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의 혹은 주체사상: 김정진 박은지 논쟁점과 논의 방향 (2)


(1)은 김정진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2)는 박은지의 문제의식과 해명에 대해서 쓴다. 박은지의 해명을 보면 간단하다. 질의자들이 이렇게 물은 것같다. 김일성주의가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어서, 좀 배우고 이정희 통진당 대표처럼 서울대도 나오고 인문계 여자 수석도 하고 변호사도 하는 사람이 주체사상파인가? 박은지부대표가 질의자에 앞서서 “주체사상의 매력에 대해서” 주장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이런 대화 맥락과 박은지의 해명에 대해서는 굳이 다시 의문을 제기하거나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진 전 부대표가 이러한 ‘대화 맥락’에 대해서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


1. 당 간부들 내려버지다. 정당은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글쓴이는 박은지 인터뷰의 문제점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한다. 당대표나 대표단,그리고 당 주요간부들의 정치활동을 내용적으로 ‘도우미’역할을 할 수 있는 당내 ‘연구소’나 ‘정치토론 그룹’ 혹은 정치조직(정파)의 부재가 더 큰 문제의 원인이다.


얼마전 장석준 부대표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김정은이 망해야 한반도가 산다! >는 글의 전반적 내용은 노동당이나 한국진보정당이나 좌파정당의 대북정책이나 평화정책으로 수용되기 힘든 내용의 글이다. 박은지 부대표의 경우도 썰타임 출연이나 발언 내용 역시 당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당 정책의 대중화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고 본다.


당 간부들의 정치적인 활동은 장려되어야 하고 당원들은 적극적으로 같이 협조해야하겠지만, 현재 그리고 지난 2년간 노동당의 당 간부들은 ‘당의 코디네이터’ 없이 그냥 개별적으로 혼자 메이크업하고 혼자 알아서 옷입고 혼자 스케쥴 잡고 언론에 기고하거나 출연하거나 했다. 

진보신당-노동당은 과거 노회찬 심상정 전대표의 당과 독립적인 언론플레이의 문제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거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고민과 대안] 당 안에는 4-5개 다른 세대들이 공존하고 있다. 내 관심사는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속칭 386세대 (*80년대 광주항쟁 세대의 정신은 이제 많이 퇴색되었지만)들을 흉내내지 않고, 70년대,80년대,90년대 리버럴리스트 정부의 출발점인 김영삼 정부 이후는, 그 이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부와는 차이가 난다. 그리고 또 그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15년은 그 내부에서 분화가 또 발생한다. 이러한 정치적 경험의 차이를 고려해서, 좌파 정치가를 어떻게 집단적으로 부각시킬 것인가? 이다.


2. 박은지의 인터뷰와 그 내용에서 향후 토론주제로 뽑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통합진보당, 혹은 NL 로 불리는 운동권들이 한국 진보진영에서 영향력을 어떻게 왜 행사해왔는가? 의미와 한계는 무엇인가? 이런 주제일 것이다.


먼저 하나 바로 잡고자 한다. 통합진보당 ‘내란 사건’ ‘종북몰이’ 사건이후, 김종철 전 부대표와 박은지 부대표가 모 종편방송에서 출연했다. 박은지부대표가 NL의 약자를 National Liberty (민족/국민 자유)라고 했는데, NL은 NLPDR의 약자로 (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민족해방 민중민주혁명)의 준말이다.


언론에서도 그리고 많은 운동권들이 잘못 알고 있는 PD 역시, NLPDR이다. 신신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PD중의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NL,PD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패러다임들도 있고, 이 둘의 차이점만 부각되었지만, 공통적인 이론적 실천적인 약점들과 한계가 존재한다.


NL이나 PD 문건이나 그 이론은 완성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두 패러다임은 ‘사회주의로 이행과정’, 그리고 비-자본주의로의 발전 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것인데, 89년~91년 사이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급속하게 대중적 파급력을 잃게 된다. 80년대말, 90년대 초에도 이미 NL, PD론 (둘다 NLPDR -> socialism 사회주의로 이행)의 한계는 지적되었다. 이게 2004년 민주노동당 10석 이후 다시 대중에게 소개된 것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과거 사회구성체 논쟁이 언론에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혹은 북한 정치변혁 경험들을 근거로 만들어진 NL,PD론은 구체적인 정치,사회,경제적인 예증이 부족한 채, 그 사회구성체 논쟁이 시들어졌다. 주사파 NL은 식민지 반봉건론, PD는 라틴아메리카-소련 내부 논쟁들을 바탕으로 ‘종속 강화’ ‘독점 심화’라는 테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두 패러다임은 한국 자본주의, 한국 지배 계급 등의 구체적인 변화과정을 설명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두 패러다임의 한계,그리고 사회과학 방법론으로서도 천박한 이론적 토대에도 불구하고, ‘종속’문제와 그 변화,한국 자본주의의 자본축적 구조 등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종속' 개념으로 삼성 자본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초국적 자본비율의 문제나 지배권 등을 설명할 수 있는가? 등 


(NL)PDR 은 사회주의로 이행 (transition)이라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학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정치적 주체 문제를 조악하게 조야하게 “계급,계층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NL, PD 두 패러다임 공통적으로 한국자본주의의 ‘분화 differentiation'에 대해서는 설명해내지 못했다. 사회과학적 설명 용어와 방법론으로서 부적합하거나, 패러다임의 하드 코어에 문제가 생겼다.


이 이야기는, 80년대 말 90년대 초 이야기이다.


그 당시도 그 이후에도, 한국 자본주의 분화와 정치-경제의 관계, 한국 노동자 계급의 의식의 발전과 분화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보고서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NL이건 PD건 정치세력을 앞세워, 이론과 실천적 조사를 바탕으로 자기 패러다임을 혁신해야 하는데, 정치 세력들이 그 ‘이론적 작업’과 ‘실제 연구 조사’를 대신했다. 신념으로 버틴 점은 존경해야 하나, 현실 정치에서 무딘 창으로 버티는 것은 백전백패를 자초한다.


3. 주제를 조금 바꿔서, 그렇다면 왜 NLPDR 혹은 NL 그룹이 한국 운동권의 다수가 되었는가?


이것은 수많은 설명들이 있을 수 있어서, 학생운동사 맥락에서 한 가지만 짚고 다음 기회에 논의하기로 하겠다. 아직까지 한국 학생운동에 대해서 제대로 된 연구는 많지 않다. 부끄러운 현실이고 한국 학계 자체가 ‘사회과학’ 학파가 없다는 게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는 예를들어 광주 518, 87년 6월항쟁, 7-8월 노동자 대투쟁, 노무현 현상 연구, 민주노동당의 성공과 실패 등에 대해서 박사학위를 써서 교수가 된다. 한국에 이러한 연구가 없다는 게 아니다.


87년 충남대에서 결성된 ‘전대협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의 영향과 전국 대학으로 NL 그룹의 확장이 그 다수파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들 중에 하나다. 그리고 87년 대선 이후, 노태우 정권 하에서 학생운동은 ‘제도화’의 길을 가고, 소위 말해서 ‘학생회의 대중화’, 이것은 전두환 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을 초래한다. 학생운동권의 제도적 권력 (institutional power)가 학생사회에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 대학생 운동을 한 사람들과 한번 대화를 해보라, 그들은 학번 차이를 대면서, ‘내 때는 더 엄혹했다’고 하거나, 전두환 시절에 투쟁했던 세대와 노태우 정권 하에서 투쟁했던 세대들 사이에 경험 차이 등등...


(전대협의 결성은 학생사회에서 제도적 권력이 형성된 계기를 마련해줬다. 반파쇼 정치 투쟁의 운동가들이 학생회라는 제도적 기구들을 운영해 나가는 정치적 출발점이었다) 



전 세계 정당사, 사회주의운동사, 식민지에서 해방운동사, 인종차별 운동 등, 정치적 행위는 ‘가장 사회과학적으로 정교하고 올바른’ 그런 노선이 반드시 주류를 형성하는 게 아니다.


돌이켜보라 ! 박종철의 죽음, 이한열의 죽음, 그들의 나이가 만으로 치면 20세,21세가 아니었던가? 지금 우리 당원들 중에는 아들 딸 중에, 조카들 중에, 동생들 중에 이 나이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한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거리던 시절이 1980년대 전두환 정권 하에 일이다. 학생운동권에서 ‘이론의 정교함’ 보다는, 실제 ‘행동과 반-파쇼 집단 학살집단에 대한 직접적인 물리적인 투쟁’ 자체가 사회과학이었다.


학생운동은 1988년 노태우 정권이 수립된 이후에도, 합법적으로 당선이 된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치적 ‘정당성’과 ‘윤리성’의 우위를 여전히 주장하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합법성 legality'의 획득과 ’정당성 legitimacy'사이의 충돌이었다. NL이건 PD건 ND건 이 합법성 측면보다는 후자, 노태우 역시 광주학살의 원흉이자 파쇼의 연장으로 파악하고 그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6공화국 하에서 학생운동은 전두환 파쇼와 비교해서, 학교에서 자유 선거를 통한 ‘학생회’라는 ‘제도적 권력’을 가지고 되었는데, 왜 NL 그룹이 가장 ‘다수’가 되었는가? 앞으로도 더 연구해야 할 지점이 이 두 가지 상관관계이다.


민족주의적 경향 (일제의 잔재청산, 미국 제국주의의 발견 : 88년 올림픽에서 관중들이 소련을 응원하고 미국 성조기에 야유보내는 반-미국 정서 anti-American sentiment), 소위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품성론, 항일 유격대식 대중노선 등은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하나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NL, PD를 ‘사회주의적 지향과 정향 orientation' 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6공화국 노태우 정부 시절에, 이 학생집단의 제도적 권력이 누린 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치 실천, 다시 말해서, 전두환 폭압에 누리지 못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였다. 실제 그 운동 주체들이 사회주의적 지향 (NLPDR은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사노맹으로 표현된 ND 역시 2단계 혁명론이지만, 사회주의 이행론이다) 을 했고, 또 학생운동 뿐만 아니라, 학생사회 외부와 연계를 맺었기 했지만, 학생사회 내부 정치에서 ‘제도적 권력’ 사용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였다.


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지지세력의 주축이 되거나, 실제 정치가되어서도, 이러한 학생사회의 ‘제도적 권력’의 경험을 그대로 실천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대중적 동원능력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사회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 내용의 빈곤’을 ‘제도적 권력’으로 대신한다.


그렇다면 6공화국 노태우 정부 하에서 전대협을 비롯한 nl 다수파 (주사파를 포함), pD, ND등은 위에서 말한 노태우 정부와 전두환 정부의 ‘통치’차이를 인식하고 ‘합법성’과‘정당성’ 사이의 긴장을 꿰둟어내는 정치 전략을 만들었는가?


89년 몰타 회담 (고르바초프와 조지 부시의 회담)으로 인해 얄타체제 (냉전 체제)의 해체부터 91년 사이에 벌어진 국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등이 미치는 정치적 영향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거나 설명하거나 이에 맞는 정치적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냈는가?


91년 강경대 타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민민운 (민족민주운동이라고 약칭)의 위기론이 한창 논의되고, 사회주의 대 사민주의 논쟁이 발생하던 시점에, 이에 대한 답변을 했는가?


사실 그 당시 우리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질문들과 과제들은 당시 학생운동가들의 지적 실천적 범위를 뛰어넘는 문제였고, 당시 한국 지식계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이 문제들을 정치적 담론으로 여론화 대중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 박은지 부대표가 말한 주체사상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그 힘을 긍정하는 사상”에 대해서

- 소련식 교과서는 마르크스에 대한 왜곡이었다.

- 소련식 교과서를 극복했다는 주체사상은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굳이 주체사상만이 아니라, ‘창조 Creativity' 를 강조하는 사람들, 박정희의 교육헌장과 ’하면 된다‘는 정신, 혹은 안철수식 ’창조적 혁신‘, 박근혜의 ’창조 경제‘ 모두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그 힘을 긍정하는 사상‘이라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같다.


물론 북한의 주체사상은 “계급과 민족” 패러다임인데, 왜 주체사상을 박정희, 안철수, 박근혜와 동급으로 놓느냐고 항변할 것 같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근거 자체가 오류다. 주체사상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의식의 관계 ( matter-consciousness relations)로 설정했다. 그런데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물질’과 ‘의식’관계에서, ‘물질이 의식보다 선차적이고 우위를 갖는다. 이러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물질의 의식에 대한 선차성 (priority)은 인간의주체성, ‘인간의 주체적 파워, 힘과 능력’의 중요성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럴싸하다. 몇 년전에, 미국 최장집-박상훈 등을 따르는 연구자들이 정치의 선차성 (the primacy of politics: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를 쓴 미국 비교정치학 교수 쉐리 버먼(Sheri Berman) 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좌파 운동권들이 ‘정치’를 모른다고 야단쳤을 때, 그 ‘선차성’ 개념과 위 선차성 개념은 동일한 말이다.


주체사상을 서술했다는 황장엽의 이론적 깊이의 한계이기도 하고, 정보 수집의 한계이기도 하다.


사실 주체사상이 말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교과서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만들어낸 검인정 교과서로서, 그 기원은 부하린의 공산주의의 ABC, 그 이후 스탈린의 역사적 유물론 테제 등에 있다. 이는 나중에 설명하겠음)에서 말하는 ‘물질’과 ‘의식’ 관계가 철학의 근본문제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주체사상이 ‘물질-의식’ 대립항이 아니라, ‘세계-인간’으로 근본문제를 전환시켜,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주체성 (subjectivity)를 해결했다고 하는 것은, 이중의 오류이다. 첫 번째는 소련 사회과학 검인정 교과서 (공산당 명령을 따르는 연구소)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 ‘물질’ -‘의식’이 철학의 근본문제라고 못박아놓고,


두 번째는, ‘물질’ -‘의식’ 대립항이 풀지 못한 퍼즐과 난관 수수께기를 ‘세계-인간’ 대립항이 풀었다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자화자찬격이다. 세계에 대해서 인간의 주체성 즉, 의식성, 창조성,자주성을 더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체사상 답변이 잘못된 문제설정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답 (물론 오답이지만)은 될 수 있겠지만,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답변이 되기에는 불충분하다. 철학적 체계로 인정할 수 있지만, 수많은 증명부담들을 안고 있다. 철학에서 다루는 수백가지 테마들을 이 인간-세계 대립항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자본주의의 변화와 역동성, 그 축적 구조를 어떻게 설명가능하단 말인가? 자기들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와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중요한 사회과학적 주제들을 인간-세계 대립항으로 진단도, 해결도 할 수 없다. 




(1940 년 조제프 스탈린이 서술했다는 :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 교과서: 마르크스에 대한 선택적 이해와 왜곡의 공식적 출발점이 된 책이다. 1980년대 한국에 소개된 마르크스 입문서, 철학개론은 대부분 이 스탈린의 기본골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DIA-MAT의 효시이자, 마르크스 사상의 박제화 왜곡의 공식화 선언이었다)


이 주체성 (subjectivity) 문제는 제 2 인터내셔널 이후, 마르크스에 대한 혹은 사회주의자 내부에서 논쟁된 ‘경제 결정론 economic determinism'에 대한 문제제기로, 당시 중요한 주제였다. 


그런데 80년대말, 90년대 초, 한국에 소개되고 번역된 마르크스 입문서, 넓게 봐서 사회주의체제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 교과서들은, 대부분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나 동독, 중국, 주사파 NL의 경우는 평양에서 출간된 교과서들이었다. 이건 NL이건, PD건, ND건, 과학적 사회주의자건 다 마찬가지로 안고 있었던 한계였다.


학생운동권, 노동운동가들의 헌신적인 정치적 실천, 분신까지 포함한 그 숭고한 정치적 투쟁들과, 이론 사이에는, 이러한 엄청난 문화적 지적 간극이 있었다. 그것은 2014년 1월 현재 평가가 아니라, 25년 전 이야기이다.


25년, 아니 길게 잡아 30여년이 흘렀다. 한 세대가 바뀌었다. 한국 전쟁이 미친 지식인 사회, 이론가 사회, 좌파 정치권 사회, 학생운동가, 시민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진보정당, 좌파정당...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이다.


자기들 스스로 학파를 만들어서, 지식노동이건 육체노동이건 그 무슨 노동이건간에, 학파를 형성해서, 코리아라는 한국 현실 (social reality)을 사회,사람,사회구조,의식 등을 설명하고 연구하는 사회인식론(social epistemology)를 갖추기도 전에, 90년대 긴 암흑기가 있었고,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97년 IMF 긴축통치로 한국은 운없게도 세계에서 최단시간에 가장 살벌한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체제를, 80년대 민주화 세력 (김대중정당과 80년대 학생운동권 주류파)이 그 악날한 반-민중적 반-노동자적 어메리칸 스탠다드 자본주의를 실천해버렸다.


사람들은 자기 정치적 정당성 때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 정치적 방법론, 조직론, 이론적 정당화 등에 대해서 게을리 한다. 왜냐하면 현실정치는 늘 나보다 우리보다 더 나쁜 세력이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늘 음모를 꾸미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때문이다.


정치는 늘 실천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구는 9회로 끝나지만, 정치세계는 쉼없는 연장전이다. 9회 이후에 ‘이론’으로 야구하나? 정신력으로 버틴다. 제한된 숫자 선수들로 버티는 것이다. 그것이 늘 정치적 현실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현실에서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현실을 설명할 인식론을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돌직구 하나로 승부하는 투수보다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장착하고 돌직구를 가진 투수가 실제 경기에서 이기니까.


(1922년 경, 부하린 Buhkarin 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소련 대중들을 위해 서술한 공산주의의 abc : 마르크스 엥겔스 책들이 노동자 해방의 성전으로 격상화되기 시작했다.

 )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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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학교 평가의 논

    2014.04.15 01:50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냥 NL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건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라는 학생회중심의 학생운동을 했다는점으로보고 PD는 직업적 혁명가의 길을 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학생회중심의 운동이 다수를 차지하기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편협하게나마 듭니다만.. 뭐 주사파 논쟁은 논외로 하는것이 맞을것 같고.. 하다보면.. 한국운동권에 주사파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되어지니까요..

    그냥 지나가다 코맨트 남깁니다.

    2018.02.14 14:48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철학2012. 7. 28. 14:26

뚜비/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 하나마나한 소리




원시

http://www.newjinbo.org/xe/223943



2009.05.18 15:20:55499



뚜비님, 뚜비님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그 존재가 뚜비님 의식을 결정하고 있는 것 3가지만 예를 들어보고, 반대 사례 3가지를 한번 들어보세요. (꼭 뚜비님이 아니더라도 다른 당원들도 도움을 주세요)



맑스가 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했을까요? bestimmen (condition 조건짓다 /determine 규정/결정하다로 번역하자고 논쟁하던 때도 있었는데요)이라는 말을 왜 했을까요? 그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 맑스의 비판 대상은 청년 헤겔학파 (브로노 바우어 형제들), 막스 쉬트리너, 포이에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 내용을 맑스는 상당부분 수용하지만, 정치적 방식에서는 포이에르바흐를 비판함) 등 독일 청년헤겔학파들입니다. 


그래서 1845-46년에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쓰게 되고, 아래 뚜비님이 인용한 대목처럼, 맑스가 파악한 "의식" 이 의식 "Bewusstsein"은 헤겔의 "이념 Idee"과 절대정신의 아류나 다름없다고 보고, 청년헤겔파의 세계관 역시 헤겔의 세계관을 반복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브루노 바우어와는 정치적 입장이 갈리는데, 노동자계급의 역할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고, 지식인들을 사회 변화 주체로 파악한 브르노 바우어, 이에 비해서 맑스는 독일의 브르조아 혁명+사회 변혁 역시 노동자계급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아나키똘중님이 쓴 "맑스는 삶의 방식(경제생활)이라는 하부구조 의해 상부구조(정치, 철학, 예술 등)가 결정지워지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내세웠고," 여기에서


1) 변증법적 유물론 =>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입장으로 고쳐야 하고요,

2) 내가 이야기한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건 사적 유물론이건, 이것들은 DIAMAT라고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만들어낸 "맑스"다 라는 것입니다.


이거 다 불태워버린 죽은 교과서들인데. 소위 학회나 써클에서 이 책들을 읽지 말고, 직접 맑스 책을 읽을 것을 권유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저 책이 문제가 되는게, 맑스의 유의미한 내용이나 방법론 자체를 너무 단순화하거나 왜곡시켰기 때문입니다. 


저 책이 철학의 기본문제를 "존재"와 "의식"으로 설정합니다. 그런데 철학의 기본문제들은 수없이 많지, 왜 하필이면 "존재"와 "의식"과의 관계를 설정해서,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면 맑스주의 (사회주의)자, 그거 인정하지 않으면 부르조아 철학자, 이렇게 이분법을 가르쳤을까? 이것 자체가 오류라는 것입니다. 


맑스가 왜 "의식"을 "있음, 있는 것, ____임, 혹은 존재 Sein"이라는 것과 연결시켰고, 왜 철학적으로 문제를 삼았고, 누굴 비판했는가? 그것을 역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844년에 쓴 [신성가족] 제 6장을 한번 참고하세요. 맑스가 "의식"과 "존재"와의 관계를 왜 역사적으로 문제삼았는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890년에 엥겔스가 쉬미트에게 보낸 편지 (아래 참고)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90/letters/90_08_05.htm


엥겔스가 당대 유물론자들, 맑스를 신봉한다는 젊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인데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맑스의 말을 역사적 맥락,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맥락이나 연구없이 기계적으로 외우고 암송하지 말라는 기본 취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거 대학교 1학년들 학회에서 맑스 철학/경제학/정치학/사회학 입문하는 신입생들에게 추천하던 글이었는데요. 


뚜비님이 언급하는 네오 맑스주의자들 누구를 말씀하시는가요? 


마지막 심급 (재판정에서 최종 심급, 대법원에서 3심처럼, 마지막 평결이라는 뜻: letzte Instanz)라는 단어를 헤겔이 절대정신이나 이념 설명하면서 어디선가 썼는데요, 


이것을 맑스주의자들이 "존재 (혹은 경제 등 하부구조)"가 "마지막 심급"에서는 "의식"을 결정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프랑스 사뜨르트가 "게으른 맑스주의자들 Lazy Marxist"라고 "방법 탐구 Search for Method"라는 책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네오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들은 수없이 많은데요.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요? 


우선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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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비판적 방법을 단순화시킨 도식은 다음과 같다. 







뚜비

원시//

Es ist nicht das Bewußtsein der Menschen, das ihr Sein, sondern umgekehrt ihr gesellschaftliches Sein, das ihr Bewußtsein bestimmt.

또는

It is not the consciousness of men that determines their existence, but their social existence that determines their consciousness.

또는

사람들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사람들의 의식이 아니고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


맑스는 삶의 방식(경제생활)이라는 하부구조 의해 상부구조(정치, 철학, 예술 등)가 졀정지워지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내세웠고,

=> 맑스가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변증법적 유물론 dialectical materialism 이라는 말은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공식적으로 쓴 말인데요

-----> 맑스는 삶의 방식(경제생활)이라는 하부구조 의해 상부구조(정치, 철학, 예술 등)가 졀정지워지는 <경제결정론>을 내세웠고.. 로 수정하면 되겠네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이것을 맑스의 기본 아이디어로 놓은 것 자체가 오류죠.

------> 맑스를 경전으로 읽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네오맑시즘 학자들이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ㅡㅡ;


엥겔스 역시 경제결정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중에 맑스의 토대의 일방적 상부구조 결정론을 상당히 완화시켜서 상부구조도 다른 사회구성 요소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맑스를 변호했지요. 이러한 엥겔스를 맑스를 경전으로 읽는 사람들은 비판을 했는데, 그렇다면 원시님 말대로라면 엥겔스도 오류를 범하고 있고, 그 오류에 대해서 또 사람들은 오류를 주장하는? ㅡㅡ;



-원시


아나키 똘중님/ 가려던 참이었는데요. 아니요, 아까 그 쓰신 글은 좋았습니다.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설명을 서로 도와가면서 하면 된다고 봅니다. 다만, 정보 차원에서 제가 지적한 것이 있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이렇게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지금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 맨큐 (조지 부시 정책 조언그룹)가 쓴 경제학 교과서...이런 거랑 다름없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죠. 


맑스가 자본 서두에서 "내 변증법적 방법은 헤겔의 방법과 다를 뿐더러,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면서 dialektische 라는 말을 씁니다.


 저는 아직까지 맑스 책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만나면 다시 알려드릴께요. 영어로 dialectic 이 말을 변증법적 이렇게 번역을 해서 굉장히 어렵게...느껴지는데요. 어원을 보면 dia (between :사이, 누구 누구 사이 이런 뜻) + legein : talk 말하다) 이런 뜻입니다. 아테네에서 디아렉티케 dialektike 는 아시는 대로,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해서, 상대방을 거꾸러뜨리는 "말하기 방법/기술"을 의미합니다.


 헤겔에 와서, 잘 알려진 대로, "정 These 테제 (명제나 문장 형식)" "반 anti-These" "합 Sys-These" 3각 구도로 사물, 사회, 의식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헤겔에서는 "이념"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방식이 이 3각 구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은, 물론 요새는 대중적으로 관심이 없고, 한국 학계에서는 맑스를 아예 가르치는 곳이 없을 정도니까요, 큰 문제이긴 한데요, 우선 한국에 잘못 이해된 맑스의 본래 정신이나 방법론부터 바로 잡는 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말씀드린 것이오니 이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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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주체사상이 철학적으로 깊이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철학의 기본문제가 "존재"와 "의식"에 있다. 그런데 맑스-레닌주의 (이렇게 - 으로 두개 붙이는 것도 문제지만)는 이 철학의 기본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 다음 주체사상은 "사람 중심"으로 이 둘 사이의 관계를 풀었다.


 잘못된 물음 - 소련 사회과학아카데미에서 발행한 맑스-레닌주의 교과서 (박정희/전두환 시절 국민윤리 반공교과서 반대 사례라고 봐도 무방함. 그 기능적인 측면에서: 청산주의 운운하지 말고요) 비판으로 주체사상의 자기 우월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물음 자체가 앙상한데, 그 앙상한 물음을 던져놓고 철학의 기본문제들을 해결했다고 선포하는 게, 인간사를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죠. 진보신당에 똑똑한 전업주부 당원들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주로 하는 노동은, 아이들 돌보기, 집안 가사 노동, 그리고 독서 및 사회참여입니다. 이들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니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개념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철학, 정치학의 의미는, "의식"과 "개념", 개념과 현실사이의 내용 간극이 있나 없나를 모든 사회과학적 방법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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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이꾸

[철학, 정치학의 의미는, "의식"과 "개념", 개념과 현실사이의 내용 간극이 있나 없나를 모든 사회과학적 방법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짝!짝!짝!...완전공감 입니다. 그 고민과 연구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 늘 살아있는 팔닥거림으로 관계와 내용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더군요. 철학과 연구를 떠나서 일상의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도 그 문제와 해결점에 대한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늘 머리를 말랑말랑하게...감각의 촉수는 예민하게..마음은 멋있고 착하게..^^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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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손찬송님/ 1차적이다. 2차적이다? 그 판단 기준들을 고려해서, 현실에서 한번 그 사례들을 들어보세요. 지금 맑스 이야기는 다 아는 이야기니까요. 손찬송님부터... 그리고, 우리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착취당하고 임금도 적게 받는 노동자들이 한나라당 MB를 찍고, 박근혜를 찬양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하는 것 아닌가요? 그럼 한국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1차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제를 이렇게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거 꼭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책을 읽고, 맑스 책 읽어야 던질 수 있는 질문입니까? 서구 유럽 2차 대전 전후로, 속칭 좌파들이 던진 3가지 질문들이 있습니다.



 1. 왜 서구 유럽 노동자들이 공산당에 투표하지 않고, 오히려 개량적인 사회민주당에 더 투표를 많이 하는가? 독일의 경우는 더 비참하게 노동자들이 나치 당을 지지했는가?



 2.왜 노동자들 혁명은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가 많은 유럽 대륙이나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고, 후진 국가였던 러시아, 중국에서 일어났는가? (중국은 마오 주도로 농민 혁명에 가까움) 



3. 노동자들 계급들이 왜 애국주의에 앞장서고, 국제연대의 깃발은 들지 않았는가? 1939년 당시, 소련과 독일 히틀러 사이의 "상호 불가침 협정" - 몰로토프-리번트로프 협정 (the Molotov-Ribbentrop Pact)은 당시 유럽 좌파 지식인들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스탈린 군대가 스페인 다국적 군대를 까부신 것도 문제가 되었습니다만 (이를 잘 다룬 영화가 "Land and freedom 토지와 자유?" 일 것입니다. 



저도 아직까지 맑스 책을 베고 낮잠 자지만, 맑스가 이런 말 저런 말 했다는 것만 외우는 것은 맑스에 대한 예우도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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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찬송


원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규정하는 물질은 자신의 임금아닐까요. 살림살이죠. 그 임금이라는 물질을 늘리기 위해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 더 낫기때문에 선택을 했고, 그렇지 않은 우리들은 진보신당을 찍지 않았나요. 그 임금을 이명박이나 한나랑당을 찍은 노동자들은 임금이라는 물질을 왜곡한것이고, 적어도 진보신당을 찍은 사람들은 먼 훗날 노댕의 댓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에서 찍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물질이라는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의 능동성들...즉 물질을 왜곡하지 않고 물질의 본질을 찾아가는 노력들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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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비

일단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이것을 동의하냐 못하냐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맑스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했다>고 말한것은 아니다라고 원시님께서 말하셨습니다. 저는 맑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말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맑스가 강조했던 것은 사회에 대한 어떤 존재론적인 이해가 아니라 경제구조(토대)가 사회진화에서 차지하던 주도적인 역할이었다는 것입니다.



 네오맑스주의자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에 수정을 가한 학자들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맑스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머 할말이 없죠.. 네오맑스주의자는 상부구조가 무조건 토대를 통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닌 상부구조(정치, 이념, 교육 등등)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독자적으로도 변형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앞에 나왔던 그람시도 그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문화적 재생산론을 이야기한 부르디외, 문화적 헤게모니를 이야기하는 애플도 그러하지요. 또 상호작용을 이야기하는 하버머스도 네오맑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 퇴근해요 내일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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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손찬송/ 그러면 월급 많이 받는 노동자는 "사장님" 의식을 가질 확률이 높겠네요?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는, 월급이나 물질로 설명이 됩니까? 그들이 500년 이후에, 진보신당 찍을까요? 박근혜 신화가 없어지고 난 이후에, 500년 후에 선덕여왕 재림하면 어떡해요? 퀴즈 같지만, "물질"과 "박근혜" 사이 간극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요? 어떤 방법이 있어야할 것인데요? 교량, 매개자, 다리 같은 거... 물질 본질 이런거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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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어떤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소외되고 가난을 뿌리칠 수 없는 노동에 신물이 나서 어떻게 든 돈을 벌어 그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 의식을 갖고 그런 의식을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말이죠. 보통, 노동계급 의식성으로 설명한다면 노동과 자본의 화해 불가능성과 투쟁,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이런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맞겠죠. 근데 이 노동자는 자수성가하여 자본가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자본가 의식을 현실화시켜서 자본가가 된 것이죠. 이런 예로 볼 때, 의식이 충분히 그리고 현실 속에서 계급(존재)를 규정했다고 볼 수 있죠. 인간의 의식이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존재와 의식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존재(계급적 처지)가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다고 볼 수는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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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찬송



원시/ 물질(인간의 의식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일차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시나요. 원시님도 저에게 하나의 물질입니다. 저 또한 원시님에겐 하나의 물질이지요. 위에서 제가 예로 든 것은 민중의 대다수가 먹구 사는 문제를 가장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조건에서입니다. 사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질을 왜곡하는 의식의 능동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회제현상은 수학공식 떨어지듯이 딱 떨어지진 않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죠. 있다면 상대적이라는 것이죠. 물질이 일차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단 신이 없다라는 전제조건에서...상대적이라는 것이죠... 이윤율 저하의 법칙에 경향이라는 단어를 굳이 넣은 이유가 뭘까요. 



사회제현상을 설명할 때 산수계산하듯이 답이 딱 안 나오기 때문아닐까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저하 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물질적 조건들을 학술운동의 몫으로 남는 것이고요. 그냥 유물론이 일하는 사람들의 철학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아직까지....그 이윤율 저하고 곧 자본주의 붕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먼미래는 모르겠지만.... 댓글이 길어져 넘 힘들다.... 아이구 힘들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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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철이님/ 등장하시어...못가네요... 존재/의식 문제는 실은 독일 계몽주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an sich 잠재적으로, 잠재태로...가능태로..., 주관적으로, 혹은 있는 그대로 "노동자" fuer sich 독립적으로, 자립적으로, 객관적으로 "노동자" an und fuer sich "노동자" : 절대적으로, 개념과 현실이 일치된 "노동자" 맑스의 사유 역시, 이러한 칸트나 헤겔의 사유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이를 정치적으로 발달시킨 사람이 루카치 Lukacs 입니다. 노동자계급이 역사진보의 주체이다.



 그러나 이는 증명해야 할 구체적인 사실들이 너무 많죠? 역사진보의 주체가 아닌 반례들이 많으니까요. 루카치의 이론, 총체성들은 나중에 공격받고 비판거리가 됩니다. 맑스는 헤겔과 달리, 중산층이나 공무원, 교양있는 지식인들이 독일 공화국의 주춧돌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동자계급이 an und fuer sich 변혁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정치 사회 이론들을 제시했으니까요. 전 이것으로도 엄청난 기여라고 봅니다만. 



맑스 어머니/ 삼촌이 맑스가 영국에서 가난에 찌들 때 조금 더 경제적으로 도와줬으면 조금 더 오래 살았을텐데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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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물질(인간의 의식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일차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시나요. =>손찬송님, 저도 한국서 생물, 지구과학, 물리, 화학 정규과정을 마친 현대인입니다. 물은 H2O 죠. 그러나, 철학 인식론에서는 손찬송님처럼 답변하면, 조야론 실재론자 crude realism 신봉자죠. 소위 거울이론이라고 mirror (물질 - 의식에서 반영이론이라고 해요) 손찬송님이 낭떠러지에 섰다는 생각만을 했는데, 손찬송님 손바닥에 땀이 생겼어요.(오줌은 싼 것은 아니고, 땀이 저절로 생겼어요) 그럼 의식 (내가 낭떠러지에 서 있다는 생각)이 존재 (손바닥 땀)를 규정하지 않았나요? 이런 말장난 같은 퀴즈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저하된다? 그것의 정치적 의미가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맑스도 이윤율 저하경향을 상쇄하는 반대 사례들과 조건들을 제시하지 않았나요? 이윤율 (s' = s/v) 이것 증가 속도가 c/v 증가속도보다 더 빠를 수도 있는 때와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윤율은 증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 회전율 역시 중요한 변수이고요. 광고자본 왜 합니까? 자본 회전을 빠른 속도로 하기 위해서죠? 그래야 자본축적이 잘 되니까요.



 상품을 시장에서 현실화해서 이윤량을 최대로 해야 하니까요. 유물론 안믿는 천주교 신자들, 불교 신자들, 기독교 신자들도 일하는 사람들 편에 서는 경우도 많고요. 유물론을...너무 윤리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현대 과학교육 받은 사람은 어지간하면 다 유물론...상식으로 받아들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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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원시님, 엥겔스는 돈이 떨어졌는갑 보죠. 아님, 둘이 싸웠다든가... 저는 아직 잉여가치설로 머리 싸매고 있습니다. 제 처지가 연속적인 고민, 연구, 글쓰기가 가능하지 않아서 늘어지고 있는데요... 곧 또 다른 글 올릴려구요. 그때 또 맨트 날려주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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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사


손찬송/ 질문여... 의식을 제외한 물질이란게 뭐죠? 의식은 물질과 존재방식이 다른가요? 심리철학 개론서들에 따르면 데카르트 이원론은 경쟁에서 탈락했고, 속성이원론도 부수현상설 같은 것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던데요. 결국 일원론적으로 본다면 정신이란게 의식이란게 물질과 같거나 아니면 기능 같은 것일텐데요. 굳이 표현하자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여하간 마르크스주의에서 으식, 물질 선차성을 가리는데 그때의 의식과 그때의 물질이 무엇을 지칭하는 건가요? 시중에 떠도는 ㅎㅎ 소련 혹은 중국 교과서 같은 걸 보긴 했습니다만 당최 뭔소린지 모르겠네요. 고견 부탁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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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찬송



원시/ 낭떠러지라는 물질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해야만 그게 가능하죠. 그 인식은 영화나 아니면 직접가서 낭떠러지를 인식했을 때.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것의 학습효과가 있어야지여. 그래야 연상을 할 것 아닙니까요. 고로 낭떠러지라는 물질이 일차적이고, 그것을 뇌를 통해 인식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상상을 하여, 손이라는 물질에 땀이 나게 하는 것입니다. 



낭떠러지, 생각, 땀이라는 연관을 함께 봐야지요. 닭이냐 알이냐의 논쟁은 진화론적의 관점에서 알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생각할 수 있다라는 말장난은요? 어짜피 결론은 없습니다. 다만 주어진 조건에 맞게 현실에서 물질이 먼저인지 의식이 먼저인지 각자 검증해 내는 방법밖에...아니면 물질과 의식의 일차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도 각자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내가 유물론자라고 해서 종교가진 당원들한데 때려치라고 그러하지 않잖아요. 저를 제외한 울 가족 모두 기독교 신자입니다. 울 마나님은 천주교이구요. 저도 한때 묻지만 기독교인이었고요. 그들과 소통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유물론을 윤리적으로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삶의 세계관으로 생각합니다. 늘 의심하면서 부정하면서 말입니다. 윤리는 그런거 않죠. 유물론을 상식으로 생각하고 대다수가 살아간다구요. 글쎄요? 수천년의 철학사 논쟁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물질의 일차성 논쟁을 대부분 사람들이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도 모르겠는데요. 자칭 유물론자라고 주장하더라도.... 정보도사/ 저보다 많이 아실것 같은데요...저도 공부중이라...댓글에 단것 외에는...답변하기가 좀 어렵네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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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책



이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르크스의 사상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마구 솟구칩니다. 어떤 사회과학 세미나보다 재미있군요.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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