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국제정치2017. 11. 16. 14:47


다큐멘타리 "Almost Sunrise : 동이 틀 때" (2017) 소개

PBS TV : 침략 국가인 미국 병사, 미 해병대들이 하루에 22명 자살했다 (1999~2010년) . 지금도 계속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 "디어 헌터 the Dear Hunter (1978)"와 동일한 주제이다. 미국의 침략적 국제정치 노선이 변화되지 않는한, 이런 비극들은 되풀이 될 것이다.


http://www.pbs.org/pov/almostsunrise/


19세 나이로 이라크 침략전쟁에 참가한 미 해병대 출신, 톰 보스(Tom Voss)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를 앓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톰 보스는 동료와 함께 걷기로 했다. 


다큐멘타리 "Almost Sunrise"는 톰 보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톰 보스는 2003년 19세로 나이로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었고, 이라크에서 1년을 보냈다. 이라크에서 톰 보스는 동료들과 이라크 시민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2006년 톰 보스는 고향인 미국 위스컨신으로 돌아와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와 싸워나가야했다. 


"수면 장애를 겪었고, 외톨이가 되었고, 술을 마시면서 나를 치료해보려고도 했다" 톰 보스는 왜 자신이 전쟁에 참여했는가는 질문에 스스로 혼란에 직면했다. 이라크에서 톰 보스 자신이 수행해야 할 임무라는 게 뭔지 정확히 깨닫지 못했고, 그게 불분명해보였기 때문이다. 


 "Almost Sunrise" 다큐멘타리는 "도덕적 부상(상처)"에 대해서 탐문했고, 톰 보스 역시 이러한 정신적 상황에 휩싸였다. 


"도덕적 부상이라는 슬픔, 자책감, 수치 같은 정서이다. 내가 이라크에서 미국 해병으로서 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런 도덕적 자책이었다.


톰 보스가 받은 정신치료, 약물 처방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2006년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톰 보스는 우울증에 빠졌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2013년 톰 보스는 이러한 우울증을 떨쳐 내기 위해서, 장거리 도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스컨신에서 캘리포니아 주까지 2700 마일 거리를 걷기로 한 것이다. 톰 보스의 친구이자 미 해병대 동료였던 앤써니 앤더슨도 그 장거리 도보에 동참했다. 


"Almost Sunrise" 다큐멘타리는 "대 평원"을 가로지르고 남서부를 관통하는 톰 보스와 앤써니 앤더슨의 5개월간 장기 도보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톰 보스와 앤써니 앤더슨의 장거리 도보 목적은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미 해병대원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투쟁들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알려나가는 것이다. 


" 하루에 22명의 미 해병대원들이 자살하고 있다. 그 해병대원들은 이라크 전쟁터에서 자신들이 겪을 기억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렇게 자살을 선택했다. "





톰 보스 이야기는  다큐멘타리 "Almost Sunrise"  첫 부분에 나온다. 



톰 보스는 2003년 19세로 나이로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었고, 이라크에서 1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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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톰 보스는 동료들과 이라크 시민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2006년 톰 보스는 고향인  미국 위스컨신으로 돌아와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와 싸워나가야했다. 




"수면 장애를 겪었고, 외톨이가 되었고, 술을 마시면서 나를 치료해보려고도 했다"



톰 보스는 왜 자신이 전쟁에 참여했는가는 질문에 스스로 혼란에 직면했다.



이라크에서 톰 보스 자신이 수행해야 할 임무라는 게 뭔지 정확히 깨닫지 못했고, 그게 불분명해보였다.




"Almost Sunrise" 다큐멘타리는 "도덕적 부상(상처)"에 대해서 탐문했고, 톰 보스 역시 이러한 정신적 상황에 휩싸였다.



"도덕적 부상이라는 슬픔, 자책감, 수치 같은 정서이다. 내가 이라크에서 미국 해병으로서 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톰 보스가 받은 정신치료, 약물 처방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2006년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톰 보스는 우울증에 빠졌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2013년 톰 보스는 이러한 우울증을 떨쳐 내기 위해서, 장거리 도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스컨신에서 캘리포니아 주까지 2700 마일 거리를 걷기로 한 것이다.




톰 보스의 친구이자 미 해병대 동료였던 앤써니 앤더슨도 그 장거리 도보에 동참했다.



"Almost Sunrise" 다큐멘타리는 "대 평원"을 가로지르고 남서부를 관통하는  톰 보스와 앤써니 앤더슨의 5개월간 장기 도보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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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와 앤더슨의 장거리 도보 목적은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미 해병대원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투쟁들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알려나가는 것이다.




" 하루에 22명의 미 해병대원들이 자살하고 있다. 그 해병대원들은 이라크 전쟁터에서 자신들이 겪을 기억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렇게 자살을 선택했다. "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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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국제정치2016. 2. 13. 11:58

버니 샌더스 대선 토론회, 기조 연설 요지  (2015년 10월 13일) 


출처: http://bit.ly/1ZBK31U


(1) 버니 샌더스의 "미국 진단" Crisis of America 

미국은 유례가 없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40년간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중산층이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2) 신규 소득과 부축적 결과는 상위 1%로 흘러가고 있다. 


(3) 미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대선 자금 역시 부패되었다. 미국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다. 부자들 자신들 이해 대변하는 정치가들에게 선거 자금을 대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게 아니다. 


(4) 기후변화와 관련된 인간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도덕적 책임감 가져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화석연료 체제를 바꾸고, 에너지 효율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계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럴 때만이 인간이 살만한 지구를 만들 수 있다. 


(5) 인종차별과 연결된 계급-교육 문제 

미국 죄수들 숫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이다. 흑인 청년 실업율과 불완전고용율은 51% (고교 졸업장 보유), 히스패닉(남미 라티노) 청년 실업율 36%이다. 이 문제는, 감옥을 더 짓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청년들 교육과 일자리 창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6) 올리가키 (소수 독점 정치 권력 체제) 타파와 민주주의 

이번 대선의 목표는, 극소수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대다수 미국 대중들의 손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민주주의이다. 우리는 이것을 해낼 수 있다.





참고 자료

[글로벌 슬럼프] (데이비드 맥날리 저, 강수돌,김낙중 번역,그린비 출판사,2011) .pp.208-209


" 흑인과 라티노 가계 소득은 백인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 어린이의 50% 정도는 유년기 특정 시기 동안 무료식권에 의존한다. ... 차별적인 빈곤은 필연적으로 부의 분배에서 드러난다. 백인의 순자산을 1달러라고 했을 때, 흑인의 순자산은 그 10분의 1에 해당하는 10센트이고, 라티노의 순자산은 12센트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평등으로부터 가장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유색인종 여성들이다. 미국 흑인 미혼여성 순자산은 100달러이고, 남미계(라티노) 미혼여성의 순자산은 120달러인 반면에, 백인 미혼여성 순자산의 중간값은 4만 1500달러였다. 

2006년 주택을 구입한 미국 흑인 중 무려 56%가 자기 집을 (은행에) 압류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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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슬럼프] (데이비드 맥날리 저, 강수돌,김낙중 번역,그린비 출판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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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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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2013. 3. 12. 21:58

지난 2004년~2012년 한국 진보정당 운동은 잃어버린 8년의 시간이었다. 


얻은 것, 잃은 것, 시행착오와 타산지석이야 분류해서 공정하게 말해야하겠지만, '잃어버린 8년'이라는는 냉정한 진단을 하는 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 희망을 말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들의 엘뤼시온,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서 


갈기갈기 찢겨진 정신넋나간 이 시간,  지옥까지 같이 갈 지음을 찾아서.


쉴러의 시 속에 신의있는 친구(지옥까지도 같이 갈 수 있는 친구)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 (Einen Freund, geprüft im Tod) 

세 사람이 없어서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중에서 Ode an die Freude  (Friedrich Schiller )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y No. 9 in D minor Op.


 

환희의 송가 – 프리드리히 쉴러  (原始 역 2001 )


오! 친구들아 !  이런 소리 말고,

더 기분좋게, 그리고 더 기쁨에 찬 음악을 연주하세나 !


환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

엘뤼시온 (*영웅들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쉬는 안식처)에서 온 딸,

우리는 당신의 불꽃에 취해,

당신의 신성한 땅, 극락으로 들어갑니다.


당신의 마술은,

현재 유행과 시류가 갈갈이 찢어놓은 것들을

다시 하나로 결속시켜 놓는군요.


당신의 온유한 날개가 머무는 곳에

모든 사람들이 이제 형제-자매가 됩니다.


한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한 우아하고 귀여운 부인을 얻은 이,


이 행복과 환희에 끼여들라


이 세계에서 오직 하나의 영혼을 자기 것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축제를 즐기는 우리들과는 멀어져야 하네



모든 존재들이 자연의 가슴 품에서 환희를 마시게 하라!

모든 선, 모든 악이 자연의 장미 길을 따라가게 하라!


자연은 우리를 키스해주고, 포도를 주고,

저승까지 따라갈 신의있는  친구를 주었네;

관능적 쾌락은 지렁이에게까지도 부여되고,

게르빔 천사는 신 앞에 서있네.


기쁘다, 그의 태양이 천체의 위대한 계획대로

달려가듯이 (돌듯이), 

형제-자매들이여,

당신들의 길을 즐겁게 행복에 휩싸여 달려가게!

마치 전쟁터에 승리하러가는 영웅처럼.


모든 이들을 포옹하게 하라!

온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 키스를!

형제-자매들이여!

별들의 창공위로, 자애로운 아버지, 창조주가 살고 있음에 !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가?

당신은 창조주를 예감하는가?

별들의 창공 위에서 그 창조주를 찾으라!

별들 위에 그 창조주가 살고 있음에.



           (합창을 지휘하는 스페인  어린이들 : 바르셀로나 사바델 )


Ode An die Freude ( Beethovens Fassung)

 

O Freunde, nicht diese Töne !

Sondern laß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

Freude !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um !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eilt;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Wem der große Wurf gelungen,

Eines Freundes Freund zu sein,

Wer ein holdes Weib errungen,

Mische seinen Jubel ein !

 

Ja - wer auch nur eine Seele

Sein nennt auf dem Erdenrund !

Und wer's nie gekonnt, der stehle

Weinend sich aus diesem Bund.

 

Freude trinken alle Wesen

An den Brüsten der Natur ;

Alle Guten, alle Bösen

Folgen ihrer Rosenspur.

 

Küsse gab sie uns und Reben,

Einen Freund, geprüft im Tod ;

Wollust ward dem Wurm gegeben,

Und der Cherub steht vor Gott.

 

Und der Cherub steht vor Gott.

Froh, wie seine Sonnen fliegen

Durch des Himmels prächt'gen Plan,

Laufet Brüder, eure Bahn,

Freudig, wie ein Held zum Siegen.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um !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eilt;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Seid umschlungen, Millionen !

Diesen Kuß der ganzen Welt !

Brüder - überm Sternenzelt

Muß ein lieber Vater wohnen.

 

Ihr stürzt nieder, Millionen ?

Ahnest Du den Schöpfer, Welt ?

Such' ihn überrn Sternenzelt !

Über Sternen muß er wohnen.

Beethoven wiederholt :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um !

Seid umschlungen, Millionen !

 

Diesen Kuß der ganzen Welt !

Freude !

 

Ihr stürzt nieder, Millionen ?

Ahnest du den Schöpfer, Welt ?

Such' ihn überm Sternenzelt !

 

Brüder ! - überm Sternenzelt

Muß ein lieber Vater wohnen.

Freude, Tochter aus Elysium !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eilt.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eilt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Seid umschlungen, Millionen !

Diesen Kuß der ganzen Welt !

Brüder - überm Sternenzelt

Muß ein lieber Vater wohnen.

 

Seid umschlungen !

Diesen Kuß der ganzen Welt !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

 

Tochter aus Elysium !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



1.

 

(독일 드레스덴에서 합창 플래쉬 몹)

 2.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바델 )


3.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


Ode to Joy

THIS YEAR WAS THE 2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Friedrich Schiller, after his dearest friend Goethe, the most superb peak in Germany's literary mountain range: dramatist, historian, philosopher, poet celebrated for An die Freude, the "Ode to Joy" that Beethoven set in his Ninth Symphony.


The Germans still treat Schiller as a revered eminence, though their appreciation has acquired some 21st-century kinks. 

The national tourist board promoted the bicentennial as a veritable Schiller lovefest, replete with the usual high-mindedness--museum exhibitions, theatrical productions, lofty speeches--but also with the odd emission from the dogpile: a play showing the free-spirit Schiller hassled by airport security, a comic book version of his life published by the Schiller National Museum and the Archive of German Literature.


The distinctive quality of Schiller's genius naturally prompts questions about high and low, in art, thought, politics, morality. For Schiller, born in 1759, stands among the greatest figures at the inauguration of the democratic era, when no dream of the future seemed too bold or too splendid to be realized. 

And Schiller's was one of the boldest minds of the time, espousing the most noble conception of freedom's true meaning for the new order. To ask how congenial that mind appears today, when the civilized world enjoys freedom, equality, and their attendant democratic goods to an unexampled degree, is to search not only Schiller's essence but also our own.


Thomas Carlyle, who literally wrote the book on hero-worship, observes in his Life of Schiller (1825) that future generations around the world will venerate him as the Germans do, "for such nobleness of heart and soul shadowed forth in beautiful imperishable emblems, is a treasure which belongs not to one nation, but to all." 

That Carlyle's biography remains the best-known life of Schiller available in English indicates a shortfall in the worldwide veneration market.

 But this neglect only makes one doubly grateful to have Carlyle, whose enthusiasm for moral, intellectual, and literary excellence--the highest nobility, he calls it--makes him Schiller's ideal biographer.


Schiller was born in Marbach, a small town in the Duchy of Württemberg . His parents were humble in station--his father's loyal service to the Duke of Württemberg as army surgeon and adjutant in war earned him a peacetime job as nurseryman--but elevated in spirit. 

Father and son shared a gravely joyous piety, and young Schiller envisioned a life in the church. The Duke, however, had other plans for him, and strong-armed his parents into sending the 14-year-old boy to a newly founded academy for the sons of officers. There Schiller moped and languished in the study of law, then languished and moped in the study of medicine.


History, drama, poetry--Plutarch, Shakespeare, the young Goethe--ravished him, and he began to write. 

He concealed this activity from the authorities--"any tendency toward poetry is an offense against the rules of the Institution," he noted--while he pursued his medical studies. 

In 1778 he completed the first draft of his tragedy Die Rauber ( The Robbers), but kept it under wraps until 1780, when his commission as a regimental surgeon came through. No bookseller could be found to publish the play, so Schiller went into debt to publish 800 copies at his own expense. The Duke of Württemberg, a fan of Racine and Corneille, took a dim view of Schiller's Romantic extravagances, told him he would do well to stick to doctoring, and directed him to submit any future works for prior approval.\


The determined Schiller went AWOL to see his first play's first production, at the Mannheim National Theater, and the audience's response confirmed him in his renegade vocation. Molten rapture overcame the theatergoers; earnest Teutonic eyes wept hot torrents, or rolled back into their sockets, and smitten ladies needed manly assistance to remain upright. 

The duke, however, was not smitten, and had Schiller arrested for truancy; when Schiller bolted for the theater again, dire warnings informed him he had better stay put.


The next time Schiller slipped out of the Duke's grasp for good, to Franconia, in 1782, living under an alias for a time. 

The Mannheim theatrical producer sent him survival funds, a gracious lady who admired his writing took him in, and he set to work with everything he had. Within a year he produced two more tragedies, Die Verschwörung des Fiesco ( Fiesco's Conspiracy) and Kabale und Liebe ( Intrigue and Love). 

The plays premiered in Mannheim, audiences loved them, and the post of poet to the theater became his. Esteemed and endowed with a sufficient living, Schiller devoted himself to literature with preternatural diligence, and pursued a life of the utmost seriousness.


The theater does not readily lend itself to such a life--one has to deal with actors--and after the immense success of Don Carlos in 1785, Schiller turned to the more sober practice of writing history. The Spanish prince Don Carlos's 1568 plot against his father King Philip II's brutal imperial rule of Holland (the intrigue was largely Schiller's fabrication) so amused Schiller that he wrote a History of the Revolt of the United Netherlands from Spanish Rule (1788)--tribute to the early stirrings of freedom and enlightenment.

 He finished only the first volume, but what he had written made an impression sufficient to gain him the chair in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Jena

Getting tenure did not diminish his productivity. His History of the Thirty Years' War appeared in 1791.

The years from 1790 to 1794 were momentous in other respects. 

In 1790 Schiller married Charlotte von Lengefeld, imagining that an epoch of unrelenting personal happiness was about to begin; and indeed, he would always be a loving and beloved husband and father. 

But the next year tribulation struck: an illness, perhaps tuberculosis, perhaps chronic peritonitis, that would plague him for the rest of his life.

Besides work and family, what sustained him through his pain was his friendship with Goethe. Thomas Mann, whose extraordinary essay "On Schiller" was written for the 150th anniversary of Schiller's death, calls this friendship "the great adventure of his life." 

The two men first met in 1788, and each immediately rubbed the other the wrong way. 

Schiller wrote to a friend in 1789 that he could not possibly be happy in the regular company of this egotistical cold fish, though he loved Goethe's mind. 

Goethe reciprocated both the unease and the intellectual admiration; his putting in a good word with the Duke of Weimar was crucial in securing Schiller's professorship. 

Still, they were not quite friends until, in 1794, Schiller started a literary journal, Die Horen ( The Hours) and asked Goethe to be a collaborator.



Their correspondence ran to over a thousand letters; they joined forces to write a book of satiric epigrams,
 Xenien; and they presided over perhaps the most distinguished literary magazine ever. As Jena was not far from Goethe's home of Weimar, they saw each other often; and in 1799 Schiller closed that distance by moving to Weimar.Collaboration bred sympathy and warmth and deep connection. After Schiller wrote a letter describing Goethe to himself as the perfected union of philosophical seriousness and intuitive understanding, Goethe replied, "I will be happy to share everything about myself with you." 

Their friendship was the encounter of two contrasting types of spiritual beauty: 

Goethe the force of nature, blessedly vigorous in constitution, certain of his creative instincts and uninhibited by the need to explain himself to himself; 

Schiller the man driven to overcome his own nature, feeling himself baffled as a poet by his need to philosophize and vitiated as a philosopher by his predilection for poetry, requiring every bit of his physical and moral strength to exercise his remarkable gifts and never quite satisfied with the performance.


Schiller did not hesitate to acknowledge Goethe the superior being. Goethe, for his part, loved the incomparable courage with which Schiller confronted the ordeals that writing and living presented to him.

What Schiller accomplished in the time left him was prodigious.

 Under the influence of Kant, he wrote philosophical essays, most notably Letters 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 (1794) and On Naive and Sentimental Poetry (1795). 

In 1796 he returned to writing plays, mostly on historical subjects: first the magnificent trilogy Wallenstein (1799), then Maria Stuart (1800), Die Jungfrau von Orleans (The Maid of Orleans, 1801), Die Braut von Messina ( The Bride of Messina, 1803), Wilhelm Tell (1804), and Demetrius, left unfinished at his death. He wrote ballads that generations of German schoolchildren learned by heart. 


With his left hand he translated Macbeth, Carlo Gozzi's Turandot, and Racine's Phedre for the Weimar stage. Two weeks before his death in 1805 he was suggesting emendations to the notes for Goethe's translation of Rameau's Nephew by Diderot, and disparaging the "soft character" of Louis XIV.


Death must have come as a relief, but even so it arrived far too soon.


Conducting Beethoven's Ninth Symphony in Berlin to celebrate the Wall's coming down, Leonard Bernstein ordered a change in Schiller's text for the convulsive final movement: Freude, or joy, was to be sung Freiheit, or freedom

At the time, the two words did seem interchangeable, and Schiller's vision of universal brotherhood appeared a real possibility to some, as it must have to Schiller himself at democracy's dawning.


Karl Moor, the hero of The Robbers, meditates on ancient greatness and contemporary mediocrity, and envisions the new birth of freedom that will dissolve pernicious aristocratic convention and restore nature to its rightful supremacy:


The law never yet made a great man, but freedom will breed a giant, a colossus. . . . Give me an army of fellows like me to command, and I'll turn Germany into a republic that will make Rome and Sparta look like nunneries.

In Intrigue and Love, Luise Miller, a musician's daughter in love with a nobleman, longs for the egalitarian society in which character shall be the measure of nobility:


"Then, mother . . . then, when the barriers of discrimination collapse . . . when all the hateful husks of rank burst from us . . . and human beings are only human beings . . . I shall bring nothing with me but my innocence. Father has so often said, you know, that adornment and splendid titles will be cheap when God comes, and hearts will rise in price. Then I shall be rich. Then tears will be reckoned as triumphs, and beautiful thoughts as ancestors. Then I shall be aristocratic, mother!

Personal fulfillment requires political justice. For Schiller, republican freedom is the ground for every virtue and for every benefit fortune bestows. It is indispensable for the happiness of the good and the great.


In subsequent plays, Schiller works these themes on a larger stage, where the fate of entire peoples is at stake. The outstanding figure in Don Carlos is the marquis of Posa, the prophet of liberalism who implores King Philip to renounce religious absolutism and political tyranny, and to bring the new world order into being: 

"Give back nobility to humankind . . . Can there be any / Holier duty than equality?" Wallenstein, one of the greatest generals of the Thirty Years' War, imagines Germany free from Swedish predation and all Europe blessed with religious tolerance and peace under the imperial authority he intends to usurp.

Wilhelm Tell assassinates the viperous Hapsburg proconsul who stands in the way of Swiss freedom, and gives life to the words of one of his most eloquent countrymen, who sounds rather like one of our own most eloquent countrymen: "When men oppressed cannot find justice, when / The burden gets to be unbearable--/ Then they with confidence and courage reach / To Heaven and fetch their eternal rights / From where they hang as indestructible / And as inalienable as stars themselves."


There is no writer more rousing in the praise of the republican virtues than Schiller. Yet although his heroes and heroines do have a tendency to declaim into the megaphone, the plays are by no means mere instruments of political uplift. Indeed, with the exception of Wilhelm Tell, they are tragedies in which the noble souls struggling for freedom are overcome. 

The latent greatness of Karl Moor is twisted by the evil machinations of his brother Franz into a desperate perversity. Rather than lead a republican army, Karl heads a gang of robbers, and the life of crime does not sit well with his exquisite soul. Madness overcomes this innately virtuous man who has blighted his life and can never atone; he causes his father's death, murders the woman he loves, then decides to surrender to the authorities, letting a poor day-laborer claim the bounty on his head.


The noble love of Luise Miller and Ferdinand von Walter is twisted by the evil machinations of his father, President von Walter, into a mortal affliction: duped into believing Luise unfaithful, Ferdinand poisons her and himself. For King Philip II and the grand inquisitor, evil machinations are routine procedure. 


The dreams of liberation that Posa and Carlos entertain are crushed by the baneful conjunction of Machiavellian hunger for power and majesty with religious oppression. Wallenstein, the man who deserves to rule by virtue of his greatness in war and love of peace, is destroyed by the mediocrities who command by virtue of birth alone, and who could never have accomplished what he did.

Written during the revolutionary era, and often set centuries earlier, Schiller's plays reckon the terrible price of freedom--a freedom that many yearned for but never enjoyed, and that was not a secure possession in Schiller's own time. Schiller's heroic souls trying to break free from the stifling aristocratic order are not equal to the evildoers who wield power under an ancient regime. Conventional nobility knows just where to insert the knife into natural nobility.

The perfectly named Wurm, minion to President von Walter in Intrigue and Love, sums up the plight of ethereal liberalism as he instructs his master how best to separate Ferdinand from the unsuitable Luise: "What good would fanciful dreams about greatness of soul and personal nobility be anyway at a court where the greatest wisdom is that of being great and small in proper tempo and in a skillful way?"


Conventional nobility in Schiller's world comes armed with Machiavellian intelligence, which loves power and privilege, and which knows what it must do to keep them. Natural nobility is the dreamy child of Rousseau-style sentiment, which reveres the primacy of love, beginning with the erotic and the familial, then expanding to embrace one's nation, and eventually all humanity. The Machiavellian is superior to the disciple of Rousseau in cunning and strength, inferior in the moral essentials. Schiller tends to present the two in stark, even lurid, contrast.


But his most complicated moral portraits disclose the need even of the power-loving for a finer love, and register the pathos of their failure to sustain the requisite purity of heart. King Philip is aflame with admiration for Posa, the real man and true friend he prays God to send him, but he orders Posa's death just the same. Queen Elizabeth in Mary Stuartwants Leicester to love her more than he does Mary, but in the end forces him to be complicit in Mary's execution, and thereby provokes him to leave England. As terrible as the spectacle of innocence broken is that of corrupt power longing for innocence, and unable to recover it from the ruins of one's soul.


Still, Schiller's heart bleeds not nearly so much for morally ambivalent rulers--however painful their turmoil--as for the ordinary people who must endure their overlords' destructive whims. The Thirty Years' War examines the difference between what princes are willing to expend their subjects' lives for, and what those subjects think they are killing and dying for: Schiller declares that the greatest war of religion, between Catholic and Protestant, was in fact fought principally for the usual worldly ends, though most of the participants failed to realize it.


That faith can so easily be turned into an instrument of ambitious violence is perhaps the most damning indictment of religion there is. 

Schiller rails at this unholy folly after the Enlightenment fashion of Voltaire and Diderot, though his consternation is a far cry from their clever sneering. The 1631 massacre at Magdeburg, in which some 30,000 civilians were butchered, shows holy wars for what they are:

 "Here commenced a scene of horrors for which history has no language, poetry no pen. Neither innocent childhood, nor helpless old age; neither youth, sex, rank, nor beauty could disarm the fury of the conquerors. 

Wives were abused in the arms of their husbands, daughters at the feet of their parents; and the defenseless sex exposed to the double sacrifice of virtue and life. . . . In a single church fifty-three women were found beheaded. The Croats amused themselves with throwing children into the flames; Pappenheim's Walloons with stabbing infants at the mother's breast."

It happened to be the Catholic forces that did these things on this particular occasion, in the name of Christ; but to Schiller it really does not matter. 

Both sides committed similar atrocities, and--although Schiller does honor the comparative decency of certain generals, most notably King Gustavus Adolphus of Sweden--both are condemned.

From this descent into unreason, however, a more rational political order emerged: " . . . [O]ut of this fearful war Europe came forth free and independent. In it she first learned to recognize herself as a community of nations; and this intercommunion of states, which originated in the Thirty Years' War, may alone be sufficient to reconcile the philosopher to its horrors." 

The "general sympathy" among nations that the war indirectly encouraged has kept the peace ever since, Schiller exults--somehow overlooking the general conflagration ignited by Louis XIV and, of course, unaware (as he was writing in 1791) that Napoleon was just coming into his full growth.

Yet surely he is correct in discerning a relative tolerance and peaceableness, however misshapen and incomplete, in Europe after the Thirty Years' War. And that led him to nurse hopes for the unexampled future in which, as he writes in the "Ode to Joy," Alle Menschen werden Bruder--all men become brothers.

Schiller believed that if that future was to be realized, its spiritual life would have to be based on some more stable foundation than the old-time religion. He longed for a democratic age in which experience of the highest things was readily available, and he thought aesthetic rapture, of a profoundly reasonable sort, the surest means of such transcendence--the safest means as well, for he did not suppose men would slaughter each other over poems or pictures.


In "On the Pathetic" (1703), Schiller rhapsodizes on poetry's capacity to transform one's entire being, to irradiate one with the full sense of possibilities, and to steel one's resolve to make the best of those possibilities real. "Poetry can come to be for the human being what love is for the hero," he wrote. 

"It can neither counsel him nor join him in battle nor otherwise do any work for him, but it can develop him into a hero, call him to action, and equip him with the strength to be everything he ought to be."

Certainly that is what it did for Schiller. In Letters 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 he dilates eloquently on art and beauty as indispensable to human happiness and to the formation of "what is noblest in our moral nature."

 At a time when political practicality--"the construction of true political freedom"--preoccupies thinkers and seems to leave no room for thoughts about art, Schiller insists that this very democratic temper, which increases the emphasis on utility and quashes imagination, makes art all the more essential. Poetry is greater, even than philosophy, the philosopher-poet declares, for only art can make man whole, harmonizing his sensual and rational natures.

"We know that it is precisely play and play alone, which of all man's states and conditions makes him whole and unfolds both sides of his nature at once," says Schiller. True freedom is conditional upon this wholeness;

 it "arises only when man is a completebeing." The same word freedom describes both the great political virtue and the great moral virtue; but the political freedom that claims every man's every thought is only the means to moral freedom, which is the highest end of democratic politics. Schiller hopes to found a republic of whole men and women, noble and beautiful souls. Ideally, he writes in his closing passage, aesthetic rapture is available to all, and makes each the equal of every other; in reality, he goes on, it is the preserve of those who have cultivated the noblest strain in themselves.

In his emphasis on the meaning of nobility for democratic times, Schiller joins the three supreme artists of the republican era: Mozart, Goethe, and Beethoven. When the artificial hierarchy that defined aristocratic society has crumbled, the natural distinctions among men remain, and a new order of rank emerges, based on moral quality. 

Mozart's greatest operas expose the mores of the old regime as a patchwork of vanity and injustice, show the delusional self-regard of hereditary nobility fading to black, and assert the moral supremacy of nature as truly noble hearts know it.

In Goethe's Wilhelm Meisters Lehrjahre ( 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 1795), the hero is an ordinary man who wants to live a noble life but doesn't really know how. Receiving invaluable guidance from a secret brotherhood, he ends up far removed from his youthful fantasies, but finds genuine nobility in love, work, and fraternity.


With the Razumovsky quartets (1806), Beethoven breaks from the aristocratic tradition of decorous sentiment decorously expressed, and introduces into chamber music the nobility of democratic fellow-feeling, torrential and overwhelming. In his only opera, Fidelio (1805), he honors the indomitable love of Leonore for her husband, Florestan, a political prisoner whom she frees from the dungeon, along with others suffering unjustly. And in the Ninth Symphony (1824), from the launching pad of the contented bourgeois order, he hurtles in the direction of the ultimate mysteries, with Schiller's assistance.


It was during the earliest days of the democratic age that these voices rang out, announcing "the universal eligibility to be noble," in the phrase of that spiritual aristocrat, Augie March. Schiller was of that company--living a noble life, and wanting nobility for as many men as possible. There is no voice like his today.


Two magnificent achievements stand out from the early democratic days. The first is the American founding, which established, on modest but solid grounds, a regime of the rarest decency; security--a government and social fabric made to last--was the watchword of the authors of the Federalist Papers, and it remains the best thing we have. The second magnificent achievement is the art and thought of Friedrich Schiller and those few other men of like quality. They remind us of the nobility that our freedom makes possible, and ask us to think hard about the way we live now, and about the way we don't live now.


Algis Valiunas is a writer in Flo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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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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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

    그래서 '세 친구'는 서로 만났는지, 만나고 있는지, 가사를 번역한지 많은 시간이 지났네요.

    덕분에 환희를 여러 차례 음미, 환기하고 갑니다.

    2014.02.17 11:58 [ ADDR : EDIT/ DEL : REPLY ]

2011. 12. 7. 17:33


[글로벌 슬럼프] 옮긴이 NJ 해제



1. 고통의 세계화에서 저항의 세계화로


“돈(황금)은 도둑에게도 귀족 작위를 부여한다” - 세익스피어


2011 년 10월 15일, 전 세계의 시민들은 “탐욕의 금융 자본”에 회초리를 들었다. 서울, 아테네, 뉴욕 릴레이 시위는 24시간 이어졌다. 자본만 세계화된 것이 아니라, 이제 저항이 세계화되었다. 서울은 먹튀자본 론스타를 꾸짖었다. 아테네는 국제통화기금(IMF) 긴축정책을 반대했다. 뉴욕은 탐욕의 금융자본에 혈세인 구제금융을 중지하라고 외쳤다. 각 지역별로, 인종, 성, 나이, 구호는 조금 달랐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돈을 굴려야지, 돈이 사람을 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서울에서는 투기자본 반대 시민들과 자본-법-행정 3각 동맹이 맞섰다. 납세 시민들이 외환은행 매각 차액으로 4조 4059억원을 챙겨 튀려는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의 뒷덜미를 잡았다.


‘돈 (황금)은 반칙(플레이)를 공정한 것으로 둔갑시켜준다.’ ‘돈은 도둑에게도 귀족 작위를 부여하고 승인해준다’고 세익스피어는 썼다. 16세기 그의 희곡이 21세기 한국의 서울이라는 무대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론 스타는 산업자본이기 때문에 외환은행의 최대주주가 될 수 없는데도, 법률회사 김앤장은 론스타의 반칙들을 합법적이고 공정한 것으로 둔갑시키고, 금융위원회 관료들은 서울시 1년 사회복지 예산 4조 4000억원보다 더 많은 돈을 싸들고 나가는 론스타 도둑에게 귀족 작위를 승인해준다. 그런데 제 4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투기자본 론스타, 법률자문 김앤장, 그리고 행정보조 금융위원회의 3각 동맹을 비판하는 공공 금융 파수꾼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시민들과 외환은행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이제 그 도둑 귀족 작위식 무대 위를 점령한 것이다. 2004년부터 투기자본감시센터, 외환은행 노조, 진보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이 이 구린내나는 삼각동맹의 실체를 밝혀왔다.그 결과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80%가 넘는 한국시민들이 이 삼각동맹이 저질러 온 공공 도둑질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고요한 폭력(이 책 195쪽)’에 한국의 풀뿌리 민중들이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97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혹독한 긴축정책을 굴욕적으로 수용했다. 그 후 지난 14년간 한국의 시민사회는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자본주의 공화국 길을 선택했다. 일상은 시민내전이나 다름없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 사람들은 자기 재산의 가치가 국제 자본주의 시장에서 하루 아침에 50%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원화 가치의 폭락으로 어제의 1만원이 오늘 5천원 지폐로 폄하되었다. 이러한 상실감은 ‘세상에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배금주의로 변질되었다.


유치원 아이부터 80세 노인까지, 대박터지는 게 ‘쿨’한 것이고 행복의 전부였다. 자본주의의 고요한 폭력에 다 굴종한 듯 보였다. 그런데, 이런 대박을 향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 (243쪽)’들이, 나도 대박을 터뜨리는 1%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의 궤도에서 멈춰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2011년 10월 15일의 정치적 의미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궤도에서 일시 정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월 스트리트를 장악하라’는 제 2의 68운동으로 발전할 것인가? 한국의 김진숙 희망버스는 이러한 거대한 반자본주의 물결 속에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까지 그 희망을 전달 것인가? 아니면 단절적이고 파편적인 시위들로 끝나버려 새로운 복고와 반동의 목소리가 그 광장을 다시 차지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한국의 진보좌파들이 답하는데, 데이비드 맥날리의 [글로벌 슬럼프]는 우리들에게 몇 가지 생산적인 시사점들을 던져준다.


2. [글로벌 슬럼프] 핵심 주제들과 정치적 시사점


첫 번째, [글로벌 슬럼프]는 자본의 탐욕의 세계화에 맞서는 새로운 주체들에 대한 탐구이다. [글로벌 슬럼프]의 6장과 결론에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의 헤게모니와 그에 결탁한 국내 동맹세력에 대항하는 피억압 민중들(하위주체 subaltern)의 실천과 저항, 그 특질들을 소개해 준다. 구체적인 사례들로서는 볼리비아 코차밤바 주민들의 물 수호 투쟁, 멕시코의 오하아카 교사들과 주민들의 연대 등이다. 또한 미국 내 이주 노동자들이 부당한 착취, 해고와 인종차별 문제를 어떻게 동시에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시카고에서 전기 노동자 연합(UE) 소속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사례,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건물 관리 노동자와 청소노동자들이 속한 서비스노조(SEIU)의 창의적인 대 주민연대 활동을 소개한다. 현재 트로이카 (국제통화기금 IMF, 유럽연합 EU, 유럽 중앙 은행 ECB)의 구제금융의 댓가로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요구받고 그리스는 폭풍 전야에 있다. 그 긴축정책에 저항하는 그리스의 급진좌파 연대(시리자: SYRIZA), 그리고 프랑스의 반자본주의 신당(NPA)의 대중적 성공의 원인을 사회주의, 여성운동, 인종차별 반대, 그리고 노동운동들을 하나로 혼융해 내려는 시도에서 찾는다. (283쪽)


이 것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의 성과에 기초해 진보정당이 출범했다. 그런데 2004년 국회 진출 이후, 오히려 정치적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 원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한국 자본주의 축적방식의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 그에 근거한 새로운 주체들의 발굴과 연대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크다. [글로벌 슬럼프]는 한국 자본주의 특질에서 기인하는 신자유주의적 도시주의(urbanism 197쪽) 시대에, 대도시 서비스 업종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들, 계약직 청년들,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활동과 조직화에 하나의 시사점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글로벌 슬럼프]는 한국 언론에 주로 소개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장하준 등 자유주의 케인지안과 다른 각도와 방법론을 가지고, 현재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 처방을 내린다. [글로벌 슬럼프]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설명할 때, 금융 용어만을 가지고는 그 원인들을 충분히 분석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140쪽). 데이비드 맥날리는 2008년 거대 투자은행들의 연쇄 파산의 제 1차적 원인들은 금융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미국 노동자들의 고용과 소득이 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감소하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7쪽).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부실 문제도, 그 주택융자 상환을 중도에 포기하게 만든, 즉 주택압류 현상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노동자들의 실직과 소득감소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미국 은행들의 과도한 대출이 겹쳐져서 발생했다고 본다.


출처: 

http://www.pewsocialtrends.org/2011/07/26/wealth-gaps-rise-to-record-highs-between-whites-blacks-hispanics/


아래 표는 미국 가구당 중위 순가치를 비교한 것이다. 백인, 히스패닉 (남미), 흑인 





아래 그림은 백인과 흑인의 부 크기의 비율, 백인과 히스패닉의 비율을 표시한 것이다. 미국의 부의 차별이 인종 문제와 결합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2009년에는 백인 가구의 중위 부가 흑인에 비해 19배, 히스패닉에 비해 15배 더 많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맥날리는 현재 자본주의 경기침체의 근본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는 자본의 이윤율의 전반적 하락에서 그 답을 찾는다. 따라서 현재 위기의 극복은 단순히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BIS)기준 준수와 같은 금융제도와 법률개선을 통해, 관리감독의 강화를 통해서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작년 G20 회의에서 미국 전 연방준비은행장 알랜 그린스펀과 화상 토론을 했던 장하준과 스티글리치의 자유주의적 케인지안 대안제시, 즉 금융제도의 수리개선과는 분명 다른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냐 (신) 케인주의냐의 선택 논쟁이 아니라, 적어도 현재 위기의 원인 진단과 대안제시를 할 때, [글로벌 슬럼프]는 최소한 다차원적인 방법들을 찾아나가는데 표지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맥날리는 금융위기의 원인은 자본의 과잉 투자에 있고 이윤율의 저하에 있다고 본다. 얼핏보면 그는 고전적인 마르크스의 공황 원인 진단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로버트 브레너의 ‘장기 침체’나 하먼의 ‘공황’ 개념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팽창을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것 역시 위기의 진단을 둘러싼 하나의 생산적인 논쟁의 촉발점이 될 것이다. 이 주제는 [글로벌 슬럼프] 제 2장의 후주들에 소개되어 있다.




세 번째, 이 책의 3장과 4장은 2차 세계대전이후, 자본주의 위기와 팽창, 금융화 과정에 대한 소역사를 진보좌파적인 시각에서 즉,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지 않고 그 관계들을 역사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맥날리는 전후 글로벌 자본주의 시기 구분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시기로 나눈다. 지속적인 팽창 시기 (1948~1973), 세계적 경기침체 시기 (1973-1982), 지속적인 팽창 시기 (1982~2007), 그리고 글로벌 슬럼프 (2007~ ?) 시기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데이비드 맥날리는 1982-2007 시기를 ‘장기 침체’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팽창시기로 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시기의 정치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주목한다. 그 정치적 토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레이건과 대처의 노조 파괴, 자본의 구조조정과 린 생산방식, 해외직접투자로부터 형성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금융 자본, 혹은 금융화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팽창시기 (1982-2007)의 주요한 특징을 이뤘는가? 그리고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주인공들인 파생 금융상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는가? [글로벌 슬럼프] 제 3장과 4장은 글로벌 자본주의 변화, 성장, 침체의 동학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들어간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의 방법론인데, ‘화폐의 탈-상품화 (152쪽)’라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방법론을 응용해서, 금융화의 심층에 있는 구조적 토대들을 분석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발생했던 1972년 전후의 정치경제상황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금융화의 기폭제가 된 제도적 장치를 브레튼우드 체제 해체와 변동환율제 도입에 있다고 본다. 그 이후 금융자본은 자립화했고, 다시 말해서 금융자본이 전 사회의 고삐로부터 풀려나와 거꾸로 사회질서를 통제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외환거래시장과 장외시장의 형성과 증폭, 2000년대 이후 파생 금융 상품 시장이 주식과 채권시장보다 10배 이상 더 커지는 단계, 마지막으로 비우량주택융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시장의 문어발식 확장 단계와 파산, 이렇게 크게 네 가지 단계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증권화율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도표. 그리고  2006년 전체 주택공급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형태가 차지하는 비중이 23.5%까지 급증했다)



금융 자본의 자립화, 즉 프랑켄쉬타인 괴물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명에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신용카드 사회로 알려진 미국의 현실이다. 놀랍게도 2007년 위기 이전 미국 가구 20%는 신용등급 문제로 은행계좌가 없었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왜 이렇게 신용등급이 낮은데도 비우량주택융자를 남발했는가, 그리고 그 고객들은 주로 흑인, 라티노에게 맞춰져 있었는가? [글로벌 슬럼프]는 계급과 인종의 변증법 (208쪽)을 가지고 이 질문에 답한다.


네 번째, [글로벌 슬럼프]는 현재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한계 역시 진단하고 있다. 예를들면, 볼리비아 민중들이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모랄레스 정부가 직면한 정치적 과제가 바로 그것이다. 볼리비아 민족주의적 좌파들의 선거주의로 경도는 풀뿌리 민중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 공간을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58쪽)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원주민들의 공동체주의적 가치들이 좌파들의 실천과 접목되어야 한다고 데이비드 맥날리는 제안한다.



한국의 진보적 시민단체,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 그리고 진보정당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도시 공간, 삶의 터전에서 주민연대를 실험하고 실천하는 등과 같은 공동체주의적 가치의 정치화가 필요하다. 물론 아직 시작 단계에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의회, 행정이라는 제도적 정치공간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정치적 실천은 어떻게 가능한가? [글로벌 슬럼프]는 몇 가지 정치 실천적 전략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것은 생활터전에서 급진적 직접 민주주의 실천, 그리고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정치실험들의 창조적 역동적 혼융 (271쪽), 과거 노동운동(기억의 복원)과 현재 청년운동의 만남과 교류(309-310쪽), 진보좌파들 사이에서 분파주의의 극복과 광범위한 반자본주의 운동에, 노동운동, 여성운동, 인종차별 운동들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능력 (276-277쪽)들이 요청된다. 풀뿌리 민중권력의 제도화 (274쪽)와 반대와 저항의 목소리의 인프라 형성 (241쪽) 또한 필요하다.
 

우리들의 생활 터전, 일터, 놀이터, 그리고 쉼터에서 주민들과의 정치적 연대와 실천이 축적될 때만이, “사회현실 불만족 67.2% 그러나 지지 정당 없다”고 말하는 73.6% 한국 시민들이 진보좌파 정당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될 것이다. (경향신문·현대리서치연구소 조사 결과. 2011년 10월 4일)



3. 자본주의의 고요한 폭력시대에서 삶의 터전의 민주화의 중요성.


생 활 터전에서 자본의 문화적 침투에 대한 대안 제시가 절실히 요청된다. 자본주의적 시장의 특질은 규율과 처벌을 통한 통제(195쪽)이다. 읍내 5일 장터 시장과 같은 교류의 장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통제의 영토를 확장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활동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에서 매일같이 몸의 리듬, 기분, 마음, 습관과 취향까지도 통제하고 서열화시킨다.


그 일례로 취향과 관련된 사회 풍속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긴축시대 이후, 소위 선진 금융 기법, 미국-영국식 금융 공학은 낙후된(?) 한국자본주의와 국민들의 마음에 ‘팔자 사자 타이밍’ 게임기를 설치했다. 하이테크닉 머니그리드 게임을 장착한 것이다. (165쪽). 그러나 즐거운 게임이 아니었다. 이미 80%이상의 국민은 자기 재산 가치의 절반싹둑 잘려져 나가버린 상실감과 좌절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보상심리가 목구멍 깊은 곳에, 심장 한 켠에는 울분과 복수의식이 잠복해있다. 더 이상 노동소득은 믿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생활철학은 ‘팔자 사자’ ‘이익-손해’ 게임으로 대체되었다.


한국 자본주의 특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동강도와 속도전으로, 자본의 칼날에 베인 한국인들의 불안함을 잘 통제한다는 데 있다. 이 불안의식과 생존의지는 다시 결합된다. 그러나 이 둘만 가지고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한국인들을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만사형통약 '선진국, 선진화' 수사학이 다시 등장한다.


‘비합리적인 한국식 금융제도의 관행을 미국-영국식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해서’ 더 스마트한 한국 펀드 시민들로 거듭나라는 명령이 들려온다. 노동소득이 아닌 부동산과 연계된 복잡하고 신기한 금융상품들을 분석할 금융맨이 필요해졌다. 그들이 왔다. 금융맨들이 애널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뉴욕, 홍콩, 네덜란드로부터 상륙했다. 그리고 지적 미학적 요소를 갖춘 미녀 아나운서들의 가계부 기사 작위를 승인받았다. 70년대 표준 신랑감 건설맨 전자맨은 이제 좀 촌스럽다는 것이다. 돈이 반칙 플레이를 공정게임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아내와 남편의 얼굴까지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러나 이러한 금융맨 백기사의 구원의 손길은 너무 짧았다. 닿지 않는 곳이 더 많다. 부동산 파이낸스 프로젝트 부실 채권 등으로 인한 부산상호저축은행은 영업정지 되었다. 피해자들 중에서 한 중년 아주머니의 말은 우리의 돈의 미래를 알려준다. “내 피같은 돈이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인지 아느냐? 평생 안 입고 안 쓰고 일해서 번 돈이다”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금융 공황은 선진기법, 수리금융, 금융공학, 퀀트 등으로 상징되는 금융 자본의 합리성의 비합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신뢰를 하루에 1천 번 외치는 은행의 무한신뢰는 무한 무책임으로, 친절한 신용대출과 금융상품은 가혹한 주택압류의 칼날로 되돌아왔다.


 

사람들은 이 경제공황의 시대에 예언자들을 찾고, 어떤 사람들은 금융, 부동산, 펀드 예언자를 자처한다.그들은 해운대 모래사장 위에 나만의 ‘아방궁’을 건설하라고 컨설팅한다. 그러나 정보전쟁과 수치 확보 전투를 거쳐 건설한 금융 재테크 전략은 제로섬 게임으로 끝나고 말거나 사상누각에 그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돈, 이제 이 돈이 가지고 있는 사회성, 공동체적 속성을 부활시키지 않고서는 현재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 돈이 사람을 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기 필요와 자아 실현을 위해 돈을 굴려야 한다. 돈이 공동체와 인관관계로부터 분리되어, 거꾸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돈이란 사람, 자원, 생산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공동체의 미래 저수지, 그리고 자본의 이윤 증식이 아니라, 공적 행복 실현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내 금고의 돈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 돈은 공동체 안의 다른 사람들의 “피 같은 돈”인 경우가 많다. 그 돈은 종이 구리가 아니라 우리들의 관계이다. 은행의 돈, 국가 예산, 기업의 수익금 모두 그 아주머니가 말한 대로, 노동이라는 실개천에서 발생한 “노동의 피”가 모이고 모인 공적인 저수지인 것이다. 이 공적인 저수지의 물은 누가 어떻게 관리해야 하고, 누구를 위해 쓰여져야 하는가?


진 보 정치는 일하는 사람들을 그 공동 저수지 물의 소비자나 박수부대쯤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노동강도가 높은 한국 자본주의의 규율과 처벌 체제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사람들의 상처를 정치적으로 치유하고, 그들이 정치 참여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정치는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철 한 때 인기몰이 바람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순서가 뒤바뀌었다. 일터, 생활터, 휴식터, 놀이터에서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입소문이 모이고 모여 태풍이 되는 게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 좌파의 실천에는 시지푸스의 운명이 지워져 있다. 그것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성 정치인 박수부대나 응원부대로만 남는 게 아니라, 정치참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야 하는 숙명이다.


데이비드 맥날리의 [글로벌 슬럼프]가 이러한 우리의 과제들을 이야기하는데 한 좋은 말벗이 되길 바란다.



2011년 10월 19일, 토론토에서 NJ원시


Posted by odoga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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