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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기술자 김기춘의 종말, 법의 한계와 민주주의 양심은 법보다 더 중요하다.

 보통 시민들이 법 기술자보다 더 뛰어남을 우린 목격했다. 공익적 분노가 법 기술자 김기춘을 패배시켰다. 청문회 장에서 프로페셔널 김기춘 공안검사는 아마추어였다. 그리고 끝끝내 비열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국정조사, 최순실도 빠진 청문회, 그러나 김기춘,차은택,고영태,김종 때문에 시청했다. 김기춘의 발언은 너무 속이 보였다. “최순실을 모오릅니다”는 말은 “당신들 내가 최순실 안다는 증거있어? 없잖아!”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최순실을 김기춘이 모르는가? 김기춘은 최순실을 만난 적이 있는가? 아니 김기춘과 최순실은 ‘공범’인가? 이 질문들에 김기춘의 태도는 법 기술주의자였다. “내가 최순실을 안다면, 전화통화, 팩스 기록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하면서, “모오릅니다”를 연발했다. 

김기춘은 '죄형법정주의 no penalty without a law (Nulla poena sine lege)'나 범죄사실 입증 책임이 검찰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법률 기술자다. 테크니션이 테크닉 대결을 펼치자는 것이 김기춘 의도였다. 


다시말해서 김기춘이 검사,경찰,시민들에게 도전한 것이었다. “너희들 증거를 가져와라 !” 온라인 사이트 ‘주식갤’ 시민들이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동영상 속, 김기춘을 발견했고, 그 동영상은 빛의 속도로 어둠의 청문회장 국회의원들 전화기로 도착했다. 법률 기술자 김기춘은 카운터 펀치를 맞고 실토했다.

 “당신들이 증거를 가져왔으니까, 최순실을 제가 압니다. “최순실을 모른다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라는 이중 부정문을 그 순간에도 김기춘은 구사했다. 머리 좋음이란 이렇게 이중 부정문을 사용하는 능력일 뿐이고, 법률 기술자 김기춘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증거'를 들이대는 시민들이 정작에 김기춘으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는 뭐였을까?

촛불 시민들은 바라는 것은 김기춘 '양심의 목소리'였다. 왜냐하면 대다수 시민들은 법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법없이도 "without a law"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춘은 한 때 노동현장에서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끈질긴 인연을 가진 인물이다. 자상한 아빠로서 김기춘은 당시 어떠했을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신문기사이다.

 2016년 중학생,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이게 나라냐?’ ‘열심히 공부해도 부정입학하는 정유라 장시호’ 에 대한 분노,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대통령 권한을 줘 버린 이 어처구니없음 앞에, 중고생들도 ‘옷은 벗지 않고’ ‘교복 입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언제나 김기춘은 아래 인터뷰처럼 ‘이 아버지도 이 할아버지도’ 옷벗고 같이 데모해보겠는가?  

김기춘 끝끝내 56년간 비겁한 검사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아버지가 공직자라 너희들이 데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뿌리치고 꼭 너희들이 데모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 아버지도 옷벗고 같이 데모하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토론에 내가 이겨서인지 아이들이 아버지를 봐주어서지인 (웃음) 데모 안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주어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1990년 1월 5일자, 경향신문 김기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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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9일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를 검증하는 자리에, 김기춘이 등장했다. 당시 패널들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김기춘은 박근혜 후보의 법률 자문 역할을 했다. 그런데 김기춘이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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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5일자. 경향신문. 김기춘은 "냉엄한 논리, 따뜻한 가슴의 미스터 법질서"


2016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법률 미꾸라지'로 통한다. 




김기춘이 최순실과 정윤회를 안다는 것은 이미 정윤회 인터뷰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2016년 11월 22일) 





(출처: 채털 A, 최순실 전 남편이자, 박근혜의 비서관 정윤회 증언. 최순실을 모른다는 김기춘 주장은 말도 안된다. 이미 30년 전에도 김기춘은 최태민 일가를 잘 알고 있었다) 


http://news.ichannela.com/politics/3/00/20161122/81472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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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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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부터 검사로 일한 김기춘 전 박근혜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류(Korean wave)도 문화산업이라고 칭송하던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김기춘에게 문화란 무엇이었을까? 자기들 말에 복종하는, 체제에 순응적인 예술가, 배우들의 작품은 허용하고, 반체제 작가들과 예술인들은 탄압하겠다는 발상이다.


정우성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우성의 발언을 들어보자.


11월 4일 뉴스타파 보도, 정우성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런 상식적인 시민의 권리를 다시 우리는 확인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14년 홍성담 화가의 작품 "세월 오월"도 박근혜 김기춘을 풍자했다고 해서 탄압받았다. 세월호 사건으로 고인이 된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작품을 김기춘과 박근혜는 못마땅했던 것이다.


 <세월 오월>은 홍성담 작가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압력으로 2014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에서 전시가 무산된 작품이다. 


 최근 윤장현 광주시장은 김종 차관이 홍성담의 <세월오월>을 비엔날레에 전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사실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에서도 나왔다. 


"홍성담 작가 배제, 제재 조치를 강구하라. 사이비 예술가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고 김영한 비망록  


홍성담 화가는 지금이라도 <세월 오월>을 전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두환 독재시절 518 광주항쟁을 판화로 표현해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탄압받은 바 있는 홍성담 화가의 심경은 어떠할까? 시대가 다시 전두환 독재 시절로 회귀했다고 느낄 것이다.











정우성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정우성과 같은 용감한 배우들이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에 저항해야 한다. 아직도 유신독재 시절에 살고 있는 김기춘과 박근혜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 탄압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2014년 홍성담 화가의 작품 "세월 오월"도 박근혜 김기춘을 풍자했다고 해서 탄압받았다. 세월호 사건으로 고인이 된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작품을 김기춘과 박근혜는 못마땅했던 것이다.


<세월 오월> 

홍성담 작가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압력으로 2014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에서 전시가 무산된 작품





홍성담 화가가 박정희와 김기춘이 박근혜 배후라는 것을 풍자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은 홍성담 화가에 대한 청와대 탄압을 폭로했다.

"홍성담 작가 배제, 제재 조치를 강구하라. 사이비 예술가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홍성담 작가의 반응 : 김영한 수석이 자기수첩에 옮겨 적을 때, 홍성담을 배제하라고 적었겠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아마 홍성담을 죽여라라고 했겠죠. 미술계에서 쫓아내라라든가.







홍성담 화가의 518 판화 중에서




대동사회와 해방된 광주를 판화로 묘사했던 홍성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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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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