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북한_DPRK2018. 4. 25. 08:36

핵실험 중지 발표 이후, 호오를 떠나 북한 지도자의 인간적 모습, 특히 슬픔을 표현한 뉴스를 본 적이 있는가 ? 드물었다. 이것도 시대의 변화이다.



며칠 전 노동당 중앙위에서 김정은은 아주 길게 뭔가를 발표했다. 그 연설문을 듣고나서 든 생각은, 김정은이 병진노선( 핵개발과 경제발전) 의 승리를 말했음에도, 북쪽 사람들 생활은 여전히 힘들고, 평양과 비평양 북 시민들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페이지짜리 긴 글, 자신감과 진취적인 문체임에도, 왠지 북한 현대사를 생각하니 슬픔이 조금 올라왔다.



교육과 과학을 발전시키자는 게 김정은 발표 요지였다. 그런데 학교 시설들은 어떻게 혁신하겠는가? 사실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 김정은은 지식경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지식경제시대를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나갈 것인가 ? 그것이 북 시민들의 소비생활 일상생활까지 혜택으로 이어지기까지 여러 조건들이 필요해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건설을 부르짖던 열정적인 사람들의 연설문과 김정은의 선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북쪽 청소년들이 청년들이 군대, 김정은 특유 표현대로 '무력'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지식경제에 매진하는 날이 올 것인가 ?


김정은의 전투경제 개념과 지식경제시대, 이 두가지 조금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엇갈린 단어들이 크게 부각되는 연설이었다.


 갈 길이 멀다.





Uncontrollable grief' of Kim Jong-un over North Korea bus disaster

State media describes reaction of regime leader after 32 visiting Chinese died when their coach plunged off a bridge


Justin McCurry in Tokyo


Tue 24 Apr 2018 05.05 BST Last modified on Wed 25 Apr 2018 00.24 B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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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Jong-un meets with China’s ambassador, Li Jinjun, after 32 Chinese tourists and four North Koreans died in a bus crash.

 Kim Jong-un meets with China’s ambassador, Li Jinjun, after 32 Chinese tourists and four North Koreans died in a bus crash. Photograph: -/AFP/Getty Images

Kim Jong-un expressed his “bitter sorrow” over the deaths of dozens of Chinese tourists after their bus plunged off a bridge in North Korea.


The state-run KCNA news agency reported on Tuesday that the North Korean leader had visited two Chinese survivors of the crash on Sunday in which 32 Chinese and four North Koreans died.


In his first reported visit to the Chinese embassy on Monday, Kim was quoted as saying he felt “uncontrollable grief” over the accident in North Hwanghae province.


The display is another sign that Kim is attempting to portray himself as a conventional leader – equally at ease offering sympathy to victims of tragedies as making fiery pronouncements – ahead of Friday’s summit with the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and another planned meeting with Donald Trump in late May or early June.


The agency quoted Kim as saying the North Korean people “take the tragic accident as their own misfortune”. North Korean authorities would do all they could “to alleviate the pain of the bereaved families”.


Li Jinjun, China’s ambassador to North Korea, thanked Kim and said his visit to the embassy demonstrated the two countries “unbreakable and great friendship”, according to an account of the meeting by Yonhap news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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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Jong-un visits survivors of bus crash – video

Having spent the first six years of his leadership appearing at North Korean factories and military units, as well as making occasional forays to concerts, amusement parks and sports facilities, Kim made a surprise trip to China in March, amid a thaw in relations between Pyongyang and Beijing.



US and North Korea expectations over denuclearization appear to coll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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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the former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was a regular visitor to the Chinese embassy, his son reportedly avoided direct contact with Beijing’s officials in Pyongyang as bilateral ties were tested by the North’s nuclear and ballistic missile programmes and China’s support for UN security council sanctions.


Last week Kim took another step towards normalising his country’s image ahead of the summits when he gave his wife, Ri Sol-ju, the title of first lady, putting her on a par with Moon’s wife, Kim Jung-sook, and Melania Trump.


North Korean media had previously referred to Ri as “comrade”. It is reportedly the first time the title of first lady has been given to the wife of a North Korean leader since 1974, when it was used to refer to Kim Song-ae, the second wife of the regime’s founding leader, Kim Il-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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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we know about Kim Jong-un's wife, Ri Sol-ju - video profile

The Chinese tour group was travelling from Kaesong, near the border with South Korea, to Pyongyang when the accident occurred, according to NK News.


China’s health ministry said it was sending a team of medical experts, equipment and drugs to the hospital, where two Chinese were said to be in a critical condition.


While many North Korean roads are poorly maintained, the stretch between Kaesong and Pyongyang is among the best in the country and sees little traffic.


Chinese tourists make up about 80 percent of all foreign visitors to North Korea, according to the Korea Maritime Institute think tank. Tourism generates revenues estimated at 44 million USD a year for the country’s economy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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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2014. 12. 19. 22:05


통합진보당 노선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오늘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은 1994년 주사파 파동을 일으킨 서강대 총장 박홍의 재림이었고, 그 꾸짖음의 제도적 완성이었다. 1994년 8월 서강대 총장 박홍은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사노청과 북한 김정일이 있다"고 말했다. 박홍 신부는 당시 고백성사를 한 평신도의 말이 그 근거라고 했다. 그 이후 20년이 지난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폭력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해석"하고, 통합진보당 해산이 가져올 이익이 손해보다 더 크다고 "미래를 점치고,"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직을 다 박탈한다고 "명령"했다.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이념이 왜 헌법 8조 4항인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는가에 대한 법률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1994년 박홍 총장이 말하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따라서 최고 권위를 가진 법 제도기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망각하고, 박홍 총장이 "좌경화된 학생운동을 꾸짖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이 나서서 꾸짖는다"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내란선동을 했다는 이석기와 다양한 의견을 가진 통합진보당 평당원들을 구별하지 않았다. 이것은 주사파와 사노맹을 구별하지 않고,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배후에는 북한 사노청과 김정일이 있다"고 넌센스를 늘어놓았던 박홍을 연상시킨다. 박홍은 당시 "주사파든 사노맹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이든 대한민국 정부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기관으로서 이석기씨가 '내란 선동'을 해서 통합진보당 (당권자 약 3만명) 당원들이 그 내란 선동에 동조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 증거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 대신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는 식의 정치적 해석만을 늘어놨다. "좌경 용공 학생들"을 꾸짖는다는 박홍 총장이 법률 옷만 입고 헌법재판소에 앉아서 8명으로 둔갑술을 펼친 다음, 평신도의 고백성사 대신, 헌법 8조와 헌법 37조 2항을 빠른 속도로 "헌법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낭독했다.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사노청과 북한 김정일이 있다" - 1994년

"진보적 민주주의 뒤에는 이석기가 있고, 이석기 뒤에는 북한 대남 전략과 북한식 사회주의가 있다" - 2014년 


헌법재판소에는 법률적 근거 제시는 없고, 오로지 이념 용어 전쟁만이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이렇다. 대전제는, 북한식 사회주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다. 소전제,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이념)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결론, 따라서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다.


앞으로는 소전제 괄호 안에 어느 개인, 어느 집단, 어느 정당이 다 강제로 수용될 수 있다. 민주당, 정의당, 노동당, 이미숙, 배수지, 최민식, 박지성 등이 다 강제로 저 괄혼 안에 처박힐 수 있다. 1994년 좌경 학생운동에 대한 박홍의 꾸짖음이 2014년 헌법재판소의 3단 논리로 둔갑했을 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20년 후퇴했다고 말하면 지나친 판단인가? 


자료 1. 1994년 8월 26일자, 경향신문



자료 2.



자료 3. 평신도 고해성사를 만천하에 공개버리는 비-신앙적 작태를 보여준 박홍 총장 




자료 4. 대한민국 헌법 제 8조 , 정당에 대한 조항 





자료 5. 오늘 판결의 주제가 되었던, 제 37조 2항 (비례원칙)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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