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노트(독후감)2014. 9. 6. 15:30

체 게바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쿠바에 대한 찬양도 아니고, 밀림으로 들어가자,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체 게바라가 사교육 시장이 일상 곳곳에 뿌리내린 한국 에 왔다면 아마도 무기를 버리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나 진지전 (war of position)을 사회변혁 전술로 채택했을 지도 모르겠다. 체 게바라를 이야기하는 건 쿠바 사회주의나 사회주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개인적인 의미이다. 체 게바라의 삶에서 보고 배운 것, 어떤 통찰력 같은 것을 보게 된다. "인생의 끝은 어떠해야 하는가?" 유종의 미에 대한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답을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518 광주 항쟁 윤상원 선생도 마찬가지 유형의 인물이다. 


1959년 쿠바 혁명이 완결되고 나서, 체 게바라가 강조한 대목은 "교육이 사회주의 건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체 게바라가 강조했던 교육의 중요성, 그 정치적 목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을 통해서 자기가 변해야 한다고, 새로운 사회는 어차피 새로운 습관으로 가득 차야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불온서적 관리부가 도서관에 있었다. 2014년 한국도 다른 나라도 체 게바라를 언급한다고 해서, 그의 노래를 듣는다고 해서, 그 주장과 연설을 소개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급진파가 되거나 혁명적으로 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사교육과 대학입시,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사회, 자본과 신분제도가 교육을 통해서 정치적 통제력을 발휘하는 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럴 것 같다. 책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불온 간행물 관리번호 5496."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국 지식인들은 좌-우 균형을 겸비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우측으로 기울게 하여버린 불행한 비극적인 역사가 1945~1953년 내전과 국제전쟁 (한국전쟁)을 통해서, 그 이후에도 더 강화되고 지속했기 때문이다. 



쿠바와 남미 사회주의 건설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국가가 어떻게 교육을 책임질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내 독서 독후감 메모장에는 이 대목이 교육자와 피교육자 구분이 종국적으로 없어지는, 교육자 역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 포이에르 바흐 테제 일부와 연관이 있다고 적혀져 있다. 체 게바라 혹은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에서 교육 담당 주체로 "교육부"나 "국가" 혹은 공산당, 사회당이 있었지만, 사실상 과거 자본주의 국가에서 행해진 교육과 큰 차별성을 가져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육 주체와 피-교육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사회주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문제는 그 중요성에 불구하고, 체 게바라에게도 우리에게도 쉽지 않는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2014년 친구같은 지도자도, 전위의식을 가진, 다시 말해서 대중의 이해관계에 기반하되, 그 의식들을 선도해 나가는 선구자적인 전위들이 실종되었다. 그게 2014년 현 주소이다.


 "전위 뱅가드는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하고, 미래가 가져다 줄 성취와 보답이 뭔지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체 게바라가 이야기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기획과 실천이 가져올 정치적 성취가 뭔지에 대해서 미리 미리 알지 못하고서는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2000 년 가을 독서 노트




"전 세계 혁명가들이 체 게바라의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미소를 남기고 죽기도 힘들다... 그건 도전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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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교육2013. 6. 11. 05:22

2012.Sep.5. 학부시절에는 책을 오히려 사서 많이 봤다. 책 표지에 종이 한 장을 씌워서 그것도 모자라서 비닐로 싸서 줬다. 검열에 대비하는 것이었고, 책 손상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보지는 않았다. 심지어 도서관의 기능이 영화 상영이나 가끔씩 농성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직장을 관두고 다시 대학원을 들어가서 당시가 문민정부시절이었다. 읽어야 하는 책들은 서점에 많지 않으니 도서관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서관 한 사무실, 방 2개가 소위 <불온 도서들>이 있었다. 이 책들을 읽는 사람들은 기록에 남기고, 도서관 바깥, 그것도 그 불온 도서실에서만 읽어야 했다.


이 책을 복사 (저작권법에 걸리지만)할 수 있었던 것은, 사서들의 도움이 컸다. 예전에는 학교 직원들 (본부실에서부터 수위 아저씨까지)은 잠재적인 아니 노골적인 정치적 적이었고, 우리들을 감시하거나 안기부나 경찰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실제 그러기도 했다.


제도권으로 이동. 학교 병원 이런 것이 우리가 말하는 '제도'이다. 그 안 공무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갔다. 실제 그들과 접촉하고 대화를 나누고 사회생활 일부이고 공적인 관계이지만.


꼭 필요한 책이오니 필요한 부분만 복사를 하겠다고 하고 학교 바깥에 나가서 복사를 해서 들고온 책이다. 책 제목은 Paul Mattick 폴 매틱이 1978년에 쓴 <경제학, 정치학, 그리고 인플레이션 시대: Economics, Politics, and the age of inflation> 요새 논의되는 서구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담고 있다.


사서들도 교수나 학생들에 대해서 불만은 있었다. 학교 본부 재정은 충분한 편인데, 필요한 저널이나 책을 신청하라고 하면,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잘 하질 않는다고 한다. 그 이후로 저널들이나 책들을 써서 가져다 주곤 했다.

진짜 시절이 변했다. 학교 공무원들과 평화공존의 시대가 열려버린 것이다. ^^


그런데 1997년 IMF 통치시절이 오고, 도서관 사서들도 울쌍이 되었다. 대학본부에서 도서 구입비를 엄청 삭감해버린 것이다. 외부에서 보면 공무원 부서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도서 구입비가 삭감되고 도서관리비도 줄어들고 그래서 불만이 이래저래 많다고 이야기했다.


'제도'와 '공간', 우리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다.




2008년 미국 금융 공황 이후 케인지안과 Keynes 의 복구,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마르크스의 부흥을 이야기하고 있다. 폴 매틱은 후자의 관점에서 혼합경제(케인지안의 수정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그런데 이런 관점과 논의들은 1970년대 68운동과 더불어 '국가'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각도에서 진행되었다.


복지 논의에서 아쉬운 것은 이런 점이다. 최소한 학교라는 '제도'안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 '제도' 안에서 벌어졌던 논의들의 역사라도 짚어가면서 '현재'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한국 지식인들이 냄비근성이니, 바람 풍하면 바람 풍이요, 바담 풍해도 바담 풍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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