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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왜 대화가 잘 안될까?


원시


http://www.newjinbo.org/xe/1233022008.07.08 17:00:453675


날씨가 더워 잠시, 인터넷과 정치를 생각해보다.


1. 난 논객이 아니고, 태권도로 치면 파란띠나 되려나?


내가 진보신당 게시판에 글을 쓴다 하니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논객'이냐고. 웃고 말았다. 


논객(論客)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맹자이다. 맹자(孟子)가 양혜왕을 만나서, 하필이면 '왕이 되어가지고 이익을 이야기하느냐 ?'(하필왈리 何必曰利)고 준엄하게 비판했다. 논객은 이런 사람을 일컫는 거 아닌가? 혹은 하마못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수많은 식객(食客)들 정도는 되어야 논객의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가 그냥 웃고 만 것이다. 한국에서 인터넷 논객은 2002년부터 만들어진 말이다. 컨텐츠 부족으로 1~2년 못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야망이 정해진 사람들 (서프라이즈 등), 혹은 '진보'를 이야기하지만 준비가 너무 부실했다.  


2. 자기 색채가 뚜렷해야 하는 진보신당 인터넷 게시판 


포르노 동영상 공급, 인터넷 게임, 홈 쇼핑, 일반 동호회와 비교해서, 예를들어 진보신당 게시판은 무슨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맹자 이야기를 해보다. 맹자는 아마 군자(이상적인 왕)에게 한 이야기겠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나이가 많다고, 돈이 많다고, 지식이 많다고, 자기 배후 배경이 많다고' 이 네가지가 많다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맹자>에서 말한다. <맹자>를 처음 접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이 말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1) 인터넷에서는 맹자가 말한 4다 (네가지 많은 것)를 피하고, 수평적으로 만났으면 한다. 


한가지 사례를 이야기하면, 민주노동당 시절, 최장집 교수를 마치 '진보의 대표적인 지식인'처럼 권위를 부여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좌파는 우파와 달라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절대적인 숭배 태도나, 무작정 묻지마 '권위 부여'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무슨 타이틀, 직위 등을 먼저 내세우거나 거기에 의존하는 작태는 버려야 한다. 인터넷 여론장은, 마치 투표 4대 원칙(부르조아 민주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처럼, 그런 속성을 지닌다.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현실 사회적 관계의 편견을 괄호치고, 1인 1표 행사를 하는 곳이다. 


(2) 대화를 즐겨야 한다. 


그 다음은,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고찰해야 할 것은, '대화 (對話: 상대가 있다는 의미)'의 공간이 바로 인터넷이다. 이명박 몰입영어교육 때문에 영어 쓰는 게 꺼려지지만, 대화의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잠시 써본다.  다이얼로그 dialogue, 독일말로는 디알레틱(Dialektik) 이라고 하는 것도, 다 di (two 두개, 두 사람, 두개의 사물, 두 측면, 두가지 특질)가 붙어있듯이, 인터넷에서는 대화를 잘 했으면 한다. 


(*   rabbit/rabbit (12).gif이거 요새 내가 배운 것이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한물지난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한물지나갔지만 배울려고 애쓴다) 대화는 실은 한자어로 보면 인간 (人間)할 때, 그 뒷자 '사이 間'을 의미한다. 


(3) 가급적이면 자기 주장의 근거들을 제시했으면 한다.


인터넷이 없으면 해외에 있으면서 진보정치 공간을 학습할 기회를 박탈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인터넷 발달과 와이브로와 정치공간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난 해석한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경험으로 비춰보건대, 글이나 말의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이것은 부정적인 모습이고 인터넷의가장 큰 맹점이고 한계이다. 


소위 논객들은 이미 정해진 목표들을 향해 "목소리는 큰데,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가수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눈빛도 맑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고. 굳이 논객들이 아니더라도, 민주노동당 게시판 (2004년-2008년)은, 당원들이 혹은 논객들이 대화를 통해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하려는 마음 보다는, 그리고 나의 상-대(對)와 교접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성, 제왕의 성을 쌓으려고 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는 악날한 범죄행위도 자행되었다. 관객들은 다 떠나게 되어있다.


(4) 물질적 심리적으로 뭔가 얻어가는 인터넷 공간이었으면 한다.


 좌파가 아직 아마추어라도 진실성을 가지고 있고,그 진실성과 구체적인 전문 능력을 결합시켜낸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주의 좌파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앎이 어떠한 타인의 지배나 군림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배체제를 조장하는 큰 바위를 뚫는 한 방울의 낙수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럽의 역사 기록을 보면, 좌파와 사회주의 개념, 혹은 민중들의 저항 철학은 '너무나 너무나 윤리적인' 요청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심리적 위안이란, 이러한 윤리적 요청들과 관련된 주제들을 많이 계발하고, 풍부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 춤, 책, 영화, 스포츠, 정치, 가족, 연인, 음식, 옷, 가구 등 모든 소재들과 우리 활동 공간에서 만나는 것들에서 말이다. 그렇지 않고, '윤리'만 강조해버리면, '나는 진실한데, 너는 진실성이 떨어진다. 나는 옳은데, 너는 그르다'는 식 대화밖에는 할 수 없다. 보는 관중들 물병 던지고 그라운드로 난입한다. 이런 식 대화나 글쓰기는 물질적으로도 심리적으로 뭐 하나 얻어가는 게 없다. 


(5) 좌파가 정치 컨텐츠를 드러내고 발굴하는 '접점'은 어디인가? 


한가지 사례만을 들어보자.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이나 노조건설 (삼성 회사)이 바로 일종의 사회적 화해이다. 이는 마치 예수의 화해의 죽음(Versoehnungstod 독일어 화해+죽음 = 예수 십자가에 못받혀 죽음) 과 비슷한 것이다. 


칼라tv에 나온 뉴라이트들과 우익 청년들의 좌파 이해는 "예수의 죽음, 화해의 죽음"과는 다르다. 이들은 마치 좌파는 계급의식를 고양하고 인간을 분열적 존재로 파악하는 쌈박질 좋아하는 인간들로 치부해버린다. 더러운 그림이다. 


예수죽음에 대한 좌파적 해석은 바로 그 죽음이 사회정의를 이루는 한 방식라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고 그 해법이 드라마처럼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좌파의 글쓰기는 이러한 예수의 '화해의 죽음 (인간과 신의 분열, 인간과 인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화해의 죽음)'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적 기독인들의 '고정불변'의 예수해석에 그쳐서는 안되고, 늘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칼라tv가 조명하지 못하는, 수많은 '화해의 죽음들'이 귀신이 되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마치며: 그나저나 왜 인터넷 여론장에서 대화가 잘 안되는가 ?  목표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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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그냥 서민


나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정한 ..... 올린글의 배경과 '그 사람'의 고민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바뀔지,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빠블리또

경우가 약간 다르지만 참고할 만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애인과 전화(채팅)으로 얘기하는 것이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싸울 확률이 훨씬 높지요. 벙어리 채팅은 의사소통의 수단인 눈빛,표정,침묵 등의 시청각적 수단들을 가동시키지 못하게 하지요. 또한 표정없는 전화는 의사소통의 수단 가운데 얼굴 표정과 눈빛 등의 시각적 요소들을 모두 무시하게 만들지요. 그러니 전화와 채팅으론 좋은 얘기만 해야 합니다. 싸움을 만들어낼 소지가 크고 싸움 자체도 더욱 극대화할 소지가 높은 수단들이거든요. ^^. 그러니 보십시오. 문자 메세지로 받는 해고통지로 직접 대면해서 받는 것은 천양지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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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와우~~ 잘 읽었습니다 ^^ 논객 맞으시네요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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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원시님 글은 일단 재미있어서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 인터넷 여론장에서 대화가 잘 안 되는 까닭은, 제 생각엔 상대방의 눈을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약 30%고 나머지는 다양한 표정 변화와 그 사람의 눈이 70%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역시나 온라인 상에서의 대화는 30%밖에 주고받을 수 없는 관계로 완벽한 대화를 이끌어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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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글 좋습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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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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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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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생각나는대로 메모

 

 

원시

 2008.07.04 09:48:155641

     

가만보니까 아도르노 책 이름이 아이디이네요? [Negative Dialektik] 근데, 변증법이라는 번역은 올바른 것인가요? '변증' 왜 변증이라고 번역을 했을까요?...

 

부정변증법/ 도구적 합리성이 다른 종류의 합리성을 억압하거나 지배한다는 진단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Edmund Husserl 등)은 대체적으로 맞는 말인데요. 이 말을 정치적으로 잘 해석해야 할 듯 합니다. 선진자본국가, 제국주의 국가 경험을 한 상태에서 도구적 합리성의 '통제 불능'이나 '과잉'을 반성하고 (나찌의 광폭과 범죄, 히로시마 원폭 등) 그렇지만, 다른 나라들은 '도구적 합리성'의 과소발달로 고통당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고...

 

 

 

하버마스가 말한 것은 -도구적 합리성 그 개념은 Horkheimer/Adorno [도구적 이성 비판 Zur Kritik der instrumentellen Vernunft, 1967] [계몽의 다이어렉틱 Dialektik der Aufklärung] 에서 말한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하버마스가 이성이나 합리성 개념을 조금 자세히 설명한 대목이 있는데 [ 커뮤니케이션 행위 이론 1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I] 126 페이지 - 151 페이지 사이입니다.

 

 

 

1) 목적 (전략적) 행위 - 행위자 (우리 인간 행위 주체)가 객관적 세계 (자연)와 맺는 방식과 연관

2) 규범적 행위 - 행위자 - 사회적이고 객관적 세계 

3) 드라마 (연기/ 표현) 행위 - 행위자 -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행위) - 주체 - 세계 이 세가지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버마스는 칼 포퍼의 [세가지 세계]를 공부해서 비판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말씀드린 부분은, 하버마스가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와 달리) 인지-도구적 합리성을 인간행위에서는 어떤 "나쁜" 것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지-도구적 합리성이나, 목적(전략적)행위 자체 역시 그 행위 자체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목적 전략적 행위 자체가 '참'이라는 근거제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규범적 행위 역시 그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타당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행위 주체들이 자기 행동들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표현적인 주관적인 행위 자체도 그 진실성을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그 자신 주관적 표현적 행위가 타당성을 입증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하버마스의 [진리론 Wahrheitstheorien]에서 나오는데요, 나중에 오스틴과 썰의 언어 이론을 공부해서 나중에는 '행위' 이론과 접목시킵니다. 의사소통 행위 자체가 도대체 위의 3가지 행위들과 뭐가 다르냐? 이런 논쟁도 있었습니다. 의사소통행위는 '상호 이해 Verständigung'을 목표로 합니다.

 

 

 

베버 이야기는, 조금 더 다른 것 같습니다. [경제와 사회]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아실테니까...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하버마스가 이해한 베버는 '도구적 합리성' 이런 개념은 아니고, 베버가 말한 목접 합리적 zweckrational, 가치합리적 wertrational, 감정(정서) (affektuell), 전통적 (traditional) 행위 분류 방식을 언급합니다. (TKH I S. 381)

 

...

 

마르크스도 넓은 의미에서는 부정변증법님이 이해한 "꽉막힌 근대성"을 비판한 것입니다. 가치(Wert) 법칙이 인간행위나 생산자의 노동동기를 지배하고,  고상함도 우아함도 없는 오로지 얼음같은 계산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고 본 것입니다. (공산당 선언)

 

 

 

그거야 어렵게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고요.

 

 

문제는 '꽉막히게' 만든 그 메카니즘이 뭐냐? 역사적 기원은 무엇이며, 현존하는 주체들은 누구냐? 콘트롤 파워와 타워는 어디에 있느냐를 밝혀내는 것이니까요. (아는 이야기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버마스의 4가지 위기는 [후기 자본주의에서 정당성 문제들 Legitimationsprobleme im Spätkapitalismus 1973] 라는 책에서 4가지를 언급합니다. 이후 1980년대 초반에서 쓴 THK 책에서는 이러한 4가지 위기를 '생활세계'와 '체계'의 교환모델 (일방적 침식이 아니라, 하버마스는 교환 모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Talcot Parsons 사회학과 다른 구상입니다) 을 가지고, '생활 세계의 내적 식민화' 테제를 이야기합니다. 10년 동안 생각이 조금 더 변한 것입니다.

 

 

 

아무튼 60년대 거치면서, 사회복지 국가 경험을 하면서, 하버마스가 서독을 보면서, 4가지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첫번째는, 경제적 위기 (위에서 말한 맑스의 가치 Wert 법칙이 국가 기구를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두번째 위기는, 합리성 위기 (자본가들의 반항을 사회복지국가도 제어하지 못한다)

번째는 '정당성 위기' (사회복지 국가의 행정주의적 태도와 관료주의적 호혜가 문화적 전통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네번째 위기는 '동기 위기' 는 정치적 시민이 아니라 '상품소비'의 고객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 일상생활에서 소유 개인주의, 벤담의 공리주의 (Utilitarianism)가 개인 가치관의 주류를 이룬다. 이는 베버가 말한 '문화적 빈곤'과 연결되고, 제임스 오코너 (James O'connor)가 말한 '인성 위기 (personality crisis)' 와 그 맥이 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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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츠키/ 하버마스가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비판하면서 '도구적 합리성'을 다시 해석한 거예요. 

이야기가 Jürgen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and 1, 2 이야기라면, 

Max Weber 개념도 아니고, Adorno, Horkheimer 랑 다른 개념입니다.

 

 

 

 하버마스가 2가지 '전회' turn 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언어적 전회 (이는 철학에서 언어철학의 유행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Frege, Wittgenstein, Austin, J Searle ) 또 다른 하나는, Thomas McCarthy 의 조언을 받아서, 사회학 이론들을 공부하게 되는데 THK II 에서 나온 Mead, Durkheim, Talcott Parsons 의 사회학 이론들입니다. 하버마스가 맑스주의자들의 '정치 경제학 비판'이나 '국가이론' 논쟁으로 가지 않고, 또는 채택하거나, 더 발전시키지 않고, 사회학 이론들을 자기 이론틀로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학이냐 비과학이냐는, 과학철학에서 조금 다루고, 하버마스의 경우, 아도르노+ 하버마스를 한편으로, 칼 포퍼와 논쟁한 적이 있지요. 그거 보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하버마스가 '호르크하이머'에게 배운 거 별로 없습니다. 호르크하이머는 하버마스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반대한 사람이고, 학교에서 쫓아낼려고 한 사람입니다. 하버마스가 박사학위 논문 쓸때인가? 사회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아마 주제가 미국의 독일 미사일 기지 NATO 관련된 것인데요. 하버마스 사회조사가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을 썼다고해서, 호르크하이머가 야단을 치고, 당장 때려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버마스가 글을 잘써서 아도르노가 자기 조교로 쓰지만, 박사학위 논문은 아벤트로트(Wolfgang Abendroth)에게서 쓰게 됩니다. 하버마스 본인도 나중에는 서구강단 마르크스주의자랑 싸우게 되고, 독일 신좌파들 두치케 등과도 논쟁을 하고, 당시 68 독일 좌파들을 '좌파 파시즘(Linksfaschismus)'이라고 비판합니다.

 

 

한국에서 '우리안의 파시즘'이 90년대 임지현, 권 모 교수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역사적 맥락을 알고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도르노 - 마르쿠제 편지 사건도 있고 한데, 나중에 이야기하죠.

 

 

#좌파 파시즘 (Left wing fascism : Linksfaschismus) : 한스 위르겐 크랄 (Hans-Jürgen Krahl), 오스카 넥트 (Oskar Negt), 루디 두치케 (Rudi Dutschke) 등 당시 좌파 학생운동가와 아도르노, 하버마스가 갈등을 겪었다. 학생들은 자기 선생이었던 아도르노의 연구실을 점거했고, 아도르노는 경찰을 불러 자기 제자들을 내쫓았다. 아도르노와 하버마스는 이들의 점거농성을 '좌파 파시즘'으로 비난했고, 학생들은 아도르노를 강단에 안주하는 비실천적인 지식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박사과정 제자 한스 위르겐 크랄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후 1년 뒤, 아도르노는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비극적인 선생과 제자의 죽음이 이어지고 말았고, 그 둘은 살아 생전 화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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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변증법

 

원시님 문득 뭐 하시는 분인지 무척 궁금해진다는...아이디가 책이름 맞습니다. 변증법이 맞는 번역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이미 이 용어로 굳어졌기에.... 그런데 제 아이디는 중의법입니다. 책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변증법을 부정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실제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 역시 헤겔 변증법을 파괴하는 것을 목적하였으니... 신기한 것은 네그리는 긍정만 남겨두면서 변증법을 파괴하고, 아도르노는 부정만 남겨두고 변증법을 파괴하는데, 그 실천적 후예들인 이탈리아 자율주의자와 멕시코 사파티스타는 거의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음. 그런데 하버마스가 글을 잘쓴다는것은 절대 동의 못함. 벤야민이나 아도르노는 확실히 글을 잘 쓴는데, 무슨 대학원생 페이퍼 같이 주저리주저리 엄청나게 늘어놓는 하버마스의 글은 때로 무척 지루합니다. 특히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파슨스, 뒤르켐, 미드 부분.... 매우 중요한 부분임은 인정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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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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