요하다. 맨 먼저 아직은 소수이지만 진보정당 (*통합 정의당 지지율은 2.5~3.5%로 나오고 있다) 운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지속된다면 대구 역시 변화가 가능하다. 또한 선거제도가 바뀐다면 새누리당과 같은 보수당의 독주는 종식될 수 있다.


 세번째는 대구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지 않고, 지역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서울에서 '하향 공천'을 하지 않고, 대구에서 자율적인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대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해당 지역에 있는 대학 출신 국회의원 숫자가 전국에서 가장 적은 곳이다.) 


네번째는 비-새누리당 정치세력과 정당들간의 유연한 선거연대와 정치적 공동 활동이 필요하다. 새누리당도 내부 분화가 필요하다. (유승민의 경우도 그런 사례가 될 수 있다, 합리적인 보수세력도 등장해야 한다) 


 다섯번째는 이런 국내적 사정 말고도, 국제적 정치 조건들이 변화되어야 한다. 한국은 유럽과 정치지형이 참 다르다. 


유럽국가들은 국경선을 서로 접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정치적 개혁과 변혁 내용들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변화와 역동성'을 추구하고 있다. 좌파건 우파건 그렇다. 한국은 일본,중국,북한,러시아 정당들과 교류가 거의 없거나, 체제와 관행이 너무 다르게 고립되어 발전되었다. (한국 김종필-박정희와 일본 우파들과의 교류 등은 주목해야하지만) 


최소한 분단체제가 극복되고, 고립된 섬이 아니라, 대륙과 자유로이 왕래가 가능해야, 정치도 유권자도 변화될 수 있다.


 

(*한국 현대사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 보인다.) 






(이승만과 이기붕 가족, 1960년 419 혁명 발발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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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5월 15일 대통령, 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흥미롭다.


진보당 조봉암과 자유당 이승만의 대결이었다. 신익희 후보가 선거 직전에 급사했기 때문에, 무효표가 많다.

경북에서도 이승만이 조봉암을 이기긴 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근소한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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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선거에서, 장면 후보는 경북에서 자유당 후보 이기붕을 11만 7천표 가량 앞섰다. 장면 (민주당) 후보가 4,012,654표( 46.4%)를 획득해, 3,805,502(44%)를 획득한 이기붕을 눌렀다. 20만 6천표 차이로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서울은 압도적으로 민주당 장면 후보가 앞섰다. 그러나 경기, 경북과 경남을 제외하고는 이기붕이 민주당 후보 장면을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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