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2019. 4. 15. 01:09

[뉴스 단상] 이 비참하고 고독하기까지 한 아파트 5평 더 늘리기 보다, 5평~ 10평 정도의 텃밭을 하나씩 가질 수 있는 도시 건설이야말로 '산업화'와 '4차 5차 산업혁명'보다 더 시급하다. 도시 사람들도 자기 텃밭에서 스스로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귀농하거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살 수 없는 도시 노동자들도 흙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 있어야 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1가구 1 텃밭 보유와 가꾸기가 이상적이거나 몽상적인 계획이라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이웃과의 협력 체제와 국가의 '생계 안전과 공적 행복 제도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최후의 보루로 집, 땅, 빌딩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그게 한국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농경제 사회를 그대로 서울로 옮겨놨다. 가뭄 홍수 조절에 유리한, 저수지 바로 밑에 논이 가장 좋고 비싼 논이었고, 이제는 서울대를 비롯한 '인'서울 대학 많이 보내는 아파트 단지가 가장 좋고 비싼 주택가가 되었다. 1953년 한국 전쟁 이후 뼈빠지게 일해서 만들어놓은 한국 자본주의 급성장이 만들어낸 자화상의 한 모습이다. 결국 우리가 세계인들에게 전시하고 자랑할 안타까운 삶의 양식이다. 


아파트 단지에도 사람 냄새가 있고, 이웃들간의 정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마다 천양지차고, 텃밭도 정원도 잘 갖춘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건설 자본의 이윤 추구가 인간의 삶의 공간과 자산보유량을 결정하는 현 체제를 우리는 바꿔야 한다. 


먼 미래 일로만 바라볼 게 아니다. 이제 전국에 빈집이 100만 가구가 넘는 시대가 왔다. 20년 안에 소멸할 지방 자치단체는 30%이다. 


주택 양식으로 아파트는 더 이상 건설하지 말았으면 한다. 용적율을 높이면 높일수록 인간의 삶의 질은 떨어진다.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주택이 도시에서 많아지고 '주류적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이제 현실화시킬 때이다. 향후 50년이 걸리더라도, 대략 2~3세대가 거쳐 완성가능한 새로운 도시 문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년간 서울 아파트 생활이 아닌, 다른 주거 양식을 찾아 새로운 실험들을 한 사람들도 많다. 전국에 5만~10만명은 더 넘을 것이다. 이들이 지난 20년간 이룩한 경험들을 발표하게 하고,이를 기초로 새로운 도시 생활 (주택, 텃밭, 이웃과의 소통 방식,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들 등)을 기획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차이는 백지장 하나 차이이다. 자본주의 소유권 제도가 인류가 근대화 이후 표방하는 자유, 평등, 연대와 갈등을 일으키고 상충하고 오히려 자유, 평등, 연대 정신을 갉아먹기도 한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고 체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극렬한 자본주의 폐해가 표출된 곳이 아파트와 주택이고, 이 생활공간에서 '심리적 안정', '아 나는 다행이다'라는 굉장히 소극적인 행복에 머물러야 하는 한국인들의 비애다. 


비약적인 평행 유비이기 하지만, 농경제 시절 토지 지주나 양반계층이 소작농과 빈농을 무시하면서 집성촌에서 그 계급사회를 유지해나갔다면, 지금은 교육 경쟁에 유리하고 신분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와 부자마을에서 그 계급사회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성이 같은 집성촌에서 화폐량이 같은 아파트촌으로 그 형태만 바꾸었을 뿐이다.


봉건 시절에는 드물게 낭만이라도 있었다. 몬테규 가의 로미와 캐플렛 가의 줄리엣이 '오 나의 행복한 칼 oh my happy dagger'를 외치며 마지막 사랑을 자살로 승화시켰다. 이제 한국은 대부분 비슷한 아파트 단지 내 사랑이 주류를 이룬다. 1990년 초반에 이미 한국에서 도시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비참한 빈부격차를 낳을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면서 완성되었다. 아파트 이름과 평수와 사는 동네 이름에 민감하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지난 100년 한국인들 중에서 가장 '브랜드'에 민감한 세대가 되었다. 누가 그런 인생 취향 형성 조건을 만들었는가? 그들 부모와 서울이나 대도시 삶의 양식이다. 놀랄 것은 없다. 386들 세대 대부분이 나이키에 열광했으니까. 다만 그 강도가 세졌을 뿐이고 세련되었을 뿐이고 다양해졌을 뿐이다.

 

 


기사요약: 슬로푸드 (slow food) 국제 본부가 '맛의 방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 토종 먹거리 60여 가지가 우선 대표로 인류 문화유산으로 규정되었다. 


mbc 보도에 나온 할머니가 기르고 있는 노란 당근, 조선 배추, 이름도 귀여운 "뿔 시금치", 그리고 각종 씨앗들이 전국에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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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풍성한 할머니의 밥상…"비밀은 토종 씨앗"


양효경 기사입력 2019-04-14 20:30 



토종씨앗 텃밭 종자 맛의 방주



◀ 앵커 ▶ 



노란 당근, 삼동파, 뿔시금치… 


이름마저 생소한 토종 작물들입니다. 


최근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골 할머니들이 조금씩 간직해 온 토종 씨앗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요. 


양효경 기자가 만났습니다. 



◀ 리포트 ▶ 


60년 넘게 농사를 지은 한건우 할머니의 작은 텃밭을 찾았습니다. 


[한건우(80)] 


(이게 뭐예요? 처음 보는 건데) 


"노란 당근. 쪄서는 무치면 달디 달어." 




노란 당근은 가을에 심어 겨우내 먹습니다. 


[한건우(80)] 


"이게 월동하는 당근이야. 빨간 당근은 월동 못해. 다 썩어. 그냥 놔두면…" 


(엄청 생명력이 좋은 거네요?) 


"이게 강한 거지. 겁나게 강한 거야. 옛날 것이 모든 것이 강해. 저 시금치도 옛날 시금치야…"




뿔시금치입니다. 




[한건우(80)] 

"이건 너무 달어. 일반 시금치는 시금치 따러 가면 안 갖고 와요. 맛 없어서…" 


파가 3단으로 자라는 삼동파도 있습니다. 




대파보다 단단하고 양파처럼 단맛이 난다고 합니다. 


부드럽고 달큰한 조선 배추까지… 




오래 전 우리 식탁에서 사라져버린 토종 작물들이 할머니의 손끝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네 집은 씨앗 박물관입니다. 






옛날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또 딸에게로 이어져온 수십가지 토종 씨앗들이 있습니다. 




[한건우(80)] 

"할머니들이 뭐라 그랬냐면 (씨앗을) 남겨야 또 심어서 먹고 살지. 그러니까 씨앗 망태기는 매고 죽으라고, 베고 죽으라고 했어." 




최근 할머니의 60년 내공을 배우려는 젊은 농민들의 발걸음이 늘었습니다. 


"어머니 이거 제비콩 이거는 언제 심어요? 지금쯤 심지 않아요?" 


"아니, 조금 더 이따가 심어" 



이들이 토종 작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종자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대기업 종묘회사에서 나오는 씨앗은 대부분 살충제가 뿌려져 나오거나 다시 열매를 맺지 못하는 1회성 상품인 현실. 






[정진영/부여군 농생태학농장 팀장] 



"종잣값이 상당히 비싸요. 외국계 종자 회사에서 들어오는 게 많다 보니까 우리 것도 종자가 있는데 굳이 사서만 해야 된다는 것도…" 




건강 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토종 씨앗을 기록하고, 토종 작물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비영리국제기구인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전통 먹거리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규정하고 보존하는 '맛의 방주' 프로젝트를 진행중인데, 진주 앉은뱅이밀과 제주 푸른콩 등 우리 토종 먹거리 60여 가지가 등재됐습니다. 





토종 씨앗 한 알 한 알에 담긴 의미. 





할머니가 차려주신 토종 밥상은 달고 풍성했습니다. 


MBC뉴스 양효경입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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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2014. 9. 25. 11:43

도시공간에서 정치적 좌파의 실천: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에서 이제 "삶의 터전"의 정치로 무게 중심을 이동

원시: 2011.02.01 03:14


사례 1 >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북미(캐나다와 미국 북쪽 일부 주)에서는 일요일에는 대형수퍼마켓이 영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적 이유도 있고, 서비스 노동자들도 주말이면 쉬어야 하고 등: blue law, retail business holidays act ) 토요일 같은 경우도 오후 5시면 문을 닫고, 심지어 금요일도 6시면 문을 닫곤 했습니다.


그 결과 동네 길목 코너에 있는 소매 가게들은 상대적으로 장사가 잘 되었는데요, 90년대 중반 이후 법률이 개정되기 시작해서, 소매상들이 대형 수퍼와 할인점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맥도날드 커피? > 통큰치킨, 피자 사건, 이런 현상은 아주 공격적인 한국식 자본주의 특질로 해석됩니다. 햄버거 맥도날드 회사에서 작년부터 느닷없이 $ 1 달러 커피를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피자>사건에 비하면 애교더군요. 스타벅스 커피 회장이 공개적으로 수익금을 이스라엘 수호운동에 보내는데...가급적이면 <스타벅스>커피는 피하는 게 낫겠다 싶군요.


동네 상인들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높이는 정치운동 > 할인점, 대기업형 수퍼에서 800원주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었다. 우리 동네는 1000원짜리 딸기 아이스크림이다. 그러면 문제는 우리 동네에서 1000원 내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는 게, 기업형 수퍼에서 동일제품 800원짜리를 사먹는 것보다 <그 뭔가 더 낫다>는 게 증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네 상인들도 그 동네 주민들을 위한 <공적 사업>을 할 수 있는 <진보정당>에서 유도를 해나가고 등등. 그게 동네 정치, 동네 생활터전의 진보정치화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각 당협별로 다 보지는 못했지만, 당게시판에 올라온 것 중에서 훑어보니까, <동작 당협>에서 내건 플래카드가 눈에 띄입니다. 이재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건, 발로 걷던, 동네를 샅샅이 방청소하듯이 밀고 닦으면, 구청장도 언젠가는 운영하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향후 30년은 한국의 정치적 좌파에게 <도시 계획>과 관련된 주제들이 정치적 숙제로 남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노쇠해버린 운동권들이 <철학적 정체성>을 거의 상실해버렸는데, 그건 실제 우리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나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87년 체제, 97년 IMF위기 이후 달라진 한국자본주의와 삶의 양식에 대해서 말하지, 실제로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 그에 대한 정치적 기획은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도시 공간 자체가 계급이고 계층이고, 우리들의 행복과 희로애락이 담겨진 정치적 공간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도시공간 (서울이면 서울, 인천이면 인천 공간을 10m, 100m 단위로 자르고 끊어서) 그 공간의 "사적 소유 재산권, 자산"에 대한 반성적 해체 및 재구성을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 사적인 재산권을 세밀하게 다시 분해해서, 시민들의 자아실현, 자유와 평등, 인권과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금의 정치학, <복지> 담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서울의 경우 45%가 자기 집이 없는 주민들이다. 


500만 인구는 <문화적 정착세대>가 아닌 셈이다. 이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두번째는 도시 주민들의 노동소득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줄이고 완화시켜야 한다.


<도시공간>에 대한 좌파적 실천을 조금 단순화를 시키자면 "삶의 터전"을 자유와 평등의 터전으로, 우리들의 행복의 터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1) 일 터 (2) 놀이 터 (3) 쉼 터 (4) 집 터


이러한 삶의 터전들을 우리들이 내세우는 삶의 지표나, 정치철학이 실현되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게, 추상적으로 이름 붙이자면, 21세기 좌파가 이뤄내야 할 자유,평등, 연대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쉼 터, 놀이 터, 집 터 역시, 97년 이전과 현격히 구별되는 "있는 자" 대 "없는 자"로 갈라져 있다.


이런 사회 균열과 계급계층화를 디자인해오고, 조장해 온 정치 집단은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 MB 하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 노무현 회상" 이라고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철저하게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돈과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 노골적으로 조금 더 거친 방식으로 무식하게 전개되고 있다.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에서 이제 "삶의 터전"의 정치로 무게 중심을 이동할 때 !


97년 이후, 이제는 "삶의 터전"의 정치를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삶의 터전에 뿌리박힌 수많은 이해관계들,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법률적 이해관계들의 복잡성들을 공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 돈, 부당한 권력을 막아내고 물리칠 수 없다.


87년 독재타도를 위해서 길거리에서 돌, 화염병, 물통을 들었다면,

이제 "삶의 터전"에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행복, 공적 행복"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법률적 수단들을 들어야 한다. 


일터에서 재산권,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재테크 부동산 집 뉴타운 등, 쉼터에서 여가문화와 관련된 모든 사회제도들, 놀이터에서 문화, 예술, 스포츠 활동들과 그 사회적 기반시설과 계급계층 차별 해소 등......


87년과 대비해서,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분화되었고, 수십가지 수백가지인데, 자꾸 역사적인 퇴행을 부추기는 세력들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도시공간>에서 정치적 좌파의 실천을 찾아나가고 연구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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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보고 가요. 좋은 하루 되세요. ^^

    2014.09.25 11: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한국정치2014. 1. 26. 22:09

1.

[변호인 대사: 송강호]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되잖아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

송강호가 깔아준 밥상, 미완결 밥상, 밥만 있고 국이 없는 밥상에,

숟가락이 아니라, ‘국’과 ‘김’을 올리겠습니다.

위 송강호 대사는 가사이고,

후렴구를 만들어서, 진보좌파노래로 만들어 봅니다.

“노동자도 국민입니다.

이런 게 어딨어요?

대한민국 법에 노동3권, 파업할 권리 있잖아요?

파업한다고 100억 50억 10억 손해배상 소송하면 안되잖아요?”

밀양 할매도 국민입니다.

가정주부,

차별받는 지방대학생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폐지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2.

영화 <변호인> 정치적 해석 : 눈물 흘릴 사람이 안 보이는 좌파가 더 슬프다.


정치적 지도자를 말하면 명망가에 의존하는 되는 것이고, 좌파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닌 것인가? 드라마같은 노무현 (대통령직을 한 사람) 자살에 상응하는 좌파 지도자의 자살이 없다는 게 아니다. K, D가 자살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우리들에게는 그냥 눈물 흘릴 사람도, 아니 이렇게 쓰면 공정하지 못할 것 같다. 그냥 내가 눈물 흘리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인데.


인위적으로 억지로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마는, 자연스럽게 만들 필요는 있겠다. 자연스럽게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눈물로 치면, 아니 왜 없겠는가? 쌍용자동차 공장 지붕위에서 테러범 취급당하면서 구타당한 노동자들, 그 정신적 후유증들, 그 이후 죽어간 사람들에서 밀양 할아버지까지.

또 영화 자체만 놓고 봐도, <변호인> 상업영화이다. 그 관객들의 어떤 정치적 해석이야 자유지만. 1000천만 관객, 제작/배급 독점 체제 오히려 좋은 영화, 독립영화 망하게 만들고 있다. <변호인>의 상업적 성공에도 환호작약할 일도 아니다.


<변호인> 그렇게 눈물 나는 영화도 아니었다. ‘배우 곽도원, 송강호-오달수 연기 잘 하네. 김영애 살아있네’ 오히려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지, 노무현에 대한 영화다, 이런 느낌은 많이 들지 않았다.


맞다 나의 과도한 <정치적 해석>이다. 눈물 흘릴 사람이 안 보이는 좌파가 더 슬프다고 한 것은. 그런데 지난 시기를 뒤돌아봐도, 여기 지금을 봐도 눈물 흘릴 사람이 안 보이거나 만들어내지 못한 좌파가 더 슬프다.


3.

영화 <변호인> 현상과 여론전 타켓 설정:

노무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 <변호인>보는 관객들과 그들의 정치적 해석과 소통하는 좌파가 필요하다.


영화 <변호인>보고, 노무현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자 탄압 사례를 영화 <변호인>이 놓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우리가, 좌파가, 사회주의자가, 공산주의자가 해야 할 ‘여론전’인가?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 전기 영화이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백혈병 다룬 노동자 영화이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세계사 유례없는 강도 높은 IMF 신자유주의 ‘긴축정책’ 통치안 다 수용하고, IMF 위기 극복했다고 선전했다는 사실.

노무현씨가 통일민주당 국회의원 시절, 1989년, 노동운동 탄압한다고 국회의원직을 던졌다가, 2002년 대통령 당선된 이후 “노동자들이 대통령하는데 좀 도와줘야지,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파업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어떡하냐?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이런 반-노동자 정치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다 분개했다.


영화 <변호인> 현상에 과도하게 주목하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변호인> 보러 가는 사람들은 꼭 민주당, 혹은 노무현의 정책을 다 지지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좌파 정당에서 ‘여론전’을 고려한다면, 영화 관객들이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토론하러 가는 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정치적 민주화’조차도 ‘공론 토론 영역’ 조차도 쪼그라드는 게 아니냐? 국정원 댓글과 같은 ‘부정 선거’로 정당성을 상실해버린 박근혜 정부가 <변호인> 흥행의 배경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보러가고, 영화 <변호인>은 보지 않겠다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영화 <변호인> 현상과 <또 하나의 약속>은 모두 우리가 정치적으로 다 개입하고 참여해야 하는 주제들이다.


민주당에 투표했던 사람들도, 또 안철수에 기대했던 사람들도, 지난 1년간 국정원 댓글 사건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기회주의적이고 불철저한 김한길 민주당 체제를 비판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가, 민주당이 대선에서 지고,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너무 좌클릭을 했다’고 판단하고, ‘중도 노선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했지 않았는가?


아, 어망, 민주당과 안철수 어망에서 풀려나온 물고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연어떼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연어떼는 놔두고, 미꾸라지 순수 민물고기 잡으러 가는게 좌파의 여론전인가?




[그림 우] 여론전과 좌파의 임무에 대해서, 그림으로 표시하면, 영화 <변호인>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노란 선 영토일 것이다.





(1989년 민주당 의원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의원직 사퇴까지 발표했다. 2002년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노조 파업이나 농민 시위에 대해서 법대로 집행한다고 하면서 강경대처했다. 역사의 아니러니였다) 

좌파가 노무현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해야. 동네 사람들과 대화할 때 필요한 이야기는, 혹은 노무현이나 민주당지지층의 설득 담론은, 2002~2007년 노무현이 아니라, 1989년 노무현이었다고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부르조아 학자나 연구자, 그리고 상업언론은 노무현에 대해서 비-역사적인 태도를 취한다. 과거에 대한 망각을 조장하고 선택적인 조망만을 할 뿐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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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이

    좀 쉽게올리지ㅡㅡ

    2014.03.10 18:05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