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2019. 10. 23. 08:21


September 25 at 11:24 PM · 


누군가의 손에 나의 정신을 놓고 갈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이건 마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구리'에 등장하는 주인공 H가 상상하면서 '아름다운 여인이 자기 목을 졸라 죽인다면 그것도 참 행복' 이라는 것만큼.


Jesus cried out in a loud voice, "Father ! In your hands I place my spirit!" he said this and died. (김삼환 목사 번역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너무 좋다)


Luke 23 The Death of Jesus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와 김하나 목사 부자는 예수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살아 생전에 아들에게 교회를 상속해줬다. '성경'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예수가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버지 나는 나의 정신을 당신 손에 놓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죽었다.




예수는 '정신'을 놓고 다음 세계로 가라고 했는데,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교회' 부동산을 자기 아들에게 물려줬다. 게다가 살아생전에..




종교야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들이고, 그 형태들은 달라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우리 말처럼, 이 유한한 인간 삶을 꿰뚫는 통찰을 보여준다.




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은 '아름다운 문학'으로 간주하고 읽어보는데, 명문들이 수두룩하다. 예수 멋쟁이~







관련기사:


https://www.youtube.com/watch?v=LSNFeRV-v7U



CBS 뉴스] '세습반대' 명성 교인들 분노..."이제는 교회를 떠나야 하나.."


65,750 views•Sep 27, 2019




[CBS 뉴스]  '세습반대' 명성 교인들 분노..."이제는 교회를 떠나야 하나.."


명성교회 문제 해결을 위한 수습안이 교단에서 통과되면서, 사실상 명성교회의 세습을 허용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무너진 한국교회의 신뢰를 쌓겠다던 교단 새 임원들의 기대와 달리, 교회와 사회의 더 큰 불신과 비판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 ‘세습 반대’ 명성교회 교인들 분노 “이제 교회 떠나야하나..”




“제 살을 도려내는 외과수술을 하듯이 법을 어긴 명성교회를 바르게 처리했다면, 그동안 비판해온 사회에서도 ‘아 한국교회가 아직 살아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이제 누가 한국교회를 믿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예장통합이라는 장자교단이에서 그것도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는데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예장통합총회가 ‘명성교회 수습안’을 발표한 지난 26일, 명성교회에 출석하는 한 교인의 말이다. 대화의 말미에 그는 이같이 덧붙였다.


“이제는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세습을 반대하는 명성교회 교인들은 분노했다.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법적 근거도 없고, 내부 조항간 서로 충돌되는 이 수습안은 존재 자체가 모순이며, 향후 교단에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왜 명성교회만 세습해도 되느냐 되물었다. “힘있고 돈있는 교회는 교단헌법도 초월한다는 극단적 우상숭배의 추악한 행위”고 밖에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거다.


교인들은 법적 소송도 거론했다. “총대들에게는 소송 등 이의제기를 할 수 없게 해놨지만 교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면서, “이번 수습안에 법적 효력이 없음을 빠른 시일내에 사회법을 통해 이의제기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우려하는 것은 2021년 1월 1일 교회가 김하나 목사를 재청빙할 때다. “공동의회를 하지 않고 담임을 세우려고 시도하는 명백한 교인의 권리침해 행위가 발생할 경우에는 사회법에 소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사실상 세습 허용...교단헌법에 위배”


목회세습에 반대해온 여러 단체들 역시 ‘명성교회 수습안’은 교단헌법을 위배한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이번 예장통합 정기총회는 명성교회의 불법세습사건을 매듭지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오히려 총회가 명성교회의 불법세습을 묵인하고 교회들이 세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비판했다.


보여주는 화해에 집착하고 대형교회는 살려줘야 한다는 어리석은 마음이 초래한 결과라는 거다.


기독법률가회도 성명을 통해 명성교회의 세습을 용인한 이번 결정은 교단의 헌법은 물론 세상의 상식도 무시하는 결정이라면서, 재심판결 이후 한국교회에 남은 희망의 불씨를 짓이겨 꺼버리는 결정에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학교 학생들과 교수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장신대 학생들은 연대성명에서 수습위원 구성에서부터 제시된 수습안의 내용, 토론 없는 표결 등 모든 과정이 공정했는가를 물으며, 총회의 이번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신대 교수들도 세습문제는 타협이나 수습이 아닌 교회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이라면서 세습 찬반세력을 화해와 중재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은 초헌법적 오류라고 지적했다.


교계원로들은 신사참배의 부끄러운 결의가 또 다시 가결됐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김동호 목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교단이 정한 법을 어기기로 결정했다며,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또 다른 큰 수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영 목사도 신사참배 결의 이후 가장 수치스런 일이라면서 이 교단에 소속된 목사라는 것이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밝혔다.


정기총회 시작부터 교회의 신뢰회복을 강조한 예장통합총회.


김태영 총회장은 지난 23일 정기총회 개회예배에서 “사회에서 이름값을 하고 건재할 수 있는 자본은 은금과 지식이 아니라 신뢰이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라고 말했다.


명성교회 수습안을 발표할 때에도 “더 이상 부정적인 뉴스가 생산되지 않도록 하자. 한국교회가 어디까지 내려가야 정신차리겠나”라며 교단 안의 갈등을 정리함으로써, 사회적 비판에서 벗어나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교계는 물론 사회적 여론은 '사실상 세습을 허용했다'는 반응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번 ‘명성교회 수습안’이 신임 총회장의 기대처럼 진정 사회적 신뢰회복을 위한 조치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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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5. 12. 24. 16:02


예수[성경] '사랑'이란 무엇인가? 대한 내 해석은 이렇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나와 우리의유한함불완전함 대한 깨달음이다. (2015.june.23.)

 

지식에 대한 경멸 풍조는 지배자들만 이롭게 한다. 지식을 백정 취급하듯이 천대하면, 동서남북 4 대신, 동서나 남북만 있는 것처럼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아주 제한된 선택지에 걸려 넘어진다. 누가 자빠지는가? 지배층이 아니라 지배받는 사람이다. 막상 저항해야 주체들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정치적 지혜가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초등학교 O, X식으로 끝난다. 이런 작전 가지고는 필패다.

 

역시 공식적인 학교 교육에서는지식 자체 즐거움을 배우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한계를 깨닫고 철창 탈출 해방 욕구가 강렬했을지라도. 제한된 지식을절대 으로 외우고, O,X 빨리 돌진하는 능력이 IQ 높은 행위이고 합리적 똑똑한 학생이라고 배웠다. 현재 한국 대학의 위기도, 근본적으로 자본의 공략에 무너지는 이유도, 지식 형성 과정에 대한 강조와 실천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식 자체를 알고 깨달아 나가는과정 대한, 특히 시행착오, 실패 과정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의미 부여는 거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사회적 지위와자기 인정 투쟁대상이고 생존 등급 판정이었기 때문에, ‘ 알아줘’ ‘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목숨 걸고 절대성을 부여한다.

사실 지식에 대한 경멸은, 우리 인간 자체의지적 호기심 대한 비하 그건 아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학문 강조하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지적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사랑을 모를 없다. 세상 지구 어느 누구보다도 학문 강조 가치관을 습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식의 중요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좌파건 우파건지식 경멸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 자본과 지식 자격증을 확보하고 있는 지배자들이 아주 좋아라쾌재 부르는 사회 현상이다. 장기적인 노예 재생산 과정이다.

 

물론 가끔가다가알아야 면장을 한다 이야기도 하지만, 이건 어쩌다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자기 편리할대로 가져다가 쓰거나, 그냥지식 수단화 뿐일 때가 많다. 마치 무슨 지식인성명서처럼.

 

지식 경멸 현상이 특히 좌파 사이에 퍼지는 , 결국 지배자들 좋은 일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지배자들과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선택적인’ ‘제한적인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현행 법률 ( 3 개입법 )정당하고 동시에 합법이라는 것이랄지, 노동자의 임금 크기는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결정된다 랄지,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이 이후에 발전한다랄지 . 지배자들이 만들어 놓은지식 절대 참으로 고정불변의 지식으로 외우다가, 결국 지식의 유한함과 불완전성에 대한 비판 의식까지도 버리게 된다.

 

문자나 언어, 수학, 음악, 미술, 영화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반항, 변혁, 혁명, 선거에 뛰어들 때는자기가 알고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그들의 학력이 아니라, 그들이 알고 있는지식이다. 민중이건 시민이건 민초건 그들이 말하고 퍼뜨리는지식역시 불완전하고 유한하다. 지식을 경멸하는 습관은 민중의 의식 자체를 폄하하는 버릇이나 허무주의적 인식론으로 귀결된다.

 

이런 사람들이 멘붕이 오면, 정신 넋나간 소리를 하거나, 말년 김응용 감독처럼니들이 야구를 알아?” 회고적 향수적 태도로 일관하거나나도 해봐서 아는데인식론으로 끝나게 된다. 지배자들 좋은 시키는 반동적인 작태들이다.예수의 사랑론, 인식론은 사랑하는 주체의 유한함과 불완전함에 대한 명료한 깨달음이다.

사랑만큼 좋은 어디있겠는가? 흐린 오후에도 소낙비에도 눈이 와도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 워낙 그게 힘들어서 탈이다.

 




성경 구절 번역 - NJ원시


내가 사람들의 속세 언어들로도 천상의 천사의 언어들로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 담기지 않은 내 말은 시끄러운 징소리나 양철판 깨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난 사람을 감동시키는 연설하는 재주를 가졌을지도 모르고, 아는 것도 많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삼라만상의 법칙을 깨달을 수도 있다.


나는 또한 산도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자신감도 가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난 내가 소유한 그 어떤 것도 버릴 수도 있고, 또 포기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내 생명을 포기하고 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행동이다.


사랑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이다. 사랑은 시기질투가 아니고 잘난 체 하는 것도 오만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예의없이 무례한 것도 아니고, 이기적인 것도 아니며, 성질 급하게 화내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타인의 잘못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악’과 어울려 희희락락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에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사랑의 신념, 희망, 그리고 인내는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세상에는 감동을 주는 (설교나 연설) 메시지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다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범하게 말을 잘 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 말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세상에는 아는 것도 참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지식 역시 유한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 습득 능력, 감동적인 연설을 할 줄 아는 능력과 재주 역시 다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한 것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 부분적인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했던 말 감정 생각은 모두 다 미숙한 어린 아이의 말, 감정, 생각이었다. 난 이제 성인이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미숙했던 어린 시절처럼 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거울 속에 비친 희미한 이미지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듯이 명료하게 서로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체가 아니라 단지 어느 한 부분일 뿐이다. 나중에 그 지식은 전체가 될 것이다. 마치 신이 나를 완벽하게 아는 것처럼. 그 날이 올 때까지 신념, 희망,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가 우리들 곁에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Good News New testament (the bible), Today's English Version: Corinthians 13 Love (사랑)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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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고 가요^^

    2015.12.24 16: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인터넷에서 왜 대화가 잘 안될까?


원시


http://www.newjinbo.org/xe/1233022008.07.08 17:00:453675


날씨가 더워 잠시, 인터넷과 정치를 생각해보다.


1. 난 논객이 아니고, 태권도로 치면 파란띠나 되려나?


내가 진보신당 게시판에 글을 쓴다 하니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논객'이냐고. 웃고 말았다. 


논객(論客)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맹자이다. 맹자(孟子)가 양혜왕을 만나서, 하필이면 '왕이 되어가지고 이익을 이야기하느냐 ?'(하필왈리 何必曰利)고 준엄하게 비판했다. 논객은 이런 사람을 일컫는 거 아닌가? 혹은 하마못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수많은 식객(食客)들 정도는 되어야 논객의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가 그냥 웃고 만 것이다. 한국에서 인터넷 논객은 2002년부터 만들어진 말이다. 컨텐츠 부족으로 1~2년 못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야망이 정해진 사람들 (서프라이즈 등), 혹은 '진보'를 이야기하지만 준비가 너무 부실했다.  


2. 자기 색채가 뚜렷해야 하는 진보신당 인터넷 게시판 


포르노 동영상 공급, 인터넷 게임, 홈 쇼핑, 일반 동호회와 비교해서, 예를들어 진보신당 게시판은 무슨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맹자 이야기를 해보다. 맹자는 아마 군자(이상적인 왕)에게 한 이야기겠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나이가 많다고, 돈이 많다고, 지식이 많다고, 자기 배후 배경이 많다고' 이 네가지가 많다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맹자>에서 말한다. <맹자>를 처음 접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이 말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1) 인터넷에서는 맹자가 말한 4다 (네가지 많은 것)를 피하고, 수평적으로 만났으면 한다. 


한가지 사례를 이야기하면, 민주노동당 시절, 최장집 교수를 마치 '진보의 대표적인 지식인'처럼 권위를 부여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좌파는 우파와 달라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절대적인 숭배 태도나, 무작정 묻지마 '권위 부여'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무슨 타이틀, 직위 등을 먼저 내세우거나 거기에 의존하는 작태는 버려야 한다. 인터넷 여론장은, 마치 투표 4대 원칙(부르조아 민주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처럼, 그런 속성을 지닌다.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현실 사회적 관계의 편견을 괄호치고, 1인 1표 행사를 하는 곳이다. 


(2) 대화를 즐겨야 한다. 


그 다음은,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고찰해야 할 것은, '대화 (對話: 상대가 있다는 의미)'의 공간이 바로 인터넷이다. 이명박 몰입영어교육 때문에 영어 쓰는 게 꺼려지지만, 대화의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잠시 써본다.  다이얼로그 dialogue, 독일말로는 디알레틱(Dialektik) 이라고 하는 것도, 다 di (two 두개, 두 사람, 두개의 사물, 두 측면, 두가지 특질)가 붙어있듯이, 인터넷에서는 대화를 잘 했으면 한다. 


(*   rabbit/rabbit (12).gif이거 요새 내가 배운 것이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한물지난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한물지나갔지만 배울려고 애쓴다) 대화는 실은 한자어로 보면 인간 (人間)할 때, 그 뒷자 '사이 間'을 의미한다. 


(3) 가급적이면 자기 주장의 근거들을 제시했으면 한다.


인터넷이 없으면 해외에 있으면서 진보정치 공간을 학습할 기회를 박탈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인터넷 발달과 와이브로와 정치공간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난 해석한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경험으로 비춰보건대, 글이나 말의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이것은 부정적인 모습이고 인터넷의가장 큰 맹점이고 한계이다. 


소위 논객들은 이미 정해진 목표들을 향해 "목소리는 큰데,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가수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눈빛도 맑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고. 굳이 논객들이 아니더라도, 민주노동당 게시판 (2004년-2008년)은, 당원들이 혹은 논객들이 대화를 통해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하려는 마음 보다는, 그리고 나의 상-대(對)와 교접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성, 제왕의 성을 쌓으려고 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는 악날한 범죄행위도 자행되었다. 관객들은 다 떠나게 되어있다.


(4) 물질적 심리적으로 뭔가 얻어가는 인터넷 공간이었으면 한다.


 좌파가 아직 아마추어라도 진실성을 가지고 있고,그 진실성과 구체적인 전문 능력을 결합시켜낸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주의 좌파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앎이 어떠한 타인의 지배나 군림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배체제를 조장하는 큰 바위를 뚫는 한 방울의 낙수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럽의 역사 기록을 보면, 좌파와 사회주의 개념, 혹은 민중들의 저항 철학은 '너무나 너무나 윤리적인' 요청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심리적 위안이란, 이러한 윤리적 요청들과 관련된 주제들을 많이 계발하고, 풍부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 춤, 책, 영화, 스포츠, 정치, 가족, 연인, 음식, 옷, 가구 등 모든 소재들과 우리 활동 공간에서 만나는 것들에서 말이다. 그렇지 않고, '윤리'만 강조해버리면, '나는 진실한데, 너는 진실성이 떨어진다. 나는 옳은데, 너는 그르다'는 식 대화밖에는 할 수 없다. 보는 관중들 물병 던지고 그라운드로 난입한다. 이런 식 대화나 글쓰기는 물질적으로도 심리적으로 뭐 하나 얻어가는 게 없다. 


(5) 좌파가 정치 컨텐츠를 드러내고 발굴하는 '접점'은 어디인가? 


한가지 사례만을 들어보자.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이나 노조건설 (삼성 회사)이 바로 일종의 사회적 화해이다. 이는 마치 예수의 화해의 죽음(Versoehnungstod 독일어 화해+죽음 = 예수 십자가에 못받혀 죽음) 과 비슷한 것이다. 


칼라tv에 나온 뉴라이트들과 우익 청년들의 좌파 이해는 "예수의 죽음, 화해의 죽음"과는 다르다. 이들은 마치 좌파는 계급의식를 고양하고 인간을 분열적 존재로 파악하는 쌈박질 좋아하는 인간들로 치부해버린다. 더러운 그림이다. 


예수죽음에 대한 좌파적 해석은 바로 그 죽음이 사회정의를 이루는 한 방식라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고 그 해법이 드라마처럼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좌파의 글쓰기는 이러한 예수의 '화해의 죽음 (인간과 신의 분열, 인간과 인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화해의 죽음)'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적 기독인들의 '고정불변'의 예수해석에 그쳐서는 안되고, 늘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칼라tv가 조명하지 못하는, 수많은 '화해의 죽음들'이 귀신이 되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마치며: 그나저나 왜 인터넷 여론장에서 대화가 잘 안되는가 ?  목표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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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그냥 서민


나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정한 ..... 올린글의 배경과 '그 사람'의 고민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바뀔지,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빠블리또

경우가 약간 다르지만 참고할 만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애인과 전화(채팅)으로 얘기하는 것이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싸울 확률이 훨씬 높지요. 벙어리 채팅은 의사소통의 수단인 눈빛,표정,침묵 등의 시청각적 수단들을 가동시키지 못하게 하지요. 또한 표정없는 전화는 의사소통의 수단 가운데 얼굴 표정과 눈빛 등의 시각적 요소들을 모두 무시하게 만들지요. 그러니 전화와 채팅으론 좋은 얘기만 해야 합니다. 싸움을 만들어낼 소지가 크고 싸움 자체도 더욱 극대화할 소지가 높은 수단들이거든요. ^^. 그러니 보십시오. 문자 메세지로 받는 해고통지로 직접 대면해서 받는 것은 천양지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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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와우~~ 잘 읽었습니다 ^^ 논객 맞으시네요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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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원시님 글은 일단 재미있어서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 인터넷 여론장에서 대화가 잘 안 되는 까닭은, 제 생각엔 상대방의 눈을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약 30%고 나머지는 다양한 표정 변화와 그 사람의 눈이 70%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역시나 온라인 상에서의 대화는 30%밖에 주고받을 수 없는 관계로 완벽한 대화를 이끌어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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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글 좋습니다. 냠냠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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