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2020. 1. 2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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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20:29

장하준 교수입장에 대해 – 차이와 공통점 (1)


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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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쾌도난마 한국경제:2012>를 한국에서 보내주셔서 그 책을 읽기 전에, 그 이전에 개인적인 관심으로 봐온 장하준 교수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나 대선전략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따로 처리하겠습니다. 


서설 


한국언론을 보면, 정책선거를 하는 사람들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장하준교수이다. 장하준의 주장도 지난 30년간 비주류였고, 지금도 국내 대학 경제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는 '배척'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대학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보수성이 얼마나 뿌리가 강한가를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아쉬움이 있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가장 좋은 그림은, 장하준교수의 경제정책과 진보정당(좌측)의 대안이 경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진보정당운동이 2004년 국회의원 10석을 얻은 이후 비만증세에 암세포까지 퍼지지 시작해서 자기세포(자기 편)까지 갉아먹고 죽이기를 거의 8년간 가까이 지속했다. 2012년 통합이식수술은 피와 산소부족으로 실패했고, 수술대 오른 환자는 병원을 탈출해 행방불명되었다. 



보수당(새누리당),리벌리스트(민주당)과의 차별성, 즉 진보정당의 자랑이었던 진성당원제는 '불법 여론 조작'도구로 전락했고, 한국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대두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는 정파두목들의 당 헤게모니 장악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세번째 지역패권투표도 지역감정이나 봉건적 혈연 지연 학연에 기초한 계파정치 타파를 부르짖으며 '정책정당' '이념정당'을 외쳤던 진보정당도, 국민들 앞에 '제 밥그릇 챙기기 위해서는 동지들도 까부수고 패는' 파벌정치 집단으로 각인되었다. 



1.장하준교수와 좌파정당의  정치적 연대 가능성과 차이점을 이야기하게 된 정치적 배경



1970년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나 좌파의 입장에 따르면, 현재 장하준교수의 ' 자본 통제 capital control'는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혼합경제 (케인지안 모델: 자본주의 시장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하자는 입장)' 혹은 '수정자본주의' '국가 자본주의' 로 쉽게 분류되고 비판적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70년대가 아니더라도, 2011년에 출판된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는 23가지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이라는 책, 서문 (introduction xiii)에 보면, 장하준은 “나는 자본주의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명해놓은  가장 좋은 경제 체제라고 믿고 있다“고 적고 있기 때문에, 반-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적 좌파의 정치적 신념과는 충돌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은 23가지”에서 장하준이 비판하는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아주 특수한 한 가지 종류의 자본주의이지, 자본주의 사회체제 일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렇게 해석되도 될 것 같다. 장하준교수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비판의 정치적 목표는 '더  나은 자본주의, 인간적 얼굴을 한 자본주의'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 역학관계와 대선 후보들의 정책들을 고려했을 때,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장하준 교수의 '자본 통제 capital control'의 입장과는 정치적 연대 가능성 (*물론 capital control 자본통제의 주체와 방식을 놓고는 경쟁관계에 있음)이 존재한다.  



인간적 얼굴을 한 '착한' 자본주의가 안철수라는 인물로 '재림'했으면 좋았을텐데, 안철수의 친구는 이헌재였다. 장하준교수의 정책적 '적'이다. 왜냐하면 이헌재는 1997년 IMF 통치이후  '미국식 월 스트리트 자본주의를 선진기법이라 칭송하면서, 앵글로 색슨식 자본주의를 한국에 이식화한 재정부 모피아의 대부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담론과 여론정치에서 장하준교수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비판과 좌파 정당의 정치적 연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장하준교수의 정치적 '좌경화' 경향도 눈에 띄이기 때문이다. 9월 21일 최근 민주당 기관지가 된듯한 한겨레 신문 주최로 [진보-보수를 넘어 사회통합]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치하에 <자본주의와 복지국가 모델> 토론회가 있었다. 마르크스 <자본> 번역자 김수행 선생도 등장했고, 장하준 교수와 짝을 이뤄 패널 중에 신-고전파 교수를 공동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재인 캠프 주관인 <담쟁이 포럼>에 출연해서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비판하면서, 노-사-정 위원회를 복원시키는 한국식 <노동자-경영자 공동 결정론 Mit-bestimmung:독일의 사례>을 하나의 대안으로 볼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위 두 발표장에서 장하준의 발언들은 과거 <나쁜 사마리아인들> <23가지> 의 내용에 비해서, 상당히 정치적인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위 두 책의 핵심은 한국은 여전히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주체로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고 (산업과 고용정책, 복지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주장), 민간자본과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리더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하준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즉 '자본 통제 capital control'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제안이다. (23가지 p.136)



따라서 국내 자본, 초국적 자본에 대한 통제라는 점에서는 장하준교수와 좌파정당이 '정치적 연대'할 수 있겠다. 다만 그 주체와 방법을 놓고 차이점이 있는데, 최근에 와서 장하준교수가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복지국가 정책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여론에서 보다 더 부각되느냐 마느냐는, 장하준의 몫이기라기 보다는 좌파정당과 노동자들의 몫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비록 장하준교수가 '자본 통제'를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이 '자본통제'는 꼭 좌파, 리버럴리스트 정당(민주당)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은 장하준의 입장은 1) 새누리당 박근혜도 2) 민주당, 안철수 team 도 3) 진보정당도 언제든지 다 같이 할 수 있는 입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장하준 교수를 새누리당 박근혜가 영입하는 것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정책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인구 1천만 이하 국가들)을 제외하고 복지체제가 잘 갖춰진 나라들 중에 하나가 캐나다인데, 캐나다의 경우 보수당 (현 집권당도 보수당인데,이름이 진보적 보수당이다.PC=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이 각 주 정부 차원에서는 집권을 하면서, 연방차원에서 자유당 정권 혹은 신민주당(NDP: 유럽의 사민당과 유사)과 타협하고 경쟁하면서 복지제도를 만들어왔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 쌔처, 미국 레이건의 조폭-신자유주의적 정책과 유사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측면에서는 장하준교수가 정당을 선택하는 기준은, 장하준 교수에게 부여될  '권력 의지'와 '권력 집행력의 실제 크기'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드러난 장하준 교수의 정책들은  테크노크라트 케인지안에 가까웠으나, 최근 정치적 발언들은 사회운동적 케인지안 (노조, 시민단체, 풀뿌리 민중운동 등의 제도화, 법률화 통로에 관심, 노-사-정 위원회의 복구 등) 경향으로 옮아간 듯 하다. 한국 보수당, 민주당의 립서비스와 실제 정책실현 의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미리 짐작할 수 없지만, 장하준 교수의 경제정책은, 그 이론적 근거로 봐서는, 새누리당, 민주당,  좌파당 모든 방향으로 다 나아갈 수 있다. 




2012.10.04 17:48


장하준교수 입장에 대해 ; 차이 (2) 진보좌파적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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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교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이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민주당-새누리당을 능가하는 경제정책이 없느냐고 비판, 비난,지적,요청당하고 있다. 2000년 민노당 이후 지금까지 진보정당이 대안적 경제정책을 기대 이상으로 생산해 내지 못한 이유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주체 내적인 원인을 따져보자. 행정 (혹은 시의원 -국회의원 입법) 운영 기회가 왔을 때, 구청장(울산 동구,북구청장 등) 시의원들의 정치적 경험들에 대해서, 성과/한계/차후 계획 등을 철저하게 평가해서 전 당적으로 공유하지 못했다. 당원들과 연구자들도 결합해서 그 행정-입법 경험과 실천을 경제,정치,법률,행정,도시건설,노동 등의 주제로 발전시키지 않거나 못했다.




현재 진보신당, 과거 4년간 진보신당이 정치적 실천을 보면, 굉장히 제한된 소재 몇가지에 한정되어있고, 그 파급력 역시 크지 않다. 




정책정당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 비판 (1) 노회찬 발언 “우리 정책은 다 준비되어 있는데, 발표할 정치적 자리나 기회가 부족하거나 언론이 안 실어준다” 정책 개념이 제한적이고 잘못 설정되어 있는 견해다. 이런 견해는 정치적으로 지적으로 실천적으로 오만하고 '조직적 관점'이 결여되었다. 정책 생산의 발원지는 크게 지역주민들, 직업공간들, 타정당들과의 비교 등에서 나온다. 우리가 이것들을 다 준비하고 있단 말인가? 위와 같은 견해는 적절하지 않고 거짓에 가깝다.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더 이상 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2)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이나 공공정책 교과서 절충적 복사로 정책생산이 완료되었다는 견해. 이런 견해는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는 테크노크라트 형에서 나온 오류이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시절 행정관료들이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 독일 현지 방문해서 '보고서'작성하는 정치행위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민주노동당 시절 '서민에게 복지를 부자에게 세금을' 세금 정치학의 출발점 이후, 이것은 하나의 출발점에 불과함에도, 수주대토식으로 이와 유사한 무슨 '특출한 아이템'으로 승부하려는 '대박 정신'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책정당을 만들 것이며 누가 그 정책의 생산자, 실천자가 될 것인가? 극단적인 비교를 해보자. 미국 대학들은 연구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고, 정책생산 교수들이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왜 미국 백악관 정치는 월가 금융자본가 손에 좌지우지 되는가? 그것은 미국 와싱턴 D.C에 있는 정책생산자 회사 160개의 씽크탱크를 좌지우지하는 게 로비스트들이기 때문이다. 비지니스-클라이언트(고객) 연맹체가 백악관의 정책들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 씽크탱크가 정책생산 교수들을 고용하고, 정책들을 철저히 계급기반, 차별적으로 지배동맹 엘리뜨에 유리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좌파정당들은 어떻게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가? 연구소(think tank)야 당연히 당에 기관으로 있어야하지만, 저 로비스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당원들과 지역주민들과 노동자들이다. 





과거 민주노동당,현재 진보신당 당원교육은 굉장히 제한적인 의미에서 교육이다. 학원식, 강연식, 암기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동적인 방식에 불과하다. 이것은 좌파 정당의 참 모습이 아니다. 





목표는 전 당원의 정책생산자화이다.  이게 이상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진보신당의 경우, 특별한 주제, 예를들어서 핵발전소 폐지를 연구한 김익중 선생의 경우와 같은, 그런 주제들이 아니라면, 노동, 교육, 보건의료, 연금, 여성정책, 인종주의, 참여예산, 세금, SOC(사회간접자본), 녹색 등의 현안들에 대해서는 당원들 스스로 학습해서 각 직능별로 정책입안자가 될 수 있는 당활동을 만들어야 한다. 정책연구소는 그런 도우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실천이 이뤄질 때, 장하준 교수의 키워드 “자본 통제 capital control”의 주체와 방법을 놓고, 장하준교수와 그 입장과 생산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우리 주체의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김상철 정책연구원(서울시당)과 페이스북 대화에서, 김위원은 진보정당에서 잘한 정책모델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잘못이다. 김위원이 하고 있는 작업과 내용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 있고, 이런 내부생산자들 내용이 2000년부터 지금까지 서류 파일로 일련번호로 다 기록되어, 역사책처럼 학습되고 재평가되고 혁신되어야 한다.우리가 만든 것을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평가, 비판, 확산, 공유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정책이 스웨덴 사민당 올로프 팔메 수상으로부터 한반도에 떨어지는가? 캐나다 장애인 복지정책이 좋다고 이민온 한국인들의 말처럼, 캐나다 복지정치가 한국에 낙하되는가? 과거 12년간 정책연구소와 정당활동 방향은 전면 수정되어야 하고, 몇 몇 인기 정치인 위주의 거품 정치, 그리고 그 팬들로 구성된 정당활동은 중단되어야 한다. 





진보정당에서 누가 경제정책을 써야 하는가? 마지막 이 주제를 마감하면서,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하나 지적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권들, 진보신당을 비롯한 진보정당했던 분들이 경제정책에서 '디테일'이 약하다. 대안이 없는 집단들이라고 욕먹고 있는 현실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고,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된데에는 지도부와 자기 성장 프로그램없는 근시안적인 거품을 조장하거나 자족적인 정당활동에 그 원인이 있다.  





1천만 노동자들, 과거 농민들, 과연 그들이 매일 매일 조금씩 자기가 하고 있는 노동 일지를 쓰고, 진보정당에서 그것들을 취합해서 '서류 document'로 만들고, 그를 기초로 해서 '정책들'을 썼다면, 그런 욕을 먹을 필요가 있겠는가? 



 


좌파에게 공부가 무엇인가?  지젝 Zizek, 레닌, 마르크스, 홈스 봄, E.P 톰슨, 푸코, 서양 남자들 이름 나열하는 게 공부의 전부인가?  2000년 이후, 정당 만들어놓고, 노동자들 공장이건 사무실이건 교실이건 그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 체험들이 '정책화'되지 못하는 정당 활동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 공부들은 노량진 공무원 시험과 다름없다. 





마키아벨리의 명언 "군주 한 사람 머리보다 수만의 대중들의 머리가 더 현명하다"라는 말을 기억하라 ! (Machiavelli, Discourses on Livy) 내가  장하준교수처럼 연구자나 교수들을 무시하거나, 진보신당 내 아주 잘못된 먹물비판하면서 조야한 민중주의가 마치 엄청난 좌파의 고갱이처럼 간주하는 자폐적 문화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경남의 한 당원이 진보신당이 왜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는지 자문을 던지는 글을 보았다. 하루 일과 이후, 단 10분, 30분이라도 자기 노동 현장, 사무실이건 실내건 실외건, 또 노동의 현장이 아닌 삶의 터전에 기초한 그들의 체험이 실리지 않는, 그 이야기가 회자되지 않는 당에서는 창조적인 정책은 나올 수 없다. 좌파의 경제정책은 예를들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공간의 사적 재산과 자산 (private ownership) 의 모든 대상들과 주제들에 개입을 해야 한다. 




2012.10.04 23:13


장하준 대 김상조 논쟁; 좌파의 <경제 민주화> 개념


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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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교수와 공통점과 차이 (3) 경제민주화 논쟁 기원 1997년 IMF 원인과 처방의 차이


장하준 교수의 열쇠말 '자본 통제 capital control'을 이야기하기 전에 (2)에서 말했던, 왜 좌파정당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대안이 없는가? 에 대한 질책, 그 원인들 중에 외부적인 것에 대해서 하나 언급한다. 남 탓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대학 경제학,정치학,행정학과의 보수성과 미국 의존도 때문이다.  양적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소위 ‘신 자유주의’ 옹호자들이고, ‘신-고전파’ 경제학의 주류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들어 책 제목이 [노동 경제학: 이론, 증명과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연구 목표와 방법론의 경우, 마르크스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계량경제학(econometrics)을 사용해서 신고전파 노동시장이론을 정립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정책생산은 경제학과 보다는 공공정책(public policy)에서 컨소시엄 형태로 법학/행정을 비롯 제반 사회과학대학과 연계해서 정책을 생산해내고 있다. 조-중-동도 지적하는 한국 사회과학대학의 미국대학 의존도 심화는 당연히 한국의 진보정당 정책생산에 악영향을 지난 60년간 끼쳐왔고 끼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제민주화 용어 논쟁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발언을 놓고, 재벌개혁을 주제로 토론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복지'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보수)도 민주당(리버럴리스트)도 다 제 관점대로 사용할 수 있다. 재벌비판만이 경제민주화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 민주화라고 했을 때, 민주화 (democratization)은 리버벌 민주주의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통점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제 1원리로 삼는 Liberal Democracy) 안에서 '민주화'이다.


 

1)새누리당 김종인의 리버럴 민주주의 Liberal Demoracy – 1987년 헌법에서 '경제 민주화' 조항은, 2012년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시정, 해도 해도 너무한 상속 등 소유구조 비판 = 시장 질서 내에서 공정성 강조



2)민주당 문재인 + 안철수 리버럴 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 재벌 내부 순환출자제도 반대, 총수 권한 축소, 하청업체와의 불공정 시정 = 시장 질서 내에서 공정성 강조, 새누리당과의 양적 차이지 질적인 큰 차이는 없다.


 

3)진보좌파의 입장에서 경제 민주화: 자본주의 시장질서와 소유권에서 비롯된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부정의 개혁: 


현재 금융자산 소득 + 노동 소득 + 토지 소득 [rent 소득]  (ownership: private property) 과 관련된 제도 법률 개혁, 불평등 노동소득 시정, 회사 경영에 노동자의 직접 참여 등 = 자본주의 시장 질서와 소유권 (기득권) 개혁 등.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경제 민주화' 개념을 비판할 때, 좌파시각이 아닌, 그 내부 이념과 노선인 리버벌 민주주의 입장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장하준 - 김상조 논쟁의 역사적 기원



그리고 장하준 (영미식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주주자본주의의 극복을 경제 민주화) 대 김상조 (재벌 개혁=경제민주화 ) 의 경쟁 및 토론에서도 다 나름대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왜 '경제민주화'라는 개념 정의가 서로 다른지 밝히기 위해서는, 장하준과 김상조의 논쟁의 기원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 진단과 해법을 놓고, 소위 '고금리, 노동유연화-해고자유, 민영화, 바이코리아'로 대표되는 IMF식 '긴축정책'에 저항할 이론적 실천적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자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진보적 관점, 노동자의 관점을 가지고 일관되게  외환위기 원인과 IMF역사상 가장 혹독한 '긴축정책'의 문제점들을 비판한 진보진영의 이론가들은 거의 없었다. 지금 정책전문가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당시 파산선고당한 것에 대한 자성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 한국 사회과학계는 좌건 우건 파산선고했다. 


그 때 1998~9년 장하준교수의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8년에 김수행 교수의 초대로 미국 매샤추세츠 대학 (Amherst) 경제학과에 있는 제임스 크로티 (James Crotty)교수가 한국에 왔다. 대학원 세미나에서 크로티는 왜 한국의 진보진영은 한국 재벌(대기업)이 분해되어 외국 자본에 매각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그리고 IMF 긴축정책 강요, 고금리 정책, 노동유연화 명목으로 노동자들 해고를 마음대로 해버리는 것, 노조탄압, 미국-영국 은행 제도와 규칙을 한국 은행에 적용하는 것을 반대했다. 


케인지안 제임스 크로티 교수 눈에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 통제 (정부가 시장을 활용하되 민간 자본과의 협력체제를 구축하거나,  공공기업의 운영, 고용정책에 직접 개입, 해외 투기 자본에 대한 방어벽 설치 등:capital control)'을 영국-미국에 비교해서 훨씬 잘 하고 있는, 일종의 모범적인 모델 국가인데, 왜 한국이 신자유주의의 첨병 IMF 긴축정책을 고분고분 다 받아들이냐고 우리를 비판했다. 



 1998-9년 사이 국내에도 소개된 장하준교수의 논문, [한국 위기 해석: 금융 자유화, 산업정책, 그리고 기업지배구조: 1998: 유철규-박홍재 공저], ['도덕적 해이'의 해이: 아시아 위기로부터 벗어나기:1999] 역시 당시에 우리들에게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한국 언론에서 주류적 입장이었던, IMF 위기 원인은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설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1997년-98년 외환위기 극복하고 없는 미-달러 모은다고, 국민들이 금반지 녹여서 미-달러 외환고 채우는 것을 방송 3사가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IMF 외환위기를 국민적으로 극복해보자고 ML에 가 있던 LA다저스 박찬호의 승리와 LPGA 박세리의 우승컵 세르모니에 눈물 쏟던 시절이었다.



1997년 당시 모든 주요언론들은 IMF외환위기의 원인을 내부적 요소에 있다고 보았다. 그 단적인 사례가 상반기 기아 자동차 부도사태, 그리고 연이은 한보철강 부도였다. 한보철강의 경우,  '관치금융 (김철수 제일은행장 + 김현철 청와대 + 한보철강 장태수 사장)' 이런 3각 동맹론이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진단에 따르면,  ‘한국 정치 경제 시스템’의 비합리성, 즉 한국 자본주의의 비합리성 (경제 3주체의 비합리성과  비효율성,  정부의 관치금융, 재벌의 정경유착과 대마불사론에 근거한 도덕적 해이, 제 2금융권의 난립과 감독 소홀, BIS기준 무시, 소비자들의 과소비 등)과 비효율성이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았다. 



이런  한국 경제 3주체 때리기와 그 주체들의 자학적 분위기와 상반되게, 장하준교수는 [한국위기 해석하기] 논문에서, 김영삼 정부가 국가정부 주도의 '유도 계획 경제 indicative planning economy'를 포기함에 따라, 재벌들의 과잉투자 (중복투자)를 제어-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97년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본다. 


그리고 관치금융(정경유착: 정실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도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하에서 보다는, 김영삼 정부가 이러한 산업정책을 포기함에 따라, 오히려 정부로부터 독립해 점점 파워가 강해진  재벌들이 정부관료들과의 유착관계를 강화시켰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한국과 아시아의 외환위기 원인은 미국의 자본시장 개방 압력 등의 외적 조건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MF 긴축정책에 반대해서, 장하준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국가 일본, 독일에도 점령군 미국이 미국식 경제모델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1997년 한국에는 왜 미국식 경제제도를 강요하고, 한국의 산업정책을 완전히 포기하게 주저앉혔는가를 통탄한다. 



제임스 크로티와 장하준의 공통점은 '자본 통제', 즉 '유도 계획경제'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강조였고, 한국은 '자본통제' 모델의 모범적인 국가였는데, IMF 통치체제가 그 모델을 없애버린다고 주장했다. 


'유도 계획 경제'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하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이, 정부가 민간 기업에게 정부보조금,사회간접자본 제공,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면서 특정 사업에 투자하도록  (포항제철, 현대의 경우 정주영 사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업 지시 등 이후 성공 케이스 사례로 듦) 유도하는 정책이다. 이는 구-사회주의 국가의 국유화와 명령 계획경제와 달리 자본주의 시장을 최대한 활용했다.  



[말하지 않는 23가지: 19번째 이야기: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계획경제를 실시하고 있다]에서도 장하준은 1998~9년에 언급한 정부 주도 '유도 계획 경제 indicative planning'의 긍정적 역할과 필요성을 적극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미국 제약회사의 신약개발 R&D 에 천문학적 정부 보조금 (국민세금)을 투자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미 FTA도 체결되었고, 미국 제약회사들이 한국에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을 주장하면서 값싼 복제약 (제네릭)값도 상승할 예정이다. 장하준은 이러한 미국의 이중잣대를 [나쁜 사마리안들]의 이웃집 [사다리 걷어차기]로 규정하고, [산업정책]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꼬집는다.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했을 때,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하에, 한국 (산) 재벌 (기업)의 소유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름하에, 미국-영국식 주주자본주의를 한국에 도입하려는 참여연대 장하성의 입장을 장하준은 극렬 비판한다. 또한 '자본 통제', '유도 계획 경제'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재벌소유구조 개편을 주장하는 김상조교수의 '재벌개혁론'도 장하준의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만들어낸 기업을 초국적 자본에 팔아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와싱턴 컨센서스 10대 계율(신자유주의 모델)을 80년대부터 잘 알고 있던 제임스 크로티나 장하준의 입장에서는, 장하성-김상조의재벌개혁론은 와싱턴 컨센서스가 노린 효과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역사적 기원을 무시한 채, 장하준-김상조의 견해는 비슷하다거나[프레시안 기사들], 장하준의 '자본 통제' '유도 계획 경제' 등 산업정책의 강조를 '재벌 옹호론'으로 비판 (정태인) 하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불과하다. 



최근 안철수 캠프에 이헌재 모피아 두목이 등장한 것을 장하준 교수는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김대중 정부 하에서 '자본통제, 정부 주도의 유도 계획경제' 모델을 시대에 낡은 것이라고 치부하고, IMF 신탁통치안이 선진화라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이헌재와 그 모피아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헌재 모피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서 영미식 금융자본주의를 선진기법이라고 수용하고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주창했던 장본인들이다. 4대강 삽질 정책, 극악무도한 언론장악, 고소영 라인, 6형님 등을 제외하고,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은 경제정책에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깔아놓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고속철도 위를 이명박 정권이 무지막지하게 KTX 타고 브레이크없는 질주를 해버렸던 것이다. 



진보좌파의 정치 경제적 입장을 실천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장하준교수의 '거시정책(산업정책: 자본 통제, 정부 주도 유도 계획경제 등)'의 주인공은 정부다. 노동자가 주체로 들어서기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장하준교수를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 자기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되, 더 나은 자본주의를 찾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장하준교수더러 '당신은 왜 사회주의자나 좌파가 아니냐'고 비판하는 것은 생산적 대화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도시 공간과 새로운 진보도시 건설운동, 소유권 구조를 바꾸는 정치운동이다. 일터, 삶의 터전, 휴식터 등 모든 공간에서 발생하는 계급차별적 요소들을 깨부수는 도시공간의 사회주의적 창출 운동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Ha-Joon Chang, Hong-Jae Park, and Chul Gyue Yoo (장하준, 박홍재, 유철규), Interpreting the Korean Crisis: financial liberalisation, industrial policy and corporate governance,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1998, 22, 735-746




Ha-Joon, Chang, The Hazard of Moral Hazard - Untangling the Asian Crisis (장하준: 도덕적 해이의 해이 - 아시아 공황으로부터 벗어나기), 3-6 January 1999 New York, USA (미국 경제 협회 연례 발표회) 




Ha-Joon Chang, Bad Samaritans - 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 history of capitalism ,2008, Bloomsbury press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자유 무역의 신화와 자본주의의 비밀스런 역사) 


여기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 선진자본주의국가들 = 구체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 집행자들인 IMF, 세계은행, WTO 등 = 사다리를 걷어차는 자들)




Ha Joon Chang,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2011, Bloomsbury Press. 


(장하준: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것들) 


그들 = 저 위에 나쁜 사마리안들 = 


자본주의 =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70년대 중후반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세계질서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특정 유형의 자본주의)를 지칭.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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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2018. 1. 9. 20:53


87년 6.10과, 2010년 6.10의 차이 - 노트   2010.06.10 16:48

 원시 -

  

달력을 보니까 오늘이 1987년 6월 10일, 6-10 항쟁 23주년이더군요.  당원들은 6월 10일에 뭐를 하셨을까? 궁금한데요.

 

87년 6월 10일에 말입니다.

 

6-10 항쟁,실은 진보정당에서 중요하게 재해석하고 그래야 하는데, 저번 광주 항쟁 30주년 때도 아쉬웠는데요,

역사적 시간이라는게, 참 무섭게 흘러갑니다.

 

1950년 한국전쟁, 1980년 광주항쟁, 그리고 2010년  이렇게 30년이라는 세월이 들어가 있는데, 왜 이렇게 한국전쟁부터 80년 광주까지 30년은 엄청 긴 역사같은데, 80년 광주부터 2010년까지는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50년-53년 전쟁이, 이념과 체제, 냉전, 희생, 상처, 제국주의와 식민지, 복수의식을 남겼다면,

80년 광주는 민주적 공동체와 제국주의의 재발견, 그리고 좌익의 복원이라는 계기를 남겼는데,

2010년은 우리에게 어떤 정치사의 의미를 남겼을까?

 

       1) 저는 시대정신으로 고르라면, "한국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쓴 맛을 제대로 보고, 그 논리에 순치당하고 있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당시 한국사람들 자산 가치가 국제시장에서 50%으로 폭락했으니까, 사람들이 제 정신이었겠습니까?  내 돈 1만원이 IMF 폭탄맞고 5천원으로 변했으니, " 국민들이 제 정신이겠습니까? 눈알이 다 뒤집어지죠"

  2010년 지금도 97년 충격이 일상생활에서 채 가시지 않고 다양한 형식들로 남아있다고 봅니다.

 

       2) 아니러니하지만, 한국 정치사 남북한 다 포함해서, 이번 천암함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50년-53년 미국 U.S.A라는 존재, 80년 광주 (군사파쇼의 재등장과 미국에 대한 인식 전환과 좌파의 복원), 97년 IMF 위원회와 결정사항에 "비토"권한을 지닌 미국이 한국자본주의에 제동을 걸고 "냉전의 쇼 윈도우"로서 포지션을 박탈한 사건, 이제 더이상 한국자본주의와 정부에 미국이 던져줄 떡고물은 없고, 한국도 내 놓을 것은 내놔야 한다는 냉엄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게임법칙이 한국 시민사회에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6.10 항쟁, 87년, 길거리에서 맨주먹, 화염병, 돌로 눈에 보이는 파쇼의 똥개(방패막이) 전경/백골단들과 육박전을 벌이면서,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주의" - 독재타도 호헌철폐, 최루탄을 쏘지마라, 이한열을 살려내라"를 외치던 시민들, 학생들, 노동자들... 그 이후 10년이 지난 후, 한국전쟁 이후,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그나마 최고로 급속도로 향유하던 "10년의 세월 (87년-96년사이)"을 보냈다. 

 

     97년 IMF 외환위기 원인분석: 대외적인 요소들과 대내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당시 한국주류언론에서 다루던 한보철강-제일은행-김현철 관치금융 및 제 2 금융권들의 무분별한 외자 도입 등이 IMF 외환위기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소위 와싱턴 컨센서스를 고려했을 때, 해외초국적 자본,특히 미국의 금융자본과 미 행정부의 한국자본시장에 대한 공격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미국이 일본은행들에게 한국의 제 2금융권들의 빚 상환 독촉을 강요했고, 당시 태국 바트화의 투매현상으로 대부자로서 일본은행은 한국채무자들을 봐줄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 배후로는 미국 행정부가 있었다.

 

      와싱턴 컨센서스 보고서 각본에 따르면, 97년 한국 대선시기를 틈타, 대선 후보들이 IMF의 가장 혹독한 (austere) 정책들

 (고금리, BIS기준강화, 노조 무력화, 노동유연화 강압, M&A 법 개정, 해외투기자본 자유화, 한국상업은행의 미국화 등)을 강제로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이건 음모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현실정치였다. 


이 결과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실업자들과 구조조정에서 패배자된 사람들로 민심은 피폐해지고 가정조차도 파괴되는 현상들이 늘어났다.



 

     4) [중간 삽입] 


IMF 원인들 진단에 대해서 필자 역시 98년 봄이 되어서야 비로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대학과 연구소, 사회과학(경제, 정치,사회학과, 혹은 철학과 등)은 패배감과 낭패감으로 휩싸였고, 이론적 파산선고를 당했다. 어느 누구 하나 IMF 위기가 왜 왔는지, 제대로 그 원인규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예견도 제대로 못했다. 시민단체나 민노총 등도 마찬가지상태였다.
(* 주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그나마 실천적인 투쟁으로서 가치가 있었지만,IMF 전체그림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었다)            

 

     97년 이후,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어로서 정확한 개념은 아니지만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87년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97년 이제 <경제적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라고 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좌파-진보정당에 정확한 단어는 아니다. <경제적 민주주의>야, 민주당/국참당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독일,캐나다,영국 등 보수당들도 <경제적 민주주의 >, 즉 사회복지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

 

      좌파-진보당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 성격을 바꿔놓은 "어메리칸 스탠다드: 속칭 글로벌 스탠다드"와, 국내적으로 "사적 소유 재산권 (땅, 빌딩, 집, 주식, 금융자산 등)" 을 떠받치는 법률체계(민법)와 게임을 벌여야 한다.


 게임이라고 함은, 87년 체제가 만들어놓은 (불가피하게도)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 게임규칙 속에서 게임을 벌여야 한다는것이다. 



 

     5)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던데, 아주 쉽게 말하면, 현행 대한민국의 "사적 소유 재산권, 자산"에 대한 반성적 해체 및 재구성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사적인 재산권을 세밀하게 다시 분해해서, 시민들의 자아실현, 자유와 평등, 인권과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금의 정치학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두번째는 노동소득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줄이고 완화시켜야 한다.

      

 조금 단순화를 시키자면 "삶의 터전"을 자유와 평등의 터전으로, 우리들의 행복의 터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1) 일 터  (2) 놀이 터 (3) 쉼 터 (4) 집 터 

 

이러한 삶의 터전들을 우리들이 내세우는 삶의 지표나, 정치철학이 실현되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게, 추상적으로 이름 붙이자면, 21세기 좌파가 이뤄내야 할 자유,평등, 연대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6) 다시 조금 97년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일상 생활, 이 삶의 터전을 보자. 한국은 50년 한국전쟁 이후, 97년-2007년 사이 (그리고 지금까지), 일상사에서 민심이 가장 흉악스럽게 변했다. 


위에서 말한대로, 97년 IMF 위기는 한국사람들에게 "자기 자산 가치가 50%로 깎이는 국제자본질서의 매운 맛을 봤기에" "자본주의 질서와 원리를 자기 몸으로 내재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국가가 "자본축적을 위해 저축을 강요하지 않아도" 이제 87년 데모하던 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식투자 (이제 도덕적인 선악 판단이 아니다)" "재테크" "땅투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고,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는 가치관들을 가지게 되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어메리칸 스탠다드" 자본주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고, 일상생활에서 "어메리칸 스탠다드"를 쫓기 위해서 필수적인 "영어 광풍"이 5천만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에 "불안과 걱정" "열등감과 우월감"의 코드로 남겼다.

   

  7)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위에서 말한 "삶의 터전"에서 우리 한국사람들은 문화가 없거나 박탈당하고 있다. 하이데거 말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 =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라는 의미인데, 한국인들에게는 밥먹고, 타인에게 우월감을 느끼기거나 열패감을 감추기 위한 "계급 계층 상승"의 영어가 "우리들 존재의 집 = 삶의 터전"을 갉아먹고 있다.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쉼 터, 놀이 터, 집 터 역시, 97년 이전과 현격히 구별되는 "있는 자" 대 "없는 자"로 갈라져 있다.

 

이런 사회 균열과 계급계층화를 조각해오고, 조장해 온 정치 집단은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 MB 하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 노무현 회상" 이라고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철저하게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돈과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 노골적으로 조금 더 거친 방식으로 무식하게 전개되고 있다.



 

   8) 진보정당, 이러한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에 기초한 정치활동, 제대로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삶의 터전에 대해서 "돈과 자본의 논리"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삶의 터전 (예를들어서 도시 계획 urban planning)에 대한 철저 연구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데모, 촛불시위, 반-MB 그건 "삶의 터전"의 일부이고,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제는 우리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없이는 정치운동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감동도 실제적인 도움이나 문제해결도 줄 수 없다. 잣대를 들고, 측량기를 매고, 현미경을 들고, 수도 계량기를 가지고, 자기 삶의 터전(일터, 쉼터, 놀이터, 집 터)를 연구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 사이 우정, 가족들의 유대감, 연인들끼리 사랑, 이웃간의 애정과 존중을 파괴하고 왜곡시키는 "돈과 자본, 부당한 권력과 술수들의 복합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삶의 터전에서 작동해야할 삶의 원리들 (우정, 유대감, 연대감, 사랑, 애정, 존중 등)을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9) 87년 6월 항쟁, 당시는 적이 단일했고, 단순했고 선명했다. 그러나 그 이후,그리고 97년 이후는 적들은 분화되었고, 우리 삶의 터전에서 세균처럼 우글우글 체세포 분열을 하고 있다.   길거리 데모, 촛불시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로 이 체세포 분열하는 분화하는 정치적 적들을 박멸할 수 없다.

 

 10)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없이, 진보정치 좌파정치 불가능하다.

    4만 유권자면, 1만 가구 (household)이다. 유권자들 이름을 다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삶의 터전이 무엇인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기록하고 받아 적어야 한다.

      요새 "민심이 당심에 선행하고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현대 사회과학이나 현대정치에서 "민심"은 철저한 "삶의 터전"의 조사에서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과연 진보정당에서 정치하면서, 자기 동네 삶의 터전들에 대한 "지도 map"이라도 제대로 작성된 게 있나? 


     진보신당 6.2 선거에서 기초의원 15명 중에서, 재선에 성공한 사람이 8명이다. "당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는 게 더 중요하다. 박정희가 18년 정치해서, 지금도 보수유권자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4년은 부족하다. 적어도 10년은 해야 정치적 성과가 나오니까.

 

   진보신당 온라인, 오프라인 정치, 정치적 본질과 정치가로서 임무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당심이니 민심이니" 아직 논할 수준도 안된다.

 

나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남는 좌파를 가르켜, "원천 핵심 기술 보유자"라고 할 것이다.  "연합정치"는 그 다음이다.

정치하면서 "연합정치" 안하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말도 안되는 이분법으로 택도 아닌 논리학으로 "진보신당이 연합정치를 모른다?"고 할 시기가 아니다. 무슨 좌파 정치라도 제대로 해봤나? 87년 길거리 데모 말고, "삶의 터전"에서 적어도 4가지 터전에서 (일터, 쉼터, 놀이터, 집터)에서 좌파의 정치적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했는가? 그래서 민심을 획득했는가?

 

원천 핵심 기술 보유 (삶의 터전에서 좌파 정치 실천자) 없이,  떠돌이 이합집산 정치해봐야 그건, 원천 핵심 기술없이 복제만 해대고 "로열티"만 지불하던 회사랑 똑같다.

      

11)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

      97년 IMF 긴축통치 이후, 이제는 "삶의 터전"의 정치를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삶의 터전에 뿌리박힌 수많은 이해관계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법률적 이해관계들의 복잡성들을 공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 돈, 부당한 권력을 막아내고 물리칠 수 없다.

 

87년 독재타도를 위해서 길거리에서 돌, 화염병, 물통을 들었다면,

이제 "삶의 터전"에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행복, 공적 행복"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법률적 수단들을 들어야 한다. 


일터에서 재산권,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재테크 부동산 집 뉴타운 등, 쉼터에서 여가문화와 관련된 모든 사회제도들, 놀이터에서 문화, 예술, 스포츠 활동들과 그 사회적 기반시설과 계급계층 차별 해소 등......

 

87년과 대비해서,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분화되었고, 수십가지 수백가지인데, 자꾸 역사적인 퇴행을 부추기는 세력들 (진보정당 내부에 관성적이고 교조적이고, 또 무원칙적인 제 멋대로 진보들 등등: 87 민주화만이 자기네들 정통 민주화라고 외치는 민주당세력들; 민주화와는 담쌓고 지내는 한나라당)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Comments '3'

로자 ★ 2010.06.10 16:57

후아~` 밥 딜란이다. 냉커피와 함께 딱이네요. 얼음을 우두둑


 댓글


파애 2010.06.10 17:44

87년에 관련된 기억이 하나 있어요. 6월10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그해 여름에 최루탄이 많이 날아다녔던 기억이 있으니까(군산에서도!!) 아마 맞을 겁니다.

전 그때 초등학교 3학년 꼬꼼화 였는데

저희가 살던집은 드르륵 여는 미닫이문만 달린 일본식가옥이었죠.

군산에는 대문도 없이 미닫이문만 있는 집들이 지금도 꽤 남아 있어요.


자려고 하는데 밖에서 사람들 뛰는 소리 빵빵 하는 소리가 막 나더니

아직 잠그지 않았던 저희집 미닫이문을 누가 열고 들어오는 거에요.

너무 거리낌 없이 들어와서 전 아빠 친구나 누구인줄 알았는데

시위대중 한명이었습니다. 

하얀 마스크를 하고 비쩍 마른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컵라면에 끓는 물을 좀 부어 달라고 청하더라고요.

그리고 내민 사발면.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엄마가 황급히 부엌으로 물 끓이러 들어가고 아빠는 그분더러 대청마루(일본식집이라 어른 허벅지 정도 올라오는 마루가 있었어요)에 앉아서 쉬라고 하고 물도 한잔 따라주고 그랬던거 같아요.


전 방문에 뚫린 유리창문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죠.엄마가 내오신 김치랑 라면을 먹더니 그분은 다시 마스크를 올리고 조심조심 밖을 살피더니 불꺼진 거리를 뛰어서 어디론가 갔습니다.


제게 87년 6월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집에 올때마다 늘 매캐하게 코를 찌르던 최루탄 냄새.

노XX가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다는 말을 담임샘께 했더니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제 입을 막았던 것도 기억나요. ㅋ


 댓글

원시 2010.06.11 00:41

군산이 정말 오래된 도시죠...일제시대 호남평야 쌀을 일본으로 만주로 실어나르는 "항구도시"였으니까, 일본식 집 하니까 생각나네요. 역사가 돌고 돌아서, 다시 해주 - 개성 - 인천  - 군산 - 목포 이런 서해안 항구도시들이 이제는 "뱅기 공항"이랑 같이 들어서겠지만... 앞으로 한 100년 안에는 엄청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노태우가 대통령되면 나라가 망한다"고...어렸을 때부터 푸른싹이 있었네요^^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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