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2013. 10. 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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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한국 법률사에서 분수령이 될 윤석열 검사 증언, 그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 


윤석열 법을 제정해서, 검사 활동의 지침서로 만들어야 한다. 

 

왜  윤석열 검사 국정원 수사는 계속되어야 하는가?  

 

윤석열 검사의 국감장 증언은 촛불데모, 민주화운동, 좌파들에게는 정치적 상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잡아놓은 국감 콘셉트, 즉 ‘윤석열 검사의 항명 및 검사동일체, 상명하복 규율 위반’ 주장도 어쩌면 속 보이는 정치적 연기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장의 증언은 노회찬 전 의원의 “안기부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폭로” 사건보다 더 정치적으로, 특히 법 제도적인 측면에서 더 중요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일선 검사 일부는  TV 중계 방송을 보다가 ‘검찰 집안 싸움’의 속살을 보는 듯 해서 TV 를 꺼버렸다고 했다. 정치적 수치감과 자존감의 상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편에서 보면, 이 정치적 수치감의 실체는 다름 아닌 지난 60년간 한국 검찰의 속살 누출이자 동시에 자정노력이다.


 어둠만 있는 게 아니라 밝음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자율권,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기초한 검찰의 지위, 검사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이 어떻게 훼손되었는가? 그 실체가 윤석열 검사의 증언을 통해서 온 나라와 해외에 중계되었기 때문이다.

 

노회찬씨의 “떡값 검사 폭로 (삼성 재벌이 국가 행정부 검찰을 장악해나가는 한 지배양식)”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정치적 실천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현행 법률 권력에 밀려나고, 오히려 노회찬씨는 의원직을 상실하고 말았다. 


현행 법률의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법률 제도 (검찰이나 법무부) 기관 바깥에서 비판한 것이 노회찬의 “떡값 검사 폭로”이고, 반면 윤석열 검사의 증언은 법 제도 기관 내부로부터 나온 실증적 기록이고, 시민들에게는 검찰 역사상 가장 생생한 다큐멘타리 보도였다.

 

이 윤석열 검사의 “10월 21일 서울지검 다큐멘타리”는 한국의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와 그 정신이 무엇인가? 법의 타당성과 정당성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였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특히 검찰, 법무부라는 제도기관 내부에서, 현행 헌법 정신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법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가르쳐준, 혹은 정견을 발표한 검사는 많지 않았다.

 

윤석열 검사는 왜 법률에 대한 민주주의적 교과서를 우리들에게 남겼는가?

 

첫번째, 어떤 사람들은 이미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시험에 등장한 답안을 윤석열 검사가 말한 것 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윤석열 검사가 국정감사장에서 직접 의견을 밝힌 사실 자체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윤석열 검사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왜 윤석열 검사는 상부 지시를 따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보고는 이미 여러 차례 했고, 검찰청법 7조 2항에 나온 상부와 의견이 다를 경우에 대해서는, 상부의 위법한 지시는 따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윤석열 검사의 답변은, 현행 검찰청이나 법무부의 지시와 헌법정신이 서로 상충할 경우, 검사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 헌법정신에 근거해서 수사와 공소장 작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쩌면 정치적 상식일 것이다. 물론 서울지검 검사들을 얼차려 시키는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과 얼차려를 당해야 하는 검사들의 심정에는 상식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 제도나 시민들, 노동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민주적 검사, 즉 헌법정신을 따르는 검사들의 수사와 공소장 작성을 격려할 수 있는가? 


또한 이미 여러 나라들에서 실천하고 있는 시민 참여제도 (배심원 제도)를 우리가 실천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외부적인 시민 참여를 넘어서서, 검사들 스스로 ‘검사 평의회 prosecutor council’를 만들어 돈, 권력,외부협박,승진 불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수사권을 확보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뉴스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검사를 국정원 수사에서 배제시키는 게 옳냐 그르냐에 대한 여론조사이다. 잘 모른다는 답변이 많다는 것은, 이번 국감증언이 검찰청 내부 일로 국한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배제가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근소하게 앞선다.) 


 

두번째, 윤석열 검사의 증언과 실천은 공무원 중립성의 의미와 한국 민주주의 심화 발전과의 상관 관계를 해명했다.

 

국감장의 핵심 주제는 윤석열 검사와 국정원 댓글과 대선 개입 특별수사팀의 활동이 왜 정당한가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칙 콘셉트 “윤석열 검사는 명령 불복종 직원이다. 검찰조직을 사랑하지 않는 자의 최후”는 흥행하지 못했다.


 

윤석열 검사는 국정원 직원 대선 개입과 틔위터와 댓글을 이용한 여론조작을 한국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로 판단하고 수사를 착수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10월 16일에 법원에서도 윤석열 특별수사팀에게 국정원 직원 체포 영장 발부를 승인했다.


 

만약 새누리당과 국정원장 (윤석열 특별수사팀이 국정원 직원들 4명을 체포 수사했다는 소식에 격노했다는 남재준 국정원장)과 법무부 황교안, 현 검찰청 직무대행이 윤석열 검사팀의 수사가 한국 민주주의에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면, 다음과 같은 것이 법정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국정원 직원들이 2012년 12월 대선 당시 온라인 댓글을 달고, 틔위터에 6만여 개 글을 올린 행위가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를 했는가를 역으로 증명하면 된다.


윤석열 검사는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 온라인 댓글 달기 행위가 ‘중대한 범죄’라고 주장했고, 수사를 해서 법정에서 판결을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했다면, 이에 대해서 반박하려면,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국정원 남재준, 검찰총장 직무대행 길태기씨는 법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온라인 특수팀의 행위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입증하면 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말한 “국정원 직원은 댓글도 못다냐?”에 대한 글에서 더 밝히도록 하겠다.


 


 (이번 윤석열 검사의 증언 내용은, 마치 네덜란드 적은 마을에서 한 소년이 동네 저수지 둑에 쥐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 밤 새워 손가락으로 막아서 마을을 지킨 것과 유사하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희생과 피에 기초해 있는 한국 민주주의라는 저수지 둑에 쥐구멍을 내는 것을 예방하려는 것이 이번 윤석열 검사팀이 하고자하는 국정원 직원 수사이다.)



세번째, 윤석열 검사와 국정원 직원 댓글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한국 민주주의사에서 중요한 의미는, 검찰 (법제도) 내부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는, 다시 말해서 역사적인 반동체제로 회귀에 대한 예방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검찰청의 독립성 확보와 검사들의 자율권 행사와도 연결되어 있다. 



공무원으로서 윤석열 검사가 “국정원 댓글은 중대한 범죄라서 수사를 착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정치학적으로 해석하면, 소위 87년 헌법체제를1981년 2월 25일의 제 5공화국 전두환 헌법으로 되돌아가려는 역사적 반동에 대한 예방책이다. 


왜냐하면 국정원 직원들이 유권자들의 정치적 투표권 행사에 필요한 정보들을 왜곡하고 통제함으로써, 참정권을 찬탈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참정권을 행사(투표 자체)에만 국한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투표하느냐, 어떤 과정을 거쳐 투표에 참여하는냐이다. 국정원식 선거는 유권자들을 ‘통제 가능한 조작가능한’ 투표 기계로 간주하는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가 영국 의회주의 제도와 유권자 투표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투표만 한다고 해서 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투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수반되지 않은 ‘투표’행위는 언제든지 지배자들에게 통제 조작당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1981년 장충체육관 대통령 선거 (2천여명 조금 넘는 대의원들이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선거)체제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이와 같은 반동적인 경향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80년대는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서 길거리 데모만 해도 백골단 전경이 시위자들을 마음대로 구타하고 구속시켰다. 


경찰이 시위자를 잡아오면 검찰 (검사)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시키고 법정에 넘겼다. 2012년 국정원 대선 댓글 틔위터 조직적 개입, 군인들의 사이버사령부는, 80년대 길거리 시위대 구타 및 체포와 그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하거나 더 악날하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공간은 길거리 데모와 달리 24시간 감시 통제가 가능하고, 정보 통제와 왜곡된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은 신체 구속이나 폭력보다 더 장기적인 심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적인 공간까지 침해가 가능하고, 언제든지 어디 곳에서든지 구속이나 체포가 가능하다.


 

세금 받아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국정원, 검찰 공무원, 국가 발전을 위해서 정보수집해야 하는 국정원 직원들이 세금 내는 시민들의 정치활동과 참정권을 찬탈하는 게 ‘중대 범죄’아니고 무엇인가? 


 윤석열 검사와 특별수사팀에서 강조하는 것은 한국 시민들이 정치적 실천과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만들어놓은, 시민들의 합의에 기초한 현행 법을 국정원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위반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어느 적은 마을에서 저수지 둑에 쥐구멍이 생겨서 저수지가 통째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밤을 지새우면서 그 소년이 적은 손가락과 손으로 그 구멍을 막았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저수지 둑에 쥐구멍을 뚫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 그들을 비호하고 엄호하는 법무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 현 검찰청 일부 검사들은 이 저수지 쥐구멍이 커져서 저수지 둑이 무너지면, 그들도 오갈데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윤석열 검사의 증언과 실천은 한국 민주주의 제도의 심화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검찰과 법의 타당성과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일상생활로 어떻게 안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현재 권력의 편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시민들의 합의정신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법률적으로도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번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의 본질은 말하지 않고, 오직 윤석열 검사가 수사과정에서 상부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만을 왜곡되게 부각시키자, 답답한 마음을 피력하면서, 위법한 상부지시와 검찰청 내부의 이견의 차이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장면이다. 손가락을 펴서 들어보이고 있는 윤석열 검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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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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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3. 6. 23.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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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당을 표방했는데, 정작에 자기 일터에서 노동과정, 희로애락 이야기는 빠져있다. 


정책은 독일 녹색당, 좌파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공자, 마르크스가 말한 '문자'만 나열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재 한국내에서 '진보 비지니스화' 로 퇴락한 사민주의나 '복지론'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이나 보수-새누리당을 이기는데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사회복지정책은 보수당도 민주당 리버럴리스트도 다 쓸 수 있다. 


사회주의자 좌파들의 독점물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보수파와 민주당과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당의 모든 정책들은 일터, 쉼터, 놀이터, 일상생활 터전과 동네에서 솟구쳐 나와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주체적인 필수 조건은,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취가 정책에 담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새누리당과 구별되는 우리 정당 정책의 제 1차적 원자료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 희로애락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자기 이야기, 일터에서 자기들이 느낀 점들, 그것은 우리들의 붉은 피이다. 과거 민노당과 진보신당에는 그 붉은 피가 흐르지 않았다. 아까쟁끼(머크로크롬액: 상처났을 때 바르던 빨간 액체 약)는 좀 발랐다고 해서 그건 붉은 피는 아니다. 예를들어 
파업장 방문이나 민노총 협조 재정후원 받기 및 교류 등.  


노동이란 허드렛 일이나 로봇이 대신 하면 좋을 그저 귀찮은 일만은 아니다. 학교에서, 경찰서에서, 비누 공장에서, 어부, 농부의 일, 지하철 기관사, 판사의 판결문 작성,  구청장의 업무, 소녀시대 가수들까지  모든 게 다 노동이고 일이다. 노동을 제조업이나 상점 서비스업에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97년 IMF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와  긴축정책이후 변화된 한국 자본주의 축적 양식과 노동자들의 의식 변화 등에 대해서 정치적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87년 "우리는 공돌이 공순이가 아니다. 우리도 인간이다. 노동 3권이 인권이다" 이 슬로건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 발전되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새롭게 노동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수립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서, 임금인상, 고용안전과 같은 노동기본권이 다시금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경제적 활동 기본권리와 더불어, 일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자기 표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노동과정 속에서 진정한 노동해방이 실현되어야 하고, 또 노동자들의 자유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위기론 대두 이후, 현재 한국에서는 '노동'에 대한 개념이 잘못 쓰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노동중심성'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 '탈-노동' 및 비-노동 정치가치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 양자의 오류들 중에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과정에 대한 정치적 중요성을 전혀 말하지 않고 연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 노동자들(교사, 제조업, 서비스업, 과학자)과 도시 자영업자들(정규직 해고자들이나 도시 빈민층)의 노동 과정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터에서 '노동 과정'의 중요성을 한번 살펴보자. 


20세기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은 자본주의 시장제도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는 평가는 우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점도 공정하게 토론되어야 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이 주제와 더불어 보다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구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통제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계획경제  하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은 당관료나 행정관료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또다른 정치적 소외의 대상이었다.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의 전유물이 더 이상 아니다. 이건 삼성 이건희도 삼성경제 연구소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하고 넓은 의미에서 계획경제의 자본주의적 도입이다. 혼합경제 = 사회민주주의 하자는 입장도 마찬가지로 계획경제를 수용하고 있고, 국가나 정부가 직접 생산,유통,교환,소비의 주체가 된다)



안타깝게도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의 오류가 한국 진보정당과 좌파정당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신당의 공통된 약점과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들의 노동과정, 자기 일에 대한 자기 표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표현)이 없거나,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정책 정당을 표방했으나,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말하고 표현한 것에 기초해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생산과정, 노동과정, 직장 일터에서 자기 일에 대해서 스스로 말하지 않는 자는, 대안사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우리들은 과연 이 한국의 모든 일터들을 우리들이 '대안의 일터'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터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들을 '정치적으로' 승화시키고 '수정체'로 만드는 일이 바로 정당이 할 일이다.


1.


1988년 일본, 게이샤, 이동하는 차량에서 전화 




2. 1958년 중국, 충칭, 짐을 나르는 노동자들




3. 2002년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카와 일렌 화산, 유황을 짊어진 광부





4. 


2001년 캄보디아, 승려들이 지뢰를 제거하고 있다. 





5. 1989년 중국 광조우, 출근하는 노동자들 














6. 2002년 예멘, 호데이다, 사막에서 농사짓다. 




7. 1985년 페루, 카하마르카, 소 도축장




8. 1980년 인도네시아, 자바, 논 농사





9. 2004년 아프리카 콩고, 벌목 




10. 1947년 영국 에섹스 Essex, 자동차 수출 





11. 1997년, 그리스 파콕스, 올리브 채취. 






12. 1966년, 프랑스 파라, 루브르 박물관, 모나 리사 유리 액자 청소






13. 1996년 러시아, 아이 출산원, 간호사




14. 2005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라구에박, 자스타바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





15. 2001년 터어키. 광산 노동자들


휴식 




16. 1991년,이태리 밀라노 , 패션쇼 

지오지오 마르마니 



17. 2003년 슬로바키아, 로마 Roma 정착촌






18. 1998년 루마니아, 면직물을 자아내는 할머니들





19. 1920년대 프랑스 아낙네들, 동네 공동 우물에서




20. 1936년, 포르투갈, 리스본, 구두 닦는 사람들





21. 2002년, 프랑스, 파리. 길거리 음악가




22. 2000년 터어키, 어선 만들기




23. 1977년 독일 돼지 도축장 노동자들




24. 


1994년, 이태리 베니스, 곤돌라 배 노젓는 뱃사공





25. 1999년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경비 군인




26. 2000년 러시아, 라보제로, 얼음 낚시 후 집으로 가는 길.






27. 1887년-1889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 Eiffel Tower 건설 





28. 1986년 브라질, 세라 페라다, 금광 광부





29, 책 출처 


제목: 노동 Work. 


사진작가: 퍼디난디 프로츠만 Ferdinandd Prot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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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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