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20. 4. 9. 07:59

대구, 1960년 419 민주항쟁의 출발을 만들었던 도시, 그 부활을 기대하며.

코로나 19 위기시대,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와 관용정신이 절실한 415 총선이 되어야 한다. 


'우리'라는 말은 참 좋은데, 폭력이 될 수도 있다. 1989년 동유럽 시민들이 "우리가 인민이다 Wir sind das Volks"라는 구호를 외치며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을 때는 진보적인 의미의 '우리'였다. 그러나 "우리 지역, 우리 나라를 떠나라"는 비관용적 혐오정치적 구호는 반민주적이며 반인륜적인 '우리'가 된다. 조폭 '영토'전쟁과 차이가 없게 된다.  영국 런던에서 성은 목씨,이름은 조나단인, 한 싱가포르 (중국계) 학생이 폭행을 당했다. "너네 나라 코로나 바이러스를 내 나라에 왜 가져왔어"라는 욕을 들으며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했다. 몇 사람이 목씨를 집단 구타했다.


다른 한편, 대구시에서 박근혜 지지자가 정의당 조명래 후보 청년 선거운동원을 때렸다.  "여기는 박근혜야" 외치며, 조명래 후보가 연설하는 연단에 올라가 하트 모양을 그리고 조롱한 후, 단상을 내려와 한 청년을 때리며 행패를 부렸다.


지금 해외에서는 트럼프가 'COVID-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한 이후, 한국인, 중국인, 아시아인들에 대한 폭행과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인 나 역시 캐나다 미국에서 잉글랜드계와 스코트랜드계인을 구별하지 못했듯이, 미국 캐나다 유럽 사람들은 중국인과 한국인을,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지 못한다. 

중국인 한국인 모두 다 폭력 위협과 협박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지지자의 폭력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한편으로는 이 말을 첨언해야겠다. '대구는 원래 보수야' '대구는 버려'라는 정치적 발언을 한 김어준식은 잘못되었다. 대구 폭행현장을 비판하는 것은 '대구시와 대구시민 전체'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권유린 현장을 비판하고자 함이다. 


"여기는 정의당 영토야, 민주당 영토야, 박근혜 영토니까, 너는 맞아도 된다"는 식은 "코로나 바이러스 몰고 온 중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은 맞아도 된다" 식 사고와 똑같다.


대구가 원래 보수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대구는 수구적이고 저렇게 폭력적인 비-관용의 도시가 아니었다. 1960년 315 선거에서 이승만 독재자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도시, 이승만 자유당 표가 제일 적게 나온 도시가 바로 '대구'였기 때문이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도시가 바로 대구였다. 


역사는 돌 뿐만 아니라, 변화한다. 한 때 대구는 "여긴 이승만 독재자 땅이 아니야, 독재자 OUT, 이기붕 깡패정치 아웃"을 외치던 가장 민주적인 도시들에 하나였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저 폭행현장을 방치한 대구시에 항의전화는 할 필요는 있다.




https://bit.ly/2RobZJ9






기사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0/mar/03/police-investigate-alleged-coronavirus-linked-attack-on-london-student-jonathan-mok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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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국제정치2016. 11. 10. 00:33


메모니까 생각나는대로 병렬적으로 기계적으로 패배 승리 이유들을 나열함.  


(1) 힐러리 클린턴이 여자였기 때문에 졌는가? 그렇지 않다. '좋은' '탁월한' 여자 후보가 아니어서 문제였다 


힐러리 클린턴이 여자였기 때문에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과 동네 깡패 같은 행동으로 반지성적 ‘놈’같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다.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여자였기 때문에 진 것이 아니라,  ‘좋은’ ‘탁월한’ 여자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동네 건달 같은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 유권자들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출구 조사에 따르면 여성 유권자의 54%가 힐러리를, 42%가 도널드 트럼프에 투표했다. 2012년 오바마가 득표한 55%보다 더 적은 비율이다. 

한 표본 집단의 예를 들어보자. 


그런데다 비대졸 백인 여성의 경우, 35%만이 힐러리에 투표했고, 59%는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손을 들어줬다. 대졸 백인 여성 유권자의 경우, 51%는 힐러리 클린턴에 43%는 도널드 트럼프를 찍었다.  이 수치들 뒤에 숨은 의미들은 더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2008년,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가 획득한 표, 그리고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획득한 표 숫자, 그 차이는 크다. 반면 빨간색 공화당 후보들의 득표는 큰 차이가 없다.) 


결론적으로 이 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힐러리 클린턴이 '좋은' '경쟁력있는' 후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2)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를 압도하지 못했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아야 하는 상황

후보 자질 문제와 경쟁력 , 대표성  그리고  선거 전략 


대통령의 자질과 관련, 정직성과 신뢰도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37%, 도널드 트럼프는 32%만이 ‘그렇다’는 답변을 받아, 두 후보다 정직하지 못하고 ‘믿을 만한 지도자’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힐러리 클린턴이 이 항목에서도 도널드 트럼프와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노동자들, 특히 백인 남성 노동자들에게 힐러리 클린턴은 노회한 로비스트 정치인으로 보였고, 기득권 중에 상층 기득권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버니 샌더스와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도 이미 지적되었던 문제다.  그들 눈에는 힐러리는 남편 빌 클린턴 8년 임기 동안  세계화 바람을 타고, 또 NAFTA와 같은 자유무역 정책으로 인해  700만개 정도 일자리가 중국과 멕시코 한국 남미 국가들로 이전해 버리게 만든 공범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버니 샌더스의  불평등 해소책과 미국의 재산업화 정책들 대폭 수용했으나, 힐러리가 버니 샌더스가 유권자들에게 심어준 ‘신뢰’와 ‘대중성’은 확보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긍정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것이 아니라, 백인 노동자 상당수가 힐러리 클린턴을 ‘거부’하고 반대해 버린 것이다. 


기존 정치 이론과 정책 입장에서 보면 , 도널드 트럼프에 투표한 미국 백인 노동자들은 소위 계급 배반 투표를 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사회복지 재원에 필수적인 ‘법인세’를 증세하지 않고 오히려 현행 35%에서 15%로 법인세를 감소하고 재산세도 깎아준다고 공약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은 50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는 기존 소득세 이외에  초과 소득세 4%를 더 징수하고, 재산세도 인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백인 남성 노동 계층에서음에도, 미국 백인 노동 계층은 힐러리 클린턴보다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해버렸다.

미국 정치사와 선거 역사에서  이런 계급 배반 투표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다 민주당이 유럽의 사회당이나 사회민주당에 상응한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계급 투표 성향을 정확히 측정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또 미국에 제대로된 진보적 좌파정당이 부재하기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이  자기 계급 이해와는 반대로 투표해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는 공허한 설명으로 흐르기 쉽다. 존재하지도 않는 ‘당위적’ 좌파 정당을 상정해놓고 현실을 이론에 꿰맞추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를 지지층이라고 밝혀진 농촌 지역,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 상대적 저학력,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이 왜 도널드 트럼프를 대선에서 선택했는가? 


(3) 증오심을 표출할 희생양을 미국 정치 무대위로 올렸던 도널드 트럼프 전략 

- 집결 (포함)과 탈락 (완전 배제) 전술 


여러가지 이유들 중에, 여기서는 우선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전략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하자. 미국 중하층 노동계층에게는 , 백인이건, 흑인이건, 라티노건, 아시아계이건, 2008년 금융 공황 이후, 노동 소득과 고용율 이라는 측면에서 피부로 느낄 정도로 생활이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가 자기 지지층이라고 명명한 세계화와 자유무역 정책으로 인해 “버려지고 뒤처진 “ 미국인들에게는  절망이 더 크게 보였고, 희망이 더 적게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런 심리를 이용했고 파고 들었다. 논리적 이성적 토론이라 추론, 어떠한 계산적 합리성이 아니라, 감정적인  ‘증오심’을 조직화했고, 현실에서 그 혐오감을 표출하고 희생양을 찾아 분풀이를 해버리는 선거 전략을 도널드 트럼프가 '전투 벌이듯' 구사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아우라에 휩싸인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것을 따라했다. '도대체 내 일자리를 뺏어가고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왜 자꾸 전쟁은 터지는가?'  미국 국내건 국외건 어떤 개인, 사람들, 나라들, 인종들, 그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내 복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내 일자리를 위협하는 외국인과 이민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이슬람 테러 단체를 미국 안전을 위협하는 적으로 지목하고, 오바마 정부와는 다르게 지상군을 파견해서 IS 와 같은 테러 집단들을 완전히 청소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다 '이제 미국 정부 재정, 돈도 부족하다.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가들, 당신들은 당신네들이 이제 알아서 자주 국방하고, 군사비도 더 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군 철수 시키겠다'는 선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미국의 국제전쟁 개입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클린턴보다 훨씬 더 '화끈해' 보였다. 먹혀들었다. 


이러한 톡톡 튀는 '럭비볼' 트럼프와 대조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40년 동안 미국 와싱턴 정치를 대표하는 기득권 세력이고, 로비스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월스트리트 투기 자본, 금융 자본 로비에 굴종한 노회한 정치인이다. 


2007년 한국 대선에서 '성공한 대기업 말단 사원 이명박' 신드롬과 같은 유사 증후군이 이번 미국 대선과정에서도 생겨났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고, 멕시코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국경 담을 설치하자고 하면서 반이민자 정서를 부추기고, 여성의 성기를 자기 멋대로 또 돈만 주면 만질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니고, 실제 여성들의 신체를 함부로 공격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백인 남성 노동 계층에게는 ‘어 그래도 이 놈이 2007년 한국 이명박처럼 우리들에게 돈은 벌게 해주겠구나, 성공한 경영인이고 부동산 부자이니까 일자리는 잘 만들어 줄 수 있는’ 동네 형으로 해석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승리를 유럽 극우파들이 대환영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미국 사회와 그 밑바닥 정치 의식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는 금새 알 수 있다.


 


(다음 주제들)

- 힐러리 클린턴 선거 전략 검토

- 도널드 트럼프 외교 정책과 한반도 국제 정치 변동 가능성

- 유럽과 미국 정치에서 극우 세력의 연대 가능성

- 마이클 무어의 정치 예견에 대한 평가

-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 

- 오바마 정부 정책의 성과와 한계, 오바마 건강보험 정책, 월스트리트 투기 자본, 금융자본에 대한 정책 문제점 

- 미국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들 분석 잣대를

- 트럼프에 대한 잘못된 정치적 해석들 (지젝부터 한국 언론까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주요 요인들 중에서, 백인들의 결집이 큰 요인이었다.


출구 조사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은 백인의 37%, 도널드 트럼프는 58%를 획득했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오바마는 39%, 공화당 롬니는 59% 득표)



트럼프를 당선시키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것이, 미국 백인들의 결집 현상이었다. 


아래 한 조사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백인 유권자의 기여도는 26 %, 이에 비해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 백인 유권자들의 기여도는 38.7%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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