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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이 지쳐보여요


원시


http://www.newjinbo.org/xe/1285942008.07.14 17:08:2866711


촛불데모가 너무 길어져서 그럴까요? 칼라tv 조피디님도 "신경이 저절로 날카로와집니다" 그러던데요. 


60일 넘게 저 아스팔트 바닥에서 뛰어다니다 보면, 정상인이면 누구나 다 "신경 쇠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넷 공간이라도 조금이나마 현실과 연결고리를 찾아보고, 촛불의 땔감을 제공해보려고 했습니다만, 그게 쉽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시청 앞 광장 뺏겨서 (가족단위로 나와서 정치+소풍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진보신당과 칼라tv 천막 근거지도 없어지고) 그게 참 큰 손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토론을 하더라도, 정치정당에서는 직접 사람들을 만나보고 이야기하는 게 효과적이고, 또 타인이 뭔가 마음으로부터 깨달아서, 자기 행동을 바꿀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큰 정치적 능력인데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멀리서 느끼는 추상적인 느낌이 들어서, <게시판이 지쳐보입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왜 대화가 잘 안될까?> 그런 질문도 던져보고 그랬습니다. 대화의 기술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이나 말은 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의 표현이니까요. 강아지도 표정을 지어 표현하는데, 사람이 하물며...



제가 아래 던진 질문에, 한 친구가 답한 내용 소개드립니다. 당원 여러분들의 의견도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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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의 질문(아래)이 상당히 복잡다단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제입니다.

 

인터넷에서 왜 대화가 잘 안될까? [5] 원시 2008-07-08


물론 제가 인터넷에서 주로 만나는 집단들과 원시가 말하는 '상당히 정치적 집단'은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십대 빠순이, 아니메 오다쿠, 타로 점성 매니아, 고양이 학대자 등을 만나서도 항상 기회가 생기면 (소크라테스적으로)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그점을 염두에 두시고 저의 답을 봐주시길.


1. 왜 인터넷 여론장에서 대화가 잘 안되는가 ? 


굳이 인터넷이 아니라도 일상 샐활에서도 '대화' 자체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죠. 저는 그게 기본적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없이 자라서라고 생각합니다.


(1) 논리학의 부재


어떤 주장의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방법이 뭔지 모릅니다. 아주 기초적인 형식논리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아주 허다합니다. '합리적 사고'를 주장하면 '과학 만능 주의'라고 말하면서 다른 진리 검증의 방법을 제안하지는 못하죠.


(2)  비유의 범람과 증거의 부족 


왠지 뭔가에 갖다붙여 비유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야 '논객'처럼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나 봐요. 요즘 신문 기자들이 수사적 픽션적 글쓰기를 하는 걸 보면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3) 익명의 문제


사이버 공간이 주는 익명성의 매력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토론의 무책임함을 만들어내는 아주 중요한 요소죠.  굳이 실명일 필요는 없지만 토론 공간 내에서 그 사람의 '정체성'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지켜지면 앞의 두 문제는 오히려 현실 공간의 토론보다 인터넷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기 한 말이 고스람히 남아 있기 때문에 조목조목 비판 할 수 있죠.(이게 말꼬리 잡는 수단도 되지만)


(4) 감정 과잉 -> 잘못 불인정


익명성과도 연관이 되겠지만, 앞에 사람 없다고 할 소리 못 할 소리 하기 시작하면 상대방도 감정이 끓기 때문에, 결국 어느 쪽도 잘못 인정 -> 패배 -> 바보가 되는 과격한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토론에서 중요한 건 '자기 주장의 승리'가 아니라 '진리'임을 누구나 알지만 쉽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죠.


(5) 좋은 게 좋다


바로 위에서 나오는 문제지만, 제 3자가 나타나 '좋은 게 좋다'라고 대충 무마시키려는 겁니다. '진리'보다는 '친목'이 우선이라는 커뮤니티적인 생각이죠. 토론자의 주장의 타당성보다는 인간 관계가 더 큰 역할을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봅니다.


(6) 카테고리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상대방의 주장을 상세히 검토하기도 전에, 쟤는 민노당파, 쟤는 진보신당파, 쟤는 일류대생, 쟤는 영어 잘하잖아, 라고 카테고리 짓길 좋아합니다. 물론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각을 구성하는 배경 조건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상대에 대한 공격 방법으로 쓰면 안 되겠죠?


(7)  비겁한 리플들 


원시가 선거 4대 원칙을 이야기 했는데, 이건 약간 좀 복잡한 방식으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토론자의 게시판 글쓰기 회수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1인 1표는 아니죠. 많이 글쓰는 사람이 더 많은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꼭 이렇게 글 많이 쓴다고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평소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자기가 반대하는 사람의 글에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네요.' '너 바보냐?'라고 한줄 리플을 답니다. 근데 이것이 마치 침묵하는 다수의 대표적 발언처럼 큰 힘을 줍니다.  물론 이것도 발언의 한 방법이지만, 한번도 자기 주장의 근거를 펼치지 않으면서, 이렇게 리플로만 힘을 발휘하는 비겁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내 말이 왜 틀렸다는지 이유를 좀 들어봅시다' '그걸 말해야 아냐? 이 바보'

 

 

2. 대화체로 글쓰기 방식의 전환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저는 논술체보다는 대화체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익명이라는 게 언제든지 감정을 상하게 만들기 좋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공간보다 더 예의발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상시에는 반말 하는 상대도 토론이다 싶으면 존대말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딴지 일보투, 디씨 하오체, 우리 사회의 마초적 속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불쾌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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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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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왜 대화가 잘 안될까?


원시


http://www.newjinbo.org/xe/1233022008.07.08 17:00:453675


날씨가 더워 잠시, 인터넷과 정치를 생각해보다.


1. 난 논객이 아니고, 태권도로 치면 파란띠나 되려나?


내가 진보신당 게시판에 글을 쓴다 하니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논객'이냐고. 웃고 말았다. 


논객(論客)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맹자이다. 맹자(孟子)가 양혜왕을 만나서, 하필이면 '왕이 되어가지고 이익을 이야기하느냐 ?'(하필왈리 何必曰利)고 준엄하게 비판했다. 논객은 이런 사람을 일컫는 거 아닌가? 혹은 하마못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수많은 식객(食客)들 정도는 되어야 논객의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가 그냥 웃고 만 것이다. 한국에서 인터넷 논객은 2002년부터 만들어진 말이다. 컨텐츠 부족으로 1~2년 못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야망이 정해진 사람들 (서프라이즈 등), 혹은 '진보'를 이야기하지만 준비가 너무 부실했다.  


2. 자기 색채가 뚜렷해야 하는 진보신당 인터넷 게시판 


포르노 동영상 공급, 인터넷 게임, 홈 쇼핑, 일반 동호회와 비교해서, 예를들어 진보신당 게시판은 무슨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맹자 이야기를 해보다. 맹자는 아마 군자(이상적인 왕)에게 한 이야기겠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나이가 많다고, 돈이 많다고, 지식이 많다고, 자기 배후 배경이 많다고' 이 네가지가 많다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맹자>에서 말한다. <맹자>를 처음 접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이 말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1) 인터넷에서는 맹자가 말한 4다 (네가지 많은 것)를 피하고, 수평적으로 만났으면 한다. 


한가지 사례를 이야기하면, 민주노동당 시절, 최장집 교수를 마치 '진보의 대표적인 지식인'처럼 권위를 부여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좌파는 우파와 달라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절대적인 숭배 태도나, 무작정 묻지마 '권위 부여'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무슨 타이틀, 직위 등을 먼저 내세우거나 거기에 의존하는 작태는 버려야 한다. 인터넷 여론장은, 마치 투표 4대 원칙(부르조아 민주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처럼, 그런 속성을 지닌다.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현실 사회적 관계의 편견을 괄호치고, 1인 1표 행사를 하는 곳이다. 


(2) 대화를 즐겨야 한다. 


그 다음은,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고찰해야 할 것은, '대화 (對話: 상대가 있다는 의미)'의 공간이 바로 인터넷이다. 이명박 몰입영어교육 때문에 영어 쓰는 게 꺼려지지만, 대화의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잠시 써본다.  다이얼로그 dialogue, 독일말로는 디알레틱(Dialektik) 이라고 하는 것도, 다 di (two 두개, 두 사람, 두개의 사물, 두 측면, 두가지 특질)가 붙어있듯이, 인터넷에서는 대화를 잘 했으면 한다. 


(*   rabbit/rabbit (12).gif이거 요새 내가 배운 것이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한물지난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한물지나갔지만 배울려고 애쓴다) 대화는 실은 한자어로 보면 인간 (人間)할 때, 그 뒷자 '사이 間'을 의미한다. 


(3) 가급적이면 자기 주장의 근거들을 제시했으면 한다.


인터넷이 없으면 해외에 있으면서 진보정치 공간을 학습할 기회를 박탈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인터넷 발달과 와이브로와 정치공간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난 해석한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경험으로 비춰보건대, 글이나 말의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이것은 부정적인 모습이고 인터넷의가장 큰 맹점이고 한계이다. 


소위 논객들은 이미 정해진 목표들을 향해 "목소리는 큰데,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가수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눈빛도 맑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고. 굳이 논객들이 아니더라도, 민주노동당 게시판 (2004년-2008년)은, 당원들이 혹은 논객들이 대화를 통해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하려는 마음 보다는, 그리고 나의 상-대(對)와 교접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성, 제왕의 성을 쌓으려고 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는 악날한 범죄행위도 자행되었다. 관객들은 다 떠나게 되어있다.


(4) 물질적 심리적으로 뭔가 얻어가는 인터넷 공간이었으면 한다.


 좌파가 아직 아마추어라도 진실성을 가지고 있고,그 진실성과 구체적인 전문 능력을 결합시켜낸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주의 좌파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앎이 어떠한 타인의 지배나 군림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배체제를 조장하는 큰 바위를 뚫는 한 방울의 낙수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럽의 역사 기록을 보면, 좌파와 사회주의 개념, 혹은 민중들의 저항 철학은 '너무나 너무나 윤리적인' 요청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심리적 위안이란, 이러한 윤리적 요청들과 관련된 주제들을 많이 계발하고, 풍부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 춤, 책, 영화, 스포츠, 정치, 가족, 연인, 음식, 옷, 가구 등 모든 소재들과 우리 활동 공간에서 만나는 것들에서 말이다. 그렇지 않고, '윤리'만 강조해버리면, '나는 진실한데, 너는 진실성이 떨어진다. 나는 옳은데, 너는 그르다'는 식 대화밖에는 할 수 없다. 보는 관중들 물병 던지고 그라운드로 난입한다. 이런 식 대화나 글쓰기는 물질적으로도 심리적으로 뭐 하나 얻어가는 게 없다. 


(5) 좌파가 정치 컨텐츠를 드러내고 발굴하는 '접점'은 어디인가? 


한가지 사례만을 들어보자.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이나 노조건설 (삼성 회사)이 바로 일종의 사회적 화해이다. 이는 마치 예수의 화해의 죽음(Versoehnungstod 독일어 화해+죽음 = 예수 십자가에 못받혀 죽음) 과 비슷한 것이다. 


칼라tv에 나온 뉴라이트들과 우익 청년들의 좌파 이해는 "예수의 죽음, 화해의 죽음"과는 다르다. 이들은 마치 좌파는 계급의식를 고양하고 인간을 분열적 존재로 파악하는 쌈박질 좋아하는 인간들로 치부해버린다. 더러운 그림이다. 


예수죽음에 대한 좌파적 해석은 바로 그 죽음이 사회정의를 이루는 한 방식라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고 그 해법이 드라마처럼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좌파의 글쓰기는 이러한 예수의 '화해의 죽음 (인간과 신의 분열, 인간과 인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화해의 죽음)'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적 기독인들의 '고정불변'의 예수해석에 그쳐서는 안되고, 늘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칼라tv가 조명하지 못하는, 수많은 '화해의 죽음들'이 귀신이 되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마치며: 그나저나 왜 인터넷 여론장에서 대화가 잘 안되는가 ?  목표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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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그냥 서민


나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정한 ..... 올린글의 배경과 '그 사람'의 고민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바뀔지,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빠블리또

경우가 약간 다르지만 참고할 만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애인과 전화(채팅)으로 얘기하는 것이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싸울 확률이 훨씬 높지요. 벙어리 채팅은 의사소통의 수단인 눈빛,표정,침묵 등의 시청각적 수단들을 가동시키지 못하게 하지요. 또한 표정없는 전화는 의사소통의 수단 가운데 얼굴 표정과 눈빛 등의 시각적 요소들을 모두 무시하게 만들지요. 그러니 전화와 채팅으론 좋은 얘기만 해야 합니다. 싸움을 만들어낼 소지가 크고 싸움 자체도 더욱 극대화할 소지가 높은 수단들이거든요. ^^. 그러니 보십시오. 문자 메세지로 받는 해고통지로 직접 대면해서 받는 것은 천양지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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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와우~~ 잘 읽었습니다 ^^ 논객 맞으시네요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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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원시님 글은 일단 재미있어서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 인터넷 여론장에서 대화가 잘 안 되는 까닭은, 제 생각엔 상대방의 눈을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약 30%고 나머지는 다양한 표정 변화와 그 사람의 눈이 70%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역시나 온라인 상에서의 대화는 30%밖에 주고받을 수 없는 관계로 완벽한 대화를 이끌어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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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글 좋습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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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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