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1987 체제의 의미와 한계:

노동소득의 차별과 격차, 그리고 자산소득격차를 합법적으로 법률로써 보장해주는 게 “87년 절차적 민주주의”체제

원시 2010.10.26 20:10


왜 2010년 한국 좌파들, 진보정당이 힘든 게임을 하고 있고, 자꾸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G20] IMF는  재벌들 지배구조와 똑같다. 세계인구14% 국가들 56%지배권리 행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빈부격차가 양적/질적으로 최대한 커졌고, 민심과 보통 사람들의 인심 자체가, 전쟁이나 내전을 벌이고 있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피폐해졌고, 살벌해졌다.


 


소위 진보와 좌파세력들이 힘든 싸움과 게임을 벌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7년 절차적 민주주의 달성 이후, 경제 영역에서 실질적인 민주화가 <좌파와 진보의 민주주의> 핵심내용이다. 그러나, 이 좌파와 진보의 민주주의 = “이제 다같이 잘 사는 것이 민주주의”는, 노동소득의 실질적인 격차 해소와, 자산(부동산, 금융자산)의 재분배를 둘러싼 정치투쟁을 통해서 달성된다.


 


그러나 이 노동소득의 실질적인 평등화 (분배정책 + 사회적 직업귀천의 완전 철폐와 신분-차별적 문화 제거등) 와  자산의 재분배 (세금을 통한 환수조치 등)는 그 투쟁 자체가 힘들다. 왜냐하면, 노동소득의 차별과 격차, 그리고 자산소득격차를 합법적으로 법률로써 보장해주는 게 “87년 절차적 민주주의”체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국민참여당, 김대중, 노무현 등이 왜 미국식 자본주의를 선진기법이라고 수용하고, 그 길만이 살 길이라고 (대안없음 TINA : there is no alternative) 선언했는가? 그 본질적 이유는, 그들의 정치적 업적으로 가장 크게 내세우는 87년 민주화 운동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자본주의 체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는데 있다.


 


왜 박정희 향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박근혜를 “보수 마리아” 로 만들었는가?


 


노동소득, 즉 이제 하루 8시간 일해서, 집 사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주말에 차 타고 여행갈 수 있다고 믿는 한국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집권시절에는, “하루에 8시간, 10시간 일해서 저축하면, 과거 보릿고개는 피할 수 있다. 마이 카 시대가 도래한다”는 꿈이라도 있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끝났다”로 대변되는, 이 노동소득 시대의 종언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 즉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살벌한 한국식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담화와 생각이다.


 


다시, 왜 한국에서 정치적 좌파와 진보세력이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가? 87년 민주주의 헌법체제가 보장하고 있는, 그리고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완전히 잘못 성형된 김대중-노무현식 “미국 주주 자본주의의 한국으로 이식 성형수술”, 이 두 가지는 철저하게 “노동을 통한 소득의 균등화, 평등화” 투쟁을 합법적으로 가로 막고 있고, 또한 자산 소득의 격차를 더 벌이는 정책들을 펴왔기 때문이다.


 


87년과 같은 대규모 군중투쟁이나, 100만이 시청앞 광장에 모여서 “정권 타도”를 외치는 투쟁은 실제로 어렵다. 패배주의가 아니다. 헌법이니 민주주의 정치질서를 깨뜨리는 파쇼-전두환과 투쟁하는 것과, 87년민주주의 헌법자체가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노동 소득 불평등” 심화, 그리고 “자산소득 격차 심화”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은 그 성질이 다르다. 


 


87년 민주화 운동시 썼던, 땀, 쇠파이프, 짱돌, 화장지, 화염병, 어깨동무 등은 아직도 필요한 지도 모르지만, 노동소득 불평등을 “자기 정체성, 자존심”으로 이미 내재화하고 있고, 자기 자랑으로 여기거나 자기 체념으로 여기는 한국 시민들, 노동자들, 청년들에게, 아무리 “당신은 88만원 세대야”라고 말해준다고 해서, “법을 매개로 제도화되고, 사회적 관행으로 공고화되고, 사람들 의식속에 파고들어, 내재화된” 자본주의 원리들과 맞서 싸우기는 힘들다.


 


불가능하다가 아니다. 힘들다는 것이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화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노동 소득 불평등 심화 현상, 자산 소득 격차로 인한 “인생 패배감”은 어떻게 정치적 혁명(개혁?) 의지로, 정치적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


진보정당과 소위 정치적 좌파들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위에서 말한, “노동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산 소득의 격차를 더 벌이는” 모든 자본주의 제도들과 사회관행들을, 수술 칼로 썰어서 세상에 드러내어 주어, 햇볕으로 말려죽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적 적들이 다변화되었다는 것을,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정치적 적들을 그 날카로운 수술칼들로 끄집어 내어서, 시민들 앞에 노동자들 앞에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가 87년에는 타도 대상을 삼지 않았던 김&장 법률사무소, 그리고 IMF,WTO, GATT 와 같은 국제기구들, 초국적 자본, 삼성, 현대/기아, SK재벌, 소버린, 사모펀드, 고-소-영 라인 (고대-소망교회-영남지방)과 같은 권력지배구조들 등을 우리의 정치적 적수들로 맞이해야 하는가?  


 


지금 재능교육, 동희오토 하청 노동자들, 구미 KEC 노동자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이 찬 길바닥에서 1800일 이상을 투쟁해도, “불법이다”고 버틸 수 있는 원인은, 87년 법질서와 97년 IMF위기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합법적으로 만들어놓은 “노동 유연화” “노동자-노동자 갈등 부추켜 분할 지배”하는 노동통제전략들 때문이다. 이는 누가 만들었는가? 


 


이 법안들은 다 누가 만들었는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같이 만들어서 통과시킨 것이다.


그 김대중 정권을 지배하고 통제했던 IMF 국제 통화 기금은 무엇인가? 누구인가?    누가 그 IMF 의 권력을 쥐고 있는가?


(지난 30년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최악의 날, 1997년 12월 22일, IMF 복지삭감 긴축독재 개막, 전두환-노태우 사면 조치) 


2010.10.26 20:06

[G20] 동희오토,기륭 고통의 근원지, IMF 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개조해야!

원시 조회 수 987 댓글 5 ?

 왜 97년 IMF 외환위기 원인들과 잘못된 처방들은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는가?


 


 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WTO등에 대해서는 비판도 하고 그랬지만,  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그 이후,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97년 IMF 위기를 가져오게 한  소위 "와싱턴 컨센서스 (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Washington_Consensus )" 전략들에 대해서는 97년 당시에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일례로 IMF 의사결정권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거부권 (아래 18%, 최근 신문에 보니까 17.67% 임) "에 대해서, 97년 임창렬 재경경제원 장관과 캉드쉬 IMF 총재, 나이스 단장이 IMF 기금 협상할 당시에는, 그 미국의 비토권이 왜 가능한지에 대해서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1998년 봄에 가서야 비로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97년부터 98년까지 금모으기 운동 찬양하고, IMF 외환위기 원인이 국민의 "과소비"에 있고, 그럴싸한 그러한 정확하지 않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만 있고, 국내경제 3주체 (소비자, 기업, 정부)의 도덕적 환골탈퇴만이 IMF외환위기 극복 수단이라고 했던, 김대중-노무현정부,그리고 경제기획원(재정), 경제학과 정치학과 사회학과 대다수 교수들과, 조중동 컬럼, 심지어 한겨레신문 기사들은 반성해야겠습니다. 이 "도덕적 환골탈퇴"는 대량해고의 자유, 노-노갈등을 부추키고,비정규직 대량양산,노동조합 무력화로 이어지고, 이는 해외투자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도덕"운동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10년, 13년 후에, 역사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 벌어졌지만) 동희오토 하청 노동자들, 기륭 전자 노동자들이 비정규직화되고,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지금 이 현실을 낳은 게 97년 IMF위기 (와싱턴 컨센서스와 미국 자본의 이해관계가 그 주요한 원인임) 와 그 잘못된 처방들 (김대중 정부의 굴욕적인 IMF 처방전 수용과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선진화로 착각함 +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 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민주당이 반성한다고 하는데, 더 반성해야 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관건입니다만.


 


IMF 의  민주적 개조, 미국 헤게모니 깨부셔야 한다.


 


아래 글은, (진보적인) 정치학 개론 교과서 로 쓰이고 있는 교재에 나오는 일부분을 번역한 것입니다.



"국제 금융 제도들(IFIs) 의 조직구조는 기업구조와 유사하다.  한 국가멤버가 IMF 에 얼마나 많은 돈을 집어넣느냐에 따라서, 그  돈의 양에 따라서 그 국가의 지분숫자들이 결정된다. 당연히 어떤 주주들은 다른 주주들보다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한다. 미국과 다른 부자나라들은 그 지분들의 많은 비중들을 차지하고 있고, 따라서 IMF나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더 큰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들어서, 산업선진국가들인 G7과 유럽연합 다른 국가들은 단지 세계인구의 14%밖에 지나지 않지만, IMF 기금 (quata)의 56%를 제공하고 있고, 이런 이유로해서, IMF 집행위원회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 국가의 지분(share)이나 기금할당(quota)의 크기에 따라서, IMF기금 멤버들 사이에서 내부 서열이 형성된다. 왜냐하면, 기금 할당량이 펀드에 투표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나 지적되어야 할 것은, 원래 이러한 IMF의 주주-규제 구조를 만든 이유는, 유엔 UN 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는 교착상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을 통한 결정들 혹은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예를들어서, IMF 펀드 조항-articles-들을 바꾸기 위해서) 85%라는 다수결이 필요하다.


 


따라서, IMF 지분의 15%를 끌어모을 수 있는 어떤 국가들의 모임이나 그런 국가는 그 결정들/변화들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 85% 다수결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반드시 그 제안들의 변화에 동의를 해야한다. 왜냐하면 미국이 IMF 기금의 18%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은 불평등한 주주-기초-권력-구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IMF 자체가 대규모로 민주적인 “적자”를 떠 안고 있다는 것이다.  ( IMF기구 자체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는 의미이고, 경제위기를 해소하는데 기금을 대주는 IMF자체가 민주적 적자로 허덕이고 있다는 비판임)  "   


   

 Critical concepts : an introduction to politics / edited by Janine Brodie and Sandra Rein.   3rd ed.  Toronto : Pearson Prentice Hall, 2004. p.307


 


관련기사: 한겨레 신문: IMF 지배구조에 대해서 

http://www.hani.co.kr/arti/economy/finance/445419.html

Comment +0


87년 6.10과, 2010년 6.10의 차이 - 노트   2010.06.10 16:48


 원시 -

 

 

달력을 보니까 오늘이 1987년 6월 10일, 6-10 항쟁 23주년이더군요.  당원들은 6월 10일에 뭐를 하셨을까? 궁금한데요.

 

87년 6월 10일에 말입니다.

 

6-10 항쟁,실은 진보정당에서 중요하게 재해석하고 그래야 하는데, 저번 광주 항쟁 30주년 때도 아쉬웠는데요,

역사적 시간이라는게, 참 무섭게 흘러갑니다.

 

1950년 한국전쟁, 1980년 광주항쟁, 그리고 2010년  이렇게 30년이라는 세월이 들어가 있는데, 왜 이렇게 한국전쟁부터 80년 광주까지 30년은 엄청 긴 역사같은데, 80년 광주부터 2010년까지는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50년-53년 전쟁이, 이념과 체제, 냉전, 희생, 상처, 제국주의와 식민지, 복수의식을 남겼다면,

80년 광주는 민주적 공동체와 제국주의의 재발견, 그리고 좌익의 복원이라는 계기를 남겼는데,

2010년은 우리에게 어떤 정치사의 의미를 남겼을까?

 

       1) 저는 시대정신으로 고르라면, "한국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쓴 맛을 제대로 보고, 그 논리에 순치당하고 있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당시 한국사람들 자산 가치가 국제시장에서 50%으로 폭락했으니까, 사람들이 제 정신이었겠습니까?  내 돈 1만원이 IMF 폭탄맞고 5천원으로 변했으니, " 국민들이 제 정신이겠습니까? 눈알이 다 뒤집어지죠"

  2010년 지금도 97년 충격이 일상생활에서 채 가시지 않고 다양한 형식들로 남아있다고 봅니다.

 

       2) 아니러니하지만, 한국 정치사 남북한 다 포함해서, 이번 천암함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50년-53년 미국 U.S.A라는 존재, 80년 광주 (군사파쇼의 재등장과 미국에 대한 인식 전환과 좌파의 복원), 97년 IMF 위원회와 결정사항에 "비토"권한을 지닌 미국이 한국자본주의에 제동을 걸고 "냉전의 쇼 윈도우"로서 포지션을 박탈한 사건, 이제 더이상 한국자본주의와 정부에 미국이 던져줄 떡고물은 없고, 한국도 내 놓을 것은 내놔야 한다는 냉엄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게임법칙이 한국 시민사회에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6.10 항쟁, 87년, 길거리에서 맨주먹, 화염병, 돌로 눈에 보이는 파쇼의 똥개(방패막이) 전경/백골단들과 육박전을 벌이면서,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주의" - 독재타도 호헌철폐, 최루탄을 쏘지마라, 이한열을 살려내라"를 외치던 시민들, 학생들, 노동자들... 그 이후 10년이 지난 후, 한국전쟁 이후,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그나마 최고로 급속도로 향유하던 "10년의 세월 (87년-96년사이)"을 보냈다. 

 

     97년 IMF 외환위기 원인분석: 대외적인 요소들과 대내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당시 한국주류언론에서 다루던 한보철강-제일은행-김현철 관치금융 및 제 2 금융권들의 무분별한 외자 도입 등이 IMF 외환위기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소위 와싱턴 컨센서스를 고려했을 때, 해외초국적 자본,특히 미국의 금융자본과 미 행정부의 한국자본시장에 대한 공격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미국이 일본은행들에게 한국의 제 2금융권들의 빚 상환 독촉을 강요했고, 당시 태국 바트화의 투매현상으로 대부자로서 일본은행은 한국채무자들을 봐줄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 배후로는 미국 행정부가 있었다.

 

      와싱턴 컨센서스 보고서 각본에 따르면, 97년 한국 대선시기를 틈타, 대선 후보들이 IMF의 가장 혹독한 (austere) 정책들

 (고금리, BIS기준강화, 노조 무력화, 노동유연화 강압, M&A 법 개정, 해외투기자본 자유화, 한국상업은행의 미국화 등)을 강제로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이건 음모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현실정치였다. 


이 결과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실업자들과 구조조정에서 패배자된 사람들로 민심은 피폐해지고 가정조차도 파괴되는 현상들이 늘어났다.



 

     4) [중간 삽입] 


IMF 원인들 진단에 대해서 필자 역시 98년 봄이 되어서야 비로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대학과 연구소, 사회과학(경제, 정치,사회학과, 혹은 철학과 등)은 패배감과 낭패감으로 휩싸였고, 이론적 파산선고를 당했다. 어느 누구 하나 IMF 위기가 왜 왔는지, 제대로 그 원인규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예견도 제대로 못했다. 시민단체나 민노총 등도 마찬가지상태였다.
(* 주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그나마 실천적인 투쟁으로서 가치가 있었지만,IMF 전체그림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었다)            

 

     97년 이후,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어로서 정확한 개념은 아니지만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87년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97년 이제 <경제적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라고 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좌파-진보정당에 정확한 단어는 아니다. <경제적 민주주의>야, 민주당/국참당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독일,캐나다,영국 등 보수당들도 <경제적 민주주의 >, 즉 사회복지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

 

      좌파-진보당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 성격을 바꿔놓은 "어메리칸 스탠다드: 속칭 글로벌 스탠다드"와, 국내적으로 "사적 소유 재산권 (땅, 빌딩, 집, 주식, 금융자산 등)" 을 떠받치는 법률체계(민법)와 게임을 벌여야 한다.


 게임이라고 함은, 87년 체제가 만들어놓은 (불가피하게도)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 게임규칙 속에서 게임을 벌여야 한다는것이다. 



 

     5)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던데, 아주 쉽게 말하면, 현행 대한민국의 "사적 소유 재산권, 자산"에 대한 반성적 해체 및 재구성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사적인 재산권을 세밀하게 다시 분해해서, 시민들의 자아실현, 자유와 평등, 인권과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금의 정치학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두번째는 노동소득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줄이고 완화시켜야 한다.

      

 조금 단순화를 시키자면 "삶의 터전"을 자유와 평등의 터전으로, 우리들의 행복의 터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1) 일 터  (2) 놀이 터 (3) 쉼 터 (4) 집 터 

 

이러한 삶의 터전들을 우리들이 내세우는 삶의 지표나, 정치철학이 실현되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게, 추상적으로 이름 붙이자면, 21세기 좌파가 이뤄내야 할 자유,평등, 연대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6) 다시 조금 97년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일상 생활, 이 삶의 터전을 보자. 한국은 50년 한국전쟁 이후, 97년-2007년 사이 (그리고 지금까지), 일상사에서 민심이 가장 흉악스럽게 변했다. 


위에서 말한대로, 97년 IMF 위기는 한국사람들에게 "자기 자산 가치가 50%로 깎이는 국제자본질서의 매운 맛을 봤기에" "자본주의 질서와 원리를 자기 몸으로 내재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국가가 "자본축적을 위해 저축을 강요하지 않아도" 이제 87년 데모하던 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식투자 (이제 도덕적인 선악 판단이 아니다)" "재테크" "땅투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고,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는 가치관들을 가지게 되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어메리칸 스탠다드" 자본주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고, 일상생활에서 "어메리칸 스탠다드"를 쫓기 위해서 필수적인 "영어 광풍"이 5천만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에 "불안과 걱정" "열등감과 우월감"의 코드로 남겼다.

   

  7)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위에서 말한 "삶의 터전"에서 우리 한국사람들은 문화가 없거나 박탈당하고 있다. 하이데거 말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 =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라는 의미인데, 한국인들에게는 밥먹고, 타인에게 우월감을 느끼기거나 열패감을 감추기 위한 "계급 계층 상승"의 영어가 "우리들 존재의 집 = 삶의 터전"을 갉아먹고 있다.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쉼 터, 놀이 터, 집 터 역시, 97년 이전과 현격히 구별되는 "있는 자" 대 "없는 자"로 갈라져 있다.

 

이런 사회 균열과 계급계층화를 조각해오고, 조장해 온 정치 집단은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 MB 하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 노무현 회상" 이라고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철저하게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돈과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 노골적으로 조금 더 거친 방식으로 무식하게 전개되고 있다.



 

   8) 진보정당, 이러한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에 기초한 정치활동, 제대로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삶의 터전에 대해서 "돈과 자본의 논리"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삶의 터전 (예를들어서 도시 계획 urban planning)에 대한 철저 연구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데모, 촛불시위, 반-MB 그건 "삶의 터전"의 일부이고,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제는 우리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없이는 정치운동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감동도 실제적인 도움이나 문제해결도 줄 수 없다. 잣대를 들고, 측량기를 매고, 현미경을 들고, 수도 계량기를 가지고, 자기 삶의 터전(일터, 쉼터, 놀이터, 집 터)를 연구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 사이 우정, 가족들의 유대감, 연인들끼리 사랑, 이웃간의 애정과 존중을 파괴하고 왜곡시키는 "돈과 자본, 부당한 권력과 술수들의 복합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삶의 터전에서 작동해야할 삶의 원리들 (우정, 유대감, 연대감, 사랑, 애정, 존중 등)을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9) 87년 6월 항쟁, 당시는 적이 단일했고, 단순했고 선명했다. 그러나 그 이후,그리고 97년 이후는 적들은 분화되었고, 우리 삶의 터전에서 세균처럼 우글우글 체세포 분열을 하고 있다.   길거리 데모, 촛불시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로 이 체세포 분열하는 분화하는 정치적 적들을 박멸할 수 없다.

 

 10)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없이, 진보정치 좌파정치 불가능하다.

    4만 유권자면, 1만 가구 (household)이다. 유권자들 이름을 다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삶의 터전이 무엇인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기록하고 받아 적어야 한다.

      요새 "민심이 당심에 선행하고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현대 사회과학이나 현대정치에서 "민심"은 철저한 "삶의 터전"의 조사에서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과연 진보정당에서 정치하면서, 자기 동네 삶의 터전들에 대한 "지도 map"이라도 제대로 작성된 게 있나? 


     진보신당 6.2 선거에서 기초의원 15명 중에서, 재선에 성공한 사람이 8명이다. "당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는 게 더 중요하다. 박정희가 18년 정치해서, 지금도 보수유권자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4년은 부족하다. 적어도 10년은 해야 정치적 성과가 나오니까.

 

   진보신당 온라인, 오프라인 정치, 정치적 본질과 정치가로서 임무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당심이니 민심이니" 아직 논할 수준도 안된다.

 

나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남는 좌파를 가르켜, "원천 핵심 기술 보유자"라고 할 것이다.  "연합정치"는 그 다음이다.

정치하면서 "연합정치" 안하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말도 안되는 이분법으로 택도 아닌 논리학으로 "진보신당이 연합정치를 모른다?"고 할 시기가 아니다. 무슨 좌파 정치라도 제대로 해봤나? 87년 길거리 데모 말고, "삶의 터전"에서 적어도 4가지 터전에서 (일터, 쉼터, 놀이터, 집터)에서 좌파의 정치적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했는가? 그래서 민심을 획득했는가?

 

원천 핵심 기술 보유 (삶의 터전에서 좌파 정치 실천자) 없이,  떠돌이 이합집산 정치해봐야 그건, 원천 핵심 기술없이 복제만 해대고 "로열티"만 지불하던 회사랑 똑같다.

      

11)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

      97년 IMF 긴축통치 이후, 이제는 "삶의 터전"의 정치를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삶의 터전에 뿌리박힌 수많은 이해관계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법률적 이해관계들의 복잡성들을 공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 돈, 부당한 권력을 막아내고 물리칠 수 없다.

 

87년 독재타도를 위해서 길거리에서 돌, 화염병, 물통을 들었다면,

이제 "삶의 터전"에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행복, 공적 행복"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법률적 수단들을 들어야 한다. 


일터에서 재산권,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재테크 부동산 집 뉴타운 등, 쉼터에서 여가문화와 관련된 모든 사회제도들, 놀이터에서 문화, 예술, 스포츠 활동들과 그 사회적 기반시설과 계급계층 차별 해소 등......

 

87년과 대비해서,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분화되었고, 수십가지 수백가지인데, 자꾸 역사적인 퇴행을 부추기는 세력들 (진보정당 내부에 관성적이고 교조적이고, 또 무원칙적인 제 멋대로 진보들 등등: 87 민주화만이 자기네들 정통 민주화라고 외치는 민주당세력들; 민주화와는 담쌓고 지내는 한나라당)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Comments '3'

로자 ★ 2010.06.10 16:57

후아~` 밥 딜란이다. 냉커피와 함께 딱이네요. 얼음을 우두둑


 댓글


파애 2010.06.10 17:44

87년에 관련된 기억이 하나 있어요. 6월10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그해 여름에 최루탄이 많이 날아다녔던 기억이 있으니까(군산에서도!!) 아마 맞을 겁니다.

전 그때 초등학교 3학년 꼬꼼화 였는데

저희가 살던집은 드르륵 여는 미닫이문만 달린 일본식가옥이었죠.

군산에는 대문도 없이 미닫이문만 있는 집들이 지금도 꽤 남아 있어요.


자려고 하는데 밖에서 사람들 뛰는 소리 빵빵 하는 소리가 막 나더니

아직 잠그지 않았던 저희집 미닫이문을 누가 열고 들어오는 거에요.

너무 거리낌 없이 들어와서 전 아빠 친구나 누구인줄 알았는데

시위대중 한명이었습니다. 

하얀 마스크를 하고 비쩍 마른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컵라면에 끓는 물을 좀 부어 달라고 청하더라고요.

그리고 내민 사발면.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엄마가 황급히 부엌으로 물 끓이러 들어가고 아빠는 그분더러 대청마루(일본식집이라 어른 허벅지 정도 올라오는 마루가 있었어요)에 앉아서 쉬라고 하고 물도 한잔 따라주고 그랬던거 같아요.


전 방문에 뚫린 유리창문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죠.엄마가 내오신 김치랑 라면을 먹더니 그분은 다시 마스크를 올리고 조심조심 밖을 살피더니 불꺼진 거리를 뛰어서 어디론가 갔습니다.


제게 87년 6월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집에 올때마다 늘 매캐하게 코를 찌르던 최루탄 냄새.

노XX가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다는 말을 담임샘께 했더니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제 입을 막았던 것도 기억나요. ㅋ


 댓글

원시 2010.06.11 00:41

군산이 정말 오래된 도시죠...일제시대 호남평야 쌀을 일본으로 만주로 실어나르는 "항구도시"였으니까, 일본식 집 하니까 생각나네요. 역사가 돌고 돌아서, 다시 해주 - 개성 - 인천  - 군산 - 목포 이런 서해안 항구도시들이 이제는 "뱅기 공항"이랑 같이 들어서겠지만... 앞으로 한 100년 안에는 엄청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노태우가 대통령되면 나라가 망한다"고...어렸을 때부터 푸른싹이 있었네요^^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