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7:00

2013.07.12 23:00

평화노동당 (노동 해제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를 말해야

원시 조회 수 453 댓글 2


평화노동당 : (노동 해제 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로서 노동자를 말해야 한다


평화노동당의 당명은 노동 패러다임 바깥, 일터를 포함하긴 하지만 생활터전이라는 보다 더 포괄적인 삶의 공간에서 노동자들의 자유와 평등, 행복의 실현을 담고자 한다. 만약 노동 바깥인데 왜 ‘노동당’ 명칭을 쓰느냐?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한다면 그 비판은 수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명칭에 노동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실천주체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노동정치, 노동해방정치, 또 진보정당 좌파정치는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 노동당>에서 초점을 맞추는 정치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을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극단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자.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민주당도 진보좌파정당도 아닌, 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다. 이 문제를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행위라고 서술한다고 우리의 정치적 임무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한국의 노동자 대다수가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리버럴리스트 민주당에 투표하는지를 설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들 대다수가 보수-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는데, 계급 혹은 노동 패러다임이 아직도 유효한가? 이런 질문은 당연히 던질 수 있다.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러한 유효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 구성요소들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정치적 의식 사이에는 샛강이 아니라 한강 두만강이 흐르고 있다. 정치의식들을 규정하는 요소들은 가족,지역,종교,가치관,계급,계층,정치적 경험들, 문화 등 수없이 많다. 다르게 표현하면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의 계급의식이나 정치적 의식은 계급과 연관되지만, 계급/노동 패러다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의식규정요소들 사이에 위계순서,우선성(경제,정치,문화 요소들)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 가능성과 방향성이다.


한국 자본주의와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쳐다보면, 직종 숫자 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97년 IMF 신자유주의적 긴축통치 이후, 자본과 국가권력이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 천가지 직종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계급의식들을 천차만별이다. 당장에 민주노총 내부 조합원들 사이에도 정치의식들이 다르고 계급의식이 단일하지 않다.


우리 당은 이러한 다양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실천들과의 정치적 소통을 해야 한다. 그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노동자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사진 2009.jpg 


 (향후 30년간 한국 좌파 정당 운동에서 가장 주요한 주제로 떠오를 도시 공간 정치라는 주제. 어떤 토론회장,

좌파정당으로서 우리 당이 심혈을 기울여야 할 정치적 주제들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최근 “노동 중심성”이라는 단어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는 현장에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해보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토론한 노동계급의식의 정치적 집결체로서 정당운동이 왜 실패했는가? 그에 대한 대안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치적 기획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심성’ 강조에 앞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들의 분화에 대한 정치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과거 사회당을 보면, 이미 구정치의 영역 (노동, 복지, 군사, 안보, 안전 등) 뿐만 아니라, 신정치와 새 사회운동의 영역인 평화, 녹색, 여성, 생태, 인종차별반대, 소수자 운동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중심성이라는 말이 어떤 특정 집단의 정치적 헤게모니 선점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자가 생활터전에서 정치의 주체로 되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 굳이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진정한 자유나 해방과 구별해서 말하자면, 삶의 터전에서 자유와 평등의 구현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위에서 말한 노동자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의 형성 지역, 그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다. 좁게 말하면 도시공간이다. 97년 이후 한국자본주의가 규정한 삶이란 어떠한가?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삶의 터전인 쉼터, 놀이터, 집터 역시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분열되어 있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구로 민중의 집.jpg 

 ( 좌파 정당이 삶의 터전에 뿌리 내리기 시도를 하고 있다. 구로 민중의 집 사진. 보수적 시민사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느냐가 관건이자 정치적 과제이다.)


노동운동이 살기 위해서는, 또 진보좌파정당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삶의 터전, 일터, 놀이터 쉽터, 집터 등에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과 돈,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임무는 일터에서 재산권 생산수단,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뉴타운 건설 등, 쉼터 놀이터에서 문화 스포츠 활동에서 계급차별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제거해나가는 것이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계급적이다. 우리들의 행복과 희로애락 역시 계급계층차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시 공간의 사적 소유 재산권과 자산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에 돌입해야 한다. 좌파 정치의 중요한 주제들은 일터와 ‘노동’ 안 패러다임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일터를 포함한 포괄적인 삶의 터전 속에서 계급계층 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좌파 정당의 정치적 임무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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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2. 4. 14. 03:43

손가락에 집착하는 여인



원시


2011.11.30 20:26:565964


점심은 거의 전투적으로10분 이내로 먹고 보통 족구를 했다. 근데 그 날은 족구경기도 없고 해서, 프레스 반 빠마 아줌마랑 붕어빵을 나눠먹었다.  프레스 반에 두 명의 아줌마가 일했다. 회사 담 옆에서 빠마즘마가 준 붕어빵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자꾸 의식적으로 꼭 쥐고 있는 손, 손가락에 대해서 물었다. 뭔가 눈길이 오면 불편해 하는 기색, 그게 역력했다. 


붕어빵 씹으면서, 언제 다친거예요? 그러면서 그냥 확 물어버렸다. 프레스에 손가락이 꼈다고 한다. 말이 낀 거지, 반지끼는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이 절반 이상이 다 잘려나갔다. 제일 창피한 게, 설이나 추석 때 친척들 모였을 때, 모여서 같이 음식도 하고 요리도 해야 하는데, 손을 내놓기가 그렇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반지도 못 끼우게 되고. 사람들하고 늘 말할 때도 그 다친 손은 늘 꼭 움켜쥐게 된다고 했다. 


그 상처에도 다시 프레스 반에서 일하는 게 한편으로는 너무 아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해보였다. 어디 여자만 손이 이뻐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빠마 즘마의 손가락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가슴이  꽉 짓눌렸다. 당시 삶는 세탁기 (삼성)가 출시되어 대유행이었다. 우리 회사, 아니 그 회사는 그 삶는 세탁기 부품을 납품했다. 우린 정말 미친듯이 일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행복은 구체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행복이니까. 난 꿈책님 아들처럼 초등학교 4~6학년 때까지 학교 리틀야구 대표선수였다. 매일 5~6시간씩 야구연습을 했고, 캐쳐였기 때문에 공도 많이 던져야했다. 그래서 손가락, 손톱을 애지중지하게 관리했다. 깐에는. ... 파울 팁에 오른 손가락이나 손톱에 공이 맞거나, 타자가 공을 치고 난 후에 배트를 포수인 내 손에다 던지고 1루로 달려갈 때, ‘그 놈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이다.’ 투수 손가락 관리는 더 하다. 보험에 들 정도니까. 손가락을 다치거나 잃어버리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전쟁터에 나가 죽기도 하는 판국에 무슨 대단한 손가락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내가 빠마머리 아줌마처럼 손가락을 두개를 잃어버렸다면, 나는 그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일터에서 다치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 붕어빵 대화 이후 더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누가 사회주의가 뭐냐고, 혹은 진보적 좌파가 바라는 사회가 뭐냐고 묻는다면, ‘노동자들, 사무직이건 공장이건, 일하는 노동자들의 손가락이 아름다운 사회 (안 다치고 온전한)이다’ 라고 나는 말 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복지로, 돈으로, 산업재해 보험처리만으로 해결되거나 성취될 수 없다. 일터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개인 실수 탓이나, 기술적 결함을 지적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는다. 이런 것들은 <일터의 안전>의 다 필요조건들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작업 공정과 과정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하고, 위험요소들을 제거하는 실질적인 대책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자본과 경영주의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안전 불감증>은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태평양을 건너 와서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 해외사례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발견한 책이 애쉬포드가 쓴 [일터에서 위기: 직업과 상해: 1970: 미국 * 이 책은 미국이 68세대 이후 진보적인 시민운동이 활성화될 그런 시점에 발행됨.]이다. 


이 책에 따르면, 직업병의 숫자는 39만개이다. 2004년 민노당 10석 의원이 생겼을 때, 이재영 정책실장님에게 제안한 것들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이  <안전> - 일터,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 터전-에서 안전 문제였다. 


이 <안전> 문제는 철저히 계급차별적인, 성차별적인, 인종차별적인 주제였기 때문에, 민주당과 같은 리버럴리스트에게 맡겨놓을 수 없다. 임금인상, 해고반대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바로 이 ‘상처’ 문제,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는 문제이다. 



진보신당 2011년 11월 30일. 일터와 생활터전에서 <안전> 문제를 다룰 정책실 근무자가 0명이다. 


사업의 연속성도 없고, 축적된 결과물도 없다. 당원 숫자는 1만 3천명, 2002년 상반기 국회의원 0석이던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당력이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 나가야할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회사를 경영하고, 자주관리하고등등,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일터에서 <안전> 생활터전에서 <안전> 문제는 당장 선거 투표 전략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등등… 실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의 문제도 이런 <안전>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보신당 당원들, 그리고 당원이 아니더라도, 회사, 공장, 식당 (*식당의 부상, 산재 종류도 1천가지는 넘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안전>과 노동과정이라는 주제로, 진보신당 중앙당에서 발표회를 1년에 정기적으로 하는 날은 올 수 있을까?


난 솔직이 아직도 왜 여성들이 반지 만드는 것을 배우러 다니고 (*그런 소규모 모임이 동네에 꽤 있음) 링 같은 것에 관심있는지, 잘 모르는 무딘 감각의 숫컷이다. 


그러나 적어도 봉숭아 물을 손톱에 들이건, 매니큐어를 바르건, 자기 미적 감각을 손가락에 실천하는 분들의 취미와 기호는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것도 일종의 자아 정체성이니까. 요새도 삼성 삶는 세탁기가 유행인지 모르겠다. 


가끔씩 빨래하다 세탁기를 보면 그 빠마 아줌마의 움츠린 손이 생각난다. 세탁기 하나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니까. 




1. 출처: '시한부 1년', 80년생 윤정씨에게 삼성반도체란… - 프레시안 



http://bit.ly/rA6H2F






 


2. 1960년대-70년대 소위 '68세대',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반전 데모 등의 진보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일터 안전에 대한 법률과 조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1980년대 공화당 레이건 정부 등장으로 노동조합과 노동권은 무시되기 시작했다. 




애쉬포드가 쓴 <일터에서 위기: 직업병과 상해>  1970년. 

Nicholas A. Ashford "Crisis in the Workplace : Occupational Disease and Injury 1970"

  








3. 목차 








4. 목차 2 








5. 매일 매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리들의 노동 현장, 일터에서 <안전>에 대한 정치, 이것 역시 중요한 정치투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몸에 대한 존중. 손가락, 발가락, 손 톱 하나라도 너무 쉽게 "엄살부리지 말어" 이런 문화가 우리 의식을 지배해서는 안된다. 그것 역시 자본과 지배자 권력 동맹체의 노동자와 시민들의 통제 전략이다. 






 



댓글2011.11.30 20:34:08

mike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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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1.12.01 01:49:01

518

(추천 수: 1 / 0)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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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1.12.01 02:19:29

손찬송

"엄살 부리지 마라" 참 짜증나는 말입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하다는 것은 참 짜증나는 일입니다. 귀농해서 제일 신경썼던 부분이 바로 몸관리였습니다. 체력이 꽝인 내가 열심히 한다고 무리하다간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 민폐이기도 하고 내 몸은 내가 더 잘 하는데 오버해서 다치면 큰 손해죠. 일 시작하기 전에 늘 야기 했었습니다. 못하는 것 안하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야기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노동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지금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어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과연 지금처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당근 자신없습니다. 일터에서의 산업재해에 대해 당 차원에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 할일이 참 많아요.


 


여튼 좋은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원시동지 보구 싶다. 아리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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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14:52:01



원시


몸 다치지 않게 즐거운 농사^^!! 화이팅!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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