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국제정치2016. 2. 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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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상 메르켈과 국방장관 폰 더 라이엔의 대화

July 24, 2015 · 


메르켈: “(독일 언론이 거 참) 사람들이 내가 아이가 없다고 욕하고 그래요" 

폰 더 라이엔 “그럼 우리 둘 평균이 3.5명이네요,  그럼 우리 둘이 반반씩 나눠서, 3.5명 아이 엄마합시다" (* 폰 데어 라이엔 Von der Leyen 독일 국방장관은 자녀가 7명임 ) 



* 독일에서 '전통적인 가정 주부 Hausfrau' 역할에 대한 강조는, 한국 시어머니 며느리 잡듯이 하는 것처럼 강했다. 최근 Herdpraemie (스토브-보너스) 에 대한 '불법' 판결이 났는데, 한 달 160유로씩, 아이 보는 어머니에게 주는 일종의 육아 기금이었다. 이게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 이 법안은 2년전인가, 독일 보수정당 체 에스 우 CSU 기사련이 우겨서 통과시킨 법안이었다.


* 헤르트프래미 160유로를 한달에 받는 사람들은 여자가 다수가,아빠의 경우는 10~15% 정도 되었는데, 아이들이 공공 탁아소에 가지 않으면, 이 돈 160유로를 받는 것이다.


* 녹색당과 좌파당이 비판한 이유는, 이민자 아이들이 만약 공공 탁아소에 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독일어를 독일원주민처럼 배우지 못하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공공 육아 기관이 쇠퇴한다는 것이다. 


* 한국에서 '육아' 문제, 그리고 '은퇴자, 노인 연금, 황혼 여생 '문제는 심각한 주제들이다. 지난 15년간, 이 문제와 '교육'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게 가슴이 쓰리다.

갑자기 농담하는 슈피겔지 보다가,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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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2013. 12. 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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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뉴스 자료 : 독일 사민당 (에스.페.데 SPD) 과 기민당 (체.데.우 CDU) 연정 내각, 기민당 출신 여성 정치가 우어술라 폰 데어 레이엔 Ursula von der Leyen 논란 중:

찬성 여론 40%

반대 여론 43% 


독일 정치 메르켈, 한 수 던지다.







지난 독일연방의회 선거 표 (뉴스 출처: 타게스샤우 tagesschau) 


1. 2013년 9월 22일 : 독일 연방 의회 선거 결과 



(순서대로: 기민-기사 연합 41.5% , 사민당 25.7 %, 자유민주당 4.8% 좌파당 8.6% 녹색당 8.4% 이상 원내: 아래 원외정당 독일 대안 당 4.7% 해적당 2.2 % )


2. 지난 전 선거와 비교해서 증감표 : 당 순서대로 


(자유민주당 하락폭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좌파당, 녹색당 순서로 )


3.  득표율 5%를 넘은 당은 의석을 가진다. 현재 의석 분포도 (총 631석)



(기민-기사 연합 311석, 사민당 193석, 좌파당 64석, 녹색당 63석)


4. 서부 독일 지역 


(기민-기사 지지율이 높고, 좌파당이 약하다) 


5. 동부 독일 



(상대적으로 좌파당 지지율이 높고, 서부와는 큰 격차가 난다. 이는 좌파당의 미래과제가 서부 개척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민당 상대적 약세) 

6. 두 개 거대 정당 비교 (기민-기사 연합당 대 사민당 : 2005년을 기점으로 사민당이 처진다) 



7. 소수당 지지율 추이 지난 20년간 (좌파당 2009년까지 상승하다 그 이후로 주춤 하락

: 녹색당 일정 최근 하락

: 자유민주당 꾸준히 상승하다가 2009년 이후 하락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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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3. 6. 23.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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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당을 표방했는데, 정작에 자기 일터에서 노동과정, 희로애락 이야기는 빠져있다. 


정책은 독일 녹색당, 좌파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공자, 마르크스가 말한 '문자'만 나열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재 한국내에서 '진보 비지니스화' 로 퇴락한 사민주의나 '복지론'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이나 보수-새누리당을 이기는데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사회복지정책은 보수당도 민주당 리버럴리스트도 다 쓸 수 있다. 


사회주의자 좌파들의 독점물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보수파와 민주당과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당의 모든 정책들은 일터, 쉼터, 놀이터, 일상생활 터전과 동네에서 솟구쳐 나와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주체적인 필수 조건은,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취가 정책에 담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새누리당과 구별되는 우리 정당 정책의 제 1차적 원자료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 희로애락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자기 이야기, 일터에서 자기들이 느낀 점들, 그것은 우리들의 붉은 피이다. 과거 민노당과 진보신당에는 그 붉은 피가 흐르지 않았다. 아까쟁끼(머크로크롬액: 상처났을 때 바르던 빨간 액체 약)는 좀 발랐다고 해서 그건 붉은 피는 아니다. 예를들어 
파업장 방문이나 민노총 협조 재정후원 받기 및 교류 등.  


노동이란 허드렛 일이나 로봇이 대신 하면 좋을 그저 귀찮은 일만은 아니다. 학교에서, 경찰서에서, 비누 공장에서, 어부, 농부의 일, 지하철 기관사, 판사의 판결문 작성,  구청장의 업무, 소녀시대 가수들까지  모든 게 다 노동이고 일이다. 노동을 제조업이나 상점 서비스업에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97년 IMF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와  긴축정책이후 변화된 한국 자본주의 축적 양식과 노동자들의 의식 변화 등에 대해서 정치적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87년 "우리는 공돌이 공순이가 아니다. 우리도 인간이다. 노동 3권이 인권이다" 이 슬로건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 발전되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새롭게 노동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수립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서, 임금인상, 고용안전과 같은 노동기본권이 다시금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경제적 활동 기본권리와 더불어, 일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자기 표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노동과정 속에서 진정한 노동해방이 실현되어야 하고, 또 노동자들의 자유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위기론 대두 이후, 현재 한국에서는 '노동'에 대한 개념이 잘못 쓰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노동중심성'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 '탈-노동' 및 비-노동 정치가치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 양자의 오류들 중에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과정에 대한 정치적 중요성을 전혀 말하지 않고 연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 노동자들(교사, 제조업, 서비스업, 과학자)과 도시 자영업자들(정규직 해고자들이나 도시 빈민층)의 노동 과정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터에서 '노동 과정'의 중요성을 한번 살펴보자. 


20세기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은 자본주의 시장제도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는 평가는 우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점도 공정하게 토론되어야 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이 주제와 더불어 보다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구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통제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계획경제  하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은 당관료나 행정관료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또다른 정치적 소외의 대상이었다.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의 전유물이 더 이상 아니다. 이건 삼성 이건희도 삼성경제 연구소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하고 넓은 의미에서 계획경제의 자본주의적 도입이다. 혼합경제 = 사회민주주의 하자는 입장도 마찬가지로 계획경제를 수용하고 있고, 국가나 정부가 직접 생산,유통,교환,소비의 주체가 된다)



안타깝게도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의 오류가 한국 진보정당과 좌파정당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신당의 공통된 약점과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들의 노동과정, 자기 일에 대한 자기 표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표현)이 없거나,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정책 정당을 표방했으나,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말하고 표현한 것에 기초해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생산과정, 노동과정, 직장 일터에서 자기 일에 대해서 스스로 말하지 않는 자는, 대안사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우리들은 과연 이 한국의 모든 일터들을 우리들이 '대안의 일터'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터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들을 '정치적으로' 승화시키고 '수정체'로 만드는 일이 바로 정당이 할 일이다.


1.


1988년 일본, 게이샤, 이동하는 차량에서 전화 




2. 1958년 중국, 충칭, 짐을 나르는 노동자들




3. 2002년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카와 일렌 화산, 유황을 짊어진 광부





4. 


2001년 캄보디아, 승려들이 지뢰를 제거하고 있다. 





5. 1989년 중국 광조우, 출근하는 노동자들 














6. 2002년 예멘, 호데이다, 사막에서 농사짓다. 




7. 1985년 페루, 카하마르카, 소 도축장




8. 1980년 인도네시아, 자바, 논 농사





9. 2004년 아프리카 콩고, 벌목 




10. 1947년 영국 에섹스 Essex, 자동차 수출 





11. 1997년, 그리스 파콕스, 올리브 채취. 






12. 1966년, 프랑스 파라, 루브르 박물관, 모나 리사 유리 액자 청소






13. 1996년 러시아, 아이 출산원, 간호사




14. 2005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라구에박, 자스타바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





15. 2001년 터어키. 광산 노동자들


휴식 




16. 1991년,이태리 밀라노 , 패션쇼 

지오지오 마르마니 



17. 2003년 슬로바키아, 로마 Roma 정착촌






18. 1998년 루마니아, 면직물을 자아내는 할머니들





19. 1920년대 프랑스 아낙네들, 동네 공동 우물에서




20. 1936년, 포르투갈, 리스본, 구두 닦는 사람들





21. 2002년, 프랑스, 파리. 길거리 음악가




22. 2000년 터어키, 어선 만들기




23. 1977년 독일 돼지 도축장 노동자들




24. 


1994년, 이태리 베니스, 곤돌라 배 노젓는 뱃사공





25. 1999년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경비 군인




26. 2000년 러시아, 라보제로, 얼음 낚시 후 집으로 가는 길.






27. 1887년-1889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 Eiffel Tower 건설 





28. 1986년 브라질, 세라 페라다, 금광 광부





29, 책 출처 


제목: 노동 Work. 


사진작가: 퍼디난디 프로츠만 Ferdinandd Prot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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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2. 8. 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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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정부 안에 대해서 생각해볼 주제들: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1차 연석회의 개최 (이하 새 진보당 건설)에서 조승수 대표의 모두 발언 ( http://www.newjinbo.org/xe/964730 )을 읽고 후기를 씁니다.

조승수 대표의 발언이 외교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애매하다. 모호하다. "인생 새옹지마, 남향의 햇볕 많이 들 집, 미래를 성찰하자?, 집권은 수단이라고 하면서도 또 집권을 가훈으로 쓸 때가 되었다." 이게 다 모호하고 애매한 발언이다.  8자 회담이외에 민노당+진보신당 (사무총장 1인 + 부대표급 1인 = 4인 회동 소위구성)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투명하게 논의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 과거 청산이 민노당만 반성하라 (대북정책, 패권주의 등)으로 축소되어 있고 2) 민노, 사회, 진보신당 3당의 자기 반성 주제들은 없다 3) 집권이라는 대야망, 근거없는 낙관만 그리고 있다. 

<민노-진보신당 4인 회동>안은  <경로 고민: 정종권 안>에서도 말한 "협상 과정 자체가 정치적 주목을 받을 기획"으로 드라마화되어야 한다?는 방안도 아니다. (사무총장 1인 + 부대표급 1인 = 4인 회동 소위구성)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감흥 드라마" 실패일 것이다. 이 문제는 차후에 논의하고, 우선 2012년 대선 승리와 집권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한다. 

민노당 국회의원 5명가지고 3년내내 4%~5%, 진보신당 2%, 사회당 0.4%라는 위기의식을 가진 진보정당들이 느닷없이 또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연립정부> 집권의 꿈을 꾼다. 이것이 지금 상식적으로 가능한 <미래 상상>이며 <창발적 아이디어>인가?  대선에서 후보 전술들은 몇 가지 안되지만, 2~3가지 정도는 된다. 그러나, <민주당>이 실제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고 해도, <연립정부> 구성안은 한국의 진보정당의 수명을 오히려 단축하고, 성장발전에 저해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 주장의 배경은, [전략2] 조승수 의원은 왜 침묵하시나? "승수 모델"과 집권 시간
원시 : http://www.newjinbo.org/xe/724584 참고. 그리고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현재 민노, 진보신당, 사회당 등은  <집권>의 최소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행정정부의 15% 장악과 3차례 (12년 운영 경험) 선거 승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프랑스 공상당이 1981년 사회당과 연립정부 수립할 물적조건도 지방행정정부 집권 경험 뿐만 아니라 (특히 10만 도시 규모), 중앙 의회 점유율도 평균 14%에 이르렀다. 

2. 비-한나라당 민주당 연립정부의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다. 2012년 한나라당 (이명박류) 정권 도저히 못보겠다. 갈아보자. 최소한 정치적 민주주의 (여론 형성 집단인 언론사, 한겨레, 경향, MBC, KBS 등 노조가 진보적인 언론사 노동자들 여론은 정권교체 열기가 대단함 90% 이상임)만이라도 보장하자. 이건 맞다. 그러나, 이러한 정권교체 열망과, 그 이후, 민주당표 정부의 성공 (개혁)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실제 민주당 정부 세력들의 자체 실력의 자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복지 문제로 내부 분열중) 세계경제도 지금보다 당장에 좋아질 게 없다. <노.사.정 위원회의 테이블>을 형성하면서 소위 코포라티즘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 

현재 <새 진보당> 건설 논의에서, 2012년 이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을 논하지 않고서, 총선, 대선 전략을 짜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진보정당에 결코 바람직한 전술이 아니다. 

3.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에서 (2012년 이후) 행정 내각 몇 자리 (프랑스 사회당 + 공산당에서 공상당 출신이 4명 행정 장관으로 들어감) 내 준다고 해서, 전체 정부 정책의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 이는 개인적 인사 발탁 정도에 그칠 것이며, 5년 임기 내내 <진보정당> 몫이 보장되지 않는다. 장관 임기 1년, 2년에 그치는 경우를 보라. 막연한 "집권 " 희망에 들떠서는 안된다. 민주당 연립정권의 실패시, 한국의 진보정당의 위상 추락과 자체 내부 분열은 더욱더 가속될 것이고, <적은 정당>에서 도약할 여지조차 없앨 가능성이 더 크다. 

왜 그런가? 다른 나라 사례들은 다음 글에서....


이 글을 올리는 배경: 현재 새 진보당 건설 논의에서, 현 정파와 정당들의 자기 반성과 성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연구되거나 발표되지 않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20석 달성, 2012년 대선에서 <연립정부>수립, 정권교체라는 <스튜피드 가든>의 꿈만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진보 올드 보이 올드 걸들의 회갑잔치 계획에 불과할 것이다. 


현재 찌들대로 찌든 관성 (철학, 정치노선, 정치활동 방식, 조직화 방법, 언론 활동, 세대간 차별 격차, 차세대 혹은 진보적인 여성정치가 육성 프로그램 부재 등)에 대한 극복 의지없이,주어진 정치일정에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면, 2012년 대선 이후에 더 큰 후유증이 더 클 것이다.  


1981년 5월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은 연립정부 (4개 장관을 공산당에게 줌) 를 수립했다. 그러나 1984년 봄, 사회당과 공산당은 연정을 파기했다.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 이후 공산당은 89년~91년 소련해체 영향도 있었지만 쇠락의 길을 가고,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이후 지도자 배출과 리더쉽 실패로, 우파에게 정권을 양보하기도 했다. 지금 우파 사르코지가 집권하게 된 뿌리가 미테랑 사회당 정부의 우경화와 실패이다.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정 수립과 파기에 대해서.  (프랑스 정당사를 공부하신 당원들의 부연설명을 기대함) 


1981년 5월 10일, 프랑스는 제 5공화국 헌법 하에서 최초로 사회당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6월 총선에서 사회당은 국회에서 사회당 + 공산당이 다수당을 이룸으로써, 대선 삼수생 프랑소아 미테랑은, 대통령 권한과 의회 권력을 동시에 쥐게 되었다. 당시 공산당  국회의원은 44석 (15% 득표율), 프랑스 최대노조 (CGT)를 장악하고 있었다. 


첫번째 연정 실패이유는, 사회당+공산당 등이 기대했던 것만큼 프랑스 시민사회와 국가(행정) 개혁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당 정치에서 오랫동안 경쟁관계를 이룬, 노조들, 좌파 조직들, 각종 정치 분파들이 사회당 미테랑 정부를 뒷받침하지 못했고, 오히려 갂아 먹었다. 그래서 미테랑 정부 역시 “케인지안 재분배 정책”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시민사회의 도움들을 받지 못했다. 특히 지방정부 차원에서 정책 집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미테랑 사회당 정권의 구심력은 떨어지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에 내려오던 국가주의 (Etatism)도 미테랑 정부에서는 제약을 받게 되었고, 특히 시민사회의 조직적인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미테랑 사회당 + 공상당 연립정부의 경제/사회 개혁 정치는 큰 성공을 낳지 못했다. (프랑스는 좌파건 우파건, 프랑스 애국주의, 프랑스 예외주의 (복지정책 등)가 있음) 

 

두번째 이유는, 1984년 6월 유럽 선거에서, 사회당은 21%, 공산당은 11% (장 마리 르 펜 Le Pen 신-파시스트 당보다 조금 앞섬)을 받는 졸전을 함. 3년간 동거 (4개 장관을 공산당이 역임함)은 파기되었다. 연정 해체의 경제 사회적 원인이 있는데, 당시 국제 경제, 유럽 경제와 정치상황으로부터 사회당+공산당 정부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그 결과 사회당 (미테랑)은 보다 더 오른쪽으로 가게 되고, 공산당은 연립정부로터 탈퇴하게 된다. 


이러한 프랑스 사회당 공상당의 연립정부 실패로 인해서, 유권자들 사이의 분열은 더욱더 심각해졌다. 서로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사회당의 주축 ( 중간층 기술자와 중산층 관리자층)과 도시 신중간층들 사이에도 분열이 생겨나게 되었다. 긴축재정으로 인한 세금인상은 중산층도 분열시켰다. 다른 한편, 공산당 측은 기존 전통적인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 1984년 봄에, 사회당+공상당 연립정부에서 탈퇴했다. 연정이 실패하자, 각 정당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 줄 달음을 친 것이다. 이러한 연정 실패 이후, 프랑스 속담처럼,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선진적이고 진보적임을 자랑하는 "프랑스 유권자들도, 왼쪽에 심장을 달고, 오른쪽 호주머니에 투표했다” 


* 참고 자료: Hall, Peter (1986). 피터 홀. '제 8장 프랑소와 미테랑이 사회주의 실험' "경제 통치: 영국과 프랑스에서 국가 개입 정치:  Governing the economy : the politics of state intervention in Britain and France "



<도표 1> 프랑스 국회: 프랑스 공산당이 지난 57년간 평균 13.6% 의석 차지.

이는 최소한의 <연립정부> 의 물적 조건이다. 비교:  한국 진보정당 11년 경험에 평균 지지율 4~7% 사이이다. 


french_communist_party_legislative_since1924_average.jpg 


2.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 프랑스 사회당 성적표

집권 조건은 평균 26% 지지율 확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1981년 1차 투표에서는 미테랑이 1등이 아니고, 우파 지카르 데스테가 1위였으나, 2차 결선 투표에서 1위가 됨  



french_socialist_party_2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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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23:36:31
원시

 정치 경제적 배경


1. 81년 5월 당시, 프랑스 사회당 내 3가지 정파들:


사회당 내 3개 분파들이 있었다.  (1) Jean-Pierre Chevènemen:  신-마르크스주의자 : 국가개입 강조, 국유화, 보호 관세하에서 성장 강조 등 민족주의적-사회주의 색채가 강함. ( 81-83년 프랑스 연구조사-산업부 장관 역임. 83년 장관 사임 이유는, 미테랑 대통령과 의견 충돌. 그 내용은 유럽 통화 제도(EMS : European Monetary System) 에 프랑스가 편입하자는 미테랑과 의견을 달리함. 거칠게 말하면 미테랑은 유럽 연합파이고, 쟝 피레 세브네멩은 민족적 사회주의자임. 93년 사회당 탈퇴, 민족주의적-공화주의자-사회주의 활동. 현재 71세로 벨포르 시장임. 


 (2)  반-마르크스주의자 (autogestion 주창: 자율적인 시민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참여 주장) : 미테랑이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로카르는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했는데, 이 반-마르크스주의 사민주의자들이 로카르 (Rocard)지지자들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미테랑에게 짐.  


(3) 프랑소와 미테랑이 속한 절충주의적 사민주의자들, 이들은 특히 케인지안 경제 정책의 혁신과 같은 구조적 개혁도 옹호하지 않았고, 또 사회복지와 같은 재분배 정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들 그룹은 사회당 지방행정 경험이 많은 당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의사항:  그러나 실제 미테랑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는, “재 분배적 케인지안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2. 초기 "케인지안 재분배 정책" 드라이브:


1981년 봄, 프랑스는 그야말로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들떠 있었다.  가족수당 (두 아이 가족에게는 81%, 세 아이 가족은 44% 증가) , 주거 보조비 (저소득층에 주거보조비 25% 증가), 의료 보험이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에게까지 적용, 최저임금 (15% 증가), 노동시간 단축 (주 40시간에서 39시간) 과 일자리 나누기 정책 (정년 55세-60세 조기 은퇴 장려책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으로, 81년과 82년 사이에 20만 일자리 창출.


그 결과 경제 성장은 2%, 실업 증가율이 억제되고어 실업율은 4% 증가율을 보였다. 82년 한 해 동안, 미국은 실업율 증가율 22%, 독일은 실업 증가율 29%를 보인 것과는 확연히 대조되었다. 


3. 딜레마에 빠지다. 


부작용: 그러나 부 작용은 그 이후에 나타났다. 그 원인은 국제 시장 (유럽경제)에서 오는 제약과, 프랑스 그 이전 정부 (드 골과 리온 블름 Leon Blum 하에서)가 가지고 있던 국가 채무와 지불 위기 때문이었다. 600억 프랑  부채가 있었는데, 국제 통화 시장에서 프랑스 화폐 (프랑) 가치를 더 이상 절하지 못해서, 그 채무를 갚아야 하는 압박에 시달렸다. 

74년 석유위기로 프랑스의 경우도 68만 4천명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미테랑 사회당 정부에서 신규 채용을 하더라도 한계에 봉착했다. 


지스카르 데스테(Giscard d'Estaing: 74-81 프랑스 우파 대통령) 가  추구한 “외교 수출: 군사무기, 항공, 턴키 플랜트 수출”과 자본투자 (전화, 원자력 발전소, 초고속 철도) 등은 프랑스 인프라구조를 향상시키겼지만, 무역 적자를 발생시켰다.  이 정책의 결과는, 국제 시장에서도 프랑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독일 일본과의 경쟁 (자동차 전기 전자제품 등에서)  독일과 일본에 밀리고, 제 3세계로부터 싼 상품 수입에 가격경쟁에서 프랑스가 밀리게 되었다.  


4. 프랑스 사회당 + 공산당 연정: 전통적인 케인지안 딜레마에 빠지다: 

 

1981년 "재분배적 케인지안 개혁" 드라이브 역시, 전통적인 케인지안 재분배정책 딜레마에 빠짐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한 정책들, 즉 정부가 투자와 고용에 직접 참여하는 것, 그러나 국가 채무 문제 발생하게 된다. 재정위기와 지불위기. 600억 프랑 부채 짊어짐 (1) 


만약에 노동자임금 인상도 억제하고, 기업 법인세를 낮춤으로써 이윤수준을 높이려고 한다면, 사회당 미테랑 정부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협력을 받거나 아니면 사회복지비를 대폭 깎아야 한다. (2) 


더군다나, 미테랑에게 부과된 정치적 과제: 실업율 낮추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세금 증가로,  중간층에게 부담을 지워야 했다. 


이러한 과제들 수행 중에, 1984년 유럽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유권자들의 지지도 시들어지고, 사회당 공산당 지지자들, 그 각 정당안 지지자들 분열, 2중 분열에 시달리게 되었다.





 


댓글
2011.01.22 00:43:59
철이형

현 정파와 정당들의 자기 반성과 성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연구되거나 발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찌들대로 찌든 관성 (철학, 정치노선, 정치활동 방식, 조직화 방법, 언론 활동, 세대간 차별 격차, 차세대 혹은 진보적인 여성정치가 육성 프로그램 부재 등)에 대한 극복 의지없이...

 

원시님이 지적하는 부분이 대단히 설득력이 있고 올바른 지점이 많습니다.

분당이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왜 당은 원시님의 제안을 수용하고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지 답답했습니다.

 

원시님, 말씀하신대로 현재 진보신당이 무얼 책임지고, 주동성을 발휘하고, 극복할 의지가 보여지는 게 크나요? 내가 보기에는 솔직히 아니올시다입니다. 이미 지난 3년 분당의 실험정치는 끝났다는 판단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이 아니라 솔직한 자질과 역량의 고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괜시리 작은 것 하나 어떻게 해 볼 능력도 없고 계획도 없으면서 이바구로 세월을 보내는 건 인민에겐 또 다른 고통일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도친개친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제반 진보세력과 별반 차이도 없으면서 깃발만 높이 올린다고 해서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테니까요.

나는 이제 지난 시절 우리가 가졌던 계급, 이념성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그렇게 강조하면서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도 계급적이기도 하고 이념적이기도 하니까요.

구호소리 높은 투쟁하는 당이기 전에 정치하는 당, 인민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당으로 역량과 위상을 세우는데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그 길에 더욱 큰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정당은 절대적 필요과제라 생각합니다. 큰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토록 떠받드는 인민의 작은 고통 하나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결 이전에 자기만의 만족으로 일생을 아름답게 사는데 만족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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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00:54:40
원시

철이형 님/ 계급, 이념성으로부터 탈피하자는 철이형님의 주장 + 인민의 삶의 구체성으로 들어가보자. => 이 문제를 저는 어떻게 해석하냐면요,  


실은 계급, 이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계급, 이념"이 고정된 게 아니라, 매일 매일 자본주의 변모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들어서, 노동자들이 다 같은 노동자들입니까? 자본가들(해외 투기자본이건 국내 재벌이건)은 노-노 갈등을 연구하는데 돈을 엄청 투자합니다. 교수도 데려다가 쓰고 등등...


근데, 우리는 노동자들의 분화 속도, 실제 상황에 대한 연구도 많지 않고, ... 그러니까, <계급> <이념>이 낡았다고 판단해 버린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계급> <이념>은 자기 운동을 하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사회조사를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생활이기도 하고요. <이념 =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교과서>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안되는 것인데...그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거죠. 실천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인이 된 87년 해고노동자 상징 권용묵씨인가요? 그 권씨도 테러도 당하고 그렇게 전투적으로 싸운 사람도, 나중에 뉴라이트로 전환하다가....이런 게, 현장에서 전투성만 강조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운동하는 <자본> <계급> <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와 고민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라고 봅니다. 단순히 변절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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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01:00:23
원시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정당은 절대적 필요과제라 생각 (철이형) => 에 대해서는, 지금 제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게


1) 사회당, 민노당, 진보신당 구 대표들, 현 대표단, 리더들, 각 정파 대표들이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담은 글들을 발표해서,


=> 당원들이 읽은 다음에, 토론에 부치고, 이를 기초로 해서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진보당 하려면

그런데 지금까지도 막연히 2012년 총선 승리나 대선 승리만 이야기하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지금 <진보신당>의 능력에 대해서, 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수준입니다. 

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없이, 그냥 또 새 정당 만드는데 나아가면, 또 똑같은 오류를 범할 것입니다.


3) 인민이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민주당>과의 통합이나, <국참당>과의 연합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어떻게 인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지금 구청장 하나 제대로 운영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면 <민주당>에게서 양보받아서, 구청장 당선되는 게 방법인가?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거 전술이야 다양하게 쓸 수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4) 아울러, 6.2 선거 과정에, 심상정 전 대표처럼, 당 운영원리를 무시하는 행동이 진보정당 안에서 발생해서는 안됩니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행보도 마찬가지입니다.


3.


또 다른 <연정 수립 후, 후유증 심각> 사례는, 2002년 독일의 <사민당 SPD>과 <녹색당>의 연정이다. 독일연방 차원에서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은, <녹색당>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연정은 큰 성과를 남기지 못했고, <녹색당>은 우경화비난을 받고, <사민당>에 실망한 시민들은 <좌파당 die Linke Partei>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선거에서 <연합>과 연대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 창출> <연립정부> 수립은 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 <민주당> <국참당>내부에서 우파들, 혹은 한나라당과 정책적 차별이 없는 자들과 세력에 대한 냉혹한 비판이 필요하다. <민주당> <국참당>과의 통합이 아니라, 진보적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책과 정치실천을 마련해야 한다. 


<새 진보당 건설 논의>에서 교훈:  지금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2012년 이후 정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새 진보당 건설>은 의미없다는 교훈이다. 


아래 표 설명: 독일 녹색당-사민당 연립정부 실패 이후, 독일에서 진보정당의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좌파당"의 성적표

(분홍색이 좌파당임 : 사민당의 관성화, 정치적 무능, 슈뢰더의 제 3의 길 실패 등으로 빨간 색 사민당이 줄어들고, 분홍색 좌파당이 커지고 이는 중)  


die_Linke_Partei_seit1994b.jpg


독일 좌파당 (Die Linke)

전신 페.데.에스 PDS  시절 90년: 2.4%

94년: 4.4%

98년: 5.1% (5% 선을 넘음)

2002년: 4.0 % (다시 거꾸러짐)

2004년에 유럽 (EU 유럽 의회 선거) 6.1%을 획득 -> 발판이 됨 : 이것은 한국과 다른 정치지형임:


2005년에 (WASG: Alternative for Labor and Social Justice: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대안: 사민당에 실망한 사람들, 노조조합만능주의 비판자들, 급진적인 좌파시민들로 구성) 와 연대 :

 

2007년: 오스카 라퐁텐 (Oskar Lafontaine: 예전 사민당 총수)이 페.데.스 PDS 민주적 사회주의 정당/의 비례대표로 확정: 이를 계기로, 당 명칭을  좌파-민주적 사회주의 정당 (Linkspartie.PDS)로 바꿈.

원래 동독지역이 기반인 PDS가, WASG와 오스카 라퐁텐의 합류로, 서독지역에서 기반을 잡기 시작 (중부,서부로 이동중)

 

2005년 선거: 8.7%

2009년 9월 선거 (작년) 11.9% 획득  (연방 분데스탁 76석 차지) 녹색당을 누르고, 사민당에 이어서 제 2 야당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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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아래 글은 2002년 독일 녹색당/ 사민당 연립정부 수립 동의서를 번역한 것이다. 내용을 보라. 마치 지금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민주당 좌클릭에 성공했다고 들떠 환호작약하는 내용과 비교해보라. 아래 연정 수립 내용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가? <복지 만세>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냉혹하다. 독일 녹색당과 사민당의 연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합정부 수립 동의서 (Koalitionsvertrag) – 2002년 (원시 역)


경제적으로 강하고, 사회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독일을 위한, 그리고 활기찬 독일을 위한, 3가지 기치: 혁신;정의;지속가능한 발전


서문


우리 독일의 현재 모습은? 개혁을 갈망하고 있고, 책임지고 그 변화와 개혁을 완수하고자 한다. 또한 독일은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지난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홍수 당시,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우리가 공동체 정신으로써 수립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줬다.


앞으로 4년간, 이러한 공공연대 정신으로써 할 일은 우리들 앞에 수없이 많이 펼쳐져 있다. 분명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확실성을 추구하고 건전한 판단으로써 정치에 임하고자 한다. 이렇게 행동할 때만이, 자연 삶의 기초(자연자원), 자유, 복지, 그리고 사회적 안녕이 보장될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국가와 사회의 혁신으로 인해서, 독일이 발전되고, 사회적 유대(Zusamenhalt)를 공공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서, 2002년 9월 22일에, 독일 시민들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미 착수된 개혁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더욱더 가속화해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다. 동시에, 경제성장의 둔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정의, 경제성장,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이 우리의 (정치적) 목표가 될 것이다. 


(사회) 정의: 강한 사람들만이 약한 국가를 먹여살릴 수 있다. (?) 우리는 공동체의 연대를 희망하고 그에 의존하는 사람들 편에 서 있다. 저소득층과 중간계층에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에게, 사회정의란 바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공평하게 사회적 자원을 사용하고 그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독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자원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참여권리를 증진시키고,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성장: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실업과 싸워나가는데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경제적 토대/틀을 혁신해야 하고, 공공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당면한 현대화를 생태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 여러 분야에서 구조변동을 효과적으로 성취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 인간사람의 기초가 되는 자연자원의 유지는 사회정의와 경제성장의 항구적인 보장의 전제가 된다. 경제와 생태는 우리에게 똑같이 소중하다. 또한 금융정책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국가의 정책집행 능력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가오는 몇년 안에 우리의 아이들과 손자세대에 제공할 수 있는 기회들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는 따라서 세대가 지나더라도 견지되어야 할 사회정의이고, 이는 우리가 목표로 추구해야 한다.


다음 4가지는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추구해야 할 임무들이다.


[1] 과거로부터 부담으로 지속되어온 실업의 축소, 국가재정 적자의 해소. 
[2]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로서, 교육/보건/가족/공공서비스의 확충/증진
[3]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 (정치) 확보
[4] 자연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정책 (계발)
 
독일 사회민주당과 90/녹색 동맹, 양자의 연합정부는 차기 4년 간의 정치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10년을 (연합정부)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가족들과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부양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 10년간 교육 분야에서 정상을 차지해야 하고, 보다 공평한 기회제공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노동자(피고용인)의 참여를 확대시켜야 한다. 동-서 독일의 내적 통일을 위해 힘쓰고, 평등한 삶의 수준을 확립시켜야 한다. 우리는 자연자원을 보호하고, 기후보호를 위한 책임을 다 한다. 안전하고, 질좋은 음식을 공급하고,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적 안전 체계를 미래에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공간인 도시와 지역공동체를 보다 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투자를 활성화한다. 우리는 활기찬 문화와 관용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시민권리들을 보호하고 확장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시민들이 자발적인 결사조직, 교회, 사회복지 조직에 보다 더 많이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남녀 평등을 보다 더 증진시켜야 한다. 우리는 독일의 잠재력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또한 우리 다음 세대의 복지를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의 정책들은 분명히 유럽의 확장과 유럽통합의 심화를 목표로 한다. 우리는 세계정치에서 독일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남고자 한다. 우리의 정책은 정의로운 지구화를 목표로 할 것이다.


사회민주당과 90/녹색 동맹의 연합은 혁신의 연합이다. 혁신은 단지 국가의 임무만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의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혁신은 우리 시민들과 함께 할 때만이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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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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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2] 조승수 의원은 왜 침묵하시나? "승수 모델"과 집권 시간

원시


2010.06.11 14:08:331029

 [집권전략  1] 진보정당 집권에 이르는 길 : 그 필수조건:


- 기어 21단 자전거 장착 언덕배기를 오르자, 집권의 필수조건 지방의원 (기초/광역) 10% 388명을 확보하자, 기초단체장 20%  45명을 배출해내자. 이런 요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집권 전략 2] 는 조승수 의원 관련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른 나라 사례들 (프랑스 사회당 경우, 그리고 독일 녹색당, 좌파당 자료를 보탭니다)과 조승수 의원 모델을 어떻게 16년~18년간 앞으로 만들어나갈 것인가?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조승수 의원을 곧 <당원이라디오>에 초대해서, 위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 (살아온 이야기까지 포함해서)을 듣고자 합니다. 6.2 선거에서 당선된 25명의 지방의회 의원들에게도 조승수 모델은 도움이 될 것이고, 향후, 진보정당에 "뼈를 묻거나" "진보정당에서 미래를 발견하고자 하는 (진보정치가-입법가) 후보군들"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 진보신당이 <민심>을 못 읽고 있다거나, 고립되었다거나, 겸손하지 못하고 건방지다 (정치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건 냉정한 현실입니다. 제 입장은 그런 시민들이나 타 당 사람들과 "논쟁"은 하되, 오프에서는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이 "연합"정치를 하지 않는다? 그런 말도 안되는 억지는 부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현대 정치사에서 정당 간에 "연합" "연대" "경쟁" "격돌"하지 않는 게 어디있습니까?


 


여튼, 지금은 오프에서는 진보신당은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게 좋다고 봅니다. 굳이 감정적으로 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진보정당이 정말 기초의회 /광역의회 전국 10% 장악(388명), 기초단체장 20% 45명정도...그 정도 되면, 고개 한 60도 정도 숙이고요...대통령 당선되면, 땅바닥에 엎드려야죠...어차피 정치는 "대중의 종" "시민의 충실한 노예"가 되는 법을 배누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래 조승수 사진 참조)


 


------ 집권 전략에서, 걸리는 시간을 진보신당은 측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당원이 잘 이야기했듯이, 진보신당 2년 해놓고, 또 길어야 10년 진보정당 해놓고, "독자정당 안된다?" 이런 식은 세계 65억 인구가 비웃을 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지금 속칭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우는 나라와 시민 top 10에 한국이 들어가 있고, 진보신당이 그 맨 선두에 서 있습니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어렵다고 하지만, 세계 100여 국가 노동자들은 '해고' 당하면, 아무런 파업도 못해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현실이 있습니다.


 


 


(자료 1)


진보신당 집권(2)프랑스 미테랑과 김병만은 왜 16년을 강조하셨는가?

원시

http://www.newjinbo.org/xe/2390432009.06.13 07:20:591333

1.  김병만 선생님께서는 왜 16년간이라고 말씀 하셨나? 


아래 글 진보신당 집권전략(2)에서 소개한 대로,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은 1965년 대통령 선거 실패, 1974년 제 2차 시도 실패, 1981년 제 3차 시도에서 성공했다. 이 기간이 16년이다. 지난 3월에 처음 본 김병만 선생님의 "16년간 5만 7천권의 책을 읽으신"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원래 달인은 이유를 구구절절이 말씀하지 않아도, 뭔가 암시를 주지 않은가? 그게 약장수, 사이비 논객들과 김병만 선생님의 차이다. 


2.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신 분들은, 우리 이야기를 핵심요약판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집권 전략 1편 요약: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됨)



조승수 의원은 왜 승리하였는가? [7] 원시 2009-04-30

-> 이 분이 혹시 진보신당의 김병만 public KIM?


3. 그렇다면 실제로,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은 어떻게 3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는가? 그 형식적 조건들 = 필수조건들을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주제: 다른 정당과 상층연합/연대의 사례: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의 경우




미테랑 정치노선에서 우리가 한번 참고할 것은, 그가 정통적인 소련식 공산당과 거리를 두면서, 프랑스내 공산당고 사안별로 계속적으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프랑소와 미테랑은, 1946년 30세의 나이로 하원에 등장, 두번의 대통령 역임, 1996년 사망할 때까지, 공식적으로 50년 동안 프랑스 정치계에 몸담았다. 연합정부, 연대를 말할 때, 미테랑이 1981년 삼수 끝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첫 행정부에 공산당 4명을 행정각료 장관으로 임명한 것을 참고할 만하다.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과의 신뢰는, 미테랑 정치노선과 그의 신뢰구축의 시간 때문에 가능했다. 적어도 10년, 20년 걸리는 정치적 신뢰구축인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이건 프랑스 사회당이건 자기 지역조직이 튼튼히 구축되어 있었고, 지역의회/자치단체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4. 부연 설명 (사회당 미테랑,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는가? 2004-08-11 22:02:48)


1) [보수 우익의 분열: 데쓰뎅과 시락의 분열]


우선 당시 1981년 5월 대선 분위기는, 우파 정권 갈아보자는 정서가 강했다. 소위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잠재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지스카르드 데스뗑의 인기가 하락했다. 경제의 악화, 실업률 증가와, 경기후퇴는 이러한 데스뗑의 인기하락에 부채질을 했다. 또한 우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서, 데쓰뎅과 자크 시락이 대선에 동시 출마하게 된다. 


1981년 4월 26일 제 1차 대선 투표에서, 데스뗑은 (8,222,432표: 28.3%), 프랑소와 미테랑(7,505,960: 25.8%), 자크 시락(5,225,848표: 18.0%), 조르쥬 마르셰(공산당:4,456,922표: 15.3%)를 획득했다. 데쓰뎅과 시락의 분열로, 데스뗑이 1위, 미테랑이 2위로 제 2차 결선투표에 오른다. 5월 10일 제 2차 결선투표에서, 미테랑이 1백 6만 6천표 차이로 데쓰뗑을 누르고 프랑스 사회당 최초의 대통령이 된다. 


한국의 경우, 한나라당 정권 갈아보자 정서가 강하면, 그 대안으로 자유당인 "민주당"이 부각된다. 현재 노무현 효과처럼. 따라서 진보신당의 경우, 자기 정치적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소폭 상승했다, 떨어지면 같이 곤두박질 치게 될 것이다. 진보신당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독자적인 지지율 곡선을 만들어라는 것이다.


 


2) [공산당표 흡수 전술]


1971년부터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은 공산당(CPF)과의 연맹의 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1981년 제 2차 결선투표에서 공산당표와 시락을 찍었던 표를 흡수한다. 프랑스 사회당은 70년대 맑스레닌주의와 결별하고, 소련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동시에, 미테랑은 프랑스 공산당의 현실적 힘을 인정하고 제휴하고, 행정부에 4명의 장관자리를 공산당에 배치한다.




미테랑 대통령은 1981년 6월 의회선거 (14일-21일)에서, 제 2차 선거 결과, 프랑스 사회당-공산당등 연합(사회당 PS 269석, 좌파급진당원운동 MRG 14석, 프랑스 공산당 PCF 44석)등이 70%를 차지하게 된다.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하는 당으로서 "진보신당 (*이름도 속히 바꾸고)"으로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민노당 내 강경파, 진보신당 내 강경파들(자기 자리 보전이 주 목표이고, 진보정당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정파나 개인)이나, 각 조직들에서 강경파들의 주장이 커지고, 현실적인 정치적인 유대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은 실패할 수도 있다. 



3) 선거제도의 개혁


5월 대선에 이은, 6월 선거에서 사회당의 압승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프랑스 미테랑 개인 인기에 대한 결과이고, 두번째는, 제 5공화국이 제정한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과의 일치를 보장할 필요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동의 등이다. 47% 가 넘는 유권자들이 의회에서 사회당을 지지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 미테랑의 국정운영을 순조롭게 했던 것이다. 제 5공화국의 선거 제도가 1981년에는 프랑스 사회당이 다수당이 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독일식 비례대표 정당명부제 (지역:비례 1:1로)나 네덜란드 순수 비례대표제 (정당 명부만 있음)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당원들이 지역/직능/클럽/동호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받는 정치적 영감과 직관들과 제도 개선과 연결을 지어야 한다. 


4) 신 중간 지식인층 지지 받아내는데 성공: 여성과 환경운동가 흡수


 


프랑스 사회당, 특히 미테랑은, 당시 사회주의자들에게 놀림받던 ‘사회민주주의, 즉 계급협조, 기회주의, 쇼비니즘’ 노선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소위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를 거부하고, 좌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했던 유럽식 사민주의가 아닌, 제 3의 길을 가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했다. 특히 프랑스 젊은이, 신 중간층 지식인 활동가층에 대한 적극적 유인책을 단행했다. 프랑스 사회당에서 중앙집중제를 비판하고 분권화 시도, 소위 자주관리, 자립, 자율, Leitmotif 를 강조하는 autogestion 주장, 여권신장 및 양성 평등( 페니미즘 확대), 환경운동 활동가를 적극 인입 등. 


2009년 유럽 의회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녹색당 (50석 7~8%) 약진은 유의미하다. 프랑스 사회당의 경우 아직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녹색정치와 다른 주제들과의 연관고리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당직자(김현우)가 사임하는 등, 국제정치 흐름과는 따로 노는 형국이다. 


여성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진보신당의 문제점은 여성정치를 남녀 공히 말하지만, 실제로 직장 여성들 (20대, 30대, 40대 등)이 글을 쓰지 않거나, 참여하는 구조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20대 10대 정치는, 386의 눈이나, 80년대 90년대 노조활동 경험으로 눌러 찍어서는 100% 실패다. 세대별로 "좌파 전통"을 하루 속히 [정형화]시키지 않으면, 계승도 혁신도, 새로운 창조도 불가능하다.


5)  교훈


 


미테랑의 대선 승리와 의회 다수당이 되는 과정에서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각 국가별로 그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해둬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동맹이나 제휴는 한 순간이 아니라, 10-20년 간의 신뢰관계 속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즉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의 정치능력이 공산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을 포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사회당에서 당내부를 혁신하고 젊은층들과 신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점이, 공산당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의 격차는 1978년에 4%였는데, 1981년에 와서는 13%까지 급속히 벌어졌다. 이런 격차는 소련패권주의에 프랑스 공산당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당내 혁신 프로그램 부재 때문에 생긴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 및 정치 관련 [참고자료] - 체계적인 것은 아니고, 동네 책방용임.


Henry W. Ehrmann, Politics France, Fourth Edition, Little, Brown and Company. 1983


Aderth, The French Communist party : a critical history (1920-1984), from Comintern to 

"the colours of France" 


Donald Sassoon, 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 The New Press. New York, 1996 (관점보다는 자료차원에서)


Donald Sassoon, Looking Left: Socialism in Europe after the Cold War, The New Press, 1997


J.E.S. Hayward, Governing France: The One and Indivisible Republic, W W Norton & Company, 1983


Peter Mair (edit), The Western European Party System, Oxford University,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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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으로 내려가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교훈이군요.. 조승수 의원의 정치인생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좋은 표본(?)으로 삼아야겠습니다.. 호남이나 수도권이 뿌리를 내리기가 훨씬 쉬울것 같네요..(영남은 장기적인 투자와 전략이 필요한 지역이구요.) 물론 호남 토착세력이 강한 민주당 애착을 보여주곤 있지만, 김대중 선생님 모신지도 어언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데.. 이젠 바꿀되도 되었습니다.


 민주당은 장기적인 플랜 없이(되도 않는 뉴민주당플랜이나 만들고..) 호남토호당으로 전락하려고 난리 부르스치는 모습이 안쓰럽긴하지만, 진보신당 입장에서 땡쓰지요. (노무현 서거이후 민주당의 지지가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 거품은 꺼질것이고, 내부 갈등도 그냥 덮어두고만 있으니 언젠간 터지겠지요.. 민주당은 해산하고 새판을 짜라!) 수도권은 이주하는 분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지역에 뿌리내리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집값에 따라 직장에 따라 거주지를 옮기는 분들도 많으니깐요.. 또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점이 더 유리할 것도 같습니다.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신생 정당으로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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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필님/ 지역적으로 보면,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 (지금은 또 전라도도 소지역들로 조금 달라진 느낌입니다만) 지역이 진보정당이 들어서기 가장 유리하고, 가장 빨리 정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노회찬 대표가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광주에 출마하라는 약간 황당해보이는 제안을 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노원에서 인간기회주의자 한나라당표 홍정욱에게 지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노무현 서거 이후, 소위 친노계-민주당의 정신적 지주가 누구이며, 한국정치에서 누가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인으로 떠오르고 있습니까? 김대중 슨상님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전라도는 뿌린만큼 거두는 곳입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이 안되고 있기 때문에, 실천이 안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만간 되겠죠? 지난 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전남지역에서 당선되었죠? 2곳에서. 유의미한 변화라고 봅니다.


 New 민주당 플랜, 시대에 역주행하는 놈에 해당하는 문건이죠. 죽어가는 민주당을 다시, 노무현 예수께서 부활시켜주는데, 이 산소호흡기가 얼마나 갈 지는 미지수입니다. 영남같은 경우는, 최소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울산, 포항, 창원, 마산, 부산, 대구-구미 등에서는 진보정당이 제 1 야당으로 신속하게 올라가야겠습니다. 


조승수 의원이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게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울산에서 또 구청장을 다 한나라당에게 뺏긴 게 큰 치명타였으니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장기집권 계획을 짰으면 해요.

 


 


진보진영 정치지망생들의 롤모델, 조승수 [2] publickim 200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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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0.06.11 14:11:47

원시

조승수 의원은 왜 승리하였는가?

원시

http://www.newjinbo.org/xe/218243

2009.04.30 09:46:22

823

7

관찰자 시점에서 몇가지 씁니다.


조승수 의원은 왜 이번 보궐선거에서 이겼는가? 그리고 참을 "인" 조승수의 승리는 새로운 진보정당 정치와 선거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진보정치가, 진보행정가, 진보입법가를 꿈꾸는 20대, 30대 당원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감각에 의존해서 생각나는 것 몇가지 쓰겠습니다.


1. 조승수의 승리는, 조승수 개인(기)의 승리였다.


안타깝게도 진보신당의 정책, 진보신당이라는 당 소속 조승수로 승부에서 이겼다라기 보다는, 울산 북구 출신 (울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가서 대학다니다가 민주화 노동운동 하다가 구속되어, 고향에 다시 내려와서 민주노동당 시절 구청장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울산의 인물로 자리잡았다는 점) 그래도 정치 잘 했다는 민심의 승리였다.


2. 조승수 개인의 특성 (소위 캐릭터 사업)


아래 그림, 물론 제가 좀 희화한 (상황이 어렵다고 인상쓰고 찌푸린다고 해결도 안되고 하니) 사진이지만, 조승수 의원의 표정은 늘 아 뭔가 "자비와 연민" "동정"을 자아내지 않습니까? 


수용과 인내의 미학의 얼굴이 바로 조승수 의원 캐릭터입니다. 진보정치 하면, 악쓰고, 거칠게 말하고, 불친절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고, 과장하고 허풍이 심하지 않습니까? 연설하다가 남들이 박수 안치면 "왜 박수 안치냐고?" 호통이나 치는 시대착오적인 운동권 인사들도 있던데요?


인내의 미를 정치적으로 승화시킨 조승수, 꼭 숫기없다고 탓만 할 게 아닙니다. 


진보신당의 진보정치가, 진보행정가, 진보입법가들 (예비지만) 은 대부분 교육도 못받고 버려져 있고, 자기 장점, 단점도 모른 채, 비판하면 욕하는 줄 알고 "나 죽어"를 외치고만 있으니, 자기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조승수 스타일 "승수 스타일" 그게 물론 정치적 실천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참을 인" 이런 수용의 미학과 같은 캐릭터를 계발하라는 것이다. 그거 누가 해주나? 21세기는 철저히 기획되고 학습된다. 당이 할 일이 이것이다. 


3. 울산 북구 주민들이 민노당 시절 의원 못한 거, "억울하다 승수야, 한번 일해봐라"는 기회를 준 것이다.


익히 알려졌지만, 보수 사나이 전 한나라당 깡보수 김용갑 의원도 조승수 의원박탈 판결이 부당하다고 했다. 조승수를 알고 있는 울산 북구 주민들 10대, 20대, 30대, 거의 30년을 지켜본 울산 주민들 (물론 울산 주민의 15% 정도가 토박이라고 하지만)이 이번에 "조승수"를 한번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2010년 선거가 1년 남았습니다. 진보(신)당 후보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신진 신참 정치후보로는 기성벽을 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당에서는 어떻게 선거를 준비할 것인가? 


4. 노동자들과 주민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아직도 뚜렷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민노당과의 후보 단일화


이미 선거과정에서 많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단일화"니 "통합"과 같은 말보다,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의 실제 파워가 뭔지? 정말 민노당과의 차별이 뭔가? 당원들 개개인들부터 지도부까지 공정하고 공평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김수헌 후보로 한나라당이 통일하고, 조승수 후보와 1:1로 결투를 했다면, 조승수 후보가 1~2%로 신승을 했을 것이다. 만약 MB가 정치를 조금만 잘했다면, 이명박 이상득 형제 평이 좋았다면, 포항 옆 울산에서 이번 선거는 힘들었을 것이다. 



조승수 후보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최악의 조건에서 선거운동을 하신 울산 진보신당 당원들과 다른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면서,박카스 ~ 1병~ 노래드립니다.



울산 북구 조승수님

원시, 2009-04-06 12:42:59 (코멘트: 9개, 조회수: 464번)

정치에서 "참을 인"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스럽게 간접경험을 하게 됩니다.


조승수 당원의 마음을 그리다. (레디앙 기사를 보고)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3263



댓글2010.06.11 14:24:12

원시

(자료 3) 출처: <진보신당 창당 2주년 평가


 


독일 녹색당의 창당과 성장 과정 : 지금 7-10% 유지하고 있습니다.(지난 30년 정치역정입니다)


그리고 좌파당의 존속사와 현재 이르기까지 과정을 간단히 적어봅니다.  2.4%에서 11.9%까지 도약하는데 19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진보신당, 2년 했습니다. 그냥 인생사 상식에 맞게 살았으면 합니다. 이런 비교 정당사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왜 핀란드 스웨덴 3주 방문하고 나서, 거기 정책은 좋다고 <핀란드 교육식>이라고 칭송하면서, 스웨덴 좌파당, 노르웨이 좌파당들은 연구 안합니까? 왜 유럽의 다른 나라 정당사는 참고하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당이 성장하는데 걸리는 "형식적인 필수조건"이 있습니다. 왜 그걸 무시합니까?


 


독일 녹색당:


83년 연방 총선 (분데스 탁  Bundestag) 결과: 5.6% (5% 넘으면 비례대표 지분 최소자격이 주어짐)


87년 8.3%


90년 3.8% (거꾸러짐) -> 베를린 장벽이 89년에 무너짐, 그 이후 최초 선거임


94년 7.3% (겨우 다시 회생)


98년 6.7%  


2002년 8.6% (사민당과 연정 협약 Koalitionsvertrag )


2005년 8.1%


2009년 10.7% (우경화 비판받고 있음) : 현재 622의석 중에서 68석: 지방의회는 1859석 중에160석 차지


 


독일 좌파당 (Die Linke)


전신 페.데.에스 PDS  시절 90년: 2.4%


94년: 4.4%


98년: 5.1% (5% 선을 넘음)


2002년: 4.0 % (다시 거꾸러짐)


2004년에 유럽 (EU 유럽 의회 선거) 6.1%을 획득 -> 발판이 됨 : 이것은 한국과 다른 정치지형임:


 2005년에 (WASG: Alternative for Labor and Social Justice: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대안: 사민당에 실망한 사람들, 노조조합만능주의 비판자들, 급진적인 좌파시민들로 구성) 와 연대 :


 2007년: 오스카 라퐁텐 (Oskar Lafontaine: 예전 사민당 총수)이 페.데.스 PDS 민주적 사회주의 정당/의 비례대표로 확정: 이를 계기로, 당 명칭을  좌파-민주적 사회주의 정당(Linkspartie.PDS)로 바꿈.


원래 동독지역이 기반인 PDS가, WASG와 오스카 라퐁텐의 합류로, 서독지역에서 기반을 잡기 시작 (중부,서부로 이동중)


 2005년 선거: 8.7%


2009년 9월 선거 (작년) 11.9% 획득  (연방 분데스탁 76석 차지) 녹색당을 누르고, 사민당에 이어서 제 2 야당이 됨


 


분명, 독일, 프랑스 사례는 한국과 다른 정치적 지형입니다. 그러나, 갖춰야 할 형식적인 조건 (지역의회, 중앙 의회, 지방행정부 등)이 있습니다.


 이에 기초해서, 진보행정가/정치가를 키워야 한다는 게 위 글의 요지들 중에 하나입니다.


 


댓글2010.06.11 14:46:13

이건창

원시님 "복지"라는 것이 우리의 구호로(?) 맞는 것인지 한번 써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이게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능력이 안되서..


댓글2010.06.11 14:53:39

원시

이건창님/ 지금 새로 쓸 수는 없고요. 예전에 "잘살자"님에게 제 의견을 말씀 드린 것을 참고해주세요.


 


복지/ 라는 말이 좋은 말이지만, 문제점도 있습니다. 당의 정치노선과 제 1면에 쓸 수 있는가? 50%정도 되는 구호라고 봅니다.


 


--------------------------------


 


잘살자/ 평등, 생태, 평화, 연대라는 가치와, 사민주의자의 사회복지 체제 비판

원시

http://www.newjinbo.org/xe/274640

2008.10.13 21:26:45

283

2

잘살자님/ 한국이 97년 IMF이후에, 절대적 빈곤이 늘어나고, 상대적 빈곤감 역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나 사회안전망, 실험보험 등과 같은 문제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중요한 사회적 진보운동 주제입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는 97년 이후, 한국에서 좌파적 정치와 연결이 됩니다. 그러나, 사회복지 정책은, 정치적으로 보수, 자유, 진보(좌파) 당이 다같이 쓸 수 있는 정책입니다. 물론 현재 이명박 정권은 감세 정책등에서 보여지듯이, 서유럽 사회복지 정책과는 동떨어진, 미국 공화당 정책과 유사합니다만. 


제가 말한 사회복지라는 말이 무조건 절대적인 선 (good !)은 아니고, 정치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가지 사례로, 사민주의자였던 하버마스의 "사회복지 체제"에 대한 비판도 아니러니하지만 참고할 만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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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평등, 생태, 평화, 연대 등에 새로운 가치들을 고정시킬 필요는 없다. 이는 자주 평등이라는 민주노동당식 슬로건의 양적 확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니 왜 자유는 들어가지 않은가? 그게 자유주의자건 맑스주의자건 자유는 중요하다. 따라서 열린 가치 쳬계, 다양한 실천에 근거한 가치 개념들을 더욱더 개방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1) 이명박 정부의 실정, 오륀지 사건, 법학전문대학원, 대학 등록금 인상 등 교육, 2) 국토해양 장관 이명박 운하 프로젝트, 신도시 건설 계획, 도시,건설,교통 부서 3) 대안적 경제체제에 대한 고민과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가능하게 할 노동부 4) 서민과 노동자, 중산층의 의료비 부담은 소득에 비해 늘어나는 현실, 의료혜택의 양극화 (특히 노인 어린이 여성 노동자 등은 심각한 편차 발생), 병원이 비지니스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예비내각과 진보행정부를 대표할 비례대표명부는 반드시 이러한 과제들을 실천할 수 있는 대표성 진지구축성 책임성 내구성을 갖춘 인물들을 뽑아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신 정치 (교육, 가족, 생태, 소수자 권리, 여성 등)와 구 정치 (경제 성장, 고용정책, 노동,안보, 군사 등)를 창의적으로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외국의 사례들은 하나의 참고자료이고, 우리 상황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정치 실천 영역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실천들 (그게 구정치 구좌파의 내용이건, 신정치 신좌파의 내용이건)을 적극적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흘러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에서는 그런 정치적 공간과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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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치 개념들과 정치적 이념 (구좌파 내용과 신좌파의 내용들의 사례)



2007년도 한국정치판에 등장한 단어, 가치 (value)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상정도 3가지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가치와 주체 혁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왜 이념이나 정치노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가치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심상정 뿐만 아니라, 권영길도 통합민주당 등 자유주의자들도 가치연정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이 서구 유럽과 북미에서 이룩한 사회복지국가를 어느정도 달성했기 때문인가? 


가치(value) 개념은, 맑스주의자들에게 친숙한 용어이다. 맑스의 노동 가치론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 개념은 맑스의 상품 분석에서 비롯되는 가치와 사용가치를 지시하지 않는다. 1970년대 사회복지국가를 논의하면서, 서구 정치 정당들의 이념적 지형 변화, 신사회운동 (NSM) 을 설명하면서 등장한 용어가 바로 가치 개념이다. 소위 말해서 정통적인 계급 정치 (class-based politics)에서 가치 정치(value-based politics)로 이전을 설명하면서 등장한 용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자유주의 정당, 보수주의 정당, 종교 및 군소 민족주의 정당들이 다같이 합의한 게 사회복지국가 모델이다. 이 사회복지 국가 모델 (코포라티즘) 하에서는, 계급갈등이 더 이상 사회 문제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 산업, 후기자본주의, 사회복지국가 하에서 사회 문제는 가치들 (즉 여성, 문화, 심리 동기, 가족, 환경, 인종, 이민 노동자, 신지역주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96년 한국에도 잠시 다녀온 독일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 책을 한 구절 보자. 의사소통 행위론이라는 책, (1982) ,  2권 맨 뒤에 뒤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참고로 하버마스는 신좌파이지만, 독일 사민당 (SPD)에 투표한 소위 개혁주의자이다. 구-정치와 신정치를 구별 분리한 사람들은 힐데브란트(Hildebrandt), 달튼(Dalton), 반즈(Barnes), 카세(Kaase) 등이 1977년에서 1979 년 사이에 사용한 용어이다. 이것을 하버마스가 인용했다. 정치란 경제, 정치, 사회, 안보, 군사 분야를 가리키고, 신정치 주제란 삶의질, 평등권, 자아실현, 참여, 인권과 관련된 주제들이다. 


그렇다면 하버마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신사회운동의 이론적 정리 논평이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 이론 핵심이다. 사회복지 국가에서 사회비판의 잠재력은 어디에 있는가를 해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신사회 운동 (같은책 578) - 반핵, 환경운동, 평화, 지역 풀뿌리, 농촌으로 내려가 살기 운동, 노인, 게이, 청소년, 장애인 권익 운동, 종교 근본주의, 세금 저항 운동, 학부모협회 운동, 여성해방운동, 모더니즘 반대 운동 등 - 이런 모든 새로운 형식의 사회 저항 형태들을 사회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렇게 새롭게 독일에서 발생한 사회운동은, 과거 사회주의자들(구좌파)의 주제였던 경제, 경제성장, 분배를 둘러싼 계급폭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1960-1980년까지) 이제 새로운 운동은, 문화적 재생산, 사회통합,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영역, 즉 생활세계가 식민화되는 것에 사람들이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제 분배문제 아니라, 삶의 형식의 문법에서 새로운 갈등은 폭발한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생각의 핵심이다.


우리가 귀닮아 들을 필요가 있는 하버마스가 지적한 정치적 의견은 무엇인가? 노동자들에게 실업 보험에 들게 하고,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고, 행정부에서 돈으로, 노동부에서 그 실업급여로 때우려고 한 것을, 하버마스가 '자활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하버마스가 독일식 “사회경제 시장”에 근거한 사회복지국가를 행정가 치료주의라고 비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실업보험금이나 타먹는 천덕꾸러기로 노동자가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고용안정 등과 같은 경제투쟁을 뛰어넘어서, 참여경영, 자주관리등 공장 평의회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기존 사회주의자들 외침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정치, 구정치 분류법 말고도, 물질주의적 가치와 탈-물질주의적 가치로 구분한 경우도 있다. 로날드 잉글하트 (Ronald Inglehart)가 1977년에 발표한 책, “조용한 혁명: 서방 대중들 사이에서 변하고 있는 가치와 정치 스타일” 에서, 1945년에서 1975년 “황금기 시대(the golden age)” 에서 나타난 두가지 가치들, 하나는 물질주의적 가치들 (구정치 주제들: 경제, 정치적 성장과 안정), 다른 하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 즉 표현적 가치 (신정치 주제들)이다. 


아주 대표적인 정치적 표출이, 유럽 전역에 펼쳐진 68혁명시, 프랑스 공산당의 초기 입장은 그야말로 구정치영역에 머물렀고, 프랑스 학생들은 후자 신정치 주제들을 전면에 내걸고 나왔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68년 프라하의 봄이 발생했고, ‘인간적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소련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적 외교방침에 일격을 가했다. 


가치 개념은, 이러한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발생한 정치 현실과 계급투쟁, 사회운동의 변동사를 담고 있다. 사회주의자들 내부나 정통맑스주의자들 내부에서도 논란은 심심치 않았다. (알려졌다시피, 구좌파와 신좌파 논쟁 등) 


2004년 경, 유시민 정치 비판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구 정치 주제들과 신 정치 주제들, 다시 말해서, 정치 경제 안보 민족과 같은 구정치 영역들과, 신정치 주제들, 환경, 학생운동, 성소수자, 여성운동, 이주민 노동자, 인종주의 반대 투쟁, 일상정치, 시민운동 활성화 등, 이 두가지들이 다 같이 착종되어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압도적으로 구 정치 영역들이 전면에 나왔다. 이것은 구정치 신정치 가치 개념들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80년대 후반부터 공격적으로 변한 전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 체계 자체가 가져온 경제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97년 IMF 위기 이후 한국은 자본에 노골적으로 노출된 무방비 도시였다. 


그렇다면, 신 진보당이 말하는 가치 개념은 무엇인가? 가치의 혁신을 이야기할 때는, 과거의 이념적 지형과 정치 노선, 그리고 정치적 활동 주체들이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변화되는가를 말해줘야 한다. 이런 가치 개념을 두고, 한국 노동운동은 과연 어떻게 변화 혁신되어야 하는가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노동자 노동자 갈등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실천적 해답을 내놓으면서 ‘가치 (value)’ 혁신을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더 나아가서, 한국 좌익은 이념, 가치, 정치노선, 대중정당 등에 대해서 보다더 주체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그 내용들을 채워나갔으면 한다. 남의 나라들 경험과 경험정리 등은 물론 폭넓고 개방적으로 공부해야겠지만 말이다. 심상정이 말한 푸른 진보, 젊고 역동적 (green, young, and dynamic progressive) 진보의 함의는 이해는 가나, 다른 말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푸른진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아마도,지역공동체 풀뿌리 공동체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환경 생태운동에서도 많이 지적되었듯이'그린 녹색 푸른' 단어들을 남발하는 것도 공해다. 


참고: 글쓴이는 위에 등장하는 저자들의 정치적 입장과는 다릅니다. 참고사항으로 하버마스나 잉글하트를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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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님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수고를 해주시니 저, 감동먹었습니다. 사회복지가 '선'까진 아니지만 '악'도 아니니 다행이다 싶습니다.ㅎㅎ 잘은 모르지만, '복지'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복지를 먼저 써먹은 건 보수쪽에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혁명에 위협을 느낀 보수쪽에서 복지를 실시했지만, 이 복지를 확장하고 정착시킨 건 사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복지분야'에선 사민주의가 독점적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하머마스란 분이 제기한 행정가치료주의, 한국식으로 말하면 도덕적해이. 이 것이 복지사회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은 안되겠죠. 우리나라에서 복지란 영세민하고 관련이 깊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이들 영세민과 중산층이상을 제외한 사람들. 서민들은 복지를 피부로 느끼지 못합니다. 전 복지를 서민의 영역까지 확장시키는 노력, 이 노력이 서민에게 다가갈 때 진보정당이 비로소 의미있는 정치세력이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한 설문조사를 보니 부자들은 영세민에게 세금이 쓰이는 건 찬성하나, 실업보험과 같은 곳에 세금이 쓰이는 것엔 반대를 합니다. 옛날 책에서 '노동자는 주력군이요, 농민은 동맹군이다'라는 말이 있죠. 옛날엔 노동자나 농민이나 거의 다가 가난하니 서민이란 말이 구테여 필요가 없었습니다. 노동자가 서민이고 농민이 곧 서민이니까요. 요즘 드는 생각은 '서민이 주력적 동맹군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노동자와 대등한 또는 우선적으로 서민을 우위에 놓고 서민정책을 펴야 한다는 거죠. 그 정책이 복지로 모아져야 서민과 당이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평소 느낀데로 썼습니다. 밑천 바닥날까 두려워 여기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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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한국 지금 상황에서는, 사회안전망 (실험보험, 국민연금, 의료보험, 교육비, 보육비등)이 제대로 안 갖춰져서 문제지요. 아이 낳기 출산 장려 그거 정부에서 하는데, 아이 낳으라고 해놓고, 그 짐은 다 여자나 엄마에게, 친정 시어머니에게 지워잖아요? 


혹은 보모를 고용하거나...사적으로 처리하게끔 내버려 두니까... 복지체제에서 "돈"으로 해결하고, 자립자활력을 길러주지 않는다는 비판한 "행정가 치료주의"와는 아직 거리가 먼 게, 한국 실정입니다. 그러나 행정가 치료주의라는 말의 의미는, 노동자, 여성, 학생, 노인, 어린이등 복지 수혜자들을 고객으로 대하지 말라, 대상화시켜버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서


울시장, 한나라당, 이명박 정책보면, "떡고물" 좀 던져주는 형식이지 않습니까? 그런 태도도 역시 국민을 정치의 주체, 공동체의 주인, 참여 시민이 아니라, "고객화" 시켜서 본다는 것입니다. 자칫 좌파나, 진보당도 "서민" "서민" 그러면서, 그들을 대상화시키지 않은가?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수많은 서민들이 한나라당 찍고 있는 현상도 역시 또 다른 연구과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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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0.06.11 15:41:23

원시

다른 정당과 "연합" 정치를 하려면요,


 


프랑스 사회당과 프랑스 공산당 관계를 참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위에서 나온대로요. 10년 정도의 신뢰구축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무슨 4당 합당 (창조당 유원일), 큰 민주당 하나 만들기 (참여연대 김기식), 심상정과 수탉 five   (민노+국참+진보?) 등등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10년은 아니더라도, 무슨 "연합, 통합"의 검증, 신뢰구축의 물적 근거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과의 신뢰는, 미테랑 정치노선과 그의 신뢰구축의 시간 때문에 가능했다. 적어도 10년, 20년 걸리는 정치적 신뢰구축인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이건 프랑스 사회당이건 자기 지역조직이 튼튼히 구축되어 있었고, 지역의회/자치단체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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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0.06.12 07:32:58

이건창

좀 바보같은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당-공산당 관계에서 사회당은 집권이라는 열매를 맺었지만, 공산당의 입장에서 봐서는 어떤 성과가 있을까요?


댓글2010.06.12 12:49:07

원시

공산당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것은, 자료를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테랑 행정부에 4명의 공산당원이 들어갔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사회당과 공산당이 연정을 했는지 자료가 많지는 않네요. 4명의 공산당원이 행정부 장관으로 들어간 것은 의미있는 실험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실제 여론이나 당시에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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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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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숫자 1만 4천명, 적은 게 아닙니다. 문제는 양이나 숫자가 아니라, 팀워크라고 봅니다. 공개경쟁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실력 검증받아야 합니다. 당에 좋은 말들은 많습니다. 김상봉 당원께서 "우리들보다 더 실력있는 당원들 모셔와야지.우리보다 못한 사람들 데려와 봐야 소용없어요" 라고 강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보신당의 "실력"에 대한 측정,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다 각자 그 기준이 달라서는 곤란합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진보신당 당원들이 착각하고 있는, 아니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착시 현상, 자아도취적인 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마 당 바깥에 가면, 다 존경받고, 똑똑하고, 또 대접받고, 좋은 일 하신다고 칭찬받고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당 조직에서는 그 '개인'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팀워크, 공개경쟁과 공정한 평가, 지원이 없으면, 한국 시리즈 우승은 불가능합니다. 집단 슬럼프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현실은, [진보신당의 질병 현실]은 중증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2000년 이후, 진보정당 (민노당, 사회당, 진보신당 등)이 만들어진 이후에 이런 경우는 처음 듣고 봅니다.  당직자 경험이 있는 분 (김해중:아우라 ID: 전 홍보실장)이 당직 교체를 회사 "해고"로 간주, 당에 400만원 형사 고발 조치를 했습니다. 

중앙당에 일하다가 시도당, 당협에 가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지도부가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르거나, 팀워크가 맞지 않는다면, 자기 개인적으로 참여하던가, 팀워크 맞는 당원들과 같이 일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400만원 상당의 소송을 걸어서, 당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있습니까? 이 분은, <연합파> 대 <독자파> 허구적 대립구도보다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http://bit.ly/uvv5IA ...에서, 제가 "당 팀워크를 기르는 법 = 줄다리기 방식"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댓글까지 달았더군요.

제가 지도부나 중앙당을 비판하면, 그걸 자기 정치적 이해관계 (당직, 공직 등)에 이용하거나, 은근 쓸쩍 구렁이 담넘듯이 얹혀가기도 합니다. 사실 진보신당에서는 있어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들입니다. 

서설이 길어져서, 시간도 부족해서 대안만 말씀드립니다.

1) 지도부나 중앙당 실수나, 미숙함 보인다. 그러면 곧바로  <-------> 개인들 이름 거론해가면서 욕하고, ..., 이런 분위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온라인으로 보고 관찰하고 경험한 2002년 ~ 2003년 민노당이 성장하던 당시에는, 중앙당에서 30만원 정도 받아가면서 당직자들이 일하면서, 온라인 당원들과 머리를 합쳤습니다. (지금 2011년 12월 현재까지도: 2004년 국회의원 10석 얻는 과정에서 생긴 정치적 병폐가 그대로 병균이 되어 지금도 진보신당을 갉아먹고 있다고 봅니다.) 

[ 대안1]  지도부와 중앙당, 시도당의 팀워크를 높여야 합니다. + 그리고 주전 멤버로 뛸 수 있는 베스트를 속히 확보해서,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고, 말 잔치가 아니라, 골 스코어를 넣어야 합니다. 사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이 팀을 속히 만들어야 합니다. 

dec5_진보신당은_너무_가난하다_가진_게_아무것도_없다_자기_갈_길을_가야할_때.jpg 
(정당은, 사회에서 가정에서 친구집단에서 좌절된 개인의 꿈이나 복수의식을 가지고, 자기 인정을 받거나, 타인을 공격하거나, 우위에 서 보려거나, 사회적 승인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민주당-한나라당 주변에 룸펜들,특히 아저씨 룸펜들 많이 있습니다. 여의도 식당에 가보세요. 양복입고 많이 돌아다닙니다. 또 데모도 하고, 가서 때리라고 하면 맘에 안드는 정치인 가서 때리고, 욕하고, 집에 전화하고 협박하고 그럽니다. 다 밥그릇이니까요.

진보정당은 민주당-한나라당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 

4기 2차 대표단회의 회의자료 http://bit.ly/sO8jh1 보면, 9.4 당대회, 탈당자 탈당 2380, 입당 195명 입니다. 아래 글에서 말씀드린대로, 

[대안 2] 당원 배가 운동하려면 1) 진보신당 현재 자기 정체성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와야 합니다. 그런데, 감동을 줄 수 있는 그 한방이 없습니다. 당원들 사이에 공유된 정치철학이 흐릿하거나 부재한데, 누가 오겠습니까? 홍세화 대표의 글이 감동적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언론 사설이지, 아직 당에서 체화된 것이 아닙니다. 현실은 SM 엔터테인멘트 이수만 같은 늠이 장악하고 있고, 거기에 대한 우리식의  대안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 현재 진보신당 가지고 안되면, 문호를 개방해야 합니다. 사절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진보신당 전 당원이 고개를 숙이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삼보일배하는 심정으로, <진보좌파당>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개인, 정당, 단체들에게 다가갈 시점입니다. 

[대안 3]  골을 넣을 수 있는 정치기획이 필요합니다. 

 당게시판, 당협, 시도당, 민주당-원샷통진당과 구별도 차별성도 없는 대표단의 정치 일정 행보  바꿔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대 시민용, 시민들과 노동자들과  만나는 정치적 내용, 접촉면이 너무 부족합니다. 정해진 정치일정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지지율 오르지 않습니다. [대안]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대표단들 사진 하나 찍더라도,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1000장 찍어서 1장도 알려지지 않고, 당게시판에서만  썩히는 게 아니라, 5장 찍어서, 1장이라도 제대로 뉴스 기사와 켄텐츠로 시민들을 만나야 합니다. 시민들과 노동자들과 공유되지 못하는 정치활동은 가급적 줄이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급하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현명하게 했으면 합니다. 당 지지율 1% 올리기 어렵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dec5_팀워크_성공_케이스_공유해야_자신감_회복.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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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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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2012. 7. 1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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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정당과 좌파당이 캐나다 총선에서 얻어야 할 시사점과 교훈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보다.



2011년 5월 2일 캐나다 총선 결과가 지금 발표되고 있습니다. 시차 때문에, 아직 최종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윤곽이 다 잡혔습니다.


결과는 보수당 (*PC 진보적 보수당 - 당 이름임: 아니러니하죠? 진보적 Progressive 라는 말을 달고 보수당이니까요)이 과반수를 넘어서 제 1 다수당이 되었고, 최근 3차례 총선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음.


주목할 만한 가장 큰 뉴스는, 캐나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당 (Liberal Party)가 연방차원에서 거의 독재를 하다시피 했는데, 이번 총선에서 1962년 창당된, 신_인민_당 (신 민주당 New Democratic Party: 중도 좌파)이 제 1 야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캐나다는 정치 정당 이념/이데올로기 지형을 고려했을 때, OECD 국가들 중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거의 한국과 유사한 정치 정당 역학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핀란드, 독일, 프랑스와 단선비교해서는 안되듯이, 캐나다와 한국을 단순하게 비교해서는 안되겠습니다만. (*이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왜 이번 캐나다 총선에서 신_민주당 (NDP)가 제 1 야당으로 되었는가? 정책은 무엇이고, 당 대표 잭 레이튼 Jack Layton 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선거 정책은 새로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의사,간호사 숫자 늘이겠다. 보건의료 정책 (*캐나다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잘 되어 있음) 유지하겠다. 직업 창출하겠다. 연금 후퇴 저지하겠다. 가족 및 노인 복지 더 힘쓰겠다 등. 


지금 개표하면서, 왜 신 민주당이 약진했는가? (특히 퀘백 주에서, 전통적인 퀘벡 블럭 정당을 궤멸시키고, 신 인민당이 거의 휩쓸어버림. 그 이전에는 1석도 없었음) 물음에, 8년 동안 준비했고, 우리 말로 <민생: 위에서 열거한 사회복지 및 공공 복지 정책>을 내실있게 준비했다. 관성적인 오타와 (수도) 정치를 바꾸겠다는 것을 내세움. 물론 잭 레이튼 고향이 퀘백주 몬트리올 근처라는 것도 큰 작용을 했습니다.


도표만 몇 개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현재  308석 의석 수 (캐나다 국회:의회 정당별 의석수)


Canada_General_Election_Present.jpg 



2011년 5월 2일 총선 결과 현재 시각


Canada_General_Election_2011_result.jpg


텔레비젼 중계방송


Canada_General_Election_2011.jpg 

신_민주당, 창당 이후, 국회 (의회) 선거 득표율 및 의석 숫자 변동 상황.


캐나다 총선은, 비례대표가 없고, <1위만 당선되는 체제임>, 비례대표가 없던 한국 선거제도와 동일함


NDP_first_opposition_49years.jpg



<참고> 


신_민주당, 창당 이후, 국회 (의회) 선거 득표율 및 의석 숫자 변동 상황.


캐나다 총선은, 비례대표가 없고, <1위만 당선되는 체제임>, 비례대표가 없던 한국 선거제도와 동일함


댓글
2011.05.03 13:33:28
원시

한국과 단순 비교 분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국과 상대적으로 역학관계에서 가장 유사한 정당 구조들 (보수 - 자유 - 중도좌파/진보) 가진 캐나다의 사례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고, 제도 정당의 역사가 10년 정도된, 한국 좌파에게 주는 몇 가지 시사점들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캐나다 총선 최종 결과가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나 좌파가 제 1 야당, 집권당이 되는 때까지 걸리는 시간, 물질적 조건, 지도자 자격들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민주당-빅텐트론을 주장하고,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선거제도> 때문에 힘들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론적 실천적인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진보신당이나 한국진보정당의 이론적 실천적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다음 기회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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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14:28:58
김성수

NDP를 신인민당으로 번역을 하셔서 살짝 헤깔렸네요.

 

NDP는 신민주당으로 번역하는게 더 적절할거 같은데 신인민당으로 번역하신 다른 이유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NDP는 케나다인이 뽑은 가장 위대한 케나다인 1위로 선정 된 토미 더글라스가 설립한 정당이지요.

 

한국으로 치면 김구 선생이 만든 정당이 야당으로 있는 정도랄까? (물론 그의 정치 지향 말고 영향력...)

 

여하튼 재미있고 유의미한 결과네요.

댓글
2011.05.04 03:58:48
원시

김성수님/ 어제 글 쓸 시간이 10분 정도 밖에 없어서, New Democratic Party를 신-인민당으로 번역을 해놓았군요. 세상에,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제가 (인민 People/민중/국민 등으로 번역해도 되는데요)이라는 말을 선호했으면, <민주>를 <인민>으로 써놓고 갔는지 ^^, 신민당이라고 하는데, 신인민당으로 제가 잘못 오기를 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르켜 무슨 오류라고 하는데, 잊어버렸네요. 아무튼 지적 고맙습니다. 


ㅎㅎ 근데 김구와 비교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토미 더글라스가 태어난 주 이름이 사스케치완이라는 주인데요, 아마 주 자체 영토는 한반도 몇 배는 될 터인데, 인구는 1백만 정도 밖에 안되는 주입니다. 유럽에서 넘어온 이민자들끼리 공동체 지향이 강했던 점도 고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몇 가지 생각해볼 주제들을 던져준 이번 캐나다 총선 결과였다고 보는데요, 한국과 단선적으로 비교하기 힘든 측면들이 있지만요.  

댓글
2011.05.05 19:49:55
꼭지네

50년...

60년..500년 1천년...

 

^^ 좋은 글 자료..보고 갑니다..^^

 

원시님...늘 그렇듯 건승하세요..

댓글
2011.05.07 13:40:46
원시
꼭지네님/ 이궁... 묘청이 살아 돌아오겠네요. 1천년^^ 
댓글
2011.05.06 15:56:29
유목민-rev1968

옛날에 캐나다 정당의 에너지/기후변화 정책 비교분석 글 준비하면서 알게됐는데, 정말 소수 3당이였는데 경천동지할 일이군요.

 

궁금한게 선거가 우리와 비슷한지, 아니면 독일과 비슷한지?

댓글
2011.05.07 13:40:00
원시

본문에 적었는데요, 

캐나다 총선은, 비례대표가 없고, <1위만 당선되는 체제임>, 비례대표가 없던 한국 선거제도와 동일함


엄밀하게 따지면, 캐나다 선거제도는 <독일: 지역-비례 혼합형 거의 1:1>이나, 한국 <부분적 비례대표 도입>보다 더 좋지 않은 <소선거구제 단순다수 1위가 당선되는>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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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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