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비지 (서울 강남 원주인 땅을 36~49% 뺏어다가 서울시가 도시개발을 했다) 체비지 규모는 여의도의 2배에 육박했고, 20만 채 비엔나식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도시계획사에서 한 번의 기회를 그렇게 잃었다.
내가 정치를 논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지난 60년간 '주택' '살 집'에 대해서는 '정치'도, 민주주의도 없었다는 걸 많이 깨닫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는 '공공임대주택'이 '낙인'이 되었고, '똘똘한 1채'를 해법이라고 제시하게 되었는가?
서울의 60년 형성과정을 극복하지 않으면, 절대 지방균형은 없다. 63지방선거 정책은 다 환상이고, '균형' 숭배교일 뿐이다. 2026년판 막걸리-고무신 선거이고, 이것은 좌파나, 리버럴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이 서울로 왜 어떻게, 누가 오라고 해서 지난 60년간 와서 살고 있는가? 똥은 음식의 재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니가 가라 '호르무즈', 니가 가라 지방 '소확행'이다.
난 강남을 비난하거나 개탄하는 노선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게 좌파의 정치적 임무나 공간정치의 본색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3월부터 사당동 철거 깡패들과 싸웠다. 지난 60년간 서울은 '시민내전'이다. 철거 깡패용역은 줄었지만, 시민들의 '정보 전쟁'과 '신경전'은, 마용성,강남 3구로 '증여'와'상속'으로 '똘똘한 1채 구매' 전투형태를 띠게 되었다.
1971년 9월 28일 (빛을 잃은 영동-[강남] 개발) 경향신문을 보면,
서울시가 원주민 땅의 36~49%를 '체비지'로 떼어갔다는 게 나온다.
땅투기 바람이 지나가고, 10만원하던게 4만원으로 되었다는 한탄이 나온다.
서울, 지금 도시화, 우리 삶을 규정하는 주거 공간의 출발점이자 원세포가 '체비지' 사건이다.
비엔나 사민당 시장은 그 '체비지'를 먼저 확보해, 도나우 강 옆에 호텔 3성,4성급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했고,
서울은 공무원, 아저씨 아줌마들을 다 '떴다방' 시민들로 전락시켰다. 체비지 팔아 그 돈 일부는 집권당 대선 비용으로 흘러들어갔다.
1971년 경향신문 기사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