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정의당2020. 10. 4. 22:29

김종철 후보, 배진교 후보 쟁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받는 정의당 이념들, 진정한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정의당은 노동자와 시민의 정당이다. 그런데 가장 착취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플랫폼 노동자도 정의당에 다 투표하지 않는다. 냉정해지자. 그들이 정의당보다 민주당 국힘에 더 많이 투표했다. 시민 범주도 마찬가지 현실이다.


지난 20년간 정의당 진보정당을 가장 많이 지지하는 유권자층 1개를 뽑으면, 현재 40대~50대 화이트칼라 유권자이다. 


배진교 후보가 “이념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으로 더 큰 정의당을 만들기 위해 제 2창당을 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이념(이데올로기)없는 정당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고, 대중정당의 반대말(상대어)는 소수정예 (cadre:정치활동가, 혹은 전위) 정당임을 몇 차례 설명했다. 


당대표는 당 발전전략을 쉽게 말해야 한다. 정의당이 선거에서 더 많은 당선자를 배출하고, 평소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20~25%를 5년 안에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해야 한다. 


60~70년대 개념이지만,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Alford Class Voting Index)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는 정말 단순한 말이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와 중간층 및 중산층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의 차이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의 70%가 좌파정당에 투표했고, 중산층의 20%가 좌파정당에 투표를 했다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50이다.


정의당은 어떠하겠는가?  우리 진보정당 운동 수준이 ‘이념 정당’ 대 ‘대중정당’ 이런 잘못된 개념사용과 이분법에 머물고 있어서는 안되지 않는가? 지난 20년 진보정당 역사 속에서, 정의당은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증가와 ‘하락’, 이 두 가지 전략을 다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들도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노-노 갈등도 심화된 현실 하에서, 정의당의 지지층을 더 확장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포괄하지 못한 유권자들도 정의당 지지자로 만들어야 한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를 활용해, 정의당의 유권자가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확장전략을 사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2020년 정의당 당대표 핵심단어는 ‘지역 정치 발전 강화’이고 2020년 지방선거 승리다. 16개 시도 권역, 선거구 모두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다를 것이다. 이런 조사에 근거한 선거전략을 세워야 한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자.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사회주의 북구형, 독일 가족 중심형, 프랑스 예외형)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투표(class voting)는 전반적으로 하락한다. 


스웨덴의 경우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1948년경 50에서 1986년에는 35 전후로 떨어진다. 영국의 경우 1948년 40 전후인데, 1980년대 들어와서는 20으로 하락된다. 서독의 경우 같은 기간 30에서 10으로, 프랑스는 33에서 15로, 미국의 경우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45에서 72년 3으로 현격히 떨어졌다가 1980년대는 8~9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의당은 어떠하겠는가? 서유럽과 다른 여러가지 ‘특이점들’이 한국에서 드러날 것이다.


필자 견해는 아래와 같다.  


1997년 이후, 한국 국가와 시민사회는 자본권력에 점점 더 종속되었고, 한국 자본주의 분화와 복잡성은 증가했다. 직업의 종류도 늘어났고, 특히 도시 공간 사적 서비스 노동자 숫자는 늘어났다. 이로 인해 노동자-노동자 갈등이 발생할 물질적 문화적 조건들도 많아졌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압박과 부당한 착취를 당하는 계급 계층들이 더욱더 다양하게 변했다. 이것 때문에 이들의 정치 의식 또한 여러가지 흐름들로 사안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이런 한국 자본주의 축적과 이윤 창출 방식의 변화가 정의당에 던져주는 정치적과제는 무엇인가? 


진보정당이 고민하는 정치 혁명, 개혁, 변혁의 주체는 계급분석에 반드시 기초해야 하지만, 계급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특정 계급의 정치적 우월성이나 선차성 관념(제1주력군, 제2주력군, 제1보조군, 제2보조군 등)등은 인간의식을 계급적 존재에 귀속시켜 버리는 결정주의적 사유방식의 잔재이다. 그래서 정의당 내부에서도 다원주의적 가치들의 존중과 실천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 기반 정치(class-based politics)에서 가치 기반 정치(value-based politics)로, 구 정치에서 신 정치 주제들로 옮아가자는 것인가?


필자 생각은 이러한 두 가지 형식적 구별과 대조는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실천적이지 않다고 본다. 미국, 유럽도 그렇지만, 한국의 경우 계급기반 정치 주제들(경제 성장, 정치 안정, 국가 안보 등)과 신정치 주제들(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 환경, 여성, 인종, 반핵평화 등)이 서로 경쟁도 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두 범주 다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예를들어 녹색 생태가치와 노동자 계급 문제는 분리불가분하다. 한국 제조업 빅 5 산업은 화석연료에 기초해 있고, 가장 오염원을 많이 배출하는 반-생태산업이다. 한국이 지난 40년간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해왔고, 한국인들의 행복도도 높여왔다. 그러나 이 방식도 처음부터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을 딛고 유지되었다. 일례로 한국 타이어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보더라도 안전, 환경, 노동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조업 노동자가 환경오염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암환자 희생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의당의 이념들이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대중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를 높이는 방향이 하나이고,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하강 경향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을 연구하고 실천적 대안들을 발표하는 방향이 다른 하나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계급정치 (구정치)와 신정치 주제들의 동시 해결, 접촉면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정책화해야 한다. 하지만 구정치 주제들과 신정치 주제들은 서로 갈등을 빚거나, 정책상 우선순위 중요도로 경쟁하기도 한다.


정의당 당내에서 토론 주제가 되었던 ‘페미니즘’ ‘메갈’ 논란도 이미 다른 나라 역사에서 40년 전부터 경험했던 것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의당의 당 대표는 이러한 구정치와 신정치를 동시에 꿰뚫는 정치적 현명함과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 하락 경향과 관련해서, 정의당은, 기존의 민주노총 조합 자체가 한국의 가장 억압된 계급 계층,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사회계급 계층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비정규직 내부 분화들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지역, 일반 노조 등과의 직접 연대 행동 조직화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 형태들과 의식수준들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사회보험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500만에 육박하는 이 비정한 한국 경제체제-고용제도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정의당 당대표는 이 500만이 정의당을 지지하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정치적 이념들 (이데올로기들), 어떤 정치적 가치들, 어떤 정책들을 내놓을 계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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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9. 29. 15:57

9월 19일 (당 부대표 후보 토론회를 보고) 박인숙 부대표에게 드리는 글.


그린 뉴딜 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발굴해야 한다는 박인숙 부대표의 제안이 당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 박인숙 부대표의 중요한 지적이자 대안이다. 일부 미디어나 학계 논의에 그쳐서는 안된다.


한가지 우선 정의당 당원들에게 물어야 한다. 일상 공간, 삶의 터전, 일터에서 '그린 뉴딜' 어떤 정책들을 실천하고 있는가? 이것은 지역별, 도시별로 다르다. 정의당의 자기 보고서가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를 박인숙 부대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코로나 19 정국에서 생태와 농업과 연계된 '그린 뉴딜'을 박인숙 부대표가 주장했는데, 이는 굉장히 중요한 사회운동이자 정의당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힘, 민주당도 형식적으로는 이미 '그린 뉴딜'이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아쉽게도 노동자 시민 유권자들은 그들의 그린 뉴딜과 정의당 그린 뉴딜의 차이점을 피부로 체감하지 못한다.


정의당 '그린 뉴딜'과 차이는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국민의힘, 민주당 그린뉴딜의 실체는 '그린 표' 아파트 많이 짓기이지, 그 아파트와 주거 지역에 필요한 자전거 도로, 생태 숲, 저소득층도 향유할 수 있는 공공 생태공원 조성은 아니다.


농업-생태 연계도, 뉴요커 서울 중산층 유기농 먹거리 운동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한국의 농업 주체들은 60세 이상 노인들과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다. 이주 노동자들은 주거용으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비닐 하우스에서 자고 생활하고 있다.


그린 그린 뉴딜도 가난한 자, 노동자들에게는 '생태 태양'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살벌한 직사광선을 퍼붓는다. 민주당, 국민의힘 '그린 뉴딜'은 또다른 '그린 차별과 불평등'이다.


농업인들, 해양 수산업, 광업, 임업 (숲)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준) 공무원화, 공공서비스 임금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노동력이 대기업 이윤 증가나 중산층 이상 소비자들의 건강만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들 새로운 주체들이 정의당 당원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당의 계획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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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2020. 5. 10. 10:27
[ 존 벨라미 포스터의 핵심 주장 요약 ] 깨끗한 공기와 물, 영양가 있는 음식, 옷, 주거, 교육, 건강, 교통 통신이라는 기본적인 ‘인간 필요’에 대한 민주적 통제, 즉 노동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이야말로 실질적인 평등, 공동체의 연대,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세가지 가치를 실천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이다. 

[원시 독후감과 이론/실천적 과제들

(1) 존 벨라미 포스터의 '혁신 사회주의' '생태 사회주의'의 새로운 주체들이, 불균등 자본주의 발달이라는 국제정치 조건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력을 보여줄 것인가? 이에 대한 탐색이 절실하다.

(2) 다시 정치(학)의 문제로. 발달된 생산력과 '사회관계'의 모순(상응 ,조응 실패)이 지시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설명이 더 필요하다. 예를들면 중국의 발달된 생산력과 '사회관계'의 모순 틀에서, 중국 공산당의 권력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고, 인민의 직접 민주주의 실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등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3) 한국의 경우도, 사실 생태 사회주의를 논하기 위해서는 현존 산업구성, 자본축적 방식들을 바꿔야 하는데, 그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 리버럴 국가와 고용노동자들도 '자본주의 성장론'에서 갇혀있는 정치적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아래 노트 순서

 [1] 존 벨라미 포스터가 부자 나라 좌파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자본주의 실패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 존 벨라미는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제출된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 double movement’의 한계 지적. 

[3] 리버럴 민주당의  ‘공정’ 강조의 실패, 그 한계 이유. 

한국 자본주의 체제와 소유권,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고치지 않고 ‘공정, 공정, 정의, 정의’만을 남발하다가 기득권의 포로가 된 한국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특질

[4] 인간과 자연을 모두 파괴하는 자본주의 성장의 한계점 (요약) 
– 기후 위기 시대에 새로운 사회관계가 필요하다. 과거 오류를 극복하는 ‘혁신 사회주의’가 지향해야 세가지 가치들, 이념들은,   “실질적인 평등, 공동체의 연대,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다. 


요약과 노트 - 

출처:

자본주의는 실패했다. 그럼 다음은? - 존 벨라미 포스터 
Capitalism Has Failed—What Next? (2019.Feb 1.) by John Bellamy Foster



 [1] 존 벨라미 포스터의 지적: 부자 나라에 사는 좌파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자본주의 실패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스터는 1994년에 영국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진단이 25년이 흐른 후에 현실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당시 홉스봄은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자본주의 시장의 무제한 이윤추구와 무한 경쟁이 인간 뿐만 아니라 이 지구의 자연까지 다 파괴해버렸다”고 진단했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보면 1989년 몰타 회담 이후, 한국의 경우 1997년 IMF 신자유주의 철권 통치,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금융 공황 시기까지, 사회주의는 패배자, 자본주의는 승리자처럼 보였다.  

대학과 미디어는 이러한 유행을 따르는 첨병이기도 하다. 아직도 주변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대학과 미디어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유행과 흐름은 변화한다. 에릭 홉스봄이 지난 25년간 무덤에 묻혀있다가 부활하고 있다는 게 포스터의 기본적인 시대진단이다.   

20세기 현실 사회주의와 서구 사회복지국가의 실패를 주장하고 승리자를 만끽한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침체, 금융화, 불평등 심화, 환경오염 악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존 벨라미 포스터의 주장이다.

[2] 존 벨라미는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제출된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 double movement’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부자 나라 좌파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언급하곤 했던 것이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 방어운동 개념이다. 

폴라니의 이중운동을 간단히 요약하면, 첫번째는 사회적 규범과 규칙들 속에 뿌리내린 자본주의 시장이 자립화해서,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운동이다. 여기서 자기 스스로 통제하는 시장 사회라는 신화가 발생하고,이 신화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 원시 보충 설명: 폴라니가 쓴 self-regulating, self-adjusting market 이란, 시장이 스스로 마치 정치영역처럼 시장의 입법, 행정, 사법을 다 관장하면서,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을 지닌 자본주의 시장을 뜻한다. 시장 바깥 외부의 어떤 것의 도움이나 영향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 완결성과 자기 충족성을 지닌다는 신화를 의미함.)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피해자들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과 자연환경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와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적 운동들이 터져 나오게 된다. 

존 벨라미는 이러한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 개념 등장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이중운동’ 개념으로 인해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다시 ‘ 약자에게 좀 더 기회를 주는 리버럴리즘 (A more affirmative-style liberalism)’ 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복지국가(사회민주주의)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다시말해 우측으로 갔다가 다시 좌측으로 돌아오는 ‘진자 (pendulum: 한 의견이 다른 의견으로 급변하는 것을 의미)’ 운동에 대한 희망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자 운동에 대한 믿음에 따르면,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실패가 새로운 케인지주의로, 즉 (국가에 의해) 통제된 자본주의로 복귀함으로써, 그 자본주의 부작용이 최소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수도 있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 이러한 믿음이란, 즉 역사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믿음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측면에서 과거 성공이 다시 반복되길 바라는, 결과적으로 구습과 관례를 따르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정치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칼 폴라니의 ‘이중 운동’에 너무 많이 희망을 걸게 되면, 다음 4가지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고 존 벨라미 포스터는 지적한다.

[a] 사회민주주의 (서구 사회복지국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 형성된 정치적 경제적 배경)의조건은 다음과 같다.  현실 사회주의자 사회의 위협이 실제 있었고, 노조의 권력이 강력했을 때 사민주의가 발생했고 지속되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쇠락하게 되면 사민주의도 곧바로 사라지게 된다.

[b] 1945년~1975년 30년간 황금기를 구가한 사회복지국가와 그 이론적 정당화였던 케인지주의의 물적 토대는 산업자본의 지배적 시기였는데, 그것이 변화하고 있다. 독점-금융 자본 국면에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그 자체에 고정되었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토대가 된 초창기 산업자본 지배 시대는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다.

[c] 사민주의는 제국주의 체제에 의존했고, 거기에 기대어 실천적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런 제국주의 체제는 인류의 대다수 이해관계와 상충한다.

[d] 노동(계급)과 사회적 협약에 기꺼이 참여하는 리버럴 민주주의와 (자기들이 주장하기로는) 계몽 산업-자본가 계급의 지배는 이제 과거 유물이 되었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이러한 조건에서 권력을 획득한 경우, (이러한 체제 안에서 정치를 하겠다다고 약속하고), 더 친절하고 더 부드러운 자본주의를 창출하려고 할 때, 이 정당들은 불가피하게 자본주의 작동 법칙들의 먹이가 된다.

[3] 한국 자본주의 체제와 소유권,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고치지 않고 ‘공정, 공정, 정의, 정의’만을 남발하다가 기득권의 포로가 된 한국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특질에 대한 설명.


마이클 예이츠(Michael Yates)가 말한 대로, 실패한 자본주의 맥락에서, “오늘날 심지어 온건한 정치 경제적 프로젝트, 즉 노조와 정치 정당들이 서로 포용하고 결실을 맺도록 조력하는 그런 프로젝트의 회복,재건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출처: Michael D. Yates, Can the Working Class Change the World?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8), 134.)

존 벨라미 포스터의 흥미로운, 교훈적인 지적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진보’라고 자기를 지칭하는 민주당 리버럴 좌파와 문파 세력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리버럴-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광의의 기술적-근대화 접근을 채택한 반면 사회적 관계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암묵적인 기술 결정주의 안에서, 디지털 기술, 사회 엔지니어링, 현명하고 여우같은 영리한 리버럴 경영관리가 권력을 거머쥘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러한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대로,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적 전제주의는 항구적인 재앙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당장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아마도 위로부터 수정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기술적 명령에 순응하면서, 자본 이윤과 축적을 잠시 옆으로 제쳐두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 안에서, 무엇이 이 체제에 남을 것인가? 어느 계급 혹은 소유 욕망이 결여된 채, 오직 효율성이라는 엔진만 장착한 자본주의 시장과 기업의 벌거벗은 프레임만이 남을 것이다. 


[4] 인간과 자연을 모두 파괴하는 자본주의 성장의 한계점 (요약) – 기후 위기 시대에 새로운 사회관계가 필요하다. 
과거 오류를 극복하는 ‘혁신 사회주의’가 지향해야 세가지 가치들, 이념들은,   “실질적인 평등, 공동체의 연대,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다. 


생태 파괴 시대, 생산력의 발달과 사회적 관계 발달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 과거 80년대 표현대로 하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부조응의 시대가 도래했다. 

요그겐 란더스, “성장의 한계 Limits to Growth” 에서 지적한 것보다, 현재 2020년 상태가 더 심각하다. 역사의 실제 과정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시각이 중요하다. 투쟁만이 역사를 진전시키고, 역사의 불연속적 캐릭터를 보장한다.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 세계를 과거와는 다르게 만들면서, 안에서 폭발하는 내파, 바깥에서 폭발하는 외파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인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사회관계를 창출해 내지 못한 사회체제는 많았다.  
 
사람들이 발달하는 생산력을 합리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사용하려면, 그에 걸맞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을 창조해내는데 실패하고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한다.

보수적 역사가, 야콥 부크하르트 (Jacob Burckhardt)가 말한대로, 역사적 과정의 가속화가 발생한다. 여러 세기를 통해 이룩한 발달이 이제 몇 달 만에 몇 주 만에 유령처럼 나타나고, 그렇게 현실이 된다.

21세기에도 혁명이 가능할까? 잘 사는 나라 기득권 세계 정치평론가들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러나 주변부에서는 혁명적 저항이 터져 나온다. 이를 진압하는 세력은 제국주의 군대 경제 정치다. 현재 실패한 자본주의가 모든 문명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 기후 변화, 기후 위기를 그 예로 들었다. 이번 21세기 기온이 4도 올랐다. 산업시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심지어 6도나 올랐다.  현재 자본주의는 극소수의 직접적인 혜택을 위해 자연환경을 착취하고 전체 순 사회적 잉여를 착취한다.

존 벨라미 포스터와 마이클 예이츠는 ‘그래도 사회주의 이상과 이념을 포기하지 말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세기에 사회주의를 말할 수 있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

존 벨라미 포스터는 마이클 예이츠 말을 인용해, 인간 보편적 ‘자유’를 향한 새로운 투쟁과 사회주의의 혁신을 주장한다. 

“노동자 계급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마이클 예이츠 책에서,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와 대중들(인민,시민,민중)이 진정한 사회주의를 향해 통일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그런 사회주의를 만들자고 한 게 실패했지 않은가? 그런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이러한 회의적 시각과 패배주의적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포스터와 예이츠는 역사에서 배우자고 주장한다. 중세 후기에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발생한 자본주의에 대한 최초 시도가 중세 봉건제에 가로막혀 실패로 돌아갔다. 과거 사회주의도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위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구시대 이념과 제도인 ‘봉건제’를 타파하고 자본주의를 시도했듯이, 사회주의 역시 앞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과거 실패를 교훈삼아 온고지신(溫故知新) 해서, 더 새롭고, 더 혁명적이고, 더 보편적인 형태의 사회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사회주의라는 이상과 이념은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보다 잇점과 장점이 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이념과 이상의 추진력은 실질적 평등과 지속가능한 인간(존엄) 발달에 뿌리내린 ‘보편적 자유’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보수파 경제학자 조제프 슘페터가 한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사회주의 정부와 연대해 일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좌우파 온갖 사람들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본주의는 쇠퇴할 것이다. 경제적 실패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성공 때문에 쇠퇴할 것이다. 자본주의 성공은 좁다란 경제적 목표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결국 자본주의 생존에 필요한 사회학적 토대들을 침식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그것이 생존할 수 없는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결국 자본주의의 후계자로서 사회주의가 등장할 것이다”라고 했다. 

21세기 자본주의 시장은 독점적 경쟁, 극단적인 불평등, 제도화된 탐욕을 스스로 고쳐나갈 수 없고, 오히려 인간 삶의 토대를 파괴할 것이다.

자본주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려는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은, 실질적인 평등, 공동체의 연대,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깨끗한 공기와 물, 영양가 있는 음식, 옷, 주거, 교육, 건강, 교통 통신이라는 기본적인 ‘인간 필요’에 대한 민주적 통제, 즉 노동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실패했다. 그럼 다음은? - 존 벨라미 포스터 

Capitalism Has Failed—What Next? (2019.Feb 1.) by John Bellamy F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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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8. 8. 26. 17:28



생활 속 좌파의 의미 (메모)2008.03.0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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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좌파의 숙제: 쓰레기 대 문화재

2003-04-22 06:25:39


 


우리나라 곳곳이 다 문화재다. 동네 밭이라도, 혹은 저수지, 보 하나 파더라도, 옛날부터 깨진 그릇이 우르르 나오곤 했다. 우리나라는 왠만하면 다 문화재로 둘러싸여 있다. 다 모르고, '현대화'다 '새마을 운동'이다 해서, 선조들이 물려준 것 다 버리고, 그게 왜 "여기에 있었는지"를 반성할 시간도 없었다. 


세계에서 한강 이남처럼 살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지닌 곳도 드물다. 어쩌면 철학과 사변이 불필요할 정도로 살기 좋은 곳, 그 속에서 피어난 문명에 대해서 되돌아 볼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좌파는, 인간은 그저 죽도록 일하거나 돈만 산더미처럼 버는 경제적인 동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운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좌파의 운동인 것이다. 유럽에서 좌파의 등장, 그 철학적 배경에는, 인간의 자유란 노동의 경계, 안과 바깥의 그 경계사이의 긴장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긴장을 제대로 해결한 역사적 주체는 아직까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노동의 의미를 물었다. 노동만을 찬미한 것이 아니라. 그 힘든 노동만을 찬양만 했을라면, 우리가 개미와 벌과 무엇이 달라겠는가 ? 이러한 심미안을 놓치게 될 때, 좌파는 다시 썩어문드러지는 것이다. 그것이 20세기가 남겨놓고 간 숙제였다. 이 온 동네가 다 문화유산으로 가득차 있고, 소위 민이라는 사람들이 동원되어 만들어놓은 문명이 거기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다음 봄에는, 곡갱이 들고, 할아버지 논이라도 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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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매립장 부지서 청동기 주거지 확인[23191] 


재단법인 경북도 문화재연구원(원장.윤용진)은 19일 포항시 남구 호동산 8-24 일대 쓰레기매립장 확장 예정부지에서 청동기 및 삼국시대 주거지 160여기와 무문토기 및 돌도끼, 항아리 등 각종 유물 100여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연구원인 이날 오전 현장 설명회를 갖고 2001년 8월부터 최근까지 발굴조사한 1만2천800㎡에 대한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문화재연구원은 조사지역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규모가 거의 비슷한 청동기시대 수혈 주거지(길이 8.3m, 너비 4.8m, 깊이 45㎝)를 발견했으며, 주거지의 평면 형태와 벽 등 시설은 이미 발견된 포항을 비롯한 경주나 울산권을 대표하는 형태를 띠고있어 경북 동해안 일대 청동기시대 취락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또 이곳에서는 4-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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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

서현순 4.00.00 00:00

오천년 역사 품은 한반도 남도에, 옛 자취 아련하다 애달픈 대운하. 을숙도 바라보니 낙동강을 아느냐, 원 그려 우는 마음 부산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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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4.00.00 00:00

원시님...참 좋은 글이네요.....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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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4.00.00 00:00

서현순/ 부산가기 전에 구포라는 곳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멀리서 보고 반해버렸어요. 정말 우리 나라 강은 너무나 멋있는데, 낙동강, 아 그 갱상도 보리 문댕이 시인들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해요. 어쩌다가 진보의 고향 대구가 깡보수 한나라당 아지트로 되었는지 한숨만 나오는데... 낙동강 이거 살리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터인데. 풀, 새, 물, 태양, 달, 이것으로도 충분한데. 우리나라 강이 대부분 동서로 흐르는데,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잖아요. 그 묘미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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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7:46

2013.01.28 02:43

장석준 후보 : 녹색사회주의 몇 가지 비판 (1)

원시 조회 수 932 댓글 0



글을 쓰기 전에, 당대표단 선거 유세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이런 토론 글이 얼마나 생산적일지 우려는 됩니다. 다만 미래 토론 주제로 삼자는 의미로 해석해주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진보신당의 현재 역량을 고려했을 때는, 당대표단 선거는 1박 2일 정도 충남 어느 한 도시에 모여서 하루 10시간, 그 다음날 8시간 정도 다같이 발표 토론 질문하는 ‘축제’로 펼쳤으면 합니다.


1. 지향하는 가치관으로서 ‘녹색’과 ‘적색’을 결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2011년 5월에 김현우 후보가 발표한 글의 내용 (http://blog.naver.com/nuovo21/70043731544 )이나,

또 쟁점과 토론방에서 제가 김현우님과 나눈 토론 내용 등도 유사한 주제라고 봅니다.

http://www.newjinbo.org/xe/1536648


그리고 2008년 3월에, 진보신당 정책실에서 <생태, 평화, 평등, 연대>라는 4대 가치를 내걸어서, 그것들이 기계적인 나열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가 2개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생태 - 반자본주의 운동, 노동조합내 노동자의 직접 참여정치 강조 (1980-1986년 독일 녹색당 사례” “생태 우경화보다 노동-생태 공통분모 시급히 찾아야”. 그래서 ‘녹색’과 ‘적색’의 공통 지반을 찾자는 취지가 지난 4년간 전당적인 실천으로 되지 못한 게 아쉽지, 녹색 적색을 연결짓자는 노력은 잘못 된 게 아닙니다.


2. 문제는 최근 진보정의당의 <사회민주주의> 깃발 수립 제안 (노회찬) 및 토론과 동일한 오류가 엿보입니다. 녹색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내용은 서로 차이가 있지만, 정당화하는 방식에서는 동일한 정치적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두 논의다 지난 12년간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 등 우리가 실천해 온 정치적 이념과 가치들과 “녹색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와의 연관관계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장석준 부대표 후보께서 올린 <지금 여기의 진보,2012> 녹색사회주의에 대한 글들은 몇 가지 정보들을 담고 있지만, 그 ‘녹색사회주의’가 어떠한 우리의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설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평등-자주 패러다임보다, 또 진보신당에서 평등-생태-평화-연대 가치들(political values) 보다 이제 이념형에 가까운 ‘녹색 사회주의’가 왜 더 나은지, 한국 자본주의 특질을 어떻게 더 잘 설명하고, 그에 근거한 정치적 실천과제들을 어느 누가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3. 김현우 대표 후보도 이 문제에 답을 해줘야 하는데요, 지금 한국에 ‘녹색당’이 있는 정치적 상황에서, 진보신당이 ‘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게 어떠한 장점이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 혹시 답변하셨으면 참고글을 알려주세요)


4. [부대표 2번 장석준] 노동자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 녹색 사회주의 생각 http://www.newjinbo.org/xe/5016532


노동 분화 (differentiation) 시대에, 노동 중심성이라는 부적합한 단어를 들고 나온 선본 관계자들이 문제이긴 합니다. 대표 후보자 동영상 토론을 보니까, ‘노동중심성’ 관련된 주제는 단어의 거창함에 비해서 논의가 빈곤합니다. 아니 진보신당에 과거 2008년 민노당->진보신당 분당시 결합하지 않는 노동자들이나, 그게 민주노총 특정 정파건 비-조합원 노동자들이건 결합한다는 의사가 있으면, 당에서 [통합 논의 팀]을 당 절차에 따라 만들어서 입당하게 유도하고 장려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노동중심이라는 단어가 따로 지시하는 게 있다면, * 노동중심성에 대한 비판은 따로 하겠습니다. )


여튼 노동중심성이라는 잘못 선택된 단어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장석준 후보가 내건 4가지 조건들은,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한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민주노총 출신만 비판할 게 아니라, 노동조합과 당과의 관계 설정을 잘못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자기 비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 임금인상 투쟁 문제는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 차원에서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이게 전 사회적인 의제로 만드는 일은 당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장석준님이 쓴 ‘고소득 정규직 임금인상만 신경쓴다’는 불필요보이고, 오히려 ‘노동 귀족’ 이데올로기 담론을 계발하는 게 당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 당 내에 <노동부>를 만들어서, 노-노 갈등의 원천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하는 게 당의 정치적 임무입니다. 장석준님이 말하는 ‘증세’나 ‘비정규직 임금 인상 투쟁’은 우리 당의 당론이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2)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87년 노동자 항쟁과 유사한 정도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제가 볼 때 당에서 시급하게 해야할 일은, 87년 노동자 항쟁 “어용노조 박살내고 민주노조 쟁취하자”와 규모가 비슷한 항쟁이 와야 한다고 주창하는 게 아닙니다. 97년 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들을 수집해서, 각 업종별로 도시별로 상이한 조건들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을 당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렇게 세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3) 노동자들의 역사적 과제인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노동자 정당이어야 한다는 장석준 후보의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난 12년간 정당 운영에서 현재 우리 좌표는 어느정도인가를 적시해야지, 다시 ‘역사적 주체’가 노동자임을 선포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봅니다.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도 해명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4) 장석준 후보의 주장, 노동자들이 입시,집값 경쟁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 그 대안이 ‘협동조합’이라고 하는 부분은 앞으로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해 보입니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 기업들, 토지 등을 직접 소유하거나 통제하자는 주장은 우리의 정치적 방향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노동자 전체가 정치적 전위가 아닐텐데 ‘입시, 집값’ 경쟁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은 대중적 진보(좌파)정당에서 내걸 수 있는 구호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노동자 자주경영이나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 통제 및 운용 방식을 ‘협동조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까지 충분한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게 (1)-(4) 왜 ‘녹색’ 사회주의인지, 그냥 ‘녹색’은 수식어이고, ‘사회주의’ 말만 되풀이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5. 태양 코뮌주의 = 녹색 사회주의 (다니엘 타누로) 이야기는, ‘전기가 사회주의다’라는 구호를 연상시킵니다. 장석준님이 타누로 주장을 Gosplan 이 아니라 다원화 분권화된 사회주의라는 말로 요약을 하긴 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기술중심 (전기에서 태양에너지로 바뀜)주의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또한 녹색 사회주의 핵심을 ‘참여’와 ‘자치’라고 했지만, ‘참여’와 ‘자치’는 녹색사회주의가 아니더라도 다른 정치체제나 이데올로기에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아울러 규모 경제 (scale economy)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길드 사회주의인지도 더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칼 폴라니 테제 “사회가 가장 중요하다. 


혹은 사회 제일주의 the primacy of society"를 언급하면서 국가와 자본주의 시장이 아닌 협동조합을 주요한 경제활동 행위주체로 내세우고 있는데요, 소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의 문제로 국가 주권 (한미 FTA)의 축소 가능성을 지난 30년 동안 지적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미래 사회를 마르크스의 ‘코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500년, 1000년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적 과제들에 대해서 ‘녹색 사회주의’가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당게시판에 올린 글들에 대해서는 향후 토론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장석준님도 말씀하셨듯이 ‘집단적’ 토론을 당원들과 같이 해나가길 바라겠습니다.


6. 녹색의 원리와 적색의 원리가 상충되는 수많은 주장들과 실천들에 대한 조사와 이에 대한 해법 제시가 전혀 없다.


생태사회주의 (eco-socialism)이라는 용어는 70년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90년대에 퍼지다 요즘은 좀 사그러든 것 같습니다. 생태-사회주의와 ‘녹색 사회주의’가 동일한 말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아니면 쉽게 말해서 독일 녹색당 노선과 독일 좌파당 노선을 종합적으로 한 군데로 몰아서 ‘녹색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여튼 이름이야 뭐라고 하든지 간에, 녹색의 원리와 적색의 원리가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고, 마르크스 입장에서 두 원리를 묶는 시도들도 있긴 하지만, 서로 다른 원리가 분명히 충돌하기도 합니다.


장석준 후보가 지지하는 이용길 대표 후보 전직이 자동차 판매 업종인데, 자동차 판매를 잘 해야 복지가 형성되고, 대신 자동차 증가로 엔트로피가 늘어나게 되고, 공기는 더 많이 오염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소세나 환경세를 시민들이 더 많이 내야 합니다. 


녹색 적색 원리의 상충 뿐만 아니라, 현재 진보신당 당원들의 삶과도 직결되어 있는 ‘모순’과 ‘갈등’ ‘상충’이 있습니다.


당의 이념으로 어떤 이데올로기를 끌어올 때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 구성원들 당원들의 삶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거나, 내부 상충 요소들을 충분히 제거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장석준님이 말한 ‘녹색 사회주의’ 단어는 더 많은 토론과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녹색 사회주의’나 ‘생태 사회주의’는 아나키스트 노선으로 갈 확률이 더 크고, 오히려 그게 더 이론적으로 적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니라면 독일 녹색당처럼 기존의 사회민주당 정책들을 수렴해 나가는 방향으로 가거나.당게시판에 올린 글만 가지고 아직 잘 갈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열린 토론주제로 남기겠습니다. 제가 혹시 오해에 기초해서 비판하거나 지적한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협동조합, 민중의 집 문제는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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