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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동6

마지막 목격자’ 마틴,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부친 ‘위로’ 마지막 목격자’ 마틴,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부친 ‘위로’ 등록 :2016-05-25 15:03수정 :2016-05-25 22:34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45369.html ‘마지막 목격자’ 마틴,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부친 ‘위로’ 80년 5월 도청 인터뷰 인연 생가 방문 윤석동씨와 재회 www.hani.co.kr 지난 18일 광주에서 5·18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가운데 휠체어 탄 이)씨와 5·18을 취재해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기자들’이 만났다. 오른쪽 두번째부터 윤상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던 브래들리 마틴 기자, 도널드 커크 전 기자, 노먼 소프 전 기자. 유족 제공 80년 5월 도청 인터뷰 인연 생가 방문 윤석동.. 2019. 5. 17.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생가를 찾아서 자료 : 윤상원 열사 곁에 새겨진 총과 밥, 그 의미는 의 주인공,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생가를 찾아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5698 18.05.14 15:53l최종 업데이트 18.05.14 15:53l 글: 임영열(youngim1473)편집: 김지현(diediedie) 무등산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히 감싸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모습▲ 무등산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히 감싸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모습ⓒ 임영열관련사진보기 무등산(無等山)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히 감싸고 있는 도시, 빛고을 광주에 오월이 다시 왔다. '광주의 오월'은 여느 도시처럼 라일락 향기 짙어가고 산천은 연한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빛의 도시.. 2019. 5. 17.
[518광주] 윤상원 선생 아버지와 대화 2004-05-14 [518광주] 윤상원 선생 아버지, 윤석동 옹 인터뷰 글쓴이 : 원시 등록일 : 2004-05-14 17:03:45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없어지기도 하고, 잊어먹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삶의 의지의 끈을 놓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어쩌면 포기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죽음과 생의 사멸을 스스로 선택하고 거기에 ‘의지’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그래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이 자연스런 현상은 아니다. 아직도 의문이다. 왜 윤상원은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철수하지 않았을까?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78세)님에게 물었다. 올해가 윤상원 선생이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올해 그럼 살아계시면 연세가 어떻게 되죠?” “쉰 다섯(55)인가? 쉰 여섯인가? 그럴.. 2018. 9. 5.
(인터뷰 자료 518광주항쟁 ) 윤상원 부친, 윤석동 옹이 본 윤상원 [518광주] 윤상원 선생 아버지와 대화 : 원시 등록일 : 2004-05-14 17:03:45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없어지기도 하고, 잊어먹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삶의 의지의 끈을 놓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어쩌면 포기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죽음과 생의 사멸을 스스로 선택하고 거기에 ‘의지’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그래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이 자연스런 현상은 아니다. 아직도 의문이다. 왜 윤상원은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철수하지 않았을까?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78세)님에게 물었다. 올해가 윤상원 선생이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올해 그럼 살아계시면 연세가 어떻게 되죠?” “쉰 다섯(55)인가? 쉰 여섯인가? 그럴 것입니다.” 옆에 .. 2013. 5. 16.
518 광주항쟁 윤상원 가족들과의 대화 - 1막의 종결과 새로운 창조의 시작점 디테일 민주-사회주의자들의 탄생을 위해. "지금 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았을까?" "변절해부렀을까?" 2010년 윤상원 열사 가족들 (아버지 윤석동 옹), 두 여동생, 남동생되는 분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대학시절 518광주 항쟁 다큐멘타리 인터뷰 자료를 만들다 맺은 인연이 있었다. 윤석동 옹을 방문했을 때, 그 분은 어린 우리들에게 찾아주셔서 고맙다고 중절모를 벗어 인사를 했다. 광주 임동에서 비빔밥을 얻어 먹고, 버스를 타고 광주 외곽 (당시는 광산군 임곡면 천동 마을이었다) 한적해 보이는 한 농촌 마을로 갔다. 윤상원 선생의 생가였다. 윤상원 열사 아버지 윤석동씨는 방 한개를 윤상원 열사 유품들을 모아놓은 곳을 만들어놓았다. 노문과 철학과 후배들과 함께 가족들 인터뷰에 들어갔다. 윤상원 선생 .. 2013. 5. 16.
임을 위한 행진곡 주인공 윤상원 부친, 윤석동 인터뷰 (2010년) 전화 인터뷰: 2010년 5월 18일 오전 8시 45분 (기록: 당원이 라디오/ 새로운 데모 연구회 http://cafe.daum.net/new-demo인터뷰 진행: 원시 ) 윤석동 (86세: 광주시민군 윤상원 대변인의 아버지: )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 첫번째는, 고 윤상원 광주 시민군 대변인 아버지 살아생전에, 그 아버지에게 기억된 윤상원 대변인의 모습을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광주 항쟁 당시, 도청 안에서, 광주 관련 신문을 읽고 있는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읽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두번째는 광주항쟁발발 30년이 지났고, 민주화운동 기념식도 총리/대통령이 하게 되고, 이제 시민군도 "폭도"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광.. 2013.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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