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정의당2020. 10. 4. 22:29

김종철 후보, 배진교 후보 쟁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받는 정의당 이념들, 진정한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정의당은 노동자와 시민의 정당이다. 그런데 가장 착취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플랫폼 노동자도 정의당에 다 투표하지 않는다. 냉정해지자. 그들이 정의당보다 민주당 국힘에 더 많이 투표했다. 시민 범주도 마찬가지 현실이다.


지난 20년간 정의당 진보정당을 가장 많이 지지하는 유권자층 1개를 뽑으면, 현재 40대~50대 화이트칼라 유권자이다. 


배진교 후보가 “이념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으로 더 큰 정의당을 만들기 위해 제 2창당을 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이념(이데올로기)없는 정당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고, 대중정당의 반대말(상대어)는 소수정예 (cadre:정치활동가, 혹은 전위) 정당임을 몇 차례 설명했다. 


당대표는 당 발전전략을 쉽게 말해야 한다. 정의당이 선거에서 더 많은 당선자를 배출하고, 평소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20~25%를 5년 안에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해야 한다. 


60~70년대 개념이지만,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Alford Class Voting Index)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는 정말 단순한 말이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와 중간층 및 중산층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의 차이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의 70%가 좌파정당에 투표했고, 중산층의 20%가 좌파정당에 투표를 했다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50이다.


정의당은 어떠하겠는가?  우리 진보정당 운동 수준이 ‘이념 정당’ 대 ‘대중정당’ 이런 잘못된 개념사용과 이분법에 머물고 있어서는 안되지 않는가? 지난 20년 진보정당 역사 속에서, 정의당은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증가와 ‘하락’, 이 두 가지 전략을 다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들도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노-노 갈등도 심화된 현실 하에서, 정의당의 지지층을 더 확장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포괄하지 못한 유권자들도 정의당 지지자로 만들어야 한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를 활용해, 정의당의 유권자가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확장전략을 사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2020년 정의당 당대표 핵심단어는 ‘지역 정치 발전 강화’이고 2020년 지방선거 승리다. 16개 시도 권역, 선거구 모두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다를 것이다. 이런 조사에 근거한 선거전략을 세워야 한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자.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사회주의 북구형, 독일 가족 중심형, 프랑스 예외형)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투표(class voting)는 전반적으로 하락한다. 


스웨덴의 경우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1948년경 50에서 1986년에는 35 전후로 떨어진다. 영국의 경우 1948년 40 전후인데, 1980년대 들어와서는 20으로 하락된다. 서독의 경우 같은 기간 30에서 10으로, 프랑스는 33에서 15로, 미국의 경우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45에서 72년 3으로 현격히 떨어졌다가 1980년대는 8~9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의당은 어떠하겠는가? 서유럽과 다른 여러가지 ‘특이점들’이 한국에서 드러날 것이다.


필자 견해는 아래와 같다.  


1997년 이후, 한국 국가와 시민사회는 자본권력에 점점 더 종속되었고, 한국 자본주의 분화와 복잡성은 증가했다. 직업의 종류도 늘어났고, 특히 도시 공간 사적 서비스 노동자 숫자는 늘어났다. 이로 인해 노동자-노동자 갈등이 발생할 물질적 문화적 조건들도 많아졌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압박과 부당한 착취를 당하는 계급 계층들이 더욱더 다양하게 변했다. 이것 때문에 이들의 정치 의식 또한 여러가지 흐름들로 사안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이런 한국 자본주의 축적과 이윤 창출 방식의 변화가 정의당에 던져주는 정치적과제는 무엇인가? 


진보정당이 고민하는 정치 혁명, 개혁, 변혁의 주체는 계급분석에 반드시 기초해야 하지만, 계급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특정 계급의 정치적 우월성이나 선차성 관념(제1주력군, 제2주력군, 제1보조군, 제2보조군 등)등은 인간의식을 계급적 존재에 귀속시켜 버리는 결정주의적 사유방식의 잔재이다. 그래서 정의당 내부에서도 다원주의적 가치들의 존중과 실천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 기반 정치(class-based politics)에서 가치 기반 정치(value-based politics)로, 구 정치에서 신 정치 주제들로 옮아가자는 것인가?


필자 생각은 이러한 두 가지 형식적 구별과 대조는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실천적이지 않다고 본다. 미국, 유럽도 그렇지만, 한국의 경우 계급기반 정치 주제들(경제 성장, 정치 안정, 국가 안보 등)과 신정치 주제들(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 환경, 여성, 인종, 반핵평화 등)이 서로 경쟁도 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두 범주 다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예를들어 녹색 생태가치와 노동자 계급 문제는 분리불가분하다. 한국 제조업 빅 5 산업은 화석연료에 기초해 있고, 가장 오염원을 많이 배출하는 반-생태산업이다. 한국이 지난 40년간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해왔고, 한국인들의 행복도도 높여왔다. 그러나 이 방식도 처음부터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을 딛고 유지되었다. 일례로 한국 타이어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보더라도 안전, 환경, 노동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조업 노동자가 환경오염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암환자 희생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의당의 이념들이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대중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를 높이는 방향이 하나이고,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하강 경향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을 연구하고 실천적 대안들을 발표하는 방향이 다른 하나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계급정치 (구정치)와 신정치 주제들의 동시 해결, 접촉면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정책화해야 한다. 하지만 구정치 주제들과 신정치 주제들은 서로 갈등을 빚거나, 정책상 우선순위 중요도로 경쟁하기도 한다.


정의당 당내에서 토론 주제가 되었던 ‘페미니즘’ ‘메갈’ 논란도 이미 다른 나라 역사에서 40년 전부터 경험했던 것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의당의 당 대표는 이러한 구정치와 신정치를 동시에 꿰뚫는 정치적 현명함과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 하락 경향과 관련해서, 정의당은, 기존의 민주노총 조합 자체가 한국의 가장 억압된 계급 계층,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사회계급 계층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비정규직 내부 분화들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지역, 일반 노조 등과의 직접 연대 행동 조직화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 형태들과 의식수준들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사회보험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500만에 육박하는 이 비정한 한국 경제체제-고용제도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정의당 당대표는 이 500만이 정의당을 지지하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정치적 이념들 (이데올로기들), 어떤 정치적 가치들, 어떤 정책들을 내놓을 계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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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1. 18:15

정의당에 대한 전우용 교수의 오진과 오해 (메모) 

민주당,통합당의 정의당 비판이 타당하면 수용하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전우용 교수의 정의당 진단과 평가는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 


전우용 교수의 페이스북 글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의당이 2020년 총선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구 좌파 (구 정치)' 주제보다는, 여성,청년,기후정의,동물권과 같은 '신 좌파(신 정치)'로 기울어져, 유권자들이 정의당에 대해 혼란을 겪고 말았다.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무게감있는 진보정당 역할을 할 지 의문이 든다.


(1) 전우용 역사학자는 서유럽을 보면서, '경제적 불평등, 분배정의, 군사 안보'와 같은 구정치,구좌파 주제가 발전하고 난 다음, 신 정치(뉴레프트 주제들)이 등장한다고 봤다. 그런데 환경운동,녹색연합 운동이 출발한 게 1980년대 말, 90년대 초라는 점을 '역사적으로' 탐구하지 않은 탓에, 전우용 교수는 이러한 '구 정치' 다음 '신 정치'라는 기계적인 이분법에 빠졌다. 


서독의 '녹색당'과 같은 뉴레프트 주제, 환경과 평화 주제가 한국에서도 벌써 30년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전우용 역사학자는 인식해야 한다. 

기후정의, 코로나 19 위기와 같은 의학의 영역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하고, 구 정치와 신정치는 착종되어 더 복합적인 정치 문제로 등장함을 전우용 역사학자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2) 한국 지성사라고 할까? 문학사, 역사학, 철학, 사회과학 역사에서, 1960년대~1970년대에서유럽의 '신 좌파' 흐름들과 사회적 저항 시를 담은 포크 송, 서구 록 음악을 한국사람들이 수용했다. 


기존 마르크스주의와 소련 사회주의 추종자들과 달리, 미국/서유럽의 노동자계급은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 자본주의 체제에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체제에 포섭되지 않은 '변방인들, 배제당한 사람들, 아웃사이더, 유색 인종, 실업자' 와 반전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등) 선봉에 선 학생들과 청년들이 미국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본 마르쿠제 (Marcuse)의 아이디어도 한국에 소개되었다.


프랑스 앙가주망,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나 문학 등도 기존의 구 정치보다는 신 정치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찬반을 떠나, 사르트르는 소련 마르크스주의를 '게으른 마르크스주의'로 비판하며,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소련 체제를 격렬히 비난했다. 


1980년 518 광주항쟁 이후,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 한국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은 소련사회주의 교과서와 북한 주체사상 교과서를 반독재 반제국주의 투쟁의 기초 안내서로 받아들였다.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 타도 운동은 실천적으로 진지했고 격렬했으나, 그 이론적 철학적 지적 분위기는 세계사와 동시대 국제정치로부터 동떨어져, 특이하게 고립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 부분은 이후 상술함)


(3) 이러한 실천과 이론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 신좌파라고 할 수 있는 생태, 여성 운동 등은 8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리고 실천적으로도 구정치(구좌파) 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들이 환경오염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에, 구좌파와 신좌파의 '공통 분모'는 그 차이에 비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사회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 생태+ 마르크스주의 = 생태 사회주의 (ecosocialism)이라는 융합 좌파 상품이 존재한다고 선전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들 패러다임 간에는 상충, 갈등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공통 분모만 강조해 아무도 깰 수 없는 '합금'이라고 과장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한국 좌파, 진보정당의 특질은, 70년대 박정희,80년대 전두환 노태우의 '독재정치'와 구별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정신이, 행동과 조직화의 원천이다. 학생과 여성들의 머리카락과 신체를 국가 경찰과 군인이 함부로 깎아버리고, 개인 공간 (personal space)를 동의없이 구타, 처벌하고, 획일적인 이데올로기 (반공, 반북)를 암송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두는 체제에서, '다원주의와 관용'은 저항의 원동력이 되었다.


70년대~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은 단지 '반독재 저항 투쟁'만이 아니었고, 기득권과 기성세대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세대 간 투쟁'과 문화투쟁도 포함하고 있었다. 

  

한국은 5천만의 인구를 가진 커다란 나라이다. 서유럽의  UK,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규모이다. 진보정당과 좌파정치의 발전경로가 서유럽이나 미국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역사에서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국가별로 '비동시성'과 '동시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유럽이 구정치 먼저 하고 신정치는 나중에 했으니까, 한국도 그럴 것이라고 막연히 대입하는 것은 기계적인 종속적인 사고방식이다.


4. 정의당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구정치를 덜 발전시키고, 신정치만 해서가 아니다. 신정치 내용이건, 구정치 내용이건, 그 깊이와 뿌리가 아직 허약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 그리고 지난 20년간 진보정당이 노동자 시민들의 기대보다 그 발전 속도가 더딘 이유는, 전우용 교수의 견해와 달리, 다른 100가지 넘는 이유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서술하겠다.



관련 글 (1) 구 좌파, 신 좌파란? https://bit.ly/3bsRS41


(2) 생태운동과 결합 : 신좌파와 구좌파 공존 https://bit.ly/2LhqHhV 


(3) 노동-생태 공통분모를 찾아라 : https://bit.ly/3bjXAFe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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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2019. 4. 27. 09:03

나경원 화보와 시각 장애인 한혜경의 정치 제안  


(1) 패스트 트랙 몸싸움 속에서 우리는 나경원 투사 화보를 감상하게 되었다. 나는 나경원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등장했을 때, 엘리트 보수상품이라는 전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성동아에 나온 '장애인 엄마'라는 감동적인 인터뷰에 눈시울 적셨다. 그런데 그 후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과 나경원 의원이 공모하여 딸 김유나씨를 부정입학시켰다는 뉴스타파 보도를 보고 그 눈물을 거둬들여야했다.  

보수파라고 해서 나경원과 같은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회 정치적 문제를 개인적 권력과 돈으로 해결하려는 나경원 스타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손쉬운 선택은 다만 보수파 나경원의 행태만은 아니다. 혁신파, 중도파도 일상에서는 예외가 아닌 게 우리 실생활이다.  


아래 mbc 일일 기자로 나선 시각장애인 한혜경씨는 '연대'의 관점에서 시각 장애인과 함께 결함이 많은 서울시 도시설계를 고쳐나가자고 했다. 동일한 종류의 장애인 문제들을 나경원은 대학총장인 심화진을 이용하고, 다른 장애인들을 불공정한 방식으로 입시에서 떨어뜨리고 자기 장애인 딸을 합격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러한 나경원의 방식은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아 저 시각 장애인 한혜경씨는 이쁜데 불쌍하다'는 눈길과 유사하다. 이러한 개인적인 동정으로 장애인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전맹 장애인 한혜경의 입장에서 서울 지하철과 같은 도시 시설들을 설계할 것인가? 

시각장애인 한혜경씨의 제안은 당연히 후자이다. 한혜경씨가 세계적으로 편리하다고 소문난 서울 지하철 사당역 안을  따라가 보자. 


 

https://newstapa.org/43803 


(2)  전맹 시각장애인 한혜경 아주대학교 3학년 일일 기자가 제안하는 서울시 설계, 도시정치란 무엇인가?



난 음료수 상품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있는 지도 몰랐다. 그런데 커피 이온음료 구분없이 '음료' 점자만 새겨져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었다. 자기가 마시고 싶은 특정 종류를 고를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선택'의 자유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자본주의보다 더 우월하고 더 인간적인 어떤 체제가 있을려면 얼마나 더 섬세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맹 시각장애인이란 빛도 느낄 수 없는 정도라고 한혜경 일일 기자는 설명한다. 사당역 지하철을 빠져나오는데 20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출구 입구 계단 손잡이에 붙은 껌 때문에 손을 씻고 싶어 화장실을 찾으려고 했지만, 화장실 표지 점자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겨우 찾아서 손을 씻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고장난 수도꼭지가 문제였다. 손에 비누칠만 하고 말았다.


그 다음 불편함 소개는 음료수 사는 것이었다. 


한혜경 일일 기자는 시각장애인인 자기를 일시적으로 도와주는 것보다는 도시 생활 공간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다같이 고쳐나가고 제안했다.  한혜경 시각 장애인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와 같은 장애인은 없어지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이후에 장애인 당원들에게 자주 들었던 이야기였다. 한참 잊고 있었던 문장을 다시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말은 시각 장애인이 아닌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배려'가 제도화되고, 일상 생활에서 시각장애인이나 다른 장애인들과의 정치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1] 2000년 민주노동당이 어렵게 출발한 이후, 계급 패러다임, 생산과 분배라는 주제, 그러니까 전통적인 사회복지 국가 주제들이 한 줄기를 이뤘다. 그리고 환경, 여성, 평화 등 신정치, 비계급적인 신좌파의 주제들 역시 다뤘다. 여기까지는 나에게는 익숙한 주제들이고 내가 연구하고 공부해오고 있던 주제들이었다.


내가 새롭게 배우게 된 것, 과거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는 장애인 정치였다. 장애인의 정치영역과 고유한 실천들이었다. 

이 주제는 장애인 당원들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들으면서,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되었고, 우리들의 정치적 촉각과 감수성이 얼마나 더 예민해야 하는가를 내 자신 역시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정당 실천과 참여는 학습의 촉진제이자 공부마약이다. 


나 같은 경우 지하철에서 뛰면 1~2분이면 출구를 빠져나갈 수 있는데, 시각 장애인 한혜경씨는 20분이 소요된다. 우리 한국의 도시가 이렇게 친-장애인 도시가 아님을, 애초에 설계 당시부터 장애인의 눈, 발, 손, 머리, 심장의 입장에서 서울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구성이나 개혁이나 이런 단어를 쓸 때는, 바로 이런 경우이다. 장애인의 시각과 삶의 양식의 입장을 가지고, 서울을 재구성하거나 재건해야 한다. 사실 70년대보다 40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 속도는 너무 느렸다. 토지 빌딩 아파트 값 상승에 아이들 시각, 장애인 편리성, 여성의 관점, 노인들의 애로사항은 후순위, '다음에 해줄게'로 밀려났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자본주의 소유제도, 땅, 빌딩, 아파트, 주택에 대한 소유권에 대해서 반성해야 하고, 법제화에 대해서도 아이들, 장애인, 여성, 노인의 관점에서 현행법을 바꿔야 한다. 



[2] 장애인 정치는 비계급적인 주제이고 패러다임이다. 좌파 정당이나, 정의당, 녹색당 등만 할 수 있는 정치영역이 아니다. 각 정당들들이 여유가 좀 생기면 비례대표로 장애인을 배정하고, '착한 정당' 시연과 같은 정치적 올바름(PC)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꾸준하고 오래 오래 실천하면서 정책들을 마련해 내야 하고,, 끊임없는 수정 과정들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는 과거 민주노동당, 현재 정의당 녹색당의 장애인 정치는 크게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출처: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64881_24634.html?menuid=nwdesk



[소수의견] 세상 보는 창 '점자'에 껌 '물컹'…"이건 너무해요"


한혜경 기사입력 2019-04-25 20:07  


최종수정 2019-04-25 20:11


시각장애인 점자 대중교통 화장실 편의점 소수의견


안녕하세요? 


아주대학교 3학년 한혜경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시력을 잃고 현재는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인데요. 



오늘은 저의 하루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저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택시가 있지만 대수가 적어 타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하철과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데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지하철 출구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사당역 11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점자로 된 안내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아무 출구로 가서 손잡이의 점자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아… 그런데 이게 뭐죠? 



"13번(출구)… 근데 누가 껌 붙여놓은 것 같아요." 




누가 씹던 껍을 붙여놓았네요. 


이럴 땐 정말 찝찝합니다. 




"만질 때마다 불쾌해요. 제가 생각할 때 한 두 달 전부터 제가 이걸 만진 것 같아요. 해맬 때마다 만지거든요." 


그런데 더 난감한 건 에스컬레이터입니다. 


점자 출구 표시를 찾기 어려운 곳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 안에 못 찾을 것 같은데…" 




이럴 땐 역무원이나 자원봉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하는데요. 


이분들껜 늘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누군가 붙여놓은 껌 때문에 찝찝해서 손을 씻고 싶었습니다. 




2.



그런데, 여자 화장실을 알려주는 점자 표지판을 찾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해야지… 음" 


다행히 여성분이 나오셔서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여기 여자화장실인가요?" 

(예) 




3.



그런데 이번에는 물이 문제였습니다. 


손에 비누칠까지 했는데 세면대가 말썽입니다. 


"어떡하지…" 




보통 장애인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하나인데, 이렇게 고장난 곳이 많습니다. 


20분 넘게 헤매다가 간신히 사당역 밖으로 나왔는데요. 




4.




목이 말라 편의점에 갔습니다. 


음료 하나 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 참, 음료수 캔에는 점자가 새겨져 있는거 모두 알고 계시죠? 





"이게 뭐지?" 


그런데 이 점자, 큰 도움은 안됩니다. 


커피도, 이온음료도, 대부분 그냥 '음료'라고만 새겨져있기때문입니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흐리지? 음료… 음료." 


아 그러고 보니 캔맥주는 맥주라고 적혀 있네요. 




외국 술에는 외국어 점자가 적혀 있답니다. 


"이게 뭐지? 점자를 못 읽겠지? 아 일본어구나"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으면서도 맛 정도는 구분하고 싶은 건 저의 욕심일까요? 


"그냥 들어가서 냉장고 열고 아무거나 집어서 합리화를 하게 된 거 같아요. 오늘은 뭘 골랐을까… 이런 식으로?" 





아예 아무 없는 것보단 낫겠다 싶으면서도 맛 정도는 구분하고 싶은 건 저의 욕심일까요? 


로또처럼 음료수 뽑기를 하다보면, 왜 항상 같은 음료만 걸리는지… 


"제가 정말 싫은 (음료가 있는데) 근데 그걸 되게 잘 골라요." 






많은 분들은 제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를 도와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제 팔을 다짜고짜 잡고 절 끌고 가시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는 여러분이 도와주시는 그 마음은 너무나도 감사드리지만, 도음을 받지 않길 원할 때도 있습니다. 


대신 함께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보셨던, 제가 겪었던, 아주 사소한 문제점들부터 함께 바꿔 나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장애는 아마 앞으로도 사라지진 않을 꺼예요. 


하지만 우리 사회, 우리 주변의 문제는 여러분과 제가 함께 바꿀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시겠어요? 






지금까지 MBC뉴스 한혜경이었습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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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2018. 12. 19. 02:26

들뜬 사회의 적 “왜 세심하지 못했을까 ?” 



사람 귀중한 줄 아는 나라, 그리고 진보정당의 책임.



철로 보수공사를 하던 9명 중에, 7명이 무궁화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왜 선로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철도청 역장과, 시공사 대진철도 회사는 열차운행 시간 파악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공사 감리단의 작업지시와 감독도 없이 노동자 9명만 철로로 나아가게 했는가 ? 왜 세심하지 못했을까 ? 이런 생각이 맴돈다. 



7명의 노동자들 모두가 40에서 50 사이였다. 하루 일당이 6만원에서 1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족들과 회사, 철도청과 보상금 협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복리식(라이프니츠식)이냐 단리식(호프만식)이냐를 놓고 유족측과 회사(+철도청)과의 마찰이 있다고 한다.



얼마전 유시민의 구정치/신정치, 구좌파/신좌파 구별에 대해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구정치의 주제들, 경제, 정치, 사회, 안전, 군사와 안보등이 신정치의 주제들, 삶의 질, 평등권, 자아실현, 참여, 인권 주제등과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이라는 역사적, 정치적 현실 때문에. 



새벽 1시에, 온 국민이 다들 자고 있을 때, 철로 위에서 9명의 40대 중년 남자들이 일하다가 열차에 치여서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 호프만식이니 라이프니츠식이니, 그것도 다 좋다. 남은 유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하지만, 작업장 원칙, 작업 순서의 원리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일터로 가게 한 그 사회 사람들의 의식, 그 의식 구조, 습관, 행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몸을 쓰는 단순 노동자이건, 고 배달호씨처럼 스카핑 용접공이건, 테에란 강남 사무실에서 일하든 IT 기술노동자건, 일하는 사람들의 신체의 안전을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특히 육체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무시, 그리고 스스로 무시, 그런 의식들의 내재화 과정, 이 모든 것들이 이번 7명이 한꺼번에 철도 위에서 사망하게 된 원인이다. 



섬세해야 한다. 사람들의 생명, 신체의 안전에 대해서 진보정당은 특히 더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진보의 아젠다를 찾아서, 서유럽의 신사회운동(NSM)의아젠다만을 ‘진보’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아주 기본적인 구정치의 주제들(경제, 정치, 안전, 안보, 군사)에 대해서도 여전히 새롭게 연구하고, 이 주제들이 국민들과 시민들, 특히 노동자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면, 제도적, 법적, 의식적 차원에서 깊이있게 연구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안전(이는 단순히 공장만으로 공간을 한정시켜서는 안된다. 8시간 일하는 모든 작업장, 엔지니어, 과학자, 화이트칼라, 학교, 공무원, 공장 노동자, 가내 노동자, 재택근무, 가정 주부/아저씨 등) 문제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철저하게 책임져야 한다. 



1977년 당시, 미국 공중 보건청 통계에 따르면, 일년에 39만개의 직업병이 새롭게 등장한다고 한다. 현재 2003년에는 산업규모나 종류로 봐서 더 많은 직업병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무실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경우는, 더욱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신체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직업병, 산업재해, 안전사고 문제를, 직접적 신체 손상만으로 그 영역을 좁혀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영국에서 발간된 조사에 따르면, 암의 80%는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특히 서울처럼 대도시, 더럽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몰려있는 도시에서 일하는 사무식 노동자들 또한 산업재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손가락이 잘리고, 뼈가 부러지는 외상만을 산업재해, 직업병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도시환경, 그리고 심리적, 사회적 조건 등도 반드시 신체의 안전과 건강이라는 주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신정치의 주제, ‘삶의 질’을 높일 것 아닌가 ?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구정치 주제, 신체의 안전과 건강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주제에 대해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어느 정당보다도 더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꼭 새벽 1시에, 다들 잠자고 있을 시간에, 무슨 인생의 업보를 타고 태어났다고, 철도에서 국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겠다던 노동자들 7명이나 죽게 해야 하는가 ? 들뜬 사회에서, 다시 기초공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슴 아프게 생각해보는 밤이다.



2003-2-16


-07/10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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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7:00

2013.07.12 23:00

평화노동당 (노동 해제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를 말해야

원시 조회 수 453 댓글 2


평화노동당 : (노동 해제 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로서 노동자를 말해야 한다


평화노동당의 당명은 노동 패러다임 바깥, 일터를 포함하긴 하지만 생활터전이라는 보다 더 포괄적인 삶의 공간에서 노동자들의 자유와 평등, 행복의 실현을 담고자 한다. 만약 노동 바깥인데 왜 ‘노동당’ 명칭을 쓰느냐?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한다면 그 비판은 수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명칭에 노동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실천주체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노동정치, 노동해방정치, 또 진보정당 좌파정치는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 노동당>에서 초점을 맞추는 정치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을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극단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자.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민주당도 진보좌파정당도 아닌, 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다. 이 문제를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행위라고 서술한다고 우리의 정치적 임무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한국의 노동자 대다수가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리버럴리스트 민주당에 투표하는지를 설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들 대다수가 보수-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는데, 계급 혹은 노동 패러다임이 아직도 유효한가? 이런 질문은 당연히 던질 수 있다.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러한 유효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 구성요소들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정치적 의식 사이에는 샛강이 아니라 한강 두만강이 흐르고 있다. 정치의식들을 규정하는 요소들은 가족,지역,종교,가치관,계급,계층,정치적 경험들, 문화 등 수없이 많다. 다르게 표현하면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의 계급의식이나 정치적 의식은 계급과 연관되지만, 계급/노동 패러다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의식규정요소들 사이에 위계순서,우선성(경제,정치,문화 요소들)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 가능성과 방향성이다.


한국 자본주의와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쳐다보면, 직종 숫자 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97년 IMF 신자유주의적 긴축통치 이후, 자본과 국가권력이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 천가지 직종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계급의식들을 천차만별이다. 당장에 민주노총 내부 조합원들 사이에도 정치의식들이 다르고 계급의식이 단일하지 않다.


우리 당은 이러한 다양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실천들과의 정치적 소통을 해야 한다. 그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노동자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사진 2009.jpg 


 (향후 30년간 한국 좌파 정당 운동에서 가장 주요한 주제로 떠오를 도시 공간 정치라는 주제. 어떤 토론회장,

좌파정당으로서 우리 당이 심혈을 기울여야 할 정치적 주제들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최근 “노동 중심성”이라는 단어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는 현장에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해보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토론한 노동계급의식의 정치적 집결체로서 정당운동이 왜 실패했는가? 그에 대한 대안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치적 기획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심성’ 강조에 앞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들의 분화에 대한 정치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과거 사회당을 보면, 이미 구정치의 영역 (노동, 복지, 군사, 안보, 안전 등) 뿐만 아니라, 신정치와 새 사회운동의 영역인 평화, 녹색, 여성, 생태, 인종차별반대, 소수자 운동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중심성이라는 말이 어떤 특정 집단의 정치적 헤게모니 선점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자가 생활터전에서 정치의 주체로 되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 굳이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진정한 자유나 해방과 구별해서 말하자면, 삶의 터전에서 자유와 평등의 구현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위에서 말한 노동자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의 형성 지역, 그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다. 좁게 말하면 도시공간이다. 97년 이후 한국자본주의가 규정한 삶이란 어떠한가?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삶의 터전인 쉼터, 놀이터, 집터 역시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분열되어 있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구로 민중의 집.jpg 

 ( 좌파 정당이 삶의 터전에 뿌리 내리기 시도를 하고 있다. 구로 민중의 집 사진. 보수적 시민사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느냐가 관건이자 정치적 과제이다.)


노동운동이 살기 위해서는, 또 진보좌파정당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삶의 터전, 일터, 놀이터 쉽터, 집터 등에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과 돈,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임무는 일터에서 재산권 생산수단,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뉴타운 건설 등, 쉼터 놀이터에서 문화 스포츠 활동에서 계급차별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제거해나가는 것이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계급적이다. 우리들의 행복과 희로애락 역시 계급계층차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시 공간의 사적 소유 재산권과 자산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에 돌입해야 한다. 좌파 정치의 중요한 주제들은 일터와 ‘노동’ 안 패러다임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일터를 포함한 포괄적인 삶의 터전 속에서 계급계층 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좌파 정당의 정치적 임무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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