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노트(독후감)2018. 8. 30. 21:03

(내용 요약) 

마르크스의 주장과 명제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마르크스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란 한 방법이고, 이론적 사고 체계이며,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추종자들에게는 권위를 지닌 원전 총서들이다. 

그런데 이런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향 때문에 늘 난관에 봉착했다. 그 경향이란 이런 태도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 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어야 했어’라고 자기들이 먼저 결정해 놓고서, 그 다음에 이미 선택된 관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마르크스 텍스트의 권위를 들이댔던 경향이다.  

마르크스 사상의 진화적 발전 과정을 깊이 학습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절충주의의 문제점들이 더 증폭되는 것을 통제해왔다. 그런데 알튀세는 마르크스의 장점이 그 저서들에 있기 보다는,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라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알튀세의 이러한 발견은 위에서 언급한 ‘통제’가 결여되어 있다. 다시말해서 알튀세의 마르크스 해석에는 심층적인 마르크스 사상의 진화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다.


Chapter 15.  the structure of capital 자본의 구조 

Moreover the revival of Marxism requires a genuine willingness to see what Marx was trying to do, though this does not imply agreement with all his propositions. Marxism, which is at once a method, a body of theoretical thinking, and collection of texts regarded by its followers as authoritative, has always suffered from the tendency of Marxists to begin by deciding what they think Marx ought to have said, and then to look for textual authority for the chose views.


Such eclecticism has normally been controlled by a serious study of the evolution of Marx’s own thought.  M.Althusser’s discovery that the merit of Marx lies not so much in his own writings, but in allowing Althusser to say what he ought to have said, removes this control.

 

It is to be feared that he will not be the only theorist to replace the real Marx by one of his own construction. Whether the Aluthsserian Marx or other analogous constructs will turn out to be as interesting as the original is , however, quite another question.

1966 (51)

(Eric Hobsbawm, Revolutionaries, (London:Abacus), 1973,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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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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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2015. 8. 4. 23:33

1993년.2월.22일. 한겨레 신문. 김수행 선생님이 61년도 대학에 들어가서 당시 <들어라 양키들아!> 과 같은 책을 보며, 당시 쿠바를 비롯한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우는 '민족해방 혁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60년대 당시 마르크스 서적들을 구하기 힘들어 일본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를 구분하는 알튀세 Althusser 의 '인식론적 단절'을 김수행선생은 비판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질인 임금노동자가 자본주의 대규모 생산체제 하에서도 '단결과 협동'을 통해서 노동자들 스스로 생산주체가 될 수 있고 자기욕구를 해결하는 정치적 주체라는 마르크스 문제의식은 초기부터 후기까지 일관된다는 입장을 김수행 선생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세미나 시간에 "Althusser 이 친구들이 마르크스 자본을 꼼꼼히 읽지 않았다고....."라고 비판적 코멘트를 여러번 하셨다. 이때만 해도 젊은 소장 학자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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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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