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총장은 ‘선택할 자유’를 제대로 읽었나[오늘과 내일/김광현]
김광현 논설위원입력 2019-08-01-
프리드먼 경제철학, 문재인 정책과 방향 달라
‘공정경쟁’ 이름으로 시장질서 해치지 않기를
김광현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말했을 때 마치 호랑이가 “원래 나는 고기보다는 채소를 더 좋아해”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 취임사에서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자신의 법 집행 방향을 제시했다.
만약 윤 총장이 몸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과 그동안 보여온 구체적인 정책들을 프리드먼이 알았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제발 내 이름은 팔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밀턴 프리드먼이 누구인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면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더불어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적 인물이다. 정부가 시장에 어떤 명분으로든 개입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한다.
‘불완전한 시장이 불완전한 정부보다 낫다’는 게 프리드먼의 기본 철학이다.
세금을 많이 걷고 복지를 늘리는 큰 정부는 프리드먼 경제철학에서 최대의 적이다. 언제나 ‘대중의 이익’ 같은 미사여구를 달고 시행되는 분양가 상한제 같은 가격 통제는 최악의 정부 개입 행위다.
시장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정부 개입의 명분을 주는 공해 문제를 보자. 검찰은 생리상 공해 배출 기업은 악덕 기업이라는 선악의 문제로 접근할 게 틀림없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다르다. 공해는 일정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범죄와 처벌로 다룰 것이 아니라 예컨대 공해배출세를 도입해 기업으로 하여금 배출 요인을 스스로 줄이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해를 많이 발생시키는 상품은 이 세금 때문에 적게 발생시키는 상품보다 비싸져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원리다. ‘선택할 자유’에 나오는 사례다.
기본적으로 법은 선과 악을 가려 악을 척결하고 정의를 세우는 작업이다. 반면 경제는 정의보다는 효율을 추구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이 나서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며 ‘보이는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법과 경제, 정의와 효율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어느 모로 보나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정신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윤 총장이 임명되자마자 서울중앙지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올해 5월 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대우조선해양 하도급 업체들이 하도급 비리 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닌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앞으로 검찰의 칼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공정경쟁’이란 취임사가 본격적인 대기업 수사를 위한 명분 쌓기용 사전포석이란 분석도 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은 거악(巨惡)이며 언제든지 공정경쟁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손봐야 할 잠재적 대상으로 취급한다면 ‘선택할 자유’를 크게 오독(誤讀)한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해 출간한 곳부터가 전경련이 설립했던 자유기업원이다.
윤 총장이 젊은 시절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고, 프리드먼의 경제철학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면 차분히 시간을 갖고 다시 한번 읽기를 바란다.
조직이라는 용어가 어디보다 잘 어울리는 검찰에서 총장을 따라 요즘 후배 검사들 사이에서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꼼꼼히 읽으면 좋겠지만 제목만 봐도 국가 또는 검찰이 시장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윤석열 총장 체제의 검찰이 공정경쟁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얼마나 많은 경제 관련 수사를 벌일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자유시장경제와 프리드먼의 의미는 정확히 이해하기 바란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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