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12019. 1. 25. 14:29

2011.03.08 22:51


콩사탕<모텔,빤스>, 진중권<빨간X지>, 언땅 <갈보>에 대한 의견

원시 조회 수 1842 댓글 9 ?

먼저 하나 꼭 언급해야 할 사항은, 누군가 말했듯이, 오프에서 직접 만나서 다들 이야기하고 살아온 속내, 진보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들을 들어보면, <진보정당의 자격> 미달인 당원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진보신당 온라인 정당, 미디어 정당, 기대 많았는데, 사실 거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인터넷 TV>, <인터넷 라디오> 만든 목적은, 노회찬 심상정 세대가 아닌, 차세대 진보정치가 주자들을 전국에서 키우기 위함이었는데, 당 안으로 <제도화>되지 못했습니다. 안착되지 못했습니다. KBS, MBC 언론사들  절대로 먼저 와서 <진보신당 뉴스없냐고> 묻지 않습니다. 




진보신당, 당원들과 당원들이 싸우게 만든 현상들, 마치 4거리 고장난 신호등 때문에, 차들이 얽히고 섥히고, 부딪히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삿대질 하고 싸우고, 사람들은 상처입고, 119는 출동해서 온 동네는 난리치고, 사람들은 지나가다말고 구경하고...ㅜ.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그건 우리 당이 친목단체처럼 친한 사람들끼리 언니 누나 오빠 형 선배 아우 부르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진보정치>나 공적 행복, 노동자 해방을 위해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면, 그 <시스템>하에서 같이 일하기 위해서 모인 것 아닙니까? 




좋은 동기를 가지고 <진보정당>에 오신 분들, 일할 수 있는 같이 머리를 맞대는 <시스템>이 없어서, 3년 내내, 오프 당협에서, 온라인 이 비좁은 <세사게 >에서, 그 선한 동기들보다는, 개인의 약점들과 나쁜 점들만 부각되어 부딪히고 있습니다. 




1. 콩사탕 당원의 심상정 조롱 (이창우 당원 만화 조롱시, 모텔, 빤스 비유), 진중권씨의 <빨간 X지> 표현, 언땅밑에서 심상정 전 대표에 대한 정치적 비난 "갈보" 표현 등은, 정치적 정당에서는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주장이고,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표현 모두다 정치적 정당에서 자기 정견을 발표하는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저질이건 고질이건 간에. 




2. 그러나,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는 위 세 가지 표현들이 다 정치적 주장이긴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심상정 당원이 그 표현들 (모텔, 빤스벗고, 갈보 등)을 읽고 나서, 성적 수치심이 일어나거나, 인격모독을 느껴서, 법정에 고발하거나, 혹은 정당내 윤리위원회 (당기위같은)에 문제제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당장에, 이런 질문이 쏟아질 것입니다. 1 안과 2안은 서로 상충되는 것 아니냐? 문제 해결된 것 하나도 없다. 맞습니다. 문제 해결된 것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1 주장도, 2 주장도 다 타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3. 가장 좋은 문제 해결방법은, 정치적 해결입니다. 




정치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심상정 전 대표에 대한 (모텔, 빤스 벗고 등) 조롱 표현에 대해서, 심상정 전 대표가, 정치적 받아치거나, 전 대표로서 콩사탕 당원과 맞짱 토론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이건 물론 심상정 전 대표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소한, 당게시판에서 "콩사탕 당원 당신의 정치적 비판, 조롱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모텔 빤스 등 표현은 개인적인 공격<성적 언어폭력>으로 해석된다"는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쉬운 대목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물론 제가 서유럽이나 북미 캐나다 등 좌파들의 "성" 문화와 한국좌파와 진보정당의 "성"문화의 차이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TV 등 미디어 등이나 일상에서 한국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 암시를 담은 정치적 조크나 비난, 조롱등이 많으니까요. TV정치토크에서 오럴섹스 용어 (blowjob)은 다반사로 나오니까요.




4. 콩사탕 당원도, 여러차례 재 게시를 한 점은 당원들로부터 지지받기 힘들다고 봅니다. 




심상정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의미에서, 여성당원들의 합의나 혹은 다수 의견들에 근거한, 표현 조정요구)에 대해서까지 조롱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남성이건 여성당원이건 간에, "모텔 빤스" 건은 표현을 조금 바꿔라는 요청이 있고, 실제 당원들 중에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면, 콩사탕 당원도 재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도 정치력 아닙니까? 




5. 왜 4와 같은 주장을 하냐면?




콩사탕 당원의 <모텔, 빤스> 사건이 오히려 더 부각되고, 심상정 전 대표의 정견에 대한 비판/토론은 오히려 부차시되어 버리는 정치적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본질과 부차, 선차적과 부차적 사건을 구분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그러나, 콩사탕 당원이 정작에 이야기하려던 <심상정 정치노선 비판> <이창우 심상정 숭배 조롱> 건은 부차시되어 버리고, 오히려 <성적인 언어폭력>만 부각되어 버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6. 경기도당 회계 문제, 김XX 해임 건은,




콩사탕 당원, 전 김사무처장, 경기도당 진술서 등을 읽어봤는데요, 이런 사안들은 법정에 가도 해결도 되기 힘듭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끼리 일하다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고, 분명히 이견들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서로 "인격적 무시"로 해석되게끔 일처리를 일방적으로 한다거나, 서로 합의된 것을 확인하지 않은 채, "어 내가 언제 그랬어?" 이런식으로, 과거 관행대로 밀고 나가버리면, 신참 멤버나, 과거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교훈이 뭘까요? 당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에, 한 사람 한 사람씩, 우리 당의 당직자, 공직자 후보들을 만들 체계적인 가이드나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특히 지도부의 책임입니다. 당을 만들어놓고, <안내 지침>을 만들어놓지 않은 상태에서, 당원 숫자만 증가하면 만족해버리니까, 당 안에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갈등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해버린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회계문제, 그건 부차적입니다. 충분히 당원들끼도 만나서 그거 해결가능했습니다. 서로 인정하지 못하고, 당의 질서를 다같이 만든다는 주체로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걸 법정에서, 당기위에서 해결이 되겠습니까? 안된다고 봅니다. 




<진보신당> 당내 유권자 숫자가 5천, 6천명입니다. 이런 규모에서, 지난 3년 간 당 안에 일어난 갈등들, 개인간, 당협내 써클간, 불필요한 헤게모니 전투들을 당게시판에서 보면서, 과연, 이게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정당의 모습이었는가? 뒤돌아보게 됩니다. 




7. 쟈넷 김수경님에게,




고민 글은 보았습니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아쉬움이 많이 남고, 정치적으로는 100% 찬성하기는 힘든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글 속에도 언급했듯이, 최혜영 당원 명의로 한 점은 에러였습니다. 여성위 운영위원이 되고 나서, 처음 한 작업이라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만, 앞으로는 <징계> 위주보다는, <교육>과 <예방>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진보정당의 모든 큰 모임이나 공식적인 행사 (전국위원회, 당 대회, MT같은 모임, 수련회, 교육장 등)에서는 1년에 한 두차례 정도, 꼭 <성 폭력> 예방교육을 모든 행사 이전에 5분, 10분을 해야 합니다. 


아울러, http://www.newjinbo.org/xe/882140 에 올려놓은 <예방교육>과 같은 자료들을, 당 홈페이지에 게재해서, 당원들이 꼭 보도록 유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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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9'

원시 2011.03.08 23:19

위 내용과 무관하게, 하나마나한 소리이겠지만,




<사랑>에 대한 한 정의;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거울은, 사랑을 하게되면, 나의 좋은 점들이, 마치 꽃들이 피어나듯이, 그렇게 사랑이라는 거울에 부각된다" 




어쩌면, 우리 당게시판에는 개인적으로든지, 정치적으로든지 외로운 사람들, 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이 올 것입니다. 물론 정치정당의 일로 온 분들도 있겠지만요. 




<정당> 안에서 무슨 사랑타령이겠습니까마는, 굳이 비유하자면, <좋은 리더쉽>이란, "사랑의 거울처럼, 당원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마치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듯이, 그렇게 서로 장점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뿌리깊은 정당을 만든다면, 이러한 <사랑의 거울> 앞에서, "입당 선서"의 시를 낭독하게 하고 싶습니다.






 댓글

(토리) 2011.03.09 00:15

원시님이 접한 서구 성 문화가 궁금하군요.

 댓글

원시 2011.03.09 18:25

토리/ 질문을 하실 때, 구체적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방금 쓰신 것처럼 정치조크 용인, 제한 범위 등에 대해서 "당신 의견은 뭐냐?"라고 물으셨다면, 당연히 제가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어떤 견해들은 전달을 해 드렸겠지요.




한 줄로 쓰면 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우니까요. 조금 바쁘시더라도, 몇 줄 더 써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요. 




정색,까칠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마세요.


 댓글

(토리) 2011.03.09 11:32

까칠하신 답변이네요. 전 정말 궁금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서구의 성 문화와 한국이 다르다고 말씀하셨길래, 그러면 어느 정도 정치 조크가 어떤 문화 맥락에서 용인될 수 있을까, 궁금하고 고민이 들어서 여쭈웠는데 너무 정색하시네요. 그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댓글

원시 2011.03.09 10:10

토리/ 제가 서구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나 주장이 있으면 하셨으면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위 글 내용에 대해서 비판할 게 있으면 비판하기 바랍니다. 그게 낫겠습니다. 

 댓글

로자 ☆ 2011.03.09 00:55

콩사탕 당원의 죄명이라면 사회가 불륜의 박진감 넘치는 현장으로 여기는 모텔을 사용했고


빤스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류를 들먹여 성기를 오버랩 시킨데 있는데 유교적 덕목에 취해있는 한국에선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빤스라고 안하고 속옷이라 하죠.


그러니 풍자를 위해 단어를 사회관습에 걸맞지 않게 차용했으니 '언어 성희롱'이런 류의


죄목을 걸어주고 당기위 제소해야 한다고 봅니다.성폭력은 정말 말도 안되는 죄목이죠.


 


 댓글

원시 2011.03.09 10:28

위 댓글과는 무관하게,


로자 당원께서 제기한, <형평성> 문제는 타당하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실제 당의 규율과 당원이 지켜야할 원칙에 위배되었을 경우,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치우침이 없이 <형평성>을 유지했는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썼듯이, 콩사탕 당원의 조롱/풍자/비난/힐난의 표현이고, 언땅밑에서 당원의 <갈보>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 비난/힐난/조롱의 대상인 <심상정> 당원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도 문제가 됩니다. 언어적 성폭력과 성희롱의 엄밀한 차이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도 그 문제가 된 콩사탕 당원의 댓글에, <모텔> <빤스벗고>는 문제될 소지가 있으니까, 그 부분은 빼고 <조롱><비비난> <풍자>를 하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달았습니다. 그 대상이 심상정 전 대표여서만은 아닙니다. 


이 콩사탕 당원의 글이 문제가 된 것은, 게시 이후가 더 문제였다고 봅니다.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죄목, 징계 등으로 해결될 사항인지는 제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댓글

원시 2011.03.09 10:42

진중권의 <빨간 X지> 표현, 사회주의자들을 비아냥거리는 단어인데요, 내용상으로 동의할 수 없고, 못마땅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사람들 의식 속에 남아있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빨갱이>라는 표현도 여전히 득실거리는 판국에, 하필 진중권씨가 <빨간 X지들하> 이러면, 뭐가 좋겠습니까? 누워서 침뱉기죠.




하지만, 그 개인의 주관적 정서나 태도를 표현한 말인데, 그것까지 못하게 막을 수 있습니까? 




진중권씨의 개인적인 정치평을 하는데 쓰는 단어가 하필 <빨간 X지>여서 안타깝다. 아쉽다. 이것과,


그 개인의 단어 선택과 표현할 자유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댓글

쟈넷 2011.03.09 11:09

 성폭력예방에 징계와 처벌이 주는 효과가 적다는 것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사전 예방과 교육이 중요한데 앞으로 당내에서 예방과 교육에 치중할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제소할 때 여러 분들이 불편했던 건  사실입니다.


여성위원회에서 가장 피해야 할 사안중에 가장 큰 것이 성폭력사건입니다.  그거 개입하고 나면 여성위 사업 다 끝난거라는 전설이 있지요. ㅠㅠ...  그런데 오자마자 여기저기 성폭력 사건만 접하니 참...


의견 감사합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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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2017. 6. 15. 04:46

최순실 사건부터 대선까지, 

또 그 전에도 체력을 약간 넘어 오래 달려온 것같다.


지금은?  홀가분하다.

어느 여름 날, 교문을 떠난 그 날처럼,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것같은 이 기분, 

가뿐하다.


이 기분을 표현한 노래가 없을까? 

Feel so good.

그냥 기분이 좋다.

홀로 마냥. 나르시즘처럼.


가려지고 덮어져,

흰 눈 아래 검정 땅처럼.


------------------

노래 말, 가사는 사랑 이야기구나.

'님' 이야기야 언제나 설레는 거 아니겠는가?

이것도 기분이 좋다.

척 맨조니, 너도 기분이 좋냐?

나도 좋다.

------------------


내가 울고 가슴아파할 때 마다 드는 생각,

감출 곳 없어요.

나에게 특별한 말,

듣고 싶었기에.


어느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죠. 

‘안녕, 잘 있었니?’ 

“우리 한번 사랑할까요? ”


당신 이름이 내 마음 속에선 음악처럼 들려요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당신과 같이 있을 땐 너무 기분이 좋아요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는 게 믿을 수 없어요.


당신과 함께 있으면, 하나가 된 느낌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분 너무 좋아요 (들떠서요)


  

척 멘죠니 - '기분 너무 좋아' 

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The thoughts of all the time I cried

And felt this pain

That I have known

Because I needed just to hear

That special something


And then one day

You just appear

You said "hello"

"Let's make love along the way"

Your name is music to my heart

I'll always really love you


Feel so good when I'm with you

I can't believe you love me too

With you it feels like it should feel

With you it feels so good





https://www.youtube.com/watch?v=cWhNWop3g_Y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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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2015. 4. 4. 12:33


<가을>


가을이 오네.

온 종일 안개는 나직이 나래를 펴고,

새들은 떼지어 갈 길을 챙기고.


나무들 초록에서 갈색옷으로 갈아입네.

너와 나만이 나누었던 그 추억을

떠올려.


가을이 저너머로 오네.

짙붉은 놀 속으로 해는 지고

들판을 빨갛게 물들이며,

이제 늦가을도 여기 잠들다.


북쪽에서 부는 바람결 따라,

낙엽들 하나 하나 응답하고.

원래 왔던 침묵의 흙 속으로,

다시 접어드네.


긴 겨울

긴 겨울에도 당신곁에 흐르는 물,

일렁이는 바닷 바람,

자라나는 야생화들

모두 다 당신 곁에서.


잔잔히 내리는 눈

따뜻하게 지펴진 촛불에 상기된 얼굴

우리 만남의 기쁨


내 곁에

난 네 곁에서

긴 겨울에도 난 늘 너와 함께,


내 곁에

난 네 곁에서

언제나 늘 지켜보고 있을 내가.


1. <가을 > 중에서 

노래: 스트롭스 Strawbs 

title: Autumn

번역: 원시








Canon | Canon PowerShot SX10 IS | Pattern | 1/1000sec | F/4.0 | 0.00 EV | 13.0mm | ISO-320 | Off Compulsory | 2014:01:07 16:51:09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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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4. 9. 11. 15:49

힘껏 달리기 (1) 살아오면서 등에 땀이 나도록 달린 적을 되돌아보다. 오늘 구월의 따뜻한 비가 내리다. 초가을에 여름 소나기 비처럼 따뜻한 비다. 건즈-앤-로우지스의 '십일월의 비'처럼 싸늘하지 않고 맞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따스한 물결이다. 이 젖은 비는 과거로 잠시 이끈다. 그 날은 참 열심히도 뛰었다. 채림과 내가 지하철 일호선을 타고 종로 근처에 노니러 갔다. 늦은 점심을 먹을 겸 둘이서 분식점에 들어갔다. 우동이나 짬뽕 같은 탕류 면을 두 그릇을 시켜놓고, 외할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 밥을 둘이서 나눠먹곤 했다. 열여덟 열아홉 데이트 밥상이었다. '림'은 밥을 먹고 난 후에 늘 하던 버릇이 있었다. 식사를 다 한 후에 물 한 모금으로 두 볼이 약간 부풀어오르게 그러나 소리가 안 나게 그렇게 마신 다음에, 한 손으로 앞니를 가리고 이를 자동차 유리 닦듯이 청소를 하곤 했다. 난 '림'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물은 적은 없었다.


둘이 그렇게 밥과 면국물을 다 말아먹은 후, 지갑을 펼쳤다. 순간 오싹해졌다. 지갑에 천원짜리 지폐가 하나도 없었다. '림'에게 황급히 말했다. "림아, 돈을 집에 두고 왔어. 너 혹시 가져왔냐?"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날 따라 림도 지하철 월권 패스만 들고 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분식점 주인을 생각하니 땀이 등 뒤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삐삐도 없던 그 때에 옴싹달싹 못하고 주저앉게 생겼다.


'이를 어쩌나?' 몇 십초가 흘렀다. 생각나는 사람이 떠올랐다. 지하철 3호선 옥수 역에 막내삼촌이 근무하고 계셨다. 여기가 종로니까 잘만 하면 1시간 이내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리였다. "림아, 여기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가방만 림에게 맡기고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 오르막 계단들은 평지가 되고 내리막 계단들은 미끄럼틀이 되었다. 등에서 땀이 흘렀다. 종로에서 3호선 옥수역으로 가는 길이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지. '삼촌이 있어야 할텐데...'


3호선 옥수역 그 강변 바람은 땀으로 범벅된 등에게는 은인이었다. 옥수역 매표소를 찾아갔다. 어린시절 방패연을 신호대로 만들어주시던 막내 삼촌이었다. 그가 그 표파는 투명 유리 안에 있었다. "삼촌, 나 3천원만 주세요. 친구랑 식당에 왔다가 점심 먹었는데, 집에서 돈을 가져오지 않았네이~" 삼촌이 웃으면서 "삼천 원이면 되냐?"그러면서 사천 원을 주셨다. 인사만 하고 다시 부리나케 뛰었다. 혼자 그 분식점을 지키고 있을 '림'에게 일초라도 빨리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종로로 다시 돌아왔다. 둘이 먹던 그 분식점으로 들어갔다. '림'의 표정이 가장 관건이었다. 태연자약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삼촌에게서 사천 원을 받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림'이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고 분식점에서 내 가방을 지키며 평온하게 앉아 있어서 그랬을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몇 조각 남은 냅킨 휴지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한 숨을 몰아쉬었다. "삼촌이 계셔?" '림'이 물었다. "림아, 가자 이제. 오래 기다렸지?" '응 삼촌이 사천 원을 주셨어'라는 말보다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우리가 쓰는 밥값, 아이스크림 값, 차 값 비용이란 몇 천원 이내였다. 내가 늘 다 내는 것도 아니고, 둘이서 용돈 아껴서 나눠 내곤 했다. 내가 다시 그 분식점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그 사십분 시간들, '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는 내가 그걸 묻지 않았다. 분식점으로 되돌아 왔을 때, 림의 뒷모습이 먼저 보였다. 내가 삼촌을 찾아 옥수역으로 떠났을 때 모습이랑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사십분 기다림. 그리고 되돌아 왔을 때, 반갑게 맞아 주던 게 고맙게 느껴졌다.


살면서 또 그렇게 절실하게 일심으로 매진하면서 달릴 날이 또 올까?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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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 17:22


내가 사람들의 속세 언어들로도 천상의 천사의 언어들로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 담기지 않은 내 말은 시끄러운 징소리나 양철판 깨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난 사람을 감동시키는 연설하는 재주를 가졌을지도 모르고, 아는 것도 많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삼라만상의 법칙을 깨달을 수도 있다.


나는 또한 산도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자신감도 가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난 내가 소유한 그 어떤 것도 버릴 수도 있고, 또 포기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내 생명을 포기하고 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행동이다.


사랑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이다. 사랑은 시기질투가 아니고 잘난 체 하는 것도 오만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예의없이 무례한 것도 아니고, 이기적인 것도 아니며, 성질 급하게 화내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타인의 잘못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악’과 어울려 희희락락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에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사랑의 신념, 희망, 그리고 인내는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세상에는 감동을 주는 (설교나 연설) 메시지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다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범하게 말을 잘 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 말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세상에는 아는 것도 참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지식 역시 유한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 습득 능력, 감동적인 연설을 할 줄 아는 능력과 재주 역시 다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한 것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 부분적인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했던 말 감정 생각은 모두 다 미숙한 어린 아이의 말, 감정, 생각이었다. 난 이제 성인이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미숙했던 어린 시절처럼 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거울 속에 비친 희미한 이미지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듯이 명료하게 서로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체가 아니라 단지 어느 한 부분일 뿐이다. 나중에 그 지식은 전체가 될 것이다. 마치 신이 나를 완벽하게 아는 것처럼. 그 날이 올 때까지 신념, 희망,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가 우리들 곁에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출처: http://futureplan.tistory.com/entry/성경에-나오는-사랑-구절에-대한-해석 [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Good News New testament (the bible), Today's English Version: Corinthians 13 Love (사랑) - 원시 번역






완벽(完璧) 은 고사성어이다. 완벽이라는 구슬에서 온. 한 나라의 미래를 점치는 구슬을 지칭한다. 완벽은 퍼펙트이다. 이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신념, 희망, 사랑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다. 그 전체의 이미지를 꿰뚫기 위해서 신념, 희망, 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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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3. 11. 19. 06:56

윌리엄 블레이크 사랑에 대한 한 정의 (점토질과 조약돌: The Clod and the Pebble 


사랑은 내가 즐겁자는 것도 아니고.

내자신을 위함도 아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그래, 지옥같은 좌절 속에서 천국을 만드는 게 사랑이야.


소 발바닥에 엉겨붙은, 한 조각의 점토질이 그렇게 노래하네.


한편,이러한 점토질의 운율에 맞춰, 시냇가의 조약돌이 노래하길;


사랑은 오직 내가 즐겁자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기쁨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구속하네.

사랑은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 내가 즐거워하는 것이네.

그러므로,사랑이란 천국의 저주 안에 한 지옥을 만드는 것이네.


(번역:원시, NJ: 2009년 11월) 


Willam Blake (1757-1827)


The Clod and the Pebble  (점토질과 조약돌 : 천국과 지옥) 


"Love seeketh not itself to please,

Nor for itself hath any care,

But for another gives its ease,

And builds a heaven in hell's despair."


So sung a little Clod of Clay,

Trodden with the cattle's feet,

Buta Pebble of the brook

Warbled out these metres meet:


"Love seeketh only Self to please,

To bind another to its delight,

Joys in another's loss of ease,

And builds a hell in heaven's despite."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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