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지역 노동생활 실태조사>를 읽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게 되다. 

구로공단역은 늘 복잡했다. 지하철에다 그 밑으로는 차들이 많이 다녔다. “다음 정차할 역은 구로공단 구로공단역입니다. 띠로로록”  지금도 이 목소리가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기억한다. 그런데 가끔 공간이나 팻말 이런 것들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왼편에 큰 회사가 하나 있었다. 그  공장 겉벽은 색바랜 녹색 칠이었는데, 그 위에 커다랗게, 표어가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처음 그 표어를 보고 놀랬다. 아니 의분이 동시에 일었다. 표어는 학교 건물에나 <반공> <방첩> 혹은 <조국 통일> 이렇게 씌여져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굴뚝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는 공장 건물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이런 구호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분노 그 자체였다. '이렇게 처박아 놓고서'  

회사에서 가장 일 잘 하는 손주임,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그렇게 부러워했던 전문대 나온 이대리도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회사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보다는, 실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밤 9시, 10시까지 잔업을 하고, 토요일도 격주로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일요일도 200% 수당 때문에 한 달에 2회는 일하는 현실이고, 그야말로 여기 회사 사람들은 다 일하는 기계들인데, 이 사람들더러 조국 근대화 초석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고 같이 자란 친구들, 선후배들, 삼촌 고모뻘되는 사람들이 1공단, 2공단, 3공단을 꽉 채우고 있었다. 8시 56분, 57분 출근표 촬콱 굉음과 더불어. ‘서울가서 돈 벌어 온다더니’, 그들이 다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표어를 보고,  속으로 ‘여기다 다 처 몰아넣어 놨구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서울에 오게 된 동기 자체가 계급적인 것인데, 표어는 애국주의였다. 

매일 출퇴근 길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표어와 마주쳤다. 이 표어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 해석도 해보게 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그러니까,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산업역군이고 수출 일꾼이다. 그 힘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러니까 그걸 한국의 자본이나 경영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게 애국주의 고취, 전시 자본주의 선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냥 진실을 그들도 엉겹결에 이야기해버린 것이다. 동원의 수단이었는데, 진실을 말해 버린 셈이다. 

여기에 있는 중소기업 자본가들도, 경영자들도, 국가도, 또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데도 샤워기 시설도 없는 (우리회사 같은 경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어느 누구도 박수치면서 아 ‘저 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는 말을 하지도 믿지도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그게 진실이라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적인 명령어나,  “인간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노동이다” 이런 문장처럼, 부인하기 힘든 그런 말이 되었다. 

 일당 16800원(시급 2400), 복만이형 같은 기술자는 3만원까지도 받았다. 만이 형이 참 부러웠다. 선반기술이 있어서 나보다 땀을 덜 흘리고 돈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땀은 많이 흘렸는데, 씻는 곳은 좁다란 부엌, 세수대야 놓고, 비누 하나에 그 많은 사람들이 퇴근 전에 손만 씻었다. 샤워실도 없었다. 땀 방울들을 씻어낼.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축구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럴 때, 엄청 큰 이야기 “조국 근대화”, 심지어 “민주화” “ OO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후로는, 그 표어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그 표어에 물음표를 붙였다가, 느낌표를 붙여보기도 했다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고 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