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082018. 8. 2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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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후보께] 고무신 거꾸로 신은 제 여자친구를 찾아주세요 - 2008.03.17 23:52


원시 조회 수 3438 댓글 19 조회 수 3438 


피우진 후보에게 질문이 많이 쏟아진 이유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사독재와 가장 전투적으로 싸운 사람들이 가장 또 많이 모여있는 곳이 진보신당이기 때문입니다. 15년 민간 정부 경험을 했고, 지금은 진보세력이나, 정치적 좌파 역시 대안적인 '국방부' 건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권, 평화는 물론이고 '제도'와 '직장'으로서 군대 역시 진보진영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제도와 직장을 넘어서서, 정규군 60만이 2008년도 27조 국민세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병 월급 8만 8천원이라는 착취구조를 동반하고도, 27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년간 한국인들 사교육비 (해외 어학연수 및 유학 제외) 20조 400억보다도 더 많은 액수입니다. 


중장기적으로 통일을 대비해서 군축 실시 및 적정규모의 군대유지 (그 이름이 평화유지군 및 자위대가 되겠지요?) 를 진보진영이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1) 감시.정찰.지휘통제(C4I)분야 7천252억원 2) 기동.화력.탄약분야 1조4천501억원 3) 함정분야 1조1천910억원 4) 항공기분야 1조5천267억원 5) 유도무기분야 1조1천872억원 6) 연구개발분야 1조4천823억원 등 국방예산 관리 능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국방 분야의 진보적인 군인들이 승진에 밀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첫번째는, 가볍게 사사롭게 들릴 지 모르지만, 여군 남군할 것 없이, 젊은 정춘들, 특히 징병제 구조하에서 남자들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자친구" 증후군 (Post-Traumatic Loss Syndrome :PTLS: 심리적 외상 후 사랑 장애 증세)으로 인해서, 20대부터 사랑과 우정에 대한 좌절감을 먼저 배우게 됩니다. (현재 물가를 고려했을 때, 상병월급 8만 8천원으로 남자친구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데 차비도 안나오겠습니다) 


이 문제를 여군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습니까?


두번째는, 군 장교 특히 중령 대령 이후 퇴임장교는, 민간 군수업체에 취업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08년도부터 미국의 군수판매 고객 대접이 과거 일본보다 한 단계 아래였는데, 이제 일본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미국 군수산업과 한국내 군수회사간의 밀착 유대관계가 깊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향후, 국내 민간 군수회사와 미국 군수회사의 한국의회로 로비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요? 


세번째, 일본, 중국 국방비 증대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다 남한 북한 군사대립은 완화되는 듯 하더니 이명박정권 수립 이후 다시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NATO 체계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국지전이 발생할 조건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 중국,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구상은 무엇인가요? 큰 주제이지만, 군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지 소개라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래 글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 쓴 국방 관련 글입니다>



148787 군대접수하랬더니, 홍준표에 만세부르다니? 

 

글쓴이 : 원시

등록일 : 2005-07-02   17:08:04

조회 : 204  


이번 홍준표의 재외동포법 개정안에 찬성한 민주노동당 5명의 의원들을 바라보면서, 현재 민주노동당의 자기 정체성과 자기철학이 얼마나 빈곤한가를 만천하에 다시 한번 알리게 되었다.


방위사업청 신설로 군대무기 수입/로비/판매 관련해서 보다 투명한 집행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민주노동당이, 제국주의를 경험하고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경험이 있는 서유럽의 진보정당들 (사회당과 공산당, 녹색당등)과 달리, 식민지 경험이 있고, 분단체제로 있는 한국, 그리고 이후 통일 꼬레아의 자주국방에 대해서 보다 더 깊은 논의를 해야 한다.


지금 의원단 부서배치도 '국방'이 없다. 의원실이 없다면, 민주노동당 정책실에서 미리 준비해서 '국방' 분야를 담당할 사람들을 길러내야 한다. 지금, 병역비리 그 한가지에 매몰되어, 홍준표에 만세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아래는 문제제기 차원에서 쓴 글이다. 민주노동당의 정치기획력을 높이지 않으면, '막고 푸기식' 정치에서 '뒷북 울리다가 종치는 결과'와 잘못된 정치판단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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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73 민주노동당 군대 접수할 준비를 해야



글쓴이 : 원시 등록일 : 2004-11-23 21:30:39 조회 : 222


지금은 민주노동당 힘과 역량 배치상, 경찰/군대 문제를 전면에 내걸 수는 없지만, 보통 시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주제들 (승진/군납/무기매매/인권-징병제 등)을 부각시키고, 연관 법/제도들에 대한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2005년도 국회 회계감사 보고서 전략 참고:민생예산확충/전쟁예산삭감]


요즘 육군본부 승진 문제로, 군검찰이 생색을 내면서 내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 군대의 승진/군납/무기매매의 비리 문제는 한국군대 탄생부터, 박정희를 거쳐, '정의사회'구현을 외친 전두환, 그리고 문민정부에 이르러, DJ 를 돌아, 지금까지, 너무나 오래된 폐병 3기 수준이다.


군대의 특성상, 일반인들이 잘 접근하지 못하거나, 보수우익들의 반발 때문에, '민주화' '투명화'를 요구하기가 힘들다. 이번 군검찰의 내사를 지켜보겠지만, 군대 비리, 군대 인권 문제, 징병제의 단계적 폐지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나올 때만이, 군대를 제대로 된 평화지킴이, 자주국방의 주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접근방식]


1. 퇴임 장교 (중령-대령급 이상)의 민간 군수업체 종사자들 조사: 군대와 군수업 체와의 로비 조사. 한국군수업체-미국 군수업체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


2. 군대 내부 인권유린, 생명경시, 안전사고로 죽음/부상 등에 대한 조사: 학생운동의 핵심적인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심지어 군대가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그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대체 복무한다면서, 동사무소, 중소기업체에 일하는 청년들의 노동 착취 조사. 군대 내부 성차별 문제 조사.


3. 중국과 일본의 '군사비 증대 및 국방 증력'에 대한 경계령. 현재 세계의 화약고 중에 하나는 중국-COREA-일본의 내부 군비 증강임. 이는 현재 유럽의 NATO의 확장이라는 <유럽연합>식이 아니라, 중국-꼬레아-일본이라는 개별국가들의 자국 군비 증강으로 나아가고 있음. 한국의 통일과정은 아시아 중국-꼬레아-일본의 평화공존 체제확립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함. 중장기적으로 "아시아의 평화는 아시아 국가들의 힘으로"라는 기치로, 중국-꼬레아-일본의 상호군축 및 갈등요소 (자원/영토 분쟁)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omments '19'



컬트조 -


전 당시 고무신 거꾸로 신을 여친도 없어서 사랑과 우정에 대한 좌절감은 맛보지 못함. 월5천원의 월급을 받으며, 매일 출퇴근을 했던 기억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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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컬트 조/ 그 무시무시한 도시락 부대, 공포의 도시락조였소? 월 5천원? 60년대 살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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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조

난 도시락은 안싸가지고 다님...위에 식당이 있어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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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사랑과 우정의 좌절감: 의학용어로 내가 한개 만들었어요. Post-Traumatic Loss Syndrome (PTLS: 심리적 외상 후 사랑 장애 증세) 한국 남자들 상당수가 아마 이 증세로 시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평생 가요. 2003년 미국 해병대 (베트남전, 1차 걸프전 참전군인) 뉴욕, 와싱턴 D.C, 잭슨빌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아직까지 받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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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4.00.00 00:00

여자친구가 고무신 거꾸로 거랑 여군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그걸 이분에게 묻는 당신의 그 '마쵸'적인 태도는 도대체 뭡니까? 그걸 여군이 해결해야합니까? 이 질문은 진보적인 질문입니까? 왜 다른 비레대표들에게는 질문이 없는데 유독 이 분과 박김영희님에게만 질문이 쏟아집니까? 그런 질문의 '정치학'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이런 질문이 난무하는 한 차라리 피우진 후보가 이 당을 박차고 나가면서 이 당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진보에 도움되는 것 같습니다. '진보'라는 이름이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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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4.00.00 00:00


엄기호/ 여자친구, 남자친구 이야기하면 다 마쵸입니까? 마쵸의 정의가 뭔지요? 아니, 사소한 것이 정치라면서? 지금 무슨 뚱단지요? 그리고, 다른 질의서에 대해서는, 비례대표 후보들에게 이미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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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이세현/ 엄숙한 것은 좋은데요. 질문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신듯 해요. 여군의 입장이란, 남자들이 보통 그렇게 (이성애 취향을 가진 분) 말하는데,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또 어떻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것을 묻고 있습니다.


 허허... 제가 여자들이여~ 고무신 거꾸로 신지 마라...고 주장했습니까? 주장하지도 않은 것을 가정해서 말하는 태도는 '신 진보'가 아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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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이세현/ 전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국가가 다 큰 남자 여자의 사적인 인간관계를 완전히 차단시키는 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전 폐쇄적인 군대 집단 취침 제도, 내무반 그거 폐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징병제에서 직업군인 모병제로 전환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사소한 것 같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입니다. 마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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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선


1번은 정말 가볍게 사사로운 개인적 문제같네요. 2번은 제가 보고 아는 바로는 중령대령 퇴임장교 중 극히 일부만 군수산업체에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보험회사나 일반기업 영업관리직으로 가던데요. 모범답안을 말하라는거죠? 3번은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일맥상통하는 질문이네요. 동아/표준전과식으로 밑에 접근방식과 답을 써놓고 풀이과정을 적으라면 의도한대로만 답변하라는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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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신도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게 '신진보' 이라고 하던데, 개인적인 것은 물어보면 안됩니까? 군수회사 비리문제가 심각한데, 그거 피 후보가 내부사정을 더 알지 않을까요? 


세번째 질문은, 정치적 비젼문제이고 외교적인 안목에 대한 것입니다. 군 내부에서 바라보는 것은, '반전반핵 평화'를 정치적으로 외치는 우리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요새도 근데 동아전과가 나옵니까? 예전에 내 친구가 동아전과 만드는 회사에서 풀칠 좀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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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이세현/ 하나 물어봅니다. 우리 안의 권력이 무슨 의미입니까? 반전반핵 평화 운동하는 것과, 자주 국방은 서로 배치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조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초라고 성급하게 이야기하기 전에, 위에 적었듯이, 군대 내부 인권 문제나 일반병사들의 권리 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하자는 차원입니다. 


지금 남자 병사들은 성폭력 가해자, 여군들은 성폭력 피해자, (피 우진씨 개인사에서 그 투쟁과정은 잘 나와있으니까 생략) 이런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만약 남녀가, 남남, 여여 가족이나 파트너가, 군대 입대 전에 결혼을 해서 살았다고 합시다. 


그럼 군대에 가서, 헤어져 사는 게 정상입니까? 같이 자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게 정상입니까? 왜 군대 내부에서 아파트를 제공할 수 없습니까? 일병이니까? 장교는 되고, 졸병은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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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뭔가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굉장히 잘못알고 계시군요. 님이 문제제기하신 여자친구가 고무신 거꾸로 싣는 것은 전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이세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구조의 문제이죠. 


문제는 그걸 군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신 것도 아니고 '여군'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어보셨다는 것입니다. 피우진 후보를 '군전문가'가 아니라 '여군'이라고 물으면서 그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시는 님의 '정치학'이 근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은 그것을 명백하게 '여군'의 입장이라고 말하셨습니다. 그게 여군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님의 답변을 보면 군전문가에게 기대하는 답변을 적어놓았지만 님의 질문은 '군전문가' 피 후보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여군' 피 후보에게 묻는 것아닙니까? 님의 이 질문과 님 스스로의 답변 사이의 괴리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때로는 답변보다 질문이 더 정치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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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엄기호/ 좀 가르쳐주십시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요.


 엄기호님의 정치학은 무엇입니까? 음...여군과 남군이 동등해야 한다는 것과, 여군과 남군이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주제 아닐까요? 제가 질문한 것은, 여성 군인으로서, 남성 군인과는 또 다른 시각이나 내용이 있는가? 

이런 것을 질문 한 것인데요? 


제가 40대 기수론을 이야기하면서, 예를들어서, 여성이면서 40대 진보 정치인, 심상정이라고 합시다, 이 인물이야 누가 되었는지 간에. 성평등의 문제를 차이점을 없애는 것 관점에서 볼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이게 아니면, 엄기호씨가 말하는 핵심이 뭔지 잘 이해가 안가네요. 그리고, 비례대표 여성 홀수 번호 3번에 피우진씨를 올려놓은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표명령 장군도 있고, 나름대로 진보적인 남자 군인들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gender bending 성 역할 구부리기 허허. 이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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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선

이 문제는 국방일보나 정훈장교 또는 국방부에 질의하시지요. 동아전과 나옵니다. 표준전과는 안나오는거 같습니다. 며칠전에 동아전과 샀습니다. ^^; 농담/사실 피우진후보를 잘모르는데...진보신교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군대나 여기나 바꿔나가야할 동질적인 부분이 많을겁니다. 예를 들어 범청학련 통일선봉대 수도권 특별중대 대장님이 학생위원장하는게 소위 진보정당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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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이세현님/ 이제 좀 대화가 되기 시작하네요. 


1. 제목 말입니다.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면요, 반전반핵 평화운동가, 혹은 페미니스트 운동가 입장에서만 해석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냥 한국에서 평균적인 남자의 정치의식 수준에서 묻는 질문입니다. 제목을 그럼 제가 "한국 정규군의 적정수치와 군축에 대한 피후보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렇게 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달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그냥 말하는, 그리고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지만, 우리가 한번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를 써 본 것입니다. 


2. 질의서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요, 이미 투표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실무담당자들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시간도 돈도 여력도 없다"고 말할 지 모릅니다. 2004년과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2004년에 질의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후보자들에게 개별질의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상황이 불투명합니다. 이세현님이 질의를 피우진 후보에게 한 것처럼, 적어도 2주간은 당원들과 대화할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세현님과 논쟁해서 혹은 대화를 해서 생산적으로 되었으면 합니다. 전 반전반핵 조지 부시 반대 데모나 이라크 파병 반대하지만, 군대나 전술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을 죽이자는 게 아닙니다. 전 전쟁과 인류진보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는 정도입니다. 막상 닥치면?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20세기 사회주의자들은 [Land and Freedom] 처럼,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해서 전투도 벌이고 그랬으니까요. 


3. 우리 안의 권력...문제가 이 국방 주제나, 몇가지 주제들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전 이세현님의 정치적 입장보다는요, 조금 실상을 듣고 싶습니다. 피우진 후보로부터 말입니다. 아직도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입니다. 제가 전투 용어쓰고, "여군의 입장에서 고무신" 운운했다고 말입니다. 그 화남, 그리고 분노, 좋습니다. 그런데요, 보통 사람들이 소주 한잔, 맥주 한잔, 커피 한잔 하면서, 피우진 후보에게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대화의 출발은 '비상적인 오해'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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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암반석/ 근데 그게 왜 그럴까요? 하하... 아마 표우진 후보가 답변을 "지혜롭게" 또 나름대로 여유를 가지고, 답변을 하면, 오히려 홍보수단도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군대로 인해서 남녀의 이별이 생기거나 남남 여여 이별이 생겼다면, 그게 개인적인 것이든지 구조적인 것인지 사회적 불행인데. 


"여자가 책임이다. 남자가 책임이다" 이거 따지자는 게 아닌데. 지금 무슨 춘향가를 쓰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안의 권력이라. 한양대 임현진? 우리 안의 파시즘. 조금 비극적인 사연이 있는데, Leftist Fascism 용어가 아도르노와 그 제자 사이에 나온... 결국 둘다 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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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표

제가 옛날에 예비군 훈련 가면서 아는 여자들한테 다 전화해서 고무신 거꾸로 신지말라고 신신당부 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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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고무신 거꾸로 신는 문제. 돌이켜보면 참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ㅎㅎ 원시님의 지적에 동감합니다. 수많은 군인들의 탈영과 부적응을 초래하며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는 사안입니다. 


글구 박영희,피우진 후보에게 질문이 왜 집중되냐 하시는데 솔직히 상위순번인데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국회의원될 확률이 높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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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세바스찬님/ 늦게 쪽글을 봤네요. 구승신 (2005) 국방정책연구 집에 실린 " 신세대 병사의 군 생활 적응에 영향을 주는 요인" 이라는 논문에, 군대 있는 동안 가장 걱정하는 게 "애인 변심" "친구들과 관계 소원" 입니다. 전설같은 탈영 사건들도 많고요. http://www.kida.re.kr/ka/K100001060/KIDA0p00000wwf.pdf 


이게 다 정상은 아니죠. 우리안의 "비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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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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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016. 3. 3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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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한국 보수파의 외교 실패를 관찰하면서 1945년을 새롭게 다시 해석하다

 

1943년에서 1945년까지 분단 과정의 교훈  :  외교 철학의 중요성과 국제 정치 능력

 

다른 나라들이 코리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게 중요하다. 코리아는 '일본 점령지'로 해석되었다. 한국인들은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 (해방일)로 기념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은 국제 정치와 외교에서는 진실의 전체가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 영국 등에게는 코리아란 일본 패방 이후 새로 생긴 '전승국의 전리품' 영토였다.  

 

큰 그림을 그리자면, 미국과 소련은 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협조하기도 하고 새로운 경쟁을 시작했다. 그 무대는 유럽이었고 새로운 지도 그리기였다. 발틱, 발칸반도와 독일 (동독과 서독의 불균형 분할: 동독은 서독의 3분의 1 영토 해당) 지역에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는 충돌했다. 미국과 소련의 제 2차 라운드 경쟁 공간은 한반도였다. 제 3차 라운드는 인도차이나 반도 (베트남 등)이었지만 당시에는 지연되고 있었다. 

 

참고: 아래 글은 1945년 8월 15일 이후, 인민위원회, 남로당 북로당, 이승만, 김일성, 여운형, 박헌영, 송진우, 김구 등 남한 북한 정치 주체들은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1943년부터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까지 한반도 운명을 결정지은 몇 가지 국제적 사건들과 협상들만을 다뤘다.

 

0.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 1945년 2월 얄타회담, 1945년 7월 17일~8월 2일 포츠담 회담,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까지. 누가 코리아 정치를 좌지우지했는가? 왜 루즈벨트는 '한반도 20-30년 신탁통치안'을 스탈린에게 제안했는가? 

 

(1)  1943년 11월 22~26일 이집트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루즈벨트,  중국 장개석,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은 대 독일 일본과의 전투 전략을 수립하면서 코리아(조선) 미래도 논의했다. “코리아는 자유 독립국가가 될 것이다"는 조항을 첨가했다. 그런데 미국 민주당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코리아는 신탁통치 기간을 거쳐서 독립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신탁통치안에 따르면 코리아는 독립국가 수립 이전에 미국, 영국, 중국과 소련의 분할 지배하에 있게 된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 중국 장개석,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영국 윈스턴 처칠이 참여했다) 

 

 

 

(2) 1945년 2월 4~11일, 크림 반도 얄타 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카이로 회담에서 나온 코리아 신탁통치안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다. 미국 중국 소련 세 나라가 코리아를 20년에서 30년 정도 신탁 통치를 할 것을 제안했다. 소련의 스탈린은 이러한 루즈벨트의 20~30년 신탁통치 제안에 대해서 “신탁통치 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응답했다. 무슨 확실한 코리아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채 이러한 신탁통치안이 논의되었던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소련에게 코리아를 신탁통치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이유는 스탈린에게 이러한 코리아 분할 통치 선물을 주면, 소련이 태평양과 만주에서 일본군대와의 참전을 선언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이러한 제안만 해놓고 1945년 4월 12일에 병으로 사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에서 전승국가들 사이, 특히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전리품을 둘러싼 영토 분할 경쟁이 시작되었다. 냉전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극동 아시아와 태평양에서도 소련과 미국과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1945년 2월 얄타 Yalta 회담, 영국 처칠, 미국 루즈벨트, 소련 스탈린이 참여했다. 스탈린의 등장이 시작된다) 

 

 

 

 

 

(얄타 회담의 주요 안건은 독일을 소련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승전국들이 어떻게 분할통치하는가 였다 )  

 

 

(3) 독일 포츠담 회담 (1945년 7월 17일~8월 2일) 이후, 38선 분할과 소련군과 미군의 코리아 점령

 

 

포츠담 회담의 주요 의제는 미소의 독일 분할 통치, 베트남의 16도 분할 (북,남 베트남), 폴란드 주권 범위, 그리고 일본 항복을 요구하는 7월 26일 '포츠담 선언' 등이었다. 

 

8월 9일 드디어 스탈린은 만주 일본군과 전쟁을 선포했고 소련 '붉은 군대'는 중국으로 전진했다. 몽골 인민공화국과 연대한 '붉은 군대'는 8월 20일 만주에서 일본을 완전히 패퇴시켰다. 만주에서 승전으로 인해, 소련군은 만주와 경계를 이루는 북한 지역과 남쪽 코리아까지 해방구역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에 대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한반도 38도 분할을 소련에 제안했고, 소련이 이에 동의해서 소련군은 북한을 점령하고 미군은 남한을 9월 14일부터 점령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은 신탁통치안을 두고 협상을 벌였으나 코리아 내부 좌우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12월 이후 미국과 소련의 공조틀은 깨졌고,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고 말았다.

 
 

 

(왼쪽은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노동당 출신 수상이다. 7월 5일 선거에서 보수당 윈스턴 처칠이 패배해서 애틀리가 참여했다. 가운데는 해리 트루먼 민주당 대통령이다. 4월 12일 루즈벨트 병사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이 사진에서 중요한 인물은, 영국 미국에 비해 재임기간이 가장 긴 소련의 조세프 스탈린이다. 오른쪽 ) 

 

 

 

 

 

 

(1945년 8월 15일 이전 중국, 만주, 한반도, 일본 지도에 따르면, 미국과 소련이 어떻게 한반도를 해석했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 소련에게 한반도란 일본 제국의 영토였고, 거기에 전승국으로서 점령 통치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1. 미국과 소련은 조선(코리아)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일본 영토 일부로 간주했다. 애초에 코리아(조선)가 주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945년 독일과 일본의 패망 이후 미국과 소련은 코리아 (조선)를 일본제국 영토의 한 부분이라고 파악했다. 소련 군대 이름은 ‘붉은 군대 the Red Army'였다. 소련군은 일차적으로 만주지대에서 일본을 패퇴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고, 미군은 일본 섬들과 본토 4개 섬들을 점령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다. 책의 저자 존 가디스는 1945년 8월 이후 코리아(한반도)는 미국에게 일종의 ‘덤’으로 주어진 영토로 해석했다.

 

일본이 1945년 8월 20일 만주에서 패배하자, 미국과 소련은 정치적 ‘공백’이 된 코리아 한반도를 38도 선을 기준으로 편의적으로 북부 코리아는 소련군이, 남부 코리아는 미군이 점령’ ‘통치’한 것이다.

 

 

 

 

(38선이 그어진 시점, 미국과 소련이 인식하고 있는 영토 개념은 '소련 존'과 '미국 통치존'이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조선을 완전 지배하게 되었다는 뉴스. '일본과 코리아가 하나가 되었다'는 제목이 이채롭다) 

 

 

 

 

 

 

(2차 세계대전 기간과 그 이후, 미국 소련 영국 등 전승국이 해석한 코리아란 바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코리아'이다. ) 

 

 

 

 

2. 소련군의 북 주둔, 미군의 남한 주둔은 무엇이 문제였는가? 소련군과 미군의 ‘통치’로 인해서 단일정부 수립은 연기되어 버렸고, 소련군과 미군 철수 시한도 정해놓지 않았다. 

 

 

이렇게 소련군과 미군이 동시에 북한과 남한을 분할 점령함으로써, 코리아의 운명은 다시 국제적인 세력관계의 이해관계에 내맡겨지게 된다. 소련군과 미군이 1948년과 1949년 사이 북한과 남한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두 군대 철수가 오히려 코리아 한반도의 위기 등급만 더욱더 올려놓고 말았다. 소련군과 미군은 철수했지만 소련군은 북한 정부를 지지하고, 반대로 미군은 남한 정부를 옹호했다. 

 

이러한 북한과 남한 정부의 수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한국의 최대 과제였던 독립정부 수립의 실패를 의미한다.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만들어진 38선, 1945년 당시 만들 때만 해도 2016년이 되도록 이 분단이 이어질 지는 몰랐을 것이다. ) 

 

 

 

3.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코리아에 다이나마이트 뇌관을 설치하고 군대를 철수한 셈이다.

 

회고적으로 평가한다면 미군과 소련군이 설치한 이 폭약 뇌관은 그 어느 누군가가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누가 이 폭약 버튼을 누를 것인가?  

 

북한의 김일성 정부와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단순한 미소의 ‘꼭둑각시’는 아니다. 그러나 이 두 정부의 정치적 의지와 결정방향, 그리고 그 선택지들을 결정적으로 규정한 것은 미국군과 소련군이었다. 

 

소련군과 미군이 코리아에서 철수한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개의 한국 정부들을 하나로 합치는 ‘경쟁’이다. 그 방법으로 불행하게도 북한 정부와 남한 정부는 ‘전쟁’을 선택했다.

 

 

4. 그렇다면 남한 북한의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 왜 두 개 정부는 ‘전쟁’ 대신 공존과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는가? 

 

 

북한 김일성 정부와 남한 이승만 정부 간의 이념적 정치 가치관의 차이가 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북한 김일성은 항일무장 투쟁 경험을 내세워 민족해방 이후 사회주의 정부를 한반도에서 수립하고자 했고, 남한 이승만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통일정부의 이상형으로 제시하면서 ‘북진 통일 March North'을 주창했다. 

 

 

 

 

(1948년 이승만은 당시 73세였다.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와 중장 존 하지) 

 

1945년 패망 이후 분단된 서독과 동독에서는 통일 전쟁이 발발하지 않고 긴장공존을 유지했다. 그런데 왜 남한과 북한은 이러한 ‘긴장’과 ‘대립’속에서 공존하지 못한 채, 3년 전쟁을 경험했는가? 내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남한 이승만 정부와 북한 김일성 정부가 ‘꼭둑각시’가 아니라 코리아 프로젝트(통일 코리아)가 서로 달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한 이승만과 북한 김일성 모두 ‘전쟁’ 발발시, 통일전쟁이 일어난다면, 북은 소련군 남은 미군의 원조를 받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세 번째, 동독과 서독의 분단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유럽에서 소련군과 미군은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미국과 소련은 외무부 장관 협의를 통해서 각 국가들의 이해관계들을 조정 합의 타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 마오 정부의 탄생 이후, 급변하는 제 2의 전선이 된 극동 아시아와 남한과 북한 영토가 미국과 소련이 그 대립을 해소할 정치적 공간이 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50년 6월 25일까지는 미국과 소련이 유럽이 아닌 제 2의 전선이 형성된 남한과 북한에서 누가 패자가 되느냐를 놓고 한판 격돌을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한 이승만 정부와 북한 김일성 정부 역시 소련군과 미군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내전’을 준비한 셈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소련 사회주의 진영과 미국 자본주의 진영 사이에 ‘갈등’ 폭발이 발생하기 최적화된 곳이 바로 한반도였다.  

 

 

 

 

(1945년, 33세였던 김일성은 소련의 이반 키스티아코프 장군의 원조 하에 북한의 주요한 정치가로 등장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 집회에 등장한 김일성 ) 

 

 

 

5.  남북한 시민 내전과 미소진영 국제전을 동시에 수행한 한국전쟁

 

 

소련과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각각 북한과 남한에서 관철시키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과정과 그 이후에 소련과 미국이 유럽 발틱, 발칸 반도, 독일에서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냉전’은 시작되었다. 그 냉전의 제 2차 라운드 무대가 바로 한반도가 되었다. 

 

 

역사가 존 가디스는 미국은 군대 철수 이후, 1950년 1월 12일 에치슨 라인을 강조하면서 미국은 ‘트루먼 경계선’, 즉 일본과 오키나와 섬,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을 미국 헤게모니 제한선이라고 했다. 남한과 대만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존 가디스 말대로 미국이 여기에 만족했겠는가?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미국은 1945년 8월 일본 제국주의 패망 이후, 일본 지배하에 있던 한반도 영토를 ‘덤’으로 봤건 실질적인 대륙 전진기지로 봤건 간에, 이 둘 다이건 간에, 대 한반도 이해관계를 분명히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1945년 9월 인천에 들어온 존 하지 중장이 ‘일본 제국이 아니라 미군 군대가 남한을 통치한다’고 말했겠는가? 

 

 

미국의 대 한반도 이해관계는 미국 혼자가 아니라 소련의 이해관계 표출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련은 미국의 의도를 보고 대 한반도 전략을 수립했고, 미국은 그 반대로였다. 미국과 소련 가운데 북한 김일성 정부과 남한 이승만 정부가 있었지만, 규정적인 결정적인 힘은 미국과 소련이었고, 남한과 북한 정부가 행동개시할 정치적 환경과 동기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존 하지 중장과 미군은 남한에서 대중적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던 이승만 세력이 그의 정적이었던 좌익세력을 남한에서 탄압하고 제거하는데 물질적 군사적 토대를 제공했다. 

 

 

 

 

 

 

(1950년 1월에 발표된 미 국무장관 딘 에치슨 Dean Acheson 라인은 대만과 한반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미국은 직접 개입하게 된다) 

 

 https://www.stratfor.com/image/us-cold-war-containment-strategy

 

 

(당시 미 국무장관 딘 에치슨) 

 

 
참고 : 
 
John M.Swomley,jr, American Empire: The political Ethics of 20th Century Conquest, (MacMillan Company:London), 1970
John Lewis Gaddis, The Cold War : A New History, 2005, Penguin Publisher 
Kees van der Pijl, The Making of An Atlantic Ruling Class,(Verso:London), 1984
Charles W.Kegley,Jr, After the Cold War: Questioning the Morality of Nuclear Deterrence,(Westview:Oxford),1991.
Leslie Defler, An Age of conflict: Reading in 20th Century European History,(Harcourt Brace College: London), 1997
Misha Glenny, the Balkans: Nationalism, war, and the Great Powers, 1804-1999, (Penguin:USA), 1999
Eric Hobsbawm, Age of Extreme:the Short 20th Century 1914-1991, (Michael Joseph:Lond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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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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