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1. 노인이 누구냐에 대해, 사회적 기준과 자기 주관적 기준을 동시에 고려해, '정년은퇴' 이후, 노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사회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1일 1시간부터 4~5시간까지. 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건강에 도움이 될 정도로, 그리고 사회생활의 일환으로서.
2. 노인 기초연금, 보편적 연금은 한국시민이면 무조건 다 지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의.식.주 비용과 문화생활 향유비용을 포함시켜야 한다.
3. 노인을 돌보는 공무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 주로 교육, 의료 서비스 분야에 청년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4. 노인 학교 및 재취업에 대한 공적 투자를 늘려야 한다. 직종마다 다르지만, 노인들의 과거 직장 경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젊었을 땐 이렇게 살 줄 몰랐다”…복지·청년 문제가 불러낸 老동자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입력 : 2021.12.02 06:00
①순자씨는 곳곳에 있었다
“육십을 넘기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나의 직업 분투기는 치열했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청년을 호명하는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60대 여성 이순자씨가 쓴 글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회자됐다.
글은 62세에 취업을 하게 된 이씨가 수건 정리·백화점 청소·요양보호사·장애인 활동보조인 등 각종 일자리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노인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씨뿐일까.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일하는 노인의 비율은 계속 높아진다. 통계청의 지난달 고용동향 자료를 보면, 60세 이상 인구 1278만명 중 44.8%인 572만명이 일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2774만명)의 20%다. 반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사회는 동정 어린 시선에서 노인을 복지 시혜의 대상으로는 다뤄왔지만, 노인의 노동을 직시하진 않았다. 일하는 노인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는커녕 노동법 보호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노인들이 택배 일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은 지난 9월부터 60세 이상 일하는 노인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청소·경비·택배·요양보호사·간병·대리운전·공공근로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노인들이다. 이들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어떤 삶의 궤적 속에서 현재의 노동을 하게 됐는지를 던졌다.
노인들은 대체로 생계 때문에 일한다고 했다. 국가에서 주는 연금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저임금 노동을 전전하다 노년까지 이어진 경우가 있었고, 젊을 때 안정적 일자리에 종사하다가 어느 순간 빈곤에 빠져 노년에 갑자기 일자리를 찾은 경우도 있었다. 동시에 노인이 일하는 이유는 생계 때문만이 아니었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면서도, 사회 속에서 역할을 찾고 타인과 소통하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노인 일자리는 청년 일자리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자주 다뤄졌지만, 노인이 일하는 배경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인 자녀가 쉽게 자립하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신이 자녀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돈을 벌러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노인은 언젠가는 청년이었고, 청년은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인들은 “나도 젊을 때는 나이 들어 이렇게 살 줄 몰랐다”고 했다. 또 그들은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아놓은 돈이 없어 일해야 하고,
집에만 있기 싫어서 일하고 싶다”
찬 바람으로 체감온도가 0도까지 내려간 지난달 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9번 출구 앞 길목에는 노인 십수명이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줄을 지어 앉았다. 동대문종합시장에서 나오는 택배 일거리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복지 차원에서 노인에게 제공되는 지하철 무임승차를 이용해 직접 물건을 배송한다. 동대문에서 가까운 남대문까지 배송했을 때 책정되는 돈은 3000원이다. 강남이나 서울 외곽으로 가면 1만원까지도 쳐준다. 여기서 일거리를 나눠주는 ‘사장’은 수수료로 30%를 떼간다. 혹여나 배송지가 무임승차할 수 없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면 버스비는 노인이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왜 이곳에 나왔느냐고 묻자, 조현철씨(83·가명)는 “돈이 없어서 나오지, 왜 나오겠느냐”고 했다. 이날 오전 강북 쪽 한 군데에 배송을 하고 왔다는 그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15분 거리를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이 수수료를 떼면 5600원이다. 옆에 섰던 장태환씨(78·가명)는 “자식들이 변변한 직장이 없으니까, 용돈을 못 얻어쓰니까 나온다”며 “여긴 내가 어린 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상가들이 망해 요즘엔 택배일로 하루 3만원 벌기 힘들다고 했다.
■“연금으론 못 살아, 일할 수밖에”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 55만여원
노후 적정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
그나마 받는 수급자 비율도 40%뿐
노인 노동 이유, 대부분 경제 문제
노인이 됐을 때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있다. 그러나 젊을 때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충분히 납입하지 못한 경우에는 노인 시기에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기초연금은 30만원에서 재산과 소득을 따져 지급액수를 깎는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인당 월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55만1892원이다. 국민노후보장 패널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노후 적정생활비로 개인은 월 164만5000원, 부부는 267만8000원이 필요하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기초연금을 감안하더라도 현저히 적은 액수다. 국민연금 수급률은 40%대로, 반대로 말하면 60%는 국민연금에서 배제돼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서 고령층 인구 중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68.1%(1005만9000명)나 됐는데, 이 같은 노동 욕구 대부분이 연금으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젊은 시절 음식점과 술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던 최종원씨(75·가명)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장사가 되지 않아 사업을 처분했다. 2000년대 중반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를 시작으로 현재는 병원에서 숙직을 한다. 노인의 일은 주로 사람들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최씨는 병원 직원들이 퇴근할 때 출근하고, 그들이 출근할 때 퇴근한다. “모든 게 끝나면 병원 이곳저곳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해요. 간호사든 의사든 낮에 일하고 몸만 빠져나가니까 밤에 점검을 해야죠.” 아침엔 직원들 출근 전 사무실 불을 켜고 병원의 하루를 준비한다.
최씨가 일을 하는 이유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그는 덜 먹고, 덜 써도 연금만으로는 생활할 턱이 없다고 했다. 국민연금 14만원, 기초연금 24만원을 받는다. 버는 대로 자녀들 교육에 쓰다보니 저축해놓은 돈은 없다. 병원에서는 월급으로 160만원가량을 받는데, 급여도 다른 일자리에 비해 많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은 아직도 일하는 최씨를 부러워한다고 했다. “젊어서는 돈을 모아놓은 게 있었으니까 조금씩 써서 몰랐는데 돈이 떨어지니까 앞이 정말 깜깜하더라고요. 나이는 먹었지, 지금 여기라도 당장 그만두면 다음달부터 생활비가 없어요. 저축해놓은 게 없으니까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의 노인들은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자녀 본인들도 살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기대느냐” “경제적으로 도와준 것 하나 없는데 어떻게 돈을 달라고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오히려 부모가 노인세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자녀가 자립하지 못해 경제적 책임을 여전히 부모가 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최근 택배일을 시작한 강상환씨(66·가명)는 “우리 큰애도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요즘 정규직 되기가 어렵잖아요. 제가 해준 게 없으니까 아이가 무엇인가를 더 준비해야 되잖아요. 젊은이들 경쟁은 또 얼마나 치열한가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한 직업으로 10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것을 알면서 아이들에게 기댈 수는 없죠.”
조씨는 택배가 아니면 국민연금 50만원에 기초연금 30만원이 전체 수입이다. 월세 50만원을 내면 빠듯하다. 젊었을 때 기민하게 재테크로 집 한 채 사놓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할까. “30~40년 후를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청년들은 생각하겠죠. 지금의 노인들도 그 나이 때 이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데 그게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다들 열심히 살았는데 어떤 사정에 의해서 생활이 후퇴돼요. 노후세대의 격차는 심해지고요.”
■한번 정상 궤도 벗어나면 회복 어려워
“젊었을 땐 이렇게 살 줄 몰랐다”…복지·청년 문제가 불러낸 老동자사진 크게보기
젊은 시기 안정된 직업 가졌어도
정상궤도 벗어나면 노후까지 파장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잃은 뒤에
뒤늦게 아내가 취업하는 경우 많아
젊은 시절 안정된 일자리에 종사했더라도 사업 실패나 사고 등 어떤 계기를 통해 한번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면 그 파장은 노인 때까지 이어진다. 공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하고 퇴직한 성우환씨(68·가명)는 빚보증을 서고 주식을 해 돈을 날린 뒤 별도의 노동소득이 필요한 환경이 됐다. 20년 전 산 집에서 살고, 공기업 경력으로 연금 100만원가량이 나와 다른 노인들에 비해 사정이 낫지만 그는 월급 180만원을 받는 아파트 경비일을 한다. 생활비에 보험료, 부조금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일을 관두면 생활이 어려워요. 보험료도 많이 나가고, 전기·수도료 등 다 월급으로 내거든요. 누구 결혼한다면 부조금도 내야 하고요. 다른 사람들은 10만원, 20만원 내는데 나는 5만원만 내죠. 경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하면 30명 중 10명은 경비를 해요.”
주로 돈을 벌어 가정을 지탱하던 남편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정 전체의 부담은 아내에게 쏟아졌다. 여성들이 뒤늦게 취업에 나서는 데 이런 이유가 많았다. 건물 청소를 하는 나연심씨(72·가명)는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아지면서 뒤늦게 일에 뛰어든 사례다. 20대 때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한 나씨는 47세에 취직을 했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다 보증을 잘못 서 빚을 졌고, 택시운전을 했지만 코로나19로 수익이 별로 없었다. 나씨가 받는 연금이 55만원, 남편까지 합치면 120만원에 청소로 버는 150만원 정도가 한 달 소득이다.
김민숙씨(69·가명)는 50대에 처음 일을 시작했다. 결혼한 뒤 줄곧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엔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을 때 직장에 다니지 않고 전업주부를 했거나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특히 연금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 김씨도 받을 수 있는 것은 기초연금 30만원뿐이었다.
지인을 통해 병원에서 환자를 보살피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것은 다 못해도 이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간병일을 시작했다. “남편 연금이 있다든지,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사실 일할 나이가 아니죠. 장가 안 간 아들과 같이 살고 있어요. 자식에게는 바라지도 않아요. 젊었을 때부터 번 것을 저축해놓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벌어서 생활비 쓰기 바쁘고 애들 뒷바라지하기 바쁘니까 돈을 모으지 못했어요. 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온 거예요.”
김씨는 일을 하고 싶은 것과,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숨을 쉬고 사는 동안 돈은 필요하니,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서 “건강할 때는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데 건강이 나빠져 아무것도 못하면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불안하다”고 했다. 노후에 노후를 대비하려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나 아직 멀쩡한데…집에 있으라니”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을 넘어선다.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일을 매개로 소통을 한다. 그런데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순간 그런 연결고리는 끊어진다. 고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어떤 노인들에게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시외버스·셔틀버스 등 운전을 주로 해온 김점수씨(80·가명)는 마지막 직장이던 백화점에서 ‘회원들이 나이 많으신 분을 불편해한다’는 말을 듣고 일을 그만뒀다. 그 후 ‘사람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그러다 노인들이 보따리를 들고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는 모습을 봤다. 지하철 택배였다. 그때부터 김씨도 택배일을 했다. 지금은 정부 일자리 사업인 공공근로를 한다. 도로 청소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도시락 배달 등을 하고 27만원을 받는다. 다만 공공근로도 경쟁이 있다. 신청자가 많아 재산과 소득을 따지고 기준에 못 미치면 탈락된다.
김씨가 일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손주들 용돈이라도 주고 싶은데 돈이 있어야죠. 집에 있으면 27만원이 나오나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할 수 있죠. 놀기도 답답해요. 평생을 아침에 밥 먹고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갈 데가 없으니까 집에만 있는 것 아니에요? 나가서 움직이고 싶어요. 나 아직 멀쩡한데….” 김씨는 “임금을 많이 안 줘도 되니까 노인들이 할 수만 있다면 일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대화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현숙씨(75·가명)는 대학과 병원에서 16년간 청소노동을 한 뒤 현재는 빌딩 청소를 하고 있다. 물론 돈이 필요해 하는 일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청소를 평생 했던 것이라서, 손을 놓으니까 너무 할 일이 없더라고요. 할 일이 없으니까 인생 다 산 것 같고. 힘이 있는 동안은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하루 종일 일하는 건 힘들고, 2시간씩만 일하면서 한 달 60만원대 월급을 받는다. 누군가에겐 적은 돈이지만 성씨에게는 가치 있는 돈이라고 했다.
청소 업무라고 쓸고 닦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창틀을 닦을 때와 엘리베이터를 닦을 때 방법이 다르고, 계절마다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따로 있다. 성씨는 수십년 청소를 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저는 떳떳하게 일해요. 이만큼씩이라도 번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도 젊었을 때는 ‘노인네들 집에나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늙어봐야 알아요. 나도 안 늙을 줄 알았거든요. 저는 몸 닿는 데까지는 일하고 싶어요.”
3.
법정 선 노인 “노동청 신고해봤자 허사…블랙리스트 감수하며 소송”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입력 : 2021.12.12 21:02
③노인도 싸운다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3월 집단해고에 반발하며 빗자루로 만든 ‘고용승계 해고철회’ 글자판을 들고 거리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청소는 경비와 함께 노인의 대표적인 일자리로 분류된다. 김기남 기자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3월 집단해고에 반발하며 빗자루로 만든 ‘고용승계 해고철회’ 글자판을 들고 거리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청소는 경비와 함께 노인의 대표적인 일자리로 분류된다. 김기남 기자
빌딩 청소하다 갑자기 해고 통보
“6년간 시말서 한 장 안 썼는데…”
계약 갱신 기대권 주장 소송 제기
홍대·LG트윈타워 집단해고 등
계속 반복되는 청소노동자의 싸움
“어려운 길이지만 소송 택한 이유
비상식적 행위, 기록 남기기 위해”
“법이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우리는 순경만 봐도 무서운데요. 법은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여기까지 오기가 너무 힘들었고, 사실은 지금도 무서워요. 그런데 너무 억울하잖아요.”
살면서 소송에 휘말릴 일도, 법정이라는 곳에 가본 일도 없었던 노인 노동자 4명이 지난해 8월 법원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대형 빌딩을 청소해온 이들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회사로부터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고, 부당 해고이므로 무효임을 확인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노인 노동자들이 이처럼 소송을 내는 일은 이례적이다. 이들은 왜 어려운 싸움을 시작했을까. 소송의 원고인 임순영(64·가명), 최명자(69·가명), 신현철(73·가명)씨를 지난달 24일 만났다.
청소는 경비와 함께 노인의 대표적인 일자리로 분류된다. 어느 건물에나 그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가 있지만, 이들은 사람들 눈엔 잘 띄지 않는다. 신씨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공기업 성격의 기관에서 청소를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이쪽 빌딩으로 재취업을 했다. 모아놓은 재산은 없고, 기초연금 30만원과 국민연금 30만원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청소 일을 계속한다. 임씨와 신씨는 2014년부터, 최씨는 2019년부터 이 빌딩에서 일했다. 면적은 3300㎡(1000평) 가까이 되고 화장실만 10개가 넘는 1개층을 청소노동자 1명이 담당했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월급은 170만원가량이었다.
빌딩 청소는 빌딩 측과 용역업체가 용역계약을 맺고,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는 구조로 돼 있다. 계약기간은 1년. 별다른 일이 없으면 매년 계약이 갱신됐지만, 계약을 연장할 주도권과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진 관리자와 노동자들 사이에선 갈등과 충돌, 갑질과 괴롭힘이 벌어진다. 노동자들이 명절 등에 돈을 상납하기도 하고,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해 일을 그만두기 일쑤였다고 임씨 등은 말했다. 대학이나 병원 등 규모가 큰 사업장에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있지만, 개별 빌딩엔 노조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임씨 등도 노조 소속이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과 담당 구역이 계속 바뀌어 힘들었다는 최씨는 “(관리자가) 말할 때 말대꾸하지 말고 ‘예’만 하라고 했다. 무조건 항복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용역업체 쪽 관계자는 “관리자들도 연세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다툼이 있을 수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에선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용역업체는 지난해 8월 근로계약 기간 만료 10일 전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이들에게 통보했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관리자에게 재계약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답변은 듣지 못했다. “(관리자도) 할 말이 없겠죠. ‘나는 잘릴 이유가 없는데 내가 잘못했으면 나갈 테니 잘못한 사유를 적어달라, 왜 맨손으로 왔느냐’고 말했지만 고개를 푹 숙이면서 미안하다고만 하고 자리를 피하려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자르는지…. 그날 밤 속상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못 잤어요.”(임씨) “6년을 있으면서 시말서 한 장 쓴 게 없고 별 탈 없이 지냈거든요. 그런데 별안간 나가라고 하니까 힘이 들더라고요. 전체가 나가느냐고 물었더니 전체가 아니고 몇 사람만 나간다고 했어요.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나가야 되느냐고 했더니 이야기를 못했어요.”(신씨) 다수가 여성·노인·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은 10년 전인 2011년 홍익대학교의 집단해고 당시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지만, 올해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까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임씨 등은 노동청에 신고해봤자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예 소송을 내기로 했다. 소송을 내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문제를 제기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청소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했다고 했다. “하나, 둘이서는 못해요. 비용도 문제이고 (소송에) 매달려야 되고요. 힘을 합치니까 가능했던 것이지, 나만 있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꿈도 못 꾸죠. 그냥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죠.”
소장은 임씨 남편 박수환씨(가명)가 썼다. 원고 4명이 30만원씩 총 120만원을 모아 인지대 비용을 내고, 변호사는 선임하지 않았다. 박씨와 임씨 등이 대리인 변호사 없이 법정에 나가자 재판부가 소송 구조를 권했다. 소송 구조는 자금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 소송 비용을 내지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다. 소송 구조를 통해 임씨 등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리고 변론기일이 열릴 때마다 임씨 등은 빠지지 않고 매번 법정에 나갔다. 복잡하게 오가는 법률용어들을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절실한 심정을 법정에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계약직 노동자이더라도 지속적으로 계약이 갱신돼왔다면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노동자에게는 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용역업체에선 근로계약이 기간 만료에 따라 종료된 것이고, 임씨 등의 정년이 지났기 때문에 계약 갱신에 관한 정당한 기대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의 1심 재판부는 임씨 등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용역업체가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갱신해왔기 때문에 신뢰관계가 형성됐고, 노동자들에게 계약 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체 노동자 50여명 중 10여명만 근로계약 갱신이 거절됐고, 갱신이 거절된 노동자들의 근무태도가 불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점도 감안했다.
임씨 등을 대리한 김건하 변호사는 “형식적으로 계약기간이 1년이니까 계약기간 만료라고 하면서 사실상 해고를 하는 것”이라며 “(임씨 등 노인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회사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촉탁직이나 정년 이후의 계약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계약 갱신 기대권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
1심 판결은 소송을 낸 지 1년 만에 받은 것이지만,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용역업체는 항소했고,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심에서 용역업체는 관리자가 계약 해지를 말했지만 관리자에게 그러한 권한은 없었고, 도리어 노동자들이 일터에 복귀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부당 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씨와 신씨는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이후 일을 쉬고 있는 상태다. 최씨는 쉴 수 없어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 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바라느냐고 물었더니 억울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씨의 말이다. “첫차를 타보신 적 있으세요? 첫차를 탄 사람의 90%는 청소노동자예요. 그런데 이들의 실상을 보면 열악하다 못해 처참합니다. 서울의 수많은 빌딩을 이분들이 다 감당하고 있어요. 청년들이나 사정이 나은 사람들은 선택권이 있잖아요. 여기서 잘려도 다른 데 가서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이요. 하지만 노인들은 아니에요. 업체들도 대동소이하고요. 우리가 소송을 한 것은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상식에 못 미치는 행위들이 당연하게 이뤄지는데 항변도 제대로 못하는 구조로 만들어놓고 일을 시키거든요.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기를 원했어요. 다른 분들도 이런 기록을 보고 한 발씩 한 발씩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어쩌면 그분들한테도, 저희한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되겠다 싶어서 소송을 택한 거예요. 어려운 길이지만요.”
노인은 받기만 하는 존재? 이젠 주체적으로 바꿔나가야”…노조 설립 등 변화의 바람
당사자 요구 전달·사회 참여 원해
노년유니온 등 노조·단체 결성도
“보수 꼰대 부정적 인식 바꿔야…”
은퇴 이후 ‘퇴직자 노조’ 논의 중
노인 인구가 늘고 일하는 노인의 수가 많아지면서 노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단체를 결성하거나 퇴직자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인 당사자들의 요구사항을 한데 모아 정부에 전달하고,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 노인과 관련된 대표적인 단체는 전국에 조직을 갖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노인회가 있다. 노인의 권익 신장과 복지 증진, 사회 참여 촉진을 국가가 돕는다는 취지의 ‘대한노인회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대한노인회는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다. 최근엔 대한노인회의 독점적 지위를 비판하며 대안 세력으로 한국노년단체총연합회가 만들어졌다.
노후희망유니온·전국시니어노조·노년유니온·대한노인체육회 등 노인이 중심이 되는 세대별 노조·단체들이 결성한 것이다. 전대석 노후희망유니온 사무총장은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높지만 노인문제와 관련해서는 투쟁 주체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며 “노인단체들도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노인들이 자주적으로 일어나 연대를 하는 게 중요하고, 요구사항을 모아 정치권에 제시하자는 취지에서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노인 하면 정치적으로 보수이고 꼰대라는 부정적 인식이 많은데 다른 생각을 수용하는 노인, 노년 세대만이 아니라 후세대 청년을 생각하는 노인으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노인들의 목소리 내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노인단체인 노년알바노조의 허영구 준비위원장은 “노인들이 ‘무슨 이 나이에 노조를 하냐’ ‘노조는 빨갱이 아니냐’ 같은 반응을 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노조가 다루는 고용 안정과 임금, 산재뿐 아니라 노동문제와 복지문제, 생활노조로서의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해 출발했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노인빈곤 해소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민주노총 안팎에선 퇴직자 노조를 만들자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당장은 서울교통공사와 현대자동차처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사업장 중심으로 설립한 뒤 향후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그동안 노인들은 일자리든 복지든 정부와 사회로부터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노인들이 주체가 돼 요구하고 바꿔나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퇴직자 노조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좋은 삶은 물론 좋은 죽음과 사회 기여까지 퇴직자 노조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퇴직자 노조가 만들어질 경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남은 과제다.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통상의 노조와 달리 퇴직자 노조는 그러한 회사가 없기 때문에 누구를 대상으로 요구를 할지 등의 문제가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지난 6월 올해와 내년 퇴직 예정인 조합원 2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퇴직자 노조의 필요성은 가늠할 수 있다. 응답자의 61.9%는 공사가 50세 이상에게는 재취업 지원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고령자고용촉진법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또 응답자의 65.6%가 퇴직자 교육 중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교육으로 ‘재취업을 위한 직종, 자격증 및 채용시장’을 꼽았다. 공사와 노조가 퇴직자를 위해 지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도 ‘재취업 알선 및 교육, 정보 제공’이 가장 많은 답변으로 나왔다.
노인노동
https://bit.ly/3HnhWxw
3.
“가장 속상한 말은 “연세가 어떻게?”…청소·경비일도 감지덕지”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입력 : 2021.12.08 06:00
②늙은 게 죄인가요
지난 3일 서울의 한 노인취업지원센터에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3일 서울의 한 노인취업지원센터에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로 일자리 경쟁 더 치열해져
요양보호사 일은 40대까지 내려와
업체가 노인은 원하지 않기 때문
배관공, 양복점·음식점·봉제공장·슈퍼마켓·고물상 운영, 가구산업 종사, 농업, 건설현장 형틀공, 파출부, 용접공, 도청 공무원, 의류 업체 회사원.
경기도의 한 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지난 10월 취업을 알선한 노인 33명이 젊은 시절 10년 이상 했던 일들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노인이 돼 일자리를 구하려면 이 같은 경력은 소용이 없다. 도시에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나 경비 같은 단순노무직으로 제한돼 있다. 기업들이 노인 노동자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33명 중 20명은 청소, 12명은 경비, 1명은 주차관리로 취직했다. 평균 월급은 165만원, 나이가 많을수록 급여가 적었다. 일하고 싶은 노인은 많고, 노인을 받아줄 기업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들은 취업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능력·경력보다 나이가 우선시되는 채용시장에서 노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받아들이며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자조의 말을 내뱉었다. 그사이 ‘노인의 노동, 일자리는 어때야 하나’라는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 능력·경력보다는 나이부터 묻는다
조그마한 개인사업을 20년간 했던 장현미씨(63·가명)는 50대에 일자리를 구하러 구청 일자리창출과에 방문했다가 ‘아무 경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독자적인 사업을 벌인 경험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소밖에 할 게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6개월만 해보라는 구청 직원의 권유에 시작한 청소 일을 10년째 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인의 절반가량(48.7%)이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
노인 취업에서는 나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취업하려면 어딜 가든 나이부터 묻는다”고 노인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노인에게도 ‘생산성’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이 나이 많은 노동자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어떤 능력이나 기술이 있든지 간에 한 살이라도 어려야 취업이 잘된다. 일자리를 구하러 노인취업지원센터나 복지관 등을 방문하는 노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한 노인 일자리 담당자는 “좋은 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펴지 못하고 몇 달을 놀다가 결국 아무 데나 보내달라고 다시 온다”며 “대졸 학력을 갖고 있어도 고시원에 살면서 경비 일을 하는 노인도 있다”고 했다. 다른 노인 일자리 담당자도 “처음 일자리를 구하는 노인들은 왕년의 멋진 경력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을 알고 눈높이가 낮아진다”며 “청소와 경비같이 한정된 단순노무직이 많다보니 ‘이 나이 됐을 때 할 수 있는 게 진짜 없구나’라며 속상해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노인에 대한 질책과 추궁은 고객들의 불평과도 연결돼있다. 노인들은 취업을 위해 고학력을 숨기고, 한 살이라도 나이를 줄이기 위해 혹 생년이 실제보다 빠르게 기재된 경우에는 주민등록까지 바꾸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와 실업이 이어지면서 노인들의 일자리 경쟁은 더 심해졌다. 청소·경비는 물론 요양보호사 분야에 새로 진입하는 노동자들의 나이가 40대까지 내려왔다. 1년 계약직으로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신숙희씨(61·가명)가 말했다. “누구든지 일하고 싶어서 난리죠, 난리. 공무원을 퇴직하고 요양보호사를 하는 사람도 여럿이고, 40대 초반도 있어요. 아무래도 채용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을 뽑고 싶을 것 같은데, 제가 나이가 많아서 (다음 계약 갱신에서는)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간병 쪽은 중국동포 노동자들이 늘었다. 최신 아파트단지나 주상복합건물은 경비를 시스템화하고 젊은 인력이 많은 경비업체에 시설 관리를 맡기는 추세다. 스마트폰이나 단말기로 주소를 입력하거나 지도를 보지 못하면 택배 일도 하기 어려운 디지털 시대에 노인들은 설자리를 점차 잃고 있다.
“가장 속상한 말은 “연세가 어떻게?”…청소·경비일도 감지덕지”
산재 사고 기업 책임 강화된 이후
건강검진 요구하며 일감 안 주거나
결과에 따라 계약 해지 통보받기도
■ 건강을 증명하라…“현대판 고려장”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 숙직을 하는 조강원씨(78·가명)는 고독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조씨는 오후 4시반쯤 출근하고, 다음날 오전 8시반쯤 퇴근한다. 매일 16시간을 학교에 있는다.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가 고요한 밤 시간대, 조씨는 복도를 다니며 불을 끄고 문단속을 한다. 5평 남짓한 숙직실에 TV 소리만 크게 울리고,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지 않을 때 조씨는 자신의 일이 ‘등대지기’ 같다고 생각한다. 가끔 외부인이 학교에 무단으로 들어오면 대응하기도 한다.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큰 문제없이 해온 일이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한 달 급여는 140만원가량이다.
서울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다녔지만 보증을 잘못 섰다가 생활이 어려워졌다. 공장에서 경비를 하다가 넘어온 게 학교 숙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씨는 특수운영직군으로 분류됐다. 학교에선 정부 방침에 따라 체력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노인들은 일하면서 건강함을 증명해야 한다. 학교에서 5년 넘게 일한 그는 지난해 근로계약 해지 통보서를 받았다. 체력 인증 중 유연성 항목에서 3등급 이하 점수를 받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체력 인증은 저를 자르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봐요. 나이 많은 사람이 유연할 수가 없잖아요. 숙직이 중노동도 아니고, 모두가 체력 측정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유연성이 이 업무랑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여차저차해 일단 계약이 연장됐지만, 내년 재계약 시점이 다시 돌아온다. 조씨는 이번엔 포기할 생각도 한다고 했다. “여기는 현대판 고려장이죠. 실은 죽는 사람도 있대요. 예전에는 연휴 때도 계속 근무했거든요. 황금연휴 4, 5일간 꼬박 학교를 지켜야 하는데, 나중에 와보면 죽어있는 경우도 있다고요. (…) 노인의 노동은 불가피해요. 100세 시대이니까요. 기계가 가만히 있으면 녹이 슬듯이 사람도 활동을 하지 않으면 병이 생겨요. 젊었을 때 저축을 많이 하고 성공했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한 번 망하면 그 뒤로는 계속 빈곤이에요. 패자부활전이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힘들잖아요.”
노인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산업재해와도 연관된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산재 사고에 대한 기업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면서 최근 건설업계에서는 노인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거나, 건강검진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안전 강화와는 별개로 노동자에게 ‘건강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올해 초까지 건설 현장에서 일한 최환승씨(71·가명)의 말이다. “나이 먹었다고 사고가 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미숙한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는 거예요. 20년 이상 일해온 사람들은 꼭 나이가 문제되는 건 아닌 거죠. 그런데 60세가 되면 회사에서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하고 작업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해요. 사고가 났을 때는 본인이 책임진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요구하는 거예요. 책임 회피인데, 우리는 힘이 없으니까 회사에서 내라고 하면 내야죠.” 고용노동부의 산재 사고 사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 10명 중 4명은 60세 이상이다.
일자리 수요 넘치는데 공급은 한정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체념할 뿐
“자격증 따면 뭐하나…나이가 볼모”
점점 취업시장서 소외되는 노인들
■ 열악한 노동환경, 내면화한 노인들
노인들은 취업 좌절과 해고, 열악한 노동환경이 불만이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체념적 태도를 보였다. “이 나이에 누가 써주겠느냐.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많이 겪어봐서 익숙하다”는 말들이 나왔다. 결혼 후 자녀 양육에 전념했던 이순녀씨(64·가명)는 나이 들어 구직을 하면서 한식 요리와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도 시도했지만 요양보호사로 자리를 잡았다. “배우면 뭘 하냐고요. 우리를 쓸 곳이 없는데. 제가 배워봤지만 나이 60이 넘은 여자를 바리스타로 써줄 커피집이 어디 있을 것이며, 또 한식 자격증을 겨우 딴다고 해도 음식점에서 나를 조리사로 채용할까요? 그렇다보니 요양보호사를 선택한 거죠.” 엄마로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으니 그나마 요양보호사가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씨는 “나이가 볼모”라는 표현을 썼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몸무게가 80㎏나 되는 치매 노인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고, 기저귀를 갈면 금세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다. 최근엔 사정이 나아졌지만 한때는 노동과 휴식의 분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이씨는 말했다. 밤에도 치매 노인이 기침을 하거나 소리가 나면 가볼 수밖에 없는 식이다. 관리자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노인 노동자에게 막말을 하는 등 인권침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나이에 어디 가서 이 돈을 버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성긴 복지망은 일자리 부족과 얽혀 노인들이 빈곤한 상태에서 전전하게 만든다. 시민단체들은 최근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기초연금을 받으면 연금 수령액을 소득으로 인정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생계급여에서 소득 인정 부분을 삭감해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사실상 기초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기초연금이 오를 때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소득은 제자리이거나 상대적으로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정부 일자리 사업인 공공근로에 참여하면 공공근로 급여도 소득으로 인정돼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한다.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 지칭한 박철수씨(66·가명)가 그런 사례다. 박씨는 오랫동안 택시운전 기사를 하다가 나중엔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했다. 일용직 일은 주로 야간 노동으로 했다. 그게 일당이 더 많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페달을 자주 밟은 탓인지 박씨는 목과 허리 디스크를 앓았다.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쉴 수밖에 없었다. 자산도, 소득도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지원을 받았다.
그런 박씨는 지난해엔 공공근로를 하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을 포기했다. 1년여간 공공근로를 했고, 이후 실업급여를 받았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에는 구직 활동을 한 근거 자료를 노동청에 내야 한다. 박씨는 취업정보 사이트인 워크넷에서 청소 일자리를 찾았다. 십여 군데 업체에 전화를 넣고 직접 가보기도 했지만 구직엔 실패했다. “구인 공고에는 성별이 쓰여있지 않은데 (업체에) 가보면 여자들만 구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찾아간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예요. 헛수고하는 거죠. 청소하는 것은 똑같은데, 제가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쩔 수 없이 공공근로를 1년 더 하고 그다음에 경비나 다른 쪽으로 폭을 넓혀서 찾아보려고요.” 그는 향후 10년은 더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https://bit.ly/3sJAaFG
4.
‘늙음’으로 차별할 수 없게…‘행복한 老동자’ 가이드라인 세워야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입력 : 2021.12.21 21:12
④노인을 위한 나라
‘늙음’으로 차별할 수 없게…‘행복한 老동자’ 가이드라인 세워야
노인 노동 총괄 컨트롤타워 부재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노후 위해
사회참여 보장하는 ‘법률’ 필요
일하는 노인이 많아지는 시대,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일할 수밖에 없도록 노인들을 자꾸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하는 노인의 존재를 외면하면 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노인들이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보장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면서도, 노인의 노동을 직시하고 이들의 노동이 행복한 노년을 사는 데 도움이 되도록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노인 빈곤이 심각하다는 데 공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 대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과 함께 노인 대책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안정적인 연금 수급’이다. 현재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 연금을 통한 소득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 노인들이 생계형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재정 문제와 얽혀 개선 속도가 부진하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노후의 다층적인 소득보장체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잘 구성돼 있지 않다”며 “이 체계의 혜택을 골고루 받는 노인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기초연금,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에 의존하는데 그 소득 수준도 굉장히 낮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유럽은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30% 이상이지만 한국은 11% 수준”이라며 “국가 예산을 키워서 노인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소득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국민연금도 한계가 있고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나머지 50%는 어떡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며 “결국 예산의 문제이고, 기본소득도 고민해볼 시기라고 본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 요구안에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50% 상향을 포함시켰다. 한국노총에서 최근 출범한 ‘노인 빈곤 해소와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전 국민의 공적연금 수급권 보장, 최저생계비 이상의 연금액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뜨거운 감자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제19조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고령화가 계속되고 연금 수급 시기가 65세이기 때문에 소득 공백을 없애기 위해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정년 연장의 효과가 정규직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간병인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나 영세기업에 종사하는 경우, 자영업자는 정년 연장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쪽에선 반대 기류가 심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9일 5인 이상 기업 1021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0곳 중 6곳이 정년 연장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연공급제로 인한 인건비, 고령 인력의 생산성 저하, 조직 내 인사적체 등을 부담되는 이유로 꼽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년 연장은 연공급제 임금체계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젊은 시기 적은 임금을 받고 근속 연수가 쌓일수록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가 정년 연장에 방해가 되므로 직무의 난이도, 가치 등을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노인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노인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 시간·환경 등 맞춤형 설계로
노인친화적 노동유연성 확보해야
정부, 노인 빈곤 구제로 접근 말고
‘노동 생애 설계’ 서비스 제공을
노인의 노동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대안을 마련하는 논의는 최근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필두로 한 연구진은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일할 수밖에 없는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노인일자리를 규정하는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인에 관한 법률로 노인복지법,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고령자고용법 등이 있지만 노인일자리와 관련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노인이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노후를 영위할 수 있도록 일자리 등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취지의 별도의 노인일자리 관련 법률을 만들어 노인일자리 기본계획 수립과 노인일자리 위원회 설치 등을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노인 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연구진은 냈다. 법정 은퇴나이를 넘은 노인이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고용조건, 노동환경, 최소·최대 노동시간, 임금, 건강권 등에 대한 내용을 규정해 노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공공기관부터 적용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또 젊은 노동자들과 달리 노인 노동자는 단시간 노동을 선호하고 지나치게 생산성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등 노인친화적인 노동유연성이 무엇인지 연구·설계하고, 노인의 고용 안정을 위해 주된 일자리 경력을 바탕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고용환경도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노인의 노동을 ‘권리’ 측면에서 다루려는 시도들도 나타난다. 노인에게 생활을 위한 적절한 소득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노인의 권리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지점에서다.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노인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노령을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특히 여러 법령에서 나이를 이유로 고용상의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 연령 차별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규범을 만들고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노인 노동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문제도 있다. 복지 영역인지, 노동 영역인지도 불명확하고 여러 부처에 업무가 분산돼 있다. 한 노인일자리 담당자는 “노인일자리 관련 정보가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 등으로 분산돼 있는데 통합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한 군데로 정보를 모으기만 해도 일자리를 찾는 노인에게 안내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노인일자리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일자리 개발은 물론, 노인 우선 고용과 노인생산품의 판매 이용을 촉진하는 식의 지원책도 제시된다. 이영민 숙명여대 인적자원개발대학원 교수는 “노인을 고용해 현장에서 숙련도 높은 노동자가 노인을 지도하거나 업무를 숙달시키는 일·학습 병행(OJT) 방식을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며 “노인에게 적합한 업종과 훈련 수요를 발굴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고령사회대응연구회를 만들어 지난 9월부터 고령사회에 대한 정부 정책 대응과 정년 연장, 인프라 구축 등을 논의하고 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인 문제는 고용정책을 통해서 일자리만 준다고 해결되지 않고 복지정책도 함께 가야 한다”며 “정년 연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에 정년 연장을 왜 하려고 하는지, 실질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노동 생애 설계’가 필요하다. 청년 시기의 노동, 노인 시기의 노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전 생애적 관점에서의 노동 설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젊은 시기에 너무 일만 열심히 하고 자기계발 등을 하지 못한 결과 노인 시기에 열악한 노동으로 빠지기도 한다. 최혜지 교수는 “노동은 사람이 일생에 거쳐 굉장히 장기간 동안 하는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한 사람의 경력을 관리해주면서 필요할 때 직무 훈련을 지원하는 식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젊어서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면, 죽기 전 생애 마지막 노동이 될 수도 있는 노인의 노동은 생산성에서 벗어나 자신이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었으면 한다”며 “그렇게 노인의 노동이 새롭게 정의돼야 노인들이 더 건강해질 수 있고 역동적인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들쑥날쑥한 노인의 기준
붕 뜬 ‘퇴사와 연금 사이’
‘늙음’으로 차별할 수 없게…‘행복한 老동자’ 가이드라인 세워야
‘노인’이라 불리는 나이는 언제부터일까. 고령자의 기준은 55세(이하 만 나이)부터이고, 노동자의 정년은 60세다.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는 65세인데,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70세부터 노인이라 부르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노인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일할 수 있는, 혹은 사회보장제도를 수급할 수 있는 ‘자격’과 연동되는 중요한 문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달 23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 1894호 ‘노인 연령 기준의 현황과 쟁점’을 보면, 노인 연령 기준 설정은 대개 고용의 관점과 사회보장의 관점을 적용할 때로 나뉜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에서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고령자는 동법 시행령 제2조에서 55세 이상으로 정의됐다. 이에 따라 노인취업지원센터 등에서는 55세부터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은퇴 이후 임금 외 소득보장의 기본형태인 국민연금은 수급 개시연령이 62세이나 2033년까지 5년마다 1세씩 상향돼 65세로 높아진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의 수급 연령도 65세다. 철도 운임 할인,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 각종 사회보장혜택 상당수도 역시 65세부터다.
고용과 사회보장의 기준에서 정의하는 노인 연령이 길게는 1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이 차이가 소득 절벽으로 나타나기 쉽다.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노인 노동자 상당수가 이 점을 지적했다. ‘실제 55세, 60세에 회사에서 떠나라고 압박받지만, 연금은 65세부터 받으니 그간은 뭘 먹고 살라는 것이냐’는 항변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대개 70세 정도까지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출생한 아이의 기대수명은 83.3년이다. 약 50년 전인 1970년 62.3년에 비해 20년 넘게 늘었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노년’의 시작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바뀌어간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현재 65세 이상 노인이 생각하는 노년의 시작 연령은 평균 70.5세였다.
결국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지만, 목적은 다른 경우가 많다. 철도 운임 할인 등 노인에 대한 각종 혜택을 폐지하거나 대상 연령을 70세로 올려야 하다는 측은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각종 사회보장기금 등의 재정 적자를 우려한다. 반면 고용 기준의 연령 향상은 노인 일자리의 보장을 의미한다. 이들은 사회보장제도에서 정의한 노인 기준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근로능력이 없는 빈곤 노인들의 기초적인 생활 보장을 위해서다. 입법조사처는 이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무임승차제 등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의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시리즈 끝 >
https://bit.ly/3JpB5AN
'정책비교 > 노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저임금 이야기 1. (0) | 2022.01.11 |
---|---|
(고) 김다운, 전기 노동자 , 청원내용. 활선차, 안전장비, 2인 1조로 일하라는 지침이 모두 무시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0) | 2022.01.06 |
일본 출신의 다문화 강사, 10년 비정규직, 문자 한통으로 해고. (0) | 2021.12.31 |
"주 40시간 일하고도, 자녀들을 먹여살리지 못하는가? 미국 직장인들 월급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버니 샌더스 (2015) (0) | 2021.12.24 |
여수 산단(국가산업단지) 유독물질 저장탱크 폭발로, 3명 노동자 사망. (1) | 2021.12.13 |
통상임금. dec 3.2021 기재부 . 노동자에게 돌려줄 통상임금, 총인건비 산입 추진. (0) | 2021.12.05 |
전남 영암. 항만 부두. 강풍 부는데…선박구조물 제작하던 노동자 11m 추락사.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아들은 '산재'로 50억 퇴직금 받는 현실을 갈아엎어야 한다. (0) | 2021.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