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노동2018. 7. 5. 14:18

2)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왜 노동자 임금 3배로 인상시켰는가? 소득주도 성장의 역사적 사례: 소득주도 경제성장(임금주도 경제성장), 문재인 정부는 과연 실천의지가 있는가? 출범이후 지금까지 관찰했지만, 문재인 정부 정책 헷갈리고 혼동만 가득하다. 그리고 정치적 상황은 심각하고 앞으로 더 그럴 것 같다. 임금주도 성장 패러다임은 자본주의 소유권 변화,노동자의 참여경영과 자치를 강조하는 정치적 좌파노선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97년 IMF 신자유주의 독재 치하에서, 한국전쟁 이후보다 더 민심이 나빠지고 살벌해진 한국 민심을 수습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조치는 노동자 복지의 최소한 정치적 조건이다.


소득(임금) 주도 성장을 보통 사람들이 아주 쉽게 이해한다면, 피부로 다가오는 사례는 없을까? 다음이 내가 이해한 임금주도 경제성장 논리다.

임금 주도 성장 논리 요약 "임금몫이 증가는 수요의 증가의 원인이 된다. 재화와 서비스가 시장에서 잘 팔리게 되니 자본 가동률이 상승하게 되고 이윤율도 증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 투자도 증가하게 되고 경제성장이 현실화된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과 박근혜 경쟁시, 민주당 문재인 선거캠프가 들고 나올 줄로 예상했던 한 노선이 로버트 라이시의 "충격 이후" 책에 나온 빈부격차 해소 방안이었다. 실제 노무현 문재인 참모들이 이 책을 검토했다는 보도도 본 듯 한데, 대선 정책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임금 주도) 경제성장"이 성공하려면, 헨리 포드의 1914년, 1929년 대공황, 1971년 이후 오일 쇼크, 2008년 금융공황과 한국 현재 경제조건이 다르지만, 적어도 노동자나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해야했다.


계명된 이기주의자 영리한 자본가 헨리 포드가 1914년 왜 포드 자동차 만드는 노동자의 임금을 타사보다 3배 올려줬는가? 

이러한 역사적 사례가 최근 나온 포스트케인지안의 "임금주도 성장"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14년 1월 5일 헨리 포드가 T 모델 자동차 생산 노동자들에게 일당 5달러를 임금으로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당시 미국 노동자 임금의 3배나 되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헨리 포드의 이런 급격한 임금 인상을 “경제적 범죄”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헨리 포드는 노동자 임금을 3배로 올려주는 것이야 말로 영리한 영업 추진력이라고 믿었고, 역사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줬다.

고임금을 받은 포드 자동차 회사 노동자들이 자사 생산품 ‘T모델’ 차를 구매하는데 575달러를 쾌척하는 고객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 일당 5달러의 임금이 결과적으로 다시 포드 회사로 귀환했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데도 기여했다.


헨리 포드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듯이 미친 사람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1914년 2500만 달러에서 2년 후에는 그 두배인 5700만 달러 이윤을 창출해낸 영리한 자본가였다.


포드는 고도의 생산적인 현대 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본적 경제 협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생산자들이자 동시에 소비자들이다. 노동자들의 소득은 끊임없이 재활용되어 다른 노동자들이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쓰여진다.


그런데 만약 노동자들의 소득이 충분하지 않고, 이러한 기본 협상이 깨지면, 그 경제체제는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재화)과 서비스를 생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1929년 대공황 이후, 메리너 에클리스가 목격한 악순환이고 ,2008년 미국이 경험하기 시작한 악순환이기도 하다.


Robert Reich, After Shock : The next economy and America’s Future. (New York: Vintage Books), 2011, p.28


3. The Basic Bargain


On January 5, 1914, Henry Ford announced that he was paying workers on his famously productive Model T assembly line in Highland Park, Michigan, $ 5 per eight-hour day. That was almost three times what the typical factory employee earned at the time.


In light this audacious move, some lauded Ford as a friend of the American worker; others called him a madman or a socialist, or both.


The Wall Street Journal termed his action “an economic crime.”


Ford thought it a cunning business move, and history proved him right. The higher wage turned Ford’s autoworkers into customers who eventually could afford to plunk down $ 575 for a Model T. Their purchases in effect returned some of those $ 5 paychecks to Ford, and helped finance even higher productivity in the future.


Ford was neither a madman nor a socialist, but a smart capitalist whose profits more than doubled from $ 25 million in 1914 to $ 57 million two years later.


Ford understood the basic economic bargain that lay at the heart of a modern, highly productive economy. Workers are also consumers. Their earnings are continuously recycled to buy the goods and services other workers produce.


But if earnings are inadequate and this basic bargain is broken, an economy produces more goods and services than its people are capable of purchasing.


This can lead to the vicious cycle Marriner Eccles witnessed after the Great Crash of 1929 and that the United States began to experience in 2008.


참고 2.

(이강국: 소득주도 성장: 이론, 실증, 그리고 한국의 논쟁 : 재정학 연구 제 10권 제 4호 p.10, 2017)


“포스트케인주의 연구는 이윤과 임금, 즉 기능적 소득분배에 주목하며 그것이 총수요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을 강조한다. (*임금주도 성장론은 기능적 소득분배 즉 이윤과 임금으로서의 소득분배가 총수요와 장기적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주류경제학의 성장론은 생산요소의 가격이 한계생산정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하여 기능적 소득분배가 생산함수의 기술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고 계급간의 역관계와 관련딘 거시경제의 동학을 분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포스트케인주의 성장 모형은 기능적 소득분배와 총수요, 자본축적, 그리고 성장 사이의 상호작용을 명시적으로 논의한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투자와 성장은 정체되고 있는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스트케인주의 연구는 기능적 소득분배의 변화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한다. 특히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이 제도나 정책, 그리고 노동자의 협상력과 같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면(ILO,2013: 이상헌,2014), 기능적 소득분배의 개선을 통한 성장의 촉진이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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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안철수 대통령 후보 출마 기자회견 평가 (1) 안철수 정책기조 비판: 경제정책 


- 가사 1절도 부르기 전에 불합격이다. 

안철수씨는 .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위 문장에서 감지되는 안철수씨의 경제관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안철수 선호도는 조제프 슘페터의 자본주의 혁신 innovation 이노베이션 강조이다. 소위 슘페터가 말한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 개념이다. 이 혁신(innovation)을 숭배하면서 자기 브랜드로 만든 사람이 미국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이고, 이를 그대로 복사한 사람들이 안철수씨이고 또 2007년 유한 킴벌리 문국현 사장이었다. 

 (2) 안철수씨는 앞으로 자기 개인 성공 경험에 기초해서 경제관을 발표할 것이다. 예상되는 안철수씨의 경제정책 핵심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금 경제민주화나 복지 달성은 우선 한국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이윤창출 방식의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안철수씨의 오류는 우선 한국 자본주의와 그 성장동력의 사실관계로부터 비롯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 부문은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전자, 중화학 공업 등 전통적인 2차 산업부문이다. 안철수씨는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망각하고 있다. 

 (3)안철수씨의 연설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 그 진단과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대졸 실업 청년부터 노래방에서 알바하는 가정주부,52세에 은퇴한 힘이 남는 아버지들에 이르까지)는 한국 경제 1인당 국민총생산(GDP)는 성장하고 있고 그 평균값은 올라갔지만,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나 1인당 중간값 (Median: 가장 많은 숫자의 국민들의 소득값: 중위소득) 은 하락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조중동과 보수적인 경제신문들 조차도 언급하고 있는 1% 대 99% 양극화 사회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안철수씨의 대안이 있긴 하다. 안철수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것은 "한쪽 편에서 끊임없이 성장이 이뤄져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 재원이 복지나 경제민주화 쪽으로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정답...성장 없는 경제민주화는 바퀴가 하나밖에 없는 자전거라고 생각한다" 

 (4) 그러나 이러한 안철수 발언 "성장 먼저, 그 과실을 분배 = 정답" 이런 등식의 문제점은, 소위 신-고전파나 신-자유주의자들, 통화론자들이 내세운 "낙수 효과 trickle down"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거나, 오히려 1%:99% 사회로 가버렸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수출이 둔화되고 불황형 무역흑자가 계속된다면, 현실적으로는 그리스, 스페인에서 노동자들에게 저항을 받고 있는 ‘긴축정책’이 안철수와 문재인 등 민주당 정권이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자나 좌파가 아닌, '복지'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케인지안이나 최근 신자유주의의 대안들로서 대두되는 '(포스트) 케인지안' 등, 그리고 심지어 미국 민주당 내 진보세력 (오바마 행정부의 친-월스트리트, 친-금융자본 정책을 비판하는)도 소득 불평등 시정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가처분 소득 증가' '소득 불평등 구조 개선' 등은 케인즈 Keynes가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 '총 수요 감소'에 있지 ‘과소비’에 있지 않다고 본 것, 그리고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상품 (가치) 실현의 위기에 있다고 본 것과 연관이 있다. 

미국도 1930년대 공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루스벨트 정권 하에서 매리너 에클스 (Marriner Eccles)가 미 연방은행장 (FRB) 을 맡으면서 실시한 정책들은,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기조로 공공투자비를 늘이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 이를 통해 고용을 창출해서 가처분 소득을 증가시키는 방향이었다.




 (미국 유타 주 태생 메리너 에클스, 몰몬교와 자본가 출신 배경이었지만, 국가가 자본주의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창: 미국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민주당 루즈벨트 거시정책에 적극 개입: 미 연방은행장 역임)  


이러한 소득 불균형 불평등 개선을 통한 유효수요의 창출이 공황의 타개책이었던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구체적인 예를들자면 다음과 같다. 삼성 이건희 1명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그림을 90억원 주고, 소비하는 것보다, 10만명이 동네 치킨집 통닭 1마리 9,000원 주고 구매하는 게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놓고도, 지금 한국경제처럼 10대 재벌 위주의 <수출 주도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체제 (*선진화 모델로 포장함)로 갈 것이냐, 아니면 최근 한국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케인지안의 복고, 혹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케인지안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들을 제시할 것이냐 (*좌파의 입장에서, 복지의 주체는 행정관료나 엘리뜨 교수들의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제시보다는 실제 정치주체들로서 노동자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단순한 경제적 관점의 복지를 뛰어넘는 정치-경제 공동체 건설) 등 여러가지 패러다임들이 존재한다.

 안철수씨가 말한 문장은 비문일 뿐더러, 내용도 '혁신'만 강조하고 '선 경제성장 후 분배'라는 실패한 패러다임을 다시 주장하고, 그게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무지와 오만함을 보여줬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정치적 이해를 하는 것과, 안철수와 그 캠프가 말하는 실제 대안들을 구별하는 정치적 현명함이 필요하겠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국 정치 발전이다. 

 (안철수 대통령 후보 연설문과 기자회견 답변을 보고 드는 단상: 9월 20일) 

 안철수씨의 내적 모순 가능성: 안철수씨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의 성공을 설명하면서, IT 업계에서 살아남아서 성공한 사례가 2%, 3%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 하에서, 미국 IT (dotcom)버블이 꺼져가는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왜 98%, 97% 창업 기업들은 다 망했거나 적자를 냈고, 안철수씨 회사 등 2%만 살아남거나 흑자를 냈는가? 그 이유가 슘페터가 말한 "혁신" "창조적 파괴"를 하지 못해서 그렇게 파산하거나 적자기업이 되었는가? 그 문제에 안철수씨는 답해야 할 것이다.

 2012.10.01 23:14:38 

 안철수, 문국현 등이 숭배하는 자본주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Drucker)가 원용한, 조제프 슘페터의 '혁신' '창조적 파괴 과정'이란 무엇인가?

독일과 체코 국경 모라비아 (집시의 고향으로 유명한 지방으로, 생활세계 Lebenswelt 개념의 고안자 에드문트 훗설 Husserl의 고향이기도 하다) 태생, 당대 좌우파를 막론하고 새로운 지식의 생산지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공부했던 슘페터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1943>, "창조적 파괴 과정" 이라는 장을 보면, 창조적 파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국내 국외를 막론한 새로운 시장들이 형성되고, 장인들이 일하는 공장이나 숍으로부터 시작해서 US 철강과 같은 (대규모) 비지니스로까지 조직 자체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을 보면, 어떻게 산업적인 형태 변이가 일어났는가를 알 수가 있다. 생물학적 용어를 빌려쓰자면, 이러한 산업적 형태 변이는 '외부로부터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내부로부터' 경제구조를 끊임없이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다시말해서 옛 것을 파괴시키고 새로운 것을 줄기차게 창조시켰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면모이다. " (Joseph A. Schumpeter,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London, Unwin University books, p.83 ) (CEO출신 문국현과 안철수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피터 드러커의 '창조적 파괴' 개념) 

 그런데 문제는 경영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느 누구나 '창조적 혁신'을 긍정적인 단어로 쓸 수 있겠고, 기술발달과 창의적 교육과 이 '창조적 파괴'를 연결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역사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창조적 파괴'란, 제 2차 세계대전과 같이 전쟁을 통해서, 자본주의 과잉생산의 물리적 시설인 공장 뿐만 아니라 노동력의 주체인 노동자들을 파괴하고 살상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창조적 파괴'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마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 혹은 고려청자를 빚어낸 고려시대 이름없는 도공의 '노동'을 의미하는 것처럼 미화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자본주의 하에서 창조적 파괴와 미학적 의미에서 '창조적 파괴'와는 동일하지 않다. 데이타에 잡히지 않았지만, 안철수씨 보다 훨씬 더 '창조적'인 사람들도, 자본주의적 상품화나 그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해서, 97년~ 2005년 사이 IT 업계에서 망한 97%, 98% 안에 속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위와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씨는 앞으로 한국 경제가 살 길은 '창조적 파괴' '융합'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고 믿고 있고, 그 이론적 근거를 피터 드러커와 같은 경영학 미래학자들, 그가 찬양하는 숨페터의 권위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한국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시장이나 여론이 있기 때문에.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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