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노동2020. 7. 3. 19:13

아파트 경비원에 비친 3가지 종류의 주민들 - “임계장” 독서 노트 2020년 6월 19일


책 “임계장 이야기” 저자 조정진은 1956년생인 노회찬 연배이다. 오랜만에 우리말로 된 책을 읽었다. 품앗이 대가로 L 선생이 e-book 으로 사주셨다. 처음 읽는 온라인책이기도 하다. 4월 총선 전후 몇 개월 무슨 전투를 치른 것 같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임계장”은 일터에서 생긴 일을 적은 노동수기이다. 진보정당은 1년에 1만개가 넘는 직업 숫자, 일터에서 “임계장”과 같은 노동수기 경연대회를 적어도 4차례 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의당 위기도 “임계장”과 같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정치노선과 정책으로 발전시키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다. 정맥과 동맥만 커진 정의당과 민주노총, 반면에 “임계장”같은 모세혈관은 희미해졌다.


“임계장” 주인공, 조정진은 38년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다. “임계장”에서 인상적인 대목만 두서없이 적는다. 그가 바라본 아파트 주민들과 분류표이다. 그 시선에 담긴 아파트 주민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좋은 사람 소수, 대부분 주민들은 무관심, 나쁜 사람은 극소수”이다. 김갑두라는 주민이 갑질을 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주민들을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었는데, 문제는 ‘극소수 갑질 나쁜 주민’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대다수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잔존했던 한국의 ‘집성촌 (같은 성씨끼리 모여사는 주거 집단 마을)’은 40년간의 급속한 도시화로, 철저히 계급화된 ‘아파트 촌’으로 바뀌었다. 집성촌에도 다른 성씨끼리 ‘너네는 상놈이고, 우리는 양반이다’라는 경쟁이 있었지만, 도시화 이후 아파트 촌은 평수와 돈크기로 ‘계층 서열화’되었다.


‘상놈 양반 구별했던 자존심 대결’은 ‘화폐 크기’로 이미 싱겁게 종료되었다. 같은 성씨는 이제 필요없고, 익명이라도 ‘화폐크기 보유량’이 비슷한 유유상종의 아파트가 한국인의 삶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집성촌 마을 어귀 ‘장승’ 대신에, 아파트에는 “임계장 (임시 계약식 노인장)” 경비원들이 들어섰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임계장” 조정진과 같은 경비원, 제니터 Janitor 노동조합이 있다. 한국 “임계장” 저자 조정진은 노동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에, 윗사람 구두로도, 전화 한통으로 잘린다. “임계장” 저자도 그 네번째 직장, 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졌는데도, “아프면 잘린다”는 나쁜 관행에 따라 전화 한통으로 해고당하고 만다.


두번째 인상적인 장면은, 105페이지에 나오는 조정진 저자가 부상을 당하는 순간이다. 겨울에 빌딩 경비원으로 일할 때,빌딩 공간들이 아주 미끄럽다는 것이다. 혼자 보호 장비없이 빌딩 구석구석을 점검하다가 미끄러져서 빌딩 조형물과 충돌하고 말았다는 장면은 너무나 처참했다. 이마가 깨져버렸다.


높은 빌딩이나 고층 아파트 자체는 공학 물리학 법칙들이 작동하는 고도의 거대 체계인만큼 위험과 사고 발생 가능성도 크다. ‘산업재해’ 요소들이 곳곳에 깔려있는데도 경비원들은 무방비 상태로 이러한 위험들에 노출되어 있다.


“임계장” 저자 조정진은 악발이다. 아파트 경비와 빌딩 경비 두 군데 동시에 일했다. 아파트에는 샤워시설이 있는데, 관리자만 쓰고, 빌딩에는 샤워시설이 있어서 그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아파트 경비원이 해야할 작업은 100가지 넘는데, 쓰레기와 악취와의 전투가 그 중 하나다. 손을 하루에도 30~50번 씻어야 하는데, 정작 아파트에서는 자유롭게 샤워를 할 수 없다. 점심 먹을 공간도 석면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이었다. 빌딩에는 아예 점심 먹을 공간도 없다.


빌딩 경비 업무 환경은 살인적이었다. 지하 2층에서 지하 6층까지는 지하 주차장 건물이라서 공기가 오염되어 있고, 미세먼지는 지상보다 3배이다. 70세 경비원이 이런 빌딩 경비를 돌다 쓰러지기도 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일할 때, 자동차 배기가스 오염이 심하니까, ‘마스크’를 지급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하니, 돌아오는 답변이 “얼마나 오래살려고”라는 비아냥이었다. 정규직을 고용하면 비정규직 계약직보다 3배 임금이 드니, “임계장”같은 값싼 인력을 고용하는데, 그들의 건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노동통제 뿐만 아니라, 임금 착취도 일어나고 있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니, 무급 휴식 시간을 늘려서 임금 인상 효과를 없애버렸다. 2017년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50원으로 440원 인상되자, 아파트 고용주가 무급 휴식 시간을 늘려버려, 결국 440원 인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임계장”을 고용하는 회사는 주로 용역회사인데, 1년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한 아파트에서 11개월 정도 일하면, 1년을 채우지 못하게 해서, 다른 아파트로 파견 보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부당한 임금 착취에 맞서서 광주에서는 ‘비정규직 센터, 경비원 일자리 협의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임계장”의 저자 조정진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조직과 상사에 충성하고 복종하는 버릇(146쪽)’을 가진 사람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에다 공무원 생활을 38년 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묘사가 이해가 된다.


“임계장”에서 네 가지 직장생활 수기가 나오는데, 조정진은 독자인 내가 피부로 느낄만큼 성실하게 일했다. 동명고속 수하물 탁송노동을 하면서, 운전기사에게는 6천원 식권이, 조정진에게는 4천원짜리 식권이 배정되는 이 쪼잔하지만 존엄성을 짓밟는 ‘차별’을 겪는다.


아파트 경비 업무 중에 주차 관리가 중요한데, 아파트 본부장 사모님 차를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다고 해서, 사모님이 관리소장에게 ‘저 호루라기 분 경비원 잘라라’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조정진은 서류와 보고서에 익숙한 공무원 출신이어서, 아파트, 빌딩,버스 수하물, 터미널 보안요원을 하면서 ‘노동 일지’를 꼼꼼히 작성했다. 그런데 그의 직장 동료들은 자기 가족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말고, 보여주지 말라고 조정진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알면 자기들이 부끄럽다고 했다. 세상에 부끄러운 노동도 있는가?


민주(民主),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다. 민이 주인이다. 아파트 경비원, 버스 터미널 수하물 배송원, 보안요원, 빌딩 경비원의 노동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1987년 민주주의를 예찬하는 영화도 나왔고, 당시에는 감옥에 갇히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민주화 주역들이 민주당 국회의원도 되었다. 이런 시절에, 자기 노동을 ‘자기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말아야 하는’ 그런 부끄러운 시대가 공존하다니, 민주(民主)라는 말 자체가 모순적이다.


“임계장”은 일터에서 생긴 일들을 자세히 묘사했다. 이것이 진보정당의 기초 정책이어야 한다. 지난 20년간 이런 일터 수기가 1년에 100권씩 수상작으로 뽑혔다면, 2000권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200권을 뽑았다면 4000권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500권을 뽑았다면, 1만권을 공부해야 했을 것이다. 1000 군데 일터에서 노동수기를 발굴했다면, 2만권이 진보정당의 정책 기초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일터가 아니더라도 삶의 터전에서 2000권을 1년을 만들어냈다면, 4만권이 정책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매일 '혁신'했을 것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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