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20. 10. 4. 18:55

마른 꽃을 보다가.


9월말 10월초는 땅 밟기가 좋다. 맨발로. 발바닥이 약간 차가운 기운이 남지만, 흙은 아직 부드럽다. 서울로 온 후로는 참깨나 들깨 널어놓은 그런 마당의 정취는 좀 희미해졌다.


사회적 ‘정의’ 개념에 대한 자료를 보던 차, 꽃잎이 책 페이지 사이 있네. 책 제목은 막시즘과 리버럴리즘 (1986)이고, 책 주인은 남자 선배였는데 꽃잎을 끼워두신 것같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넘겨받은 책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책 사이에 단풍 나뭇잎, 은행 나뭇잎을 끼워넣은 적도 있었는데, 요새 여유가 사라졌을까. 이제 그거 하지 않는다.


요즘 회상이나 회고가 좋을 때가 있다. 사실 이 책 저자들의 마르크스 공부방식은 나랑 맞지는 않는다. 분석(어낼리틱) 막시즘이라는 게 역사적 맥락을 거세하고, 표백제를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책 속 한 저자인, 지.에이.코헨은 토론토에 와서 강연을 한 적도 있었는데,별세한 지도 십여년이 흘렀다. 내 선생의 선생이었던 엘렌 메익신즈 우드도 그 남편도 이제는 68 시대의 열기를 흙 속에 남기고 갔으니까.


한 막이 내리고 새 막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 꽃잎도 책 속에서 마르고.


1920년, 100년 전, 막시즘 (소리나는대로 적은 말)과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시대정신의 주류였던 사회주의에 반대했던 폰 미제스가 소셜리즘이라는 책에서 당시 좌측으로 쏠린 지식인들을 통탄했었다. 그런데 그의 대안적 주장은 허탈했다. ‘소비자가 왕이다’였다.


여튼 폰 미제스가 보기에 마르크스나 엥엘스의 생각이 얼마나 빈틈이 많았겠는가, 그런데도 유럽 지식인들에게 마치 시대정신인양, 막스(마르크스)와 엥엘스를 모르면 대화가 안되는 양 하니, 그로서는 참 답답했을 것 같다. 그래서 쓴 책이 ‘소셜리즘’인데, 사회주의 옹호나 지지 근거가 아니라, 비판서였다.


2020년, 100년이 또 흘렀다. 세계인구도 100년 전, 20억에서, 지금은 78억이 되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다. 지식과 정보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해체, 신자유주의가 30년 만세를 부르다가 2008년 미국 금융공황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대적 분위기는 1920년 폰 미세스가 통탄한 것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틀렸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하지’와는 반대 분위기이다.


책쓰는 사람들은 가끔 애기들 같다. 한국 전경련의 정신적 우상, 프리드리히 하이예크(1899~1992)도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자, ‘거 봐라 내 말이 맞았잖아’ 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거의 평생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또 케인지 등살과 그늘에 지내야했던 하이예크는 1992년 별세 직전 1~3년 기간은 ‘내 말이 진리였다’고 아이처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진리란 그렇게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너는 틀렸고, 나는 맞고 그런 종류의 것도 아니다. 환호작약할 정신적 상황은 나에게 사치같다.


중국 공산당 시진핑, 러시아 푸틴, 일본 자민당, 평양 김정은 정부, 미국 트럼프로 둘러싸인 섬아닌 섬나라 한국을 생각하면, 옆 이웃 나라 자전거 타고 가서 데모하고 오는 유럽이나 서구 좌파에 비해 나는, 우리는 늘 어떤 벼랑에 선 느낌이다.


1920년 폰 미세스는 너무 애닮아하지 말고, 1992년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는 너무 기고만장할 것도 없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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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20. 4. 17. 23:07

정준희 KBS 시사평론가의 언어도단과 오용. 위성정당을 비판하면 ‘감성적’인 사람이고,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면 ‘냉정하고 객관적인’ 유권자인가? 그냥 스피노자의 “열정 passion”을 생각하라.


정준희 KBS 시사평론가가 ‘감성’과 ‘현실’의 이분법을 강조하지 않아도, 정치는 ‘군대’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힘’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은 정치의 상식이다. 힘이란 군사력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지적 능력, 문제해결 능력, 문제를 진단하는 철학적 시야를 갖추는 도덕적이고 미적 훈련까지 다 포함된다.


진보정당 힘이 부족하고, 일할 사람 재원도 부족하니까, 한마디로 능력이 없는 것은 맞고, 그것도 인정한다. 어찌보면 20년간 진보정당, 민주노동당부터 정의당까지 한 사람들과 유권자들 미련하고 감성적이고 능력도 없어 보인다. 아니 실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하는 힘 크기가 적어지니, “위성정당 빼고”라는 아주 소극적인 이런 구호를 만드는 이도 있다. 사실 “민주당 빼고”이런 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선거운동은 아니다. 필자는 “민주당빼고”를 쓴 사람들 의도야 존중하지만,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 등 무능할지도 진보정당이 있기 때문에,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이 당을 찍으시오’라고 말하는 게 낫다고 봤다.


민주당 당원들도 자기 권리가 있는 것이다. 민주당원과 지지자들도 비례갈취 정당 미래한국당이 나오니까, “우리도 못 참겠다” 수준에 같이 반칙하자는 입장, ‘반칙은 할 수 없다’는 입장 등 서너갈래로 나뉘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감성적’으로 위성정당을 비판했다가, ‘아 안되겠다 우리도 찍자’로 간 게 아니다. 정치적으로 비판했다가, 정치적으로 판단한 것 뿐이다.


정준희의 감성 대 객관적 현실 인식 이분법은 민주당에도, 정의당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사회정치적 사실들을 설명하는 탐침 단어가 되지 않는다.


스피노자가 정치와 민주주의 출발점은, ‘이성’ 아니라, 열정 passion 이라고 했다. 근대인이면, 사적 소유관계와 계약관계에 얽혀있는 근대인이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감성’ 대 ‘이성’ 이런 이분법이 아니라, ‘이해관계/자기 관심가는 것 interest’ 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정치를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다.



위성정당에 비판적인 사람이 '감성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과 대립되는, 현실 판단력이 결여된 의미에서 '감성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위성정당을 비판하는 것이다.


만약 공식적인 민주주의 파괴자인 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지 않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지 아니한가, 그 근거들을 대는 게 더 중요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180석 얻고, 과반 넘기면 된다는 게 민주주의 정신인가?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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