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반나치 반파쇼 저항운동을 시작으로 40대에는 그리스 군사쿠데타에 저항했던 사회주의자이자 국제적인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1925-2021)가 96세 일기로 별세하다.
테오도라키스는 한일갈등과 유사한 그리스-터어키간 대립을 지양하고 화해할 것을 주창하고, 그리스와 북 마케도니아와의 적대를 종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는데, 크레타 섬 출신이고, 그의 어머니는 그리스인이지만, 현재는 터어키에 속하는 체시메(Çeşme) 출신이다. 테오도라키스는 어렸을부터 그리스 민중(포크) 음악과 그리스정교와 비잔틴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작곡자가 되려고 했다.
1. 반파쇼 반나치 레지스탕스 운동.
그런데 그의 10대에 독일과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점령하자, 반파쇼 저항군에 가담했으나 체포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 빨치산(파르티잔)은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영국 처질수상이 급파한 특공대는 조국해방을 위해 싸운 그리스 공산주의자들을 총살시켜버렸다.
제 2차 세계대전 와중에 미영프와 소련은 ‘반파쇼 동맹’이었지만, 그 내부에서 ‘경쟁’은 싹텄고, 냉전의 시작은 한반도가 아니라 그리스가 포함된 발칸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는 ‘미국 영국 프랑스’에 속하고, 그리스를 제외한 모든 발칸반도 국가들은 친-소련,스탈린 편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것이 당시 미영프와 소련과의 타협의 결과였다.
2. 전후 탄압과 투옥
2차 세계대전 중에 그리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은 그리스 왕정타도와 반파쇼 척결을 내세우며 투쟁했으나, 1945년 종전 이후, 왕정세력과 미영프와의 동맹 세력 (친자본주의)은 처칠이 급파한 특공대부터 그리스 공산주의자를 척결해나갔다.
만약 그리스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들의 세력이 컸거나, 소련(스탈린)과 미영프의 ‘발칸 반도’ 분할통치 타협이 없었다면, 냉전은 다시 발칸반도에서 발발했을 것이라는 역사학자들은 평가한다. 남북한의 국제적인 불행은 그리스와 화약고 발칸반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2차세계대전 중에 반나치 반파쇼 투쟁을 하는 그리스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1946년과 1949년 사이 탄압을 받고, 아테네 근처 마크로니소스 섬에 3년간 갇혔다. 이 섬에서 그리스 당국은 공산주의자를 ‘전향’시키는 교육을 실시했다. 이러한 ‘재교육’을 받은 테오도라키스는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졌고, 폐병도 앓았다. 96세까지 살았지만, 이 때 당한 고문의 후유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산 채로 묻어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을 정도로 ‘마크로니소스’ 섬 수용소의 ‘공산주의자 뇌 세탁’ 교육은 가혹했다.
3. 음악의 길. 대중의 사랑.
이런 정치적 박해 속에서도 테오도라키스는 1950년대 아테네와 파리에서 음악 공부를 했다. 그는 ‘음악’과 ‘정치’ 두 영역을 늘 결합시켰다. 1963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반전평화 시위가 개최되었는데, 그리스 우익단체가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라는 반전활동가를 테러로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람브라키스를 기리는 정치와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다.
1964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세계적인 대중적인 작곡가’ 대열에 올랐다. 그가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Zorba the Greek”에서 앤소니 퀸과 앤런 베이츠의 포크댄스 음악 작곡자였다. 그는 특히 그리스 기독교정교, 비잔틴 문화, 기타처럼 생긴 부추키스(Bouzoukis)라는 터어키-그리스 전통악기에 능통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한 반복적인 리듬을 사용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전염’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은 교향곡, 발레, 오페라, 영화음악, 투쟁가요 등을 포괄하는 거의 백과사전이라고 볼 수 있다. 미키스가 곡을 쓰고, 마리아 파란투리가 노래를 불렀고, 그리스, 유럽, 미국 등에서 그들의 명성은 드높았다.
4. 그리스 군사쿠데타 발발과 독재타도 운동
1967년 4월 21일 그리스 대령 게오게 파파도풀로스(George Papadopoulos)가 우익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정당은 해산당하고, 모든 언론자유는 압살당했다. 한국 1979년 전두환-노태우의 ‘1212 군사쿠데타’, 그 이전 1960년 516 박정희 군사쿠데타와 동일한 ‘그리스 훈타 Greek Junta’는 1974년 7월 14일까지 6년간 지속되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작품활동과 작품감상 모두 탄압받았다. 파파도풀로스 군사쿠데타 세력은 그를 5개월간 구속시킨 후에, 펠로포네수스에 있는 산골마을 자투나로 추방시켜버렸고, 그는 가족들과 같이 그 곳에서 3년을 갇혀 살아야했다.
테오도라키스의 구명 활동이 국제적으로 펼쳐지자, 군사정권은 테오도라키스를 파리로 망명조치 시켰다. 폐병을 치료받은 후, 그는 1980년 광주를 노래한 ‘님을 위한 행진곡’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영혼 행진곡 March of the Spirit”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
그는 그리스 군사쿠테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 음악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세계 콘서트를 통해, 칠레 아옌데 대통령, 파블로 네루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 스웨덴 올로프 팔메 수상,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과 ‘국제 연대’를 형성해 그리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다.
1974년 시민과 학생운동의 비타협적인 저항으로, 파파도풀로스는 해외로 쫓겨나고, 군부는 다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쿠데타 유지를 선언했지만, 군부 내부에 장교들이 시민 편을 들어주었다. 이후 그리스 왕정은 폐지되고, 새 헌법에 입각해 현재와 같이 다당제에 입각한 그리스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5. 음악과 정치의 결합
‘그리스 군정 타도’ 이후, 그리스의 정가는 사민주의 성향은 파속(PASOK), 특히 파판드레우 가문이 그리스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 공산당원이었고, 1981년에는 공산당(KKE)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8년 그는 그리스 공산당과 잠시 결별하고 그리스 보수우파 “신민주주의 ND”당과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Konstantinos Mitsotakis)와 손을 잠시 잡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리스 사민주주의 정당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정부의 부정부패와 좌익의 테러주의에 대해 테오도라키스의 반발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파와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고, 1992년 보수 내각 장관직을 사임하고, 다시 사회주의자로 복귀했다.
1970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테오도라키스는 “나는 두 가지 소리와 더불어 사는데, 하나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참여의식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는 그리스 정부의 재정위기 국면에서, 유럽연합과 IMF 긴축독재를 비판하며, 시리자 정부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6. 전 그리스인의 추모.
2021년 9월 2일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심폐기능 정지로 96년간의 생을 마감했다. 그리스 대통령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로는 “범-헬레나를 대표하는 인물, 세계적인 예술가”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리스 수상 미초타키스는 3일 국민장례식을 치른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문화부 장관 리나 멘도니는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오늘 우리는 그리스 정신의 절반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테오도라키스는 반파쇼 민주주의 운동가, 국제적 국내 불평등과 불의와 일평생 싸워온 투사였고,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알 파치노가 열연했던 “세피코 Sepico” 등 영화음악을 작곡했던 전 세계적인 예술가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스 독립, 인민과 노동자 해방, 군부독재 타도 운동을 해온 정치가이자 음악가로서 테오도라키스, 그는 갔지만, 정치적 국면마다 시대적 정신을 표현한 그의 음악과 행동은 영원히 그리스인들, 발칸반도인들, 유럽인을 넘어 전 세계 노동자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테오도라키스와 앤서니 퀸 )
(1974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2015년, 시리자 대표 알렉시트 치프라스와 대화하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Alexis Tsipras to meet with Mikis Theodorakis -24/02/2015
(1973. 영화. 세피코 Serpico . 뉴욕 경찰 프랭크 세피코가 경찰 내부 부정부패를 고발하자 내부에서 보복당한다.)
테오도라키스가 알 파치노가 프랭크 세피코를 연기한 "세피코"의 영화음악을 제작했다.
"대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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