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 (1) 문제 중요성


December 31, 2014 ·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노태우가 합법적으로 당선되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980년 광주 학살자와 1212 군사반란 범죄자였지만, 1987년 대선을 통해서 노태우는 ‘합법성’을 취득하고,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었지만 6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의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소위 민민(민족민중)세력은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 모두 결여한 전두환 5공화국과 노태우 6공화국 동일성과 차이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정치 투쟁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 


다시 말하면, 전두환 5공화국의 ‘폭력과 강압’,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지만 유사-파시즘 요소가 가미된 그러나 5공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강압’이 아닌 ‘법적 질서 (김기춘 검사/법무장관)’ 강조와 이데올로기 투쟁을 결합한 노태우 6공화국의 차이을 어떻게 해명하고 이에 대응할 것인가? 이게 큰 문제였다.


80년대 그람시에 대한 개설서들이 몇 권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위 문제들을 푸는데 어느정도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보았다.



당시 내 생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노태우 6공화국이 87년 합법적인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담론 (여론전)을 잘 수행하면서 그 6공 체제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중앙집중적 데모 위주가 아니라, 각 학과로 정치,계급 투쟁의 깃발이 이동해야 해야 한다. 이 둘은 병존,공존도 해야 하지만, 공간의 이동, 방점의 이동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 (2)



그람시의 고민은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민족-민중의 집단적 의지를 형성하고 조직화할 것인가였다. 그람시는 이 역할을 이탈리아 공산당 ( PCI ) 가 해야 한다고 봤고, 이탈리아 근대사에서 결핍된 자코뱅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프랑스 혁명에서 빌어온 자코뱅 노선이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농민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하에 묶어두고 동시에 모든 종류의 경제주의, 생디컬리즘, 자생(자발)주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민족-인민(민중) 집단적 정치의지야말로 이태리 국가의 기초라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그람시가 이 민민(민족-민중)의지를 강조한 배경에는, 유럽의 국제정치가 있다. 1815년에서 1870년 이 시기는 유럽의 보수세력과 지배계급들이 유럽 전역의 자코뱅 세력들을 필사적으로 깨부수고 탄압하려고 했다. 그람시를 이러한 보수적 정치 지형을 ‘국제적 수동적 균형체제’라고 불렀는데, 이 체제 하에서 지배계급들은 경제적 기업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람시는 이러한 국내외 정치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민민(민족-민중/인민) 정치의지를 발현하는데 공헌해야 한다고 보고, 이탈리아 자코뱅 세력들 (근대 군주= 정당)이 지적 도덕적 개혁 조직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 도덕적 개혁이 경제-사회적 개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경제 사회의 개혁(변혁) 역시 지적 도덕적 개혁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근대 군주로서 ‘정당(자코뱅)’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민족-민중 집합적 정치 의지 형성과 조직화를 그 정당의 책무로 설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그의 리소르지멘토(이태리 통일운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노동자 계급의 상황, 그 고향 사르디니아 남부 농민과 투린과 같은 북부 산업 노동자 관계, 지역 갈등, 사르디니아 민족주의 문제, 반동적인 지주 계급, 위계서열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이탈리아 생활세계 등과 연결되어 있다.



1906년 남부 사르디니아 농민들의 '독립운동'은 북부에서 파견된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고, 반대로 북부 투린 지방 노동자들을 탄압하는데는 남부 사르디니아 군대가 동원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 상황, 특히 노동자 계급의식의 성장이 더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그람시의 대안은 민족-민중 집합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였고, 그 주체로 정당를 설정했다.



Nakjung Kim


December 30, 2014 · 



먼나라 사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큰 설득력은 생길 것 같지 않지만....그람시 Antonio Gramsci 를 언급할 때, "나는 지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관적이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낙관적이다" 라는 말을 주로 하는데, 실제로 그의 핵심어는 "민족-민중의 정치적 결단과 집단적 의지"이다.



한국 진보정당 메모: - 재편이 아니라 <해체와 재건>이다



- 해체와 재건 문제는 노동당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진보정당들과 단체들의 책무이다.


- 각 정당에 <진보정당간 신뢰 회복과 ‘아래로부터 통합’을 위한 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당들이 포괄하지 못한 사람들도 참여가 가능하다.



2012년 총선 이후, 2014년 6-4 지방선거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재편이라는 용어는 약하다. 민중의 요구, 즉 굳이 안토니오 그람시의 핵심어인 “민족-민중의 집단적 의지 (a national-popular collective will)"이라는 단어가 유의미하다면, 이 민중의 집단적 의지는 4개 정당(통진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의 내부 입장이 어떠하건간에)의 해체와 재건를 요구하고 있다.



각 정당의 수뇌부들은 이 민중의 집단적 의지에 기초해서 과거의 오류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 각 정당들의 차이와 불신을 깨부수라는 게 민중의 정치적 결단이자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상철의 “100% 민중정치” 대 “10% 유권자” 정치 대립도 큰 의미도 없어진다. 지금은 오히려 각 정당 내부의 자그마한 기득권이라도 다 내려놓는 게 일의 순서이다.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적은 차이들을 최소화하고 녹여낼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Antonio Gramsci, Prison Notes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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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1

    역겹네요
    군사독재가 잘못되었다고 본인들이 하는 짓은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소름끼치는 사회주의자들
    문화사회주의로 열일 하셔서 한국을 쇠락시키시는 한심한 분들
    살만 찐 보수들이 열심히 일한 당신들의 계략에 무너졌고
    전세계를 10개 권역으로 나누어 통치하겠다는 UN의 계획에서 자유진영(미국-일본)이 아닌 공산진영(중국-북한)에 편승되는 것에 보다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 체제나 사민주의로 전향한 모든 국가들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 당신들 같은 미친새회주의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죠.
    자유주의에도 헛점이 있지만... 차악이 뭔지는 생각 안하나? 미친놈들

    2017.06.06 08:31 [ ADDR : EDIT/ DEL : REPLY ]

법 기술자 김기춘의 종말, 법의 한계와 민주주의 양심은 법보다 더 중요하다.

 보통 시민들이 법 기술자보다 더 뛰어남을 우린 목격했다. 공익적 분노가 법 기술자 김기춘을 패배시켰다. 청문회 장에서 프로페셔널 김기춘 공안검사는 아마추어였다. 그리고 끝끝내 비열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국정조사, 최순실도 빠진 청문회, 그러나 김기춘,차은택,고영태,김종 때문에 시청했다. 김기춘의 발언은 너무 속이 보였다. “최순실을 모오릅니다”는 말은 “당신들 내가 최순실 안다는 증거있어? 없잖아!”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최순실을 김기춘이 모르는가? 김기춘은 최순실을 만난 적이 있는가? 아니 김기춘과 최순실은 ‘공범’인가? 이 질문들에 김기춘의 태도는 법 기술주의자였다. “내가 최순실을 안다면, 전화통화, 팩스 기록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하면서, “모오릅니다”를 연발했다. 

김기춘은 '죄형법정주의 no penalty without a law (Nulla poena sine lege)'나 범죄사실 입증 책임이 검찰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법률 기술자다. 테크니션이 테크닉 대결을 펼치자는 것이 김기춘 의도였다. 


다시말해서 김기춘이 검사,경찰,시민들에게 도전한 것이었다. “너희들 증거를 가져와라 !” 온라인 사이트 ‘주식갤’ 시민들이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동영상 속, 김기춘을 발견했고, 그 동영상은 빛의 속도로 어둠의 청문회장 국회의원들 전화기로 도착했다. 법률 기술자 김기춘은 카운터 펀치를 맞고 실토했다.

 “당신들이 증거를 가져왔으니까, 최순실을 제가 압니다. “최순실을 모른다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라는 이중 부정문을 그 순간에도 김기춘은 구사했다. 머리 좋음이란 이렇게 이중 부정문을 사용하는 능력일 뿐이고, 법률 기술자 김기춘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증거'를 들이대는 시민들이 정작에 김기춘으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는 뭐였을까?

촛불 시민들은 바라는 것은 김기춘 '양심의 목소리'였다. 왜냐하면 대다수 시민들은 법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법없이도 "without a law"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춘은 한 때 노동현장에서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끈질긴 인연을 가진 인물이다. 자상한 아빠로서 김기춘은 당시 어떠했을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신문기사이다.

 2016년 중학생,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이게 나라냐?’ ‘열심히 공부해도 부정입학하는 정유라 장시호’ 에 대한 분노,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대통령 권한을 줘 버린 이 어처구니없음 앞에, 중고생들도 ‘옷은 벗지 않고’ ‘교복 입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언제나 김기춘은 아래 인터뷰처럼 ‘이 아버지도 이 할아버지도’ 옷벗고 같이 데모해보겠는가?  

김기춘 끝끝내 56년간 비겁한 검사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아버지가 공직자라 너희들이 데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뿌리치고 꼭 너희들이 데모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 아버지도 옷벗고 같이 데모하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토론에 내가 이겨서인지 아이들이 아버지를 봐주어서지인 (웃음) 데모 안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주어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1990년 1월 5일자, 경향신문 김기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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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9일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를 검증하는 자리에, 김기춘이 등장했다. 당시 패널들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김기춘은 박근혜 후보의 법률 자문 역할을 했다. 그런데 김기춘이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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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5일자. 경향신문. 김기춘은 "냉엄한 논리, 따뜻한 가슴의 미스터 법질서"


2016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법률 미꾸라지'로 통한다. 




김기춘이 최순실과 정윤회를 안다는 것은 이미 정윤회 인터뷰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2016년 11월 22일) 





(출처: 채털 A, 최순실 전 남편이자, 박근혜의 비서관 정윤회 증언. 최순실을 모른다는 김기춘 주장은 말도 안된다. 이미 30년 전에도 김기춘은 최태민 일가를 잘 알고 있었다) 


http://news.ichannela.com/politics/3/00/20161122/81472197/2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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