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고민한 것이 아니었다. 1930년대, 1940년대에도 박치우 역시 우리와 비슷한 정신적 상황을 겪었다.
1 민주주의, 그것도 진짜 민주주의를 고민하다.
박치우는 경성제대 철학과(1928년 입학)에서 주로 독일 철학, 당시 유행하던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를 배웠다. 졸업 논문 역시 하르트만 Hardman 에 대한 것이었다.
신남철의 경우도 브렌타노 Brentano로, 박종홍은 하이데거 Heidegger에 대한 졸업논문을 작성한 것을 보면 당시 조선에 수용된 철학의 특징을 알 수 있다. 경성제대 철학과에는 아베, 미야모토, 다나베 등 일본 교수들이 있었고 그들에 의해 해석된 독일 철학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사회사정 연구회라는 모임에서 일본교수 미야케가 있었는데, 그는 일제 식민 통치 수단으로 설립된 경성제대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쳤다. 당시 법대생이었던 유진오는 철학과로 전과를 희망했고, 김태준,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역시 미야케 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한국전쟁이후, 박종홍은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과 반공사상을 결합시켰고, 박치우는 1949년 빨치산 투쟁 과정 중에 이승만 정부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박치우가 설명하는 인민(people)의 정의: 지주나 시민(부르조아)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 농민 소시민 인텔리를 포함한 근로대중이라고 했다.
2. 박치우, 일제시대에 조선의 <새로운 자유>를 고민하다.
박치우는 조선공산당이나 박헌영과 달리, 당시 소련이나 코민테른의 버전 인민민주주의론이나 레닌의 2단계 혁명론과는 달리, 자신의 철학적 사상 체계에 근거해서, 조선인들의 '자유', 근로대중들의 자유를 보장할 정치 체제로서 '인민 민주주의'를 고민했던 것 같다.
3. 박치우가 말한, 물질적 재화에 휘둘리기 쉬운 인민의 주권이란 무엇인가?
그 인민의 주권이 변증법적인 투쟁을 통해 어떻게 실현되고 정착되는가?
4. 능력과 노동에 따른 분배가 실현된 사회
인간이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해야만, 인간과 '가축 (동물)'이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근로인민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조선인들이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라고 했다.
5. 물신주의, 물신성 등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용어들이 보인다.
민주주의가 '돈, 화폐'주의나, '물 (상품이나 물건 등)'주주의, "땅(지)주주의'로 될 수 있다고 진단하다.
민이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 되고, 재화 그 자체가 주인이 되고, 땅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도 있다는 것이고, 그건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박치우 역시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 등장하는, 그리고 마르크스 사상 전반을 가로지르는 '주객 전도, 물신성에 대한 비판을 언급하고 있고, 자신의 비판철학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다운 인민 민주주의에서 지양 (aufgehoben)되어야 한다. => Aufhebung (지양) 번역어를 일본에서 한 그대로 지양...이라고 쓰고 있다.
박치우의 개인 인생관 : 개인의 열정을 사회적인 사명 수행에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6. 시민 민주주의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지양된 민주주의가 바로 인민 민주주의다.
사상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는)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심장"을 통해서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인-주주의. 사람이 주인되는 정치 체제.
7. 철학을 공부했던 박치우는 "나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일면서생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1945년 이후 해방 정국 좌우 분열 속에서, 조선의 인민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했다.
8. 의견의 차이와 감정의 대립이 있다면, 이 모든 차이와 대립은 속히 '괄호'에 넣자.
공약수란 "조선을 조선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이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괄호, 이것은 독일 철학자 훗설 (Husserl)의 용어, 에포케 (Epoche)이다. 기존 개념틀, 선 지식, 편견 Vorurteilung 을 버리라는 것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테제나 도그마로 변질된 역사법칙을 '괄호'안에 넣어라. 이렇게도 사용될 수 있다.
일민주의와 같은 국수주의도 당대 독일 나치즘이나 이태리 파시즘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박치우는 비판한다.
2013년 남쪽과 북쪽 체제의 차이나, 정세 등은 과거 박치우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들은 유사한 점들도 많다. 수많은 변형들을 겪고 있지만.
9. 부르조아 (시민) 민주주의, 파시즘, 전체주의, 근로인민 민주주의를 구별하다.
10. 조선이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는, 절대 다수의 행복이 보증되고 실현되는 민주주의, 근로 인민 민주주의이다.
11. 해방 정국 당시, 사이비 종교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박치우는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 한국처럼 종교들이 다양하거나, 유사 종교를 띤 활동들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생겨난 것일까?
책 출처: 박치우의 삶과 철학사상 (위상복 지음: 길: 2012)
박치우 (1909년 함경도 출생 - 1949년 태백산맥에서 사망)
독서 일지: 2013년 3월
토론토 대학 아시아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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