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02020. 7. 13. 15:53

2010.06.11 08:20


[심상정님 보세요 1 ] 2012년 대통령 후보가 목표입니까?

원시


조회 수 2065 댓글 6?

서설: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이냐 <2년간 국회의원직 실직으로 인한 공포와 불안이냐?>


 


심상정님:  보내주신 <당당한 아름다움> <현실 혹은 이상> 책 두 권 다 읽었는데, 그리고 나서 며칠 후에 사퇴하고 울고계시더군요. 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역사교육학과 1학년 볼탱탱-광탄녀 사진을 처음 봤는데, 이런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심상정님은 지금 "미래" 시간만을 보고 달릴 게 아니라, <과거>의 시간들 속으로도 빠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같이 말입니다.


 


진보(Fortschritt) 라는 말 자체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다"는 뜻이다 보니까, 자꾸 사람들이 미래만 "불안한 마음"으로 "승부"를 겁니다. 진정한 좌파의 덕목은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앞으로 돌진 !! "을 반성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성찰"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던데요, 그 "성찰"이 바로 이러한 "앞으로 돌진!!"에 대한 반성입니다.  이 자본주의체제가 우리들의 삶의 터전, 고향, 향수,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던질 시간을 안주는 것입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갉아먹는다 (Angst isst Seele auf: 파스빈더 감독) 라는 독일 영화가 있습니다.  독일사람들 일상사에 보여준 인종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이질적인 인종에 대한 괜한 불안한 마음이 우리들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이런 의미같긴 한데요, 영화 해석은 다양하니까, 길게는 안쓰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좌파가 2010년에 어떤 문화적 삶의 의미를 가지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국민들과 시민들, 노동자들이 "불필요하게 외부로부터 강요된, 그것도 체계적으로 강제된 불안감 Angst"을 제거하는 정치적 활동과 실천을 "좌파"라고 부르겠습니다. 


예를들면 "영어 울렁증" - 이건 영어공부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의식을 통제하는 정치적 지배수단입니다. 그래서 러다이트 운동을 벌여서 "영어를 폐지하자" 이런 결론은 아니죠. 좌파들 중에 특정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해야, 국제질서 지배자들과 국내 동맹자들과 싸워야 하니까요. 


집값 오른다 울렁증-불안감, 해고의 공포, "너 비정규직이지- 열등감의 주입 공포와 불안" 


 


왜 갑자기 "불안 Angst "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프레시안 심상정 인터뷰의 핵심은 "진보정치는 (집권의 전망)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가질 때 강화되는 것이지, 다 지쳐서 떨어져 나가게되면 그 역사성은 과연 누가 지키겠는가?" 입니다. 진보정당 전 대표, 그리고 국회의원 출신 대중정치가로서 "불안감"의 표출입니다. 두번째로는 심상정 개인의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저는 태권도로 치면 파란띠 정도에 불과하지만, 2002년부터 지금까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글을 쓴 이유는, 노골적으로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밥그릇"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가 시원찮았건 어쨌건 의도와 동기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치 진보-좌파 사람들이 "밥그릇" 그러면 "대의와 명분, 이념"을 이야기해야지, 왜 하필 "밥그릇"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거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80년대처럼 길거리에 김밥먹고 데모하던 시절이 아니고, 살 집, 공부할 연구실, 대학교와 방송국, 노동자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평생대학이 필요한 시절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밥그릇 그래서 중요합니다. 심상정 전대표의 밥그릇도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는 노골적으로 솔직하게 심상정 밥그릇 마련해야 합니다. 역사교육학과 1학년 통통-볼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지, 국회 정론관 오마이뉴스 인터뷰하면서 질질 짜고 눈물 흘리는 모습 <당당한 아름다움> 아닙니다.



 


               "진보신당 자전거", 언덕을 오르는 "기어" 장착된 자전거를 만들 때


 



<대안>  "다 지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는 것 당연히 방지해야겠습니다. 그럼 방법이 무엇입니까?


한국의 진보정당, 지금 언덕을 자전거 타고 오르고 있습니다. 심상정님의 <지쳐나가 떨어진다>는 걱정은, 지금 진보신당 자전거에는 언덕을 부드럽게 타고 올라가는 "자전거 기어 장치"가 없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냥 "기어 없는 자전거"를 타고 심상정님이 타고 가다가, 힘들어서 "진보신당" 자전거 못 타겠다. 이런 것 아닐까요?


 


심상정님,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그 마지막 저 이야기 <다 지쳐서 쓰러질 것 같다, 그래서 진보세력 재편하자>는 이야기는 알아듣겠는데, 나머지 이야기들은 거의 정치적 변명, 아니면 왜곡이 많이 있습니다. 몸은 진보정당인데, 마음은 유시민 물감으로 채색된 우중충한 수채화같습니다.


 


<질문 드립니다> 2012년 목표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정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진보세력 재편>의 사무국장 역할을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2004년 이후, <진보정치>의 씨앗-종자라도 제대로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강기갑 아저씨의 돼지 종잣돈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돝>의 결말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철도를 건넜으니까, <접 붙힌 이후> 철도를 돌아올 때 장면이 남아있으니까 두고는 봐야죠.


 


심상정님, 진보신당 자전거에 "기어"를 장착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야지, 기어없는 자전거타고 가다가 "에이 힘들다, 나 더이상 못 타겠다" 자전거 던져버리고, 지나가던 유시민표 3륜 화물차 타시면 어떡해요? 심상정님이 대통령이 되려면, 한국 정치 지형상 3번은 앞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도합 12 수는 아니더라도, 삼수, 사수는 하셔야 할 듯 합니다. 근데 지금 <다 지쳐서 쓰러질 것 같다> 이렇게 나오면 어떡합니까?


 


2012년 1회용 대선용 "연합정당론" 유시민표 3륜 화물차 -> 배기가스 오염이 심하다. 기어장착된 자전거타고 친환경 생태 원리에 맞는 진보정당의 "기어"를 장착해야 할 때이다. 심상정님은 "기어 장착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있나요? 큰 톱니, 적은 톱니 각각 7단계, 3단계 정도는 있는 기어 말입니다.


 


7 곱하기 3 = 21가지 단계들, 언덕배기 경사면과, 자전거 타는 사람의 에너지 크기를 고려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야 합니다. 심상정님의 프레시안 인터뷰 기사는, 2012년 대선, 총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심상정님이 "진보정당, 좌파정당"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면 이 모든 이야기 "기어 장착된 자전거" 론은 헛물켜는 것이지만요.


 


6.2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진보신당 기초의원 25명 배출했으니까, 전체  3649명의 0.68%, 민노당까지 다 합쳐서 167석 진보정당 점유율은 4.5 % 입니다.


[(*참고:  6.2 지방선거 의회/행정부 총 3991명 선출: 광역단체장 16명, 기초단체장 228명, 광역의원 761명(지역구 680명, 비례 81명), 기초의원 2888명(지역구2512명, 비례 376명), 교육감 16명, 교육위원 82명]


 


0.68% 점유율, 그리고 넓게 봐서 진보신당+민노당 = 4.5%의 진보정당 점유율, 이것이 우리 한국 진보정당의 출발점이고 현실입니다.


 


심상정님의 행보와 프레시안 인터뷰 <진단 및 주장>, 역사성 무시라고 봅니다. 역사교육학과 출신답지 않습니다.


 영국 노동당 1900년에 창당되어, 최초 과반수 의석 획득은 1929년에 이뤄졌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은 58년부터 81년까지 23년간 지방의회/지방 행정을 꾸준히 관리해서, 결국 미테랑이 81년에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남의 나라 경험을 기계적으로 도입해서는 안되겠지만, 집권에서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비약>을 꿈꿀 수는 없습니다.  심상정님 주변에 까마귀 친구들이 감언이설로 2012년 대통령 선거 후보나, 또는 그 이후에라도 그렇게 말하는 까마뀌떼 무리 4-5명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이비 정치학(?) - 중세 연금술사들 정도 되겠네요.


 



<결론> 지금 한국에서 진보정당 운동의 제 1차적 목표, 제도권 (행정/의회: 지방과 전국)에서 뚫어야 하는 제1의 과제와 목표는, 이 0.68%,  혹은 4.5%를 향후, 10년, 15년, 20년 안에 어떻게 25%, 30%까지 끌어올리느냐, 그게 관건이 될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6.2 지방선거 이외에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역 의회/행정부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으면,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활동은 큰 힘을 받을 수 없습니다. 둘의 상호관계야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렇다면, 김기식 참여연대 위원장, 심상정님이 흐릿하게 말하는 "민주당내 급진파 + 창조한국당 + 민노당 + 진보신당" 연합정당 모델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1) 급조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정치활동의 결과물 (지방의회/행정, 국회의원 활동등)이 검증된 바가 없고, 공유할 지점들이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반-한나라당은 일시적인 전술이 될 수 있지만, "정당"의 필수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닙니다.  마치 털도 안나고 제 2차 성징도 겪지 않은 어린애들이 섹스체위 점수 매기고, 논하고 있는 꼴입니다. 설익었다는 것입니다.



 


(2)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 이끌고, 장렬하게 나아가서 패배할 확률이 높습니다. 요행으로 한나라당 실수로 (6.2 선거처럼) 역동적 승리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전리품은 겨우 해야 노회찬 첼로 부장 (문화부), 심상정 여성복지부 정도일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30년을 해서 만들어놓은 성과를, 한국에서는 4년, 7~8년 만에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이게 문제점입니다. 아니 갑자기 핀란드, 스웨덴 방문하던 분이, <미국식 민주당 오바마 > 만세를 부르고 있습니까?  



 

 6.2 지방선거 결과와, 진보정당의 집권 전략에 대해서: 기어 장착된 자전거 만들기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진보신당 당원들이, 무슨 고도의 정치학 분석도 필요없습니다, 상식과 양심을 가진 당원들이 심상정-노선과 눈물 드라마를 걱정하는 것은, < 진보정당 집권전략>에 대한 "심상정과 그 까마귀들"의 과장과 비약, "설익음"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진보정당의 집권 전략 (진보신당 기어 장착된 자전거 제작) 에 대해서 요약하겠습니다.



 


(1) 전국 기초단체장의 20%-25% 확보 가능한 정치 노선과 정치활동, <정치 지도자> 배출 프로그램을 만듭시다.


     2014년에는 적어도 기초단체장 5군데, 2018년에는 20곳을 만들어냅시다. 2022년에는 광역단체장 1~2곳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합시다. 기초단체장 20%면, 적어도 45석은 우리 진보정당이 배출해야, 대통령선거에 당선가능한 후보도 낼 수 있고, 또 집권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순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집권의 물리적 기초가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당/국참당 386.486식으로 당선될 거 아니면 말입니다.


 


(2) 전국 기초 의원, 광역 의원을 현재 0.68%에서, 다음 2014년에는 5%, 2018년에는 15%~20%까지 배출해낼 수있는 정치활동을 펼칩시다.


 


(3) 2012년까지, 진보신당에서 원래 추구했던 제2의 창당운동, 진보세력들의 규합과 문호개방을 통해서, 안으로는 통일성을 높이고, 바깥으로는 진보정치가들을 포용하고 끌어들이는 활동들을 강화했으면 합니다.



 


 


진보신당 집권전략이 필요하다 

(1) 전국 시장들 배출 25%



원시


http://www.newjinbo.org/xe/239026


2009.06.13 00:28:50



1. 2004년과 2009년 얼핏보기에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 같습니다.


2004년에는 노무현의 탄핵이후 다시 노무현이 되돌아오고, 2009년에는 죽어서 영혼으로 되돌아왔습니다.



2. 프랑스 사회당과 미테랑 대통령의 경우 - 도전에서 집권기까지


(행정 도시 시장들 25%를 확보하는 것이 집권의 1차적 형식적인 조건이다)


프랑스 사회당 (PS) 미테랑은 1965년 드골 대통령과 맞붙어서, 44.8%를 얻었지만, 드골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명예로운 패배였다. 당시 어느 누구도 드골을 꺾을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2차 도전은 1974년, 지스카르 (50.81%), 미테랑 (49.19%), 미테랑은 다시 패배했다. 3차 도전은 1981년, 결선에서 데쓰텡을 이기고 미테랑 ( 51.76%)은 프랑스 사회당 최초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이러한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의 성공 뒤에는, 지방 행정 도시를 사회당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1979년 당시 프랑스 인구 3만 이상 도시 221개 중에서, 프랑스 사회당 출신 시장이 81,72개 도시가 프랑스 공산당 출신이었다. 10만 이상 도시 49개 중에서는, 13개 도시를 프랑스 사회당이 시장을 맡았다는 것이다. 



*  프랑스 사회당이 한국 진보신당이 따라 배워야 할 유일무이한 모델은 아니지만, 집권의 형식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한번 살펴볼 필요는 있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 2기 시절에는 프랑스 역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났고, 영국 보수당 쌔처, 서독 보수당 (체데우 CDU) 콜 수상 집권 하, 영국 독일에 비해서, 프랑스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증가율은 영국/서독보다 더 낮았다)   



** 아래 글은 민주노동당 시절에 쓴 글이므로, "민주노동당"이 글 주체로 나와있는 점을 고려하시길.


[집권전략]프랑스 사회당이 주는 교훈


http://dg.kdlp.org/236534


2005.03.07 18:09:23 승부처는 지방 자치단체장이다 !


글쓴이 : 원시


등록일 : 2004-05-10 13:43:12


지역으로 눈을 돌릴 때


노무현이 돌아온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제 2기 <개혁 드라이브>를 건다. 그러나 얼마나 국민들 살림살이가 나아질지, 노-사관계가 공평하고 합리적인 대화체제로 나아갈지, 비정규직이나 농민의 부채 문제, 한-미 종속적 관계등이 해결될지는 미지수이다.


17대가 16대와 다른게 있다면, 이제 국회의원들이 <울고 불고 난리 치면서> 방바닥기고 길바닥 주저앉고, 공판장 찾고 천막 치면서, <자기 밥그릇> 지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17대 의원들은 적어도 자기 지역구 관리에 보다 신경쓸 것이다. <개인 몸값> 올리는 데 <실적 쌓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노무현이 돌아오면, <행정수도>이전 등과 관련해서, 지역분권화, 국토 균형발전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한나라당, 열린 우리당 지방 자치단체장들이 비리와 이권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방분권화 강화는 <재정><인사권>의 민주화 없이는, 지방 토호와 서울과의 유착을 강화시킬 것이다.


광주 박광태, 부산 안상영(자살), 인천 최기선 등 민선 자치단체장 67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고, 13명이 지금까지 구속되었다. 최근에는 전남도지사 박태영씨도 자살했다. 민주노동당, 어떻게 이러한 "부패공화국"의 토호들의 멱을 딸 것인가? 민선 자치 단체장 10년, 그러나 선거 비용만 늘어났다. 지방 토호-자치단체장간의 정경유착은 결국 노동자/농민/도시 월급쟁이들 그 노동의 결실과 세금을 도적질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과연 지방 자치 단체장을 책임질 수 있는가? 이 관건 중에 하나는 바로 이러한 <재정> <인사권한> 집중을 막고, <재정>과 <인사권>의 공개, 평가심의위원회를 요청하면서 지방 <행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지방 의회의원들의 힘도 필요하지만, 일선 행정 공무원들의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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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작성일 2004-03-11


10년안의 집권 계획에 대해서,혹은 미래의 집권 계획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씨가 많이 사례로 드는 프랑스 정당 구조와 사회당의 약진사를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이는 대중적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하루 속히 전국적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를 푸는데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사회당 (Socialist Party PS) 의석 수를 잠시 뒤돌아 보기로 한다.



특히 78년 과 81년 사이의 사회당 급부상은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이 기간 사회당 의석수가 거의 두배로 급증하고, 당원수도 78년과 81년 사이 20만에 육박하게 된다. 마침내 미테랑 사회당수가 프랑스 내각 수상으로 발탁된다. 우선 이념적 지형의 문제, 즉 사회당의 맑스주의 포기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생략하겠다.



1958 1962 1967 1968 1973 1978 1981


공산당 10 41 73 34 73 86 44

사회당 47 66 121 41(8) 89(12) 107(10) 267(14)


UDF

(RI and

other center) -- 36 42 61 77 119 63


드골 212 233 200 293 184 155 87

(Gallists)


* 위의 사회당 옆 괄호는 (Left-Radicals)


첫번째, 이런 사회당의 급부상의 근저에는, 사회당 출신 시장의 숫자, 즉 지방 자치단체를 보면 알 수 있다. 1979년까지 사회당 출신 시장은, 3만 이상 인구의 221개 시 중에서 81개 시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10만 이상의 시에서는, 49개 시 중에서 13개의 시장을 사회당 출신들이 맡고 있었다. 또한 6만개의 기초의회에서 수천명의 사회당 출신이 일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방 자치단체의 저력을 바탕으로 78년과 81년 사이 의회 장악이 현실화된 것이다.


... 중략...2000년 6월 치러진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 이후 67명 검찰 구속 수사, 13명 구속 수감 중이며, 부산 시장이었던 안상영은 교도소에서 스스로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금 지방분권화 정책이 오히려 지방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재정권한과 인사권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지방 자치단체장들의 ‘비리와 부패’는 지금 극치에 달해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국회의원 배출에만 신경써서는 안된다. 민주노동당이 수권정당으로 가는데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행정 실무’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동당이, 집권 프로그램을 제시하는데 가장 선결적인 조건은, 인구 10만 이상의 지방 자치 단체장(시장, 군수, 읍-면장)을 당선시켜서 실무경험을 닦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입법과 관련된 국회의원를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정을 담당할 자치단체장들을 어떻게 실제로 준비하는가 역시 중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2004년 4-15 총선은 2006년 자치단체장 선거의 예비전 성격을 갖는다고 줄기차게 제안했던 것이다. <비례대표 후보단>도 이런 지역자치단체장 후보 (*4-15 지역구 후보)의 정책적 원조부대여야 한다.


물론 프랑스 모델이 곧장 한국의 모형이 될 수는 없다. 두 나라의 역사적 차이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자리잡는데 그 전략적 힌트는 줄 것이다.


우선 민주노동당의 구성원 (당원의 계급/계층적 구성)이 보다 더 다원적이어야 한다. 프랑스 사회당이 58년부터 81년 사이 (23년간)에 걸쳐서, 성장해 온 가운데, 81년에 가서야 집권이 가능했다. 프랑스는 더군다나 남북한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는 나라이고, 사회당보다 더 급진적인 공산당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당이 우파와 공산당 사이의 중간층 표를 흡수할 수 있었다. 78년과 81년 사이, 당원도 두배로 증가했고, 그 당원들 구성 성분, 혹은 지지자들은, 봉급생활자-중간계층, 전문직 종사자, 공무원, 교사들이다.


이러한 결과는 프랑스 정치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얼마나 실천적 함의를 가져다 줄 수 있을 지는 또 다른 주제이다. 다만 한국 진보정당이 신경써야 할 부분들은, 위의 한국 제조업 노동자 이외의 다른 계층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 거치면서 민주화 운동/시민운동 등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중-장기적으로 진보적 대중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정파조직을 벗어나야 하고, 특정 계급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다른 계급 계층과 소위 신-사회운동 (환경/여성/지역분권화/소수자 인권 등)에 문호를 더욱더 개방해야 한다.


세번째, “권영길, 단병호님에게 드리는 쓴소리”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한국 노동운동은 위기이다. 노-노 갈등 전략[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노동자, 한국-외국인 이주 노동자, 화이트-블랙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 노동조합의 관료화, 교육 프로그램의 부재 및 개발 정체, 노-사-정 위원회에 대한 이니셔티브 부족 등 쏟아져 나오는 과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노동조합의 인적 구성에서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 노동조합 건설 바람과 승리경험이 부족한 젊은 노동자층이 엷어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여기서 프랑스 사례와 역사적 교훈을 하나 들자면, 프랑스 공산당이 사회당에 뒤진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젊은 후속세대들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어떠한 프로그램과, 젊은 세대들이 민주노동당내에서 일할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쏟고 있는가 겸허하게 뒤돌아 봐야 한다. 현재 민주노동당 그릇으로, 과거 386 세대들, 그리고 젊은 세대 청년/노동자을 인입할 어떤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꿈책

우리나라의 특별시나 광역시 다 합쳐서 시, 군은 168개 입니다. 특별시 1개, 광역시 6개, 일반시가 75개, 군이 86개네요. 자치구는 특별시나 광역시에 포함되는데, 모두 69개입니다. <출처: 네이버-> 행정안전부 자료라는데...신빙성은..- ->





원시

보통 우리나라 군은 인구가 3-5만 사이되나요? 군수는 선거로 뽑고, 읍장, 면장은 임명식인가요? 시가 75개면, 그 시 안에 각각 구들이 있으니까, 우선 구청장이 행정에서는 기본단위가 되겠네요. 



서울시는 25개 구청이 있으니까 당연히 중요하겠고요. 2010년 선거 목표는 당에서 <행정>이 아닌 <입법>분야에서, 기초의원 (지역/비례)들을 많이 후보자로 내는 것이라고 들었는데요. 기초의원도 기본적으로 중요하겠지요. 앞으로 행정구역이 어떻게 개편될 지 모르겠지만, 당이 여력이 되는한 계속해서, <행정>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듯 합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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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9. 3. 8. 20:17

생물학적 피나 정신적 피를 흘리지 않는 자유 실현이란 있을 수 없다. 




2014년 조사라서 2019년 현재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정치 의식적 측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아래 기사를 보더라도, 진정한 '자유'란 얼마나 실현하기가 힘든가를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자유한국당과 같은 보수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가?
자발적인 노예의식을 '애국주의'로 승화시켜 자기 개인 가치관으로까지 신념화시키고 내재화하는 그 현상은 왜 발생하는가? 


경향신문 강진구 기사는 좋은 글이다. 난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학과 철학에서 고전적인 주제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이 마치 '폴리스'를 벗어날 수 없듯이, 우리가 떼지어 집단으로 폴리스에서 사는 한 이 주제는 풀기 힘든 난제이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쓰는 '계급적 존재를 배반하는 허위의식'이라는 정치적 난제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탈리아 그람시, 독일의 프랑크후르트 학파 등의 연구주제들이다.


또한 제국주의 지배를 받았던 비참한 식민지 국가들에서 왜 '제국주의 세력과 결탁한, 제국주의자들보다 더 악날하고 지독한 자국 협력자들 collaborators'이 발생했는가를 두고 민족해방론자 사이에 주된 관심사이기도 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혹은 규정한다는 조악한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는 폐기해야 한다. 소련 스탈린이 통치 이데올로기 수준으로 전락시킨 이런 조악한 유물론, 혹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마르크스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오해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무능과 무반성을 낳을 뿐이다.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인류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노예의식'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한번 득도하거나 '하느님을 영접'했다는 식은 자유 실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자발적인 복종의식과 자기 기만은 끊임없이 매일 매일 발생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조장 (助長)'하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지배자들이 우리들보다 늘 한 걸음 앞서 뛰고 있기 때문이다. CDs 와 같은 금융 상품의 형태로, 신무기 개발,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 범죄 등으로 늘 다기한 전술로 노예들을 놀라게 만들고 충격받게 만든다.


생물학적 피나 정신적 피를 흘리지 않는 자유 실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자유를 추상적으로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기 결정권'으로 정의한다고 해서, 공동체의 독립 (independence = freedom 어원은 같다)이나 일터, 가정, 쉼터, 놀이터에서 자기 자유는 곧장 보장받지 못한다.왜냐하면 자유라는 것도 아주 구체적인 경제활동, 정치 문화 종교 활동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심지어 같은 노동자들이라고 해도, 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이해관계는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 복잡한 일상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 가족이 논과 밭에서 일했던 농경제 사회에 사는 것도 아니고, 수렵 채취 공동체에 사는 것도 아니다. 매일 매일 끊임없이 형태와 내용이 변화하는 유동사회 (fluid society)가 우리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기 결정권을 한 개인이 충분히 실현한다고 해도, 자기가 속한 수많은 집단들과 공동체의 '자유'와는 충돌하게 되어 있다.


공동체의 자유가 개인의 자유에 우선한다 이런 말에 앞서, 이러한 우리들의 현대적 삶의 조건 하에서는, 시민들 노동자들 학생들 모두 다 자기 이해관계들을 정치적으로 분출하고, 자기들끼리 스스로 조율하고 합의를 해 나가야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 실천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게 된 이유가 경제활동 양식의 변화 때문이다. 경제와 정치, 경제와 문화적 삶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자발적 노예의식과 복종을 가르치는 정치 경제 권력자 집단에 비해서, 일반 평민들 노동자 시민들은 '정치 참여' 시간이 없거나 부족하다. '자유 시간'이 생기면 자야 한다. 노동에 지치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걸 잊기 위해서 뇌 세포를 재생시키기 위해서 자야 한다. 비판의 무기를 벼리는 데 필요한 책이나 지식 습득은 잠 앞에 다 굴종한다. 


진정한 좋은 정치가는 이제 우리들에게 노동시간을 가급적 줄이고,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 법률 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내어주는 사람이다.


진정한 자유란, 스스로 직접 참여해서 피를 흘리지 않는 한, 어떠한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푸닥거리 동원식 정치, 정치적 참여를 단순한 대중동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정당 테크노크라트'와 '정치 기술자들'은 이제 청산 대상이다. 선거에서 이기는 승리자는 될 지언정, 진정한 자유를 꽃피우는 민주주의 경작자는 절대 될 수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들의 정치 의식 대다수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지배자들의 '말과 문장'을 자신의 신념 체계로 만들고 있다. 법률적 지식도, 계산적 수학 능력도, 자신이 믿는 종교적 교리도, 윤리학도 다 무용지물이다. 현실에 남는 것은 '강자에 복종하면서 걍 살어'가 되어 버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문장을 반대로 뒤집어 엎는 그런 실천을 스스로 해보고, 피부로 '아 다른 삶의 양식, 타인과 다른 언어들을 주고 받아도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경제도 붕괴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진정한 자유를 향한 한 걸음을 비로소 떼는 것이다.



[신문 기사 요약]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지배자 신념을 자기 믿음으로 둔갑시킨 비정규직 정치의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인 정의당보다, 심지어 민주당보다 새누리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층이 비정규직이다.


사실 조사: "2014년 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울에 사는 비정규직 2344명에 대한 생활·의식 실태조사"


(1) 비정규직들은 노후 불안과 고용 불안정을 호소하지만,  민주당(16.6%)보다 새누리당(24.4%)에 더 높은 지지를 보였다. 


(2) 18대 대선에서 이들의 67%가 투표를 했고 박근혜 후보(36.4%)가 문재인 후보(22.3%)보다 14.1%포인트 더 표를 받았다. 


->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비정규직의 권익을 박탈하는  "파견 확대, 쉬운 해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입법을 만들었다.  


(3) 비정규직 조사 대상들은 누구인가? 평균연령은 52세 ,  법정노동시간보다 5시간 많은 주당 45시간 노동, 월급여 133만원.


 (4) 강진구 기자의 주장은 보수파를 지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별 볼 것 없지만 "대부분 산전수전 다 겪은 아Q처럼 세상물정에 환한 다변가들"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 신념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5) 왜 이렇게 자기 권익을 뺏어가는 보수당을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당수가 지지하는가? 그 의식구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으로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대한 추억이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로 남아있다. 


노동조합이나 민노총에 대한 매도.  정규직 비난 등이 이들에게 공통적인 신념이다.  




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이야기](11)노동현실 망각 재벌 편들기, 아Q의 ‘허위의식’이 드리워져 있다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2019.01.04 17:08:57 

루쉰 ‘아Q정전’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시대 배경인 1911년 신해혁명 당시 봉건착취와 외세침략에 시달리던 중국 사회의 모습(위)과 2016년 5월 서울 현대차 사옥 앞에서 영정을 들고 원청인 현대차의 노조파괴 행위를 규탄하는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 조합원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재발에 관대·노조엔 가혹한 태도는 아Q의 ‘강한 사람 추종’ 연상


재계 최저임금 깎기 시도, 일부 비정규직 애국심·반노조정서 이용


중국 작가 루쉰의 <아Q정전>(1921)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Q는 날품팔이 노동자다.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지만 자존심이 강해 절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의 자존심은 불굴의 용기가 아닌 허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Q는 현실의 승리보다는 자기기만과 환상을 통해 정신승리에 안주한다. 그러다 보니 억압적 권력에 직접 저항하는 대신 자신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이 점에서 아Q정신은 봉건적 착취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현실 개선에 관심이 없었던 약 100년 전 무기력한 중국인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부당한 차별과 모욕의 피해자이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면 누구나 아Q정신을 의심해볼 만하다.


루쉰의 작품 속에서 아Q는 인격을 가진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력을 가진 상품으로 거래될 뿐이다. 그는 웨이짱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일정한 직업 없이 보리 벨 때가 되면 보리를 베어주고 벼를 찧을 때면 남의 벼를 찧어주며, 어떤 때는 배의 노를 젓기도 했다. 일거리가 좀 오래 있을 때면 주인의 집에 기거하다가 일이 끝나면 가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쁠 때나 그를 기억해내곤 했다. 


아Q의 과거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도 없다. 아Q는 집도 없어 토지신을 모신 사당인 토곡사에서 살았다. 


특별한 근력도 기술도 없는 그는 일손이 부족할 때 언제든 불러서 허드렛일을 시킬 수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아Q의 나이는 서른 살이다. 지금의 노동현실에 비춰보면 취업이나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고시촌 등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불안정 노동시장을 떠도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루쉰의 작품 속에서는 아Q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찾아보기 어렵다. 루쉰은 아Q를 통해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망각한 채 부정확한 현실인식에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민초들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Q는 자신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는 웨이짱 사람들을 ‘시골 촌뜨기’라고 얕잡아 본다. 반면 자신은 세상물정에 밝아 성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 꿰뚫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세상물정이란 기껏해야 웨이짱 사람들이 튀긴 생선에 듬성듬성 썬 파를 얹는 데 반해 성내 사람들은 잘게 썬 실파를 얹어 놓는다는 것 정도다. 현실인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일 뿐이지만 아Q에게는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게 만드는 최면제로 사용된다.


아Q는 또 웨이짱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지역의 세도가이자 부와 권력을 가진 ‘짜오(趙) 타이예(지방현관의 존칭)’와 자신이 같은 성씨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심지어 짜오 타이예의 아들이 ‘수재(秀才)’에 급제하자 “촌수를 따지면 내가 수재보다 3대나 위이니 이번 일은 나에게도 기쁜 일”이라며 거들먹거리기도 한다. 웨이짱의 보통 사람들이 주는 일거리로 살아가면서도 짜오가와의 동일시를 통해 일종의 정신승리를 추구한 것이다.


부정확한 현실인식에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과 동일시하는 허위의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아Q는 우리의 노동현실에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2014년 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울에 사는 비정규직 2344명에 대한 생활·의식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그 결과 비정규직들은 노후 불안과 함께 고용 불안정을 호소하면서도 민주당(16.6%)보다 새누리당(24.4%)에 더 높은 지지를 보였다. 


18대 대선에서 이들의 67%가 투표를 했고 박근혜 후보(36.4%)가 문재인 후보(22.3%)보다 14.1%포인트 더 표를 받았다. 


파견 확대, 쉬운 해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 고용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입법을 추진한 정치세력이 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조사 대상 비정규직들의 평균연령은 52세로 법정노동시간보다 5시간 많은 주당 45시간을 일하면서도 급여는 월 133만원에 불과했다.

 이들은 사회적·경제적 지위는 별 볼 것 없지만 대부분 산전수전 다 겪은 아Q처럼 세상물정에 환한 다변가들이다. 


[이유 분석]  (1) 개발 독재 잔재 (2) 국가주의 애국주의 (3) 노동조합 매도 (4) 정규직 비난 

하지만 이들의 기억은 1970~1980년대 개발독재시대 고도성장의 기억에 멈춰져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들의 기억처럼 기업의 성장은 노동자들의 숙련과 소득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자동화에 기초한 수출형 조립산업이나 단순 서비스 위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비정규직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숙련이나 소득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에겐 수출 대기업을 위해 노동자들은 희생해야 하고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과 임금 증가로 보답하리라는 믿음이 있다. 자연스럽게 파업은 매국이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조들은 국가 발전의 최대 걸림돌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일부 비정규직들이 자신의 계급이해에 배반하는 정치성향을 보인 것은 자신의 안정적 일자리를 철밥통 정규직 노조가 빼앗고 있다는 생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양대 노총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고용 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인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통해 이들은 일종의 정신승리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재계와 자유한국당, 친재벌 보수언론들이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대놓고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반대하는 여론몰이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배경이다. 

자영업자와 중장년 비정규직들의 애국심과 반노조 정서를 등에 업고 ‘일 안 하고 노는 유급휴일에도 최저임금을 줘야 하느냐’는 가짜뉴스로 월 174만원의 최저임금을 148만원으로 깎으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최저임금 논쟁은 이 점에서 현실인식을 바로 하지 않으면 누구나 아Q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루쉰의 작품에서 아Q는 봉건적 착취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짜오가로부터 온갖 굴욕을 당하면서도 단 한번도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Q는 자신의 성이 짜오라고 자랑하고 다니다 짜오 타이예에게 불려가 따귀를 맞고 띠빠오(하급관리)로부터 일장 훈시를 들은 뒤 술값으로 200문(文)을 물어줬다.

 또 짜오가에 일을 하러 갔다가 젊은 과부 우마에게 무릎을 꿇고 구애를 하다 성추행범으로 몰려 노임을 받기는커녕 막대한 손해배상에 입고 있던 옷과 털모자, 이불까지 전당 잡히고 알거지가 되기도 했다.


아Q는 이 일이 있은 뒤로 웨이짱 마을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셈이다. 

반면 짜오가는 악행을 정화하기 위한 푸닥거리 명목으로 아Q로부터 받아낸 향이나 초를 고스란히 쌓아뒀다. 아Q의 해진 옷은 장차 태어날 아기의 기저귀감으로 사용됐다. 

막대한 이익잉여금을 투자 대신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상속에 열을 올리는 한국의 재벌들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국의 아Q들이 그렇듯이 루쉰의 아Q 역시 짜오가가 아니라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은 샤오D를 보고 눈이 뒤집힌다. 아Q는 “쇠사슬로 네 놈을 후려치리라”고 소리치며 샤오D와 멱살잡이를 벌이지만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고, 웨이짱 사람들은 “거 참 꼴 보기 좋구나”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이처럼 짜오가에 말 한마디 못하면서 웨이짱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샤오D와 드잡이를 하는 아Q의 모습은 재벌들의 편법적인 부의 축적과 상속에 무관심하면서 민주노총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악성 댓글러들과 모습이 겹쳐 있다.


2011년부터 무려 8년간의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다 지난해 9월 퇴사한 유성기업의 한 50대 퇴직자가 자살한 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한국의 아Q’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댓글들이 달렸다. 


이들은 벌써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성기업 부당노동행위에 현대자동차가 개입돼 있지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엔 관심도 없다. 오직 민주노총만이 문제다. 


“민노총아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나. 얼마를 받고 싶은 건지. 벌써 8년이 되어가는구나. 기륭전자 생각나네. 기업도 망하고, 노동자도 망했네.” “문 닫으면. 노사 모두 조용하겠네요. 공장, 대지 팔고 재고품도 팔아 퇴직금 주고 손 터는 게 사업주 만수무강 비결.”



4조5000억원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의 아Q들은 엉뚱한 곳으로 분노를 표출시키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편법 경영승계와 수천억원의 국민연금 손실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보다 주가 폭락 방지와 경제 안정을 위해 적당히 넘어가길 바라는 ‘노예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주 나라 말아먹네. 검찰이 삼성 건들면 코스피 1500은 따놓은 당상이네.” “그만 좀 물고 뜯어라. 경제 40%를 벌어들이는 기업 자꾸 잡으면 결국 누구 손해냐.”


2016년 1월16일 뉴욕타임스는 ‘<아Q정전>을 차용한 중국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란 기사에서 “중국 공산당이 관리하는 ‘50센트당’(유급 댓글부대) 이외에도 아Q와 같은 자발적 댓글부대들이 중국의 엘리트 권력을 지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들에 관대하면서 노조에 가혹한 한국적 아Q는 뉴욕타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재벌권력들을 지탱하는 자발적 댓글부대들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해 대신에 강한 사람과 동일시하려는 한국의 아Q들이 내세우는 애국심은 루쉰의 ‘아Q정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아Q정전’을 쓴 중국 작가 루쉰.




루쉰의 작품에서 아Q는 짜오 타이예 치하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지만 외세나 혁명에 의해 봉건질서가 무너지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을 우려해 전통적 질서에 안주한다.


 이 때문에 아Q는 일본에서 공부하다 변발을 자른 채 나타난 ‘치엔(錢)가’의 큰아들을 ‘가짜 양귀신’이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하지만 혁명당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Q는 양귀신을 찾아가 혁명당에 가입하려다 거절당하고 결국은 도적떼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아Q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제대로 된 장송곡 하나 불러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제대로 된 현실인식 없이 자존심만 센 채 저항할 생각 한번 못해보고 비굴한 삶을 살다 최후를 맞은 아Q의 죽음은 딱히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그래서 아Q의 죽음엔 애도도 분노도 하기 힘들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1041701005#csidx67d2e0703f8f33a8c08a2c6de062ea8



루쉰의 본명은 '주수인'씨이다. 

30년 전에 읽은 루쉰의 '고향'이라는 소설은  '아큐정전'과 더불어 지금도 인상깊게 남아있다. 

'고향'이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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