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19. 1. 26. 17:23

2011.02.17 18:08


(잠시 떠오르다) 어떤 한 표어


원시 조회 수 999



구로공단역은 늘 복잡했다. 지하철에다 그 밑으로는 차들이 많이 다녔다. “다음 정차할 역은 구로공단 구로공단역입니다. 띠로로록”  지금도 이 목소리가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기억한다. 그런데 가끔 공간이나 팻말 이런 것들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왼편에 큰 회사가 하나 있었다. 그  공장 겉벽은 색바랜 녹색 칠이었는데, 그 위에 커다랗게, 표어가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처음 그 표어를 보고 놀랬다. 아니 의분이 동시에 일었다. 표어는 학교 건물에나 <반공> <방첩> 혹은 <조국 통일> 이렇게 씌여져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굴뚝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는 공장 건물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이런 구호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분노 그 자체였다. '이렇게 처박아 놓고서'  


회사에서 가장 일 잘 하는 손주임,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그렇게 부러워했던 전문대 나온 이대리도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회사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보다는, 실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밤 9시, 10시까지 잔업을 하고, 토요일도 격주로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일요일도 200% 수당 때문에 한 달에 2회는 일하는 현실이고, 그야말로 여기 회사 사람들은 다 일하는 기계들인데, 이 사람들더러 조국 근대화 초석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고 같이 자란 친구들, 선후배들, 삼촌 고모뻘되는 사람들이 1공단, 2공단, 3공단을 꽉 채우고 있었다. 8시 56분, 57분 출근표 촬콱 굉음과 더불어. ‘서울가서 돈 벌어 온다더니’, 그들이 다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표어를 보고,  속으로 ‘여기다 다 처 몰아넣어 놨구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서울에 오게 된 동기 자체가 계급적인 것인데, 표어는 애국주의였다. 


매일 출퇴근 길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표어와 마주쳤다. 이 표어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 해석도 해보게 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그러니까,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산업역군이고 수출 일꾼이다. 그 힘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러니까 그걸 한국의 자본이나 경영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게 애국주의 고취, 전시 자본주의 선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냥 진실을 그들도 엉겹결에 이야기해버린 것이다. 동원의 수단이었는데, 진실을 말해 버린 셈이다. 


여기에 있는 중소기업 자본가들도, 경영자들도, 국가도, 또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데도 샤워기 시설도 없는 (우리회사 같은 경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어느 누구도 박수치면서 아 ‘저 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는 말을 하지도 믿지도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그게 진실이라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적인 명령어나,  “인간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노동이다” 이런 문장처럼, 부인하기 힘든 그런 말이 되었다. 


 일당 16800원(시급 2400), 복만이형 같은 기술자는 3만원까지도 받았다. 복만 형이 참 부러웠다. 선반기술이 있어서 나보다 땀을 덜 흘리고 돈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땀은 많이 흘렸는데, 씻는 곳은 좁다란 부엌, 세수대야 놓고, 비누 하나에 그 많은 사람들이 퇴근 전에 손만 씻었다. 샤워실도 없었다. 땀 방울들을 씻어낼.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축구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럴 때, 엄청 큰 이야기 “조국 근대화”, 심지어 “민주화” “ OO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후로는, 그 표어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그 표어에 물음표를 붙였다가, 느낌표를 붙여보기도 했다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고 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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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12019. 1. 25. 14:51

2011.02.21 20:00


(잠시) 정말 일 잘하는 이쁜 <미경> 아줌마 서약서를 들고 오다

원시 조회 수 1419 댓글 2 ?

http://bit.ly/eS5Xjx : 겉은 첨단 디지털, 속은 옛 구로공단: 남성 70%-여성 90% 비정규, 월 90만 원

노조-정당사회단체 '노동자의 미래' 출범…지역 비정규직 조직화


위 기사를 읽다. 산업구성이 바뀜에 따라서, <디지털> 단지로 변모한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난 3년 내내, 내 고민 중에 하나는, 노동자들 (공장, 사무직 모두)이 어떻게 하면 하루에 10분이라도, 당 게시판에 글 쓰고, 당 뉴스를 접하게 하느냐였다.  잘 안되고만 느낌이다. 2011년인데, 월 90만 원 (최저임금 시간당 4320원, 주 45~50시간 노동시간, 60시간 일해서 120만 원 130만 원) 이면, 그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게 많이 없다.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더 클 것같다.


여름에 잠시 일한 회사가 있었다. 미경이 아줌마는 1층 책임반장이었다. 회사마다 꼭 한 사람씩은 일벌레가 있고, 사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경력 20년~30년 된 노동자가 있다. <미경>이 아줌마도 그 전형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보다 더 예뻤다. 여느 아줌마와 달리 마른 편이었고, 젊었을 때는 더 이뻤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루는 서류 몇 장을 가져오더니, 모나미 볼펜을 주면서 뭘 쓰라고 한다. 읽어보니까, <노동 계약서>였다. 그런데 7~8개 조항으로 이뤄진 "서약서"였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다 안 나는데, 전부다 "뭔 말을 잘 듣고, 잘 따르고, 잘 지켜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맨 문장은 "순종할 것을 맹세합니다"로 끝났다. 


당시에는 전자부품 회사들이 구로공단에 많았다. 우리 회사는 컬러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들어가는 코일을 만들었다. 이 코일은 빨간색 퍼짐 현상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근데 많은 회사직원들(노동자들)이 이 코일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랐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들이 몇 되지 않았다. 70여 명 일하는 중소기업체였다. 사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했고, 검정 그랜져 차가 회사 마당에 가끔 주차되었다. 하도급업체 사장은 정말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은행대출, 거래처 로비, 사내 노사관리 등. 지금은 거래처가 한국회사 일수도 있는데, 이 회사 거래처들 중에 하나는 일본 전자회사였다. 


하루 일당 (6300원, 시급 780원 정도) 이었다. 일을 잘하면, 매 3개월마다 일당 300원씩 인상된다고 총무과장이 면접할 때 이야기해줬다. 대강 계산해보니까 한 달 기본급이 20만 원이 채 안 되었다. 200시간을 일해서 19만 원 정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총무과장이 면접 때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 네가 부모님께 효도할 나이가 아니냐? 꼭 돈이 많아야 효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새 대학에 보내려면 한 달 30만 원은 있어야 한다.  시골서 농사지어서 30만원 만들기가 어디 쉬우냐? 착실히 열심히 잘 하고 있어라." 이 총무과장이 하도 진지하게 말을 해줘서 아직도 그 검정 안경이 생생하다. 


<미경> 아줌마 서랍에는 반창고, 아스피린, 여성노동자들이 많아서 생리통 약, 머리핀, 과자 등 없는 게 없었다. 뭐가 좀 필요하면, 다들 왕언니 <미경> 아줌마를 찾았다. 이렇게 일만 일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량 갯수, 몇 박스 달성 확인하고, 자기가 일하고, 다른 조 일하는 것도 도와주고, 나도 아스피린 한 개 얻어 먹은 적이 있다. <미경> 아줌마는 점심식사도 엄청 빨리 했다. 후루룩 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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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2011.02.21 20:13

4년 전에, OECD 국가 노동자들의 파업 (공기업, 사기업 모두) 비교 자료를 읽었다. 캐나다는 인구 3천 1백만인데, 파업 횟수가 한국 (5천만) 보다 많았다. 한국은 파업할 수 있는 회사들과 노조들만 파업을 한다고 자료에 나왔다. 그니까 위와 같은 70명 노동자 회사같은 곳은 파업이나 노동자투쟁이 정말 일어나기 힘들다. 한국이 강성노조로 세계에서도 유명하지만, 그만큼 노동자 내부 격차가 크고 심각하다는 것이다. 




아니 파업이나 투쟁에 앞서서, 그런 말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서>에 자기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줄도 모르고 <서약서>에 도장찍는다. 당에서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까? 




요즘은, <사회운동 정당>이다 아니다, <대중정당>이다, 의회주의냐 아니냐, 정치를 발견했냐 안했냐, 원리주의자지, 고립주의자지, ...,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무슨 말을 해도 글자 그대로 전달되는 법도 없다. 




정치에 앞서, 무슨 혁명 개량에 앞서, 은폐되기 쉬운, 가려지기 쉬운 현실, 일만 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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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2011.02.21 20:15

새로운 진보정당, 정당간 통합......뭐가 어떻게 달라질까? 사람들을 노동자들을 청년당원들을 <동원>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게 될까?


 민주노동당 2007년 대선 몰락, 아니 많은 사람들은, 당원들은 모른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국회의원 10석을 얻는 과정부터 위기-다이나마이트 탑재 <사랑방 정치> 정당이었다. 여기 당원들도 언론들도 <북한 문제, 종북문제> <패권주의, 정파싸움> 이런 자극적인 거 몇 개 다루지만, 과거 민노당의 간-암 증세들에 대해서, 또 현재 이 <진보신당>의 문제들에 대해서 은폐되어 있는 게 많다. 


2008년 <진보신당>은 정말 다를 줄 기대했다. 노동자들을 돈이나 내고, 투표해주는 "수동적, 피동적" 동원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 일.하.는.사람들의 정당일 줄 알았다. 민주노총 전 이수호위원장처럼 400만표, 600만표 몰아줄께. 그런 거 안했으면 했다. 진.보.신.당. 홈페이지 3년이 지났다. 노동자들, 공장이건 사무실이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노동자들의 희.로.애.락 이야기는 거의 없다. 


실제로 노.동.자. 노동자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진보신당 하루 뉴스 5분, 10분>짜리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이 직장인들은 피곤하다. 그럼 이들을 취재해서라도 노.동.자들 목소리가 당 1면에, 당게시판에 가득차 흘러야 한다. 언젠가 당을 만든다면,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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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 22. 07:49

2008.10.02 17:05

100원짜리 동전 쌍끌이로 따던 날

원시 조회 수 3016

날씨가 어느새 밤에는 쌀쌀해진다. 햇볕이 그립다. 그 날은 햇볕을 쬐면서 동전 던지기 게임을 했다. 신체검사 날이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동네 목욕탕에 갔다. 출근해서 잠시 일하고 있으니, 10시 조금 넘어 봉고차가 회사에 도착했다.

 스패너 그라인더 다 냅두고 얼씨구하고 봉고차에 올랐다. 봉고는 XX병원으로 향했다. 이과장님이 같은 봉고에 탔는데, 내 맞은 편에 타셨다. 내 손을 보시면서 "원시야, 니 손은 되게 고아야~잉" 전라도 사투리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무 말도 않고 있자 "너도 일은 조금 했다마는..." 무안하지 않게 덧 붙이였다. 베테랑 이과장님은 못다루는 기계가 없었다. 설계,선반,사상,해머질,그리고 청소 노하우까지. 25년 넘게 일하신 분이니까. 


병원에 도착, 일렬로 서서, 피 한번 뽑고, 내과 외과 안과 등 몇 군데를 돌았다. 근데 허탈하게도 30분 만에 다 끝났다. 한쪽 귀가 거의 안들리는 성환이 카드에는 양쪽 귀 모두 정상이라고 카드에 적혔다. "이런 넘의 신체검사 뭘라고 하는 거여" 한마디 던졌다. 


먼저 끝난 사람들은 병원 바깥에서 회사 사람들을 기다렸다. 12월인데 따스한 햇볕이 벽쪽으로 몰려들었다. 우반장님이 "놀면 뭐하노? 경기 한판 하자" 그래가지고, 판을 벌였다. 동전 던지기 게임이다. 

 

빨간 선에 서서 하늘색 원 안에 100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원 중앙에 가까운 사람이 동전을 다 따먹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대여섯명이 던졌다. 원시 승리. 호주머니에 동전을 넣었다. 대여섯판까지 계속 이겼다. 한 쪽 호주머니가 거의 다 100원짜리로 꽉찼다. 회사 사람들 이제 눈 뒤집어졌다. 송씨 아재, 주환이 형 다 달라붙고, 신체 검사 마치고 나온 분들까지 나를 이기기 위해서 빨란 선에 한번씩 서보다. 이 양반들이 게임에서 지니까, 1000원짜리, 500원짜리를 꺼내어 나에게 교환해가면서 게임을 하는 거였다. 


"이과장님, 제 손가락이 고운 이유가요, 리틀야구 시절 제가 캐쳐였거든요" 이 말을 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암튼 이 사실을 모르는 순진한 회사 사람들이, 너도 나도 저 빨간 선에 서서, 원시 호주머니 양쪽 다 100원짜리 꽉꽉 찰 때까지, 100원짜리 던지기를 했다. 

거의 20번 던지기 게임을 한 것 같다. 결과는, 계속 원시 승리였다. 한번도 100원을 뺏기지 않았다. 던지는 나도 신기했다. 운수 대통한 날이었다. 그래도 개평 주라는 사람들이 없었다. 회사에 돌아와서, 점심 먹고, 야쿠르트, 박카스 매점에서 사서 돌렸다. 태어나서 그렇게 호주머니에 동전이 많이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요새 미국 투자은행(IB) 레만 브라더스 파산으로, 금융자본 위기, 파생상품 등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동전 던지기의 진화된 형태, 돈 던지고 돈 분화되고 돈이 새끼를 치고, 그 새끼가 또 손자/손녀를 낳는다. 물론 그 자본 회로(circuit)로 귀환하지 못하는 사태가 지금 위기이다. 

금융화비판이나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회로 자체를 바꾸자고 하겠고, 제도적/기능주의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은 자본 순환 회로에 낀 녹을 제거해서, 자본의 철마가 잘 달리도록 하자고 할 것이다. 

한쪽 시민들은 안전 대피소를 찾아서, 이제는 금덩어리 금괴 가격이 오르니까, 금에 돈을 투자한다. 물론 금덩어리 은괴, 또 지폐화폐 자체는 씹어먹을 수 없다. 


그날은, 100짜리를 양 호주머니에 가득 넣어서 걷기도 불편할 정도로 바지가 무거웠다. 하도 무거워서 어디다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회사 앞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야쿠르트, 박카스랑 "교환"해서 그 사용가치를 회사 사람들에게 다 공유했던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일은 못해도, 놀기는 엄청 잘하는 사람들. 어디 동전 던지기 올림픽 대회 "읖냐?" 




[후기 노트]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1년에 1회하는 신체검사, 1인당 30분 너무 짧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기식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 그리고 자본주의 원리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생활 가까이에 있다.


 육체노동을 하건 정신노동을 하건, 요새는 두개가 짬뽕되어 있지만... 사람의 몸에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적어도 신체검사는 1인당 반나절 (4시간)은 해야한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사회주의 사회이고 진보의 가치가 실현된 사회 아닐까? 

 진보정당은 산업재해 사망문제부터, 이 신체와 관련된 문제에 보다 더 면밀한 사회조사가 필요하다. 그럴려면 사실 연구원이 있어야 하고, 아니면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당원들이 있어야 한다. 

통계청 자료만 가지고는 정치화시키는데 부족하니까. 국회의원 0석, 지방자치단체장 0석인게 참 못내 아쉽다. 연구원들조차 고용할 수 없으니까. 2010년 선거, 19개월 남았는데, 기초, 광역의회, 단체장 선거에서 우리 진보신당 후보가 당선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 현장에 대한 조사없이, 사실상 정치적 이슈를 선점할 수 없다.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정당이 되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파업후원 정당은 될 수 있지만. 사회적 대안의 세력이 된다는 것은 일상적인 남 안보는 그런 직장,가정,동네 공간에서 정치 이슈를 발견하고, 정치쟁점화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문제해결법을 주민들과 같이 고민할 줄 아는 정치적 지혜를 갖춤을 의미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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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2016. 8. 10. 08:12

2012.10.16 17:22

‘탄’과 ‘칼’

원시 조회 수 532 댓글 1


어느날 회사에서 돌아와보니 출입문이 열려져 있었고, 열쇠는 박살나 있었다. 방 옷장 서랍은 열려져 있었다. 없어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가져갈 물건이나 증거로 잡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개X의 자식들이...’ 한편으로는 분노가 끓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 날 밤 방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몸은 잔업을 해서 극도로 피곤한데..... ‘잡범들이겠지. 설마 경찰은 아니겠지.’ 순간 별의별 생각이 스쳐갔다. ‘아 이렇게 기분이 더러울 수가......여기에서 이 순간 할 수 있는 최대한 액션이 뭔가?’ 방문을 열고 부엌에 있는 칼을 머리맡에 두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나니, 부적의 효과는 있었다.


어제 <레디앙>기사, http://www.redian.org/archive/43542 화장실 바로 앞 휴게실 사진을 보다. 회사 직원 혹은 노동자에 대한 태도가 강산이 2번 3번이 변했는데도 변한 게 없다. 그런 현실을 바꿔보겠다던 우리의 현재 모습을 잠시 생각해보다. 진보신당 사람들, 그리고 당원들은 아니지만 아직도 변혁의 꿈과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심정은 이 순간 어떠할까?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다 끌어들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온라인으로만 현실을 보는 내 이야기만 간결하게 하는게 낫겠다.


집안이 털린 느낌이다.


통진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을 유권자 90%는 구별하지 못한다. 512 통합진보당 폭력사건은 프로야구 중계방송되듯이 전국으로 중계되었고, “진보정치하는 너희들도 알고 보면 새누리당 민주당 정치꾼들과 똑같은 놈들이다”라는 극도의 냉소가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 정도에 그치면 다행이다. “너희들이 정권을 잡으면 더 해처먹을 놈들이다”이라는 모멸적인 발언을 하는 세력들도 있다. 사람들은 의식화운동을 거치지 않더라도 자기 오감 체험에 따라 자기 생각을 바꾼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혹은 거꾸로 한국인의 특유의 ‘속도전 망각’이라는 행운이 찾아온다고 해도, 만회의 시간은 최소 5~6년, 길게는 10년 정도 걸릴 것이다.


진보신당 당원들 정치적으로 억울하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일자리 창출과 밥그릇 깨부수기 다툼에 직접 동참하지도 않았다. 베테랑 혁명가에게는 이런 상황도 다 짊어지고 가야 할 역사적 책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타의반 자의반 지쳐버린 수분 부족으로 탈진 상태에 이른 많은 평당원들에게는 ‘심리적 박탈감’과 ‘사기 저하’가 자리잡고 있을 것같다.


그래서 집안이 털린 느낌이 든다. 황망함과 허탈감이 그것이다.


이십여년 전 방이 털렸을 때 ‘방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부엌칼이라도 들어 ‘자기방어’를 해야했다.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한 순간에 다 깨질 수 있으니까.


2012년 당이 처한 상황, 또 당 바깥 동료들이 부딪힌 상황은 그 당시와는 또 다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 적어도 수 만명이 지난 10년간 자기가 벌어서 낸 자비, 자원봉사시간들, 무엇보다도 선거때마다 마음 졸이고 주변의 걱정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살아야하는 심리적 압박, 빚져서 더 이상 당활동을 할 수 없는 분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노동중심성, 전태일 정신이다. 그런데 노동중심성은 전국 1만여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중심’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그 말의 정치적 의미가 나타날 것이다. 전태일 정신에 대한 강조, 그런데 왜 자꾸 집회시 민중의례와 같은 말처럼 들리는가? 역설적이게도 또 드라마 같지만, 전태일 누이는 민주당 비례대표 1번 국회의원이다. 


전태일정신은 정신이고 그 누이 전순옥의 길은 또 다르다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것을 이미 말해주고 있다. 전태일 정신은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과 같을 뿐이다. 미싱사 전태일의 죽음도, 80년 5월 광주항쟁도, 87년 6월 시민항쟁, 7-8월 노동자 투쟁은 역사적으로 재해석되고 재배치되고 재관행화되고 재법률화되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무형의 공공 자산일 뿐이다.


내가 구로공단에 처음 갔을 때 느낀 점은 공포였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소리에 기가 죽은 것이다. 아침 10시~12시 사이 구로 제 2공단을 안쪽을 걸어가는데, 거리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느 공장에서 울려나오지도 측정이 되지 않는 엄청난 큰 기계음, “쿵 쾅”하는 소음들이 귀청을 때리며 사람 기를 팍팍 죽였다.


이 곳에 사는 노동자들이 누군인지 알고 있다.어린시절 논바닥에 비닐 축구공으로 축구하던 맹윤기, 유철종 형제들, 아랫마을 신씨네 누이들, 화담마을 송창식을 ... 내가 읽은 마르크스의 <임노동과 자본>, 엥겔스의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런 것과 굳이 연결시켜 필연적으로 무슨 논증을 할 필요는 없었다. 현실은 더 간단명료했다.


 나랑 동네에서 축구할 친구들이 서울로 돈 벌러 가버렸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향을 떠나온 이유가 있고 인생설계가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살기 바빴으니까, 신림 4거리 -> 신대방동 -> 구로공단 (요새는 디지털 역으로 바뀌었다고함) 지하철 2호선 두 정거장만 가면, “내가 흘린 땀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이 된다”는 표어가 붙어있는 산업공단 단지, 구로공단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내가 ‘도시공간’에 대해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복덕방 이름도 ‘광주 복덕방’, 가리봉 오거리 시장 안에 김치가게는 ‘충남상회’, 다들 자기 고향 이름을 붙이고 살았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7만에 시작했고, 주인집 아줌마의 시어머니되시는 분은, ‘어이 총각, 방 넓고 좋아, 아가씨만 데려오면 쓰것구만’ 그러니까 내가 운이 좋아서 좋은 방을 얻었다는 것이다. 어른께서 그렇게 또 ‘인생의 격려’ 차원에서 말씀하시니, 난 예의갖춰 ‘감사합니다’ 했다.


문제는 연탄이었고, 연탄가스와의 싸움이었다. 그 집은 화장실이 골목 바깥에 있었다. 그리고 연료는 연탄이었다. 당시 한국의 큰 도시에는 3저 호황의 결과로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 도시들까지 아파트가 미친듯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연립주택에도 연탄에서 기름이나 천연가스가 보급되었다. 


여긴 ‘아직인’ 동네, 예외 공간이었다. 주인 아줌마와 할머니는 연탄가스 염려말라고 하셨지만, 우리 선배 한분은 인천에서 연탄가스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실은 이건 큰 문제였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첫 날은 오후에 연탄을 피우고 2시간 간격으로 시계를 맞춰놓고 잠들었다. 깨어보면 내가 살아있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할 것까지야...그렇지만, 당시는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내가 취할 수 있는 자구책은 다 동원했다.


‘자기 방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잠시 과거를 뒤돌아보다. 이런 회고담을 할 때는 아니지만. 열정과 패기, 의분도 중요하지만, 어이없는 우연적 변수, 연탄가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 더 중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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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5. 8. 4. 21:15

김수행 선생님이 마르크스의  <자본:정치경제학 비판>을 번역하고 대학 교재로 강의를 했던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1980년~1990년대  그 <자본> 책은 번역서 이상이었다. 사람들 가치관을 흔들어놨고 그 초점을 이동시켰다.  한국에서 직업 차별을 당하고, 장시간 잔업과 철야 노동을 하는데도 그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던 이름없는 노동자들을 ‘정치적 시민’으로 복권시켰고, 박정희 말대로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깔았던 한국시민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서울 구로공단 한 회사 굴뚝에 "내가 흘린 땀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이 된다"라고 써져 있었다)


 당시 한강의 기적의 상징 수도 서울,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1주일에 평균 50~60시간 넘게 일했다.  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공장과 회사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수행 선생의 <자본> 강의와 연구는, 이러한 한국 노동자들이 자기 생존에 필요한 ‘필요노동시간’과 회사의 이윤을 위한 “잉여노동시간” 비율 문제가 공정한가 사회정의 원칙인가를 따져묻게 만드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사회적 신분 차별을 받았던 노동자들이 ‘누구를 위한 노동’을 하고 있고, ‘무엇을 위한 노동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 저항할 때, 마르크스의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이라는 비판틀은 노동자가 ‘조국 근대화의 진정한 초석’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한국 노동자들이 외친 것은 단순한 ‘임금을 올려달라’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넘어서 사농공상이라는 뿌리깊은 신분차별 타파 선언이었고, 불공정한 노동계약관계 법을 폐지하고, 궁극적으로는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자기들 스스로 결정할 정치적 권한을 외친 것이다. 


마르크스 <자본>은  자본주의를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진화의 산물이고,  봉건 신분제보다 더 우월하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사회경제정치제도일 뿐이다. 누군가가 이 ‘미성숙한’ ‘불공정한’ 자본주의를 바꿔야 한다. 이러한 인류 보편사 과정에서, 한국은1948년 이후 남한에서 20세기 정치적 이념들 중 한 축을 담당한 사회주의가 불법화되면서, 그 자본주의 대안운동과 담론은 단절되었다. 김수행 선생의 <자본> 완간 번역은 이러한 강제로 단절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과 대안 제시를 다시 본궤도에 올리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2015년 한국 자본주의는 97년 IMF 긴축 통치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경쟁’ ‘시민 내전 전쟁터’로 돌변했다.  마르크스 <자본>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사회적 현상들, 즉 세계최고 고학력, 노동소득의 종말과 빌딩 땅 등 자산소득 계층의 대물림, 선진자본주의화 속에 강고하게 자리잡은 ‘봉건제적 신분 차별화’,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는데 동네 치킨집 자영업은 증가하는 비합리적인 경쟁의 구조화, 자산소득(빌딩,땅소유주)계층을 위한 사적 서비스업종 증가, 시중 400조이라는 자본파업 현상 등을 새로운 <정치경제학 비판: 자본>은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시민권을 상실해버린, 노동시간 주권을 상실해버린 청년을 비롯한 노동 안과 바깥 사람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과제 완수가  15년 넘게 준비하고, 6년 넘게 땀흘려 마르크스 <자본 1, 2,3>을 번역한 김수행 선생님, 그리고 20년 넘게 제자들을 친조카, 동생들처럼, 친구처럼 허물없이 도와준 멘토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서둘러 가셨습니까? 마르크스가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그러나 끝내 밟지 못했던 미국 땅, 조금 더 천천히 둘러보시고 미국 자본주의 특성에 대해서 공부해보자고 하셔야죠?  2008년 미국 금융공황 이후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당신들 말이야, 뭐하고 있어? 그렇게 공부해서 언제 다 할라고” 카랑카랑한 죽비가 그립습니다. 김수행 선생님이 즐겨 썼던,  “당신들 말이야~”, 이 말은 스스로 ‘주체’와 ‘주인’ 이 되어 달라는 선생님식 주문인데, 선생님 걸어온 길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데도, 그 성과는 미미한 이 현주소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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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26일. 경향신문 기사 중에서. 

난 이때까지만 해도,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선배들과 동료들과 함께 움직였다. 

사람은 때가 되어야 만나는 것 같다. 가까운 거리건 먼 거리건 간에 '마음'이 중요하다.

92년 당시 구로공단 하루 급료가 16000원 ~ 19000원 정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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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2013. 12. 20. 12:54

임금에 대한 철학적 전제의 차이, 이것은 정치적 법적 차이를 낳는다. 



통상임금 대법원 토론회장에서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김기덕 노동변호사의 글 공유 및 토론주제  :  



우선 임금은 혹은 노동소득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계급적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테제를 여기서는 우선 고려하지 않고, 대법원의 '임금' 개념 정의의 특징과 한계를 찾아보자.


1. 이번 갑을오토-텍 노조원들의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된 것은 한국자본주의 태동 100년사에,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원리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 노동력, 노동임금 (*우리가 받는 시급, 주급, 월급, 연봉, 보너스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안되어 있고, 법적 정의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법에 나와 있는데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다. 법에 아직 명시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 '월급이 뭐냐?' 그러면 답변이 없는 것이다. 


2. 월급, 연봉 등은 노동자 (직원, 교수, 다방 아가씨, 판사 등 모든 직종) 한 개인의 '노동'의 결과를 팔아서 취득한 화폐 크기가 아니다. 이번 대법원의 '노동임금' 정의, 특히 연장근로의 기본단위 unit 가 된다는 '통상임금'의 정의 자체가 '노동' 투하와 관련되어 있고, 노동 투하의 결과로 만들어진 재화나 서비스의 판매 댓가라는 것을 그 철학적 전제로 깔고 있다.


 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대법원이나 언론 등에서 마치 '임금'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한 가지 방식이고, 그것을 이번 판결로 확정된 것처럼 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어서이다. 


임금에 대한 또 다른 개념 정의 예를 들어보자.  노동자의 노동력 (labor power: 노동자가 유용한 재화나 서비스를 창출해내는 능력, 지적 신체적 능력)을 노동시장에서 사가지고 그 노동력을 소비하고 사용하고 명령하는 고용주 (자본가, 사장, 국가 대통령이든지, 구청장이든지, 다방 주인이건)가 그 노동력을 사용하고 또 오늘 이후 미래에도 다시 사용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을 '임금'이라고 부른다면, 


이렇게 정의한다면, 김장보조비, 여름휴가비, 체력단련비, 부양가족 숫자, 특별 공헌도에 근거한 수당, 다시말해서 이번 대법원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범주화시킨 내역들도 다 '임금' 개념에 해당한다. 


노동자의 노동력에 대한 댓가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그 노동력을 생존, 유지, 재생시키는데 필요한 물질적, 문화적, 사회적인 비용과 연결되어 있다. 


다방 주인이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도 아닌데, 대법원이 산타 클로스도 아닌데, 교육부가 흥부 아부지도 아닌데, 삼성 이건희 황제가 산타 클로스도 아닌데, '김치 담그라고 김장 보조비'를 왜 주겠는가?  김치 많이 먹고 김치에 멸치 젓갈 팍팍 쳐서 겨울 나고 내년 3월까지 김치 가족들이랑 많이 먹고, 체력 보충해서, 다방에서 손님에게 활짝 웃고, 선거법 위반한 범죄자들 법대로 처리하고, 휴대전화기 많이 만들어 내라고 '김장 보조비'를 주는 것 아닌가?


대법원과 언론에서 자주 언급하는 '법리상' 논거도, 대법원 자체 판결의 역사를 보면, 아직까지도 '임금'에 대한 개념 규정, 통상임금 regular wage 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임금을 주어진 노동과정에서 '노동의 댓가'라고 볼 것이냐? 아니면  한 노동력의 소비와 재생산 비용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임금'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월급,연봉 등 임금량의 크기 증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명목 가계 소득은 25% 증가했지만, 실질 소득의 경우는 10% 감소할 수도 있다. 총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중요한 변수이기도 하다




(통상임금은 보통 1시간당 얼마=시급으로 환산되는 모든 노동력의 비용을 의미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법은 그 의미를 애매하고 모호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에는 이 시급 크기가 적고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자본축적 방식에 있다.) 


점심값은 노동의 댓가인가? 노동력 재생산, 사용의 댓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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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글: 김기덕 변호사 페이스북 





(한국 노동법상 역사적인 공개 토론회가 대법원 주최로, 2013년 9월 5일 열렸다. 노동자측 대리 변호인 김기덕. ) 


(12월 20일 페이스북: 김기덕 )


선고가 있은지 3일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는 통상임금 대법원전원합의체판결 선고의 날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날에서 멀어져가지 않고 판결 선고일에 멈춰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통상임금이 무엇인지 그 개념요소들, 소정근로의 대가,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의미를 분명히 정리하고자 했다. 
그래야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할 수가 있을테니. 

그런데 대법원은 그 개념요소를 더듬다 만지게 된 그 개념의 파편으로 그 개념을 정의하고 통상임금이라 선언해버렸다. 

이번 판결은 정기상여금을 포함해주고, 복리후생명목 임금을 제외시켰다. 

지급일 등 특정시점에 재직중인 자에게만 지급해온 휴가비, 명절선물비, 김장비 등은 그 시점까지 재직할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이 퇴직하는 자에게 일할계산해서 지급하지 않으면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이 아니고 소정근로외 추가 조건 성취를 조건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라서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을 근로일에 비례해서 지급하는 임금에 한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무슨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이 근로일에 비례한 임금만이란 말인가. 

소정근로는 일단위만이 아니고 일, 주, 월, 연 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소정근로는 법정근로내에서 당사자간에 근로하기로 정한 근로(시간)이다. 

그리고 그 소정근로를 모두 하는 경우에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말고도 그 소정근로의 일부를 하는 경우에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도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고 통상임금이다. 

그러니 일, 주, 월, 연의 소정근로를 다하지 않아도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은 소정근로 대가 임금인 것이고 통상임금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시기까지 근무해서 실제로 그것을 지급받았는지는 통상임금 여부를 좌우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일의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는 임금으로 통상임금을 파악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다.

통상임금, 임금, 근로시간, 소정근로시간 등에 관한 노동법 이해가 부족해서 정말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동안 준비서면과 공개변론에서 이걸 말했건만 내가 사족으로 덧붙인 말, 소정근로를 다하면 지급하고 그 소정근로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 근로일, 근로시간에 비례해서 감액하여 지급하면 그것도 일, 시로 파악된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임금이라고 했던 말만 받아서 그걸로 소정근로의 대가니 고정성이니 통상임금을 정의해서 통상임금 전체를 규정짓고 말았다. 

이런 대법원을 두고서 굳이 소정근로만 파악하고 총근로를 누락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라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정말 통상임금 개념에 관한 이같은 대법원의 오류는 너무 한심해서 분노마저 치민다.

 이런 대법원을 두고 내가 이번 기회에 통상임금 법리를 판례로 세워내보겠다고 달려들었던 내가 바보였던 거라고 대법정에서 대법원장이 하는 판결 선고를 들으며 들었다. 

지급일 등 특정시점에 재직중인 자에게만 지급해온 휴가비, 명절선물비, 김장비 등은 그 해에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고 연의 소정근로를 다하지 않아도 지급하기로 한 임금이다. 

소정근로를 하면 당연히 지급하는 임금이다. 

여러차례 말했지만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법적 권리가 이 모양인 거는 결국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을 해석 집행해온 법원에 책임이 있다. 

단지 법원의 판결에도 못미치는 노동부 예규 행정해석으로 인해서 법원이 노동자권리의 수호자인 것처럼 그 동안 통상임금사건 판결에서 보였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포함된다고 해준 걸 망각한 비난이라고 비난할 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비난하더라도 나는 이번 판결에 대한 내 비난을 조금도 철회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판결을 더 떠올리게 되고 비난의 대상과 강도가 높아만 간다. 
그리고 나도 신의칙으로 한마디하겠다. 

그 동안 이십년 가까이 재직중인 자에게 지급해온, 이른바 복리후생명목 임금을 통상임금이라고 반복해서 판결해온 대법원에 따라 보장되고 그리 알아온 노동자의 신뢰를 침해한 데에 대해서 대법원은 어떤 신의칙위배의 책임을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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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2. 4. 14. 03:43

손가락에 집착하는 여인



원시


2011.11.30 20:26:565964


점심은 거의 전투적으로10분 이내로 먹고 보통 족구를 했다. 근데 그 날은 족구경기도 없고 해서, 프레스 반 빠마 아줌마랑 붕어빵을 나눠먹었다.  프레스 반에 두 명의 아줌마가 일했다. 회사 담 옆에서 빠마즘마가 준 붕어빵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자꾸 의식적으로 꼭 쥐고 있는 손, 손가락에 대해서 물었다. 뭔가 눈길이 오면 불편해 하는 기색, 그게 역력했다. 


붕어빵 씹으면서, 언제 다친거예요? 그러면서 그냥 확 물어버렸다. 프레스에 손가락이 꼈다고 한다. 말이 낀 거지, 반지끼는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이 절반 이상이 다 잘려나갔다. 제일 창피한 게, 설이나 추석 때 친척들 모였을 때, 모여서 같이 음식도 하고 요리도 해야 하는데, 손을 내놓기가 그렇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반지도 못 끼우게 되고. 사람들하고 늘 말할 때도 그 다친 손은 늘 꼭 움켜쥐게 된다고 했다. 


그 상처에도 다시 프레스 반에서 일하는 게 한편으로는 너무 아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해보였다. 어디 여자만 손이 이뻐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빠마 즘마의 손가락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가슴이  꽉 짓눌렸다. 당시 삶는 세탁기 (삼성)가 출시되어 대유행이었다. 우리 회사, 아니 그 회사는 그 삶는 세탁기 부품을 납품했다. 우린 정말 미친듯이 일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행복은 구체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행복이니까. 난 꿈책님 아들처럼 초등학교 4~6학년 때까지 학교 리틀야구 대표선수였다. 매일 5~6시간씩 야구연습을 했고, 캐쳐였기 때문에 공도 많이 던져야했다. 그래서 손가락, 손톱을 애지중지하게 관리했다. 깐에는. ... 파울 팁에 오른 손가락이나 손톱에 공이 맞거나, 타자가 공을 치고 난 후에 배트를 포수인 내 손에다 던지고 1루로 달려갈 때, ‘그 놈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이다.’ 투수 손가락 관리는 더 하다. 보험에 들 정도니까. 손가락을 다치거나 잃어버리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전쟁터에 나가 죽기도 하는 판국에 무슨 대단한 손가락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내가 빠마머리 아줌마처럼 손가락을 두개를 잃어버렸다면, 나는 그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일터에서 다치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 붕어빵 대화 이후 더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누가 사회주의가 뭐냐고, 혹은 진보적 좌파가 바라는 사회가 뭐냐고 묻는다면, ‘노동자들, 사무직이건 공장이건, 일하는 노동자들의 손가락이 아름다운 사회 (안 다치고 온전한)이다’ 라고 나는 말 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복지로, 돈으로, 산업재해 보험처리만으로 해결되거나 성취될 수 없다. 일터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개인 실수 탓이나, 기술적 결함을 지적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는다. 이런 것들은 <일터의 안전>의 다 필요조건들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작업 공정과 과정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하고, 위험요소들을 제거하는 실질적인 대책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자본과 경영주의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안전 불감증>은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태평양을 건너 와서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 해외사례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발견한 책이 애쉬포드가 쓴 [일터에서 위기: 직업과 상해: 1970: 미국 * 이 책은 미국이 68세대 이후 진보적인 시민운동이 활성화될 그런 시점에 발행됨.]이다. 


이 책에 따르면, 직업병의 숫자는 39만개이다. 2004년 민노당 10석 의원이 생겼을 때, 이재영 정책실장님에게 제안한 것들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이  <안전> - 일터,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 터전-에서 안전 문제였다. 


이 <안전> 문제는 철저히 계급차별적인, 성차별적인, 인종차별적인 주제였기 때문에, 민주당과 같은 리버럴리스트에게 맡겨놓을 수 없다. 임금인상, 해고반대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바로 이 ‘상처’ 문제,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는 문제이다. 



진보신당 2011년 11월 30일. 일터와 생활터전에서 <안전> 문제를 다룰 정책실 근무자가 0명이다. 


사업의 연속성도 없고, 축적된 결과물도 없다. 당원 숫자는 1만 3천명, 2002년 상반기 국회의원 0석이던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당력이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 나가야할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회사를 경영하고, 자주관리하고등등,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일터에서 <안전> 생활터전에서 <안전> 문제는 당장 선거 투표 전략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등등… 실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의 문제도 이런 <안전>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보신당 당원들, 그리고 당원이 아니더라도, 회사, 공장, 식당 (*식당의 부상, 산재 종류도 1천가지는 넘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안전>과 노동과정이라는 주제로, 진보신당 중앙당에서 발표회를 1년에 정기적으로 하는 날은 올 수 있을까?


난 솔직이 아직도 왜 여성들이 반지 만드는 것을 배우러 다니고 (*그런 소규모 모임이 동네에 꽤 있음) 링 같은 것에 관심있는지, 잘 모르는 무딘 감각의 숫컷이다. 


그러나 적어도 봉숭아 물을 손톱에 들이건, 매니큐어를 바르건, 자기 미적 감각을 손가락에 실천하는 분들의 취미와 기호는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것도 일종의 자아 정체성이니까. 요새도 삼성 삶는 세탁기가 유행인지 모르겠다. 


가끔씩 빨래하다 세탁기를 보면 그 빠마 아줌마의 움츠린 손이 생각난다. 세탁기 하나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니까. 




1. 출처: '시한부 1년', 80년생 윤정씨에게 삼성반도체란… - 프레시안 



http://bit.ly/rA6H2F






 


2. 1960년대-70년대 소위 '68세대',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반전 데모 등의 진보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일터 안전에 대한 법률과 조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1980년대 공화당 레이건 정부 등장으로 노동조합과 노동권은 무시되기 시작했다. 




애쉬포드가 쓴 <일터에서 위기: 직업병과 상해>  1970년. 

Nicholas A. Ashford "Crisis in the Workplace : Occupational Disease and Injury 1970"

  








3. 목차 








4. 목차 2 








5. 매일 매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리들의 노동 현장, 일터에서 <안전>에 대한 정치, 이것 역시 중요한 정치투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몸에 대한 존중. 손가락, 발가락, 손 톱 하나라도 너무 쉽게 "엄살부리지 말어" 이런 문화가 우리 의식을 지배해서는 안된다. 그것 역시 자본과 지배자 권력 동맹체의 노동자와 시민들의 통제 전략이다. 






 



댓글2011.11.30 20:34:08

mike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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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1.12.01 01:49:01

518

(추천 수: 1 / 0)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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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1.12.01 02:19:29

손찬송

"엄살 부리지 마라" 참 짜증나는 말입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하다는 것은 참 짜증나는 일입니다. 귀농해서 제일 신경썼던 부분이 바로 몸관리였습니다. 체력이 꽝인 내가 열심히 한다고 무리하다간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 민폐이기도 하고 내 몸은 내가 더 잘 하는데 오버해서 다치면 큰 손해죠. 일 시작하기 전에 늘 야기 했었습니다. 못하는 것 안하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야기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노동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지금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어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과연 지금처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당근 자신없습니다. 일터에서의 산업재해에 대해 당 차원에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 할일이 참 많아요.


 


여튼 좋은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원시동지 보구 싶다. 아리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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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14:52:01



원시


몸 다치지 않게 즐거운 농사^^!! 화이팅!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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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1. 9. 21. 11:05

(잠시 떠오르다) 어떤 한 표어

원시

http://www.newjinbo.org/xe/1053033


2011.02.17 18:08:092913


<은평지역 노동생활 실태조사>를 읽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게 되다. 


구로공단역은 늘 복잡했다. 지하철에다 그 밑으로는 차들이 많이 다녔다. “다음 정차할 역은 구로공단 구로공단역입니다. 띠로로록”  지금도 이 목소리가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기억한다. 그런데 가끔 공간이나 팻말 이런 것들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왼편에 큰 회사가 하나 있었다. 그  공장 겉벽은 색바랜 녹색 칠이었는데, 그 위에 커다랗게, 표어가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처음 그 표어를 보고 놀랬다. 아니 의분이 동시에 일었다. 표어는 학교 건물에나 <반공> <방첩> 혹은 <조국 통일> 이렇게 씌여져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굴뚝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는 공장 건물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이런 구호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분노 그 자체였다.


 '이렇게 처박아 놓고서'  


회사에서 가장 일 잘 하는 손주임,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그렇게 부러워했던 전문대 나온 이대리도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회사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보다는, 실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밤 9시, 10시까지 잔업을 하고, 토요일도 격주로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일요일도 200% 수당 때문에 한 달에 2회는 일하는 현실이고, 그야말로 여기 회사 사람들은 다 일하는 기계들인데, 이 사람들더러 조국 근대화 초석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고 같이 자란 친구들, 선후배들, 삼촌 고모뻘되는 사람들이 1공단, 2공단, 3공단을 꽉 채우고 있었다.

 8시 56분, 57분 출근표 촬콱 굉음과 더불어. ‘서울가서 돈 벌어 온다더니’, 그들이 다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표어를 보고,  속으로 ‘여기다 다 처 몰아넣어 놨구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서울에 오게 된 동기 자체가 계급적인 것인데, 표어는 애국주의였다. 


매일 출퇴근 길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표어와 마주쳤다. 이 표어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 해석도 해보게 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그러니까,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산업역군이고 수출 일꾼이다. 그 힘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러니까 그걸 한국의 자본이나 경영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게 애국주의 고취, 전시 자본주의 선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냥 진실을 그들도 엉겹결에 이야기해버린 것이다. 동원의 수단이었는데, 진실을 말해 버린 셈이다. 


여기에 있는 중소기업 자본가들도, 경영자들도, 국가도, 또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데도 샤워기 시설도 없는 (우리회사 같은 경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어느 누구도 박수치면서 아 ‘저 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는 말을 하지도 믿지도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그게 진실이라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적인 명령어나,  “인간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노동이다” 이런 문장처럼, 부인하기 힘든 그런 말이 되었다. 


 일당 16800원(시급 2400), 복만이형 같은 기술자는 3만원까지도 받았다. 만이 형이 참 부러웠다. 선반기술이 있어서 나보다 땀을 덜 흘리고 돈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땀은 많이 흘렸는데, 씻는 곳은 좁다란 부엌, 세수대야 놓고, 비누 하나에 그 많은 사람들이 퇴근 전에 손만 씻었다. 샤워실도 없었다. 땀 방울들을 씻어낼.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축구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럴 때, 엄청 큰 이야기 “조국 근대화”, 심지어 “민주화” “ OO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후로는, 그 표어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그 표어에 물음표를 붙였다가, 느낌표를 붙여보기도 했다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고 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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