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6. 6. 6. 15:09


무하마드 알리, 흑인 권리를 위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다   

2005.08.10. 03:07   수정   삭제

 

When We Were Kings (이거 번역은, 왕년에 우리가 왕이었을 적에)


Directed by Leon Gast

Produced by Leon Gast, David Sonenberg & Taylor Hackford

Featuring Muhammad Ali, George Foreman, James Brown, Spike Lee

(US 1997 / cert PG / 84 mins)



"우리가 왕이었을 때" 영화는 1974년 10월, 아프리카 콩고 공화국에서 열린 헤비급 타이틀 매치, 무하마드 알리 대 조오지 포먼과의 경기를 다룬다. 이 영화의 감독 리온 가스트는 이 세기의 권투대결을 현재적 시각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1997년 아카데미 상을 비롯해 다큐멘타리 분야에서 여러가지 상을 받게된다. 또한 대중적인 흥행에도 성공해서 267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이 영화는 단지 스포츠 중계방송이 아니라, 역사, 정치, 개성, 종교에 대한 정서적이고 지적인 탐구이다.

  

이 경기는 500만 달러가 걸린 빅매치였다.


우리는 무하마드 알리를 권투 선수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리의 정치적 입장이다.

 

1974년 경, 자이레 (콩고 공화국의 예전 이름)는 더 이상, 벨기에 식민지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인권운동으로 인해서, 인종차별과 분열에 대항운동이 발전하게 되었다.



알리가 킨샤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영화와 텔레비젼의 영향으로 발생한 미국의 흑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이미지, 즉 스스로를 비하는 이미지와,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이 스스로를 해석하는가를 알리는 비교했다.

 

반면에, 조지 포먼은 킨샤사로 갈때,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었다. 조지 포먼 역시 자신을 자이레 사람들과 동일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이레(콩고) 사람들은 조지 포먼을 단지 미국사람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조지 포먼은 폭압적인 벨기에 정권의 상징으로 통하는 독일산 쉐퍼드 개를 가지고 있었다.

 


원시 2005.08.10. 03:29 답글 | 수정 | 삭제


무하마드 알리는, 미국흑인들이 백인의 시각으로 해석되고, 자기 주체성을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미국흑인들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해석할 도구와 지식들을 상실했다고 보고, 그 대안으로 흑인 스스로 자기들 삶을 해석하고, 백인들을 재-교육시켜야 한다고 본다. 


다큐멘타리 끝부분에도 나오지만, 알리는 "Me, We" 나 자신은 우리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알리 역시, 60년대, 미국을 강타한 베트남 반전 운동과 흑인 인권 운동이라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며,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춤추는 듯이 권투를 했다. 그 권투와 춤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아프리카의 혼을 지닌 존재임을, 그 존재는 홑이 아닌 '우리 흑인'이라는 것을 사각의 링에서 보여준 것이다.



 

BIBLIOGRAPHY

‘The Black Handbook' by E. LBute & H. J. P Harmer 

'Martin and Malcolm and America' by J. H. Cone 

'Sources Of the African–American Past' by R Finkenbine 

'The Black Lights: Inside the World of Professional Boxing' T. Hauser

'Muhammad Ali' by T. Hauser

‘Muhammad Ali in Perspective’ by T. Hauser

‘The Hutchison Dictionary of World History’ 2nd Edition 

'The Fight' by Norman Mailer

'Malcolm – The Life of a Man Who Changed Black America' by B. Perry

'In the Footsteps of Mr. Kurtz' by Wrong, M.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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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블로그도 놀러오세요~

    2016.06.15 15:25 [ ADDR : EDIT/ DEL : REPLY ]
  2. 반가와요

    2016.06.26 20:05 [ ADDR : EDIT/ DEL : REPLY ]



어려워도 유쾌함과 포용력이 필요한 이유


혹시 팀 동료들에게 짜증내고 욕하고, 험담하면서 우승한 축구팀, 야구팀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못나고 실력이 없고, 국회의원 0석이라도 해도, 동료들에 대한 당원들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한다. 과정이 유쾌했으면 좋겠다. 의견이 달라도 포용력이 있었으면 한다. 새누리당 - 민주당 정치 행태에 38도씨로 분노하고, 다르지만 같이 행동할 수 있는 동료에게는 17도 정도 온화한 날씨로 분노했으면 좋겠다.


쿠바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고, 이건 그냥 개인적인 인물평이다. 정말 힘들 때, 일의 과정이 유쾌하지 않을 때, 동료들을 봐도 짜증이 나고, 나와 견해가 다르면 ‘인내력’과 ‘합의 의지’가 생기지 않을 때, 체 게바라처럼 밀림으로 떠나려고 한다. 밀림이란 숲이 아니라, 또 다른 실험과 실천의 장소이다.


내가 잠시 다녔던 회사에서 한국 최초로 쿠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선배 PD들이 피델 카스트로를 인터뷰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으나 실패하고 서열 5~6위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KBS:1994> 김포공항 세관에서 촬영 테이프들을 다 압수해버려서, 그걸 찾으려고 김포공항까지 가기도 했다. 겨우 찾아서 편집 끝내고 kbs에서 방송할 수 있었다. 그런 계기로 쿠바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몇 가지 다큐멘타리들을 보게 되었다.


쿠바 혁명 이후,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체 게바라는 1965년 경, 미국 제국주의와 소련의 패권주의를 동시에 비판했다. 소련 경제 정치체제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동떨어진 것이고, 국제정치 역시 미국과 소련이 제 3세계와 가난한 남반구 나라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바를 물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던 모스크바 눈에 체 게바라는 가시였다.


체 게바라는 위 알제리 연설 이후 하바나 공항에 내렸다. 흑백 다큐멘타리 안에서 두 사람. 동료 피델 카스트로와 악수하고 포옹한다. 그 후 체 게바라는 소련과 쿠바와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산업자원부 장관자리를 사임했다. 피델 카스트로 정부에게 외교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체 게바라는 남아메리카 나라들로 떠난다. 1967년 볼리비아 숲 밀림에서 총에 맞고 전사했다.

과정이 유쾌하지 않으면 될 일도 안된다. 동료들에 대한 포용력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좌파 가치이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시민사회가 단단하고, 노동자 계급의식에 기초한 정치가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영남 지역 패권이나 지역 분할 정치가 제도권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정치적 포용력’이 중요한 가치이자, 조직의 무기이다.


참고: 알제리 연설 일부:

http://youtu.be/86YaCAdRcz4

(베트남이 미국 제국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 당시 알제리를 지배하던 제국주의 프랑스 비판. 콩고 수상 패트리스 루뭄바 납치 살해 사건 책임으로 유엔과 미국 (벨기에,소련등 연관) 비판 등)




(1960년, 체 게바라 해외 순방, 체코, 헝가리, 북한을 방문할 때, 북한 DPRK 에서)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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