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노트(독후감)2020. 4. 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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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불안조장 정치 (Angst-Politics)

415 총선 특징은, 통합당과 민주당이 87년 유월항쟁으로 만든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누가 더 잔인하고 교묘하게 파괴하느냐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386들은 통합당에 대한 ‘공포심과 불안감’을 대중동원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마치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반북 반공’을 내세워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형성하고, 관제 데모를 동원한 것과 거의 똑같다.

 

 

사실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퇴행과 도덕적 퇴락, 즉 정치적 새옹지마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이미 서구 신정치, 뉴레프트 68세대의 자본주의에 급속한 통합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는 ‘변증법적 부패 dialectical degeneration’이다.

 

 

87년 유월항쟁을 통해 절반 쟁취한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리버럴 민주당 386들은 2020년에 괴뢰도당 위성정당을 만들어 자신들이 만든 민주주의 정신을 스스로 부정하고 유린하고 있다. 정치적 방향타를 상실한 자들은 AI 안철수 만세를 부르기도 하고, 정치적 허무주의와 유아독존에 안주하고 있다.

 

 

한 때 386 세대,  나름 이론가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이 “종교개혁으로부터 산업혁명”에서, 급진파가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토리가 휘그가 되고, 휘그가 토리가 되는 웃픈 역사적 사실이다.

 

1688년 제 2차 영국혁명 (피를 흘리지 않았다 하여 명예혁명이라고 알려진)에서, 제임스 II는 미스터리하게 왕권을 순수히 내주고, 오렌지 윌리암에게 왕권을 내줬다.

 

그런데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 토리와 휘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크리스 힐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왕당파는 기가 꺾기고, 휘그파의 급진성은 탈각되었다. 그 결과 차세대 토리가 휘그파의 급진 언어와 행태를 흉내내고, 차세대 휘그파가 올드 왕당파의 언어와 행태를 재현했다.

 

 

책 내용을 조금 소개하면 이렇다.

 

 

1688년 이후 영국 정치의 혁명적 시대는 끝이 났다. 1688년 이전 50년간 격동의 시대가 지나가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조용한 시대가 도래했다. 왕권신수설을 주창한 토리즘 (Divine right Toryism) 은 죽었다. 그러나 물론 1688년부터 1750년대까지 왕권 복권을 위한 반란들도 있었다.

 

 

자코바이트(Jacobite)가 그들이다. 1688년 왕권을 내준 제임스의 라틴 이름 자코부스(Jacobus)에서 따온 자코바이트(Jacobite)이다. 1715년 자코바이트 반란 항쟁은 주로 파산한 북쪽지방 지주와 스코트랜드 하이랜드에서 발발했다.

1745년 자코바이트 반란은 군사적 성공도 거뒀지만 그 자코바이트 세력은 외국 침략 군대였지, 영국 반란은 아니었다.

 

 

(참고: 자코바이트 1745년 반란: 1745년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가 주도, 1688년 영국혁명 당시 왕권을 내준 자기 아버지 제임스 스튜어트 복권을 위해 일으킨 반란이다. 이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동안에 벌어졌고, 당시 영국 군대가 유럽 대륙에 원정을 가 있었을 때였다.

 

찰스가 1745년 스코트랜드 하이랜드 글렌피넌에서 8월 19일 반란을 시작했고, 군사적 승리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1746년 4월 컬로든 전투에서 반란군은 패배했고, 찰스는 프랑스로 도주했다.)

 

 

왕당파 토리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영국 왕정과 영국교회와 싸우며, 영국 의회주의를 쟁취하려 했던 지주계급을 대변했던 휘그파(the Whig)도 변질되었다.

 

 

1685년은 급진파의 마지막 조직적인 반란이었다. 휘그파의 정치적 지도자 세입스베리 Shaftesbury 와 몬머스( Monmouth) 계승자들도 1688년 이후로는 휘그파에 영향력을 별로 행사하지 못했다.

 

이러한 두 극단적인 세력, 토리 왕당파와 휘그당 급진파의 패배는 중도파, 소유계급, 타협파의 권력이 강화되는 시기와 일치했다. 휘그 소수특권 지배층(올리가키)과 영국은행(the Bank of England)의 등장이 그것이다.

 

휘그와 토리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되긴 했지만, 역사적인 의미 이외에는 점차 퇴색되었다

 

휘그당이 점차 거대 비지니스 정당(산업과 무역)이 됨에 따라, 토리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자투리 (fringe)’를 아주 잘 이용했다.

 

공직에서 배제된 토리파이 과거 초기 휘그 공화주의( Whig republicanism) 언어들로 정치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버로 (borough: 한국으로 치면, 군이나 시 행정단위) 주민들의 참정권을 지지하기도 했다. 토리파 인물, 사셔버럴(Sacheverell )은 교회와 왕당파 지지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1688년 영국혁명 이전 휘그파 정치적 지도자 세입스베리와 몬모쓰가 카톨릭 교황 반대파 대중들에게 지지를 많은 것만큼이나 인기를 구가했다.

 

그 샤셔버럴 지지 군중들은 영국 은행을 불태워버리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사우쓰워크 (Southwalk )직조공들 , 전통적인 장인, 영국교회 소속이 아닌 ‘비-영국교회 기독교인들 (non-conformist)는 1709년에 교회와 이러한 왕당파 군중들에 반대했다.

 

이런 이유로, 논쟁이 벌어졌다.

 

1716년 셉테니얼 법안(Septennial Act. )을 놓고, 토리파들은 왕정과 영국교회 성직자들에 대항했던 구 휘그파와 공화주의자가 환생한 것처럼 발언했다.

 

이와는 반대로 휘그파는 절대 권력과 특권의 잇점을 칭송하면서, 오히려 반란자들을 비난했고, 대중들을 비웃고, 영국왕실을 칭송했다.

 

스위프트(Swift) 는 1681년 처형당한 스테펀 칼리지(Stephen College: the Protestant Joiner)를 가리켜 ‘존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18세기 초에, 제임스 II 왕정복고를 시도한 자코바이트는 더비셔 광부들과 몬모스 시대 직조공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더비셔 광부들의 조상은 1649년 영국 왕정에 저항했던 평등파 (레블러스Levellers)였다. 또한 직조공들은 1688년 제임스 II가 왕권을 물려준 오렌지 윌리엄에 협조하지 않았었다.

 

그러한 사회에서 정직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8세기 후반, 진정한 급진파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휘그파 대부분은 자신들을 ‘토리’라고 불러야 했다.

 

토리 급진주의는 17세기 패배한 두 계급의 불편하고도 전적으로 부정적인 동맹이었다. 두 계급이란 시골 지주계급과 도시 빈곤층을 지칭하는데, 전자는 부르조아에게 패배했고, 후자는 귀족 지배자에게 패배했다.

 

18세기 초기 영국 대부분 지방 신문들은 그 독자들이 대부분 ‘토리 지지자’일 것이라고 가정했다. 토리 지지자들은 반정부파였고 정치적 부패를 혐오하고, ‘사회 안정’이라는 신화적인 황금시대를 회고적으로 그리워했다.

 

 

Christopher Hill(1967),Reformation to Industrial Revolution

 

 

 

(컬로든 전투: 좌, 자코바이트, 우 정부군대:  Jacobites and Government troops clash at the Battle of Cullo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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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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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7. 9. 3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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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개념은 역사적으로 늘 변화 진화 투쟁해 오고 있다. 좌파는 우파보다 자유주의를 더 알아야한다.


맑스 이야기만 하면 식상하고, 맑스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하고, 현대적 해석을 해야할 때, 구절이나 소개시켜주고 그러면 재미도 떨어지고 해서, 유럽에서 원형 자유주의자라고 일컫는 존 로크의 사례를 들고 마칠까 한다.

 

한국 좌익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영국 의회의 발생과 역사를 모르면, 왜 서구좌파들이 의회주의에 당하고 있고, 그 제도와 법률투쟁에서 얼마나 힘겨워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없다 본다. 의회주의 비난하고 도망간다고 해결될 일은 이제 없다고 본다. 


존 로크는 세계사에서 등장하는 (유럽 중심으로 씌여진 이 모든 세계사 교과서) 1688년 제 2차 영국혁명 (소위 명예혁명)을 가능케 한, the Old Whig (올드 휘그당) 당의 정치 수장 쉐입즈베리 (Shaftesbury) 의 정치적 이론가들 중에 한 명이었다. 제임스 티렐 (Tyrrell)이라는 이론가와 더불어 소위 옥스포드 출신의 당대 내노라하는 엘리뜨였다.  이 세 사람이, 당시 왕정복고를 외치는 보수당 (the Tory)과 맞서서 정치 투쟁을 벌였다. 이 올드 휘그당의 정치적 목표는 영국 의회의 권한을 왕실보다 더 크게 하는 것이었다. 


1669년 경, 존 로크가 쓴 카롤리나의 기본헌법 (The Fundamental Constitutions of Carolina)에 보면, 존 로크가 영국 국회의원의 자격조건을 명시했는데, 500 에이커(Acre: 1 acre는 1227평) 이상 토지(61만 3천 500평)를 소유한 영국 중농 신사 (the English Gentry 계급)로 제한합니다. 그리고 투표 권한이 있는 자는 50 에이커 이상의 토지(6만 1350평)를 소유한자로 국한시킨다. (1 에이커는 소 한마리가 해 떠서 질 때까지 경작할 수 있는 넓이의 땅이다)


초창기 근대 유럽에서 (정치적) 자유 개념은 '토지 소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를 논할 때는 반드시 '민사' 소유권과 결부시킬 필요가 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소위 여러가지 시민혁명이라고 기술되는 영국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 시민 혁명 등에서, 자유개념이란, 그리고 의회의 형성과정은, 이렇게 철저히 토지 등 자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회과학적 자료를 무시하고, 아주 거칠게 말해서, 아주 근본적 입장 취하자면, 2007년 지금 한국이나 미국, 영국, 17세기와 무슨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에 입성하는 자들의 계급 계층적 성격을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 국회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본 떠 이식된 제도이다. 앞으로 아마 100년은 이 의회라는 귀신과 물귀신 작전을 써가면서, 좌익이 악몽을 꾸어가면서 '자유'의 그 내용을 채워나가는 게임을 벌여야 할 것이다.

 

왜? 누구를 위해서? 이 물음에 대답하면서, 그 자유의 내용과 함의를 다르게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싸움이야 말로 바로 진보와 좌파를 자처하는 자들에게 놓인 지겨운 싸움인 것이다.



2008.07.07 12:53

"자유" 는 "좌빨"의 엑기스!... "촛불데모"가 준 자유는?

원시 조회 수 952 댓글 12

?

촛불데모는 우리에게 무슨 자유를 가져다 주었는가?

(자유는 정치적 좌파에게 가장 고귀한 이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단어, 인생 끝나도 개념정의 못하고 갈 단어 "자유"에 대한 메모


1. 자유는 무엇인가? 누구의 자유인가? 자유의 주체를 밝히는 게 현대 정치 좌파가 할 일!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다' '스스로 자기 삶의 출발점과 여정 그 결과를 책임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새롭지 않다. 누구나 "난 자유인이다. 난 자유롭고 싶다"고 일상에서 외치지 아니한가? "명바귀가 퇴진해야 내가 자유롭다. 안전한 쇠고기, 광우병 위험이 없는 쇠고기를 먹고 싶다. 이런 마음의 자유 (권리를 포함하는)도 있다. 어쩌면 자유는 궁극적으로 좌파가 실현해야 하고 발전시켜야 할 정치적 목표이고 가치이기도 하다. 


자유는 어떤 고정된 달이나 해가 아니라,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별, 우리의 정치적 욕구 (Desire)이다. 이 욕구는 말 정의가 재미있다. 욕구는 De (떨어지다 멀리) + Sire (star: 별)로 구성되어 있다.  [요새 욕망정치라는 말을 자주 쓰던데, 정확한 단어 사용은 아니다. 새로운 욕구의 발견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되는게 맞다고 본다] 영어 단어의 어원을 언급한 이유는, 욕구란 저 멀리 떨어진 별처럼 저기 반짝여 우리에게 보이지만, 다가갈 수 없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과 같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일단 이렇게 정의하고자 한다. 자유는 수많은 별이며, 자유는 우리의 정치적 욕구이다.


2. 자유를 만끽하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정치적 자유주의(Liberalism, 최근의 Neo-Liberalism)에서 '자유' 개념은 이윤추구를 자기 운동의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자유와 연결될 때가 많다. (물론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복지국가 체제에서는 부분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자본과 정치적 자유 사이에 여러가지 매개 장치들이 있다) 이러한 자본의 자유는 일하는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자유정신의 발현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일하는 맨 정신의 노동자의 그 정신을 피폐해 왔고, 하고 있고, 앞으로 그럴 확률이나 개연성도 높다. 이러한 자본이 생활하는 장소, 촛불시민의 광장이 아니라, 자본의 자유를 허용하는 시공간이 바로 "시장" (한국의 5일 장터의 의미가 아닌) 의 자유이다. 그 이윤 마진 크기의 최대화 극대화라는 시장원리를 자유 정신으로 삼고, 그것을 사회구성원리, 다시말해서 전체 사회구성원의 삶의 원칙으로서 수용하게끔 만드는 것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다. 

3. 자유와 평등에 대한 오해


자유도 평등도 순수한 개념어는 아니다.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한정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단어 자유, 평등을 쓰더라도 '시 공간이 다른 주체들의 역사적 경험을 담고 있는 자유, 평등' 개념을 지시할 때가 많이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 평등, 우애(연대)의 구호는, 당대 프랑스 부르조아 (영국과 프랑스 사례는 다르다. 프랑스 경우, 영국과 같은 18 ~19세기 산업 자본가 계급보다는, 도시 상공인, 변호사, 언론인,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 등을 지칭)의 자기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표출했다. 그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가 프랑스의 전 여성, 노동자, 소농, 비-프랑스인, 유색인종, 소작인 등의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자유와 평등은 대립항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 서로 대립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이 말은 누구의 자유인가, 어떤 평등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빠뜨리고 있다. 혹은 그 자유와 평등을 대립항으로 놓고, 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자유를 더 강조하고, 공산주의는 평등을 자유보다 더 중시한다고 주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질문을 정확하게 던져야 하고, 누가 그 질문을 어떤 사유틀로 던지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대립은 부르조아 민주주의론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맑스가 초지일관, <자본>에서 비판한 것은 부르조아 '자유, 평등, 박애' 개념이 '공허하다' '비어있다' 혹은 '허구 (등가교환이 아니라 부등가 교환이 발생하는 게 노동력 판매 시장이기 때문에)'라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 대립된다고 주창한 적은 없다. 


4. 소극적 형식적 자유 개념도 '투쟁'과 '살벌한 전투'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자유와 평등의 대립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초기 맹아 자유주의의 이론가 존 로크(Locke)로부터 최근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를 주창하는 사람들까지 다 자유와 평등을 대립시키곤 한다. 이러한 자유-평등 대립항 만들기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가 만든 게 아니라, 그 자유주의자들의 이론틀에서 유래한다. (신)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사회로부터 고립된 추상적인 개인의 자유, 다시말해서 사회, 법, 국가, 관행 등 개인의 사유재산, 신체, 시민권리를 박탈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이다. 이게 소극적인 의미에서 형식적 자유개념이다.  봉건제 왕권 타도 (전국의 토지는 왕실과 왕의 사유재산이다라는 명제)할 때는, 이 소극적 자유주의자 자유개념이 라디컬하고 진보적인 성격을 띤다. 물론 한국 87년 항쟁처럼 절차적 민주주의 (직선제 쟁취 등) 가치들과 소극적인 자유개념도 역사적 정치상황 하에서는 유의미한 정치적 자유개념이 되지만.


한나라당이 TV 토론회 (MBC 손석희 100분 토론, KBS 생방송 토론 등)에서 나와서 하는 경제관련 정책을 보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된다. 불가피한 예외 빼고. 혹은 국유화나 공공서비스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유화시키자. 경쟁을 강화시키자"는 논리 역시, (신) 자유주의자들의 '자유'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한나라당식 '자유' 개념은 고전적 의미에서 '자유' 개념의 역사적 맥락과 투쟁은 다 제거하고, '자본가'와 '시장'의 자유만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권력내부에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 형성은 이보다는 더 복잡하다. 

 

5. 소위 실질적 자유 개념은 다양하고, 채굴되지 않거나 가동되지 않은 원석. 새로운 자유 개념을 만들어 정치적 상식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좌파의 임무!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유란,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생산해놓고도, 자기네들이 집을 지어 놓고도, 자기 집도 못가지고, 하루 8시간도 부족해서, 3시간씩 잔업하고, 그렇게 15년을 살아야 대도시에서 15평, 20평 아파트 하나 겨우 장만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자유인가? 아 내가 자유롭게 일하고, 자유롭게 결정해서, 내 자유정신을 믿고 실천해서, 우리 공동 자산(생산수단이든지 1차 원료든지, 자연이나, 도로 등)을 특정 5%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90% 이상 되는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집단적인 이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자본의 자유보다 훨씬 더 나을 있지 않겠는가?


이외에도 자유는 여러가지로 규정될 수 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야 이세상에서 정말 자유롭고 싶다면?" "자유를 만끽한다면?" "네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된다는 의미는?" 이런 포괄적인 철학적인, 그렇지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물음이 정치적 좌파에게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루 7시간만 일하고, 1시간은 새로운 진보정당 정치에 참여할 자유, 주말은 일하지 않고, 자기 계발 시간을 확보할 자유, 자기가 일해 놓은 것을 반성하고, 남이 뭐라고 간섭하고 더 일해라 너는 이모양이야 이것 밖에 안되느냐는 식의 핀잔만 듣고 사는 노예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기 삶의 자기 결정권을 가질 자유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2008년 정치적 시민의 자유를 획득하고 지키기 위해서 밤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새벽별, 달님보기 운동, 비맞기, 물대포 끌어안기, 각종 다종 다양한 난이도의 '허들'을 뛰어넘는 시험을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동시간보다 데모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 


6. 자유,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문제와 결부된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자유를 외치다가 산하한 분들이 많다. 열린우리당 386처럼, 원희룡처럼 그 자유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의 자유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명박처럼 한미간의 '자유 무역'이 자유의 핵심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자유 개념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다. 촛불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실 정치 투쟁은 정치적 개념 투쟁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이 촛불데모는 단지 개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개념 벽돌로 우리 집을 지을 것인가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투쟁은 과거 미래 투쟁과 동시에, 3차원으로 펼쳐지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투쟁은 동물이 밥 놓고 싸우는 밥그릇 투쟁만은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 3차원의 투쟁을 동반한다. 우리는 통합민주당 386들과 한나라당내 차기를 노리는 소장파 원희룡처럼, 과거에 한 때, "자유여, 민주여 만세"를 외친 사람들을 그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침팬지, 오랑우탄, 원숭이 아기들은 다들 비스무리하게 보인다. 그와 같은 이치이다. 그들도 한 때 분명 '자유'를 외쳤다. 독재에 맞서는. 그러나 지금 그들은 자본주의적 시장의 '자유'를 흔쾌히 박수치고 있는 것이다.


7. 자유 개념은 역사적으로 늘 변화 진화 투쟁해 오고 있다. 좌파는 우파보다 자유주의를 더 알아야한다.


맑스 이야기만 하면 식상하고, 맑스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하고, 현대적 해석을 해야할 때, 구절이나 소개시켜주고 그러면 재미도 떨어지고 해서, 유럽에서 원형 자유주의자라고 일컫는 존 로크의 사례를 들고 마칠까 한다.

 

한국 좌익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영국 의회의 발생과 역사를 모르면, 왜 서구좌파들이 의회주의에 당하고 있고, 그 제도와 법률투쟁에서 얼마나 힘겨워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없다 본다. 의회주의 비난하고 도망간다고 해결될 일은 이제 없다고 본다. 


존 로크는 세계사에서 등장하는 (유럽 중심으로 씌여진 이 모든 세계사 교과서) 1688년 제 2차 영국혁명 (소위 명예혁명)을 가능케 한, the Old Whig (올드 휘그당) 당의 정치 수장 쉐입즈베리 (Shaftesbury) 의 정치적 이론가들 중에 한 명이었다. 제임스 티렐 (Tyrrell)이라는 이론가와 더불어 소위 옥스포드 출신의 당대 내노라하는 엘리뜨였다.  이 세 사람이, 당시 왕정복고를 외치는 보수당 (the Tory)과 맞서서 정치 투쟁을 벌였다. 이 올드 휘그당의 정치적 목표는 영국 의회의 권한을 왕실보다 더 크게 하는 것이었다. 


1669년 경, 존 로크가 쓴 카롤리나의 기본헌법 (The Fundamental Constitutions of Carolina)에 보면, 존 로크가 영국 국회의원의 자격조건을 명시했는데, 500 에이커(Acre: 1 acre는 1227평) 이상 토지(61만 3천 500평)를 소유한 영국 중농 신사 (the English Gentry 계급)로 제한합니다. 그리고 투표 권한이 있는 자는 50 에이커 이상의 토지(6만 1350평)를 소유한자로 국한시킨다. (1 에이커는 소 한마리가 해 떠서 질 때까지 경작할 수 있는 넓이의 땅이다)


8. 초창기 근대 유럽에서 (정치적) 자유 개념은 '토지 소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를 논할 때는 반드시 '민사' 소유권과 결부시킬 필요가 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소위 여러가지 시민혁명이라고 기술되는 영국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 시민 혁명 등에서, 자유개념이란, 그리고 의회의 형성과정은, 이렇게 철저히 토지 등 자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회과학적 자료를 무시하고, 아주 거칠게 말해서, 아주 근본적 입장 취하자면, 2007년 지금 한국이나 미국, 영국, 17세기와 무슨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에 입성하는 자들의 계급 계층적 성격을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 국회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본 떠 이식된 제도이다. 앞으로 아마 100년은 이 의회라는 귀신과 물귀신 작전을 써가면서, 좌익이 악몽을 꾸어가면서 '자유'의 그 내용을 채워나가는 게임을 벌여야 할 것이다.

 

왜? 누구를 위해서? 이 물음에 대답하면서, 그 자유의 내용과 함의를 다르게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싸움이야 말로 바로 진보와 좌파를 자처하는 자들에게 놓인 지겨운 싸움인 것이다.


9. 촛불 데모에서 왜 대의제 '의회정치'나 '대통령제도'가 작동되지 않고 무기력한가? 


 답은 복잡하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다수 '평민'의 '시민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소영, 강부자, 3% 땅부자들이 더욱더 부자가 될 '자유'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시민들이 '의회'도 '대통령제도'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그렇지만, 자유도 역시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데모는 '무슨 내용의 자유'를 만들어내고 획득하고 있을까? 



 

최한솔 1.00.00 00:00

공력이 대단하십니다 ;_; 저는 단순히 '내가 나일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합니다. 호혜적 이유로 타인의 자유를 증진하고자 노력하고요. 결국, 미친듯이 주변과 싸워대는 결말이 기다리더군요 -_- 왜이리 내 삶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싶어하는 남들이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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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1.00.00 00:00

TJL 님이 쓴 <'자유'에 대한 착각과 '분배'란 말에 대한 거부감에 대하여 [3] TJL > 글 보고 답 글 형식으로... 또, 촛불데모에 참가하신 분들...그냥 맘 편히 촛불데모가 가져다 준 <자유>가 뭘까요? 위에 제 글과 상관없이요. 걍 아무렇게나 붓가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답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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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hlos 1.00.00 00:00

긴 글...싫습니다. 글이든 말이든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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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엣지 1.00.00 00:00

원시님 요즘삘받으신듯.잘 읽었습니다.갑자기 유투노래 듣고싶어지네요.디 자 아 아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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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이꾸! 1.00.00 00:00

원시 님.. 생각좀 해보고요... 사무실에서 눈치!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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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K 1.00.00 00:00

원시님 도배금지~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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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1.00.00 00:00

여러분 도와주세요 "촛불데모가 준 자유" 머예요? 한 줄로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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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서민 1.00.00 00:00

차도는 '차만'다니는 길이 아님, 광장은 시민들이 모이는 곳임. 촛불은 밤에 켜야 멋짐. 야참은 삼각김밥이 괜찮음. 밧줄만 있으면 버스도 끌고다님. 막으면 돌아가면 됨. 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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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L 1.00.00 00:00

잘 읽었습니다. 전 그저 그들이 말하는 '자유'가 시장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혼동되게 마케팅(?)되고 있다고 여겨져서 써본 글이었습니다만, 이렇게 또 길게 썰을 풀어주시네요. 촛불데모가 준 자유라면, '정치적 무지 강요'에 대한 자유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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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애 1.00.00 00:00

비판할 자유. 제가 정말 평범한 언니야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에 자주 들락거리는데, 대개가 그렇거든요. 대통령이나 정부가 하는 일을 그냥 믿고 따라야 하는 줄 알았다고들 얘기해요. 비판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신하는게 국민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국익에 큰 해가 된다고 은연중에 믿어온 거 같다고. 비판할 자유, 믿지않을 자유, 불복종할 자유. 어느 정도였냐면 처음 가두집회한 다음날 왜 시민들이 청계광장 뒤로 나와서 경복궁역 앞 점거한 적 있죠. 그날 전경들이 총을 탕탕 쏠 거 같아서 무서웠대요. 거리로 나가본게 처음이라고..^^ 그렇게 하라는 대로 하는게 익숙했던 사람들이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는게 무서워요. 진보신당 진짜 잘해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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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솔 1.00.00 00:00

너무 모호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으로 존재할 자유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등떠밀어서 나온게 아닌, 자기 발로 걸어나왔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요? 대책위가 '지도'하고자 했을때 사람들의 반응이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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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1.00.00 00:00

파애님과 한솔님 공통얘기가, 비판의 자유, 자기 목소리를 낼 공간을 찾는다. 외부 지시나 동원보다는 스스로, 혹은 커뮤니티와 더불어, 친숙한 집단과 같이 일체감을 느끼고 싶다. 이거네요?   내 목소리! 를 찾아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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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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