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2020. 1. 5. 01:37

핵심 단어: 삶의 질과 행복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가? 문제이고, 이를 진단하고 실천할 정치적 주체인 정당 정치가 아직도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국 시민들이 정치 참여와 관심 수준은 높지만, 이를 제도화시키고 법제화를 시킬 수 있는 '국회'는 1948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정책이 아직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발의되지 못한 탓도 크다. 이는 연구자들이 지역 주민들과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대화나 소통이 충분치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56022


‘성장률’ vs ‘삶의 질’…기로에 선 경제정책




입력 2020.01.04 (21:08)수정 2020.01.04 (22:00)뉴스 9


[앵커]


신년 기획으로 연속 보도 중인 2020 경제전망 순서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성장률, 물가, 국민소득과 같은 주요 경제 지표를 분석하고 예측해 봤는데, 사실 이 지표들이 꼭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죠.


숫자보다 중요하지만 쉽사리 잡히지 않는 삶의 가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내실있는 성장을 위해 정책 입안자들이 꼭 살펴야 할 과제들, 서영민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인구 5천만 이상 국가는 이렇게 단 7개 뿐입니다.





급속한 성장을 통해 70년대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뿌듯한 경제적 성취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부문별로 쪼개 보면 어떨까요?



지난해 UN이 펴낸 인간개발 보고서의 성별 개발 지표를 살펴봤더니 남성 소득은 평균 5만 달러인데 여성은 그 절반이 안됐습니다.


성별에 따는 격차가 이렇게 크면 성취의 의미가 좀 퇴색되죠.





지역을 기준으로 한 서울수도권과 지방,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른 격차를 따져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또 우리 삶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다른 중요한 가치도 많습니다.




이걸 살펴보려고 갭마인더라는 스웨덴의 한 통계 분석 사이트 데이터로 인구 5백만 명 이상인 국민소득 상위권 20개 나라와 비교해봤습니다.


가로축은 국민소득 수준이구요 원의 크기는 인구 크기입니다.




지표별 우리나라 위치 살펴볼까요?


신체 건강인 기대수명은 평균보다 조금 낮은데 사회, 정신적 건강을 의미할 자살율 지표는 최하위입니다.




행복감과 사회 지속가능성을 의미할 출산율 역시 최하위이고, 노동시간도 다른 나라들보다 깁니다.




환경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1인당 온실가스 배출 지표가 만족스럽지 않을테고, 정치적 가치가 중요하다면 이렇게 최하위권인 부패정도가 부끄럽게 느껴지겠죠.







물론 정부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 추진하고 있지만, 긴 호흡으로 차근차는 풀어야하는 것들이어서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릴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질, 그리고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성장과 동시에 이 과제들도 반드시 풀어내야 합니다.


KBS 뉴스 서영민입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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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12019. 1. 26. 17:57

2011.01.12 14:40

아버지가 이룩한 경제성장, 이제 이 박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

원시 조회 수 659 댓글 0 ?

2012년 총선, 대선, 그리고 "살아남기" 전략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안이 나오고 있다. 여의도 정가, KBS, MBC, 한겨레, 경향신문등 나름대로 진보성향을 띤 언론들은 2012년 한나라당은 더 이상 안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언론사 기자 PD 등 진보노조원들은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조차도 파괴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명박정권,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행님 예산등)에 치를 떨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특정 직종 사람들의 주된 여론이긴 하지만. 




진보신당 일각에서 "다수파 전략을 외치면서" "진보정당들이 집권의지가 없다는 둥",  마치 자기들만이 <반-이명박>여론을 안다는 듯이 주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부푼 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2007년 진보정당의 대선 실패와 몰락이후, 3년간 진보정당들은 후퇴했고, 자기혁신의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 이명박 실정에 "반사이익"이나, "민주당에 기대어" 2010년 지방선거에 몇 석 얻기는 했다. 이걸 우리 실력에 근거해서 선거전술을 잘 짜서라고 평가하면 오산이다. 선거전술도 일관되고 세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전술, 선거법 개정 등은 이제 엄두도 못내고 있다. <민주당>과의 타협안으로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프랑스처럼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나 그에 준하는 선거제도도 <민주당>과의 협상안으로 내보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건설하고자 했던 당의 직무유기이다. <선거법> 개정을 외치는 일부 진보적인 정치학자들도 있다. 이들을 앞세워 100만 서명운동, 1천만 서명운동이라도 3년 내내, 5년내내 벌어야 한다. 




총선, 대선 드라마를 꿈꾸고 있지만, 현재 한나라당이 친이-친박 세력의 분열이 없는한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회창-이인제 3파전으로 전개되어, 이인제가 이회창 표를 깎아 먹고, 김대중-김종필 연합이 승리를 거둔 상황), 박근혜 후보를 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에 대한 과대포장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아버지가 이룩한 경제성장, 이제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 이 구호는 박근혜 지지층과 보수한나라당 핵심세력들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게 39%~42%이다. (노무현 정부의 혁혁한 공헌은 34%의 한나라당 핵심층을 39~40%로 끌어올린데 있다) 




물론 변수가 있다. 한국 유권자들의 "권력 균형" 투표 현상이 그것이다. 2012년 대선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크게 이길 경우 (과반수를 넘어서서 180석을 넘길 경우), 유권자의 견제심리가 발동해서, 2012년 대선에서는 오히려 한나라당을 견제하려는 투표심리가 분명히 작동할 것이다. 




진보정당들 2012년에 20석을 넘겨서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지 못한다면, 2011년 현재 진행순서가 잘못된 통합/새 당 건설 조차도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그리고 민노당이 가지고 있는 4% 기득권, 진보신당 1.8~2% 기득권, 사회당(?) 이걸 버리지 않는다면, 20석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은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임종인의 사례를 보라 


 (http://www.newjinbo.org/xe/890977 )  이게 현재 한국정치의 역학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 당장에 당선되려면 <민주당> 깃발을 꽂아서 유리한 쪽으로 가는 것이다. 비-민주당, 반-한나라당을 결집하자? 이런 구호는 국참당 실세들도 외치지 않는다. 왜냐? 청와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네가티브는 안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참당과의 통합을 외치는 분들은, 제 멋대로 이해한 <모리스 두베르제>가 말한 3가지 "선거체계와 정당체계"의 관계들 중에, 1번째, "국참당은 사라질 운명이고, 민주당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국참당 유시민씨에게 열변을 토해야,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이다.http://www.newjinbo.org/xe/951656 




민노당, 사회당, 민주노동당, 민노총, 진보교연, 제 사회단체들의 자기 반성없이, 또 현재 가지고 있는 나름 "도덕적 정당에 근거한 기득권 심리", 실제 정치적 기득권들을 버리지 못한다면, "올드 보이, 올드 걸들의 귀환"의 드라마, 수지타산에 실패한 드라마가 탄생될 것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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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2018. 1. 9. 20:53


87년 6.10과, 2010년 6.10의 차이 - 노트   2010.06.10 16:48

 원시 -

  

달력을 보니까 오늘이 1987년 6월 10일, 6-10 항쟁 23주년이더군요.  당원들은 6월 10일에 뭐를 하셨을까? 궁금한데요.

 

87년 6월 10일에 말입니다.

 

6-10 항쟁,실은 진보정당에서 중요하게 재해석하고 그래야 하는데, 저번 광주 항쟁 30주년 때도 아쉬웠는데요,

역사적 시간이라는게, 참 무섭게 흘러갑니다.

 

1950년 한국전쟁, 1980년 광주항쟁, 그리고 2010년  이렇게 30년이라는 세월이 들어가 있는데, 왜 이렇게 한국전쟁부터 80년 광주까지 30년은 엄청 긴 역사같은데, 80년 광주부터 2010년까지는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50년-53년 전쟁이, 이념과 체제, 냉전, 희생, 상처, 제국주의와 식민지, 복수의식을 남겼다면,

80년 광주는 민주적 공동체와 제국주의의 재발견, 그리고 좌익의 복원이라는 계기를 남겼는데,

2010년은 우리에게 어떤 정치사의 의미를 남겼을까?

 

       1) 저는 시대정신으로 고르라면, "한국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쓴 맛을 제대로 보고, 그 논리에 순치당하고 있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당시 한국사람들 자산 가치가 국제시장에서 50%으로 폭락했으니까, 사람들이 제 정신이었겠습니까?  내 돈 1만원이 IMF 폭탄맞고 5천원으로 변했으니, " 국민들이 제 정신이겠습니까? 눈알이 다 뒤집어지죠"

  2010년 지금도 97년 충격이 일상생활에서 채 가시지 않고 다양한 형식들로 남아있다고 봅니다.

 

       2) 아니러니하지만, 한국 정치사 남북한 다 포함해서, 이번 천암함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50년-53년 미국 U.S.A라는 존재, 80년 광주 (군사파쇼의 재등장과 미국에 대한 인식 전환과 좌파의 복원), 97년 IMF 위원회와 결정사항에 "비토"권한을 지닌 미국이 한국자본주의에 제동을 걸고 "냉전의 쇼 윈도우"로서 포지션을 박탈한 사건, 이제 더이상 한국자본주의와 정부에 미국이 던져줄 떡고물은 없고, 한국도 내 놓을 것은 내놔야 한다는 냉엄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게임법칙이 한국 시민사회에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6.10 항쟁, 87년, 길거리에서 맨주먹, 화염병, 돌로 눈에 보이는 파쇼의 똥개(방패막이) 전경/백골단들과 육박전을 벌이면서,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주의" - 독재타도 호헌철폐, 최루탄을 쏘지마라, 이한열을 살려내라"를 외치던 시민들, 학생들, 노동자들... 그 이후 10년이 지난 후, 한국전쟁 이후,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그나마 최고로 급속도로 향유하던 "10년의 세월 (87년-96년사이)"을 보냈다. 

 

     97년 IMF 외환위기 원인분석: 대외적인 요소들과 대내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당시 한국주류언론에서 다루던 한보철강-제일은행-김현철 관치금융 및 제 2 금융권들의 무분별한 외자 도입 등이 IMF 외환위기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소위 와싱턴 컨센서스를 고려했을 때, 해외초국적 자본,특히 미국의 금융자본과 미 행정부의 한국자본시장에 대한 공격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미국이 일본은행들에게 한국의 제 2금융권들의 빚 상환 독촉을 강요했고, 당시 태국 바트화의 투매현상으로 대부자로서 일본은행은 한국채무자들을 봐줄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 배후로는 미국 행정부가 있었다.

 

      와싱턴 컨센서스 보고서 각본에 따르면, 97년 한국 대선시기를 틈타, 대선 후보들이 IMF의 가장 혹독한 (austere) 정책들

 (고금리, BIS기준강화, 노조 무력화, 노동유연화 강압, M&A 법 개정, 해외투기자본 자유화, 한국상업은행의 미국화 등)을 강제로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이건 음모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현실정치였다. 


이 결과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실업자들과 구조조정에서 패배자된 사람들로 민심은 피폐해지고 가정조차도 파괴되는 현상들이 늘어났다.



 

     4) [중간 삽입] 


IMF 원인들 진단에 대해서 필자 역시 98년 봄이 되어서야 비로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대학과 연구소, 사회과학(경제, 정치,사회학과, 혹은 철학과 등)은 패배감과 낭패감으로 휩싸였고, 이론적 파산선고를 당했다. 어느 누구 하나 IMF 위기가 왜 왔는지, 제대로 그 원인규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예견도 제대로 못했다. 시민단체나 민노총 등도 마찬가지상태였다.
(* 주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그나마 실천적인 투쟁으로서 가치가 있었지만,IMF 전체그림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었다)            

 

     97년 이후,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어로서 정확한 개념은 아니지만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87년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97년 이제 <경제적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라고 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좌파-진보정당에 정확한 단어는 아니다. <경제적 민주주의>야, 민주당/국참당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독일,캐나다,영국 등 보수당들도 <경제적 민주주의 >, 즉 사회복지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

 

      좌파-진보당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 성격을 바꿔놓은 "어메리칸 스탠다드: 속칭 글로벌 스탠다드"와, 국내적으로 "사적 소유 재산권 (땅, 빌딩, 집, 주식, 금융자산 등)" 을 떠받치는 법률체계(민법)와 게임을 벌여야 한다.


 게임이라고 함은, 87년 체제가 만들어놓은 (불가피하게도)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 게임규칙 속에서 게임을 벌여야 한다는것이다. 



 

     5)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던데, 아주 쉽게 말하면, 현행 대한민국의 "사적 소유 재산권, 자산"에 대한 반성적 해체 및 재구성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사적인 재산권을 세밀하게 다시 분해해서, 시민들의 자아실현, 자유와 평등, 인권과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금의 정치학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두번째는 노동소득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줄이고 완화시켜야 한다.

      

 조금 단순화를 시키자면 "삶의 터전"을 자유와 평등의 터전으로, 우리들의 행복의 터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1) 일 터  (2) 놀이 터 (3) 쉼 터 (4) 집 터 

 

이러한 삶의 터전들을 우리들이 내세우는 삶의 지표나, 정치철학이 실현되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게, 추상적으로 이름 붙이자면, 21세기 좌파가 이뤄내야 할 자유,평등, 연대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6) 다시 조금 97년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일상 생활, 이 삶의 터전을 보자. 한국은 50년 한국전쟁 이후, 97년-2007년 사이 (그리고 지금까지), 일상사에서 민심이 가장 흉악스럽게 변했다. 


위에서 말한대로, 97년 IMF 위기는 한국사람들에게 "자기 자산 가치가 50%로 깎이는 국제자본질서의 매운 맛을 봤기에" "자본주의 질서와 원리를 자기 몸으로 내재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국가가 "자본축적을 위해 저축을 강요하지 않아도" 이제 87년 데모하던 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식투자 (이제 도덕적인 선악 판단이 아니다)" "재테크" "땅투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고,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는 가치관들을 가지게 되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어메리칸 스탠다드" 자본주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고, 일상생활에서 "어메리칸 스탠다드"를 쫓기 위해서 필수적인 "영어 광풍"이 5천만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에 "불안과 걱정" "열등감과 우월감"의 코드로 남겼다.

   

  7)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위에서 말한 "삶의 터전"에서 우리 한국사람들은 문화가 없거나 박탈당하고 있다. 하이데거 말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 =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라는 의미인데, 한국인들에게는 밥먹고, 타인에게 우월감을 느끼기거나 열패감을 감추기 위한 "계급 계층 상승"의 영어가 "우리들 존재의 집 = 삶의 터전"을 갉아먹고 있다.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쉼 터, 놀이 터, 집 터 역시, 97년 이전과 현격히 구별되는 "있는 자" 대 "없는 자"로 갈라져 있다.

 

이런 사회 균열과 계급계층화를 조각해오고, 조장해 온 정치 집단은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 MB 하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 노무현 회상" 이라고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철저하게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돈과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 노골적으로 조금 더 거친 방식으로 무식하게 전개되고 있다.



 

   8) 진보정당, 이러한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에 기초한 정치활동, 제대로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삶의 터전에 대해서 "돈과 자본의 논리"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삶의 터전 (예를들어서 도시 계획 urban planning)에 대한 철저 연구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데모, 촛불시위, 반-MB 그건 "삶의 터전"의 일부이고,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제는 우리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없이는 정치운동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감동도 실제적인 도움이나 문제해결도 줄 수 없다. 잣대를 들고, 측량기를 매고, 현미경을 들고, 수도 계량기를 가지고, 자기 삶의 터전(일터, 쉼터, 놀이터, 집 터)를 연구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 사이 우정, 가족들의 유대감, 연인들끼리 사랑, 이웃간의 애정과 존중을 파괴하고 왜곡시키는 "돈과 자본, 부당한 권력과 술수들의 복합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삶의 터전에서 작동해야할 삶의 원리들 (우정, 유대감, 연대감, 사랑, 애정, 존중 등)을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9) 87년 6월 항쟁, 당시는 적이 단일했고, 단순했고 선명했다. 그러나 그 이후,그리고 97년 이후는 적들은 분화되었고, 우리 삶의 터전에서 세균처럼 우글우글 체세포 분열을 하고 있다.   길거리 데모, 촛불시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로 이 체세포 분열하는 분화하는 정치적 적들을 박멸할 수 없다.

 

 10)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없이, 진보정치 좌파정치 불가능하다.

    4만 유권자면, 1만 가구 (household)이다. 유권자들 이름을 다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삶의 터전이 무엇인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기록하고 받아 적어야 한다.

      요새 "민심이 당심에 선행하고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현대 사회과학이나 현대정치에서 "민심"은 철저한 "삶의 터전"의 조사에서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과연 진보정당에서 정치하면서, 자기 동네 삶의 터전들에 대한 "지도 map"이라도 제대로 작성된 게 있나? 


     진보신당 6.2 선거에서 기초의원 15명 중에서, 재선에 성공한 사람이 8명이다. "당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는 게 더 중요하다. 박정희가 18년 정치해서, 지금도 보수유권자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4년은 부족하다. 적어도 10년은 해야 정치적 성과가 나오니까.

 

   진보신당 온라인, 오프라인 정치, 정치적 본질과 정치가로서 임무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당심이니 민심이니" 아직 논할 수준도 안된다.

 

나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남는 좌파를 가르켜, "원천 핵심 기술 보유자"라고 할 것이다.  "연합정치"는 그 다음이다.

정치하면서 "연합정치" 안하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말도 안되는 이분법으로 택도 아닌 논리학으로 "진보신당이 연합정치를 모른다?"고 할 시기가 아니다. 무슨 좌파 정치라도 제대로 해봤나? 87년 길거리 데모 말고, "삶의 터전"에서 적어도 4가지 터전에서 (일터, 쉼터, 놀이터, 집터)에서 좌파의 정치적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했는가? 그래서 민심을 획득했는가?

 

원천 핵심 기술 보유 (삶의 터전에서 좌파 정치 실천자) 없이,  떠돌이 이합집산 정치해봐야 그건, 원천 핵심 기술없이 복제만 해대고 "로열티"만 지불하던 회사랑 똑같다.

      

11)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

      97년 IMF 긴축통치 이후, 이제는 "삶의 터전"의 정치를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삶의 터전에 뿌리박힌 수많은 이해관계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법률적 이해관계들의 복잡성들을 공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 돈, 부당한 권력을 막아내고 물리칠 수 없다.

 

87년 독재타도를 위해서 길거리에서 돌, 화염병, 물통을 들었다면,

이제 "삶의 터전"에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행복, 공적 행복"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법률적 수단들을 들어야 한다. 


일터에서 재산권,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재테크 부동산 집 뉴타운 등, 쉼터에서 여가문화와 관련된 모든 사회제도들, 놀이터에서 문화, 예술, 스포츠 활동들과 그 사회적 기반시설과 계급계층 차별 해소 등......

 

87년과 대비해서,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분화되었고, 수십가지 수백가지인데, 자꾸 역사적인 퇴행을 부추기는 세력들 (진보정당 내부에 관성적이고 교조적이고, 또 무원칙적인 제 멋대로 진보들 등등: 87 민주화만이 자기네들 정통 민주화라고 외치는 민주당세력들; 민주화와는 담쌓고 지내는 한나라당)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Comments '3'

로자 ★ 2010.06.10 16:57

후아~` 밥 딜란이다. 냉커피와 함께 딱이네요. 얼음을 우두둑


 댓글


파애 2010.06.10 17:44

87년에 관련된 기억이 하나 있어요. 6월10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그해 여름에 최루탄이 많이 날아다녔던 기억이 있으니까(군산에서도!!) 아마 맞을 겁니다.

전 그때 초등학교 3학년 꼬꼼화 였는데

저희가 살던집은 드르륵 여는 미닫이문만 달린 일본식가옥이었죠.

군산에는 대문도 없이 미닫이문만 있는 집들이 지금도 꽤 남아 있어요.


자려고 하는데 밖에서 사람들 뛰는 소리 빵빵 하는 소리가 막 나더니

아직 잠그지 않았던 저희집 미닫이문을 누가 열고 들어오는 거에요.

너무 거리낌 없이 들어와서 전 아빠 친구나 누구인줄 알았는데

시위대중 한명이었습니다. 

하얀 마스크를 하고 비쩍 마른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컵라면에 끓는 물을 좀 부어 달라고 청하더라고요.

그리고 내민 사발면.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엄마가 황급히 부엌으로 물 끓이러 들어가고 아빠는 그분더러 대청마루(일본식집이라 어른 허벅지 정도 올라오는 마루가 있었어요)에 앉아서 쉬라고 하고 물도 한잔 따라주고 그랬던거 같아요.


전 방문에 뚫린 유리창문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죠.엄마가 내오신 김치랑 라면을 먹더니 그분은 다시 마스크를 올리고 조심조심 밖을 살피더니 불꺼진 거리를 뛰어서 어디론가 갔습니다.


제게 87년 6월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집에 올때마다 늘 매캐하게 코를 찌르던 최루탄 냄새.

노XX가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다는 말을 담임샘께 했더니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제 입을 막았던 것도 기억나요. ㅋ


 댓글

원시 2010.06.11 00:41

군산이 정말 오래된 도시죠...일제시대 호남평야 쌀을 일본으로 만주로 실어나르는 "항구도시"였으니까, 일본식 집 하니까 생각나네요. 역사가 돌고 돌아서, 다시 해주 - 개성 - 인천  - 군산 - 목포 이런 서해안 항구도시들이 이제는 "뱅기 공항"이랑 같이 들어서겠지만... 앞으로 한 100년 안에는 엄청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노태우가 대통령되면 나라가 망한다"고...어렸을 때부터 푸른싹이 있었네요^^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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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6:51

2013.07.12 00:50


[당명제안, 평화노동당 해제2] 


노동(1)이란 신분차별 혁파의 무기로 거듭나야 한다


원시 조회 수 520 댓글 5



평화노동당 당명 안건으로 발의하려고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의견 주세요.


평화노동당 당명 해제 (2) 노동이 갖는 정치적 의미와 우리의 임무


87년 체제와 97년 이후 차이 -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우리는 노동과 직업을 둘러싼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적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97년 IMF 통치 이후, 한국식 자본주의는 봉건적인 신분차별적 성격을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사회와 일상 생활에서는 교육제도를 매개로 사회적 지위/신분계층의 고정화, 계급계층의 고착화,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잡대, 서-연-고 IN 서울 대학, 엄친아론 등은 우리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이고, 정치적 좌절의식까지 생기게 합니다.



한국 교육제도는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고, 노-노 갈등을 정치경제 문화적으로 분열하고 조장하고 있습니다.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87년과 같은 민주노조 운동을 통해서 계급의식의 생기거나 노동자의 단결의식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단체협약이 동일 업종에 적용가능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노-노 갈등이나 상대적 박탈감이 조장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산업구성에서도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고용이 많은 직종이 ‘상점 점원 (알바등)’입니다. 제조업 고용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고, 한진 조선업의 필리핀 수빅만으로 이전과 같은 자본의 지리적 이동도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노조대로, 좌파정당은 정당대로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후자에 대해서만 간단히 쓰자면, 우리는 “가난과 부의 대물림 구조” “개천에서 더 이상 용나지 않는다”는 불공정 게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담론과 정면으로 싸워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노동소득’으로 행복추구가 가능하고 자아실현 및 가족 부양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 숫자는 97년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자본주의 자본축적의 원리(이윤의 극대화)를 자기 가치관으로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내재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동산 자산, 금융 자산이 없는 사람들도 역시 ‘노동 소득의 종말’ 이데올로기에 동참하고 있고, 시민사회의 보수화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 소득’의 문제, 분배영역에서 정치 윤리학의 붕괴 현상을 우리 좌파가 먼저 제기해야 합니다.


노동 담론의 복원과 신분차별 혁파의 무기로 나아가야


2000년 이후, 한국 진보정당에서 전 사회적으로, 혹은 민주당과 보수당과의 경쟁에서 문제제기한 주제들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2002년 민주노동당의 경우: 재분배 (re-distribution) 즉, 세금의 정치학 (부유세등)을 가지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새누리당)과 경쟁했습니다. 그 자체로 정치적인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재분배 세금 정치학도 제대로 세련되게 발전시키지 못했고, 2004-2008년 노무현 정권 기간에, 노-노 갈등을 부추기고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노동 소득 분배(income distribution)의 정치 역시 성공적으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자본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그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현행법에 의거한 소유권의 문제: 1) 생산체제에 대한 비판, 2) 선진금융기법과 앵글로색슨식의 금융화 이윤산출방식 비판, 3) 노동소득에 대한 전사회적인 경시 풍조, 회의주의적 태도, 그것들을 조장하는 정치제도, 법률, 정당 등 사회세력에 대한 비판과 직접 행동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물론 소득 재분배, 소득 분배, 생산 영역에서 생산수단과 소유권 그 순서를 일률적으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노동 과정과 노동 소득만 언급하자면, 월급과 연봉 문화로 대표되는 분배 문제에, 그리고 신분 차별을 강화하고 조장하는 소득 차별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합니다. 대학개혁 역시 이 분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by 김유선.jpg 


(출처: 김유선 연구원 : http://iminju.tistory.com/1094 )


아주 단순하게 1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직장인들에게 (학교 교사나 교수,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없이) 가장 중요한 맥주집 소주집 소맥집 치킨집 화두는 “연봉과 승진” + “정년” 입니다.


여론의 1차적 작업은 “소득 차별”을 줄이자가 아니라, “소득 차별의 정당화”에 대해서 묻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득차별’ 해소 문제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자기 직장에서 바로 위 상사와 얼마나 적게 받아야 안심/만족, 혹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가?”이렇게 대중들에게 물어야 하고 여론전에 임해야 합니다.


좌파의 정치적 행위의 출발점은 대중들의 의식과의 교류라고 봅니다.


노동소득의 무효화 시대, 즉 땅이나 부동산, 주 채권 펀드 등 금융자산이 없으면 '안심‘이 되지 않거나 ’중산층 (10억 현금 보유)‘이 되지 못하는 이 노동소득의 무시 시대에, “노동 소득” 문제의 정치화는 2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 한국정치체제 (리버럴 데모크라시= 자유-민주주의)에서 노동소득과 관련된 ‘정의’ 문제를 좌파적 시각에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고, 노동과 관련된 정치적 주제들을 내걸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더 공론화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도 “노동 소득의 차별”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접근하는데는 지니계수, 로렌쯔 커브 (Lorenz Curve), 1인당 GNP와 중간값(median) 중위소득의 차이 문제, 노동소득과 자산소득의 비율 (서울과 지방도시 비교 등) 등 소위 케인지안과 제도학파들을 쓰는 주제들을 좌파적으로 해석하고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소위 개량과 혁명의 접합지점을 우리가 먼저 형성해내야 합니다.



한국정치사에서 “소득 차별” 문제는 방치된 정치적 주제입니다. 2002년에 “세금의 정치학” 문제가, 1945-1975년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체제의 황금기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세금”제도가 한국 정치사에서는 “경제성장과 독재타도” 화두 때문에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득 차별 문제가 지연된 정치 투쟁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소결


그래서 저는 우리가 지금 한국 시민사회에 노골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의 가치들과 정면으로 맞서고, "부자 DNA는 없다"는 슬로건을 외쳐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빈곤(the working poor: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문제에 대해서,노동소득으로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는 대한민국 스타일 자본주의를 고발,직접적으로 비판해야 합니다. 이들이 우리 당원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올해 초반 남양유업 갑/을 담론부터, 재벌 2세, 3세들의 동네 빵가게, 수퍼마켓, 식당 독식에 대한 전 국민적인 분노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식칼 테러의 책임자 현대 정주영에 대해서는 하다못해 창업주라는 레테르를 붙여주지만, 그 이후 재벌 2세, 3세들에 대해서는 '부모 잘 만난 것 빼고,' 당신들이 사회에 기여한 게 뭐냐? 삼성 이재용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CB) 사건 승소 “무전 유죄, 유전 무죄”에 대한 공분. SK 최태원의 금융 파생상품 투자 손실 이후 회사돈 회계 분식 등에 대해서 시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 담론의 부활이 필요한 시점이고, 보다 더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노동이 신분차별을 강화시키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혁파할 수 있도록, 노동담론의 부활과 이데올로기 투쟁의 재점화를 시도해야 해야 합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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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원시

◎ 2001/3/30(금)

박정희가 라면 값을 통제한 이유


한국인은 경제적 동물이 아니라, 정치적 동물이다.

한국인은 경제적 동물이 아니라, 정치적 동물이고, 한국의 근대화의 주인공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자들이다.


1. 왜 박정희는 라면값을 통제했는가 ?


뉴라이트 하XX의 주장을 거칠게 주관적으로 요약하자면,


1) 박정희 국가 주도적 경제발전 전략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케인주의적 경제의 결합" 이다.

2)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한 총체적 대안 (박정희 모델의 극복까지 포함한 대안) " 경제 활동 중 민간이 할 수 있는 있는 부분은 민간에게 점진적으로 다 넘겨주고, 정 부는 민간이 할 수 없는 경제영역만 담당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 책은 전체적으로 옳다.

3) 정치적 평가: 지금은 박정희를 필두로 한 "개발 독재파(점진적 민주화론자)"와 "민주파 (급진적 민주화론자)"가 화해와 상생의 정치를 실현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뉴라이트 H씨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그래도 경 제는 박정희였다는 환상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 지표를 보면, 박정희 집권기간 후퇴한 적이 없다. 18년간 내내] 60년부터 80년대까지 군부 정권과의 투쟁의 전 국민적 합 의점 (야당까지 포함한)은 '형식적 일반적 민주주의' 권리들의 쟁취였다. 삼헌개헌한 것 취소 하라.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하라. 직업군인은 이제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 내용이 정치경제적으로 '사회 정의' '분배의 형평성' '평등' 이념의 구현까지 확대 심화되었는지가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서 배가 부른 다음에, '정신'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요체는 이제 어떻게 '그 배를 불리는가 ? 어떤 방식으로 배를 부르게 만 드는가 ? 그 배가 불렀다고 하는데, 진짜 배가 부른 것인가 ? 소다를 많이 쳐서 부풀린 것 은 아닌가 ?' 이런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구조에서 정의실현이라는 것은 70년 대에도 80년대에도 지금도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안이고, 법률적으로 상당 히 중요한 문제[삼성의 변칙적 재산 증여 논쟁 등]이고, 정치적 행위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 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지도력을 말하기 전에, 이러한 '배 부르는 과정'에 대한 탐구가 절실히 요청된 다.


1960년대 박정희는 원화를 평가절하, 즉 환율을 인상 (255원: 1 달러)함으로써, 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를 애초에 안착화시킨다. 생산성과 기술이 낙후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를 18년 내내 정착시켰다. 심지어 정부가 앞장서서 라면가격도 통제한 것 은 노동자의 엥겔지수가 높아지면, 임금을 인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2. 독일 차관의 담보: 재독 한인 광부와 간호사들의 월급


 1964년 박정희가 서독의 수상 에르하르트를 만나서, 공산국가의 반격을 격퇴하기 위해서 는 남한이 경제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차관을 요청했다. 이 차관을 지급 보증을 할 수 있는 국내 은행이 없어, 박정희는 서독 한국 광부, 간호사들의 월급을 담보로 돈을 빌 어 올 수 있었다. 그 재독 한국 가스트 아르바이터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독일에서 돈을 빌어 올 수 있었을까 ?



 (서독에 인력수출된 한국인 간호사들. 크루프 병원 근무자들 ) 


박정희 집권 기간 남한 경제는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10%에 육박했지만, 노동자들의 임 금 성장률은 3 %에 그쳤다. 그리고 72년 8.3 긴급조치 [사채 동결 조치]로 3분의 1의 이자 를 기업들에게 감면해 주고, 상환기간을 연장해 주는 자본주의 역사에 보기 드문 사례를 남 겼다. 이것이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케인주의적 경제의 혼합형태인가 ?


계획경제를 채택했다는 점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유사하지만, 소유권 문제는 철저히 다른 형태를 취했고, 제 1차 오일쇼크 이후 73년 박정희는 현대[탱크, 해군함정], 삼성[항공], 대우[장갑차], 삼양화확[방독 면], 한국화약 [수류탄-> 나중에 최루탄], 금성전자[통신]를 배분함으로써, 재벌을 키우기 시 작했고, 79년 유신이 끝날 무렵,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할 때, 삼성물산 대우실업과 같은 종합상사가 가장 번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유구조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케인주의적 경제정책의 핵심중에 하나는, 정부가 시장의 실패에 개입한다는 것이고, 한편으로 는 노동자의 복지 후생을 보장함으로써, 사회 갈등의 핵심을 유연화 혹은 분산시킨다는 점 이다. 그런데 박정희 집권 말기에 YH 노동자들의 데모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에서는 노동자 들의 후생복지는커녕, 실업 보험도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년간 10% 경제성장율 을 기록하면서, 어떻게 노동자들에게 3% 임금인상율을 적용시켰는가 ? 그 많은 부는 다 어 디로 갔고, 그 부를 창출하는데 적어도 일부였던 그 노동자들은 지금 다시 무엇을 얼마나 얻었고, 얼마나 '질'이 높은 배를 부여잡고 있는가 ?


3. 김대중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에 충실하고 있는가 ?


2001년 3월 20일자 [한겨레 21] 경제란을 보면, "현대그룹 채권단이 지난 3월10일 긴급회 의를 열어 마련한 현대건설 등 현대계열 3사에 대한 지원 내용은 대략 이렇다. ‘현대전자 에 대해 14억5천만달의 수출환어음(DA)과 5억3천만달러의 수입신용장(L/C) 한도 사용을 연 말까지 보장해준다.


또 현대전자의 일반성 여신(일반자금대출, 당좌대출, 수출입금융) 3천여 억원도 만기도래 때 1년 연장한다. 현대건설에 대해선 건설업 특성상 동절기중 발생한 자금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은행에서 해외지급보증 4억달러를 지원한다.


또 현대석유화학에 는 올해 6월까지 만기도래하는 시설자금 대출 등의 여신을 6개월간 연장하고 부동산을 담보 로 1150억원의 신규자금을 6개월간 지원한다.’"


경제는 단순히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만약 현대가 다시 부도날 경우, 중소기업은 연쇄 부도를 낳고, 4-5만의 노동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어 사회불안 세력이 된다. 그리고 현재 금융구조 조정이나 은행의 인수합병 조치 역시, 부총리 진념의 진두지휘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의 활성화 유도에 대해서 간단히 질문을 던진다. 그것과 차입경영과 차이가 무엇인가 ?


거시 경제에서 외국인의 직접투자와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금융권에서 돈을 빌어 오는 것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 소유권의 문제인가 ? 효율성의 문제인가 ? 자기자본비율의 문제인가 ? 민족 자본 대 해외자본의 문제인가 ? 재벌을 견제한다고 하는데 ? 딜레마에 봉 착하는데요 ? 대우 자동차를 해외에 매각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전망에서 옳은가 ? 좋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 거시적 경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가 ? 경제 문제가 정치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할 때, 정치주권이 보장될 수 있는가 ? 


4. 새마을 운동의 후과 계량분석, 정량 분석 방법을 동원한다면, 박정희 집권 이래로 지금까지 농민들이 얼마나 손해를 보고 살았는지, 그 액수를 추정할 수 있는가 ?


'부채 탕감'으로 대표되는 농촌 문제 는 아직까지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 새마을 운동을 해서, 결국에는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농민들이 왜 아직도 빚에 허덕이고, 가슴 졸이고 살아야 하고, 국회선거 할 때마다, 대통령 선거할 때마다, 그 놈의 빚 갚아준다는 소리 없는가를 귀기울이고 살아야 하는가 ?


"하면된다"드만, 농민들은 "해도안되는" 제 2류, 3류 국민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에 서 파 심으라고, 파 심으면 돈 번다고 파 심으면, 파 값이 똥값이 되고, 이번에는 "뽕나무다 뽕나무" 그러면, 뽕은 어뚱한 놈이 다 따먹고, "그냥 파가 아니라, 양파다 양파" 해서 양파 심으면, 전라도에서 강원도까지 다 양파로 쑥대밭을 만들고... 그랬다. 이게 실상이 아니었는 지. 농산물 수입 결정시, 새마을 운동할 때처럼, 농민들에게 협조나 토론을 구했는지 되물어야 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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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원시

◎ 2001/3/29(목) 13:57


청개구리들의 회한 그리고 박정희의 부활 배경


죽은 제갈공명이 산 맷돼지를 잡는다는 이야기는, 박정희를 매개로 한 정치권력 투쟁, 혹은 사회심리전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 경제적으로는 경제시스템의 재구성에 대한 반성이 수반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왜 박정희가 다시 한국인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심리학적 분석] 청개구리의 패배, 다시 부르는 엄마/아빠의 노래


97년 겨울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 체제의 붕괴, 그리고 인한 실업의 증가는 우리들에게 자본주의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자본주의 논리의 압박에서 쓰디쓴 맛을 본 국민들이 엄마를 찾는 심정으로, 아빠를 부르는 심정으로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평생 직장 "직장은 월급 때문에 다니는 곳이 아니고 자신의 발전 때문에 다녀야 한다. 자신의 발전을 통해 회사를 키우고 나아가 나라를 키워야 한다. 정주영 86년 현대 신입사원 수련대회" 이라던 '아버지' 정주영의 이야기도 안통하고, 그렇다고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 '계몽주의 군주' 국가도 없다.


 어디로 갈 것인가 ? 심리학적으로 안위를 얻기 위해 점집, 사주를 보러 가지만, 이것은 다 원형적 사유로, 청개구리가 다시 아빠, 엄마를 찾는 심정의 반영이다. 그렇다. 한편으로는 표준화된 미국형 자본주의 논리를 발빠르게 배워려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밤이 되면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다시 고속성장을 느끼는 시절에 대한 향수가 필요하다. 이것은 생명의 근원적 본성이기도 하다.




(새마을 운동 노래: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온 동네에 울려퍼져 아침 잠을 깨우곤 했다)


우리는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강요된 위기에 대해서 저항의 몸짓을 독특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가 ? 어제 1600원에 팔려나간 내 노동력의 가치가 오늘 800원 밖에 값을 쳐주지 않는다면, 이게 합리적인가 ? 왜 어제까지 1600원이었고, 오늘은 그 절반인가 ? 이게 당연한 합리적인 시장가격의 논리인가 ? 어려운 논리체계인 공리주의적 전제에 기반한 경제학의 상식을 갖다대기 전에, 원시인의 심정으로 반성해 본다면, 이것은 상실감이다.


 1달러에 800원에서 1600원으로 환율이 인상되고, 원화가 평가절하되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 내 돈의 가치, 내 노동력의 가치가 하루 아침에 절반으로 격하되었다. 사회적 무시를 당한 것이다. 나를 버린 것이다. 내 땀의 가치를, 내 두뇌의 가치를 절반이라고 판명받은 것이다. 그렇게 숫자에 얽매어온 우리 남한 국민들로서는 믿고 싶지도 않은 현실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것이 그렇게 철썩같이 믿는 합리주의적 시스템인가 ?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당장 없다고 해서 이것을 그냥 진리처럼 선전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철학적 주제이기 때문에 문제의식으로만 짚고 넘어간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묻는다. "이것이 합리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이냐고" "왜 동일한 노동력이 하루 아침에 그렇게 절반으로 가치 하락을 할 수 있냐고" "항구불변의 합리주의적 시스템이냐고" 한국인은 다시 생각한다. 




            (오르간 앞에서 직접 작사한 노래를 연주하고 있는 박정희 )


이런 철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고민은 너무 복잡하니까, 계량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1962년부터 1979년까지 남한의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9.3%를 기록했다. 1인당 GNP 도 1961년 82달러에서 1979년에는 1640달러로 증가했다. 수출액도 4000만 달러에서 150억달러로 성장했다. 보릿고개도 없어지고, 농민의 자식도, 노동자의 자식도 고

등학교까지 다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텔레비젼이 없어 5리를 걸어서 창수네 집까지 가서 '타잔' '마징가'를 보지 않아도 된다. 없던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변했다고 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은데" 나가라는 것이다. 정신을 재무장하고, 도구주의적 이성을 숫돌에 다시 갈아라는 것이다. 7천만이 쓰는 사투리보다는 앵글로색슨의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라는 것이다. 청개구리는 지쳤고, 돌아갈 냇가는 이미 홍수에 떠내려갔다. 애타게 불러본다. 마음의 아버지를, 엄마를. 돌아간 박정희 무덤이라도 파서 안기도 싶은 청개구리의 심정으로.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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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1 교훈] 진보좌파에게 ‘이데올로기 형성’과 역사적 투쟁의 중요성

 0 2012.12.21 


박근혜의 당선은 보수 시민사회의 승리이다


정치적 진보좌파에게 ‘이데올로기 형성’과 역사적 투쟁의 중요성


박근혜의 당선은 보수 시민사회의 승리이다. 시민단체라고 하면 참여연대 YMCA 경실련 등 시민단체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민사회에 대한 좁은 이해이거나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이 주로 이해하는 시민사회 개념이다. 좌파적 시민사회 개념이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당선은 뉴라이트와 같은 보수적인 시민단체들, 친미-보수-교회들, 민주정의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계보를 잇는 보수정당의 굳건한 주춧돌을 이루고 있는 동네 통반장 아줌마들이다.


시민사회는 “실천적인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인 사회관계들의 복합체이다. 그런데 특정 생산 관계가 바로 이 시민사회의 틀을 수립해나가고, 시민사회 역시 그 생산관계 토대 위에서 발전해나간다. 자크 텍시에르(Jacque Texier의 그람씨 시민사회 개념 해석,p.135)” 서울대 출신 배우 김태희를 묘사할 때,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센징을 비하할 때 사용하던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에 근거해서 김태희를 묘사한다 “우월한 유전자 김태희”, 이런 이데올로기도 한국 시민사회의 일부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당연하다고 보는 ‘사회적 적자생존 논리’를 강화하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의 일부이다.


정치 담론, 이데올로기 공간으로 내려오자. “민주화가 밥맥애 주나. 물가는 대머리 금마 전두환 때가 훨 나았다. 박정희가 밥은 먹게 해주지 않았나? 김대중 노무현이가 한 게 머 있노. 돈 퍼 주고 노벨상 타고, 김정일이한테 돈 다 퍼주고, 그 돈으로 장거리 미사일 계발 해뿌지~ 마라 치와라, 니가 다 정치 몰라서 그렇대이~” 이런 정치의식(이데올로기)도 한국의 시민사회이다. 보수 시민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이데올로기이다.


박근혜의 당선은 보수 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 전투의 승리이다. 2007년 이명박 당선이후 차기 주자 박근혜가 내세울 수 있는 정치적 표어는 “아버지 (박정희)가 이룬 경제 성장, 박근혜가 복지혜택으로 돌려드립니다”였다. 이 슬로건은 필자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보수당의 내적 논리에서 보면 위와 같은 ‘정치 컨설팅’은 어느 누구나 해낼 수 있다.


정치의식과 개념틀이라는 이데올로기 투쟁에 실패한 민주당, 그 자기 모순


문재인 등 민주당 그리고 심상정-노회찬-이정희-유시민의 정치적 오류, 즉 부동층 유권자들을 강력하게 반-박근혜 표로 이동시키지 못한 정치적 실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진보좌파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 다카키 마사오의 딸 “박근혜”라고 했지만, 김대중-노무현을 계승하는 민주당 문재인은, 박정희 산업화 세력(김종필)과 김대중 민주화 세력의 DJP 연합을 통해서 대통령이 된 김대중을 전면 부정할 수 없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다르다면, “아버지 박정희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에 맞서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이데올로기 형성 실패 배후에는 1997년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포용한 김대중 (현 민주당) 노선의 자기 모순에 있다.




또한 문재인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재벌 100조 혜택)을 비판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특별히 ‘복지 체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데다 진보진영이나 노동운동 진영으로부터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부 시절 물리적 탄압보다 더 잔혹하고 끈질긴 ‘손해배상 청구’와 ‘정리해고’ 주체가 바로 김대중-노무현 참여정부라는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박근혜표 복지가 그 재원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또 세금 정책 역시 친-자본주의 시장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표 복지 이데올로기가 정치적으로 박근혜 지지자들을 강하게 결속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김종인을 내세운 복지 정책이 선별적이냐 보편적이냐 그게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 새누리당은 실제로 복지 정책을 공약대로도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근혜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태도, 보수적인 삶의 가치와 도덕관념(moral)등의 이데올로기를 충분히 결집시킬 슬로건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선에서 이긴 박근혜의 승리는, 한국 보수적 시민사회의 담론의 승리, 선거라는 정치적 공간에서 이데올로기 게임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새누리당은, 과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부 계보를 잇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이번 대선의 특징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적 시민사회의 정치적 담론, 이데올로기를 그 구성원 스스로가 공유하고 확산시키고 재생산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 평가는 새누리당(보수집단)과 대항하는 민주집단, 혹은 진보진영, 이 둘 사이, 혹은 셋 사이에 놓여진 ‘전선’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은 1997년 IMF 통치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사회적 원리 (이윤추구, 부자아빠등)가 새누리당과 이 토대를 형성하고 있는 보수적 시민사회가 어떻게 잘 협조하는가를 보여줬다. 그리고 보수적 시민사회가 진보좌파보다,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의 계승자라고 자임하는 리버럴 민주당보다 훨씬 더 ‘역사 투쟁’을 잘 수행해냈다.


박근혜도 잊어버리고 말하지 못한 게 있다. 1979년 박정희가 살해되기 전에 한 말이 그것이다. “우리 근로자들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제 마이 카 my car 시대가 온다.”

새누리당 박근혜는 박정희가 얼마나 잔혹하게 노동자와 민주적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박근혜의 역사 투쟁이라는 것은, 자기 관점에서 ‘역사들’을 철저히 계급지배의 관점에서 지배적 언어들과 이데올로기를 ‘추출’해내는 것이다.


2002년 민주노동당 시절, 우리는 ‘세금의 정치학’을 가지고, 민주당과 보수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약점을 치고 급습했다. 그 이후 잘못된 정치 편향이 생겨났다. 정치 이데올로기 (담론) 창출이 부재한 채, 몇 가지 정책 아이템으로 대선-총선 수퍼마켓에 나가려는 경향이다. ‘세금의 정치학 (부유세건 직접세건)’은 구체적인 정책임과 동시에 ‘이데올로기 투쟁 (정치 공간에서 담론 투쟁’이다. 세금의 정치학은 생산, 분배,재분배, 소비 중에서 ‘재분배’에 해당한다.그리고 혁명도 아니고 개량(reformism)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2002년 대선에서 리버럴 (민주당) 노무현과 보수 이회창의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창이었다.


정치는 진보좌파만 하는 것도, 노동자들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치는 '밀어부치기'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 체험, 그에 근거한 담론의 형성, 전파, 공유 과정을 통해서, 길이 길이 오랜 시간을 두고 정치행위가 발생한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보수적 시민사회도 정치를 자기들 방식대로 한다. 이번 대선이 그것을 보여줬다. 이 보수 시민사회 일상정치와 365일 게임해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코리안 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이 높다.


** 위 인용 참고 자료: Morera, Esteve. Gramsci's Historicism: A Realist Interpretation. London:Routledge,1990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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