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독후감 1.
['채식주의자' 소설을 읽는 방법]
네 명의 주인공, 영혜, 영혜남편, 인혜(영혜언니), 인혜 남편이 지금 ‘내’가 아닌 전혀 딴판인 ‘사람’ 혹은 ‘낯선 존재’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는가? 자각적 변신의 3단계, 1단계는 ‘현재 나’로부터 스스로 낯설어지기, 2단계 타인들로부터 낯설어지기, 3단계 새로운 ‘나’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4명을 바라보려고 한다.
‘변신’과 (당산)나무.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하루아침에 ‘곤충’이 되었고,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꿈’을 꾸고 나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레고리 잠자는 가족,누이에게 빗자루로 쳐맞고, 영혜는 가족한테 ‘미친 여자’ 소리를 들었다.
소통도 이해도 없는 꽉 막힌 ‘불통’과 ‘폭력’만 남았다. 자각적 변신 (환골탈태)이 이런 혹독한 ‘폭력’의 결과를 낳는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당산나무. 100년 전 우리 마을 사람이 나에게 ‘당신이 죽고 나면 이 마을의 당산나무로 환생할 것이오’라고 말했다면, 나는 이 영광의 말씀에 감동받았을 것이고, 최대의 축언들 중 하나라고 해석했을 것이다.
1. 영혜. 깨달은 여자와 미친 여자.
소설이 끝나고 나서, 영혜는 정말 ‘당산나무’ 같은 나무가 되었을까? 쯔양의 유튜브 먹방, 백종원 간장설탕 시대에 말이야.
위 네 등장인물 중에 한강의 분신은 ‘인간’이 아닌 ‘나무’로 환골탈태하고자 하는 영혜로 보인다.
한국인의 90%는 ‘당산나무’가 없는 도시에 대부분 거주하기 때문에, ‘당산나무’의 의미를 모르거나 잊은 채 산다. 전통적인 토템이나 주술적 숭배대상으로 ‘(당산)나무’를 해석해버리면, 나무로 ‘부활’ ‘재생’ ‘환생’은 쉽게 이해된다. '멸종' 시대에 나무와 인간의 지위의 수평화는 나쁘지는 않다.
한강 작가가 나무가 되려는 영혜의 결단 과정에, 가족들과의 불화, 영혜의 자해, 육식거부, 꽃을 매개로 한 형부와의 섹스, 정신병동에서 음식거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채식주의’ 소설이 어둡고, 막장 드라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영혜의 ‘나무’와 한국인이 알고 있는 마을의 수호신 ‘당산나무’의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아무나 ‘(당산)나무’로 환생할 수 없고, 살아생전 그 공동체의 이상 실천한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과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영혜의 나무로의 환골탈태는 위와 같은 당산나무라기 보다는, ‘홑’ 나무를 지향한다. 생명체를 죽이고, 비난하고, 무시하고, 지배하고, 무관심한 인간임을 중단하고, 영혜는 ‘나무’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러나 쯔양의 유튜브 먹방, 백종원 간장설탕 요리경연에 익숙한 우리들은 육식거부,음식거부하는 영혜를, 마치 영혜 남편처럼, ‘미치거나’ ‘이상한 여자’로 해석해 버릴 수도 있다.
영혜 남편의 묘사에 따르면, 영혜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이다. 그런데 작가 한강의 ‘영혜’는 과거의’나’를 낯설게 만들면서 ‘나에 대한 자각’을 마친 결행의 존재이다.
이런 깨달음에 이르러, 자기를 괴롭혔던 꿈에 나오는 ‘가해자들’의 얼굴과, 인간으로서 ‘나’의 죽음이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다.
2. 가해자의 논리를 내재화했던 인혜는 영혜와 화해했는가? 영혜의 언니 인혜에게 영혜는, 또 영혜에게 인혜는 어떤 의미인가?
인혜는 영혜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다. 2부 ‘몽고반점’에서 인혜는 ‘남편과 인혜, 너희 둘은 미쳤다’고 판단해, 정신병원 구급차를 부른다. 영혜와 남편의 행위동기에 대한 물음은 없고, ‘정상’과 ‘비정상’의 심판자로 등장한다. 누구의 관점에서 ‘정상’이고 ‘비정상’인가? 그런 질문을 던질 틈도 없다. 남편은 ‘나쁜 새끼’이고, 영혜는 ‘정신병자’일 뿐이다.
3부 ‘나무불꽃’에서는 인혜가 영혜의 ‘나무로 재탄생’ 결단을 이해하게 된다. 2부에서 인혜와 3부에서 인혜는 완전히 다르다.
2부에서 인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동생 영혜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작가 한강은 영혜남편과 영혜와의 ‘화해’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혜와 영혜와의 ‘화해’를 3부에서 다룬다. 가해자의 논리를 내재화했던 인혜가 어떻게 동생 인혜를 이해하게 되고 화해하는가? 첫번째 화해의 필요조건은 인혜의 ‘각성’이다.
인혜의 ‘자각 과정’, 자기로부터 스스로 낯설어져야한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부정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3부 ‘나무 불꽃’이다.
인혜는 착한 큰딸, 좋은 아내이자 지우 엄마였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를 처음으로 부정한다. “살아본 적이 없었다. 오래전 어린시절부터 견뎌왔을 뿐이고, 건물과 풀 앞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임을 깨닫는다.
남편과 영혜의 섹스에 대한 생각도 바뀐다. 2부에서는 인혜는 영혜와의 섹스했던 남편을 ‘나쁜 새끼’라 부른다. 한 때 존경의 대상이자 성당 신부님 같았던 남편은 완전히 ‘낯선’ 사람,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용서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혜는 영혜의 음식거부 의지를 보면서, 자기 생각을 바꾼다. 남편과 영혜의 섹스는 성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사람임을 탈피하려는 몸부림으로 해석한다. “꽃과 잎사귀, 푸른줄기로 뒤덮은 그 둘의 몸뚱아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낯선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까 인혜에게도, 두 사람은 '촛점'에서 사라지고, 꽃과 잎들의 이미지만 남았다.
인혜는 그 둘의 섹스를 영혜가 사람에서 나무로 가는 중간 단계로 해석한다. 물론 이 중간단계는 영혜의 관점이니, 인혜는 영혜를 이해하게 되는 셈이다.
인혜와 영혜, 인혜와 인혜 남편은 진실로 화해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가? 그것은 독자들의 해석에 달려있다. 한강 작가의 설명은 어떤 측면에서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친절하기도 하다.
그런데 제 2부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 전체 3부 중에 왜 들어가 있는가?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가 낯선 존재가 되고,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영혜를 ‘미친 여자’ 취급한다. 영혜는 ‘변신 (환골탈태)’의 결단이 섰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은 불가능하다.
제 3부는 육식거부 뿐만 아니라, 음식일체를 거부하고 ‘나무’로 변신을 결행한다. 그렇다면 제2부 ‘몽고반점’은 소설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영혜에게 형부인 인혜남편은 어떤 존재이고, 인혜남편에게 영혜는 어떤 의미인가?
이 주제는 독후감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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